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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은 힘이 세다. 여자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남자들은 대체로 20대가 넘어서야 의상의 힘을 깨닫는다. 언제? 대체로 예비군 훈련 받으러 갈 때다. 군복만 입으면 평소 의젓하던 남자들도 수컷 냄새를 흘린다. 남자들만 있던 중·고등학교처럼 욕설과 음담패설이 거리낌없이 흘러나온다. 평소 욕이랑 안 친하던 나도 “새끼”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와 스스로 대견(?)한 적이 있다. 군복을 벗고 다닐 때는 아무 느낌도 없던 신경세포들도 군복 안에선 예민해진다. 평소에 봤으면 그냥 지나쳤을 여성의 노출에 일제히 눈길이 쏠리고 휘파람이 흘러나온다. 군복만 입으면 짤짤이(동전치기)를 하고 싶은 것도 기이한 현상이다. 게다가 배는 왜 그리 일찍 고파지고 단것은 왜 그리 먹고 싶어지는지. 예비군 훈련장에서 제시간에 밥을 안 준다면 분명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신기한 것은 군복만 벗으면 그런 궁기나 허세, 음흉함과 난폭함이 맥을 못 춘다는 사실이다. 옷에 주술적 힘이 있다는 걸 그런
[편집장이 독자에게] 옷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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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CJ CGV가 발표한 5월 통계에 따르면 한국영화 점유율이 33.9%라고 한다. 올해 1월 77.6%까지 치솟았던 수치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1월엔 <왕의 남자>가 관객몰이를 했고 5월엔 <미션 임파서블3>과 <다빈치 코드>가 휩쓸었으니 이런 점유율이 나오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래도 극장업계엔 희소식인 것이 할리우드영화 두편 덕에 올해 5월 관객 수가 여름 성수기인 지난해 7월의 관객 수보다 많다는 점이다. 여름 성수기가 일찍 시작된 탓이지만 이런 추세가 6, 7월로 넘어간다고 꺾일 것 같진 않다. <포세이돈>이 개봉일 관객동원 신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걸 보면 올 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위력은 굉장하다는 느낌이 든다.
연이어 개봉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극장가를 잠식하는 가운데 7월1일부터 스크린쿼터도 축소된다. 일부에선 당장의 한국영화 점유율을 들어 쿼터 축소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지금 상
[편집장이 독자에게] 대박 아니면 쪽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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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마지막 상영작은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이었다. <아들의 방> <피아니스트> <멀홀랜드 드라이브>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등이 상을 나눠가진 그해 영화제에서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은 거장에 대한 예우 차원의 초청처럼 보였다. <나라야마 부시코>와 <우나기>로 두번씩이나 황금종려상을 받은 노장이 유작이 될지 모르는 작품을 내놓았으니 초청작 명단에 포함시키는 게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따라서 영화를 보는 입장도 아주 편안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였으면 했는데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은 정말 그랬다. 칸영화제처럼 낯선 작가영화가 우루루 쏟아지는 곳에서 부담없이 울고 웃을 수 있는 영화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뻔뻔하게 야한 할아버지, 좋아 좋아.”
그해 칸영화제에 이마무라
[편집장이 독자에게] 나라야마에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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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인이라는 말을 언제부터 쓰게 됐을까. 기억이 맞다면 <다모>가 시초이겠으나 <다모> 이전에도 폐인은 많았다. 고백하자면 나도 폐인이었다. 이주일, 심형래, 최양락, 이창훈 등 당대를 주름잡던 코미디언들이 10대 시절 나의 우상이었다. 그들의 몸동작을 흉내내고 유행어를 따라하면 친구가 생겼고 대화가 통했다. 커서 뭐 되려고 하며 쯔쯧 혀를 차는 어른들 때문에 정말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나 싶었지만, 보고 있으면 웃긴데 어떻게 참고 안 보나. 그래서인지 코미디가 애들을 버린다는 말을 들으면 뜨끔하다. 내가 그들의 주장을 입증하는 사례일까. 그럼 영구 흉내를 잘 냈던 종팔이는, 맹구를 따라했던 삼득이는? 걔들도 다 인생 종쳤나. 잘만 사는 것 같던데. 코미디가 애들을 버린다는 말은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라고 쓴 원시 동굴 벽화의 글귀 같은 게 아닐까. 코미디를 예로 들었지만 실은 TV라는 것 자체가 늘 욕을 먹었던 대상이다. 오죽하면 TV를 끄자, 는 운동이
[편집장이 독자에게] 폐인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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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둥근 지붕이 열리면 로봇 태권V가 나온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태권V를 숨겨놓은 게 아니라면 저렇게 넓은 곳에 돔 형태의 저런 건물을 지을 리가 없잖아.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고 모두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였다. 이소룡이 살아 있다는 소문도 꽤 그럴싸하게 들렸다. 무술고수 수십명과 싸움을 하다 여러 군데 칼에 찔렸지만 적들을 모두 해치우고 마침내 속세를 떠나 은둔생활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불사신이었던 이소룡을 본 아이들은 이번에도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돌아보면 어처구니없지만 동심은 그런 음모론에 이끌렸다. 세상을 잘 몰랐을 때 할 수 있는 상상이었다.
