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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호들갑이냐는 말을 들을지 모르겠다. ‘지금 미국영화’라는 특집을 3주 연속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사태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보고 난 뒤, 이런 특집을 해야 할 때라는 확신이 생겼다. 두 영화가 훌륭하다는 얘기는 들었을 테고 나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두 영화가 택한 엔딩 때문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 나온 관객 사이에선 “이게 뭐냐?”는 웅성임이 있다는데 아마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봐도 마찬가지 반응이 나올 것 같다. 꼭 해피엔딩이 아니어도 할리우드 엔딩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는데 두 영화는 그것을 배신한다. 아무리 비극이어도 있게 마련인 카타르시스가 없는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악당은 끝까지 살아남고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선언하듯 갑자기 끝난다.
[편집장이 독자에게] 지금 미국영화를 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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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가 승승장구하는 분위기다. 개봉 1주 만에 100만명을 돌파한데다 잘 만든 영화이고 굉장히 센 영화라는 입소문이 관객을 부르는 모양이다. 화제가 되는 영화인 만큼 영화에 관해 궁금한 것도 많고 해석도 분분한데 <씨네21>은 이번호에 나홍진 감독을 모시고 Q&A 시간을 가졌다. 지면으로나마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됐길 기대하는데 그래도 100% 만족스럽지 않을 분들을 위해 진짜 Q&A 시간도 마련할 생각이다. 조만간 <씨네21>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가 나가면 신청해서 나홍진 감독과 만나는 기회를 잡으시길 바란다.
스릴러로서 <추격자>의 장점은 충분히 언급된 것 같다. 관객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장치들이 영리하게 사용됐고 관객이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에너지를 발휘하는 배우들도 칭찬받을 만하다. 이렇게 많이 얘기된 부분을 제외하고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중호의 이중적 모습이다. 영화 초반부에 여관에서 두 남자가 한 여
[편집장이 독자에게] <추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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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가 끝나고 1주일간 숭례문 때문에 난리가 났다. 어딜 가나 숭례문 화재가 화제가 됐고 입 달린 자는 모두 한마디씩 했다. 온 나라가 초상집 분위기인데 한국의 상가 어디서나 그러하듯 술 취한 친척들의 고함소리도 여기저기 터져나온다. “이게 다 놈현 때문”이라는 관용구가 있는가 하면 “이명박이 시장 하면서 개방한 거 아니냐”는 성토성 발언이 나오고, “대체 문화재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는 짜증 섞인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라는 한탄도 들려온다. 정치권에선 “국민 성금을 걷자”는 말을 했다 거센 반발에 휘말리는가 하면 인수위 정부조직개편안에 노 대통령 퇴임축하연까지 별 관계도 없는 일들이 일제히 숭례문 화재와 연관된 것처럼 들먹여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숭례문 화재는 비극에서 희극으로 장르를 옮겨가는 느낌이다.
온 국민이 숭례문에 이토록 진한 애정을 갖고 있었는지 예전에 미처 몰랐다. 내가 어느 정도 냉소주의자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숭례문 화재에
[편집장이 독자에게]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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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미국에선 작가조합의 파업 때문에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올해 오스카 후보 명단은 수상식 여부와 무관하게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구경꾼의 견해로 말하자면 아카데미가 이만큼 괜찮은 명단을 내놓은 적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다. 흔히 아카데미 스타일이라 말하는 보수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작품이 올해만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코언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가 똑같이 8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코언 형제는 칸영화제 감독상을 3번이나 탔고 폴 토머스 앤더슨은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과 칸영화제 감독상을 탔지만 모두 오스카와 별 인연이 없었다. <파고>가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번번이 후보 지명에 만족해야 했다. 아카데미가 지난해에야 뒤늦게 오스카를 거머쥔 스코시즈를 보고 반성한 것일까? 코언 형제와 폴 토머스 앤더슨이 경합을
[편집장이 독자에게] 할리우드영화에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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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쯤 박혜명 기자는 뭐라 말할지 난감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내셔널 트레저: 비밀의 책> 홍보행사 참석차 도쿄를 방문했을 때 일인데 인터뷰 도중 존 터틀타웁 감독이 갑자기 불법복제에 관한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을 해적판의 천국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농반진반 기자들에게 당신들도 불법복제를 하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고 한다. 듣기에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니지만 다운로드받아서 영화 보는 일이 다반사인 게 국내 실정이다보니 뭐라 답할 말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긴 몇년 전부터 중국이나 동남아를 다녀온 이들이 이구동성 “거긴 해적판 천지”라고 했던 걸 떠올려보면 미국 감독의 그런 발언도 당연한 일이다. 중국에선 주로 VCD로, 한국에선 주로 인터넷으로 유통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명장>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진가신 감독은 비교적 한국을 잘 아는 홍콩 감독이다. <명장> 시사회에서 무대 인사를 하던 그도 불법복제 얘기를 꺼냈다. 이미 불법
