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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책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에는 이탈리아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빌리 와일더 감독의 인터뷰를 소개한 대목이 있다. <뜨거운 것이 좋아>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같은 걸작 코미디를 만든 빌리 와일더가 왕년의 미남스타 게리 쿠퍼에 대해 한 말이 재미있는데 잠깐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가 세상의 모든 여자에게 인기를 누린 것은 딱히 멋진 대화 솜씨를 가져서가 아니야. 다만 그는 들을 줄 알았어. 이건 확신을 가지고 하는 말인데, 여자 이야기를 들을 때 그는 특별히 집중하지도 않았지. 다만, 계속 떠들어대는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때로 다음의 세 마디 가운데 한 마디를 곁들이는 거야. ‘설마’, ‘정말로’, ‘그건 처음 듣는 말인데’, 이런 식으로 여자에게 속내를 털어놓게 만드는 사이에 여자들은 자연히 그에게 몸을 던지게 되는 거야.”
포털사이트 뉴스에 오른다면 “게리 쿠퍼, 여자를 정복하는 데는 단 세 마디면
[편집장이 독자에게] 게리 쿠퍼의 세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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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기자 채용 공고를 냈더니 입사서류 500여통이 도착했다. 서류심사를 거쳐 이번주에 필기시험을 봤고 이제 면접만 남았다. 2명을 뽑을 예정이니 경쟁률로 치면 250:1쯤 되겠다. 아직까진 내가 왜 떨어졌냐는 질문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궁금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씨네21>이 기자를 뽑을 때 기준으로 삼는 게 무엇인지를 말이다. 사실, 입사서류 500여통을 꼼꼼히 보는 것은 안구에 통증을 동반하는 일이다. 학벌이나 학점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므로 오직 지원자가 쓴 글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비슷한 내용의 글을 계속 읽다보면 어지럼증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 눈이 번쩍 띄는 순간이 있다. 형식이든 내용이든 남다른 비범함이 엿보이는 경우다. 1차 서류전형 합격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가려졌다.
입사서류에는 자기소개서를 쓰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글솜씨를 평가의 우선적 기준으로 삼는다는 걸 몰라서인지 의외로 많은 지원자들이 자기를 소개하는 글을 성의없이 쓴다. 대표
[편집장이 독자에게] 자기소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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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와 그랬노?” <친구>에서 감옥에 갇힌 준석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준석이 답한다. “쪽팔리서….”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고 지금도 아리송하다. 친구를 왜 죽였느냐는 질문에 쪽팔려서 죽였다고 말하는 것인가. 쪽팔려서 자수를 했다는 말인가. 아님 왜 친구를 죽였냐고 물었는데 쪽팔려서 자수했다고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한발 떨어져서 보면 우스꽝스러운 대화건만 <친구>의 이 석연치 않은 문답은 사나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들의 대화가 우습다고 생각했다면 800만명 넘는 관객이 호응하진 않았으리라. 사람들은 친구를 죽여야 했던 준석을 동정했고 눈물을 흘렸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준석이나 동수나 알고보면 불쌍한 남자니까. 상택이 그랬듯 우린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친 그들에게 돌을 던질 만큼 깨끗하지도 용감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과 그래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 <친구>는 당위와 윤리에 속하는 의문을
[편집장이 독자에게] 아저씨들, 눈물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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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영화계를 취재하면서 당황스러웠던 경험 가운데 하나는 영화계에 불어닥친 상장 바람이었다. 감독이나 배우를 만나 예술을 논하면 되는 줄 알고 시작한 영화기자 일이었기에 어느 영화사가 합병을 했고 상장을 했는데 주가가 얼마라더라, 하는 뉴스를 취재하는 건 어딘지 낯설고 어색했다. 제작자들은 한국영화의 호황에 힘입은 상장 열풍을 환영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런다고 촬영현장에 금테를 두르는 것도 아니었기에 한동안은 변화를 실감하지 못했다. 그저 영화계가 전보다 돈 걱정을 덜하게 됐다고 느낄 따름이었다. 영화하면 배고픔을 연상하던 시대에서 영화하면 대박을 연상하는 시대가 된 것은 이런 상황이 몇년간 지속되면서 서서히 바뀐 인식일 것이다.
