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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번째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언제나처럼 국내외 스타들과 수많은 영화와 영화인,그리고 관객으로 넘실거렸던 축제가 끝난 것이다. 이번 부산영화제는 영화의 전당을 중심으로하는 사실상 첫 행사였지만 비교적 단단한 시스템으로 안정적으로 치러졌고 지금 이 글을 쓰는시점(10월11일)까지 큰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스럽다. 남포동 시대의 활력에 대한 그리움과 포토 저널 위주의 행사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영화제의 진정한 주인인 관객에게 보다 큰 즐거움과 흥분감을 안겨주는 문제는 부산영화제 또한 장기적 차원으로 고민하고 있을 터이니 걱정하지 않는다. 보다 큰 문제는 프로그램일 터. 그동안 부산이 세계와 한국영화, 아시아영화를 잇는 포털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근 들어서는 이런 부분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는 이번 부산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영화들이 세계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를 기대한다.서울에서의 일정으로 부산에는 초반 반절밖에 머물지 못해 많은
[에디토리얼] 부산영화제, 그 먹먹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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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특히 남자주인공의 인생이 초장부터 기구하기로 치면 이경희 작가의 드라마만 한 게 있을까.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차무혁, <상두야 학교가자>의 차상두, <이 죽일놈의 사랑>의 강복구 등. 곡절 많은 가족사와 비루한 삶 속에서 남은 혈육, 혹은 그 비슷한 사람을 위해 사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이 남자들은 생에 단 한번 이기적인 사랑이나 눈먼 복수에 에너지를 쏟아내다 그것도 의미를 잃는 순간 스러진다. 뭔가 충족되지 않은 채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은 백마 탄 왕자님의 반대편에서 ‘나란 남자 위험한 남자. 도망치려면 지금뿐’이라고 중얼거리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위악적인 제스처와 허기진 눈빛에 극중 수많은 여자들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정말로 풍덩풍덩 잘도 빠진다. <이 죽일놈의 사랑>에서는 강변에 놀러간 남자를 뒤따라간 여자가 다리에서 뛰어내렸고 KBS2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에서는
[유선주의 TVIEW] 나란 남자 (속은) 착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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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꽤 황당한 뉴스가 타전되었다. 미국의 한 보안업체가 좀비 대비 훈련을 실제로 시행한다는 뉴스였다. 이 좀비 대비 훈련에는 미군과 경찰, 의료진, 연방 공무원 등 1천여명이 참가하며, 가짜 좀비들을 사람들 사이로 투입한다고 한다. 놀라워라, 국가 공권력이 좀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실토라도 하는 것일까.
미국의 좀비 사랑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 시카고나 시애틀 같은 미국 대도시에선 아예 수천명이 모여 좀비 퍼레이드를 연다. 각기 좀비로 분장해 수천명이 흐느적흐느적 도시를 행진하는 것이다. 이 축제는 유럽으로도 수출돼 점점 규모가 늘어나는 양상인데, 영국에서는 ‘좀비 오디션’도 등장했다.
하긴 그뿐이랴. 조지 로메로의 ‘시체 4부작’에서부터 최근 개봉한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미드 <워킹 데드> 등 영화, 드라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좀비 관련 게임들이 증명하듯 이미 매스 미디어는 좀비에게 점령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이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좀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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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부산이다. 10월4일 개막한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이다. 올해도 <씨네21>은 부산영화제 현장에서 데일리를 내고 있다. 이번 사무실은 영화의 전당 바로 옆에 있어서 개막식장에서 쏘아올린 화려한 불꽃을 코앞에서 볼 수 있었다. 나란히 앉은 문재인, 박근혜 후보는 그 불꽃을 보며 대망을 되새겼겠지만, 나는 ‘오늘도 무사히’를 되뇌었다. 영화제라는 곳이 워낙 상황이 급변하는 분위기다 보니 자칫하면 사고를 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오늘도 무사히, 올해도 무사히.
개막 전날인 3일 영화의 전당에 자리한 부산영화제 사무국을 들렀을 때 깜짝 놀랐더랬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프로그래머들이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개막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수영만의 컨테이너 건물을 우당탕 누비던 게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용관 위원장은 “그만큼 시스템이 갖춰졌고 실무자들이 일을 알아서 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부산영화제
[에디토리얼] 부산, 영화가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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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다크 나이트> 시리즈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2001년 초짜 시절(?)에 만들었던 <메멘토>란 영화가 있다.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 죽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인데, 영화 말미에서 주인공은 이미 범인을 죽였음에도 그걸 잊고 계속 범인을 찾아 헤매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이 한줄의 설명에 딱히 살을 더 붙일 것이 없을 만큼 스토리는 단순하다.
하지만 이 단순한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고 크리스토퍼 놀란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후 그는 다시 ‘기억’에 관한 두 번째 작품인 <인셉션>을 만드는데,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가 ‘기억’에 집착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마 아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나 역시 바로 이 ‘기억’에 집착하는 편이다.
