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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10층 시사 교양국 한구석에는 ‘<PD수첩> 작가방’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층침대 두개가 좁은 방을 꽉 채우고, 얇은 간이벽 너머로 사무실 소음이 귓가를 울렸지만 작가들을 위한 수면실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들떴다. 촬영 테이프 컨버팅을 기다리거나, 외국 자료 번역을 맡겨놓았거나, 인터뷰 녹취를 풀거나, 나를 비롯한 1, 2년차 막내작가들이 집에 가길 포기하고 회사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날은 적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잘 곳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잠시 눈 붙일 곳, 등 펴고 누울 곳이 없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여직원 수면실의 폭신한 침대에서 새벽 쪽잠이라도 잘 수 있는 날은 드물게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한 동기가 잠긴 수면실 문을 두드리자 새벽 뉴스를 기다리며 자고 있던 아나운서가 달려나와 한참 싫은 소리를 해댔을 때, 나는 복도 문 뒤에 숨어 있었다. 프리랜서, 작가들의 직원 수면실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은 게
[최지은의 TVIEW] < PD수첩>을 돌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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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벤이 한반도에 상륙하자 어김없이 마녀 빗자루처럼 간판이 날아다녔다. 간판에 치여 사람이 다쳤다는 뉴스들도 알뜰하게 타전되었다. 우리 동네 청국장집 간판은 20여 미터를 날아 경찰서 앞마당에 체포되었다. 여기 한국은 태풍 속에서 간판들이 날아다니며 호객 행위를 하는 마법의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자영업자가 많은 한국. 이 나라 도시에 넘쳐나는 커다랗고 볼품없는 대형 간판들은 변변한 안정성 검사도 없이 건물에 위태롭게 매달린 채 태풍이 볼 때마다 호시탐탐 비상을 꿈꾼다. 악다구니하듯 매달려 있는 이 불안한 간판들이야말로 압축적 근대화를 거치면서 피로에 휩싸인 한국사회의 얼굴 표정에 다름없을 것이다.
간판은 도시의 얼굴, 도시의 정체성이다. 세계에서 이렇게 간판이 많은 나라는 홍콩과 일본 정도일 텐데, 한자 모양을 강조하는 홍콩 간판이나 강렬한 색 사용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본 간판과 달리 한국 간판은 아무런 정체성이 없다. 색, 모양, 크기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간판이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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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한주를 보내고 있다. 우선 아침저녁으로 한기가 느껴질 정도인 데다 대낮의 밝은 햇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아 괜찮다. 이제 가을이 성큼 한발을 내디딘 듯하다. 월요일에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 기자시사가, 화요일에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기자시사가 열렸던 것도 괜찮았다. 영화의 장르며 규모, 스타일이 다 다르지만 두 영화 모두 나름의 성취를 이룬 듯 보여 가슴 한구석이 부듯했다. 영화기자가 된 보람을 느끼는 건 이럴 때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많이들 알다시피 왕의 대역을 맡게 된 광대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인데, 전체적인 짜임새가 좋고 이야기의 두께가 예상보다 두터웠다.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죽 풀어내는 감독의 역량도 인정할 만하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도 간혹 연상됐고 <마틴 기어의 귀향>이나 <왕의 남자> 같은 영화와 겹치는 느낌도 존재했다.
[에디토리얼] 이번주도 괜찮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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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규모를 속물의 시선으로 훑는 장면을 좋아한다. 땅이 몇 에이커에 고용인은 몇명이고 손님용 식기의 벌 수, 여주인의 옷차림에 관해 집착하는 이야기.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엔 유독 저택이 불에 타들어가는 설정이 잦더라. 계급 몰락에 관한 은유 따윈 접어두고라도 충실하게 쌓아올린 설정들이 잿더미로 돌아가는 장관에는 도리없이 매혹되고 만다. 그리고 여기 시작부터 활활 타오르는 저택이 있다.
