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 대학생 단체에서 강의하게 되었다. 마흔을 넘기면서 '젊은층'이라는 착각이 확실히 불식되고 나이에 대한 자의식이 생겨나고보니, 진짜 젊은층들은 요즘 어떤 생각을 하나 알고 싶어진다. 그래서 강의시간 2시간 중 한 시간 강의하고 30분 질문받고 30분 질문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내가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은 대체로 직업관/결혼관 따위였다. 재미있는 건, 여학생들에게 결혼관을 물었을 때였다. 졸업후 결혼해서 현모양처 되는 것이 꿈인 사람? 아무도 없었다. 졸업후 취직하고 결혼해서 두 가지 모두 하며 살겠다는 사람? 절반 정도가 손을 들었다. 사회활동만 하면서 독신으로 살겠다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나머지 절반의 정체는 뭐지? 혹시, 동성애 커플을 만들 계획들인가? 한 학생 대답이 졸업후 취직했다가 결혼하면서 그만둔다는 것이다. 그게 나머지 절반이라는 것이다. 그런 길도 있긴 있었군.
지금은 여성특파원을 둔 신문사도 여럿이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82년만 해도 여성
[편집장이 독자에게] 대학졸업을 맞는 여학생들에게
-
지난 한주간 영화판이 꽤 시끄러웠다. 강우석 감독의 발언으로 촉발된 사태는 최민식, 송강호의 기자회견을 거쳐 강우석 감독의 사과문 발표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이번주 <씨네21>은 불똥이 엉뚱한 방향으로 번진 것은 잠시 잊기로 하고 문제의 핵심에 집중하는 특집기사를 준비했다. 한 가지 미리 말하자면 우리가 기사를 준비한 것은 이번 소동이 있기 오래전부터다.
사실 지난 십수년간 한국영화가 위기에 처하지 않은 시점은 한번도 없다(내가 이런 유의 기사를 쓴 것만도 여러 번이다). 올해의 위기가 특별하다고 느낀 건 한국 영화산업이 어떤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지난 10년간 한국영화는 성장일로에 있었다. 극장이 늘어나는 만큼 관객이 늘었고 엄청난 제작비에 1천만 관객이 화답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영화가 일찍이 꿈도 꾸지 못한 액수로 외국에 팔리는가 하면 한류를 타고 스타 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거칠 것 없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편집장이 독자에게] <여고괴담4: 목소리>가 전해준 희망
-
1, 베를린영화제 평생공로상을 받은 여배우들의 인터뷰는 늘 감동적이다. 개인적으로 그닥 호감이 안 가는 카트린 드뇌브(98년)는 역시 인터뷰도 별 감흥이 없었지만, 마치 대항해시대의 탐험가처럼 영적 성적 예술적 정치적 세계를 용감무쌍하게 탐험해온 셜리 매클레인(99년)이나 예전엔 유럽예술영화의 연인이었고 지금은 그 대모인 잔 모로(2000년)의 인터뷰를 보노라면 대배우란 하나의 박물관이구나 싶다. 그들의 내면엔, 여러 시대의 공기와 명감독들의 상상력과 수많은 가상의 개인사들이 숨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배우가 대가가 되는 건 아니다. 어느 분야에서든 대가가 된 사람에게는 ‘길을 아는’ 사람만의 체취가 있다.
