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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환. 그는 재일조선인이다.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선임연구원인 그는 2009년 서울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사카총영사관에 여행증명서 발급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경향신문> 2012년 12월10일치 사설 ‘무국적 동포 인권 누가 보호해줘야 하나’) “경찰청에서 신원증명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정씨는 조선적(朝鮮籍)을 지닌 재일조선인이다. 그의 국적은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일본도 아닌 ‘조선’이다. “조선적들은 무국적자”이며 “친북성향도 의심되기 때문에 외국인보다도 엄격하게 입국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한국 정부를 상대로 그는 현재 법적 소송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에서 패했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정씨의 사연을 뒤늦게 접한 뒤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 2008년 이후 한국 정부가 조선적 재일조선인들의 여행증명서 발급 요청을 묵살해왔음을 알게 됐다. 그전엔 많아야 한해 4
[에디토리얼] 동정과 연민만으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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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마침내 그날이 왔다. 세면대 앞 걸레 빤 물통에 휴대폰이 수직낙하하고 만 것이다. 다행히 물에서 건져낸 휴대폰은 켜진 채였고, 그 상태로 포털 앱을 열어 검색을 시작했다. ‘휴대전화 물에 빠졌을 때’는 자동완성 검색어였다. 절대 전원을 켜지 말고 수리센터로 가져가라는 정석적 조언과 함께 ‘드라이어로 말리기, 쌀자루에 넣어두기’ 같은 초동 대처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곧바로 트위터 앱을 켜서 사태를 보고했다. “일단 분해해서 말리세요”부터 “TV 뒤에 하룻밤 두는 게 최고입니다” 같은 신기한 솔루션까지, 5분 만에 십수개의 조언이 쏟아졌다. 결국 티슈로 물기를 제거하고 드라이어로 대충 말린 뒤 쌀통 깊숙이 휴대전화를 파묻어두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휴대폰이 없는 밤은 어쩐지 낯설고 불안했다. 눈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캄캄한 방에 누운 채로 게임, 트위터, 웹서핑을 하는 데 중독된 탓이었다. 지난해 겨울 KBS <인간의 조건> ‘휴대폰
[최지은의 TVIEW] ‘없이’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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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배우가 목을 길게 빼고 뚱한 표정으로 나란히 서 있는 <스토커>의 포스터는 상업영화 광고 이미지치고 대담하다. 그랜트 우드의 그림 <아메리칸 고딕>(1930, 위) 속 부녀처럼 그들은 “우리집에 웬만하면 오지 마세요”라는 신호를 쏘아보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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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액션영화에 흔히 발급되는 처방으로 “먼저 관객이 연연할 만한 인물을 제시해라. 그래야 관객이 그가 다치거나 죽을까봐 염려하게 되어 스릴이 커진다”라는 항목이 있다. 그러나 인물의 성격을 미처 파악할 겨를 없이 도입부부터 쓰나미가 스크린을 덮치는 <더 임파서블>은 좀 다른 경우였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재난에 휩쓸린 사람이 어떤 조건과 성격을 가진 인물이건 막대한 자연재해가 인간이라는 미력한 존재에게 일으키는 보편적인 감정에 관심을 보인다. 주인공 마리아(나오미 왓츠)와 헨리(이완 맥그리거) 부부에 관해 특정한 판단을 내리기 전이었는데도, 나는 가차없이 만물을 쓸어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물의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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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재밌는 멘션을 하나 봤다. 최근 흥행한 영화 중 대표적인 게 <레미제라블> <7번방의 선물> <남쪽으로 튀어>인데, 이 영화들이 흥행한 이유가 대선에서 패배를 맛본 48%가 영화관만 찾아서 돌아다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한 내용이지만 문득,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해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영화의 내용을 보면 (<7번방의 선물>은 보지 못했기에 나머지 두 영화만 놓고 보면) 현실의 벽 앞에서 처절하게 부서지고 깨지는 내용이다. 물론 그 안에는 처절한 몸부림도 있고, 미래에 대한 약간의 희망도 있지만 어쨌거나 결말은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위로’가 된다면, 바로 영화 속 현실이 개박살이 났기 때문이라고밖엔 해석이 안된다. 어려운 현실을 초인적으로 극복해내는 내용을 봐도 시원찮을 판에 영화 속 개박살을 보며 “와, 나랑 똑같아! 너무 공감돼!” 하며 위로를 받는다? 가히 무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공감쟁이 vs 권위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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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5대 국정목표를 훑어보니, 유독 창(創) 자가 많은 것이 대번에 눈에 띄었다. 일자리 창출의 창, 창조경제의 창, 창의교육의 창. 한자사전을 찾아보니, 창출(創出)과 창조(創造)와 창의(創意)의 ‘창’은 비롯하다, 시작하다라는 뜻을 지녔다. 상식적으로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기존의 것을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해야만, 새로운 것이 비롯되고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창(創) 자 안에 이미 칼 도(刀) 자가 기둥처럼 세워져 있지 않은가. 베어내지 않고 피흘리지 않으면, 창출과 창조와 창의는 불가능하다. 때론 제 몸, 제 살의 환부에도 칼을 과감하게 들이댈 수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런 의지가 새 정부에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정해졌고, 대통령 취임식이 코앞이긴 하지만, 섣불리 아니라고 단정하긴 이르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이렇게 물어볼 순 있을 것 같다. 새 정부가 만약 칼을 꺼내든다면, 그 칼끝은 어디로 향할까. 무엇을 베어내야 할지 인
[에디토리얼] 창(窓)과 창(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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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잡지사 선배가 SBS 드라마 <토마토>의 구두 디자인 대결에 관해 격분하는 걸 듣고 ‘오오, 그렇구나’ 뒤늦게 깨친 일이 있다. 첼리스트의 무대용 구두를 두 회사가 각각 제작한 뒤 어느 쪽 구두가 선택받는지 가리는 미션에서 악녀 세라(김지영)는 진짜 루비가 달린 샌들 형식의 구두를, 주인공 한이(김희선)는 평범한 검은색 통굽 구두를 제작한다. 처음엔 세라의 것을 골랐던 첼리스트는 신어보니 편하다는 이유로 일본 무대에선 통굽 구두를 신겠다고 통보한다. 이를 두고 선배는 여성이 구두에 두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라고 혹평했었다. 더불어 창의적인 직업인에 대한 묘사가 부실한 드라마까지도.
