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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나 영화를 보고 운 기억은 단 두번, 1986년 명화극장에서 방영한 <엘리펀트 맨>과 2006년작 <우리개 이야기>를 보며 정신없이 울었던 게 전부다. 메마른 감정을 염려하거나 냉정을 자랑할 생각은 없다. 소설이나 만화처럼 스스로 페이지를 멈추고 곱씹을 시간이 없는 영상매체에 한해서 울지 않는 거니까. 혹은 감정을 견줄 만한 생의 경험치가 낮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아무튼 눈물이 박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트콤을 보다 울고 말았다. KBS <선녀가 필요해>는 목욕하러 내려왔다가 영화 촬영장에서 날개옷을 도둑맞은 선녀 모녀가 마포구에 사는 기획사 대표 차세주(차인표)의 집에 눌러앉아 서울살이하는 이야기다. 2005년 한남동에 자리잡은 뱀파이어들이 그랬듯이.
MBC에서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1, 2를 집필했던 신정구 작가는 <선녀가 필요해>의 기틀을 잡고 안타깝게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매정한 목소리로 신랄한 대사를 내뱉는
[유선주의 TVIEW] 가족의 맨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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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건축학개론>은 최근 들어 가장 감성적인 영화였다. 보는 내내 완전몰입 상태였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기자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나온 남자 기자들이 ‘이 기분 그대로 술 마시고 싶다’라고 했다는데 난 좀 더했다. 극장을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책맞게 울음을 빵 터뜨릴 뻔했으니까. 남자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눈물이 많아진다는데, 그런 차원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니 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내 감정의 방아쇠를 당긴 건 영화음악이었다. 그러니까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말이다. 1990년대 중반의 이제훈과 수지가 개포동을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처음 흘러나오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저릿했다. 어떤 영상이 전개되도 좋으니 전곡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마도 그 장면 이후 나는 이제훈이 되어 영화 안으로 입장한 듯하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제훈에게 ‘빙의’되는 건 말이 안된다. 영화 속 설정상 그
[에디토리얼] 음악과 영화, 그 행복한 만남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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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차>의 스포일러가 2월24일, 2월26일 일기에 있습니다.
2월24일
어떤 의미에서 소설 <화차>에 없고 영화 <화차>에만 있는 인물은, 선영(김민희)이라고 할 수 있다. 미야베 미유키가 쓴 원작 소설의 쇼코가 변영주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선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감독이 <화차>의 과거와 대과거 시제 시퀀스를 극히 모험적인 방식으로 찍지 않는 한, 영화의 선영은 실종 이후 소설 속 쇼코처럼 서류 기록이나 제3자의 증언으로만 존재할 수가 없다. 쇼코는 ‘풍문’이지만 선영에겐 시나리오가 ‘선영’이라고 쓸 때마다 끌고 나와야 할 육체가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독자와 다르게 선영/김민희를 보고 듣고 감각한다. 어떤 방향으로 각색하느냐의 결정과는 무관하게 이는 <화차>가 영화의 몸을 얻는 순간 점지된 운명이다. 직접인용과 간접인용의 차이를 연상해도 좋다. 선영/김민희는 회상장면에서 객체로서 진술되는 것이 아니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어미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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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의 역사는 영화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영화음악은 유성영화가 도입된 뒤 존재감이 크게 부각됐지만, <아티스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무성영화 시절에도 극장 전속 오케스트라가 영화에 맞춰 음악을 연주했다. 유성영화 시대가 도래했을 때 극장주들이 ‘이제 더이상 오케스트라 단원 월급을 주지 않아도 된다’면서 안도했다니 당시에도 음악은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던 모양이다. 현대에 와선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 몇몇 고집스런 감독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화는 음악을 이미지나 내러티브 못지않게 중요한 표현수단으로 이용한다. 버나드 허만의 긴박한 리듬의 음악은 히치콕 영화의 서스펜스를 끌어올렸고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스필버그 영화의 서정성을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없이도 스파게티 웨스턴이 성립할 수 있었을까. 혹은 니노 로타의 음악 없이 <대부>의 웅장한 감흥이 우러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요즘 들어 머릿속 깊
[에디토리얼] 영화의 음악, 공생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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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절박했던 아침을 종종 떠올린다. 11월의 찬 공기 속으로 뿜어져 나가던 입김, 발 아래 깔려 있던 회색 보도블록의 무늬, 응원가를 부르던 고등학생 무리와 담장 앞에 줄지어 기도하던 어머니들. 내 인생이 오늘 여기서 결정되는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 비장함을 넘어 일종의 성스러운 기분이 피어올랐다. 그날은 내 두 번째 수능 시험일이었다.
