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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페이스’라는 말이 있다. 카드를 할 때 좋은 패가 들어오든 나쁜 패가 들어오든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에서 유래한 말이라는데, 흔히 무표정한 사람을 일컫는다. 영화배우 가운데 포커페이스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찰리 채플린과 쌍벽을 이뤘던 코미디 감독 겸 배우 버스터 키튼일 것이다. 키튼은 얼굴에서 표정을 지운 대신 몸의 액션코미디를 만들어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포커페이스 하면 또 떠오르는 인물로 기타노 다케시가 있다. 기타노의 <소나티네>나 <하나비> 같은 영화는 기타노의 무표정과 잔혹한 상황 또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의 충돌로 이뤄져 있다. 기타노의 이런 스타일은 때로 공포와 충격을, 때로 폭소와 희열을 몇배로 증폭시킨다. <브로큰 플라워>의 빌 머레이 또한 포커페이스의 또 다른 경지다. 중년의 피로가 쌓인 그의 얼굴은 우리 인생의 당황스러운 국면을 의인화시킨 결과 같다. <브로큰 플라워>의 빌 머레이를 문장으로 옮기면 이렇게
[편집장이 독자에게] 포커페이스의 비애, <브로큰 플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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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동 올림픽>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신도시 개발 때문에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내쫓기는 상계동 철거민들을 그린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대목 하나는 상계동에서 내몰린 그들이 부천시의 고속도로 근처에 자리를 잡은 다음 벌어진다. 당시 정부가 철거민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그들을 서울 외곽으로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부천의 고속도로 옆이 그곳. 그들은 정부가 지정한 장소에 판잣집을 지어놓고 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부천시 공무원들이 불법건축물이라며 판잣집을 헐러 온 것이다. 철거민들은 정부에서 시킨 대로 이주한 것이라고 하소연했지만 소용없었다. 상계동에서 철거 깡패들과 힘든 싸움을 벌였던 그들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약자였다. 기가 막힌 것은 철거의 이유다. 관계자는 고속도로로 올림픽 성화가 지나가는데 서울의 낙후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지 않겠냐고 말한다. 국익을 위해 도시 빈민쯤은 짓밟아도 좋다는 끔찍한 논리다.
최근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둘러싼 논
[편집장이 독자에게] 국익이를 내버려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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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금기였던 탓에 일본 영화사엔 아직 우리가 잘 모르는 감독들이 많다.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마스무라 야스조도 그중 하나다. 그는 오랫동안 스튜디오의 고용감독으로 일했고 작가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재평가받은 거장이다. 이번 회고전에서 그의 영화 몇편을 보면서 마스무라를 보러 가자고 선동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오랜만에 발견의 기쁨을 만끽한 영화들이었으므로.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애정없는 결혼이긴 남편쪽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아내를 가정부 겸 비서로 부려먹었고, 아내는 남편을 가난에서 탈출하는 방도로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남편의 일을 도와주는 청년에게 마음을 뺏긴다. 애타는 마음을 누르려 애쓰지만 남편은 아내의 마음이 딴 데 있다는 걸 눈치챈다. 암벽등반을 즐기는 남편은 아내와 청년에게 함께 산에 가자고 제안한다. 남편의 속셈은 아내와 청년을 산속에 버려두는 것이었으나 그만 일을 그르친다. 청년과 아내와 남편은 같은 로프에 묶여
[편집장이 독자에게] 마스무라를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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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주위에 절망이 삼켜버린 젊음이 서성거린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대학을 졸업한 뒤 같은 과 여자동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군대를 제대한 뒤 한때 함께 공부했던 후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딘가 발을 헛디딘 듯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난다. 전태일의 분신처럼 세상을 뒤바꾸는 외침이 아닌 자살, 딱히 누군가가 기억하길 원치 않는 자살을 나는 아직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수많은 책과 영화가 절망과 싸우는 법을 가르쳐도 자살자가 나오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럼 세상이 원래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는 전형적인 젊은 영화광처럼 보였다. 고작 서너번 마주쳤고 그가 쓴 평을 1년 정도 본 것밖에 없으니 선입견에 불과하지만 첫인상은 그랬다. 1997년 제2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았던 그는 수상소감에서 “누벨바그 감독들처럼 창작과 평론을 같이 하고 싶다. 사상은 지식과 실천의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이 닿는 한 시도는 해
[편집장이 독자에게] 어느 영화 청년의 자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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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운드, 하면 떠오르는 영화 두편이 있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필사의 추적>과 허진호의 <봄날은 간다>. 둘 다 영화 사운드를 만드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필사의 추적>에서 존 트래볼타는 소리를 채집하던 중에 살인사건을 목격한다. 아니, 목격이란 말은 정확하지 않다. 살인현장을 눈으로 본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총성을 들었고 그 소리를 녹음했을 뿐이다. 총성만 없었다면 평범한 자동차 추락사고로 보였을 사건은 이제 거대한 미스터리가 된다. 뒤이어 사건 현장을 찍은 연속 사진이 발견되고 존 트래볼타는 자신이 녹음한 소리와 연속 사진을 이어붙인다. 그리하여 사건 현장은 마치 영화로 찍은 것처럼 온전히 살아난다. 이는 영화란 무엇인가, 란 질문에 대한 드 팔마식 답변이다. 영화란 개별 요소들이고 퍼즐조각이다.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아무 일도 아닌 것도 되고, 살인사건이 되기도 한다. 그는 퍼즐조각을 흐트러트린 다음 마지막 한 조각을 맞출
[편집장이 독자에게] 사운드, 영화제작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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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솔리니 시대의 이탈리아엔 백색전화 영화란 게 있었다. 부르주아 저택에서 벌어지는 연애담이 주를 이루는 영화로 안락한 거실의 백색전화가 눈에 두드러져 붙여진 이름이란다. 백색전화는 궁핍한 대중에게 현실도피의 환상을 채워주는 당시 영화의 상징물이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끝나자 이런 주류영화에 반기를 든 일군의 감독이 나타났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 시카, 루치노 비스콘티. 그들은 부자의 집에서 벗어나 거리로 뛰쳐나갔고 스타 배우들 대신 비전문 배우에게 연기를 시켰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시작이다.