KBS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을 보다가 선배의 말이 떠올라 <토마토>를 ‘다시 보기’했더니 과연! 문제의 구두는 무대의상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검정색 효도신발처럼 생겼더라. 화려함과 고급을 추구하는 악녀가 착한 주인공에게 허를 찔리는 반전
[유선주의 TVIEW] 자, 이제 창조적인 작업물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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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3월, 내가 가장 기대하는 영화는 제주 4.3 항쟁을 다룬 오멸 감독의 <지슬>이다. 한 사회 공동체에는 가능한 많이, 더 다양한 방법으로 예술이 되어야 하는 사건들이 있다. 극단적 폭력성이 악랄한 사건일수록 다양한 예술작업이 후속되어야 한다. 예술은 ‘사건’의 가장 후미진 경계까지를 보듬으며 인간의 치유에 관여하는 숙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 항쟁’, 가장 가깝게는 ‘용산참사’ 같은 ‘사건’들은 그러므로 더 충분히 더 적극적으로 예술이 되어야 한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착각)하는 사건들에 대한 충분한 공유와 다양한 공감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과거의 사건은 너무도 흔히 현재의 사건으로 폭력적 재발을 감행하므로 더더욱 그러하다.
지슬. 제주 방언으로 ‘감자’라는 뜻의 이 영화가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가슴이 뭉클했다. 제주는 4.3의 트라우마가 현재형인 곳이다. <지슬>의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지슬>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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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과 김지운,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이 나란히 개봉한다. 기쁜 일이지만 이를 애국심 같은 감정으로 포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할리우드라는 무대가 세계 최고인 게 사실이긴 하지만, 두 감독이 ‘할리우드 진출’을 목표 삼아 영화를 만들어온 것이 아니므로 목청 높여 ‘한국영화의 쾌거’ 따위의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사실 두 감독을 포함해 여러 한국 감독이 할리우드로부터 부름을 받아온 건 꽤 오래된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때가 맞지 않았거나 할리우드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구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와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는 그들이 할리우드에서 만들고 싶었던 영화라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두 감독이 구상한 바가 한국에서만큼 척척 이뤄지지야 않았겠지만 그럭저럭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을 터. 두 영화가 궁금한 건 그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과 니콜
[에디토리얼] Thank You and Good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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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화가 펠릭스 발로통의 <공>(Le Ballon,1899). 때로는 붉은 점 하나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 해일에 아들을 잃은 <더 임파서블>의 헨리(이완 맥그리거)에게 마지막으로 본 아이가 갖고 놀던 빨간 공이 그랬듯이.
*1월8일 일기에 <더 헌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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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의 주인공 피신 몰리토 파텔(수라즈 샤르마)의 취미는 우표 수집이 아니라 종교 수집이다. 어린 파이는 힌두의 신 크리슈나의 입속에 들어 있었다는 우주의 형상을 상상하며 황홀해하고, 기독교의 신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외동아들을 보내 죽게 했다는 신약성서의 이야기가 말도 안된다고 반응하면서도 매료된다. 소년은 한 종교의 신에게 다른 신을 소개해주어 고맙다고 기도까지 한다. 말하자면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신자가 된다는 일의 의미는 아무개 신을 만물을 창조하고 관장하는 유일한 절대자로 섬기는 행위라기보다 그 종교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까다로운)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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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벽서라고 불렸다. 개인적 감정을 담은 투서도 있었지만, 체제비판적인 익명서도 공개 장소에 게시되곤 했다. 옥사와 사화의 빌미가 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때문에 처형되었다. 벽서는 대중매체도 없고 표현의 자유도 없던 시절, 백성이 자기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였지만, 조선의 통치자들은 민심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이를 금지했다. 벽서를 게시한 자는 교형에 처했고, 소지만 해도 곤장으로 처벌했다.