흔히 우리는 ‘기억’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담긴 데이터라고 생각한다. 절반은 맞지만 절반은 틀리다. 컴퓨터 하드디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메멘토 인셉션 그리고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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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분위기라는 게 실제로 있는지 몰라도 이번 추석처럼 고요하긴 오랜만이다. 추석이라고 해서 상점가에서 캐럴 대신 민요가 울릴 리 없고 송편과 한과를 주렁주렁 매단 트리가 있을 리 없지만, 뭔가 떠들썩한 분위기가 실종된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한반도를 연이어 강타한 태풍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배 한개에 5천원!), 개천절까지 징검다리 연휴가 가능하긴 하지만 대부분이 사흘짜리 짧은 연휴만 지내야 한다는 상황 때문이기도 할 터이며(추석이 일요일이라니!), MB 정부 5년차를 맞아 얇디얇아진 지갑 탓도 있을 것이다(경제대통령이라고?).
등골이 휘고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일해도 ‘저녁이 있는 삶’조차 누리지 못하는데 연휴마저 짧아 짜증나는 여러분께 정말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씨네21>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합본호 휴가’를 갖는다. 소중한 재충전의 시간인 셈이다. 하지만 죄송스러워도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통 크게 합본호를 준비했다. 이를테면 독자 여러분을 위해 마
[에디토리얼]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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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길에서 주운 긴 막대기를 홰홰 휘두르다보면 어쩐지 팔도 길어진 것 같고 내 능력도 그만큼 커진 것 같아 기분이 썩 괜찮았다. 그렇게 종일 가지고 놀던 막대기는 집에 갈 때가 되면 ‘오늘 놀이는 여기서 끝’이라는 의미로 반 동강을 내거나 괜히 여기저기 후려치다 던져버리는데 어느 날인가는 각목 조각을 학교 철봉에 휘둘렀나보다. 어둑한 하늘에 쩡 하는 소리가 울리며 손에 저릿한 감각이 전해졌다. 조금 전까지 내 몸과 의지의 연장인 양 휘둘러대던 막대기와 철봉의 물성이, 그리고 예상치 못한 큰소리의 울림으로 인해 빈 운동장의 공간감이 확 끼쳐오는 기분.
코흘리개 시절의 기억을 불러낸 이유는 SBS 드라마 <신의>의 한 장면에서 출발한다. 원나라에서 고려로 향하던 공민왕(류덕환) 일행을 호위하던 무사 최영(이민호)은 기철(유오성) 수하의 습격을 받은 노국공주(박세영)를 살릴 ‘화타의 제자’를 찾아오라는 명을 받는다. ‘하늘문’을 통해 2012년 봉은사로 타임슬립한
[유선주의 TVIEW] 아우, 어쩜 뭐 하나 쉬운 게 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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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독재자였고, 침묵한 나도 공범이다”라며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통렬히 참회했던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가 85살로 지난해 세상을 떴을 때, 나는 한동안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해 생각했다.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스탈린’이었던 어떤 생,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일지라도 그것을 갈무리하기 위해 필요했을 고통과 용기와 책임. 독재자의 자식이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는 지난한 독립의 과정에서 그녀는 이겼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평안한 휴식을 빌었다.
이 땅에도 독재자의 자식이 있다.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박정희’였다. 그게 어찌 그녀의 잘못이겠는가. 문제는 독재자 아버지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혹은, 독립할 의사가 없는) 그 딸이 권력을 쥔 거물 정치인이 되어 자신의 입으로 “5•16은 아버지가 불가피하게 선택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는 괴이한 형국의 아연함. 이것 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헌법과 국민을 도대체 그녀는 뭘로 보는 것인지!
얼마 전 그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그 사진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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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소식은 우리 모두를 기쁘게 했다. 영화제의 최고상이라고 해서 항상 최고의 영화가 받는 게 아니고 얼마간의 운이 따라야 받을 수 있긴 하지만 이번 수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피에타>는 황금사자상을 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이고 김기덕 감독은 그런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으니 말이다. 외려 2004년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빈 집>이 진작에 황금사자상을 받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의 이번 수상은 ‘한국 문화의 높은 수준을 세계에 확인시켰다’거나 ‘학력이란 삶에서 별 중요치 않은 요소임을 깨닫게 했다’는 차원보다는 김기덕 감독에게 큰 힘을 줬다는 점에서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그동안 김기덕 감독이 한국 영화계, 나아가 한국사회와 불화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업적이 모두에게 인정받게 됐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다. 데뷔작 <악어>부터 한국 관객은 그의 영화를 불
[에디토리얼] 황금사자상이 반가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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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10층 시사 교양국 한구석에는 ‘<PD수첩> 작가방’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층침대 두개가 좁은 방을 꽉 채우고, 얇은 간이벽 너머로 사무실 소음이 귓가를 울렸지만 작가들을 위한 수면실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들떴다. 촬영 테이프 컨버팅을 기다리거나, 외국 자료 번역을 맡겨놓았거나, 인터뷰 녹취를 풀거나, 나를 비롯한 1, 2년차 막내작가들이 집에 가길 포기하고 회사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날은 적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잘 곳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잠시 눈 붙일 곳, 등 펴고 누울 곳이 없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여직원 수면실의 폭신한 침대에서 새벽 쪽잠이라도 잘 수 있는 날은 드물게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한 동기가 잠긴 수면실 문을 두드리자 새벽 뉴스를 기다리며 자고 있던 아나운서가 달려나와 한참 싫은 소리를 해댔을 때, 나는 복도 문 뒤에 숨어 있었다. 프리랜서, 작가들의 직원 수면실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은 게
[최지은의 TVIEW] < PD수첩>을 돌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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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벤이 한반도에 상륙하자 어김없이 마녀 빗자루처럼 간판이 날아다녔다. 간판에 치여 사람이 다쳤다는 뉴스들도 알뜰하게 타전되었다. 우리 동네 청국장집 간판은 20여 미터를 날아 경찰서 앞마당에 체포되었다. 여기 한국은 태풍 속에서 간판들이 날아다니며 호객 행위를 하는 마법의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자영업자가 많은 한국. 이 나라 도시에 넘쳐나는 커다랗고 볼품없는 대형 간판들은 변변한 안정성 검사도 없이 건물에 위태롭게 매달린 채 태풍이 볼 때마다 호시탐탐 비상을 꿈꾼다. 악다구니하듯 매달려 있는 이 불안한 간판들이야말로 압축적 근대화를 거치면서 피로에 휩싸인 한국사회의 얼굴 표정에 다름없을 것이다.
