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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가 5월19일 서울 올림픽경기장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시규어 로스의 실황은 스튜디오 앨범과 거의 차이가 없지만, 무대 연출과 영상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로서의 독보적 호소력은 현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천의무봉한 음악과,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을 인공조명으로 모방한 무대는 ‘제2의 자연’을 조성했다. 음악을 ‘반주’하는 영상이 내내 영사된 가로가 긴 띠 모양의 스크린은, 영화의 사운드트랙과 대구를 이루는 음악의 ‘이미지트랙’이라고 부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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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모처럼 공책에 샤프펜슬로 글씨를 쓰기로 마음먹고 나니 책받침이 아쉬워졌다. 사무용품 위주로 물건을 갖춰 놓은 ‘문구센터’ 몇곳을 가보았지만 실패였다. 그래, 문구센터라서 없는 거야. 책받침 하면 문방구지. 집 근처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어 어렵지 않게 찾겠거니 교문 주변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편의점뿐이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생활과 멀어진 지 오래인 나는 미궁에 빠졌다. 요즘 학생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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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은… 아름다웠다. 의도치 않았던 접촉의 불쾌함은 스크린이 영롱한 빛을 내뿜는 순간 사르륵 녹아버렸고, 어깨를 대리석화했던 피로는 칸의 따가운 햇살을 받아 자글자글 타버렸다. 이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훌륭한 영화는 훌륭해서 좋았으며, 후진 영화는 농담거리를 제공해줘서 좋았다. 딱딱한 바게트는 오래 씹을 수 있어서 좋았고, 캔 하나에 3200원짜리 콜라는 아껴 먹으니 좋았다. 천근만근 데일리는 줄 섰을 때 읽을 거리 되니 좋았고, 변덕스런 날씨는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내 생애 최초의 칸은 내 생애 최대의 낙천주의라는 기이한 증상을 안겨준 것이다.” 지금은 퇴사한 동료가 칸영화제를 다녀온 직후 오픈칼럼이라는 꼭지에 털어놓은 심경이다. 평소에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던 친구였는데,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이같은 예찬론을 펼친 걸 보면, 첫 경험의 쇼크가 엄청났던 모양이다.
칸에 가본 적은 없지만 베니스엔 딱 한번 가본 적이 있다. 두 영화제의 분위기가 천
[에디토리얼] 영화의 감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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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화두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5.18민주화운동을 “북한 소행”으로 몰고, 희생자들을 “홍어”, 시신이 담긴 관을 “택배”라 조롱하는 일베 회원들의 패륜적 발언들은 5월18일 아침을 달궜다. “민주화” 발언을 했던 한 아이돌은 본심이야 어쨌든 일베의 아이콘이 되었다. 심지어 조갑제씨마저 광주 북한군 침투설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종북’으로 낙인찍는 걸 보면 일베의 폭주는 불신지옥 집단과 닮아가고 있다.
일베는 지역혐오, 여성혐오, 인종혐오 등 약자들에 대한 온갖 혐오들이 들끓는 용광로처럼 보인다. 극우적 선동이 밤낮으로 괴이하게 과열되는 곳, 누가 더 근사한 혐오 발언을 하고 인증숏을 날리는지 앞다투어 경쟁하는 인터넷 ‘패션극우’들의 왕국.
혹자는 아직 일베가 인터넷 커뮤니티 차원에 머물러 있지만 유럽처럼 인기있는 극우 정치인과 만난다면 길거리를 함께 활보하고 국회 명함을 파는 정당정치 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리있다. 이들이 길거리에 쏟아져나온다면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진격의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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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간 불화를 다룬 TV 솔루션 프로그램들은 대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격렬한 갈등상황에 놓인 문제가족의 변화와 화해를 통해 가벼운 깨달음을 얻은 뒤 기승전결이 끝난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구성된다. 한데 지난해 이맘때부터 올 5월까지, 6개월 간격으로 각 2회씩 3부가 방영된 <SBS 스페셜-무언가족>을 볼 때만큼은 맘이 편치 못했다. 상담을 통해 화해의 실마리를 얻은 가족이 있는데도, 어쩐지 해결의 후련함과는 거리가 멀다.
