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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번 신상옥 감독에게 말을 걸 기회가 있었다. 1997년 처음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때였다. 당시 그는 미국에서 영화제작을 하고 있었고 <갈가메스>라는 어린이용 괴수영화를 들고 부천을 찾았다. 한눈에도 그는 범상치 않아 보였다. 멋쟁이라는 충무로의 소문대로 오랜 트레이드 마크인 선글라스와 스카프가 눈길을 끌었고 함경도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는 일흔 넘은 노인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생기를 담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옆에는 고등학교 시절 유일하게 내 마음을 움직였던 한국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배우 최은희가 앉아 있었다. 버벅거리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의 앞에서 나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는 것 같았다. 한국영화의 전설이 눈앞에 있는데 물어볼 것은 이번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은 소감은, 따위의 시시껄렁한 질문밖에 없었던 탓이다. 신상옥 감독의 작품 가운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외에 본 영화도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기자를 하면 숱하게 경험하는
[편집장이 독자에게] 신상옥, 위대한 꿈과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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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예술영화전용관 100개를 짓겠다.”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결정을 한 다음날 문화관광부 장관이 밝힌 영화진흥책 가운데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대한민국을 예술영화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이 놀라운 발표는 그러나 일고의 가치도 없는 웃음거리가 됐다. 영화계에 몸담은 사람들 모두가 이것이 현실성 0%의 제안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발상의 전제에는 공장을 만들면 생산이 는다는 제조업 중심의 마인드가 있다. 과연 영화도 극장만 있으면 관객이 생기는 것일까? 지금 예술영화전용관의 실태가 어떤지 보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선정한 극장은 전국 12곳이다. 한번 가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이들 극장은 흥행작에 집중하는 극장에 비해 훨씬 한산하다. 흑자는커녕 적자를 면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12개라도 이런데 100개로 늘리면 어떻게 될까? 기초적인 경제학만 알아도 공급과잉으로 인해 파리 날리는 극장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답이 나온다. 전체 관객 수가 좀 늘
[편집장이 독자에게] <넥스트 플러스>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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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도 만들어진 오가와 요코의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주인공은 10살난 아들을 둔 미혼모 파출부다. 소설은 그녀가 교통사고로 기억이 80분만 지속되는 노년의 수학자를 보살피면서 교감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인상적인 대목은 일상의 피곤한 노동에 찌들어 있던 여자가 수학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약수, 소수, 우애수 등 숫자에 숨어 있는 비밀을 알아가면서 그녀는 전에 몰랐던 삶의 환희를 느낀다. 설거지와 청소와 얄팍한 월급봉투와 집주인의 잔소리로 이뤄졌던 생활에 수학은 봄의 왈츠처럼 울려 퍼진다. 수학공식이 절묘한 화음이 되어 메말랐던 영혼을 적시는 단비가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일요일 저녁마다 <도전! 골든벨>을 보신다. 50문제 가운데 한두 문제도 못 푸실 텐데 언제나 <도전! 골든벨>을 보는 어머니가 늘 신기했다.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도전! 골든벨>은 어머니에게 일상이
[편집장이 독자에게] 순수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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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간 야구 때문에 울고 웃었다. 4년 전 월드컵 이후로 이처럼 순간순간 마음을 졸이긴 처음이다. 미국전 승리 이후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서 야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 번째 한일전까지 이겨버리자 한국 선수들이 <공포의 외인구단> 주인공처럼 보였다. 미국과 일본에서 설움받던 선수들이 울분과 분노를 삼진과 홈런과 안타로 설욕하고 있었다. 이쯤되면 누군가 이봐, 이건 야구만화가 아니라고, 라고 한마디 해줘야 할 것 같다. 물론 극적이던 연승행진은 아쉬움을 남기며 끝났다. 불합리한 대회규정이니 뭐니 말이 많지만 김인식 감독의 말대로 “진 것은 진 것이다”. 야구 같은 확률의 스포츠에서 6승1패면 충분히 흥분할 만한 기적이다.
