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놈은 멋있었다. 영화 얘기가 아니다. 한기주, 그 남자 얘기다. 지금 두집 중 한집에서 보고 있다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 물론 나도 본다. 어떻게 이 드라마가 내 마음에 파고들었나? 생각해보니 기주가 강태영을 대하는 태도 때문인 것 같다. 같이 밥 먹을 마음 없다는 태영에게 기주가 말한다. “나 혼자 밥 먹는 거 싫어서 그래. 그냥 앉아 있어.” 위압적인 명령은 아니지만 단호하다. 웬만한 자신감 아니면 이렇게 말 못한다. 아, 떠올리기 싫지만, 밥 안 먹겠다는 그녀한테 그냥 밥 좀 먹자는 말을 하면서 난 얼마나 안절부절못했던가. 그녀의 마음을 잡아야겠는데 배는 고프고, 확 나도 일어날까, 하다 생각해보면 시켜놓은 음식이 아까웠다. 왜 기주처럼 멋지고 쿨하게 못했던 걸까? 후회가 된다.급기야 지난주 일요일엔 기주가 슬퍼하는 태영에게 노래를 들려줬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니, <나비야>가 나올 때 난 박신양이 서민정처럼 되길 바랐다. 헛된 기대였다. 박
시루떡 시스터즈
-
이번주 <씨네21>을 만들고 난 소감은, 여울목을 향해 여러 길목에서 덮쳐오는 물의 이미지다. 세상의 물은 게으른 듯 한데 엉켜 이리저리 일렁이다가, 불현듯 튀기고 쪼개지며 격렬하게 내달린다. 지금 보이는 물은 후자다. 그리고 나 자신이 세 갈래 길로부터 쏟아져오는 그 물세례 속에 잠긴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 어딘가를 향해 함께 흐르고 있다.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은 ‘영화적 행동주의’가 거둘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결실을 맺을 모양이다.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목적이란 딱 한 가지, 부시 낙선이었다고 밝히며 개봉 전후로도 쉼없이 입을 열어 조지 부시를 낚으려 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반부시 진영에 유용한 문화적 무기가 되는 데에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 큰 기여를 했으니, 정통 미학주의자들의 떨떠름한 기분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칸과 프랑스는 스스로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도훈 기자의
바로 이런 식으로
-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 형사는 존 우(오우삼)에 대한 오마주로 보인다.” 4년 전 뉴욕에서 열린 어느 영화제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소개됐을 때 뉴욕의 한 신문에 실린 영화평엔 이런 말이 들어 있었다. 아마 이명세 감독의 전작을 봤다면 이런 말을 못했겠지만, 이 서구인의 눈에 오우삼과 이명세는 아시아의 액션감독이라는 한 묶음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당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상영 직후 이명세 감독이 뉴요커들과 나눈 관객과의 대화도 기억이 난다. 그 무렵 뉴욕에선 경찰의 폭력문제가 큰 이슈였다. 그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형사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기겁을 했다. 뉴욕의 한 시민이 물었다. “한국에선 정말 경찰이 범죄혐의자를 그런 식으로 다루나요?” 그때 오래전 홍콩의 어느 경찰관에게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그는 “홍콩누아르를 보면 홍콩은 아무 데서나 총질을 해대는 도시로 보이지만, 사실 홍콩이 아시아에서 가장 안전한
거꾸로 보는 한국영화
-
나는 귀차니스트다. 나 자신은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지만 남들이 그렇게 말한다. 주위 사람들한테 그런 말을 듣고 정말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정말 그렇다. 무슨 경조사가 생길 때마다 나의 반응은 일단 “아이, 귀찮아”에서 시작한다. 이가 아파도 웬만하면 참다가 병원에서 “많이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어요?” 하면 “병원 가기 귀찮아서요”라는 대답이 목구멍을 간지럽힌다. 심심해서 친구한테 만나자는 전화를 해볼까 싶다가도 전화번호 누르기가 귀찮아서 그냥 심심한 대로 시간을 보내는 일도 다반사다. 물론 이런 귀차니스트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만화 <스노우캣>은 그런 면에서 진한 동지애를 느끼게 한다. 내가 귀찮아서 안 한 일 가운데 대표적인 한 가지는 운전면허를 따는 일이었다. 시도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두번 떨어져보고 즉각 포기했다. 아마도 마지막 시험을 봤던 시간이 오전 9시였던 게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그날 아침 9시가 넘어서 잠에서 깬 나는 다시는 운전면허시