<무언가족>에 출연한 다양한 가족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상당 부분 돈과 시간에서 출발한다. 시간을 팔아 돈을 마련하는 동안 소외된 이는 입을 닫고, 돈을 벌지 못해 시간이 남는 쪽은 경멸과 무시 속에 곪아간다. 남의 성공담에 혹하는 현실감각 없는 남편에게 “말 같은 소리를 해. 역겨워 듣기 싫어 죽겠어”라고 쏘아붙이며 품 안의 개에게 “아빠 물어!”라고 지시하는 아내.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푸는 아버지를 피해 장애를 가진
[유선주의 TVIEW] 마침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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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애니메이션과 특수효과의 거인 레이 해리하우젠이 5월7일 타계했다. 그가 괴물을 창조한 <신밧드와 호랑이의 눈>은 (아마) 내가 극장에서 본 최초의 영화였을 거다. 어른이 된 뒤 감독 이름을 찾아보았지만 번번이 까먹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첫 영화를 영영 ‘해리하우젠 작품’으로 기억할 모양이다. <호빗>의 용이 아무리 굉장한 위용을 드러내도 내겐 해리하우젠의 외눈 괴물과 해골부대만큼 무섭지 않을 게 확실하다. 해리하우젠은 진짜 동물도 종종 이용했다고 한다. 사진은 <신밧드의 일곱 번째 모험>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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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Shame)의 주연배우 마이클 파스빈더가 2012년 <보그>와 가진 인터뷰를 읽었다. 무슨 이야기 끝엔가 그는 영화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노라고 했다. 그만 양손 맞잡고 공감해버렸다. ‘shame’은 우리말로 옮기자면 ‘치욕’보다는 부드럽고 ‘수치’보다는 탁한 느낌의 단어다. 위아래 입술이 맞닿은 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잘 붙인 제목 하나 열 줄거리 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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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 조석변(朝夕變)이라 했다. 아침저녁이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덕이 죽 끓었다. “언제 발표하나요?” 문의전화가 이어졌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뜨끔했다. 결정되면 개별통보하겠다고 했으나 주초까지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뜸들이지 말고 미리 털어놓는 것이 좋겠다. 제18회 영화평론상 수상자는 아쉽게도 없다. 당선작을 뽑지 못했다. 마감일인 4월26일까지 접수된 응모작은 모두 42편. 지난해 66편보다 응모작 수가 20편 이상 줄었다. 지난 3년 동안 평균 응모편수가 50편 정도였으니 미리 낙담하진 않았다. 미지의 재능과 열정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예상과 달리) 국내외 작가 감독들이나 문제작들에 대한 비평보다는 비평의 제재로 삼기에 다소 의아해 보이는 영화들에 대한 관심이 컸다. 문제는 그 의아한 선택을 설득할 만큼 참신하고 도전적인 글들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 영화들의 무엇이 평론가 지망생들의 비평적 욕망을 자극한 것일까.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에디토리얼]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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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몸 구석구석이 저려오고 누군가에게 맞은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드센 선생님과 학창 시절을 보낸 독자분들이라면 체벌을 생각하실 수도 있겠으나 저의 경우엔 육체적 고통이 가르침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프로레슬러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엄격한 사제지간의 불문법이 존재하는 곳이지요.
저에게는 여섯명의 스승이 계십니다. 김일, 타이거 도구치, 조지 다카노, 최태산, 이왕표, 역발산. 이분들의 성함을 키보드로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제 몸이 살짝 떨릴 정도입니다. 어마어마한 포스를 갖춘 분들이죠.