간판은 도시의 얼굴, 도시의 정체성이다. 세계에서 이렇게 간판이 많은 나라는 홍콩과 일본 정도일 텐데, 한자 모양을 강조하는 홍콩 간판이나 강렬한 색 사용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본 간판과 달리 한국 간판은 아무런 정체성이 없다. 색, 모양, 크기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간판이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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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한주를 보내고 있다. 우선 아침저녁으로 한기가 느껴질 정도인 데다 대낮의 밝은 햇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아 괜찮다. 이제 가을이 성큼 한발을 내디딘 듯하다. 월요일에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 기자시사가, 화요일에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기자시사가 열렸던 것도 괜찮았다. 영화의 장르며 규모, 스타일이 다 다르지만 두 영화 모두 나름의 성취를 이룬 듯 보여 가슴 한구석이 부듯했다. 영화기자가 된 보람을 느끼는 건 이럴 때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많이들 알다시피 왕의 대역을 맡게 된 광대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인데, 전체적인 짜임새가 좋고 이야기의 두께가 예상보다 두터웠다.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죽 풀어내는 감독의 역량도 인정할 만하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도 간혹 연상됐고 <마틴 기어의 귀향>이나 <왕의 남자> 같은 영화와 겹치는 느낌도 존재했다.
[에디토리얼] 이번주도 괜찮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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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규모를 속물의 시선으로 훑는 장면을 좋아한다. 땅이 몇 에이커에 고용인은 몇명이고 손님용 식기의 벌 수, 여주인의 옷차림에 관해 집착하는 이야기.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엔 유독 저택이 불에 타들어가는 설정이 잦더라. 계급 몰락에 관한 은유 따윈 접어두고라도 충실하게 쌓아올린 설정들이 잿더미로 돌아가는 장관에는 도리없이 매혹되고 만다. 그리고 여기 시작부터 활활 타오르는 저택이 있다.
두대의 피아노를 맞물려놓고 동생과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주거니 받거니 연주하는 아름다운 청년 지호(주지훈). 조금 전까지 리스트에 취해 있던 그는 어느새 화염에 휩싸인 저택에서 비명을 지르는 새어머니 영랑(채시라)을 얼음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배다른 형제를 거느린 아름다운 어머니의 비틀린 모정. 독선적인 남편의 왜곡된 사랑으로 자식대까지 얽혀버린 운명의 실타래. SBS 주말극 <다섯손가락>은 <아내의 유혹> 김순옥 작가의 작품답게 전개속도가 빠르며 최영훈 P
[유선주의 TVIEW] 뜨겁구나, 뜨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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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좌/우, 진보/보수 중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자문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같은 질문을 던져봤고 많은 것들을 고려한 결과 ‘중도 보수 우파’쯤 된다는 답을 얻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부 사람들은 나를 ‘진보 좌파’라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내가 주로 비판하고 각을 세우는 이들이 흔히 ‘보수 우파’라고 지칭되는 이들이라서가 아닐까 싶다. 내가 ‘보수 우파’ 반대편에 있으니 자동적으로 ‘진보 좌파’로 여겨지는 단순한 계산법이다.
저쪽을 반대하니 이쪽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의 문제점은 일단 접어두자.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고 해도 남게 되는 한 가지 의문점이다. 내가 ‘진보 좌파’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검증되어야 할 의문점, 즉 많은 이들이 ‘보수 우파’라고 생각하는 세력이 정말 ‘보수 우파’인지 말이다.
만약 저들이 정말로 ‘보수 우파’임이 분명하다면 내가 ‘진보 좌파’이거나 최소한 ‘보수 우파’는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진짜 보수 vs 가짜 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