12년, 아니 13년이 흘렀다. 물론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든 조자룡 혹은 장판교 위의 장비에 버금갔던 비장함이 무색하게도, 내 인생은 수능 성적표에 찍힌 백분율과 상관없이 흘러갔다. 대입과 동시에 평생 다시는 시험공부 따위 하지 않으리라 치를 떤 결과, 내 졸업 평점은 상당히 좋은 시력 정도에 불과했고 변변한 토익 성적은 물론 그 흔한 운전면허도 없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했지만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 한번 얻지 못하고 달려온 길의 끝에는 모든 종류의 공부에 대한 거부반응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최지은의 TVIEW] 안판석-정성주 콤비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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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문제의 장면이었다. <러브픽션>의 겨드랑이털 장면 말이다. 숱하게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영화 속 하정우만큼이나 나름의 충격을 받았다. 아직까지도 그 털들의 날렵한 모양새가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는 걸 보면 그 강도는 작지 않았던 것 같다. <색, 계>에서 탕웨이의 겨드랑이털 장면은 다른 적나라한 노출에 묻혀 별 느낌이 없었지만 <러브픽션> 속 공효진의 겨드랑이털은 예상치 못한 맥락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당황했던 것 같다. 자극적이지만 에로틱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생경한 느낌의 이 장면을 보면서 전계수 감독의 도발을 느꼈다. 남녀의 사랑을 신비화, 낭만화하기는커녕 벌거벗겨 그 속내를 드러내는(하지만 귀엽게)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은 예리한 비수처럼 보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털은 인간의 골칫거리였다. 제모(除毛) 문화는 고대 이집트와 로마시대부터 나타났는데,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한 계급은 의심할 바 없이 부지런하고 다른 계급은 정말 게으르다. 전자
[에디토리얼] 겨드랑이털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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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니까!”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말대꾸하지 않을게요.” 며느리 얼굴에 물을 끼얹은 시어머니가 곧이어 아들까지 낚아챈다. “아들아, 넌 여기 있어야지. 넌 이 집의 장남이잖아.” 며느리의 황당한 표정 위로 스탭 스크롤이 올라간다. ‘제작PD 차윤희.’ 뽕끼 충만한 주제곡까지 그럴싸하게 재연한 저 막장드라마의 정체는 KBS 새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극중극이다. 외주사의 드라마 제작PD로 일하는 차윤희(김남주)는 ‘결혼을 안 하면 안 했지 내 인생에 시집살이란 없다’를 모토로 맞선을 거듭한 끝에 미국으로 입양되어 잘 자란 ‘능력있는 고아’ 테리 강(유준상)을 만났다. 남들이 시집살이 푸념을 늘어놓는 명절에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다니는 흡족한 허니문. 한국 가족을 찾는 데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테리가 고맙고 또 안쓰럽지만 윤희는 긴 말을 보태지 않는다.
