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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참으로 부끄러운 기사가 얼마전 미국의 일간지 에 실렸었다. 국내 한 일간지의 짤막한 중계를 통해 정리하자면 일본 정권의 보수회귀에 한국인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문제는 한국 내부에도 있다고 분석했다는 기사였다. 한국 안의 친일세력(또는 그 후예)이 아직도 각계의 권력집단에 포진하고 있는 터라, 일제 강점기 친일행각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는 것. 하긴, 우리 역사교과서에 그 친일세력이 어엿하게 항일운동을 했노라고 기술되는 판이니 일본의 저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사람들이 보고 들을까 염려된다.(아마 알긴 알고 있을 것이다.)영리한 영화 <메멘토>를 보고나서 쓴 이번 칼럼에서 우리의 고종석 아저씨는 망각을 하는 자는 “과오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그 과오를 반복한다. 그리고 망각하는 자는 늘 속임을 당한다”며 한 신문과 우리의 관계를 지적했다. 속임을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충북 옥천의 시민들이 만드는 ‘물총’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일전에 어느 대학 시간강사를
메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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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일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자신이 미워질 때는 혹시 없었는지?1996년 10월 헌법재판소가 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륜)의 ‘사전심의’에 위헌결정을 내리고, 영화관련법이 바뀌어 그 공륜도, 심의도 이름이 바뀌었으나 그 행정기구의 등급심위위원들에게는 등급심의를 보류할 권한이 주어져 있었다. 등급없이 영화를 상영할 수 없도록 틀을 짜놓고 심의를 보류하지 않는다니, 그건 한꺼풀 벗겨보지 않아도 또다른 검열이었다. 이 법은 조만간 헌법재판소로 되돌려질 것이었다.예상했던 대로,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두차례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둘 하나 섹스>의 제작자가 영화진흥법 관련조항의 위헌여부를 가려달라고 법정으로 들고 왔다. 서울행정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헌재로 넘긴 것이 바로 1년전. 헌법재판소는 또다시 영등위의 등급보류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예상했던 대로, 귀신이 온다고, 검열이 사라졌으니 음란 폭력물이 범람해 우리 사회를 오염시키리라는 경보음이 들려온다. 같은
귀신이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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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24일, 해방과 귀국의 기쁨을 채 만끽하지도 못한 한국인들을 태운 귀환선이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만에서 폭파, 침몰됐다. 일본 정부는 자국 해군의 특별수송함 우키시마마루의 폭침으로 조선인 524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원인은 미군이 부설한 기뢰에 부딪혔다는 것. 그러나 생존피해자와 유족들은 발표를 믿지 않았다. 배에는 조선인 7500명이 타고 있었고, 5천여명이 수장됐으며, 사고가 아니라 계획적으로 폭파됐다는 의혹이 아직도 남아 있다.8월23, 24일 서울에서 잇따라 시사된 <아시안 블루>와 <살아있는 영혼들>은 그 우키시마마루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다. 이중 먼저 제작된 영화는 일본 호리카와 히로미치가 감독한 <아시안 블루>. 이미 소개된 대로 헤이안시대의 수도였던 교토의 시민들이 제작비를 모금해 정도 1200년 기념사업으로 만든 영화다. 1995년 완성됐으나 당시 일본영화의 국내개봉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피해당사국인 한국에서는 상
