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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전 이 지면에 ‘MB를 욕하지 말자’는 제목의 글을 썼다가 일부 독자로부터 욕을 먹었다. “이봐 자네 그러지 말고 영화 이야기나 제대로 쓰지?”라는 반응이야 그렇다 쳐도 “노무현과 MB를 동급으로 비교하냐”는 항의는 좀 뜬금없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옛 유행어를 MB와 결부시켜 노무현을 폄하했다는 요지였다. 해석은 자유니까 뭐라 덧붙일 말은 없다. 그런 이들이 들으면 속이 뒤집어질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전두환에 빗대 노무현을 깎아내리므로, 이건 더 지독한 모독이 되겠다.
내용은 단순하다. 고 김수환 추기경 장례 때 왜 조문을 오지 않았냐는 비난이다. 알다시피 추기경과 가장 악연을 맺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왔다. 기자들에게 곤혹스러운 질문세례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다녀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끝내 명동성당에 발길을 들이지 않았다. 봉하마을이 너무 멀어서였을까? 친형의 구속 탓에 공개적인 행보가 부담스러웠을까? 아니면 대통령 재직 시절 다소 불편한 관계 때문
[에디토리얼] 할배좀짱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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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랐다. 관람률이 80%라니….
얼마 전 옛 대학선배들과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모두 40대 중반이었고, 남자들이었다. 영화는 그저 가끔 여가로 즐기는 수준이었다. 마니아들은 전혀 아니었다. 한데 신기하게도 <워낭소리>를 대부분 보았다고 했다. 4명의 선배 중 3명이었다. 나까지 포함하면 그 자리의 40대 남자들 중 4/5, 그러니까 80%가 관람한 셈이었다. <워낭소리>가 드디어 예매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음을 피부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날의 화제는 단연 <워낭소리>였다. 한 시간여 동안 선배들은 영화 감상평을 쏟아냈다. 관람 막판에 눈물을 흘렸다는 이들은 꽤 됐다. 유감스럽게도 감동했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짜증이 났다”는 평이 대세였다. 선배들은 모두 농촌 출신이었다. 그중 한명은 대학 졸업 뒤 농민운동에 투신하여 5년간 직접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날 나온 험담의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에디토리얼] 구토와 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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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식당, 정말 고마웠습니다.”
지난주, 회사로 온 편지 한통을 받고 어리둥절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며 알게 된 20대 중반의 여자후배였다. 서울에서 출판사를 다니는 줄 알았는데 편지의 발신지는 남쪽 지방의 도시였다. 함께 동봉한 책에는 올해 신춘문예에 입상한 자신의 희곡 작품도 실려 있었다. 한데 카모메식당이라니…. 편지를 읽으며 과거를 더듬자 새까맣게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맞다. 내가 그 영화를 보라 했었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건 2007년 12월의 어느 토요일, 한 대형서점에서였다. 책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마주쳤다. “커피나 한잔 하자”고 해서 30여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뭔가 서성이는 느낌이었다. 낮 12시경이었는데, 오후에 뭐할 거냐고 묻자 머뭇거렸다. 뚜렷한 스케줄이 없다고 했다. 나는 “혼자 처량하겠지만, 심심하면 극장에 가서 영화나 보라”고 반농담식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식당>이 재미있다고
[에디토리얼] 예측불허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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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는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동안 한편의 영화도 보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2월12일 저녁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관람 기록은 없다.
하지만 그가 정말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청와대 시사실에서 비공식적인 관람 일정이 있기 때문이다. MB는 영화를 좋아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부인 김윤옥씨가 영화를 더 즐긴다는 말도 들린다. 부부가 DVD를 감상하며 여가를 보내는지도 모른다.
