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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칸영화제는 여느 해, 어떤 영화제보다 대중적인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킨 듯하다. 그 중심에는 막판에 경쟁부문으로 차를 갈아타고 개선 행진까지 해버린 <올드보이>가 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칸이 우리에게 이중의 쇼크를 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우선, 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급격한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칸영화제-프랑스 평단-프랑스영화-프랑스의 교육과 이론은 오랫동안 효율적인 결합관계를 이루면서 칸으로 하여금 세계 영화미학의 선도자, 발견자, 중심지라는 이미지를 갖게 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런데 올해의 칸은 스스로 그와 같은 이미지에 일정 정도 균열을 일으켰다.<씨네21> 취재진의 노련하고 성실한 리포트는 칸의 정체성과 영향력이 형성된 기원과 메커니즘,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짐작하게 만들고, 언제부턴가 칸이 정체성의 위기를 겪기 시작했으며 칸의 집행부가 생각보다 허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심지어 일부 영화인들은
칸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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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다녀왔다. 어떤 모임의 회원들끼리 떠나는 2박3일의 투어를 따라간 것인데, 하루 세끼 열성적으로 챙겨먹는 것을 비롯해서 사소한 것에 기뻐하고 자기 내면과 타인에 지극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보았다. 상식을 실천하는 모습이 도리어 신기하더니, 이내 내 몸과 마음을 볕에 구워 말리는 느낌이었다.가이드를 자임한 동행의 제안에 따라 김영갑 갤러리에 들렀다. 작가가 별다른 상업적 활동 없이 20년 이상 제주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동행의 설명에 “부자 예술가인 모양이군요”라고 무심코 말했던 나는 그곳에서 집어든 책을 일별하며 말문이 막혔다. 버스값 아끼느라 걸어다니고 아침에 속을 달랠 우유 한잔을 자제하면서도 끄떡없던 사람이, 필름과 인화지가 떨어져가면 뿌리 잘린 풀마냥 작은 충격에도 중심을 잃는다고 썼다. 필름이 없으면 눈으로 찍고 마음으로 인화를 하며 다른 내일을 기다렸다고 했다. 제주에 매혹되어 그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사진에 담아온 이 사람은 루게릭 병으로 카메라를 내려놓게 되
절실함,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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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군인에게서 편지가 왔다. 연두색 봉투가 하도 얌전하여 나도 얌전하게 가위로 봉투를 오리는데 천원짜리 지폐 몇장이 먼저 툭 떨어졌다. 의아해하며 내용물을 펼쳐보니 <어린 신부> 비평문 두장, 따로 자신의 심경을 적은 편지 한장이 들어 있고, 본인의 리뷰가 혹시 <씨네21>에 실리게 되면 한권 보내달라는 메모가 말미에 붙어 있었다. 동봉된 돈의 액수는 3천원. <씨네21> 한권값이다.그 군인은 제대하면 영화 공부 열심히 해서 5년 안에 <씨네21>의 표지에 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외출하는 동료들에게 <씨네21>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현역 군인이자 예비 영화인인 그에게는 중요한 일인 모양이다. 자신의 삶이 유예되어 있다고 느끼며 피안을 건너다보는 젊은이에게 강 건너에서 반짝이는 환상은 얼마나 눈부시고 간절할 것인가.참으로 오랜만에 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다. <씨네21>은 독자의 개성과 조건에 따
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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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에 세워둔 차가 새벽 세 시에 끌려갔다. 행정이 아니라 사업일세, 구시렁거리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에 차 찾으러 가자니 심사가 꼬였다. 그 동네 사는 친구와 선배 커플의 집에 죽치고 앉아 인생이 우울하다며 심드렁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더니, 이런저런 조언과 함께 “말 잘 듣는 애처럼 뭘 그리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느냐”는 타박도 덤으로 날아왔다. 그래도 편안했다. 