한편 윤희 부부가 이사하게 된 효자동 상가 건물의 2층 전셋집은 1층에서 오래된 단
[TVIEW] 가짜 온기는 이 집에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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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플레이어가 우리집에 들어온 건 1990년대 초반이다. 이것이 개발된 건 1982년이지만 한국에서는 당시 거의 보급되지 않은 상태였으니 ‘나름 얼리어답터’였던 아버지 덕에 첨단 문물을 익히게 된 셈이다. 처음 CD로 음악을 들었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LP판 특유의 지글거림이 없는 데다 사운드가 정말로 투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이 역사적 변화를 모든 사람이 반긴 것은 아니다. 아날로그의 부드럽고 깊은 음이 들리지 않는다거나, 디지털 사운드가 귀를 아리게 한다거나, 심지어 LP의 스크래치에서 나는 잡음이 없어 아쉽다는 불만도 있었다. CD 겉면에 발라진 페인트가 서서히 반대편을 잠식해 수명이 100년도 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도 들려왔다. 어쨌거나 불과 20년 남짓한 사이에 CD는 대중화됐다가 이제 디지털 음원에 밀려 차츰 자취를 감추고 있다. 마니아 사이에서 LP 바람이 다시 분다고는 하지만 그건 순전히 취미의 영역일 뿐이다.
DVD도 비슷한 과정을
[에디토리얼] 굿바이, 아날로그 안녕, 필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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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면 모름지기 싸움을 잘하거나 밴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잠시 있었다. 중학생 시절 동네 남고 축제에 구경 갔던 날, 어스름 깔리던 무대에서 부활의 <사랑할수록>을 열창하던 밴드 보컬 오빠의 외모는 평범했지만 첫 소절이 울려퍼지던 순간의 떨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뒤로도 록의 ㄹ은 몰랐어도 밴드 하는 오빠들을 좋아한 적은 몇번 있었다. 한국, 미국, 일본, 국적은 종종 바뀌었지만 긴 갈기머리와 늘씬한 다리에 딱 붙는 청바지, 화려한 눈화장까지, 그들에겐 분명 뭔가 특별한 에너지가 있었다.
tvN <닥치고 꽃미남 밴드>의 고교생 밴드 ‘안구정화’의 공연을 찾아와 “오빠들 만질 수 있는 자리” 달라며 웃돈을 내미는 초등학생부터 이십대 누나들까지, 철없고 이성을 상실한 여성 팬에게 ‘닥치고 공감’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밴드의 구성이 돌아이 로커의 필이 충만한 이민기, KBS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공감능력 부족한 천재로
[최지은의 TVIEW] 잘생겨서 꼭 청춘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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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0일
서가에 책을 꽂다 말고 퍼질러 앉아 영화제 카탈로그들을 뒤적인다. 주기적으로 반복 등장하는 몇몇 표현들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필자는 영화의 실체를 전달하기 위해 고심 끝에 선택한 표현이지만, 어쩔 수 없이 패턴으로 굳어버린 관용구들. 아트하우스 계열 영화들을 소개하는 경우 나 역시도 무수히 변주했던 일련의 구절들은 이따금 오락으로 영화를 즐기는 대중에게는 대피하라는 빨간불이 되고(“접근하지 마시오”) 예술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일종의 듀이 십진분류표(“선댄스 수상작풍의 서사 퍼즐 포스트 누아르인 모양이군”)로 기능할 법하다.