표현의 자유를 헌법에 모셔둔 채 시민의 일반의지를 존중한다는 근대사회의 안온한 안뜰의 누군가가 보기에, 힘없는 백성이 벽서를 게시하고 칠흑 같은 골목으로 사력을 다해 도망치는 풍경은 그렇게 낯설고 기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여기는 골목에 대자보 한장 붙였다는 이유로 청년들이 고문을 당했던 그 악몽의 군사독재 시절을 경유한 한국이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벽서를 금지당한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 그것도 ‘더불어 잘 사는 복지 마포’라는 슬로건을 염치없이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마포구 벽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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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를 나와 주간지로 옮겼을 때 나름 기대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매일 촉을 세우고 있다가 깨알같이 마감하는 일보다는 한주 단위로 큼직큼직 움직이는 일이 아무래도 편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웬걸. ‘잉크밥’깨나 먹어본 선배들은 하나같이 ‘일이 괴롭기로 으뜸은 주간지’라고 단언했다.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유하자면 일간지 기자의 삶은 마라톤 주자와도 같다. 아주 길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으며 고층 빌딩 숲과 공원도 지나치는 덕에 지루하지만은 않은 코스를 그들은 달린다. 반면 주간지 기자의 삶은 중거리 주자와 비슷하다. 꽉 막힌 실내 육상 트랙을 돌고 돌고 또 도는(월간지의 삶은 체험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매달 열리는 선수권에 출전하는 단거리 주자의 그것과 유사하지 않을까). 일간지 기자가 매일 꾸준히 주행한다면, 주간지 기자는 매주 초반 페이스 조절을 하다 후반에는 막판 스퍼트, 즉 전력질주를 펼쳐야 한다.
[에디토리얼] 지금, 잠시 멈춰 서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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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나는 가수다> 로고를 본떠 만든 전단지가 대유행이었다. 자존심을 건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레전드급 가수들처럼 ‘우리도 그러하다!’고 묻어가는 한편 황금색으로 번들거리는 원본 이미지는 너무 거창한 나머지 살짝 훼손한 것만으로 웃음이 터졌으니 홍보로는 제격이었겠지. 유행에 뒤처진 감이 있지만 KBS <사랑과 전쟁2>도 57화 ‘나는 시어머니다’편에서 레전드급 시어머니를 불러냈다. 시집살이를 못 견디고 이혼한 큰며느리가 위암 말기로 사경을 헤매는 병실에서 “재혼 자리는 전처 집에서 알아봐줘야 잘 산다더라”며 사돈네에 전화를 넣으라는 구식 시어머니. 그리고 큰집에 이어 시어머니를 모시게 된 작은며느리도 갑상선암이 발병했다.
보는 것만으로 암이 생길 것 같은 시어머니가 또 있다. MBC <백년의 유산>에서 방영자(박원숙)는 명동에서 사채를 하며 홀몸으로 자식을 키우고 국내 5위의 식품회사 금룡푸드의 회장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며느리 민채
[유선주의 TVIEW] 시어머니계의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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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화를 받았습니다. 새로 시작되는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른바 멘토를 맡아달라는 것이죠.
상당히 높은 출연료와 폭넓은 인지도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만 고민 끝에 고사를 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양면성은 <씨네21>을 읽는 고상한 독자라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도전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반면에 기회를 뺏는다는 것을요. 단시일 안에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음악인으로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만 최종결승까지 갈 경우엔 거의 매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면서 결말이 뻔한 아침드라마 같은 존재로 자리잡게 됩니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의 가장 큰 승자는 심사위원이자 멘토로 불리는 사람들이죠. 미디어에 의해서 권위를 인정받고, 그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인물을 뽑게 되는 겁니다. 남한과 북한의 최고 정치 지도자는 모두 최고 통치자의 자녀입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남자주인공은 재벌 3세였습니다. 이처럼 부와 권력이 세습되는 상황에서 음악
[김남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미디어 출연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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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디지털 온라인 시장이 2011년에 비해 26%나 성장했다는 영화진흥위원회의 발표는 여러모로 반갑다.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해 인터넷 VOD, IPTV, 디지털케이블TV 등을 포함한 디지털 온라인 영화시장의 매출은 2158억원을 기록했다. 2009년 888억원 정도였던 디지털 온라인 매출액은 2010년 1109억원으로, 2011년에는 1709억원으로 크게 상승해왔다. 4년만에 거의 세배 정도 시장이 커졌다는 이야기다. 영진위는 제도적, 기술적 보완을 통해 이 같은 분위기를 살려나가 2017년에는 디지털 온라인 영화시장을 1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부가판권 매출이 전체 영화시장의 40%를 차지해 한국 영화계는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인 터전을 갖게 되는 셈이다.
사실 디지털 온라인 시장의 성장은 한국 영화계의 숙원이었다. 지금부터 10여년 전인 1999년만해도 비디오 매출은 8970억원으로 전체 영화시장의 76%를 차지했다. 당시는 멀티플렉스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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