우키시마마루호는 부산에 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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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이 자리에서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겠다는” 이라는 미래형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씨네21>이 나온 건, 고이즈미가 이미 참배를 끝낸 뒤였다.(시제를 바로 잡습니다.)2차 대전의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참배를 유럽의 언론은 자기들 식으로 보자면 히틀러 추모행위와 같은 것이라고 단순명료하게 정리한 바 있다. 그런 논평을 읽고나니 지난해 유럽을 들쑤셔놓은 외르크 하이더 사건이 떠올랐다. 제50회 베를린 영화제를 취재하러 갔을 때, 나치에 우호적인 인종차별 발언을 한 오스트리아 자유당 당수를 규탄하는 소리가 외신으로 보고 듣던 것보다 훨씬 격앙돼 있는 데 조금 놀랐다. 공항 대기실의 신문들은 언어에 상관없이 일제히 하이더 비판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다.한 발 늦게 도착해서 개막날 풍경은 볼 수 없었는데, 한국 기자로는 유일하게 그날의 포츠담 광장을 지킨 <씨네21>의 박은영 기자로부터 다시 하이더 관련소
여름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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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누군가에게서 이름을 빼앗는다는 건 단순히 호칭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를 완전히 지배하기 위한 방법이다.” 일본의 극장을 흔들고 있는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품의 의미를 밝히는 글에서 그렇게 말했다. 10살난 여자아이 치히로를 종업원으로 부리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온천여관의 여주인 마녀가 먼저 한 일도 이름 바꾸기였다( 마녀가 지어준 새 이름이 바로 센). 이름, 그것은 존재의 증명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일본의 미적 전통을 감각이 온통 서구화한 어린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어했다. 그 또한 이름과 마찬가지로 존재의 터전이다. 그는 “국경없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에게 딛고 설 땅과 역사와 과거가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런 땅과 역사와 과거를 짓기 위한 시도였던 것이다.둘. 말과 이름을 빼앗겼던 시대가 우리에게 있었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그대는
여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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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되던 때가 기억난다. 매맞는 남편도 많다고 농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대부분 남자였다. 그들은 농담으로 진심을 가장했던 것이다. 묵은 신문을 뒤져보면 아마, 그 즈음해서 매맞는 남편에 관한 기사들이 심심치않게 발견될 것이다. 세태가 이런 데 매맞는 여자들만 편들다니 섭섭 또는 고약하다는 심사를 환기시키는, 맞불효과 비슷한 것을 일시적으로 내기도 했다. 남자가 매맞는 데 찬성하지는 않지만, 두 현상을 그런 방식으로 섞는 데는 더욱 찬성할 수 없었다. 비슷한 분위기는 성희롱 방지법 때도 되풀이됐다.공격적인 여주인공과 수동적인 남자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올여름 <친구>의 흥행바톤을 이어 받았다. 어디서나 맘에 안드는 사람들에게 시비걸고, 정신을 놓칠 정도로 술을 마시고, 토사물을 토해놓는 전지현을 차태현도, 관객들도 사랑스럽다 한다. 그렇다고 전통적 여성관과 남녀관계가 바뀌었다고 환호할 수준은 아직 아니다. 천방지축 날뛰는
그 여자, 아직도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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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마포대교를 건넌 적이 있다. 처음엔 가볍게 장난처럼 한강을 내 다리로 건너볼까, 시작한 일이었다. 북단에서 남단으로. 그러나 그건 결코 즐거운 장난이 될 수 없었다. 강위에 걸린 다리위에는 분명 인도가 양켠에 있는데, 그 다리로 올라갈 길이 없다. 가장자리에 심어둔 철제 난간에 바짝 붙어서야 인도를 밟을 수 있었다. 이 다리는 자동차용이다. 그럼 저 인도는 누굴 위한 거지, 운전자가 따로 있는 자동차 이용자. 그런 사람들만, 자, 나는 잠시 강바람을 쐬고 싶으니 당신은 저 앞에서 나를 기다리시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산책을 즐기라는 얘기다.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편하냐 불편하냐를 따지기 전에 이런 건 싫다. 차를 타고 달려 그 거리와 시간을 압축하는 `현대인`들도, 느릿느릿 걸어가며 그걸 늘여보고 싶은 때가 있는 법이다. 가끔은.영화도 그렇다. 안그러면 왜 에이젠슈테인은 오뎃사 계단의 시간과 공간을 그렇게 분할하고 다시 붙여서 확장했겠는가. 스쳐지나갔으면 놓치고 말았을 많
