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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잡지사 선배가 SBS 드라마 <토마토>의 구두 디자인 대결에 관해 격분하는 걸 듣고 ‘오오, 그렇구나’ 뒤늦게 깨친 일이 있다. 첼리스트의 무대용 구두를 두 회사가 각각 제작한 뒤 어느 쪽 구두가 선택받는지 가리는 미션에서 악녀 세라(김지영)는 진짜 루비가 달린 샌들 형식의 구두를, 주인공 한이(김희선)는 평범한 검은색 통굽 구두를 제작한다. 처음엔 세라의 것을 골랐던 첼리스트는 신어보니 편하다는 이유로 일본 무대에선 통굽 구두를 신겠다고 통보한다. 이를 두고 선배는 여성이 구두에 두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라고 혹평했었다. 더불어 창의적인 직업인에 대한 묘사가 부실한 드라마까지도.
KBS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을 보다가 선배의 말이 떠올라 <토마토>를 ‘다시 보기’했더니 과연! 문제의 구두는 무대의상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검정색 효도신발처럼 생겼더라. 화려함과 고급을 추구하는 악녀가 착한 주인공에게 허를 찔리는 반전
[유선주의 TVIEW] 자, 이제 창조적인 작업물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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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3월, 내가 가장 기대하는 영화는 제주 4.3 항쟁을 다룬 오멸 감독의 <지슬>이다. 한 사회 공동체에는 가능한 많이, 더 다양한 방법으로 예술이 되어야 하는 사건들이 있다. 극단적 폭력성이 악랄한 사건일수록 다양한 예술작업이 후속되어야 한다. 예술은 ‘사건’의 가장 후미진 경계까지를 보듬으며 인간의 치유에 관여하는 숙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 항쟁’, 가장 가깝게는 ‘용산참사’ 같은 ‘사건’들은 그러므로 더 충분히 더 적극적으로 예술이 되어야 한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착각)하는 사건들에 대한 충분한 공유와 다양한 공감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과거의 사건은 너무도 흔히 현재의 사건으로 폭력적 재발을 감행하므로 더더욱 그러하다.
지슬. 제주 방언으로 ‘감자’라는 뜻의 이 영화가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가슴이 뭉클했다. 제주는 4.3의 트라우마가 현재형인 곳이다. <지슬>의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지슬>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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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과 김지운,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이 나란히 개봉한다. 기쁜 일이지만 이를 애국심 같은 감정으로 포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할리우드라는 무대가 세계 최고인 게 사실이긴 하지만, 두 감독이 ‘할리우드 진출’을 목표 삼아 영화를 만들어온 것이 아니므로 목청 높여 ‘한국영화의 쾌거’ 따위의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사실 두 감독을 포함해 여러 한국 감독이 할리우드로부터 부름을 받아온 건 꽤 오래된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때가 맞지 않았거나 할리우드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구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와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는 그들이 할리우드에서 만들고 싶었던 영화라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두 감독이 구상한 바가 한국에서만큼 척척 이뤄지지야 않았겠지만 그럭저럭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을 터. 두 영화가 궁금한 건 그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과 니콜
[에디토리얼] Thank You and Good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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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화가 펠릭스 발로통의 <공>(Le Ballon,1899). 때로는 붉은 점 하나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 해일에 아들을 잃은 <더 임파서블>의 헨리(이완 맥그리거)에게 마지막으로 본 아이가 갖고 놀던 빨간 공이 그랬듯이.
*1월8일 일기에 <더 헌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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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의 주인공 피신 몰리토 파텔(수라즈 샤르마)의 취미는 우표 수집이 아니라 종교 수집이다. 어린 파이는 힌두의 신 크리슈나의 입속에 들어 있었다는 우주의 형상을 상상하며 황홀해하고, 기독교의 신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외동아들을 보내 죽게 했다는 신약성서의 이야기가 말도 안된다고 반응하면서도 매료된다. 소년은 한 종교의 신에게 다른 신을 소개해주어 고맙다고 기도까지 한다. 말하자면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신자가 된다는 일의 의미는 아무개 신을 만물을 창조하고 관장하는 유일한 절대자로 섬기는 행위라기보다 그 종교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까다로운)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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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벽서라고 불렸다. 개인적 감정을 담은 투서도 있었지만, 체제비판적인 익명서도 공개 장소에 게시되곤 했다. 옥사와 사화의 빌미가 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때문에 처형되었다. 벽서는 대중매체도 없고 표현의 자유도 없던 시절, 백성이 자기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였지만, 조선의 통치자들은 민심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이를 금지했다. 벽서를 게시한 자는 교형에 처했고, 소지만 해도 곤장으로 처벌했다.