야구팀의 선전 덕에 2006년 월드컵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질 것 같다. 야구도 세계 4강에 들었는데 축구가 16강에 오르지 못하면 그 국민적 허탈감은 ‘줄기세포 없다’처럼 심리적 공황 상태를 낳을지도 모른다. 이런 걱정을 하는 이
[편집장이 독자에게] 월드컵 마케팅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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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망종>을 보고 난 뒤 이 지면을 통해 “장률은 기억해야 할 이름”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만큼 충격을 받은 영화였고 언젠가 개봉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 기뻤고 한편으로 걱정이 됐다. 특집기사로 다루기엔 너무 덜 알려진 감독이고 폭넓은 관객층을 끌어모을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흥미만 좇아가기로 마음먹는다면 이번 특집은 터무니없을 것이다. 지아장커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과 달리 장률은 아직 서구 영화계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특집기사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영화잡지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영화란 무엇인가, 를 묻게 만드는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장률의 영화를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한다. <망종>을 본다면 당신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영화엔 우
[편집장이 독자에게] 장률과 하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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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룸>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오만과 편견> <브이 포 벤데타>가 모두 OO극장에서 시사회를 하더군요. 다들 스코프 비율이고요. 알다시피 OO극장은 화면 손상이 굉장히 심합니다. 이런 영화들이 상영되면 양쪽이 잘릴 뿐만 아니라 한쪽으로 화면이 쏠리죠. 중심도 제대로 맞지 않으면서 영상 정보도 제대로 전달 못하는 말도 안 되는 화면을 제공하는 건데. 솔직히 전 이 따위 극장에서 영화를 첫 감상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군요. 첫인상은 저에게 무척 중요합니다. 평생 한번밖에 경험할 수 없는 거잖아요.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매트릭스> 시리즈 같은 영화들은 OO극장에서 일단 영화를 본 뒤 나중에 동네 개봉관에서 다시 보았는데, 영화가 달라 보이더군요. 왜 시사회를 봤는지, 그냥 화가 나더군요.”
<씨네21>에 영화평을 자주 쓰는 듀나가 보낸 이메일의 일부다. 그는 화면이 잘리는 극장에서 기자시사회
[편집장이 독자에게] 시네마스코프를 돌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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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지하철 통로를 걷는데 커다란 광고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당신도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연기학원 광고였다. 막연히 스타를 동경하는 10대라면 나도 한번, 하고 혹할 만했다. 며칠 전 누군가는 이 광고를 보고 연기학원의 문을 두드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래서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간, 배우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기사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스타가 된 배우나 주목받는 조연배우가 아니라 무명의 배우 지망생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박혜명 기자는 한달여 동안 이번 취재에 매달렸다. 수많은 배우 지망생을 만났고 그들이 연기수업하는 현장을 쫓아다녔다. 이번 특집기사엔 배우 지망생들의 땀과 박혜명 기자의 땀이 함께 느껴질 것이다.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사실 배우가 되는 데 왕도는 없다. 연기학원을 다니건 연극영화과를 다니건 방송사 공채에 합격을 하건 스타가 되는 배우보다 이름없이 잊혀지는
[편집장이 독자에게] 배우가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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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면 불현듯 인식의 지평이 확대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사진으로만 보던 유럽의 오래된 성당을 직접 볼 때 성당이 단순히 신과 내가 만나는 장소 이상임을 확인하게 된다. 형형색색 스테인드글라스와 정교한 조각품, 거대한 벽화와 웅혼한 파이프오르간 소리, 그 속에서 종교는 문자나 음성으로 전달되는 것보다 몇 곱절 숭고해진다. 사람들은 신을 만나러 성당에 가는가? 예술의 마력에 이끌려 성당에 가는가? 중세미술이나 바로크음악에 관해 책으로 읽는 것으론 알 수 없는 것을 어떤 장소가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 여행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나라시에 있는 도다이사는 745년에 만들어졌다는 오래된 절이다. 절이라고 하면 석굴암과 불국사만 대단한 줄 알았던 나는 도다이사의 엄청난 크기에 입이 딱 벌어졌다. 나중에 찾아보니 1709년에 재건했다는 대불전은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란다. 그 거대한 건축물은 일본은 작은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선입견을 단숨에 무너
[편집장이 독자에게] 한류와 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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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영화인의 시위를 보다가 궁금해졌다. 지금의 영화계를 바라보는 지식인들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 당신은 어느 편에 서겠냐고 다그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이번호에 실린 다섯 필자의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들은 대체로 중간파에 가깝다. 쿼터 사수 투쟁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스크린쿼터만 지키면 된다고 주장하는 입장은 아닌 것이다. 쿼터 사수의 전선을 흩트리는 시도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최근 사태를 보면 이번 투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쿼터 문제에 관해 그저 혼란스러워 할 뿐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얽히고 설킨 문제를 정리하는 논쟁의 2라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프랑스 평론가 아드리앙 공보는 이번 쿼터 축소 조치가 프랑스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한 이유가 쿼터제도가 산업을 보호하는 것인지, 예술을 보호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상원 교수 김소영은 마이너영화
[편집장이 독자에게] 쿼터 논쟁 2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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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다. 미국 와이오밍주에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지명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아무도 에덴동산에 가보지 못한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최근 해외토픽에서 에덴동산을 발견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는데 설령 사실이라 해도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아담과 이브가 먹은 선악과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잭과 에니스, 두 남자의 사랑이 된다. 양쪽 모두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 추방당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른 연인들은 누구도 보호해주지 못할 땅으로 쫓겨난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는 아마 평생을 죄의식에 시달리며 살았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낯선 곳에서 두려움에 떨었으리라. 기독교의 관점에선 그것이 원죄에 대한 벌이겠으나 하나님의 추방으로 인해 인간은 비로소 우리가 오늘날 아는 인간이 된다. 희로애락을 알고 생로병사를 겪는
[편집장이 독자에게] <브로크백 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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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절했다. 지난 1월26일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지금의 절반으로 줄인다고 발표했을 때 영화계 관계자는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007 작전처럼 은밀히 진행된 축소방침은 설 연휴를 앞두고 전격 발표됐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한-미 FTA에 있기에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야 한다는 정부의 홍보는 주류 언론들에 별다른 비판없이 받아들여졌다. 몇몇 여론조사에서도 스크린쿼터 축소를 지지한다는 견해가 많았다. 특히 포털 사이트의 댓글은 영화계에 적대적이었다. 영화계는 지금 사면초가처럼 보인다.