두대의 피아노를 맞물려놓고 동생과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주거니 받거니 연주하는 아름다운 청년 지호(주지훈). 조금 전까지 리스트에 취해 있던 그는 어느새 화염에 휩싸인 저택에서 비명을 지르는 새어머니 영랑(채시라)을 얼음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배다른 형제를 거느린 아름다운 어머니의 비틀린 모정. 독선적인 남편의 왜곡된 사랑으로 자식대까지 얽혀버린 운명의 실타래. SBS 주말극 <다섯손가락>은 <아내의 유혹> 김순옥 작가의 작품답게 전개속도가 빠르며 최영훈 P
[유선주의 TVIEW] 뜨겁구나, 뜨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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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좌/우, 진보/보수 중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자문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같은 질문을 던져봤고 많은 것들을 고려한 결과 ‘중도 보수 우파’쯤 된다는 답을 얻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부 사람들은 나를 ‘진보 좌파’라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내가 주로 비판하고 각을 세우는 이들이 흔히 ‘보수 우파’라고 지칭되는 이들이라서가 아닐까 싶다. 내가 ‘보수 우파’ 반대편에 있으니 자동적으로 ‘진보 좌파’로 여겨지는 단순한 계산법이다.
저쪽을 반대하니 이쪽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의 문제점은 일단 접어두자.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고 해도 남게 되는 한 가지 의문점이다. 내가 ‘진보 좌파’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검증되어야 할 의문점, 즉 많은 이들이 ‘보수 우파’라고 생각하는 세력이 정말 ‘보수 우파’인지 말이다.
만약 저들이 정말로 ‘보수 우파’임이 분명하다면 내가 ‘진보 좌파’이거나 최소한 ‘보수 우파’는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진짜 보수 vs 가짜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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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기세가 대단하다. <도둑들>이 1200만 관객을 그러모으는 와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420만명을 동원했다(8월30일 기준). <이웃사람>도 개봉 일주일 만에 140만명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를 보면 한국영화의 상승세는 더욱 뚜렷해진다. 지난해의 경우 1월부터 7월까지 한국영화가 동원한 관객 수는 3800만명인데 올해는 같은 기간 동안 5400만명이다. 대충 계산해봐도… 세상에, 40%나 높아진 수치다.
한국영화가 관객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그것도 별안간 받고 있는 데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석이 나왔다. <씨네21>도 지난 6월에 상반기 한국영화 상승세의 원인을 따져본 적이 있다(858호 ‘기세당당, 한국영화’). 그 기사에서 강병진 기자는 청소년 시절부터 한국영화를 즐겼던 30대가 확고한 시장 기반이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여기에 (투자가 부진했던 탓이긴 하지만) 오랜 시간 기
[에디토리얼] 한국영화, 이제는 정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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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사소하지만 꾸준한 궁금증은 수도권 중산층 60대 전후 남성 퇴직자들의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사랑의 근원에 대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중산층’이란 언론에서 말하는 거창한 기준이 아니라 대략 서울 외곽 중소형 아파트 정도에 거주하는 나와 몇몇 친구들(의 부모님)을 기준으로 한다. 어쨌든 초등학교 동창과 만나도 대학교 동기와 만나도 심지어 결혼해 가끔 친정에 들르는 친구를 만나도 공통된 증언은 ‘아빠가 항상 종편 채널만 틀어놓으셔서 TV를 볼 수 없다’이니 이는 마치 ‘24시간 뉴스채널’이라는 야심찬 슬로건과 함께 등장했던 YTN 개국 당시 종일 채널을 고정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과 다름없지 않은가. 물론 이제 우리 아버지들이 ‘아저씨’보다 ‘할아버지’에 가까우신 데다, 딸들의 평소 추측으로도 인터넷 게시판 어딘가에서 “빨갱이 놈들”을 향해 훈계와 호통을 시전하고 계실 듯한 ‘보수논객’이셨음을 생각하면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일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최지은의 TVIEW] 혼자 보기는 아깝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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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이돌 공화국에 살고 있다. 1세대 아이돌 핑클의 리더 출신인 나조차도 이름과 얼굴을 매치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아이돌 그룹이 쏟아지듯 나온다. 요즘 아이돌은 내가 활동하던 때와 달리 영화, 드라마, 예능,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게다가 K-POP 열풍으로 전세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나로서는 이게 기쁘기도 하지만 속사정을 알고 있는 탓에 안쓰럽기도 하다. 분신술을 쓰는게 아니라면 그들의 스케줄은 살인적일 것이다. 얼마 전 만난 한 아이돌 후배 말로는 아시아권은 당일치기로 갔다온단다. 하루에 두세 국가를 다니기도 하고, 유럽이나 미국처럼 먼 나라도 1박2일이나 2박3일로 후딱 다녀와야 한단다. 맙소사. 인기도, 돈도 좋지만 그 스케줄을 대체 어떻게 지탱할 수 있는 걸까. 그 이야기를 해준 아이돌 후배의 표정도 그리 밝아 보이진 않았다.
