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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태양이 이글거리지만 힘이 예전보다 떨어진 듯해 여름의 마지막 발악 같다. 아직 낮에는 무덥지만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습도도 차츰 낮아지고 있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햇살을 받고 있어도 짜증이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다(요즘 버스의 에어컨이 워낙 좋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도리없는 자연의 섭리를 실감하는 요즘, 출근길에 자주 듣는 노래는 ‘생각의 여름’(박종현이라는 뮤지션의 원맨밴드)이 부른 <다섯 여름이 지나고>다. 심플한 기타 반주와 어딘가 서늘한 목소리는 청량한 바람을, ‘다섯 여름이 지나고 나는 어디 있을까… 푸르러질까 붉어질까 짙어질까 창백해질까’라며 스스로에게 묻는 가사는 쓸쓸한 바람을 가슴에 불어넣어주는데, 지금 하나의 여름이 지나고 있네,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출근길 음악메뉴 중에 인디 뮤지션의 음악이 많은 편이다. 우쿨렐레 피크닉, 옥상달빛, 국카스텐, 시와, 한희정, 조정치, 디어 클라우드 등등. 그렇다고
[에디토리얼] 독립 영화·인디 음악, 맞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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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를 보았다. 마감 중임에도 무리까지 해가며 시사회를 찾았던 건 거대한 물음표 때문이었다. 그 물음표는 여러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두번씩이나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릴 만큼 표현이 강하다는데 대체 어떻기에, 라는 궁금증 말이다. 결론적으로 표현 수위는 무척 세다. 그렇다고 두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뭐, 몇몇 장면에서는 눈을 가리긴 했지만). 이전 버전을 보지 못해 속단할 수는 없지만 시신을 바구니에 던지는 장면이나 인육을 먹고 개에게 주는 장면 등이 덧붙여져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히 훼손시킨다”는 느낌을 받진 않았을 것 같다. 이미 <아저씨> 시사회 직후 “<악마를 보았다>가 <아저씨>보다 100배 세다”는 말을 들었고, 영화 안에서도 이병헌이 ‘약혼녀가 당한 이상으로 복수하겠다’는 대사를 반복적으로 하는 터라 마음의 준비는 충분히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제
[에디토리얼] 악마 같은 세상, 악마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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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관심도 지식도 없던 시절, 내게 임권택이란 이름은 그저 ‘흥행감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개봉했던 <길소뜸> <티켓> <씨받이> <장군의 아들> 등은 대단한 흥행작이었기 때문이다(한국영화 사상 첫 100만 관객을 동원한 <서편제>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임권택 감독에게서 흥행 이상의 관심을 갖게 된 것은 TV에서 <짝코>를 본 뒤부터다. ‘반공영화’라는 딱지가 붙어 있음에도 당시(이 영화는 1980년작이다)의 살벌한 시대적 공기를 확고하게 거스르는 이 영화를 보면서 소름이 확 돋았다. 빨치산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짝코>는 엄청난 파격이요 대단한 용기였다. 그 뒤 <깃발없는 기수> <만다라> <안개마을> <연산일기> 같은 비디오 출시작을 보면서, 그리고 <춘향뎐> <취화선> <천
[에디토리얼] 임권택이라는 이름의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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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를 굉장히 좋아한다. 남녀 두 보컬의 음색도 사랑스럽고 (불행히도 여성 보컬 계피가 탈퇴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만) 나긋나긋한 멜로디도 정겹지만 무엇보다 덤덤하고 솔직하면서 쿨한 느낌의 가사가 마음에 든다. 이들의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인디음악을 오래 응원해온 사람으로서 뭔가를 ‘발견’했다는 나름의 성취감도 있었다. 그러나 놀란 건 이들이 이미 꽤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의 주된 팬은 (내가 보기엔) 대체로 7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이들로 감수성이 나름 예민하고 문화적 수용의 폭이 큰 부류들로 보인다. 따지고 보면 브로콜리 너마저는 이들 세대의 밴드다. 비슷한 사회적 경험을 겪었고 그 속에서 비슷한 정서를 쌓아온 그들은 그러니까 세대적 동지인 셈이다. 결국 내가 브로콜리 너마저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그들 세대의 감수성을 갖고 싶다는 희망사항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도 이것과 비슷하다. ‘87 체제’의
[에디토리얼] 무라카미 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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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와 장이모는 2006년 4월 중국의 한 영화채널이 주관한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했다. 서양과 아시아의 대표적인 두 감독이 1시간30분 동안 대화를 나눈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내용 중 하나는 영화와 기술 발전과 관련된 대목이었다. “영화의 역사가 기술 발전의 역사라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스필버그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이어 “영화의 역사는 좋은 스토리텔링의 역사다”라고 힘주어 주장했다. “대신 새로운 기술은 스토리텔링을 쉽게 만들어준다. 나는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수단을 통해 <쥬라기 공원>의 공룡을 만들 수 있었다. 이 기술은 상상 속으로 좀더 깊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 <죠스> <미지와의 조우> < E.T >처럼 획기적인 특수효과가 두드러지는 영화를 통해 스타가 된 그이지만, 만약 스필버그가 기술적 성취에 매몰돼 나태한 이야기를 펼쳤다면 지금처럼 최고의 흥행감독이 될 수
[에디토리얼] 스토리 없인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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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슴푸레할 무렵 충무로에는 자동차가 한대도 다니지 않았다. 텅 빈 거리를 몇몇 동료와 함께 걷는데 갑자기 굉음이 들려왔다. 이런! 하늘에서 대형 헬리콥터가 추락하고 있는 게 아닌가. 쿠쿵! 잠시 뒤 또 다른 헬리콥터가 내 바로 앞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부웅! 아아, 이런 식으로 인생이 끝나는 건 곤란한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뒤편에서 강병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으음, 이게 김혜리 선배가 말했던 꿈이구나.”