[편집장이 독자에게] 즐감 서비스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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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울아트시네마가 북적거린다고 한다. 아벨 페라라, 프랑수아 트뤼포 등의 작품을 상영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관객의 발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내가 꼭 봐야지 하고 벼르던 영화는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이다. 이미 박찬욱 감독이나 오승욱 감독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던 <최후의 증인>은 1980년 개봉 당시 검열로 만신창이가 됐던 영화다. 2시간30분이 넘는 영화를 1시간40분으로 1시간가량 잘라내고 개봉했으니 당대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을 리 만무하다. 다행히 감독판이 남아 있어 그걸 본 몇몇 사람이 입소문을 냈고 20년 넘는 세월이 흐른 뒤 우리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체 어떤 영화기에 전설이 됐을까 너무나 궁금했다. 보고나니 저주받은 걸작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최후의 증인>을 보면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떠올랐다. 4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을 용납할 수 없던 할리우
[편집장이 독자에게] <최후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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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목적은? 존재의 목적은….” 가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 나오는 대사처럼 질문을 던져본다. <씨네21>의 존재 목적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영화인의 기억에 남아 있어야 할 것을 상기시키는 것도 분명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씨네21> 기자들 가운데 이런 대목을 자주 일깨우는 인물은 문석 기자다. 매달 기획회의를 할 때마다 그의 기획안에는 아무개의 탄생 100주년, 사망 10주기 등 기념할 만한 일들이 잔뜩 들어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일을 잘 챙기는 게 쉽진 않다. 모차르트 사망 200주년 음악회 정도 되는 대형 이벤트라면 몰라도 그만큼 유명하지 않은 인물인 경우 잊고 넘어가기 십상이다. 장국영이나 이은주처럼 팬클럽이 있는 배우나 영화사에 등재된 유명감독이 아니라면 더욱더. 이번달 문석 기자의 기획안을 보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10주기가 코앞에 왔음을 알았다. 1998년 1월16일, 그는 유작 <8월의 크리스마
[편집장이 독자에게] 유영길 촬영감독 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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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매년 4월 말이면 창간 기념 개편을 하곤 하지만 13주년을 맞는 올해는 어느 때보다 과감한 혁신을 하자는 마음가짐이다. 일반적으론 새해 결심을 제대로 지키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금연, 금주 같은 결심은 아니어서 목표만 제대로 찾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중요한 것은 목표 혹은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인데 혼자만 머리 굴린다고 될 일은 아니다. 어떤 의견이 있는지 일단 들어보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씨네21> 블로그에 개편에 관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달라고 했더니 좋은 지적을 담은 장문의 글들이 올라왔다. 그중 두 블로거의 글이 마음에 와닿았는데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즐거운 편지님은 <씨네21>이 이미지보다 텍스트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마약처럼 중독성 강한 매체가 되기를 바란다는 글을 남겼다. “지금의 인터넷 블랙홀 시대에, 종이잡지가 살아남으려면 담배를 끊을 수 없는 것처럼 결코 보지
[편집장이 독자에게] 2008년 개편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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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은 2차대전 때 프랑스에서 활약했던 레지스탕스 이야기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독립군을 그린 작품이라고 할까. 이런 유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독일군이나 일본군에 잡혀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다. 적과 우리 편을 가르는 데 있어서 극악한 폭력은 단순하고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그림자 군단>에서 심금을 울린 대목 가운데 하나는 그런 장면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독일군에 잡혀 의자에 묶인 인물이 등장하고 막 고문을 시작하려는 찰나 장면은 전환된다. 잠시 뒤 얼굴에 피멍이 든 인물을 볼 수 있지만 결코 고문행위는 직접 묘사되지 않는다. 반면 이 영화는 레지스탕스가 배신자를 처단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를 돌리지 않고 지켜본다. 독일군의 지배에서 프랑스를 구한다는 대의명분이 무색하게 이 장면에서 레지스탕스는 마피아 같은 폭력조직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들 역시 살인자인 것이다. 상식적인 선악 이분법을 무너뜨리는 이런 장면 연출은 중
[편집장이 독자에게] 무엇을 찍지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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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자가 정해졌다. 말 많고 탈 많던 그분이 되셨고 머지않아 운하의 첫삽을 뜰 것이다(Oh! No!). 역대 최악의 투표율이라고 하지만 60% 넘는 투표율에 1천만 넘는 표로 당선됐으니 국민이 그분을 원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영화로 치면 작품성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아도 1천만 관객이 몰려드는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그분은 이번 영화에서 ‘정권교체’와 ‘경제’라는 두 마리 이무기의 화려한 변신을 보여줬다. 청계천에서 태어난 이무기들은 몇번 꿈틀거리더니 한반도 대운하를 칭칭 휘감은 두 마리 용이 되었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이 그래서 생긴 걸까. 놀라운 특수효과에 다들 할리우드 못지않은 기술력이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이 영화의 치명적 약점은 서사의 미스터리가 끝까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BBK라 부른 미스터리 플롯의 심각한 결함에 대해 영화깨나 본다는 사람들은 모두 목청 높여 나무랐다. 하지만 그분의 영화는 굉장한 볼거리가 있다는 게 중요하지 미스터리 따