2. 배우의 가치는 스타의 가치와 다르다. 배우의 가치가 작품에서 나온다면, 스타의 가치는 산업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비치>의 제작비 4500만달러 가운데 2천만달러가 디카프리오의 개런티였다. 그건 할리우드에서 심심찮게 있는 일이다. 그래서 메이저 스튜디오
[편집장이 독자에게] 배우에 대한 세 가지 단상
-
<배트맨 비긴즈>는 조엘 슈마허가 망쳐버린 <배트맨> 시리즈의 새로운 출발로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심금을 울린 대목 하나는 상처를 입은 배트맨이 길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잽싸게 건물 옥상으로 솟아올라가는 대목이다. 잠시 쓰러져 있어도 될 텐데 누가 볼까 겁나 사력을 다해 몸을 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그가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두려워하던 박쥐를 자신의 심벌로 택한 것과 관련된다. 브루스 웨인은 상처입고 쓰러진 배트맨이 목격되는 것이 배트맨이 죽는 것보다 나쁜 사태라고 여겼을 것이다. 적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은 배트맨의 실제 능력이 아니라 배트맨에 대한 신비감이기 때문이다. 배트맨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게 알려지는 순간 배트맨은 슈퍼히어로이길 멈출 것이다. 배트슈트와 배트카로 누구나 배트맨이 될 수 있다면 그따위 배트맨을 누가 두려워하겠는가. <배트맨 비긴즈>는 돈은 많지만
[편집장이 독자에게] 배트맨,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다행이다
-
-
최근 어떤 고등학생이 중퇴를 하고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는 상담을 청해왔다. 이미 카메라를 샀다고 했다. 내 대답은, 이왕 학교 나와버린 건 하는 수 없고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 영화과나 영상원에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혹시, 이 학생이 정규교육 따위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천재일까. 또는 정규교육이 예술적 상상력과 창의성을 갉아먹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떠나는 것이 나았던 건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하는 수 없다. 현실은 빤히 눈에 보이는 거니까. 지금 충무로에서 활동하는 젊은 세대 영화감독들은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거나 일단 대학을 들어가기는 한 사람들이다. 오직 김기덕 감독 한 사람이 예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1/100의 예를 따르도록 충고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한국은 완고한 학력계급사회다. 예술쪽은 예외를 허용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가령 프랑스 50, 60년대의 누벨바그가 전형적인 지식인 감독들의 작품이었다면, 80년대 이후 프랑스영화의
[편집장이 독자에게] 감독이 되려면 대학을 가라?
-
“나는 나 자신도 삼순이도 노처녀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몰아가는 건, 사회가 아닌가 싶다.” 이번호 특집기사에 들어 있는 인터뷰에서 배우 김선아가 한 말이다. 이 말을 읽으면서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찌릿찌릿했다. 김삼순, 아니 김선아가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노처녀란 사회가 만들어낸 말이며 어떤 편견을 재생산하는 단어다(나이든 미혼 여성은 빨리 결혼시키라는 압력이 절로 느껴지지 않는가). 이런 예로 동성연애를 들 수 있다. 동성연애는 이성애의 반대말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성행위라는 데 방점이 찍힌 말이다. 동성애자에게 그런 것처럼 노처녀에게도 인권탄압은 그치지 않는다. 세상은 운전하는 여자에게 폭언을 퍼붓듯 싱글로 사는 여인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줌마, 아니, 처녀라고? 그러니까 시집을 못 갔지”라며.
노처녀라는 희생양은 남성적 지배질서에 꽤 쓸모있는 존재다. 그들은 한마디로 만만하다. 파업을 결의할 조직도 없는데다 결혼이라는 전선에 서면 대오를 이탈하기
[편집장이 독자에게] 삼순이를 응원한다
-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의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비평을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은 대중을 위해서 영화를 만들지 비평가를 위해 만들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그런데 정작 다라본트 감독의 영화적 후견인이자 파트너인 소설가 스티븐 킹은 “판매는 잠시지만 평은 오래 지속된다”며 대중의 열광에도 불구하고 비평가의 지지를 그리워했다. 다라본트와 킹의 상반된 논평은 비평과 저널리즘에 대한 창작자들의 애증을 각기 대변한다. 그렇다해도 킹의 논평은 다소 뜻밖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나 흥행감독이라면 대중과의 밀월과 상업적 성공에 흠뻑 취해 있게 마련인데 말이다.
<씨네21>도 지난5년 동안, 비판의 침이 상대방 얼굴에 튀는 좁은 충무로, 난류와 한류가 섞여 흐르는 비평과 창작 사이의 해협을 통과해오면서 적잖은 시시비비에 휘말려야 했다. 특별히 기억되는 사건의 첫째는, <런어웨이>를 이정하씨가 주평에서 신랄하게 꼬집은
[편집장이 독자에게] 별점이 문제인가?