마포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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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번 물난리는 집 뒷산 너머 동네에도 피해를 남겼다. 배수관이 수용 못한 물더미가 한밤중에 지하셋방으로 흘러들었단다. 밤새 물을 퍼내다 새벽녘에 병원으로 실려가 아기를 낳은 새댁이야기며, 출장간 방주인이 잠가둔 방문을 여차저차 열고 짐을 들어낸 이야기들이 골목으로 번져갔다. 어쩌다 들여다본 연립주택 지하에는 네 가구의 살림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바닥이 배수관보다 너무 낮아서, 화장실을 천장 가까이에 높다랗게 배치해놓은 집. 습기를 말리는 데는 햇빛만한 게 없다고 동네사람들이 반가워하던, 해가 쨍쨍 맑은 날이었지만 사람도, 살림도 모두 몸을 피한 지하셋방에는 그 빛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런 날, ‘영화구경’이 주업인 사람에게 어떤 회의가 찾아들지는 뻔한 일. <사무라이 픽션>에서 조금 얼띤 남자주인공은 계곡 맑은 물에, 행복에 취해 있다가 벌떡 일어서 소리쳤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가보인 명검도 찾고, 죽은 친구의 복수도 해야 하는데 개
행복해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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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번 물난리는 집 뒷산 너머 동네에도 피해를 남겼다. 배수관이 수용 못한 물더미가 한밤중에 지하셋방으로 흘러들었단다. 밤새 물을 퍼내다 새벽녘에 병원으로 실려가 아기를 낳은 새댁이야기며, 출장간 방주인이 잠가둔 방문을 여차저차 열고 짐을 들어낸 이야기들이 골목으로 번져갔다. 어쩌다 들여다본 연립주택 지하에는 네 가구의 살림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바닥이 배수관보다 너무 낮아서, 화장실을 천장 가까이에 높다랗게 배치해놓은 집. 습기를 말리는 데는 햇빛만한 게 없다고 동네사람들이 반가워하던, 해가 쨍쨍 맑은 날이었지만 사람도, 살림도 모두 몸을 피한 지하셋방에는 그 빛이 허락되지 않았다.이런 날, ‘영화구경’이 주업인 사람에게 어떤 회의가 찾아들지는 뻔한 일. <사무라이 픽션>에서 조금 얼띤 남자주인공은 계곡 맑은 물에, 행복에 취해 있다가 벌떡 일어서 소리쳤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가보인 명검도 찾고, 죽은 친구의 복수도 해야 하는데 개인적
행복해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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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사라졌다. 언제부터인가. 한참을 뒤돌아봐야 한다. <마부> <박서방> <월급봉투>, 제목을 짚어가면 그건 이미 ‘조국의 근대화'가 조국을 뒤덮기 전이다. 그때 이미 아버지들의 위치는 불안불안했다. 옛시대의 심성으로 변화하는 세태를 맞는 그 모습에는 희생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주인공이었다. 그들이라기보다 배우 김승호라고 말해야 정확하겠지만.그의 아들들은 어디로 갔을까. 영화에서건 현실에서건 아들들은 이미 그때의 아버지 나이를 넘겼을 텐데. 한해 1인당 평균 영화관람 횟수가 5회, 10회를 웃돌던 극장가의 황금기가 순식간에 막을 내렸을 때, 한국영화도 긴 불황에 들어갔다. 영화는 혼자서 늪에 빠지지 않았다. 배우들도, 스타들도 끌고 침몰했다. 시기적으로 대략 유신시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로 계산된다. 한국영화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을 때, 구명정을 탄 몇몇을 빼면 한국영화 황금기의 아들들은, 그리고 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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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제네바에 가본 적은 없지만, 세계화란 단어와 세계화 강박증을 세계화한 WTO 본부는 그곳에 있다. 본부가 자리한 로잔거리가 어디로 통하는지, 그 거리 154번지가 어디쯤인지 알 리가 없지. 