어느 귀차니스트의 첫인사
-
-
<씨네21>에 다시 돌아온 지 1년5개월, 이 자리를 맡은 지 만 1년 되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이른 시점인데 떠나려는 이유를 나 자신도 정확히 설명하진 못한다. 설명이라는 게 각자의 경험 덩어리들과 관점을 엮어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면, 다른 이들이 대신해줄 설명들을 기다려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그 대신 나는 며칠 동안 헤르메스를 생각했다. 제우스의 자식인 그는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샌들을 신은 채 신의 전령사 노릇을 한다. 오며가며 여행객도 안내하고 레슬링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심지어 황천길 가는 사람도 돌보아주었던 모양이다. 오지랖도 넓고 역동적인 젊은 신이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그를 무역의 신, 전령의 신이라고 간단히 줄여부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헤르메스를 가장 의미심장하게 현대로 불러들인 이는 아마도 미셸 세르일 텐데, 그는 과학기술을 통한 생산을 상징하던 프로메테우스의 시대로부터 그 기술을 전하고 여러 분야를 가로지르며 소통시키
안녕
-
“샤트야지트 레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몹시 울적했다. 그런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신이 그의 자리를 대신할 적임자를 찾아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영문 포스터에 인용된 구로사와 아키라의 말이다. 나는 벽에 붙여둔 포스터에서 꼬마의 눈길과 마주칠 때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날 몸이 느끼던 진동을 회상한다.내게 있어 프랑스 누벨바그의 첫 번째 이미지는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때문이다. 행복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은 어린아이가 바다를 향해 내달리다가 물에 가로막혀 뒤돌아서는 그 얼어붙은 마지막 프레임이 내 가슴을 400번쯤 구타하지 않았을까.만화영화 <로보트 태권브이>에서 조그만 깡통 로봇이 가슴에 달린 양철 뚜껑을 열고 고춧가루를 발사하던 그 시절 이래로, 나는 어린이 영화에 민감하다. 그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오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리며 먼 곳을 바라보거나, 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어린이 영화
-
2002년 베를린이었다. 그해 영화제에 온 유럽 사람들이 <블러디 선데이>에 대해서 보이는 반응은 내 감각을 넘어서는 데가 있었다. 이번주 김현정 기자의 글이 알려주듯이, 이 영화는 동시대 유럽인들의 기억 속 어딘가를 건드려 통증을 유발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의 내게 <블러디 선데이>의 스타일과 내용은 기억이 아니라 현실에 가까웠다. 그것을 정면으로 대하자니 어질어질한 현기증이 몰려왔다. 기억은 안전거리를 갖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지금 충무로는 가까운 과거에 일어났던 실화들을 열심히 뒤쫓고 있다. 정한석 기자는 이를 두고 한국 근대사에 뚫려 있는 블랙홀로 빠져들어간다는 표현을 썼다.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서 박두만 형사(송강호)가 들여다보았던 땅밑의 검은 구멍을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거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왜 들여다볼까?과거를 캐는 것은 현재가 마뜩찮거나 고통스럽다는 뜻일 터이다. “도대체 왜
