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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4일 동안의 입원이었을 뿐인데 아주 오랫동안 아주 멀리 다녀온 것 같다. 회사 오는 길이 그렇게 낯설 수 없었고, 사무실 분위기가 어색하기 짝이 없으며, 매주 했던 마감이 거의 불가능으로 느껴진다(특히 지금 이 글이야말로…). 약간의 수술 후유증보다는 가장 극렬하다는 4일째의 니코틴 금단 증상이 온몸을 휘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현실감을 떨어트리는 건지도 모른다. 시시한 수술이라 해도 신경이 안 쓰일 리 없으며 수술 뒤 통증도 아예 없지는 않았고 퇴원 즈음에는 병원비도 은근히 걱정됐던 탓에 아무리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뉴스를 들여다본다 해도 바깥세상에 진지한 관심을 쏟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 ‘<미스터 K> 이명세 감독 하차설’ 기사를 봤을 때 별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도 그런 탓이었겠지만 막상 출근해서 보니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사실 충무로에서 ‘감독 하차’ 또는 ‘감독 교체’가 아주 드문 경우는 아니다. 얼마 전 <
[에디토리얼] 그저 금단 증상 때문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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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작 KBS 드라마 <웨딩>을 되돌아보자. 맞선으로 결혼한 부잣집 고명딸 세나(장나라)는 남편의 오랜 친구며 첫사랑인 윤수(명세빈)로 인해 속을 태운다. 자기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혼으로 도피하려는 세나는 열쇠를 돌려주러 간 남편의 아파트에서 윤수의 방문을 받는다. 이미 들어왔으면서 “들어가도 돼요?”라고 묻는 윤수는 “그럼요 들어오세요. 우리집도 아니고…” 말꼬리를 흐리는 세나에게 굳이 “네…”라고 대답한다. 전작들에서 운명적인 첫사랑의 신화를 써내려간 오수연 작가지만 보다시피 <웨딩>에선 운명론의 비호를 받던 청초하고 순수한 첫사랑 그녀의 균열을 알렸으며 또 성장시켰다. 이쯤 되면 첫사랑 신화가 무슨 힘이 있을까 싶은데… 한류 타깃인지 KBS <사랑비>는 첫사랑을 다시 호출했다. 윤석호 감독은 매 순간을 아름답게 박제하려 애쓰며 극본은 데칼코마니와 도돌이표 같은 극 구조로 운명이라는 리듬을 부여한다.
70년
[유선주의 TIVEW] 첫사랑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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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수들이 한갓지게 노닥거리고 골키퍼마저 낮잠을 자 골문이 비어 있는데 연이은 헛발질과 서투른 슈팅 실력으로 기회를 홀랑 날린 꼴이랄까. 지난밤의 선거는 야권의 무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하긴 우리 지역구마저 그 꼴이 났으니…(역사와 민족 앞에 별 할 말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마당에 뭔가 떠들썩한 잔치판을 벌인다는 게 면구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어쩌랴. <씨네21>이 창간 17주년을 맞았다는 사실은 피해갈 도리가 없는 것을.