-
“…갑작스런 작별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6월27일 방송을 끝으로 <귀엽거나 미치거나>는 종영합니다… 방송사에서 <귀엽거나…>가 투자에 비해 시청률이 기대에 못 미치고(6월6일 방송 저희 TNS 수도권 시청률은 14.9%로 전체 프로그램 5위였는데 시청률 때문에 폐지라니 참 아이러니하긴 하네요…), 시트콤이란 장르가 더이상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앞으로 당분간 SBS에서 시트콤을 시청하시진 못하실 것 같네요… (중략) 시간 여유가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마무리라도 제대로 했을 텐데… 종영을 빨리 시켜야 하는 프로그램은 최소한의 품위를 갖추고 죽을 권리도 없네요… ㅎㅎ.” 지난 6월7일 <귀엽거나…> 게시판에 김병욱 PD가 올린 마지막 인사다.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 그간 김병욱 PD가 만든 시트콤의 팬이며 한창 <귀엽거나…>에 빠져들던 나로선 충
[편집장이 독자에게] 보고싶다! <귀엽거나 미치거나>
-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의 단체가 생겨난다. ‘여성영화인 모임’(가칭)은 오는 4월19일 창립총회 일정을 잡아놓고 출범을 준비중이다. 주진숙, 채윤희씨가 공동준비위원장을 맡아, 여성제작자 프로듀서 평론가 감독 스탭 언론인 등이 참석한 준비모임을 두 차례 열었다. ‘모임’은 첫해인 올해 ※여성영화인 인력양성을 위한 워크숍을 프로듀서/시나리오/연출/촬영조명/편집/디지털제작 등 6개 과정으로 진행하고 ※현재 활동중인 여성영화인력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여성영화인력 뱅크’ 웹사이트를 개설하며 ※여성들 작품의 정기 발표회 및 여성영화인 회고전을 열 계획이다.
여성영화인 모임은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중 여섯명의 여성영화인들이 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처음 거론됐다. 간담회 녹취록은 이 모임이 왜 필요한지를 말해준다. “여성문화예술제에서 워크숍을 하는데 왜 왔느냐고 물어보니까, 태반이 다른 워크숍에 갔을 때 ‘야! 여자는 원래 스크립터 하는 거야’라고 하더래요. 촬영보 하고 싶은데
[편집장이 독자에게] 여성영화인들에게 즐거운 뉴스
-
올해 <씨네21> 홈페이지에 가장 큰 변화는 블로그를 만든 것이다. 인터넷 소식에 둔감한 나는 온라인팀 배성준 팀장이 블로그의 필요성을 역설할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필요하면 하죠, 뭐, 정도였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글을 쓰고 덧글을 달아가며 교류한다는 게 처음엔 상상이 잘 안 됐다. 돈주는 것도 아닌데 그런 귀찮은 일을 누가 하겠어, 싶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요즘,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씨네21>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블로그부터 살펴본다. 하나하나 덧글을 달 만큼 부지런하진 않지만 블로그에 올린 글과 사진들을 보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 돼버렸다. 독자엽서만으론 알 수 없던 독자들의 모습을 아주 가깝게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씨네21 블로그에 몇몇 스타(?)가 등장하고 있다. 김혜리, 이종도, 손홍주, 오계옥, 백은하 등 기자나 통신원의 블로그도 인기지만 블로그 개설 전까지 전혀 몰랐던 독자들의 블로그 가운데 매일
[편집장이 독자에게] 웰컴 투 씨네21 블로그
-
심은하 같은 배우는 멀찍이 바라만 보아도 즐겁다. 며칠 전 <인터뷰> 시사회장은 그가 무대 앞에 나와서있기만 해도 객석이 고요히 숨죽였다. 스타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시사회장의 여배우들에게서 늘 “열심히 했어요. 잘 봐주세요” 또는 “예쁘게 봐주세요” 식의 똑같은 인사말을 들을 때, 나는 궁금해지곤 한다. 작품 발표를 앞둔 사람으로서 짐짓 겸손하려 하는 걸까, 작품에 대해 실제로 아무런 의견이 없는 걸까.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심은하나 <내 마음의 풍금>의 전도연은 각기 자신의 배역을 정확히 이해하고 표현하는 연기를 했다. 그들은 모두 ‘유능한 전문직 여성’들이다. 그들의 경쟁력이 오직 예쁜 얼굴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연기란 대단히 지적인 노동이다. 대본을 외우려면 타고난 기억력이 요구되고, 배역을 이해하려면 분석적인 사유능력이 필요하며, 성격을 표현하려면 풍부한 감수성이 받쳐줘야 한다. 배우는 배역의 인생에 푹 빠져야하며
[편집장이 독자에게] 유능한 전문직여성답게!