예컨대 “픽션과 다큐멘터리 사이의 균형을 성취하고 있다” 혹은 “대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는 누군가에겐 기승전결이 모호하고 엔딩이 어리둥절할 가능성이 높을 거라는 예고로 해석되고 “다르덴 형제의 미학을 계승한 카메라워크”는 뒷줄 자리의 예매를 권하는 조언으로 “이 영화의 초점은 무드다”는 커피를 두잔 마시고 극장에 들어가라는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그럼에도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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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제작자 스콧 루딘은 불같은 성질로 유명하다. 특히 그 아래서 일하기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의 보좌진들은 매일, 그리고 24시간 내내 대기 상태여야 하고 통화 불가 지역인 뉴욕의 지하철을 타서도 안된다. 한 비서는 그가 보려던 공연 티켓을 사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는데 차라리 이건 다행인지 모른다. 화가 나면 주변의 물건을 손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기로 유명한 그이다 보니 행여 오스카 트로피라도 집었다가는…. 미국 인터넷뉴스인 <고커>가 그를 ‘최악의 보스’로 꼽은 것도 이해가 된다. 문제는 이 폭군이 대단한 능력자라는 사실이다. <디 아워스> <데어 윌 비 블러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머니볼>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등등 숱한 문제작을 제작했고 소설을 영화화하는 데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온, 손꼽히는 프로듀서란 말씀. “그는 영화를 먹고 영화를 마시고 영화 안에서 잔다”는 파라마운트
[에디토리얼] 충무로 워커홀릭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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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술 마시는 장면에 몹시 집착하는 편이다. 혼자만의 기준이지만 리얼리티와 운치를 따지고 배역에 얼마나 어울리는지 등을 고루 살핀다. 몇 가지 예로, 안주는 따로 시키지 않았지만 소주 한잔에 어묵 국물을 정말 ‘후루룹-’ 소리가 나게 마시며 이별한 남자의 궁상과 초라한 모습을 보여준 이선균. 그는 술 마시는 연기가 두루 뛰어나서 ‘만취연기의 젊은 거장’이라고 이름 붙였다. 주현 선생도 술을 무척 맛나게 드신다. 와인 잔도 없는 집에 와인 선물이 들어왔는데 별 개의치 않고 평상에 앉아 풋고추를 안주 삼아 소주잔에 따라 드시더라. 극중 연적 사이였던 황정음과 고준희의 술 대작신도 손에 꼽는다. 먼저 취한 고준희가 입을 헤∼ 벌리고 잠이 드는데 마찬가지로 대취한 황정음도 질세라 눈이 반쯤 풀린 얼굴로 테이블의 냅킨을 한장씩 꺼내 고준희에게 꼼꼼하게 덮어주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듣던 중 제일 웃겼던 알코올신은 고통에 찬 중년 남자가 막걸리 집에 가서 떡 벌어지는 한상을 차려놓고 술
[유선주의 TVIEW] 저 술자리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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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3일
로테르담영화제 가는 길. 여행이 다 그럴 테지만 특히 장거리 항공 여행은 어느 주머니에 무엇을 눌러 담을지 정하는 출발 전날 고민부터 비행기 안에서 내 팔다리를 어떻게 건사하고 영역을 확보할지에 관한 눈치작전에 이르기까지 ‘수납’의 전쟁이다. 네덜란드 국적기 K항공사는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을, 다리를 뻗고 등받이를 젖힐 수 있는 여유 공간에 따라 세 등급으로 세분해 차등 판매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비단 K항공사만의 시스템은 아니지만 지구상에서 평균 신장이 가장 큰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니만큼 앞장서서 궁리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을 것이다. 유서 깊은 상인의 나라답게 터무니없이 비싼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을 늘리거나 체크인의 운에 맡기느니 안락한 정도에 맞는 가격을 아예 매겨놓는 쪽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전세계 영화 스탭을 통틀어 가장 고생스러운 사람은 키다리들 위로 종일 장대를 치켜들고 있어야 하는 네덜란드의 붐 마이크 기사가 아닐까 등등의 하등 쓸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영화는 소녀의 좁은 방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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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00년이 조금 넘는 역사 속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은 듯 보인다. 19세기 말 토머스 에디슨과 이스트먼 코닥, 그리고 뤼미에르 형제의 공적으로 탄생한 영화는 무성에서 유성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2D에서 3D로,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어왔다. 그리고 또 다른 기술의 혁신이 찾아올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변화를 ‘발전’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인한 표현양식의 변화가 영화의 본질까지 바꾸어놓았느냐는 물음과 다르지 않다.
최근 개봉한 <아티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다’고 대답하기 망설여진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대의 할리우드를 그린 이 영화는 흑백화면에 무성영화 기법(이 영화의 95%는 무성이지만 중요한 순간 소리가 튀어나온다)으로 만들어졌지만 현대의 관객이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번주 ‘전영객잔’에서 장병원 평론가는 <아티스트>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변증법적 진화론의 역사로 영화사의 한순간을
[에디토리얼] 영화는 왜 영화를 추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