한국 아이돌의 평균 나이는 21살이다. 대부분이 10대다. 평균 연습 기간은 4∼5년이다. 이들은 친구, 가
[이효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아이돌, 아니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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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근형의 인터뷰 자리에 따라 나간 건 일상이 무료해서도, 강병진 기자를 감시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나이 많은 배우에 대한 형식적인 예우 차원도 아니었다. <추적자 THE CHASER>를 통해 연기의 지존임을 새삼 입증한 대배우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간 자리였는데도 약간은 긴장이 됐다. 영화나 드라마 속 인상처럼 날카로운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는 짐작과 아버지뻘 되는 연배가 부담스럽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 웬걸, 그의 첫인상은 온화하기 그지없었다. 평소 함께하는 스탭과 배우들에게 밥을 사주곤 한다는 소문이 괜히 나도는 게 아닌 듯했다. 게다가 그는 연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그렇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식의, 지극히 정중한 말투로 응대해서 강병진 기자를 몸둘 바 모르게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혹시 <추적자…>에서 기억나는 대사가 있습니까?
[에디토리얼] 대배우의 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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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물빛이 이상했다. 하긴, 한강에서 ‘물빛’ 타령을 하는 게 더 이상하지. 20여년 전 내가 한강을 처음 보았을 때에도 살아 있는 ‘강물의 빛’ 같은 건 없었다. 뭐랄까, 강이 어떤 것인지 아는 나 같은 촌뜨기의 눈에 그것은 ‘강’이라고 하기에 명백히 어불성설인, 일종의 운하나 수로 혹은 수곽에 가둔 더러운 물 창고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강변에서 데이트와 산책을 즐겼고 청년들은 젊음을 발산하며 위로받았다. 그런 풍경이 눈물나게 짠했다. 죽어가는 강이라 해도 아무튼 거기, ‘강 비스무리한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이렇게 위로를 받는구나.
그런데 말이다. 예전에 서울시가 편찬한 <한강의 어제와 오늘> 이라는 책을 보고 정말이지 ‘깜놀’한 적이 있다. ‘아, 본래의 한강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강이었단 말이야?!’ 정말 놀랐고, 한강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진경산수화로 이름 높은 겸재 정선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그리고 또 그려도 늘 새롭다고 예찬한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미안해,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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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영화의 메카는 상암동인 것 같다. 며칠 전 송해성 감독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상암동 첨단산업센터의 ‘프로덕션 존’은 활기가 넘쳐 보였다. 진행 중인 영화 12편의 사무실이 밀집한 이곳에는 오디션 장소를 알리는 A4 용지가 붙어 있고 스탭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던 것. 올해 상반기의 실적에서 드러나는 한국영화의 생동하는 기운을 맛봤달까, 뭐 그런 느낌이었다. 송 감독이 준비 중인 <고령화 가족>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생각보다는 면적이 넓었고 예상보다 쾌적했다. 예전 한국영화 활황기의 제작 사무실에 비하면 인테리어나 공간 넓이가 부족해 보였지만, 송 감독의 말은 “그럭저럭 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프로덕션 존은 서울영상위원회에서 ‘디렉터스 존’, ‘프로듀서스 존’과 함께 운영하는 ‘영화창작공간 사업’의 일부다. 지금 이곳의 방 12개는 모두 들어찼다. <고령화 가족>을 비롯해 김현석 감독의 <AM 11:
[에디토리얼] 충무로 서부시대의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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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반장 경선이는 강타 오빠의 팬이었다. 작고 마르고 목소리가 가늘었던, 수업시간이면 안경을 챙겨 끼고 첫째 줄에 앉아 선생님과 칠판에 시선을 고정하던 경선이에게 성적과 입시 고민은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학원이나 과외도 포기하고 항상 공부에 지친 얼굴이던 경선이가 유일하게 눈을 빛내며 말이 많아지는 시기는 H.O.T의 새 앨범이 나올 때였다. 학교 앞 음반가게에 며칠 전부터 예약을 해두고 애써 모은 용돈으로 CD를 세장이나 사서 감상용과 소장용, 선물용으로 나누는 경선이와 함께 하교하는 날이면 무조건 이어폰 한쪽씩 나눠 끼고 H.O.T의 노래를 들어야 했다. 지루하고 팍팍한 수험생활 가운데 강타 오빠에게서 삶의 모든 즐거움과 희망을 얻던 경선이가 오빠의 살인미소와 착한 마음씨를 진지하게 찬양할 때면 어쩐지 경건한 기분마저 들곤 할 만큼, 그 시절 우리에게 오빠들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존재였다.
tvN <응답하라 1997>은 바로 그 1997
[최지은의 TVIEW] 친구야, 너도 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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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시간 날 때마다 ‘오늘의 요리’를 올렸더니 사람들 반응이 제각각이다. 변영주 감독을 비롯한 영화계 인간들은 이제 하다하다 안되니 요리 사진을 미끼로 던져 연애질을 하려는 솔로의 마지막 몸부림 아니냐며 가자미눈으로 힐난을 일삼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본업이 요리고 부업이 영화냐며 비웃기조차 한다.
억울한 건 아닌데, 뭔가 그들의 질투를 달래줘야 할 것 같아 이 지면을 빌려 오늘의 요리에 얽힌 사연을 조금 남겨놓을까 한다.
난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어렸을 적 엄마한테 깜빡 속아 소고기인 줄 알고 한입 먹었다가 토한 이후로, 한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 물론 브리지트 바르도처럼 개고기를 먹는 사람을 야만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에게 지구를 걸어다니는 포유동물들은 모두 평등할 뿐이고, 특정 동물에 대한 특권적 애호를 주장하는 건 논리적 모순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저 영화 <파니 핑크>에서 “눈 달린 동물은 먹지 않았다”는 문장을 나중에 비문으로 쓰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오늘의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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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M 사태를 보면서 가장 황당했던 사실은 노조와 파업 파괴 공작이 ‘민영화’됐다는 사실이다. 그 유명했던 1988년 현대중공업 식칼 테러사건 때만 해도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것은 회사의 ‘정규직’들로 구성된 경비대였다. 그런데 바야흐로 신자유주의시대를 맞아 이 분야 또한 ‘아웃소싱’된 셈이다. 물론 이 ‘민영화된 폭력’은 80년대부터 재개발 지역의 철거현장이나 용팔이 사건 같은 정치 영역에서 이미 자주 등장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폭력조직원이거나 이런저런 뜨내기들로 급조된 용역 ‘알바’들이었다. 반면 문제의 컨택터스 같은 현재의 용역경비업체는 특수부대원 출신 직원과 첨단장비를 갖춘 자본주의적 기업이다. 게다가 이들의 활동 영역은 파업 진압이나 요인 경비 같은 차원을 넘어선다. 컨택터스의 홈페이지에는 ‘당사는 국내 업체로는 일찍부터 분쟁지역 파견 전문 민간군사기업을 표방하고 있습니다’라고 적어놓았다는데, <한겨레21>에 따르면 한국에도 이같은 민간군사기업이 10
[에디토리얼] 로보캅은 언제 등장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