어쨌든 스크린쿼터문화연대의 ‘대표단’이 7월2일, 그 낯선 거리로 향한다. 유럽방송연합(EBU), 영국영화자문위원회(BSAC), 유로시네마(EUROCINEMA), 유럽영화감독연합(FERA) 등 이름만으로도 유럽 영상기구라는 걸 알 수 있는 비정부기구, NGO들이 문화적 다양성에 관한 시청각 세미나를 열며 초청장을 보내온 것이다. 자국영화를 지켜낸 한국의 경험에 관해 발제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다시, 가본 적은 없지만 WTO 건물에서는 다양한 의제를 놓고 비정부기구 대표들과 사무국, 그리고 WTO 회원국 대표들 사이에 포럼이 자주 벌어진단다. 이번 세미나도 그런 모임 중 하나다. WTO는 자신들의 활동에 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데 NGO가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 판단해, 대화창구
지금 우리는 제네바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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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우려를 들어 등급보류를 내리고 잘라오면 허용하는, 이런 식의 운용은 사실상 검열이다.” 대마초 흡입장면이 많다는 이유로 등급보류 판정을 받았던 <오! 그레이스>의 수입사가 영화를 잘라와 ‘18살 이상 관람등급’을 받자,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는 등급판정을 담당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이다.그의 말은 옳다. 한국 사정은 등급을 받기 싫으면 상업적 이익을 희생하고라도 등급없이 상영할 수 있는 택할 수 있는 다른 나라와 같지 않다. 등급매기기를 위원회가 유보라는 이름으로 거부하면, 해당영화가 택할 길은 두가지다. 상영을 포기하거나, 필름을 자르거나. <오! 그레이스>는 두번 째 방법을 택했다. 영화는 졸지에 남편을 잃고, 빈털털이가 된 여자가 우연찮게 ‘삼’(대마)을 기르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포석을 놓아둔다. 자기가 재배한 거니까, 직접 경험을 해봐야 된다고 여자는 생각하고, 대마초무해론을 주장하는
청소년과 성인을 차별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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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일본에서 <철도원>의 감독 후루하타 야스오의 <호타루>에 이어 흥행 2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소식이 매주 들려온다. 안동에서 일부분 촬영을 해간 영화다. 역시 <철도원>에 나온 다카구라 겐이 2차대전 말 특공대로 전사한 ‘조선인 전우’의 가족을 만나러 온 장면이었다. 전쟁에서 희생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일간의 화해를 꾀하겠노라, 감독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갔었다.개봉 직전, <호타루>는 한국언론의 도쿄특파원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가졌다 했다. 두 나라의 화해를 위해 이 영화를 한국에서 상영하고 싶다는 의사를 제작사 쪽에서 밝혔다고도 했다. 주인공의 전우의 신원도 파악됐다. 창씨 개명한 이름은 가네야마, 본명은 김성재, 장교였다. 장교였으니 강제징용된 건 분명 아니다. 가네야마는 출격전, “나는 일본제국주의가 아니라 조국의 가족과 애인을 위해 적함을 격침시키겠다”는 대사를 남겼다 했다. <한겨레> 도쿄발 기사는 그렇지 않아도
김성재는 왜 가미가제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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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란 그 도시에선 '미성년자 관람가' 영화라 해도, 개인적으로 보러가는 건 금지돼 있었다. 대신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학교에선 영화단체관람행사를 마련해놓았다. 시내 학교의 시험날짜가 똑같은 건 아니니까, 이 학교 저 학교의 단체관람영화만 쫓아다녀도 영화구경은 웬만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본 <나바론>에서 기억에 남은 건 주인공 그레고리 펙이었다. 그의 곁에 있던 배우는 정말 미안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세계를 그대 품안에>의 앤 브라이스를 혹시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우리가(그 우리가
추억을 애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