표현의 자유를 헌법에 모셔둔 채 시민의 일반의지를 존중한다는 근대사회의 안온한 안뜰의 누군가가 보기에, 힘없는 백성이 벽서를 게시하고 칠흑 같은 골목으로 사력을 다해 도망치는 풍경은 그렇게 낯설고 기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여기는 골목에 대자보 한장 붙였다는 이유로 청년들이 고문을 당했던 그 악몽의 군사독재 시절을 경유한 한국이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벽서를 금지당한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 그것도 ‘더불어 잘 사는 복지 마포’라는 슬로건을 염치없이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마포구 벽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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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를 나와 주간지로 옮겼을 때 나름 기대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매일 촉을 세우고 있다가 깨알같이 마감하는 일보다는 한주 단위로 큼직큼직 움직이는 일이 아무래도 편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웬걸. ‘잉크밥’깨나 먹어본 선배들은 하나같이 ‘일이 괴롭기로 으뜸은 주간지’라고 단언했다.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유하자면 일간지 기자의 삶은 마라톤 주자와도 같다. 아주 길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으며 고층 빌딩 숲과 공원도 지나치는 덕에 지루하지만은 않은 코스를 그들은 달린다. 반면 주간지 기자의 삶은 중거리 주자와 비슷하다. 꽉 막힌 실내 육상 트랙을 돌고 돌고 또 도는(월간지의 삶은 체험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매달 열리는 선수권에 출전하는 단거리 주자의 그것과 유사하지 않을까). 일간지 기자가 매일 꾸준히 주행한다면, 주간지 기자는 매주 초반 페이스 조절을 하다 후반에는 막판 스퍼트, 즉 전력질주를 펼쳐야 한다.
[에디토리얼] 지금, 잠시 멈춰 서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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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나는 가수다> 로고를 본떠 만든 전단지가 대유행이었다. 자존심을 건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레전드급 가수들처럼 ‘우리도 그러하다!’고 묻어가는 한편 황금색으로 번들거리는 원본 이미지는 너무 거창한 나머지 살짝 훼손한 것만으로 웃음이 터졌으니 홍보로는 제격이었겠지. 유행에 뒤처진 감이 있지만 KBS <사랑과 전쟁2>도 57화 ‘나는 시어머니다’편에서 레전드급 시어머니를 불러냈다. 시집살이를 못 견디고 이혼한 큰며느리가 위암 말기로 사경을 헤매는 병실에서 “재혼 자리는 전처 집에서 알아봐줘야 잘 산다더라”며 사돈네에 전화를 넣으라는 구식 시어머니. 그리고 큰집에 이어 시어머니를 모시게 된 작은며느리도 갑상선암이 발병했다.
보는 것만으로 암이 생길 것 같은 시어머니가 또 있다. MBC <백년의 유산>에서 방영자(박원숙)는 명동에서 사채를 하며 홀몸으로 자식을 키우고 국내 5위의 식품회사 금룡푸드의 회장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며느리 민채
[유선주의 TVIEW] 시어머니계의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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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화를 받았습니다. 새로 시작되는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른바 멘토를 맡아달라는 것이죠.
상당히 높은 출연료와 폭넓은 인지도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만 고민 끝에 고사를 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양면성은 <씨네21>을 읽는 고상한 독자라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도전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반면에 기회를 뺏는다는 것을요. 단시일 안에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음악인으로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만 최종결승까지 갈 경우엔 거의 매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면서 결말이 뻔한 아침드라마 같은 존재로 자리잡게 됩니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의 가장 큰 승자는 심사위원이자 멘토로 불리는 사람들이죠. 미디어에 의해서 권위를 인정받고, 그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인물을 뽑게 되는 겁니다. 남한과 북한의 최고 정치 지도자는 모두 최고 통치자의 자녀입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남자주인공은 재벌 3세였습니다. 이처럼 부와 권력이 세습되는 상황에서 음악
[김남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미디어 출연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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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디지털 온라인 시장이 2011년에 비해 26%나 성장했다는 영화진흥위원회의 발표는 여러모로 반갑다.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해 인터넷 VOD, IPTV, 디지털케이블TV 등을 포함한 디지털 온라인 영화시장의 매출은 2158억원을 기록했다. 2009년 888억원 정도였던 디지털 온라인 매출액은 2010년 1109억원으로, 2011년에는 1709억원으로 크게 상승해왔다. 4년만에 거의 세배 정도 시장이 커졌다는 이야기다. 영진위는 제도적, 기술적 보완을 통해 이 같은 분위기를 살려나가 2017년에는 디지털 온라인 영화시장을 1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부가판권 매출이 전체 영화시장의 40%를 차지해 한국 영화계는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인 터전을 갖게 되는 셈이다.