이번 창간호에는 아주 특별한 만남을 기획했다. 예전에 영화에서 함께했던 배우들의 재회가 그것이다. <태양은 없다>에서 청춘의 허한 내면을 보여줬던 정우성, 이정재가 영화에서처럼 잠수교를 함께 걸었고 <아는 여자>에서 희한한 사랑을 나눴던 정재영, 이나영이 초록빛 운동장(시즌 중이라 야구장은 빌리지 못했다. ㅠㅠ)에서 다시 만났다. 이 기사를 흥미롭게 봤다면 이들이 함께했던 그때 그 영화를 다시 봐도 좋을 것이다. &
[에디토리얼] 열일곱살, 이제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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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을 땐 진짜 없는데 생길 땐 한꺼번에 생기는 것들이 있다. 여기저기서 수개월 밀렸던 원고료들이 한번에 들어온다든지 퇴근길에 식빵을 사왔는데 앞서 아빠도 언니도 한줄씩 사들고 온다든지 평생 없던 남자 복이 한꺼번에 터지기도… 아, 이건 아니구나. 아무튼 드라마도 그렇다. 매번 볼 거 없다, 쓸 거 없다 하며 머리 싸매고 고민하다가도 아주 가끔은 ‘오늘 뭘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요즘 수요일과 목요일 밤이 그렇다. 대략 6585일 주기로 돌아온다는 일식과 월식은 아니지만 1, 2년에 한번 정도 지상파 3사 드라마가 같은 날 같은 시간 스타트 라인에서 내달리는 드문 경우, 심지어 이번에는 MBC <해를 품은 달>이나 지난해의 SBS <뿌리 깊은 나무>, KBS <공주의 남자>처럼 독주하는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물 다 빠졌다고 생각했던 ‘남북관계+21세기 왕자님’ 소재를 블랙 코미디로 변주하며 눈길을 잡는 MBC &
[최지은의 TVIEW] 말을 타고 현대로 온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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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인류가 종말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4월인데도 눈이 오고 강풍과 돌풍이 몰아치고 기온이 영하에 가깝다. 트레일러까지 날려버리는 토네이도를 맞은 미국이나 서쪽 지역의 대지진이 예고돼 있는 일본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한국의 날씨도 지긋지긋한 겨울을 떨치고 봄을 누리고픈 우리 기대를 저버린 채 마구 날뛰는 꼴이 심상치 않다. 이러다가 교과서에 ‘한반도는 봄-초여름-여름-한여름-늦여름-가을-초겨울-겨울-한겨울-늦겨울의 뚜렷한 10계절을 특징으로 한다’는 구절이 실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기분이 울적해도 갈 길은 가야 한다. 다음호로 17살이 되는 <씨네21> 또한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그런데 대체 이 말은 누가 한 거랍니까?) 심정으로 창간기념호와 지면 개편을 준비 중이다. 사상 최대의 기대 속에서 개막하는 프로야구나 온 국민이 관심을 쏟고 있는 4·11 총선을 능가하는 화젯거리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잠깐이라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겠다는 각오
[에디토리얼] 그래도 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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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별 신통할 것 없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아 김이 샐 때, 애초의 시작점을 두고 허랑한 공상에 빠지기도 한다.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재벌은 부담스럽고…. 그저 때를 잘 만나 불린 재산을 자식대에서 홀랑 털어먹는 졸부의 둘째딸로 태어나면 좋지 않을까? 부모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의젓한 첫째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막내딸은 몹시 귀찮으니, 해외로 유학 가서 돌아오지 않는 둘째딸 정도로!’ 이같은 망상을 실천하고 살아오신 왕족이 있었으니. 대한민국에 입헌군주제를 되살린 MBC 드라마 <더킹 투하츠>의 왕제 이재하(이승기)다.
종로구 신궁동 1번지. 신궁에 기거하는 왕족은 조선왕조의 이씨 성을 잇되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바꾼 뒤 새로 건국해 갓 3대째를 맞았다. ‘영국처럼 왕실 땅이 있는 것도 일본처럼 하늘의 아들이라 떠받들어지는 것도 아니며 세금으로 먹고사는 주제’라 국민의 이목과 내각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형편. 이런 나라의 왕 이재강(이성민)은 “받은 만큼!
[유선주의 TVIEW]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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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학개론>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3월13일
“나는 이런 영화입니다.”
극장의 어둠 속에 숨을 죽이고 있으면 어슷비슷하게 흘러가던 영화들이 저마다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에서 그 지점은, 16년 전 건축학개론 수업 중 서울시 지도 위에 승민(이제훈)이 긋는 등굣길 경로가 서연(수지)이 앞서 그려놓은 선과 겹치는 몇초 동안이다. 승민의 선(線)이 희미한 뽀드득 소리를 내며 서연의 선과 포개지는 찰나는, 청각과 촉각까지 설레게 한다. 첫 울림이 시사하듯 <건축학개론>의 호소력은 줄곧 융합이나 해소가 아니라 ‘중첩’에서 나온다. 예컨대 이 영화의 감흥은 극중 인물의 흥얼거림이 그가 듣지 못하는 (그러나 관객에겐 들리는) 화면 밖 사운드트랙과 호응할 때, 첫눈 오는 날 약속 장소에 상대도 왔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될 때 솟는다. <건축학개론>은 말하자면 덧칠과 증축의 영화다. 스무살 서연과 승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_마지막 회] 중첩의 호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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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식 감독의 <어머니>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이소선 여사의 유머 감각이 번뜩일 때다. 이를테면 이런 대화.
