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나온 단편영화 가운데 상복이 터졌던 작품으로 이경미 감독의 <잘돼가? 무엇이든>이 있다. 여성영화제,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 등에서 상을 받았다. 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상을 휩쓸었나 싶어 서울독립영화제를 찾았다. 보고나니,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꼭 보시라, 권하고 싶어졌다.
<잘돼가? 무엇이든>은 회사 경리 일을 하는 두 여자, 지영과 희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입사 4개월째인 지영은 먼저 입사한 나이어린 동료 희진이 못마땅하다. 지영이 보기에 희진은 대체 생각이라곤 없는 아이처럼 보인다. 그럴 만도 한 게 희진은 사장이 자신을 신뢰한다는 게 자랑스러워서 사장이 시키는 탈세조작에 열성적이다. 거래처를 반씩 나눠서 세금조작을 하기로 해놓고 몰래 지영의 몫까지 손대는 일도 벌어진다. 사장은 같은 장부에서 더 많은 탈세조작을 한 희진에게 흡족해한다. 그런 희진이 지영에겐 악몽이다. 영화는 둘의 갈등을 폭발 직전까지 몰고간다. 나는 이 영화에서
<잘돼가? 무엇이든>, 꼭 보시라, 권하고 싶어졌다.
-
바야흐로 영화상 시상식 시즌이다. 청룡영화상 시상식은 미처 못 봤지만 지난 일요일에 TV에서 MBC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은 봤다. 누가 상을 받을까 궁금한 점도 있었지만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행사인만큼 재미있는 볼거리도 있을 거 같았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다고 내가 관심있게 본 것 가운데 하나는 여자 배우들의 의상이었다. 볼거리라는 표현 때문에 여자 배우가 눈요깃감이냐고 항의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도리없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아름다운 배우들 때문이니까. 나는 영화를 보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여전히 멋진 배우를 보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이번엔 김혜수가 무슨 옷을 입을까, 그런 호기심이 무색하게 시상식장의 다른 여자 배우들 의상도 눈에 띄게 화려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공효진의 의상은 ‘충격’이었다. 저런 의상은 김혜수 외엔 못 입는 줄 알았는데, 놀라웠다.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느냐?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우리나라도 파티의 문화, 쇼의
김혜수와 안성기
-
언제부터 그랬을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옥탑방 풍경을 자주 보게 됐다. 주인집 옥상이지만 내 집 마당처럼 쓸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고 탁 트인 전망이 펼쳐지는 옥탑방.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그곳은 사랑과 낭만이 숨쉬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옥탑방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나도 저런 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얼마 전 <마이 제너레이션>을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남자주인공이 사는 방이었다. 좁고 칙칙한 그 방을 보면서 어, 이건 못 보던 풍경인데, 싶었다. 현실에선 너무 익숙한 단칸방의 모습이건만 화면으론 처음 접하는 공간으로 느껴진 탓이다. 익히 봤던 옥탑방의 화사함이 현실엔 없는 것임을 불현듯 깨닫게 됐다. <마이 제너레이션>의 미덕은 무엇보다 바로 그 정직함에 있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현실 공간을 찾아간 것처럼 등장인물들도 어딘가 꾸민 흔적이 없다. 출생의 비밀도, 의외의 반전도,
<마이 제너레이션>
-
유서 깊은 유럽의 몇몇 도시에는 고문박물관이라는 게 있다. 유명한 런던탑에도 중세의 고문기구를 전시한 방이 있지만 체코의 프라하 같은 도시에서도 이런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몇년 전 우연히 고문기구를 구경하다가 몸서리를 쳤던 적이 있다. 중세 유럽에서 다양한 고문이 이뤄졌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실물로 대한 고문기구들은 나의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었다. 록밴드의 이름으로 잘 알려진 아이언 메이든만 해도 그렇다. 주물로 사람 모양을 만들어 그 안에 쇠창살을 박아놓은 이 기구는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의 두눈과 심장을 찌르도록 되어 있다. 두눈을 향해 다가오는 쇠꼬챙이를 보면서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은 무슨 얘기든 순순히 불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님을 찬양하던 나라에서 이런 발명품이 나왔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터무니없는 일도 아니다. 예수가 살해된 방식을 떠올려보라. 십자가형은 그 잔인함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반골 기질의 감독 짐 자무시를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말
나쁜 상상력에 재갈을
-
-
수능이 끝났다. 수능 시험장을 보여주는 TV 뉴스를 보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교문 앞에 나와 선배를 응원하는 후배들, 시험장에 늦어 경찰관의 호위를 받으며 급히 달려가는 아이들, 100일 불공을 드리고 추운 날씨에도 교문 앞을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들, 모든 풍경이 내가 시험을 쳤던 20년 전과 다를 게 없다. 그동안 입시제도가 많이 바뀌어서 지금은 어떻게 대학을 가는지도 모르지만 그 풍경만은 똑같다. 갑자기 요즘도 수능점수가 당신들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가르치는지 궁금해졌다. 온갖 신문에서 1면 머릿기사로 수능 난이도에 대해 언급하는 걸로 봐선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대부분 어른들이 이 시험만 잘 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연애는 나중에 해도 된다, 취미 활동은 나중에 해도 된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약간 의심은 했지만 대충 믿어버렸다. 그래서일 것이다. 대입시험이 끝난 뒤 일종의 공황상태가 왔다. 한달간 매일 술을 마시기
적당한 비관을 즐기시길
-
오랜만에 영화보는 즐거움을 만끽한 날이었다. 11월8일 <하나와 앨리스>와 <팜므 파탈>을 연달아 봤다. 하나는 너무 귀엽고 예쁜 영화였고 다른 하나는 너무 자극적이고 농염한 영화였다. 전혀 다른 매력이지만 둘 다 대만족이다. 이런 날만 있으면 영화잡지에서 일하는 거 정말 할 만하다.