영화계의 이런 변화는 크고 작은 진통을 동반하며 이뤄졌다. 특히 투기성 자본이 영화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음험한 것이었다. 유명세가 있는 제작자나 배우를 동원해 주가를 올리고 차익을 챙기는 일도 벌어졌다. 그들이 실제로 제작한 영화가 한편도 없거나
[편집장이 독자에게] 불로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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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참전군인이었던 저희 아버지는 마흔아홉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아주 오랫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웃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병에 대한 공포보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미 잊혀진, 전쟁에 대한 공포가 더 컸습니다.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것은 전쟁입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신 동안 저는 친구들을 집에 데려온 적이 없습니다. 저는 병들어 신음하는 아버지가 창피했습니다. 저는 그런 불효자였습니다. 불효자인 제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못한 효도를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저희 집에, 아버지의 집에 제 친구들을 마음껏 초대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사람마다 사랑하는 방법이 다르듯이 사회에 봉사하는 방법도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를 지키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곧 현실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신동일 감독의 장편 데뷔작 <방문자>는 4분여의 롱테이크로 여호와의 증인인 청년이 법정에서 진술하는 장면을
[편집장이 독자에게] 총을 잡지 않을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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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란 게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거겠죠.” 배신자라는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알던 친구를 죽여야 했던 데미안이 비통하게 내뱉는 한마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나오는 잊을 수 없는 대사다. 영화는 후일 데미안의 형이 데미안에게 총을 겨눌 때 관객이 마음속에서 같은 말을 되풀이하게 만든다. 조국이 정말 그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역사란 놈의 고약한 버릇은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럴 가치가 없다는 걸 입증한다는 점이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기특한 미덕은 그걸 상영시간 2시간 안에 응축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역사 속의 그들이 다른 선택을 했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들은 달리 도리가 없었다. 켄 로치에게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고, 그 계급투쟁은 어쩔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맞게 되는 비극이다.
탈주했던 이낙성씨가 잡혔다는 뉴스를 접했다. 엉뚱하지만 이낙성의 체포 소식을 듣고 나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편집장이 독자에게] 그렇게까지 할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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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날 오후가 기억난다. 녀석은 바지춤에 손을 집어넣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뭐야? 그게.” 모든 게 낯설었던 새학기 첫날, 붙임성도 별로 없던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던 건 순전히 녀석이 보고 있던 잡지 덕이었다. “응, 퀸. 한국에 올지도 모른대.” 오디오는커녕 워크맨도 없던 나는 녀석이 하는 말이 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퀸이든 송골매든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특히 녀석이 보고 있던 <월간 팝송>은 중학생의 눈에 시에나 마드레의 황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날 이후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는 길엔 항상 녀석이 있었다. 그게 아니라 내가 졸졸 따라갔던가,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아무튼 우리는 친구가 됐고 나는 녀석의 추종자가 됨과 동시에 퀸의 열혈팬을 자처하게 됐다. 녀석은 퀸의 음반을 녹음해줬고 나는 녀석이 모아둔 <월간 팝송>을 숙독하며 말상대가 되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성의를 보였다. 선민의식에 불타 있던 우리에게 마이클
[편집장이 독자에게] 팬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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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발견의 순간에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처럼 수백편의 영화가 선보이는 곳에선 더욱 그렇다. 특별한 기대를 품지 않고 봤는데 가슴 떨리는 감흥을 주는 작품이라면 여행길의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진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본 영화 가운데는 <경의선>이 그런 영화였다. 이윤기 감독의 <아주 특별한 손님>, 김동현 감독의 <상어>, 김태식 감독의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신동일 감독의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등 널리 호평받은 한국영화들이 많아 영화제 관계자들이 특정한 영화 한편에 집중하는 일은 드물었던 영화제였지만 개인적으로 <경의선>은 아주 특별한 감흥을 줬다.
<경의선>을 만든 박흥식 감독은 평론가와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한 <역전의 명수>로 데뷔했다(<인어공주>의 박흥식 감독과 다른 동명이인). 찬반양론이 갈리는 영화였다면 덜했을 텐데 <역전의 명수>에
[편집장이 독자에게] <경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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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매력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다르게 답할 것이다. 우주 전쟁이나 괴물처럼 상상 속 존재를 눈앞에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도,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것일 수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짜릿한 긴장감을 주는 것일 수도, 인생의 극적 순간을 압축해 경험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다양한 매력 가운데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순간을 영원으로, 영원을 순간으로 만든다. 영화를 시간의 예술이라 칭하는 것도 시간을 다루는 데 있어서만큼은 영화가 미술, 사진, 음악, 연극 등 다른 예술 장르보다 우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데 있어서 가장 일반적인 형식은 플래시백이다. 회상장면을 통해 관객은 인물의 심리에 동화되거나 흩어진 퍼즐의 조각을 맞춘다. 쉽고 효과가 확실한 방법이라 플래시백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한다. 너무 흔히 볼 수 있어서 그만큼 식상한 기