월드컵으로 몸이 지쳐 있던 몇주 전의 꿈 이야기다. 이 꿈은 개인적으로 몇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처음으로 꿔보는 HD 화질의 꿈이라는 점. 헬기가 추락하는 장면의 해상도가 어찌나 뛰어났던지 파일럿이 탈출 버튼을 누르려 애쓰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보였다. 꿈속에서 HD 화질 또는 3D 영상 또는 5.1채널 오디오 체험이 가능하냐, 라고 진지하게 질문하신다면 절대 답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의 인식체계 속에서는 분명 HD였다(꿈속 강병진의 “정말 HD네”라는 혼잣말이 큰
[에디토리얼] 지금 꿈을 꾸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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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맘때 나는 영화 현장에 있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제작부 막내라는 지위로 말이다. 주차 관리, 촬영지 및 식당 섭외, 부식 수급처럼 ‘시다바리’에 해당하는 일만 했지만 내 기여도 적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상당수 장면이 연출부 민범이와 헌팅을 다니며 찾아낸 공간에서 촬영됐고, 배우와 스탭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제작부는 무조건 뛰어다녀야 한다”는 근대조국건설산업역군식 조언에 따라 비지땀을 쏟아냈던(촬영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중퇴한 건 부끄러운 기억이다) 6년 전 기억이 문득 떠오른 건 이번주 독자사연 때문이다. <파괴된 사나이>에 연출부 막내로 참여했던 김원석씨의 “영화가 별점 2개를 받았다고 해서 스탭들도 별점 2개는 아니”라는 말은 한때 스탭으로서 느꼈던 나름의 보람을 되새기게 했다.
뻔한 말이지만 영화에서도 중요한 건 사람이다. 스크린 안 스타 배우나 스크린 속 세계
[에디토리얼] 사람이 먼저, 그 다음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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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아쉽게 8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여전히 월드컵 열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나만 그런가 했더니 <씨네21> 식구 대부분이 새벽녘까지 펼쳐지는 승부의 세계에 매료된 눈치다(월드컵이 끝나야 마감도 정상화되려나… 흑).
경기가 거듭되면서 각 팀의 전력과 색깔도 뚜렷해지고 있는데, 직업 탓인지 자연스레 영화 또는 감독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스페인팀은 우디 앨런을 연상케 한다. 짧고 날카로운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아기자기한 플레이를 펼치는 스페인 축구는 톡톡거리는 수다로 이뤄진 앨런의 영화세계와 유사하다. 승부를 끝낼 수 있는 한방이 아쉽다는 점도 비슷하지만. 화려한 공격진에 비해 수비와 미드필드가 취약한 아르헨티나팀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떠올리게 한다. 메시, 이과인, 디마리아가 상대방 진영을 향해 질주하는 동안에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역습에 대한 불안감은 <놈놈놈>을 볼 때의 느낌을 되새기게 한다. 빈틈이 없는 브라질팀은 크리
[에디토리얼] 강우석의 변신에 부부젤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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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이라는 차원에서 할리우드영화가 갈수록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제기됐다. 거기에는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만 고집하는 스튜디오들의 방침이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다. 스튜디오들이 거대 미디어자본 아래 놓여 있고 미디어자본은 다양한 금융투자사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까닭에 이들의 급선무는 안정적인 이윤을 만들어내는 것이 된다. 스튜디오들의 이윤을 안정화할 방법론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영화의 독창적 색채를 흐릿하게 하는 대신 규모를 키운다(CG는 규모를 키우는 최고의 저비용 고효율 방법론이다). 개봉주 박스오피스 성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늘린다. 성공했던 영화의 경우 속편을 만든다.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는 원작(그중에서도 슈퍼히어로를 다룬 만화나 그래픽 노블)의 판권을 계약한다 등등등.
