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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인상적인 대목 하나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민들을 도인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연탄 수십장을 자전거 뒤에 싣고 가는 연탄가게 아저씨와 엄청 무거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가는 떡집 아줌마가 실은 도를 깨친 사람들이라는 설명은 흐믓한 미소를 머금게 했다. 진지하게 힘준 장면이 아니라 웃고 넘어갈 장면이긴 하지만 가슴에 와닿는 농담이다.
비슷한 감흥을 <생활의 달인>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평택항에서 수출용 자동차를 주차하는 김현복씨. 그는 컨테이너 안에 자동차를 일렬로 집어넣는 일을 한다. 트레일러로 항구까지 운반된 자동차가 도착하면 그는 재빨리 자동차에 올라타 거대한 컨테이너 안으로 질주한다. 순식간에 옆차 간격 10cm, 앞뒤차 간격 30cm를 유지하며 자동차를 주차시키는 김현복씨. 눈을 감고 주차해도 간격을 유지할 정도니까 도가 텄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최근 방영된 국수 포
[편집장이 독자에게] 생활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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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에선 좋은 영화만한 피로회복제가 없다. 하루 몇편씩 영화를 보는 일정을 계속하다보면 상당한 체력이 소진되는데 이럴 때 정말 눈이 번쩍 떠지는 영화 한편이 간절해진다. 맛난 음식이나 포근한 잠자리로 충족시킬 수 없는 갈증, 거창하게 말하면 이런 걸 ‘영혼의 허기’라고 하던가. 이번주 전영객잔에 정성일씨가 “진짜 재미는 그 영화들을 보기 위해 시간표를 짜는 순간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고 쓴 것도 영혼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시간표에서 이미 결정나기 때문일 것이다. 각설하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 영혼의 굶주림을 채워준 영화는 <쓰리 타임즈> <부운> <연연풍진> <용서받지 못한 자> <망종>이었다. 이중 ‘발견’에 해당하는 영화만 꼽자면 <망종>과 <용서받지 못한 자>이다.
<망종>이 어떤 영화인지는 이번주 특집기사에 실려 있다. 이영진 기자는 <망종>에 대해
[편집장이 독자에게] <망종>과 <용서받지 못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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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의 막이 올랐다. 해가 거듭할수록 표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이 영화제는 올해 열돌을 맞아 더 분주해진 인상이다. 영화제 관계자들이야 매년 이맘때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으니 특별히 더 정신없어 보이진 않지만 여기저기 토목공사가 진행 중인 해운대 주위 풍광은 예년과 확실히 달라 보인다. 버스를 타고 광안대교를 건너 해운대로 향하면서 영화제 초창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진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부산이라는 도시 전체가 부산영화제 못지않게 성장하고 있는 느낌이었다(부산영화제 개막 5일 전부터 개막일까지 분위기를 담은 이번주 기획기사를 보시면 쉽게 실감하시리라). APEC 정상회의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라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이런 변화의 바탕엔 영화제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영화제 덕에 부산이라는 도시를 알게 된 외국인이 얼마나 많을지, 부산과 친해진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보면 능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씨네21>도 지난 4월
[편집장이 독자에게] 제10회 부산영화제에 축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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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야구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열혈팬을 주인공으로 삼은 로맨틱코미디 <날 미치게 하는 남자>를 보다가 재미있는 표현 하나가 귀에 들어왔다. ‘윈터 가이, 서머 가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벤은 야구시즌이 아닌 겨울에 한없이 다정하고 친절한 남자인데 야구시즌이 달아오르는 여름만 되면 야구에 미쳐 정신을 못 차린다. 벤의 애인은 그에게 윈터 가이는 오케이지만, 서머 가이는 감당 못하겠다고 말한다. 야구장에 가야 하기 때문에 주말에 파리로 여행가자는 애인의 제안을 마다하는 남자를 어느 여자가 좋아할까. 영화는 끝내 해피엔딩을 이끌어내지만 현실도 그럴지는 의심스럽다. 아마 이 해피엔딩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처럼 86년 만에 찾아오는 기적일지도 모른다.