그에 비해 오늘날 음모론은 대단히 정교하고 파괴력도 높다. 이런 계통의 기념비로 꼽힐 만한 <X파일>은 세련된 음모론 덕분에 미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이라는 책에서 저자 데이비드 사우스웰은 이렇게
[편집장이 독자에게] 즐거운 음모론, 슬픈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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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가루 집안이라는 표현이 있다. 뭉쳐지지 않는 콩가루의 성질에 빗대 엉망진창인 가족을 일컫는 말이다. 콩가루가 무슨 죄가 있겠냐마는 콩가루 집안이라는 말은 썩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다. 언뜻 콩가루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을 떠올려보면 대체로 가족이나 친척의 장례식장이다. 술기운에 힘입어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면 분위기가 격앙되어 주먹다짐까지 한달음이다.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표현. “쯧쯧, 콩가루구먼, 콩가루.” 그런데 문제는 알고 보면 다 콩가루, 라는 사실이다. 나만 그런지 모르지만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화목한 가족은 아파트 CF에서나 만날 뿐 실제로 접하긴 무척 힘들다. 있다 해도 가족사를 조금 깊이 파고들면 어딘가 말썽거리를 안고 있다. 그래서 과거 콩가루 집안이 비정상적 가족이라는 의미였다면 이젠 오히려 정상적인 가족을 뜻하는 말처럼 들린다. 하긴 핵가족이란 말 자체가 콩가루하고 비슷하게 들리지 않는가.
문제는 콩가루가 현실인데도 우리의 관념은 그
[편집장이 독자에게] 祝 가족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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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공식일간지를 발행하기 위해 몇몇 기자들과 함께 전주에 내려갔다. 출범 초기, 프로그램팀이 해임되는 말썽을 빚기도 했던 전주영화제는 올해로 7회를 맞으면서 그에 걸맞은 안정감을 갖춰가고 있다. 영화제 홍보팀장에 따르면 객석점유율은 지난해보다 떨어질지 모르지만 전체관객 수는 지난해보다 늘었다고 한다. 영화제 기간 내내 일간지를 만든 기자들도 전체적인 시스템이 조화롭게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피력했다. 스타가 많이 오거나 영화 비즈니스맨들이 북적거리는 영화제는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영화제라고 할 만하다. 무엇보다 올해 영화제의 프로그램은 칭찬받을 만했다. 인도의 거장 리트윅 가탁의 회고전과 과거 소비에트 연방의 금지된 영화들을 선보인 특별전은 그중 백미였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리트윅 가탁의 <강>이었다. <강>은 시인의 재능을 지닌 감독이 만든 사회비판 리얼리즘의 걸작이다. 영화는 가난과 정치적 박해에 시달리는 피난민 거
[편집장이 독자에게] 전주국제영화제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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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 따르면 사진은 결정적 순간을 담는 예술이다. 그가 말하는 결정적 순간은 무엇인가? “한순간에 사건의 의미와, 사건이 비로소 표현력을 얻게 되는 사건의 형식적인 구조를 동시에 얻는 순간을 의미한다”고 <클라시커50 사진가>는 적고 있다. 말이 좀 어려우나 브레송의 사진을 본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바라본 세상이 어떤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순간, 셔터를 눌렀다. 스스로는 사진을 찍기 전이나 후에만 생각을 하고 사진 찍는 순간엔 무념무상이었다고 하지만 아마 그의 사진 대부분은 셔터를 누르기까지 많이 기다리고 관찰하고 사색한 결과물일 것이다. 그렇다고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이 무조건 기다리면 좋은 사진이 나온다는 식으로 이해돼선 안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남과 다르지 않다면 결정적 순간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브레송의 사진 가운데 카페에 앉아 있는 마릴린 먼로를 찍은 사진과 미국의 야구장을 찍은
[편집장이 독자에게] 결정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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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창간 때마다 실시하는 충무로 파워 50 설문조사 결과, 올해 1위는 싸이더스FNH의 차승재 대표가 선정됐다. 8년간 1위였던 강우석 감독이 2위로 물러난 것이 지난해의 화제였다면 올해는 차승재 대표가 1위라는 사실 자체가 이목을 끈다. 지금 영화계의 가장 큰 돈줄인 CJ와 쇼박스를 대신해 차승재, 강우석 두 사람이 1, 2위를 차지한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부정적으로 보면 대기업에 대한 견제심리이겠으나 긍정적 의미를 부각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영화계가 자본의 힘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대등한 관계를 맺고 있는 증거로 말이다. 부동의 1위를 고수하던 무렵 강우석 감독은 파워 1위로 선정됐다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내가 하든 누가 하든 영화인이 1위를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투자자와 영화인을 적대적으로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그의 말에 공감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나는 영화인, 이라는 자존심이 아니었다면 한국영화는 지금보다 훨씬 보잘것없
[편집장이 독자에게] 모두 건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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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번 신상옥 감독에게 말을 걸 기회가 있었다. 1997년 처음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때였다. 당시 그는 미국에서 영화제작을 하고 있었고 <갈가메스>라는 어린이용 괴수영화를 들고 부천을 찾았다. 한눈에도 그는 범상치 않아 보였다. 멋쟁이라는 충무로의 소문대로 오랜 트레이드 마크인 선글라스와 스카프가 눈길을 끌었고 함경도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는 일흔 넘은 노인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생기를 담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옆에는 고등학교 시절 유일하게 내 마음을 움직였던 한국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배우 최은희가 앉아 있었다. 버벅거리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의 앞에서 나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는 것 같았다. 한국영화의 전설이 눈앞에 있는데 물어볼 것은 이번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은 소감은, 따위의 시시껄렁한 질문밖에 없었던 탓이다. 신상옥 감독의 작품 가운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외에 본 영화도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기자를 하면 숱하게 경험하는