MB는 대통령 후보와 당선자 시절에 몇편의 영화를 공개적으로 보았다. 2007년엔 <마파도2>와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2008년 1월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했다. <마파도2> 때문엔 설화도 입었다. 벤처기업협회 사무실에서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해서다. “돈 적게 들이고 돈 버는 것, 이런 것이 벤처 아이디어지… 아마 공짜로 나오라고 해도 다 나올 배우들을 데리고 말이야.” 당사자인 노장 여배우들이 문제삼지 않아서 그냥
[에디토리얼] 왕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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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넘은 일이다. 예전에 다른 매체에서 함께 일하던 어느 편집장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마감날 저녁 가끔 심하게 술을 마셨다. 불콰해진 얼굴로 들어와 후배들의 기사를 데스킹했다. 게슴츠레하게 실눈을 뜨고 앉아 졸다가 깨다가 했다. 어느 순간부턴 침몰하는 배처럼 서서히 가라앉았다. 자신의 노트북에만 코를 박고 있던 후배들은 알 리가 없었다. 편집장의 부재를 알아차린 누군가가 낌새를 눈치채곤 소리쳤다. “어, 여기 있던 XX 선배 어디 갔지?” 사방을 둘러봐도 없던 그분은 바로 자신의 책상 아래 바닥에서 변사체처럼 발견됐다. 졸던 와중에 엉덩이가 서서히, 아주 서서히 의자에서 미끄러지다가 결국 드러누워 자기까지 했던 거다. 한두달에 한번씩 벌어지던 해프닝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의 난 바르게(!) 일하는 편이다. 마감날 무리하게 알코올을 섭취하지 않는다. 후배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술기운에 기대 자판을 두드리는 이들을 한명도 본 적이 없다. <씨네21>엔 그런 음주
[에디토리얼] 밤술, 낮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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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시점이 참 절묘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체인질링> 이야기다. 설 연휴기간 동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어린이 납치를 다룬 영화가 그러하듯,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한 크리스틴 콜린스(안젤리나 졸리)의 악착같은 모성이 정당한 건 말하나 마나다. 그녀에게 가짜 아이를 안겨준 뒤 진짜라고 우기고, 결국 정신병원에까지 감금하는 LA 경찰의 행태가 이치에 어긋나기도 마찬가지다. 선량한 시민과 불량한 경찰의 싸움을 보자니 퍼뜩 용산이 떠올랐는데, 그걸 정색하고 이 지면에 옮기는 일이 왠지 민망하다. ‘인터넷엔 벌써 <체인질링>을 용산 참사와 비교하는 글들이 꽤 떠 있겠지?’ 극장을 나서기도 전에 그렇게 예견했던 터였다.
예상대로였다. 포털 검색창에 ‘체인질링 & 용산’을 치자 수많은 글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정말 그 두개의 사안은 명쾌하게 유사한지 의심하고 싶어졌다. 영화 속 여인의 투쟁엔 불온한 의도가 전혀 없었
[에디토리얼] 경찰총수의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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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 충동…. 그렇다. 갑자기 효자가 돼야겠다는 억누르기 힘든 강력한 충동이 밀려왔다. 그래, 이제부턴 어머니에게 하루에 한번씩 안부전화를 해야지! 용돈도 더 드려야지!! 고향집에도 자주 내려가야지!!!
불행히도,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는 동안에만 잠시 그랬다. 소설 속의 어머니가 가슴아파서였을 거다. 한없이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지만, 늘 그렇듯 자식들의 공동 무관심 속에 방치된 외로운 어머니. 문맹인데다 치매까지 겹쳐 서울로 올라오다 길을 잃고 실종된 어머니. 그 어머니를 향한 애잔한 감정이 현실 속의 어머니에게 이입된 것이다. 하지만 소설이 200여쪽에 이를 무렵, 그만 책을 덮고 말았다. 큰딸과 큰아들에 이어 아버지의 회상이 절정으로 치닫는 대목부터였다. 어머니가 가족들 모르게 소망원에 돈을 보내고 봉사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신파의 낌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마더 테레사 같은 성녀란 말이더냐? .
대신, 집에 있는 다른 책을
[에디토리얼] 효도 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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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이냐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막장이라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가끔 이 말이 하고 싶었다. “MB 욕 좀 그만하자.”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면, 이게 막장이라면, 그 책임은 오로지 MB에게 있지만 말이다.