애인 입장이라면 윈터 가이가 더 좋은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윈터 가이보다 서머 가이에 끌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아낌없이 모든 걸 바치는 열정, 차라리 광기라고 불러야 할 그
[편집장이 독자에게] 서머 가이, 홍명보, 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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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선 흔히 전국 관객 500만명을 넘는 영화는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1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런 영화에는 집단무의식을 자극하는 제의적 성격이 있다는 얘긴데 거꾸로 흥행영화를 통해 그 시대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소설가 김영하씨는 <랄랄라 하우스>라는 책에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예에 관해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등골이 휘게 일했지만 IMF 이후 어느 날 갑자기 쓸모없다며 회사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억울함이 김일성의 목을 따기 위해 죽을 고생을 했는데 무장공비로 몰려 죽은 실미도 부대원의 심정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평생을 자식 성공만 바라보며 살았는데 자식에게 “내가 언제 그래달랬냐”는 볼멘소리를 듣는 부모의 마음이 <태극기 휘날리며>에 감정이입하게 만든 힘이라고 말한다. 이들 영
[편집장이 독자에게] <웰컴 투 동막골>의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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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비글로의 <블루 스틸>을 처음 봤을 때 참 신선했던 기억이 있다. 적어도 여성문제에 관한 한 우리보다 100년쯤은 앞선 미국이고, 할리우드영화들은 ‘지 아이 제인’ 같은 여성투사들을 제법 배출해왔으며, 현대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한 <터닝 포인트> 같은 걸작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지만, <블루 스틸>은 새삼 “아, 이래서 남자가 만드는 여성영화와 여자가 만드는 여성영화는 다른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주인공 여성에게 경찰관이라는 권력적 지위를 부여한 것도 그렇고, 알코올 중독 아버지에 의한 가정 내 폭력과 사이코에 의한 사회적 폭력을 거기에 상응하는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도 그랬다. 가령 <밴디트 퀸>과 <엘리자베스>를 만든 인도 출신 세카르 카푸르 감독 정도면 페미니즘 영화비평의 연구주제가 될 만도 하지만, 정작 나는 두 작품이 모두 불쾌했다. <엘리자베스>는 충동적이고 의존적인 저것이 여제의 퍼스낼리
[편집장이 독자에게] 페미니즘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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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한해를 '한국영화 폭발'이라는 말로 정리하면서, 영화산업이 쏘아올린 요란한 축포 뒤에 묻힌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한다. 올해는 인문학의 위기, 문학의 위기 등 유난히 많은 위기설이 회자됐는데, 영화가, 그리고 약간은 <씨네21>도 그 책임을 나누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다. 대학에서 학생들이 ‘돈되는’ 학과나 ‘재미있는’ 학과로 몰리면서 그런 현실에 맞게 학제를 새로 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형편에서 염무웅 선생이 어느 일간지에 쓴 글 한 대목은 가슴을 찌르는 바 있었다. “동네마다 노래방과 비디오가게가 들어찬 오늘날 대학마저 수요자 중심으로 변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학의 자기부정이다. 대학은 좀더 영속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에 봉사하는 것이고 인문학이 바로 그런 노력이다.” 70∼80년대에 김용옥 선생이 노자를 공부한다 할 때 ‘파시즘을 돕는 현실도피의 학문’이라고 질시 당했다지만, 요즘 같은 물신주의와 실용주의의 시대에는 철학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 인문학에 관심을
[편집장이 독자에게] 지식인으로서의 영화감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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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미래의 관객에겐 <링>이 하나도 안 무서운 영화가 될지 모른다. 집집마다 비디오데크가 있어서 비디오 빌려보는 일이 일상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면 말이다. <링>의 공포가 강력했던 이유는 저주의 비디오테이프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전염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비디오로 보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 온다면 <링>의 귀신은 얼마나 억울할까? 기술발전에 뒤떨어진 원귀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른 자신을 업그레이드해서 인터넷 환경에 적응하는 길뿐이리라.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는 비디오테이프가 죽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VHS 대여총액은 2003년 들어 DVD에 추월당했고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무게중심도 VHS에서 DVD로 옮겨갔다. 사태의 단면을 보여주는 예는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가 DVD로만 출시된다는 보도다. 아예 비디오 출시를 하지 않는 영화가 생긴다면 VHS의 생산과 소
[편집장이 독자에게] 비디오 시대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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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9월을 맞고 있다, 라고 쓰면 잘난 척하는 말로 들리려나. 그래도 사실이니 양해해주시길. 8월 마지막 주를 맞아 뒤늦은 여름휴가를 떠났다. 6년 전 배낭여행으로 유럽을 돌아다닌 뒤로 처음 유럽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결심한 터라 조금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막상 피렌체의 어느 호텔방에서 하루 휴가를 이 글을 쓰는 데 소비하고 있는 게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휴가지로 피렌체를 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전세계 미술품의 5분의 1이 이곳에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이건 셰익스피어랑 인도를 바꾸지 않겠다고 했던 어떤 서구인의 오만과 비슷한 과장법인데 그래도 이렇게 말할 정도면 뭔가 있긴 있나보다 싶은 호기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물론 르네상스 미술이 여기서 싹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볼 만한 이유는 충분해 보였다. 실제로 가까이서 본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일종의 미술품 같다. 두오모나 궁전이나 박물관처럼 유명한 건물뿐 아니라
[편집장이 독자에게] 피렌체에서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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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내가 신문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대학교수인 한 어른은 “앞으로 10년 안에 신문이 없어지고 방송만 남을 텐데 왜 신문사에 들어가려느냐”고 했다. 기자가 된 뒤엔 한때 “전자신문이 등장하면 장차 종이신문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므로 실직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90년대 들어 PC가 대중보급되고 모든 직장이 곧 재택근무체제로 이행할 것처럼 이야기할 때, 출퇴근을 즐기는 편인 나는 벌써부터 서운해졌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여러 차례의 기술혁명들이 가로지르고 기술진보가 교과서에서 배워 익힐 수 있는 수준을 훌쩍 추월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엔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큰 만큼 성급하고 과격한 예언들이 남발하고 또 금세 부인되곤 한다. ‘공식적으로’ 틀린 예언들은 이것들만이 아니다. 20세기 안에 석유자원이 고갈되리라는 예고도 틀렸고, 공황에 의한 자본주의 자멸설도 어긋났다. 컴퓨터 한대가 커다란 학교 교실만했던 1940년대엔 어느 누구도 그 교
[편집장이 독자에게] 즐거운 밀레니엄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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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남기남입니다. 여기 근처에 있는데 얼른 나오쇼.” 저녁에 일을 하다 전화 한통을 받았다. 남기남 감독이었다. 최근 <바리바리 짱>을 개봉시킨, <영구와 땡칠이>의 전설적 흥행감독, 6일 만에 영화 1편을 찍었다는, 바로 그분이다. 한겨레신문사 근처 어느 주꾸미집에 있으니 빨리 나오라는 말에 다른 약속이 있었지만 잠깐 얼굴이라도 뵙자는 생각이 들었다.