특별한 역할의 잣대에 나 자신을 밀어넣기 위하여 혹은 그런 것에 맞지 않는 어떤 결핍이나 잉여 때문에 속앓이하는 사회관계 대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를 보아왔고 마음의 복잡한 지형까지 수용해주는 지인들의 품이었기 때문이다.다음날에는 어떤 감독이 우리 동네로 놀러왔다.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겉으로 말하는 이유였지만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는 심경이 역력했다. 창작자로서,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뼈저린 회의를 곱씹으며 긴 나날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젊은 영화감독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사람 인(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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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실린 텍스트들의 운명은 불행하다. 어떤 시도, 에세이도 그 사유의 구조와 언어의 향취를 우아하게 자랑하는 대신 입시용 도마 위에 얹혀 산산이 찢기고 분류당한다. 고등학교 시절, 어떤 시의 한 구절에 밑줄을 죽 긋고 그 의미를 묻는 시험문제가 있었는데, 나는 참고서가 가르쳐준 ‘보릿고개의 아픔’이 아닌 ‘봄날의 서정’이라는 ‘틀린’ 답을 기어이 적어냈다. 발표된 정답은 물론 보릿고개쪽이었다.그 유혈 낭자한 해부의 시간을 뚫고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언어들이 몇 가지 있는데, 청자 연적 이야기가 그중의 하나다. 여섯개의 연꽃 잎으로 장식된 자그마한 도자기에서 이파리 하나가 살짝 비뚤어져 있더라며,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을 감행한 고려 도공의 미의식을 말한 에세이였다.이런 삐딱한 미감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특정 영화 혹은 감독에 대한 평이 천편일률일 때 지루하고 불만스럽다. 내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모두 한목소리로 말하면 문득 의심스러워지며 딴청을 부리고 싶어진다.
차이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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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는 한국영화를 전략적인 주목 대상으로 선택했다. 국제영화제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이 두루 훑어보는 균형과 집중적인 이슈 만들기를 기본 목표로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지금 서구인들이 보기에 한국영화만큼 후자의 측면에 잘 부합하는 아이템도 드물 터이다. 좋은 일이다. 영화인들끼리 서로 자신의 일인 양 놀라워하면서 수상의 가능성까지 점쳐보는 한담도 즐거워 보인다. 올해 두명의 취재기자를 칸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던 <씨네21>이 그곳에서 벌어질 풍경들을 다채롭게 보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미리 흐뭇하다.이런 유의 외국 ‘잔치’는 길게 보면 15년 이상, 짧게 보아도 10여년 가까이 축적된 다각도의 노력이 맺어내는 하나의 결실이다. 1980년대의 임권택, 이장호, 박광수, 장선우, 배창호로부터 조심스럽게 명명되기 시작한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그뒤로 단 한번의 심각한 후퇴없이 지그재그로 폭과 깊이를 넓혀왔다. 만약 누군가가 앞으로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할
다시 상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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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커피 칸타타- 오늘 라디오에서 바흐의 <커피 칸타타> 중 <커피는 왜 이다지도 맛있을까>와 <고집 센 딸자식>을 들었다.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간드러지게 넘어가는 대목에서, 커피잔을 돌려 향을 맡은 뒤 한 모금 들이키며 ‘히야~’ 하고 감탄하는 300년 전 음악가의 느낌이 전해진다. 동글동글 사람 좋게 생긴 바흐가 커피를 앞에 두고 말 안 듣는 딸내미를 탄식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신윤동욱의 너스레- 이번주 ‘TV를 보다’ 칼럼은 민주노동당이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약진을 이루라는 응원가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남부럽잖게 생각 많고 점잖은 신윤동욱 <한겨레> 기자가 노회찬 ‘빠돌이’를 자처하며 꺅꺅거리고 정준하식 개그까지 구사하는 폼새가 여간 재밌는 게 아니다. 정치의 진보를 욕망과 쾌락의 지점에 놓고 선동하는 노련함을 보이는 것이다. 젊은이의 눈에는 불꽃이 있고 노인의 눈에는 빛이 있다고 했다.