김일 선생님은 자타공인 탈아시아급의 육체와 스트렝스(힘)를 가지고 일세를 풍미했던 분입니다. 저에게는 구름 위의 성층권 너머에 존재하는 분이라서 직접 링에서 지도를 받는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젊은 시절의 혹독한 시합으로 인해 말년에 휠체어를 써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꼭 제자들의 경기를 보러 오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링 가까이에서 관전을
[김남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맞는 게 이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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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이십대 중후반과 삼십대 초중반을 꼬박 바쳤던 회사를 불시에 그만두고 나자 한동안 밤샘 마감이 없어도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졌다. 내 인생 최고의 시간들은 이미 끝나버린 것 같은데 늘어난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앞으로 살날이 50년은 더 남았고, 최소한 그 절반 정도는 일을 해야 할 텐데, 도대체 뭐 해먹고 살 것인가. 돈도 돈이지만, 스스로 가장 신나게 살았던 시기를 떠나보내고 남은 것은 고단하게 펼쳐지는 일상과 현실적인 문제뿐이라는 게 마음을 자꾸 가라앉게 만들었다. 인생에 뭐 하나 정리된 것도 없는데 애매하게 나이만 먹고 고민거리는 늘고 체력은 달리고, 어떡하지 나?
그러던 중 QTV <20세기 미소년>을 만났다. 사실 90년대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H.O.T의 문희준과 토니안, 젝스키스의 은지원, god의 데니안, NRG의 천명훈이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다니, 토니안 말대로 “90년대였으면 출연료가 감당 안돼서” 모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천명
[최지은의 TVIEW] 오빠들, 안 죽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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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27일 일기에 <아이언맨3> 결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셰임>, 그리고 이탈리아 화가 아고스티노 카라치의 <피에타>. 마이클 파스빈더가 벗은 몸을 시트로 감고 천장을 응시하는 <셰임>의 첫숏은 몇초 동안 정사진으로 착각할 지경이다. 시트도 마침 성모 마리아의 색인 푸른색이라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그린 서구 종교화가 즉각 떠오른다. 파스빈더는 예수라고 해도, 옆 십자가에 못박힌 죄인이라고 해도 납득이 되는 멋진 얼굴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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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 화장실에서 극장 직원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우연히 들었다. 이번 주말 흥행몰이가 예상되는 <아이언맨3> 개봉을 앞두고 두명의 스탭은 마치 지평선에서 다가오는 토네이도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심경인 듯했다. 한편 다른 한명은 매점에 오징어 굽는 기계가 들어올까봐 걱정스러워 했다. 오징어구이는 나 역시 반대라고 하마터면 끼어들 뻔했다. 누가 뭐래도 구운 건어물 냄새는 몰입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분해와 조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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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버스, 지하철처럼 밀폐된 공간에만 들어갔다 하면, 예전 안기부 조사받던 남산 대공분실이 연상되면서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쥐어뜯는 것 같고 머리가 터질 것 같으면서 심한 설사가 쏟아지고 구토를 하여 십여년간 이 일로 인해 가족들이 받은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승일 감독의 여동생인 전승아씨가 쓴 탄원서의 일부다. 전승일 감독을 모른다. 만난 적이 없다. 십여년 전, 영화인들이 보내온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후보 추천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한 것이 전부다. 독립다큐멘터리에 김동원이 있다면, 독립애니메이션엔 전승일이 있구나. 수학공식처럼 그렇게만 외워뒀던 것 같다.
이름만 알고, 얼굴은 모르는 전승일 감독이 몇달 전 <씨네21>에 두툼한 우편물을 보내왔다. 2월13일이었다. 전 편집장에게서 건네받은 서류 봉투 안에는 탄원서 외에도 갖가지 문서들이 들어 있었다. 국립법무병원의 정신감정 결과 통보문이 있었고, 경희의료원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서가
[에디토리얼] 그날이 다시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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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왜 백혈병에 걸렸는지, 어째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는지 밝혀낼게. 아빠가 꼭 약속 지킬게.” 이런 말을 하는 아버지가 우리 앞에 있다. 어디서 바람이 분다. 젖은 손을 바람이 핥고 간다. 말라가는 손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나는 생각한다. ‘국가’라는 단위의 공동체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이 있을 때, 그 억울함은 누가 풀어줘야 하는 것일까. 가장 좋은 것은 억울한 죽음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발생했다면 최선을 다해 해원해야 한다. 죽은 자를 위해, 산 자를 위해,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갈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애쓰는 것이 피를 나눈 친족뿐이라면 그것은 원시사회다. 혹은 혈통 공동체가 중심인 중세 봉건사회이거나. 현대사회는 억울함을 조율하기 위해 보다 합리적인 합의시스템을 활용한다. 법과 언론이 그 역할을 하기 위해 공공성을 부여받는다. 회자되는 저 엄숙한 ‘법정신’과 ‘언론정신’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보살피라는 사회적 책무에 대한 표현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천부당 만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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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날리고 스케치북을 넘기는 이벤트보다 상대 머리 위로 내려앉은 벚꽃을 떼어주며 수줍게 운을 떼는 소박한 청혼이 어울리는 계절. 벚나무 길을 걸으며 그림 같은 데이트를 즐겼으나 영 좋지 않은 타이밍에 청혼한 남자와 집에 돌아가고픈 마음에 사로잡힌 여자가 있다. MBC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의 한태상(송승헌), 서미도(신세경) 커플 이야기다.