먼저 밝히자면 나는 스크린쿼터가 축소된다고 당장 한국영화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지금 축소 반대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당장 올해 1월 한국영화 점유율이 역대 최대를 기록한 상황이니 쿼터가 없다고 돈 잘 버는 영화를 극장에서 내릴 리는 없을 것이다. 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입장에선 장기적인 효과에 주목한다. 20% 수준이던 한국영화 점유율이 최근 몇년 만에 50% 넘는 수
[편집장이 독자에게] 레디 액션, 친미바보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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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 영화과 입시가이드를 별책부록으로 만든 적이 있다. 새삼스럽게 영화과가 엄청나게 많이 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영화과가 많아진 것은 영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일 것이다. 영화가 배고픈 예술이나 조악한 기술의 이미지를 벗고 학문의 하나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영화감독이 CF에 나올 정도로 각광받는 직업이 된 만큼 영화는 절대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어른들도 많이 줄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과가 늘어난 만큼 영화교육의 질이 높아졌는가, 생각해보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상당수 영화과가 대학의 재정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급조됐기에 교수진이나 시설면에서 충분치 않다. 카메라, 조명, 편집 등 관련 기자재보다 심각한 것은 대학 도서관이 보유한 자료의 양과 질이다. 대학이 직업훈련소로 변한 게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특히 도서관의 빈곤함은 참담하다. 봐야 할 고전들이 없는 황량한 대학이 촬영기술을 익히고 편집기를 만지는 기능적인 교육에
[편집장이 독자에게] 빈곤한 영화과, 궁핍한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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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하는 여느 목요일과 달리 오늘은 회사가 많이 어수선하다. 다음날 사무실 이전을 하기 때문이다. 이전이라고 해봐야 같은 층에서 좀더 넓은 공간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지만 새 책상과 새 의자를 사주겠다는 회사의 결정에 적지 않은 술렁임이 있었다. “정말? 진짜?” 하며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반응한 이유는 지금 책상이 10년 전에도 썼던 것이기 때문이다(우린 그렇게 살았답니다. ㅠ.ㅠ). 하지만 그동안 책상을 바꿀 수 없었던 이유가 꼭(?) 돈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지금보다 큰 책상을 들여오기엔 무엇보다 공간이 비좁았다. 전에 <씨네21> 사무실을 방문한 어느 영화사 대표는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매주 그렇게 훌륭한 잡지를 만든다니, 하며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본인은 ‘훌륭한’에 방점을 찍어 말한 것이겠으나 듣는 사람 입장에선 ‘열악한’에 가슴이 아팠다. 어제 에어컨을 떼기 위해 오신 기사분 표정이 떠오른다. 15년 된 에어컨의 더러움에 망연자실하던 그 표정. 그
[편집장이 독자에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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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CNN을 볼 때가 있다. 영어를 못하니 제대로 볼 리는 없지만 신기하게 느꼈던 것이 하나 있다. 미국 얘기 못지않게 외국 얘기가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분명 미국인이 주시청자일 텐데 전세계인이 CNN만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여러 나라를 두루 살핀다. 전세계 어디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미국인의 의무와 책임 아래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CNN을 만드는 사람들은 분명 세계를 바라보는 기준이 미국에 있다고 확신하는 듯하다(이라크전쟁 당시 아랍 방송 알자지라는 이런 기준이 허상이란 걸 까발렸다). 하긴 CNN만 그런 건 아니다. 아카데미 영화상은 미국 영화인의 축제인데 가끔은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들이 자웅을 겨루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은 상징적이다. 들러리처럼 보이는 이 상을 타기 위해 올해도 여러 나라에서 엄선한 후보를 내놓았다. 들러리처럼 보이는 상인데도 수상을 고대하는 이유는 아카데미상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 때문일
[편집장이 독자에게] 중심과 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