되돌아본다는 것은
-
최근에 익힌 말 가운데 기특하게 쓸모 많은 것이 ‘동급 최강’이다. 급의 차이 즉 범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평가는 각각의 범주 내부에서 내리겠다는 화법이다. 이것을 영화에 적용하면 특정 부류 자체를 옹호하거나 배척하는 대신 그 부류들 안에서 잘 만들어진 혹은 소홀한 영화들을 분별하고 평가하는 태도가 자리잡게 될 것이다. 문화 다양성이란 동급 최강이 많다는 뜻일 터.나는 여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취향이 선명한 편인데, 내가 좋아하는 범주 안에서 어지간히 잘 만들어진 영화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동급 최강이 주는 기쁨의 총량이 얼추 비슷하지 싶다. 물론 좋아하는 부류의 동급 최강을 만나면 몽롱하게 취한 기분이 2주일쯤 간다. 취향에 따른 관대함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직업적인 이유로 시사회를 다니다 보면 참 못 만들었다 싶은 영화에도 어쩌다 걸리게 되는데, 그럴 때는 내 얼굴 아는 사람 없다면 10분 만에 일어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만든 이에 대한 예의와 관련자
동급 최강
-
사무실에서 들리는 휴대전화 벨소리 가운데 요즘 새롭게 등장한 것이 <올챙이 송>이다. 누군가의 전화기가 울리면,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다리가 쏘옥 나온다는 이 동요를 율동까지 떠올리며 흥얼거리는 후유증을 잠시 겪는다.이번주 특집기사는 지난 시절 한국 영화계의 풍경을 재현한다. 성실하고 유머러스한 이영진 기자가 지금은 청년 개구리처럼 팔딱팔딱 뛰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꼬물꼬물 헤엄치던 시절을 재구성했다(물론 한국 영화사에 생물학적인 진화론의 관점을 적용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 기사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보다 앞선 1950~60년대는 뛰어난 작가와 작품들을 배출한 한국 영화사의 황금기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는 정치적인 이유로 기가 죽은 안일한 대중영화들이 하릴없이 쏟아져 나온 시기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극장주나 지방 배급업자가 제작비를 좌우하고 배우들이 연간 수십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시스템은 영화의 형식과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
올챙이
-
올해의 칸영화제는 여느 해, 어떤 영화제보다 대중적인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킨 듯하다. 그 중심에는 막판에 경쟁부문으로 차를 갈아타고 개선 행진까지 해버린 <올드보이>가 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칸이 우리에게 이중의 쇼크를 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우선, 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급격한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칸영화제-프랑스 평단-프랑스영화-프랑스의 교육과 이론은 오랫동안 효율적인 결합관계를 이루면서 칸으로 하여금 세계 영화미학의 선도자, 발견자, 중심지라는 이미지를 갖게 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런데 올해의 칸은 스스로 그와 같은 이미지에 일정 정도 균열을 일으켰다.<씨네21> 취재진의 노련하고 성실한 리포트는 칸의 정체성과 영향력이 형성된 기원과 메커니즘,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짐작하게 만들고, 언제부턴가 칸이 정체성의 위기를 겪기 시작했으며 칸의 집행부가 생각보다 허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심지어 일부 영화인들은
칸 쇼크
-