서른아홉과 스물일곱. 열두살 차이 남녀의 첫 만남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채업을 하는 보스 밑에서 일하던 태상이 미도 아버지의 헌책방에 수금을 하러 찾아갔던 것. 독한 눈빛으로 맞서는 미도를 보며 집안의 몰락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 태상은 미도네 사채이자를 탕감해주고 미도를 위기에서 구했으며 이후로도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학비를 지원했다. 회사를 키우고 문화사업을 시작한 태상이 사랑을 키운 7년 동안, 미도는 나이 많은 깡패 아저씨의 영문 모를 호의에 두려움과 모멸감을 느끼며 언
[유선주의 TVIEW] 솔직함이라는 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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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자마자 욕부터 튀어나왔다. 꼭두새벽부터 뭔 짓인가. 삽으로 맨바닥을 벅벅 긁어대는 소리가 거슬려 선잠에서 깼다.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젖히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주정뱅이 그 아저씨다. 내가 아는 한, 그 아저씨는 일용직 노동자다. 하루 벌어 하루 풀칠해야 할 터인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아저씨는 일감을 구하려고 조금도 애쓰지 않는다. 대신 종일 집에 머물면서 아침나절엔 시멘트를 개고, 저녁나절엔 대문을 망치로 쳐댄다. 하릴없고, 공연하다. 대체 그 아저씨는 매일 마셔대는 소주와 매일 시켜대는 짬뽕 값을 어떻게 구하는 걸까.
다세대 주택에 산다. 채광이 좋고 집주인 인상이 좋아 무턱대고 입주했다. 막상 살고보니 성가신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웃들이 뭣보다 성가시다. 3층에 살지만, 언덕에 세워진 집이라 창문을 열면 눈높이에 골목이 있다. 또 다른 집들이 코앞에 있다. 그 아저씨가 코앞의 집에 산다. 층간 소음이 아니라 집간 소음이 골치다. 주정뱅이 그 아저씨 못지않은 성가신 이
[에디토리얼] 이웃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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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호 ‘디스토피아로부터’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편집자)
한때 지구인들은 험프리 보가트가 <카사블랑카>에서 담배를 피워물 때, 로렌 바콜이 <소유와 무소유>에서 멋들어지게 담배를 피울 때, 그 장면에 도취되고 매혹되었다. 담배를 물고 있는 제임스 딘은 열렬한 숭배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흡연장면은 그저 추문에 불과하다. TV에서도 내쫓겨났고, 영화에서도 점차 추방되고 있다.
어쩌다 짧은 시간에 이런 반전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사랑이 그렇게 쉽게 변하니? 혹자는 문명사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입을 빌려, 이것이 “문명화 과정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겠다. 배설과 도축처럼 더러운 것, 죽음과 관련된 장면 등이 삶의 외곽으로 점차 배제되는 과정이 곧 ‘교양’이고, 건강과 청결을 훼손하는 흡연 역시 도태시킬 장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일종의 교활한 말장난이다. 삶의 직접적 현장에서 더러운 장면들을 배제한 대가로, 지구온난화와 조류독감 같은 치명적인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나를 더럽힐 권리(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