즐거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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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영화를 두편 보았다. ‘잘 만들었다’가 아니라 ‘재미있다’는 느낌은 다분히 주관적일 터인데, 재미는 취향의 코드와 관련되어 있는 까닭이다.<라이어>는 성공적인 배우 앙상블 영화로 기억됨직하다. 어떤 영화라고 배우들 사이의 조화가 없을까마는 원작인 연극이 갖고 있는 성격, 그러니까 연출의 치열한 작업을 거쳐 일단 무대에 오른 뒤에는 배우 중심의 호흡과 조율로 전체를 끌어가는 연극성이 <라이어> 안에 잘 살아나 있다. 평소 반복적으로 보여온 이미지를 정통 코미디 감각으로 재활용한 손현주, 공형진씨를 비롯해서 새로운 느낌을 선보인 주진모씨가 이 영화를 감칠맛 나는 시트콤이 되도록 주도한다. 연극성을 살려낸다는 것이 무대 앞에 카메라 뻗쳐놓고 기다린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임을 생각한다면 연기 리듬과 커팅, 정서적 효과음으로서의 음악을 팽팽하게 유지시킨 김경형 감독의 영화적 연출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구로사와 기요시의 <밝은 미래>에 관해서는 아마
소년과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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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어째서 신기한 물건인고 하면, 2차원의 평면 위에 3차원인 척하는 이미지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카메라니 영사기니 하는 특정한 기계 장치가 발명된 덕분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붙잡아서 놀아보려는 인간의 유희적 소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살았던 조선의 화가들은 그림 안에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긍재 김득신은 마루에서 담배를 태우던 남자가 말썽꾸러기 고양이를 뒤쫓느라 탕건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맨발로 우당탕탕 마루를 내려서는 순간을 포착했다. 단원 김홍도는 음률에 맞추어 춤추는 무동의 옷자락 속에, 혹은 기와를 얹느라 하늘로 던져올린 물체의 하강 속에 순간성을 기록했다. 혜원 신윤복의 경우 유곽 앞에서 힘자랑하는 왈패들의 싸움 뒤끝이나, 밤길에 남몰래 만난 연인들의 밀회장면, 악공의 연주에 맞추어 칼춤 추는 무희 등 육체의 움직임과 감정의 한순간을 특히 많이 그렸다.같은 시기의 다산
춤,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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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봄인가요? 아, 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영화사 봄을 찾는 이성욱 기자의 통화 내용을 들은 정한석 기자가 하하 웃으며 “계절에게 묻는 것 같았어요, 선배”라고 여담을 건넨다. 문득 걷고 싶어진다.회사 근처에 있는 효창공원은 멀리서 볼 때 아직 가라앉은 갈색이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야트막한 관목들의 머리꼭지에 맑은 초록빛이 올라앉아 있다. 여린 싹은 내게 전혀 다른 감정들을 차례로 불러일으킨다. 처음엔 환하게 반갑다. 그리곤 안쓰럽다. 마침내 무섭다.오래전, 집 마당에 호박씨를 심었던 적이 있다. 호박죽 끓여먹는다고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다듬다 보니 거기서 나온 씨마저도 의미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몇 센티미터 간격으로 한 구멍에 서너개씩, 요령부득으로 씨앗을 밀어넣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었다. 마침내 싹이 돋아 올랐다. 어느 씨앗도 실패하지 않고 한 구멍에서 여러 개의 싹들이 하늘을 향해 그 작은 두팔을 힘차게 벌리고 있었다. 너무 많은 호박이 열린 나머지
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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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떠나왔다. 약속한 일 독촉하러 전화했던 말수 적으신 학교 선배, 몸이 비상신호를 보내와서 1년 만에 휴가 갖는 거라는 변명 듣더니 “그런 식으로 일한다고 누가 상 주나” 하신다. “그러게요.” “상 받은들 뭐 할 거라고.” “그러게요.” 일을 한주 연기해놨다는 전화를 다음날 받았다.하루 반에 걸쳐 도착한 강릉. 피로를 이기지 못해 도중에 1박을 한 때문이지만 여행을 꼼꼼하게 계획하지 않고 즉흥성을 즐기는 탓이 더 크다. 인적 드문 바다, 늦은 오후의 호숫가, 선교장의 뒷산 솔숲을 걸어다니며 회복의 느낌, 장소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갖다. 다음날 다시 찾은 선교장. 세종 임금의 형이었던 효녕대군의 후손이 중종대, <대장금>의 바로 그 시절부터 세거하던 대저택. 날씨가 쌀쌀해선지 오후부터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한옥. 이 집이 매혹적인 한 이유다. 비는 오지 않았다. 서울발 일기예보에서는 동쪽에서도 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중앙에서 뿌려대는 지