2007년 봄에 발표된 소설가 백영옥의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단편이 있다. 소설 속에서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변비에 고생하는 아빠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고 하고, 쉰아홉살 아빠의 흡연결심과 가출을 접한 엄마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고 하고, 부동산 사기분양에 로또 당첨금을 날린 삼촌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고 한다. 실제로 불과 1년 전만 해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은 MB다. 펀드가 박살나고, 남북관계가 파탄나고, 아이들이 더 극심한 사교육판에 내몰리고,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선생님들이 잘리고, 언론악법이 현실화되고, 국회가 난장판이 되고, 종이잡지의 위기는 더 심화되고, 우리집 아이는 갈수록 말도 안 듣고 공
[에디토리얼] MB를 욕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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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밍’은 참 어렵다.
무엇인가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까다롭고 머리 아프다. 지면개편 때 섹션이나 칼럼의 문패를 다는 일도 마찬가지다. 벼락처럼 어느 순간에 그럴싸한 이름이 머리를 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수십번씩 바꿔보아도 마음에 딱 와닿는 게 없어 애를 태울 때가 많다. 이번에도 그랬다. C-ground와 R-point 같은 경우는 단박에 지어졌다. 한데 몇몇 코너의 이름은 마지막까지 쉽게 떠오르지 않아 고생을 했다. 처음엔 기자들을 상대로 공모를 했다. 여의치 않자, 나중엔 편집팀 기자들을 자료실에 감금(!)했다. 마땅한 대안이 나오기 전엔 절대 못 나간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며 아이디어를 강요했다. 나름 효과적이었다고나 할까. ^^
그렇다. 이번호부터 지면을 개편한다. 새롭게 단장한 지면을 떨리는 마음으로 선보인다, 라고 할 것까진 없다. 경천동지할 뭔가가 있지는 않다. 그냥 조금 바뀐다. 사실 개편도 하기 전에 일부 독자의 반발을 샀다. 지난주 이 칼럼에서 알려
[에디토리얼] 마성의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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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경력이 20년 가까이 됩니다만, 내비게이션이 생긴 건 최근의 일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승용차는 물론이고 택시까지 10대 중 7~8대 꼴로 내비게이션이 달린 것 같습니다. 저는 그동안 그 물건이 없어도 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길을 모르면 표지판과 지도를 보지 뭐 하는 턱없는 오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옛 후배들에게 내비게이션을 선물받았습니다. “공짜로 생겼으니 달아는 보자”는 심상한 태도로 차 안에 부착하고 작동을 시켰습니다. 한데 만족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촌스럽지만, 이렇게 좋은 걸 왜 지금에서야 알았나 하는 심정입니다.
내비게이션의 편리함을 느끼면서 가끔 상상합니다. 일과 삶에서도 이런 길잡이가 생긴다면!! “300m 앞에서 좌회전”, “고가도로 밑에서 우회전”, “전방에 연속으로 과속방지턱” 같은 GPS 길 안내가, 인생 또는 업무에 대한 훈수와 지침 하달로 코드전환된다면 듬직할 것 같습니다. 가령 <씨네21>에서 가장 오래된
[편집장이 독자에게] 진지하고 웃기는 내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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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없이 보면 좋을까요?
한달 전 <1724 기방난동사건> 시사회장에서였습니다. 여균동 감독은 무대 인사자리에서 ‘생각없이’라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만들었다. 생각없이 즐겨달라”고 말입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도 “생각없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한데 영화가 시작되니, 저의 반응은 역설적이었습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돼 골치가 아팠던 겁니다. 조선시대 주먹들의 아이들 장난 같은 싸움을 보면서 속으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이게 뭥미? 도대체 뭥미?’ 황당하게 전개되는 장면들을 소화하느라 머리가 핑핑 돌았습니다. 이런 경우에 ‘의미 강박증’ 탓으로 치부해야 할까요?