<하나와 앨리스>를 보고나니 이와이 순지가 쓴 책 <쓰레기통 극장>에서 그가 오즈의 영화에 대해 쓴 대목이 떠올랐다. “오즈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딸을 시집보내는 날의 쓸쓸한 밤만이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전부였던 것처럼 생각된다. 인생이란 필름에서 그 하룻밤만을 잘라내 몇번이나 계속 찍는다. 그런 이질적 행위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인 것이다.” 어쩌면 이와이 순지는 같은 말을 자신에게 되돌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나와 앨리스>를 보노라면 그에게 인생은 10대 소년 소녀가 성장하는 순간에 머물러 있다. 친구와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하나와 앨리스>와 <팜므 파탈>
-
부시가 이겼다.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 영화 시나리오로 치면 최악이다. 거의 스너프필름 수준이다. 목을 따고 시체를 절단하는 끔찍한 살인을 저질러도 스너프필름에선 결코 악당이 처벌받지 않는다. 전세계가 악당으로 지목한 부시가, 이라크에서 수십만, 수백만명을 살해하고 아이들을 불구로 만든 전쟁광 부시가 다시 4년간 미국 대통령이 된다는 이 결말은 스너프필름보다 더하다. 미국은 지금 스너프필름의 살인자에게 앞으로 4년간 맘껏 활보해도 좋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 같다.
미국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언론에 따르면 이번 선거의 판세를 갈라놓은 것은 백인 개신교 신자란다. 한적한 시골에 살면서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고 가족과 바비큐 파티를 벌이는 가정, 그들에게 이라크인의 죽음은 그리 중요한 사건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해보니 나도 이런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다.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얼마간 오해나 편견이 개입될 여지가 있지만 내
갓 블레스 아메리카
-
“화면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특히 마지막 장면이요.” TV 뉴스를 보다 우연히 시각장애인이 이렇게 말하는 걸 봤다. 어떻게 시각장애인이 화면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지? 호기심이 생겼고 그래서 장애인영화제 취재를 제안했다. 과거 촛불시위도 여러 번 나간 적 있는, 의협심 강한 김도훈 기자가 선뜻 내가 하겠노라 나섰다. 주말을 반납하며 일한 그는 “인터뷰는 많이 했어?”라는 질문에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김도훈 기자는 장애인들에게 적절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직접 장애체험부터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말문을 텄다. 이번주 기획기사 ‘장애우의 영화보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는 생애 처음 영화관에 온 한 시각장애인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고 썼다. 무엇보다 그 구절이 마음을 사로잡는다.생애 처음 영화관을 찾은 장애인의 미소란 어떤 것일까? 언젠가 TV에서 봤던 장애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라 여행가는 건
어느 장애인의 생애 첫 경험
-
요즘 젊은이들한텐 낯선 말이지만 ‘혼식’이라는 말이 있다. 쌀밥이 아니라 보리나 잡곡을 섞어 먹는 걸 가리키는 단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그러니까 박정희 정권 시절엔 혼식장려정책이란 게 있었다. 혼식을 하면 튼튼해진다는 회유도 있었지만 도시락을 검사해서 쌀밥을 싸온 녀석들을 색출, 처벌하는 공갈, 협박도 적지 않았다. 순진한 어린 마음엔 혼식을 안 하면 정말 무슨 큰 병에 걸리는 줄 알았다. ‘혼식하라’는 말씀에 깊이 감화받은 아이들 가운데 자발적으로 프락치가 되는 친구도 있었다. “선생님, 얜 도시락 위만 살짝 보리를 얹은 거래요. 밑엔 다 쌀밥이에요.” 이렇게 일러바치기도 했다. 우리 집에선 보리보다 좁쌀을 섞는 일이 많았다. 그 무렵 우리 집에서 닭을 키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닭과 내가 같은 걸 먹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난 좁쌀을 섞은 밥이 무척 싫었다. 어린 시절 상처 때문인지 지금도 난 흰 쌀밥만 좋아한다. 입맛이 촌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억지로 했던 혼식을 다
김부선의 선택을 지지한다
-
“우리가 함께한 이 1분을 결코 잊지 않겠다.” <2046>을 보다가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장만옥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비정전>에서 장만옥은 장국영이 말한 그 1분 때문에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마 장만옥은 그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 즉 ‘화양연화’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죽어가는 장국영은 그 1분을 기억하지 못한다(기억했다 해도 그에겐 그냥 장난이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생의 전부인 것이 상대방의 마음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다.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같은 시간, 같은 감정을 나눈대도 영원한 사랑을 보장받을 순 없다. 왕가위가 믿는 유일한 방법은 <화양연화>의 양조위처럼 앙코르와트의 돌벽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봉인하는 것이다.