외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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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조선시대 최고의 왕따는 허균이 아닐까 싶다.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것밖에 모르던 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여행 중에 마주친 시비(詩碑)를 통해 그가 교산(蛟山), 그러니까 이무기 교자가 들어간 호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역적으로 처형되었으며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복권되지 않은 유일한 지식인·정치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그에 대한 관심이 몹시 치솟았다. 스스로 용이 못 된 이무기를 자처했고, 왕조 내내 용서할 수 없었던 대역죄인의 정체란 도대체 무엇일까.허균은 15∼16세기에 걸쳐 선조와 광해군대를 살았고 고려시대 이래 대대로 문장가를 배출한 집안의 후예였다. 아버지와 두 형, 그리고 누이 난설헌까지 아울러 오문장가라고 불렸으며 임진왜란 전후의 어려운 국제정세 속에서 대중국 외교사절단에 단골로 끼었다. 그때마다 책을 수천권씩 사들였다. 고도의 중앙집권적 지식국가에서 정치적 출세의 핵심 요소를 두루 갖춘 허균은, 그러나 소
왕따 이야기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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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말해서 나는 모범생의 인생을 살았다. 모범생이 가질 법한 콤플렉스 혹은 자존심 때문에 아웃사이더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 제법 표했지만, 그것마저도 범생이스러운 관용의 일부였을 것이다. 모범이라는 가치관은 지루하고 억압적이므로, 그런 유의 기웃거림은 일종의 얌전한 일탈로서 내 심신을 부분적으로 해방시켜주는 기능도 했을 것이다. 토끼가 목 축이고 간다는 산속 옹달샘처럼.그런데 내가 이 세상 왕따 중의 왕따들과 한편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예전에 본의 아니게 어딘가에서 지내다 나온 적이 있는데,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관계가 거기에서 펼쳐졌다. 아침저녁으로 포승에 묶여 조사받으러 다니는 동안, 유치장을 제집 드나들 듯하는 한 청년은 화장지로 만든 한 다발의 꽃을 선물해주었고, “아이고, 이 생기다 만 사람 좀 보게. 한여름에 털옷이 웬 말이야” 하면서 저녁이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아침이면 머리를 땋아주던 사람은 소매치기 대장 아줌마였다. 얼굴도 모르는 어떤 이는 운동 중에
왕따에 대한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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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를 통해 세상 보는 눈을 정해나가는 경우가 꽤 있다. 사형제도에 대한 견해도 그중 하나였는데 중학교 때 TV 주말의 명화를 본 날, 주인공이 살인을 저질렀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의 심판으로 다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이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찌나 울었는지 뱃살이 아파서 숨을 못 쉴 지경이었다.한참 세월이 지난 뒤 <데드 맨 워킹>이란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이 감독과 주연을 한데다 주제가 살인제도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표 끊고 들어갈 때의 기분은 약간 흥분상태였다. 드디어 저 파렴치한 살인범을 죽이느냐 마느냐, 드라마의 극적 긴장감이 핵심에 육박해가는 순간이 왔다. 아뿔싸, 삐리리∼ 울리는 휴대전화 소리! ‘저 전화기의 주인은 지금 얼마나 미안해할까’ 생각하는 순간, “여보세요”라니? 김이 팍 샜지만 숀 펜의 연기력은 다시 한번 나를 영화에 몰입하도록 도와주었다. 마침내 그가 사형집행 호출을 받고
극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