6∼7년 전쯤이다. 남기남 감독에 관한 특집기사를 준비하면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같은 성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오랜 친분을 나눈 사이처럼 대했다. 취재를 위해 만난 첫날, 한낮에 만나 저녁 무렵 술에 취해 사무실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너무 마셔서 인터뷰는 내일 다시 하시죠.” 그렇게 첫 만남은 아무 소득없이 끝났고 나는 다음날 비로소 남기남 감독의 전설적 빨리찍기 비법을 들을 수 있었다. 그뒤로 몇년간 그를 잊고 지냈다. 그때 난 지금은 남기남 감독이 다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환경이
[편집장이 독자에게] 남기남과 주꾸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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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가장 무섭고 긴장되냐고 묻는다면 나는 처음 가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맡길 때라고 대답할 것 같다. 단골 미용실을 정한 뒤로는 자리에 앉으면 알아서 깎아주는 상황이 됐지만 단골 미용실을 찾기까지 꽤 많은 식은땀을 흘렸다. “어떻게 깎아드릴까요?”라는 질문에 할 수 있는 대답이 “음, 좀 짧게” 아니면 “잘” 혹은 “예쁘게” 같은 도합 4∼5가지도 안 되는 말밖에 없으니 가위를 든 자에게 목숨이라도 맡긴 기분이 든다. 그럴 땐 그저 속으로 ‘인샬라’(신의 뜻대로)라고 되뇌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런 일을 겪다보면 자기가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아주 구체적으로 정확히 설명하는 여자들(혹은 남자들)을 볼 때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난다. 헤어스타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옷이나 액세서리를 고를 때 반짝반짝 빛나는 여인들의 눈은 수십 가지 화장품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 그들의 두뇌처럼 영민하고 치밀하다.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의 그런 노력을 할일없는 자들의 소일거리라고 무시하지만 과연 그
[편집장이 독자에게] 예쁜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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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테이크는 널리 알려진 촬영기법 가운데 하나다. 오랜 시간 컷을 나누지 않고 찍는 이 기법은 지루한 예술영화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오해가 무조건 부당한 것은 아니다. 의미없는 롱테이크만큼 효과만점인 자장가도 드물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롱테이크는 가장 단순한 촬영기법이다. 널리 아다시피 뤼미에르가 만든 최초의 영화는 롱테이크로 찍은 것이다. 컷을 잘게 나누고 편집을 하는 것은 좀더 나중에 개발됐다. 초기 영화의 발달사는 지금 현재 어떤 개인이 영화를 배운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롱테이크는 편집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 자연스런 선택이다. 그러던 롱테이크가 대가들의 전유물이 된 것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기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거장들의 영화에서 롱테이크는 시간과 감정의 결정체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롱테이크는 지루하다는 말을 믿을 필요는 전혀 없다. 예를 들어 <살인의 추억> 도입부에 롱테이크로 촬영한 장면. 넓은 들에서 시체가
[편집장이 독자에게] 어떤 롱테이크, 정성일과 박찬욱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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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앞에는 굉장히 커다란 비디오대여점이 있다. 이번에 <씨네21>에서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를 하면서 일정한 실사기준에 의해 채점한 성적표에 따르면 바로 이 대여점이 4등이다. 좋은 비디오대여점을 가까이 두고 있는 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얼마만한 행운인지는, 이 곳에 이사온지 얼마 안돼 곧 알게됐다. 예전에 나의 비디오대여점 출입은 대체로 개봉관에서 빠뜨린 신작들을 건지자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비디오 3만편을 소장하고 있는 이 대여점을 드나들면서 목적이 다양해졌다. 개봉관에서 빠뜨린 신작영화 줍기,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연보를 체크해가며 한편씩 봐치우기, 신작 위주의 개봉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고전들 찾아 보기. 영상자료원이나 사설 시네마테크를 찾아다닐 시간 여유가 없는 나는 ‘내 인생의 영화’들 상당수를 이 비디오숍에서 빌려보았다. 물론, 70년대 이전 한국영화나 세계영화사의 고전 리스트가 몹시 빈약한 한국 비디오산업의 얄팍함을 일선의 비디오숍들이 결코
[편집장이 독자에게] 비디오숍 콘테스트를 진행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