전태삼(전태일의 동생): “저 개는 왜 여기에 오줌을 싸?”
이소선: “개도 오줌을 싸야 살지.”
전태삼: “자기 집에서 싸야지.”
이소선: “아 그러니까 개잖아. 자기 집에 싸면 개가 아니지.”
지인이 이소선 여사의 피부가 좋다고 칭찬하는 대목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인: “그 연세 잡숫도록 피부가 이렇게 깨끗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전태삼: “아이고 어머니 참 모르세요. 내가 얼마나 관리를 했길래 (이렇게) 예쁘게 생겼겠어요.”
지인: “그건 내가 인정해.”
이소선: “아따 내가 낳을 때부터 네가 관리했냐?”
그러니까 <어머니> 속 이소선은 ‘여사’라기보다 정말 ‘어머니’에 가깝고, 그보다는 ‘엄마’에 더 가깝다. 나는 <어머니>를 보면서 내내 큰어머니를 떠올렸다. 큰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 큰어머니는 봉제공장을 다니면서
[에디토리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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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세 종류의 오빠가 있다. 첫 번째는 혈연이나 법적인 친족관계에서의 손위남자에 대한 여자의 호칭, 두 번째는 대개 이성애자 커플 사이에서 남자쪽의 나이가 많을 때 여자가 부르는 애칭, 종종 다정이 지나친 경우 연하남에게도 ‘오빠’라고 부르는 여자들이 있지만 그런 건 피차 못 본 척 지나쳐주도록 하자. 그리고 세 번째는 소녀들이, 혹은 소녀의 마음을 지닌 누나와 이모들이 애정과 신심을 갖고 마음 한구석에 모시는 특별한 존재들에 대한 통칭이다. 대표적으로는 아이돌이 있지만, 원빈이나 강동원 같은 배우 혹은 메시를 비롯한 바다 건너 스포츠 선수들까지도 넓게 보면 다 ‘오빠’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오빠는 나이가 아니라 신분이므로 이 호칭을 사용하는 자의 생물학적 연령을 따져서는 안된다는 거다. 데뷔 시절 중학교 3학년이었던 샤이니의 태민(1993년생)이,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김수현의 아역을 연기한 여진구(1997년생)가 전국 수많은 80년대생들에게 ‘오빠
[최지은의 TVIEW] 오빠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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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나 영화를 보고 운 기억은 단 두번, 1986년 명화극장에서 방영한 <엘리펀트 맨>과 2006년작 <우리개 이야기>를 보며 정신없이 울었던 게 전부다. 메마른 감정을 염려하거나 냉정을 자랑할 생각은 없다. 소설이나 만화처럼 스스로 페이지를 멈추고 곱씹을 시간이 없는 영상매체에 한해서 울지 않는 거니까. 혹은 감정을 견줄 만한 생의 경험치가 낮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아무튼 눈물이 박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트콤을 보다 울고 말았다. KBS <선녀가 필요해>는 목욕하러 내려왔다가 영화 촬영장에서 날개옷을 도둑맞은 선녀 모녀가 마포구에 사는 기획사 대표 차세주(차인표)의 집에 눌러앉아 서울살이하는 이야기다. 2005년 한남동에 자리잡은 뱀파이어들이 그랬듯이.