그러니까 작가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담긴 영화가 갈수록 나오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할리우드에서는 영화화에 대한 스튜디오나 제작사의 확약없이 작가가 쓴
[에디토리얼] 컴 온,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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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돌아왔다. 지면개편과 함께 한동안 <씨네21>에서 만날 수 없었던 정성일과 허문영 두 평론가가 새로운 꼭지로 컴백했다. ‘정성일·허문영의 씨네산책’이 그것이다. 씨네산책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개별 작품이나 감독의 세계를 뜯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 그 자체에 관한 원초적인, 원천적인 질문을 던지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호, 혹시 아, 아닌가요?). 그건 어쩌면 이른바 ‘비평의 위기’에 대한 결기있는 응전일 수도 있고, 비평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참신한 시도일 수도 있겠다. ‘산책’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영화의 안과 밖을 느린 걸음으로 활보하면서도 그 안에서 영화에 대한 간절하고 끈질긴 물음을 던져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들의 산책은 항상 친구 또는 동반자와 함께 이뤄지게 된다. 산책의 주제 또한 그들과 함께하는 손님에 따라 계속 바뀔 것이다. 씨네산책의 첫 동반자는 영화감독 이전에 영화광으로 소문난 박찬욱 감독이다. 시네필 혹은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
[에디토리얼] 씨네산책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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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월드컵 시즌이다. 축구를 꽤 좋아해서 클럽 축구만이 진정한 축구라고 부르짖어왔지만 막상 월드컵이 다가오니 가슴이 부푸는 게 사실이다. 대기업의 어마어마한 월드컵 마케팅이 진저리나게 싫고(우리 잡지도 그 혜택을 좀 받는다면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애국심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짜증나지만, 결국 경기가 시작되고 나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게 될 게 뻔하니 월드컵에 대한 불평은 참는 게 낫겠다. 월드컵도 그저 축구다, 라는 말만 하고 싶다. ‘민족적 자긍심’이나 ‘국가의 사기’ 따위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말이다. 축구 또한 실력있는 쪽이, 컨디션이 나은 쪽이, 운 좋은 쪽이 이기는 스포츠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축구 자체를 보면 되고 축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은 축제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람들이 월드컵에 온 관심을 쏟는 이 순간이 오면 영화계는 항상 긴장을 하곤 한다. 왜 아니겠는가. 월드컵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군림하는 때이
[에디토리얼] 레드가 물결쳐도, 때때로 문화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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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는 드라마틱한 영화와도 같았다. 출마한 사람, 투표한 사람, 개표 결과를 보는 사람 모두 처음부터 결과를 알고 있었던 영호남 지역(경남은 빼고)을 제외하면 이번 지방선거는 흥미진진한 플롯과 캐릭터를 가진 드라마였다. 특히 서울시장 개표방송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최상급 스릴러영화를 연상케 했다. 물론 막판 반전이 강남 3구의 보수 몰표라는 클리셰에 의해 일어나 김이 새긴 했지만.
어쨌거나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견제 혹은 심판의 성격이 짙다. 한때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로 환한 광화문에서 퍼져나오는 <아침이슬> 노랫소리를 들으며 “어떤 정책도 민심과 함께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고 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정책을 밀어붙이기로 일관했다.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4대강 사업이다. 지역 주민과 종교계, 사회단체의 일관된, 그리고 치
[에디토리얼] 4대강 사업도 막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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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작가>는 흥미로운 영화다. 소설 원작에서 장황한 대목을 걷어낸 뒤 자신의 색을 가미해 담백건조한 정치스릴러 영화로 만들어낸 로만 폴란스키의 여전한 내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강력 추천한다. 상세한 이야기는 김용언 기자의 세심한 글을 보시라. 개인적으로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작의 주배경인 보스턴 인근 섬과 해안의 모습을 영화에선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로버트 해리스는 소설 <유령작가>에서 애덤 랭이 사실상 감금돼 있는 이 황량한 섬의 풍경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그곳에서 움트고 있는 음험한 욕망들을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하지만 미국에 들어갈 수 없는 폴란스키는 독일의 한 바닷가에 애덤 랭의 별장 세트를 만들어 촬영해야 했다.
폴란스키가 미국에 입국할 수 없는 이유는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 때문이다. 1977년 그는 <보그>로부터 당시 13살 소녀 사만다 게이머의 화보 촬영을 의뢰받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폴란스키가 그녀와 성
[에디토리얼] 폴란스키 그리고 송영창과 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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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 칸영화제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과연 <시>와 <하녀> 등 한국영화가 상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직까지 대단한 문제작이 없다니 두편 중 어떤 영화가 수상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황금종려상을 비롯한 여러 상의 향방은 시상식이 열리기 직전까지 알 수 없다. 2007년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칸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상식날 프레스룸 TV 앞에 모인 각국 기자들은 마치 스포츠중계를 보는 듯 수상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환호하거나 야유 섞인 한숨을 쉬었으니까. 그런 ‘예측 불가능성’은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티븐 프리어스를 비롯한 심사위원단의 논의가 바깥으로 공개되지 않아 생겼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밀양>의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듯이 올해도 한국영화가 심사위원들의 지지를 모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칸을 가본 적 있는 이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도 해마다 이맘때면 마음이 설렌다. 햇살 그득한 리
[에디토리얼] 칸에서 날아온 기막힌 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