거기에 비해 <과속스캔들>은 상대적으로 편안했습니다. 설정이야 다소 억지스럽지만 ‘과속삼대’의 좌충우돌은 그야말로 ‘생각을 놓고’ 보기에 딱이었습니다. 잘 짜여진 유쾌한 코미디영화였다는 세간의 평가에 동의합니다. 두 시간이 휙휙 지나갔습
[편집장이 독자에게] 툭 치고 가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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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고치기 힘듭니다.
제가 아는 한 대선배는 이야기의 단락이 끝날 때마다 꼭 이런 말을 뒤에 붙입니다. “어 정말! 정말로!” 누가 거짓말이라 의심하지도 않는데, 반드시 강조의 추임새를 스스로 넣어야 직성이 풀리나 봅니다. 한 시간 이야기하면 ‘어 정말로!’가 정말 열번 정도 나옵니다. 10년 전에 그랬는데, 여전히 변함이 없으시더군요. 17년 전에 다녔던 옛 직장의 상사는 직원회의 시간에 열변을 토할 때마다 ‘소위’를 남발했습니다. 중요한 단어만 나오면 그 앞에 강렬한 악센트를 주며 ‘소위’(소위 계급 말고 ‘이른바’의 한자어)를 찍어누르듯 발음한 뒤 한 박자 쉬곤 했습니다. 20분 열변에 ‘소위’가 20번은 나왔던 것 같습니다. 또 어떤 선배는 회의시간에 문어체로 장황하게 말하는 게 특기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광팬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제 마음이 ‘불구’가 되는 듯 살짝 불편했습니다.
글에도 일정한 버릇이 있습니다. 대학생 시절에 읽은, 지금은 고인이 된
[편집장이 독자에게] 내가 만주에서 개 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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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씨네21> 같습니다.
이번호 표지그림은 <벼랑 위의 포뇨>! 맑고 고운 동심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열장이 넘는 시안을 뽑았습니다, 라고 말할 순 없고요. 딱 와닿는 한장이 무엇인지 헷갈려 최대한 많이 컬러로 출력해보았습니다. 그림을 표지 전체에 가득 채우는 게 좋을지, 여백을 조금이라도 남기는 게 효과적일지부터 판단이 잘 안 섰습니다. 어떤 그림을 선택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너무 익숙한 장면, 중요도가 떨어지는 풍경, 주인공인 포뇨가 도드라지지 않은 그림은 제외하면서 하나하나 후보를 좁혔습니다. 결국 마지막 하나를 골랐습니다.
밑의 그림들은 표지 탈락작(!)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같이 깜찍하고 귀엽습니다. 쳐다보노라면 그저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마감날 기자들은 이 표지후보 그림들을 서로 가져가 책상 위에 붙이겠다며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왁자지껄 작은 소동이 벌어졌지요.
얼마 전 후배기자들과 밥을 먹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시
[편집장이 독자에게] 변덕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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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색다른 독자엽서입니다. “넘넘 재미있어요. 이 잡지는 10년 100년 1000년이 지나도 계속 나와야 해요. 게다가 만화 000은 넘넘 재미있군요. 다른 만화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궁금해요. 10년, 아니 100년, 아니 1000년 지나도 나와주실 거죠?” 삐뚤삐뚤 연필글씨에, 내용은 횡설수설 아부 일색입니다. 주인공은 여덟살난 제 딸아이였습니다. <씨네21>에 부치려던 건 아닙니다. 집에서 정기구독하는 한 어린이만화잡지에 보내려고 적은 엽서였지요. 워낙 그 잡지의 팬이긴 했지만, 독자사은품을 노린 잔머리가 훤히 들여다보였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웃다가 퍼뜩 ‘10년 100년 1000년 뒤에도 나와달라’는 철없는 문장에 꽂혔습니다. 10년, 100년, 1000년이라….
어렸을 적 <소년중앙>이라는 만화잡지에 안달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서점에 나가 최신호를 사다주면 한달 내내 아끼고 아끼면서 읽었습니다. 기대와 설렘 속에 새 잡지를 받
[편집장이 독자에게] 1000년 가는 잡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