<2046>은 <화양연화>의 후속편인 동시에 <아비정전>의 후속편이다. 차우는 <화양
왕가위를 다시 생각하며
-
9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씨네21>은 동갑내기다. 생일은 <씨네21>이 빠르지만 같은 해 태어난 인연 때문인지 부산영화제는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낸 친구처럼 느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영화제 일간지를 만들기 위해 부산행 기차를 탔다. 기차에서 멍하니 창 밖을 보니 옛날 일이 떠오른다. 1995년 가을 부산영화제는 국내에서 처음 생기는 국제영화제로 닻을 올렸다.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라고 당시 편집장 조선희 선배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난 그렇게 말할 입장이 못 된다. 솔직히 초보 기자였던 난 이 거대한 영화제에 대해 별 감상이 없었다. 그 무렵엔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았다. 부산에서 무슨 영화를 볼지 설레는 대신 부산에 간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했다. 어찌된 일인지 태어나서 한번도 부산에 안 가봤기 때문이리라. 부산에 가면 해운대에 가봐야지, 바다에서 일출을 봐야지, 어쩌면 멋진 로맨스가 있을지도, 뭐 그런 잡스런 생각에 혼자 들떴다. 돌아보니
부산국제영화제와 <씨네21>
-
이상한 일이다. 미리 짠 것도 아닐 텐데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4편에 묘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야기의 매듭이 엉켜 있다는 점이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패전처리 전문투수였던 감사용이 미치도록 열망하던 승리를 눈앞에서 놓치는 이야기다. 사회의 루저이자 아웃사이더인 한 인물이 아주 잠깐 세상의 중심에 섰다 쓸쓸히 퇴장하는 어느 정도 낯익은 스포츠영화다. 제목만 듣고도 패배자의 영화인 줄 짐작하겠지만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샌다. 감사용의 연애담이 끼어드는 것이다. 실화였던 감사용 스토리는 매표소 직원 은아와 감사용의 사랑 이야기에서 픽션으로 돌변한다. 가짜 티가 무척 많이 나는데도 러브스토리가 끼어든 것은 여성관객도 끌어보자는 상업적 배려 때문일까? 그냥 영화의 마지막에 감사용을 위로할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밥에 섞인 모래알처럼 서걱거린다. 연기를 못해서 그렇다거나 대사가 나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야기가 본론을 벗어난다는 게 문제다. 감사용은 루저다.
깔끔한 이야기가 그리운 계절
-
나는 꽤 오래된 김기덕의 지지자다. 그가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게 낯간지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간 김기덕을 지지하는 일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1996년 <악어>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감동했다. 한강 물밑에서 죽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이 숭고한 종교적 기적처럼 보였다. 나는 당연히 남들도 그렇게 느낄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당시 <악어>를 본 평론가나 기자 누구도 이 영화를 지지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난 풋내기 영화기자였다. 좋은 영화로 판단했다고 <악어>의 훌륭함을 다 표현할 능력이 내겐 없었다. <악어>를 좋게 본 평론가가 있을까? 나는 애타게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내가 글로 쓰지 못한 이 영화의 진정한 새로움을 누군가는 봤을 것이라 믿었다. 내가 아는 한 그해 <악어>를 지지한 유일한 평론가는 정성일씨였다. 그의 글은 김기덕 감독뿐 아니라 내
김기덕 감독에 관한 기억
-
5년 전 한달 휴가를 얻어 유럽에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다. 미술 관련 서적 하나를 들고가 3주간 유럽여행을 하면서 유명한 미술관 몇 군데를 방문했다. 그중 암스테르담의 고흐 미술관을 잊을 수 없다. 고흐의 그림을 보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미술 관련 서적에서 본 도판에서 전혀 느낄 수 없던, 살아 있는 듯한 생생한 붓질의 느낌 때문이었을까. 평소 고흐의 그림을 특별히 좋아한 적 없건만 그의 삶과 영혼에 델 듯했다. 물론 그건 낯선 경험에서 오는 충격이 컸을 것이다. 그 유명한 그림들을 직접 대면할 기회가 한번도 없던 한국 촌놈이니 그럴 만한 일 아닌가. 지금 돌이켜보면 굳이 고흐의 그림이 아니었대도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진품의 향취는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전율을 불러온다.
그때 본 미술관 풍경 가운데 기억에 오래 남는 일은 초등학생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을 보는 모습이었다. 이 아이들은 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직접 보며 자라는구나. 무심히 그 모습을
문화적 저력의 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