1950년대 프랑스에선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젊은 평론가들이 소란을 일으켰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글 ‘프랑스영화의 어떤 경향’은 영화계를 뒤흔들었다. 프랑스영화의 주류를 형성하던 감독들을 맹렬히 씹었던 그는 이후 누벨바그의 주역 가운데 하나가 됐다. 독일도 비슷했다. 1962년 오버하우젠 선언은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고 선포했고 그뒤 전 세대와
[편집장이 독자에게] 부정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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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일본영화를 볼 수 없었던 탓에 우리에게 쇼치쿠는 그리 친숙한 이름이 아니다. 일본영화 개방 이후 오즈 야스지로와 쇼치쿠 누벨바그가 널리 알려졌지만 쇼치쿠는 국내에선 홍콩의 쇼브러더스(장철과 호금전의 무협영화)만한 인지도도 없는 영화사이다. 그건 지금의 일본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쇼치쿠의 전성기는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씨네21>이 쇼치쿠 110년을 특집기사로 다루는 것을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다. 왜 쇼치쿠인가? 간단히 답하자면 쇼치쿠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사이고 기라성 같은 감독들을 배출하고 수많은 걸작을 만든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그건 1990년대 한국영화가 꿈꿨던 어떤 이상을 쇼치쿠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쇼치쿠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 가운데 기도 시로라는 제작자가 있다. 1922년에 쇼치쿠에 입사한 그는 1924년 가마다 촬영소 소장이 됐고 능력있는 감독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인물이
[편집장이 독자에게] 쇼치쿠 1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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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인상적인 대목 하나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민들을 도인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연탄 수십장을 자전거 뒤에 싣고 가는 연탄가게 아저씨와 엄청 무거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가는 떡집 아줌마가 실은 도를 깨친 사람들이라는 설명은 흐믓한 미소를 머금게 했다. 진지하게 힘준 장면이 아니라 웃고 넘어갈 장면이긴 하지만 가슴에 와닿는 농담이다.
비슷한 감흥을 <생활의 달인>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평택항에서 수출용 자동차를 주차하는 김현복씨. 그는 컨테이너 안에 자동차를 일렬로 집어넣는 일을 한다. 트레일러로 항구까지 운반된 자동차가 도착하면 그는 재빨리 자동차에 올라타 거대한 컨테이너 안으로 질주한다. 순식간에 옆차 간격 10cm, 앞뒤차 간격 30cm를 유지하며 자동차를 주차시키는 김현복씨. 눈을 감고 주차해도 간격을 유지할 정도니까 도가 텄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최근 방영된 국수 포
[편집장이 독자에게] 생활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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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에선 좋은 영화만한 피로회복제가 없다. 하루 몇편씩 영화를 보는 일정을 계속하다보면 상당한 체력이 소진되는데 이럴 때 정말 눈이 번쩍 떠지는 영화 한편이 간절해진다. 맛난 음식이나 포근한 잠자리로 충족시킬 수 없는 갈증, 거창하게 말하면 이런 걸 ‘영혼의 허기’라고 하던가. 이번주 전영객잔에 정성일씨가 “진짜 재미는 그 영화들을 보기 위해 시간표를 짜는 순간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고 쓴 것도 영혼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시간표에서 이미 결정나기 때문일 것이다. 각설하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 영혼의 굶주림을 채워준 영화는 <쓰리 타임즈> <부운> <연연풍진> <용서받지 못한 자> <망종>이었다. 이중 ‘발견’에 해당하는 영화만 꼽자면 <망종>과 <용서받지 못한 자>이다.