제주도에 다녀왔다. 어떤 모임의 회원들끼리 떠나는 2박3일의 투어를 따라간 것인데, 하루 세끼 열성적으로 챙겨먹는 것을 비롯해서 사소한 것에 기뻐하고 자기 내면과 타인에 지극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보았다. 상식을 실천하는 모습이 도리어 신기하더니, 이내 내 몸과 마음을 볕에 구워 말리는 느낌이었다.가이드를 자임한 동행의 제안에 따라 김영갑 갤러리에 들렀다. 작가가 별다른 상업적 활동 없이 20년 이상 제주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동행의 설명에 “부자 예술가인 모양이군요”라고 무심코 말했던 나는 그곳에서 집어든 책을 일별하며 말문이 막혔다. 버스값 아끼느라 걸어다니고 아침에 속을 달랠 우유 한잔을 자제하면서도 끄떡없던 사람이, 필름과 인화지가 떨어져가면 뿌리 잘린 풀마냥 작은 충격에도 중심을 잃는다고 썼다. 필름이 없으면 눈으로 찍고 마음으로 인화를 하며 다른 내일을 기다렸다고 했다. 제주에 매혹되어 그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사진에 담아온 이 사람은 루게릭 병으로 카메라를 내려놓게 되
절실함, 가벼움
-
한 군인에게서 편지가 왔다. 연두색 봉투가 하도 얌전하여 나도 얌전하게 가위로 봉투를 오리는데 천원짜리 지폐 몇장이 먼저 툭 떨어졌다. 의아해하며 내용물을 펼쳐보니 <어린 신부> 비평문 두장, 따로 자신의 심경을 적은 편지 한장이 들어 있고, 본인의 리뷰가 혹시 <씨네21>에 실리게 되면 한권 보내달라는 메모가 말미에 붙어 있었다. 동봉된 돈의 액수는 3천원. <씨네21> 한권값이다.그 군인은 제대하면 영화 공부 열심히 해서 5년 안에 <씨네21>의 표지에 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외출하는 동료들에게 <씨네21>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현역 군인이자 예비 영화인인 그에게는 중요한 일인 모양이다. 자신의 삶이 유예되어 있다고 느끼며 피안을 건너다보는 젊은이에게 강 건너에서 반짝이는 환상은 얼마나 눈부시고 간절할 것인가.참으로 오랜만에 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다. <씨네21>은 독자의 개성과 조건에 따
3천원
-
집 근처에 세워둔 차가 새벽 세 시에 끌려갔다. 행정이 아니라 사업일세, 구시렁거리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에 차 찾으러 가자니 심사가 꼬였다. 그 동네 사는 친구와 선배 커플의 집에 죽치고 앉아 인생이 우울하다며 심드렁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더니, 이런저런 조언과 함께 “말 잘 듣는 애처럼 뭘 그리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느냐”는 타박도 덤으로 날아왔다. 그래도 편안했다. 특별한 역할의 잣대에 나 자신을 밀어넣기 위하여 혹은 그런 것에 맞지 않는 어떤 결핍이나 잉여 때문에 속앓이하는 사회관계 대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를 보아왔고 마음의 복잡한 지형까지 수용해주는 지인들의 품이었기 때문이다.다음날에는 어떤 감독이 우리 동네로 놀러왔다.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겉으로 말하는 이유였지만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는 심경이 역력했다. 창작자로서,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뼈저린 회의를 곱씹으며 긴 나날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젊은 영화감독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사람 인(人)
-
교과서에 실린 텍스트들의 운명은 불행하다. 어떤 시도, 에세이도 그 사유의 구조와 언어의 향취를 우아하게 자랑하는 대신 입시용 도마 위에 얹혀 산산이 찢기고 분류당한다. 고등학교 시절, 어떤 시의 한 구절에 밑줄을 죽 긋고 그 의미를 묻는 시험문제가 있었는데, 나는 참고서가 가르쳐준 ‘보릿고개의 아픔’이 아닌 ‘봄날의 서정’이라는 ‘틀린’ 답을 기어이 적어냈다. 발표된 정답은 물론 보릿고개쪽이었다.그 유혈 낭자한 해부의 시간을 뚫고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언어들이 몇 가지 있는데, 청자 연적 이야기가 그중의 하나다. 여섯개의 연꽃 잎으로 장식된 자그마한 도자기에서 이파리 하나가 살짝 비뚤어져 있더라며,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을 감행한 고려 도공의 미의식을 말한 에세이였다.이런 삐딱한 미감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특정 영화 혹은 감독에 대한 평이 천편일률일 때 지루하고 불만스럽다. 내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모두 한목소리로 말하면 문득 의심스러워지며 딴청을 부리고 싶어진다.
차이의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