[편집장이 독자에게] 2007 대선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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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에 실린 연말결산 대담을 한 뒤로 ‘서사의 위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지금 한국영화가 처한 난처한 상황을 산업적 부실함이나 자본의 부족 또는 관객의 변화라고 말하는 대신 서사의 위기라고 부르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중영화에서 무엇보다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전제를 수용한다면 한국영화와 관객 사이의 간극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부족한 데에서 기인할 가능성이 크다. 흥행을 예상치 않았던 <식객>이 300만 관객을 불러모은 데 비해 기본 이상을 의심치 않았던 <두 얼굴의 여친>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일까? 요리를 소재로 삼은 영화 가운데 과거 흥행작이 없었던 반면 <두 얼굴의 여친>이 <엽기적인 그녀>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는 사실은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성공을 모방하는 영화가 실패하고 영화로 못 봤던 이야기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 관객은 분명 오리지널리티 혹은 참신한 기획에 목마른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한국
[편집장이 독자에게] 서사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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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박혜명 기자가 쓴 조지 클루니 기사를 보셨으리라. 기사에 나온 대로 조지 클루니는 스타 파워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미국 대선 후보로 유력한 민주당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을 지지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렇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히는 것은 할리우드 배우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민주당 편이고 수잔 서랜던과 팀 로빈스가 진보정당 편이며 아놀드 슈워제네거, 찰턴 헤스턴이 공화당 편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배우들의 정치 참여는 2002년 대선에서 두드러졌다. 문성근, 명계남 등이 노무현의 당선을 위해 발벗고 나섰고 박찬욱, 봉준호, 문소리 등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다. 물론 한나라당을 지지한 배우도 적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상황이 나쁜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자의에 의해 배우들이 정치적 신념을 표현하고 그걸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경우에 따라 매우 아름답다. 안젤리나 졸리가 굶주린 제3세계 아이들을
[편집장이 독자에게] 위장 지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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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지면에 “가족을 심문해보자”고 쓴 적이 있다. 역사는 내 부모가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보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서재에서 낡은 사진첩과 글을 발견하고 생전에 물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배어난 글이었다. 살아계실 때 한번도 아버지의 젊은 날에 관한 얘기를 나눠보지 못한 나로선 심히 공감이 갔다. 역사가 교과서에 들어 있는 암기과목이라고 배웠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리라. 개인, 그것도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내 가족의 과거에서 역사를 발견한다는 것은 이래저래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고경태 팀장은 학교에서 부모 심층 인터뷰를 과제로 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는데 정말 그만큼 효과적인 역사교육이 어디 있을까 싶으면서도 한켠으로 걱정도 된다. 그렇게 파헤친 가족사에서 엄청난 비밀을 대면하면 어떻게 될까?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그랬던 것처럼 감당 못할
[편집장이 독자에게] 올해의 다큐 <할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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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늘 배용균 감독이 떠오른다. 1989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을 받은 그는 한국영화에 전무후무한 1인 제작시스템의 감독이었다. 촬영, 조명, 편집, 미술 등을 직접 했던 배용균 감독과 그의 두 번째 영화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을> 개봉 때 서면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가장 인상적인 얘기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후반작업을 하던 때를 술회한 대목이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배용균이라는 감독이 장편영화를 찍어왔는데 코닥 매뉴얼을 줄줄 외면서 현상과정 하나하나에 간섭했고 색보정실에선 연일 고성이 오고 갔다는 이야기가 영화진흥공사에서 전설처럼 떠돌던 차였다. 그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시절 색보정실에서 우리는 주먹이 오고 가지는 않았지만 연일 비명이 새어나왔기 때문에 흡사 난투극이라도 벌였던 느낌이 든다”며 “최초의 35mm프린트를 밤늦게 떠
[편집장이 독자에게] 촬영감독 뉴 제너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