<망종>이 어떤 영화인지는 이번주 특집기사에 실려 있다. 이영진 기자는 <망종>에 대해
[편집장이 독자에게] <망종>과 <용서받지 못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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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의 막이 올랐다. 해가 거듭할수록 표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이 영화제는 올해 열돌을 맞아 더 분주해진 인상이다. 영화제 관계자들이야 매년 이맘때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으니 특별히 더 정신없어 보이진 않지만 여기저기 토목공사가 진행 중인 해운대 주위 풍광은 예년과 확실히 달라 보인다. 버스를 타고 광안대교를 건너 해운대로 향하면서 영화제 초창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진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부산이라는 도시 전체가 부산영화제 못지않게 성장하고 있는 느낌이었다(부산영화제 개막 5일 전부터 개막일까지 분위기를 담은 이번주 기획기사를 보시면 쉽게 실감하시리라). APEC 정상회의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라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이런 변화의 바탕엔 영화제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영화제 덕에 부산이라는 도시를 알게 된 외국인이 얼마나 많을지, 부산과 친해진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보면 능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씨네21>도 지난 4월
[편집장이 독자에게] 제10회 부산영화제에 축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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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야구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열혈팬을 주인공으로 삼은 로맨틱코미디 <날 미치게 하는 남자>를 보다가 재미있는 표현 하나가 귀에 들어왔다. ‘윈터 가이, 서머 가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벤은 야구시즌이 아닌 겨울에 한없이 다정하고 친절한 남자인데 야구시즌이 달아오르는 여름만 되면 야구에 미쳐 정신을 못 차린다. 벤의 애인은 그에게 윈터 가이는 오케이지만, 서머 가이는 감당 못하겠다고 말한다. 야구장에 가야 하기 때문에 주말에 파리로 여행가자는 애인의 제안을 마다하는 남자를 어느 여자가 좋아할까. 영화는 끝내 해피엔딩을 이끌어내지만 현실도 그럴지는 의심스럽다. 아마 이 해피엔딩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처럼 86년 만에 찾아오는 기적일지도 모른다.
애인 입장이라면 윈터 가이가 더 좋은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윈터 가이보다 서머 가이에 끌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아낌없이 모든 걸 바치는 열정, 차라리 광기라고 불러야 할 그
[편집장이 독자에게] 서머 가이, 홍명보, 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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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선 흔히 전국 관객 500만명을 넘는 영화는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1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런 영화에는 집단무의식을 자극하는 제의적 성격이 있다는 얘긴데 거꾸로 흥행영화를 통해 그 시대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소설가 김영하씨는 <랄랄라 하우스>라는 책에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예에 관해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등골이 휘게 일했지만 IMF 이후 어느 날 갑자기 쓸모없다며 회사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억울함이 김일성의 목을 따기 위해 죽을 고생을 했는데 무장공비로 몰려 죽은 실미도 부대원의 심정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평생을 자식 성공만 바라보며 살았는데 자식에게 “내가 언제 그래달랬냐”는 볼멘소리를 듣는 부모의 마음이 <태극기 휘날리며>에 감정이입하게 만든 힘이라고 말한다. 이들 영
[편집장이 독자에게] <웰컴 투 동막골>의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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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비글로의 <블루 스틸>을 처음 봤을 때 참 신선했던 기억이 있다. 적어도 여성문제에 관한 한 우리보다 100년쯤은 앞선 미국이고, 할리우드영화들은 ‘지 아이 제인’ 같은 여성투사들을 제법 배출해왔으며, 현대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한 <터닝 포인트> 같은 걸작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지만, <블루 스틸>은 새삼 “아, 이래서 남자가 만드는 여성영화와 여자가 만드는 여성영화는 다른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주인공 여성에게 경찰관이라는 권력적 지위를 부여한 것도 그렇고, 알코올 중독 아버지에 의한 가정 내 폭력과 사이코에 의한 사회적 폭력을 거기에 상응하는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도 그랬다. 가령 <밴디트 퀸>과 <엘리자베스>를 만든 인도 출신 세카르 카푸르 감독 정도면 페미니즘 영화비평의 연구주제가 될 만도 하지만, 정작 나는 두 작품이 모두 불쾌했다. <엘리자베스>는 충동적이고 의존적인 저것이 여제의 퍼스낼리
[편집장이 독자에게] 페미니즘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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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한해를 '한국영화 폭발'이라는 말로 정리하면서, 영화산업이 쏘아올린 요란한 축포 뒤에 묻힌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한다. 올해는 인문학의 위기, 문학의 위기 등 유난히 많은 위기설이 회자됐는데, 영화가, 그리고 약간은 <씨네21>도 그 책임을 나누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다. 대학에서 학생들이 ‘돈되는’ 학과나 ‘재미있는’ 학과로 몰리면서 그런 현실에 맞게 학제를 새로 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형편에서 염무웅 선생이 어느 일간지에 쓴 글 한 대목은 가슴을 찌르는 바 있었다. “동네마다 노래방과 비디오가게가 들어찬 오늘날 대학마저 수요자 중심으로 변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학의 자기부정이다. 대학은 좀더 영속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에 봉사하는 것이고 인문학이 바로 그런 노력이다.” 70∼80년대에 김용옥 선생이 노자를 공부한다 할 때 ‘파시즘을 돕는 현실도피의 학문’이라고 질시 당했다지만, 요즘 같은 물신주의와 실용주의의 시대에는 철학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 인문학에 관심을
[편집장이 독자에게] 지식인으로서의 영화감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