[편집장이 독자에게] 신상옥, 위대한 꿈과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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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예술영화전용관 100개를 짓겠다.”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결정을 한 다음날 문화관광부 장관이 밝힌 영화진흥책 가운데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대한민국을 예술영화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이 놀라운 발표는 그러나 일고의 가치도 없는 웃음거리가 됐다. 영화계에 몸담은 사람들 모두가 이것이 현실성 0%의 제안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발상의 전제에는 공장을 만들면 생산이 는다는 제조업 중심의 마인드가 있다. 과연 영화도 극장만 있으면 관객이 생기는 것일까? 지금 예술영화전용관의 실태가 어떤지 보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선정한 극장은 전국 12곳이다. 한번 가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이들 극장은 흥행작에 집중하는 극장에 비해 훨씬 한산하다. 흑자는커녕 적자를 면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12개라도 이런데 100개로 늘리면 어떻게 될까? 기초적인 경제학만 알아도 공급과잉으로 인해 파리 날리는 극장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답이 나온다. 전체 관객 수가 좀 늘
[편집장이 독자에게] <넥스트 플러스>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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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도 만들어진 오가와 요코의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주인공은 10살난 아들을 둔 미혼모 파출부다. 소설은 그녀가 교통사고로 기억이 80분만 지속되는 노년의 수학자를 보살피면서 교감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인상적인 대목은 일상의 피곤한 노동에 찌들어 있던 여자가 수학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약수, 소수, 우애수 등 숫자에 숨어 있는 비밀을 알아가면서 그녀는 전에 몰랐던 삶의 환희를 느낀다. 설거지와 청소와 얄팍한 월급봉투와 집주인의 잔소리로 이뤄졌던 생활에 수학은 봄의 왈츠처럼 울려 퍼진다. 수학공식이 절묘한 화음이 되어 메말랐던 영혼을 적시는 단비가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일요일 저녁마다 <도전! 골든벨>을 보신다. 50문제 가운데 한두 문제도 못 푸실 텐데 언제나 <도전! 골든벨>을 보는 어머니가 늘 신기했다.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도전! 골든벨>은 어머니에게 일상이
[편집장이 독자에게] 순수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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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간 야구 때문에 울고 웃었다. 4년 전 월드컵 이후로 이처럼 순간순간 마음을 졸이긴 처음이다. 미국전 승리 이후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서 야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 번째 한일전까지 이겨버리자 한국 선수들이 <공포의 외인구단> 주인공처럼 보였다. 미국과 일본에서 설움받던 선수들이 울분과 분노를 삼진과 홈런과 안타로 설욕하고 있었다. 이쯤되면 누군가 이봐, 이건 야구만화가 아니라고, 라고 한마디 해줘야 할 것 같다. 물론 극적이던 연승행진은 아쉬움을 남기며 끝났다. 불합리한 대회규정이니 뭐니 말이 많지만 김인식 감독의 말대로 “진 것은 진 것이다”. 야구 같은 확률의 스포츠에서 6승1패면 충분히 흥분할 만한 기적이다.
야구팀의 선전 덕에 2006년 월드컵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질 것 같다. 야구도 세계 4강에 들었는데 축구가 16강에 오르지 못하면 그 국민적 허탈감은 ‘줄기세포 없다’처럼 심리적 공황 상태를 낳을지도 모른다. 이런 걱정을 하는 이
[편집장이 독자에게] 월드컵 마케팅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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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망종>을 보고 난 뒤 이 지면을 통해 “장률은 기억해야 할 이름”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만큼 충격을 받은 영화였고 언젠가 개봉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 기뻤고 한편으로 걱정이 됐다. 특집기사로 다루기엔 너무 덜 알려진 감독이고 폭넓은 관객층을 끌어모을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흥미만 좇아가기로 마음먹는다면 이번 특집은 터무니없을 것이다. 지아장커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과 달리 장률은 아직 서구 영화계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특집기사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영화잡지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영화란 무엇인가, 를 묻게 만드는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장률의 영화를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한다. <망종>을 본다면 당신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영화엔 우
[편집장이 독자에게] 장률과 하네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