[편집장이 독자에게] 플래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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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잠수함이 북한 영해에서 조난당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북한군은 조난당한 잠수함을 포위하고, 백악관엔 비상이 걸린다. 잠수함에 탄 군인들을 구하는 길은 둘 중 하나다. 전쟁을 할 것인가? 협상을 할 것인가? 지난 9월17일 방영된 미니시리즈 <커맨더 인 치프>의 내용이다. 지나 데이비스가 연기하는 미국 대통령 앨런이 힐러리 클린턴을 닮았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커맨더 인 치프>는 <웨스트윙>과 마찬가지로 백악관을 무대로 삼은 정치드라마다. 우연히 틀었다가 채널을 고정시키고 보게 된 건 신문에서 무척이나 알기 어렵게 표현하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역학이 한눈에 드러나 보였기 때문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와 맞먹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직면한 대통령 앨런은 관계자들의 자문을 구한다. 북한엔 핵무기와 정규군만 100만명이 있다며 전쟁을 반대하는 온건파와 북한군 100만명은 독재자의 압제에 신음하는 배고픈 국민들일 뿐이라며 본때를 보이자는 강경파가 맞서는 가운
[편집장이 독자에게] 위험한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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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 영화에서 연인으로 나오는 두 배우가 스탭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상대역인 남자와 조금 떨어져 앉아 있던 여자가 밥먹는 내내 상대방 모습을 유심히 보며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더란다. 왜 그럴까 싶어 조감독이 물어봤다. “뭘 그렇게 봐요?” “아, 예, 사랑하는 연습 하는 거예요. 진짜 연인처럼 자꾸 바라보고 좋아하는 마음을 가져야 카메라 앞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촬영 기간 내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배우들에게 이런 일이 드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 진짜 정분이 났다는 얘기도 더러 들어봤지만 그런다 한들 이상할 게 없다. 진실한 감정을 드러내는 연기와 감정을 모방하는 연기 가운데 당연히 전자가 관객의 마음을 훨씬 잘 움직일 것이다. 실제 부부인 두 노인이 주연을 맡은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를 떠올려보라. 거짓이 없는 그들의 표정은 전문 배우가 따라한다고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연기는 촬영장에
[편집장이 독자에게] 안성기와 박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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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반바지를 입고 다니다 아침저녁 차가운 공기에 깜짝 놀랐다. 어느새 여름이 물러나고 가을 바람이 서늘하다. 에어컨에 익숙해졌던 몸은 자연이 실어온 바람에 새살이 돋는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서울에서 요즘처럼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있는 때는 많지 않다. 나는 가을이 걷기 좋은 계절이라 좋다. 어딘가 여행을 갈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냥 가까운 곳에서 산책만 하더라도 좋은 때다. 9월이나 10월에 서울 성곽길이나 삼청동, 가회동 골목 같은 곳을 걷다보면 가을이 몸에 스며드는 게 느껴진다. 그런 거리가 주말마다 사람들로 꽉 차는 것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많아서일 것이다.
강남에도 옛 정취가 남아 있는 동네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강북에도 그런 동네가 많지는 않다. 시대 배경이 현재가 아닌 영화를 만드는 경우에 더욱 절실히 느끼는 문제지만 서울은 시간이 쌓인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운 도시이다. 그래서 불편하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어딘가 에어컨 바람을 닮
[편집장이 독자에게] 가을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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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학교 3학년 때 교복, 두발 자율화를 경험한 세대다. 거꾸로 말하면 중학교 2학년까지 머리 깎고 교복 입고 모자를 썼다는 말이다. 어려서 교복에 심한 거부감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막상 자율화가 이뤄지자 얼마간 당황했다. 교복을 입었을 때 감춰졌던 빈부격차가 한눈에 드러나 학교 가는 일이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자율화는 기쁜 일이었다. 복장이나 머리 때문에 선생님한테 싫은 소리 들을 일은 없어졌기 때문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교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게 자율은 빈부격차의 노출에도 불구하고 억누르고 금지하는 것보다는 나은 조치였다.
그러나 사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게 됐다고 자율의 세상이 온 건 아니었다. 자율학습시간이 자율이 아닌 것처럼 대학 진학도 정말 자율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대학을 가야겠다 생각한 건 아마도 그곳엔 진정한 자율이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막상 대학에서 얼마나 자율을 만끽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마신 술의 양으로
[편집장이 독자에게] 다름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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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몇 차례 발언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시간> 시사회 뒤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작해서 <100분 토론>을 거쳐 사죄문 소동까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김기덕 감독이 <연합뉴스>에 보낸 사죄문의 전문을 보지 못해 그의 진의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보도된 내용이 맞다면 그걸 사죄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코미디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당신들이 맞고 내가 틀렸다, 당신들을 우롱해서 죄송하다, 는 말이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자학과 자책은 김기덕의 진심이라고 믿기 어렵다. 정말 김기덕 감독은 자신을 “열등감이 낳은 괴물”이라고, 자신의 작품을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할까? 역설에 관한 약간의 상식을 동원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그의 글을 사죄문이 아니라 차라리 격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쓰레기로, 괴물로 이름 붙인 사회를 비판하는 격문.
“쓰레기통을 뒤지면 향기가 난다.” 언젠가 김기덕은 자신
[편집장이 독자에게] 김기덕의 퍼포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