-
유년기 기억 가운데 아주 끔찍했던 장면이 있다. 시시때때로 나오는 반공드라마에서 인민재판을 하는 모습이었다. 반공 청소년으로 커가는 데 밑거름이 된 그 장면을 보며 몸서리친 이유는 순전히 죽창이 몸을 뚫는 잔인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인민재판 자체가 끔찍한 것이란 건 나중에야 알았다. 오늘날 흔히 이지메라 부르는 이것은 집단이 개인을 통제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방법이다. 꼭 죽창을 쓰지 않아도 이지메를 당한 자의 영혼은 피눈물을 흘린다.
뒤늦게 <혈의 누>를 보면서 가물가물했던 인민재판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감독의 말로 확인한 바는 없으나 김대승 감독 또한 인민재판의 끔찍한 이미지에서 <혈의 누>를 만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희생자의 몸이 나무에 꽂혀 있는 장면이나 모든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지가 찢겨나가는 장면은 한국전쟁의 상처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잔인함이 흥행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생각하
[편집장이 독자에게] 군대는 선, 국적 포기는 악?
-
영화 <허리케인 카터>에서 수감중인 루빈 카터가 “writing is magic”(글쓰기는 마술)이라고 했을 때, 이 발언은 과연 카터가 유죄냐 무죄냐 하는 시비를 덮으면서 마치 영화 전체의 메시지인 것처럼 강력한 힘을 발산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글쓰기란 자신을 심화(가운데점) 확장시키며, 그것은 종신형의 죄수를 구원할 만큼의 놀라운 힘을 지닌 것이다. 진정성을 가진 진술이라면, 수기든 소설이든 영화든 모든 창작행위가 다 마찬가지 효과를 가질 것이다. 홍상수 감독은 언젠가 “내 내부에서 아직 정리가 안 된 문제들을 영화로 다룬다”고 말한 적 있는데, 영화 만들기가 자신을 정신적으로 고양시키는 경험일 수 있다는 것, 그처럼 사적인 창작행위의 진정성을 고수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문학도 아닌 영화에서 말이다. 영화산업은 감독 개인에게 사적인 창작행위의 여지를 그닥 허용하지 않는다. 그보다 영화는 시장전략의 산물이고, 산업시스템과의 흥정이며, 기껏해야 관객과의
[편집장이 독자에게] 영화만들기의 마술?
-
요즘 <씨네21> 창간 10주년 기념 특강이 진행 중이다. 지난주 배우 백윤식이 스타트를 끊었고 이번주에 배우 문소리와 박찬욱 감독이 강연자로 나섰다. 박찬욱 감독 특강 진행을 하면서 그에게 연기 연출의 비결을 물었더니 재미있는 답변이 나왔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예전에 <올드보이> 오디션을 할 때 강혜정이 왔는데, 문승욱 감독의 <나비>를 찍었잖아요. 그래서 그 감독과 일할 때 어땠냐고 질문을 했는데 너무나 인상적인 대답이 나왔어요. 문승욱 감독은 아실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책도 많이 읽고 굉장히 지식인이에요. 한 장면의 연기를 설명할 때 10분, 20분을 굉장히 어려운 단어를 써서, 그리고 아주 복합적인, 도저히 동시에 하기 힘들 것 같은, 자기로선 도저히 자신이 없는,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고 뭐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것을 10분 동안 설명해주신대요. 그러면 자기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대요. 그래서 그때 같이 연기했던 사람이 김호정씨
[편집장이 독자에게] 연기, 작지만 무한한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