MBC에서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1, 2를 집필했던 신정구 작가는 <선녀가 필요해>의 기틀을 잡고 안타깝게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매정한 목소리로 신랄한 대사를 내뱉는
[유선주의 TVIEW] 가족의 맨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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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건축학개론>은 최근 들어 가장 감성적인 영화였다. 보는 내내 완전몰입 상태였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기자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나온 남자 기자들이 ‘이 기분 그대로 술 마시고 싶다’라고 했다는데 난 좀 더했다. 극장을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책맞게 울음을 빵 터뜨릴 뻔했으니까. 남자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눈물이 많아진다는데, 그런 차원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니 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내 감정의 방아쇠를 당긴 건 영화음악이었다. 그러니까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말이다. 1990년대 중반의 이제훈과 수지가 개포동을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처음 흘러나오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저릿했다. 어떤 영상이 전개되도 좋으니 전곡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마도 그 장면 이후 나는 이제훈이 되어 영화 안으로 입장한 듯하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제훈에게 ‘빙의’되는 건 말이 안된다. 영화 속 설정상 그
[에디토리얼] 음악과 영화, 그 행복한 만남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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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차>의 스포일러가 2월24일, 2월26일 일기에 있습니다.
2월24일
어떤 의미에서 소설 <화차>에 없고 영화 <화차>에만 있는 인물은, 선영(김민희)이라고 할 수 있다. 미야베 미유키가 쓴 원작 소설의 쇼코가 변영주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선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감독이 <화차>의 과거와 대과거 시제 시퀀스를 극히 모험적인 방식으로 찍지 않는 한, 영화의 선영은 실종 이후 소설 속 쇼코처럼 서류 기록이나 제3자의 증언으로만 존재할 수가 없다. 쇼코는 ‘풍문’이지만 선영에겐 시나리오가 ‘선영’이라고 쓸 때마다 끌고 나와야 할 육체가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독자와 다르게 선영/김민희를 보고 듣고 감각한다. 어떤 방향으로 각색하느냐의 결정과는 무관하게 이는 <화차>가 영화의 몸을 얻는 순간 점지된 운명이다. 직접인용과 간접인용의 차이를 연상해도 좋다. 선영/김민희는 회상장면에서 객체로서 진술되는 것이 아니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어미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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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의 역사는 영화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영화음악은 유성영화가 도입된 뒤 존재감이 크게 부각됐지만, <아티스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무성영화 시절에도 극장 전속 오케스트라가 영화에 맞춰 음악을 연주했다. 유성영화 시대가 도래했을 때 극장주들이 ‘이제 더이상 오케스트라 단원 월급을 주지 않아도 된다’면서 안도했다니 당시에도 음악은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던 모양이다. 현대에 와선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 몇몇 고집스런 감독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화는 음악을 이미지나 내러티브 못지않게 중요한 표현수단으로 이용한다. 버나드 허만의 긴박한 리듬의 음악은 히치콕 영화의 서스펜스를 끌어올렸고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스필버그 영화의 서정성을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없이도 스파게티 웨스턴이 성립할 수 있었을까. 혹은 니노 로타의 음악 없이 <대부>의 웅장한 감흥이 우러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요즘 들어 머릿속 깊
[에디토리얼] 영화의 음악, 공생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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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절박했던 아침을 종종 떠올린다. 11월의 찬 공기 속으로 뿜어져 나가던 입김, 발 아래 깔려 있던 회색 보도블록의 무늬, 응원가를 부르던 고등학생 무리와 담장 앞에 줄지어 기도하던 어머니들. 내 인생이 오늘 여기서 결정되는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 비장함을 넘어 일종의 성스러운 기분이 피어올랐다. 그날은 내 두 번째 수능 시험일이었다.
12년, 아니 13년이 흘렀다. 물론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든 조자룡 혹은 장판교 위의 장비에 버금갔던 비장함이 무색하게도, 내 인생은 수능 성적표에 찍힌 백분율과 상관없이 흘러갔다. 대입과 동시에 평생 다시는 시험공부 따위 하지 않으리라 치를 떤 결과, 내 졸업 평점은 상당히 좋은 시력 정도에 불과했고 변변한 토익 성적은 물론 그 흔한 운전면허도 없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했지만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 한번 얻지 못하고 달려온 길의 끝에는 모든 종류의 공부에 대한 거부반응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최지은의 TVIEW] 안판석-정성주 콤비는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