사실 디지털 온라인 시장의 성장은 한국 영화계의 숙원이었다. 지금부터 10여년 전인 1999년만해도 비디오 매출은 8970억원으로 전체 영화시장의 76%를 차지했다. 당시는 멀티플렉스가 거
[에디토리얼] 닥치고 합법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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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압구정동에 간 날을 기억한다. 서울에 산 지 10년이 지난 때였음에도 스무살 무렵의 내 마음속 압구정은 ‘부자들만 살고, 연예인들이 길에 막 돌아다니는’ 그런 동네였다. 아는 언니에게서 로데오 거리에 자리한 연예인들도 많이 오는 술집을 알아냈으니 같이 가보자는 제안을 받고 들뜬 동시에 도대체 뭘 입고 가야 할지 덜컥 겁부터 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압구정 사람들’이 나를 보면 다른 동네 출신 뜨내기임을 눈치챌까봐, 그리고 속으로 ‘촌년’이라고 무시할까봐서였다. 결국 높은 통굽 구두를 차려신고 뻣뻣이 긴장한 채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압구정동을 찾아갔던 날, 연예인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고 거리의 사람들도 그냥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뒤 10년이 훌쩍 넘게 흐른 지금도 내게 압구정은 어쩐지 주눅 드는 공간이고, 그 옆 청담동은 그보다 더 범접하기 어려운 동네다. ‘OO동’으로 통칭되는 세계에서 일상을 영위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계층에 속하거나 편입되는 것은 결코 간단
[최지은의 TVIEW] 재벌 2세 원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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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도 감수성도 동결될 것 같은 독한 겨울. 액화 니트로겐으로 냉동한 꽃을 네덜란드 정물화 관습대로 배치한 다음 폭파의 순간을 초고속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오리 거쉬트의 <Blow Up: Untitled4>를 보며, 꽃들의 파편에 찔려 더운 피를 확인하는 몽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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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세 할스트롬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적 있는 존 어빙의 장편소설 <사이더 하우스>의 첫 장을 지배하는 주제는 “고아에게는 쓸모가 매우 중요하다”로 요약된다. 미국 메인주 세인트 클라우즈 고아원에서 태어난 소년 호머 웰즈는 몇 차례 파양 끝에 스스로가 매우 쓸모있는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는 세인트 클라우즈를 집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고아원을 운영하는 괴짜 의사 윌버 라치는 소년의 의지를 받아들인다. (닥터 라치가 이 소년에게 기울이는 무뚝뚝한 애정의 강도는 웬만한 러브 스토리를 무색하게 한다.) 20쪽에 이르러 존 어빙은 주인공 호머를 가리켜 “그는 ‘쓸모’ 빼면 시체였다”고 기술하는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쓸모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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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레이코프를 처음 알게 된 건 2000년 중반이었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그가 쓴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그의 책을 읽자마자 그의 열혈 팬이 됐다. 사실 그의 책은 대단히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재’일 뿐 그는 인지언어심리학자답게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렸을 때부터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할까?’, ‘왜 내 마음은 이렇게 변화되는 걸까’에 대해 쓸데없이(?) 궁금해했었는데 그의 책은 바로 이러한 나의 궁금증을 후벼팠고, 때렸고, 동시에 어루만져줬다. 요약하자면 그동안 읽었던 그 어떤 심리학 책보다 충격적이었다.
이후 난 ‘프레임’이란 개념에 푹 빠져 지냈다. 당연히 많은 것들을 프레임이란 개념으로 보고자 했고, 그럴 때마다 그동안 미처 몰랐던 혹은 알고 있었지만 또렷하지 않았던 것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히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박근혜, 문재인 그리고 조지 레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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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관객수가 20대 관객수를 넘어섰다는 맥스무비의 발표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사이트에서 2012년 표를 예매한 40대는 전체의 25.8%였는 데 반해 20대는 20.1%였다고 한다. 20대 관객수가 서서히 증가했다면 40대 관객수는 그야말로 대폭발 수준으로 늘어났다는 얘기다. 지난해 한국영화 흥행돌풍에 관해 중장년층 관객이 늘어난 게 중요한 이유였다는 다소 막연한 분석이 수치로 증명된 셈이다. 맥스무비가 보내온 자료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대목은 30대에 관한 것이다. 30대는 지난해 44.4%의 점유율을 기록했는데, 이미 2009년 45.3%를 기록해 32.6%의 20대를 넘어선 이래 꾸준히 44~45%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영화 관객 중 절반이 30대라는 이야기다.
결국 한때 한국 영화계에 떠돌던 속설, 그러니까 핵심 관객층인 20대 중후반(특히 여성)을 중심으로 그 주변 세대가 항아리꼴로 분포돼 있다는 시장분석은 이미 시효를 다한 것이다. 대신 30대의
[에디토리얼] 더 과감하게, 더 공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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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1일. 마야 달력의 마지막 날엔 대통령선거 이틀 뒤의 우울한 여흥거리로 지구 종말론을 다뤘던 방송을 다시보기했다. 종말론에 심취한 청년의 안색은 창백하고 멸망의 날을 대비하던 또 다른 사내는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들림’받지 못하자 겸연쩍은 표정으로 바닷가 방죽을 서성거렸다. 구원은커녕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단번에 망하는 일 따위도 여간해선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재확인했으니, 새해도 밝은 참에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생존으로 흘러갔다. 타인의 편의에 기대 사는 연약한 대도시 문명인 입장에서 생각하는 생존이란, 적어도 위급한 상황에서 무리에 폐를 끼치는 존재가 되고 싶진 않은 심정이랄까. 가스와 전기, 물이 끊긴 비상시에 온수로 씻고 싶다고 투덜대거나 남이 애써 피운 불을 꺼뜨리는 사람이 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불을 피울 기술을 습득한다면 더 낫고.
SBS <생활의 달인> 무인도 생존대결 편에선 세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불을 피운다. 물이 담긴 페트병을
[유선주의 TVIEW] 종말에서 생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