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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5일
부산영화제 폐막. 해운대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김해공항으로 향한다. 홀로 여행하는 동안만큼 내 몸과 마음이 진정 그리워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그들이 내게 어떤 종류의 온기와 향기를 주는지, 선연하게 의식하는 시간은 달리 없다. 항상 뒤늦게 도착하는 앎. 이 안타까움을 어찌할 것인가. 그들이 내 곁에 부재할 때만이 나는 내 그리움의 또렷한 형상을 아는 것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삶에 충족 따위는 없으며 기다림 아니면 회한의 단속적 연쇄일 뿐임을 수긍하고 나면, 덜컹이는 버스에서, 출렁이는 비행기 안에서 응석 피우는 어린애처럼 소망하게 된다. 그냥 이대로, 아무 데도 도착하지 않은 채 영원히 이 여행을 계속하면 안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차피 언제나 이동하고 있을 따름 아닌가? 우리가 말하는 모든 말, 행하는 모든 행위는 약속이거나 사과이거나, 혹은 재차 다짐하는 약속에 불과하다. 예컨대 예쁜 문방구를 사는 행위는 이거라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소망의 피력이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내가 사랑하는 왕가위의 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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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은 ‘충무로의 신동’으로 불리며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보며 많은 사람이 예견한 것과 달리 그의 경력은 그리 잘 풀리진 않았다. 대단한 흥행작도 없었고 미학적으로 온전한 성취를 이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영화도 없었다. 그의 영화는 에너지가 끓어넘쳤지만 어딘가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이었고, 선연한 캐릭터들이 두드러졌지만 이야기 안으로 매끄럽게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영화 안에서 무언가 뜻을 세우면 끝까지 밀어붙였지만 그 ‘과잉’을 담아낼 그릇은 미완성인 채였다.
최근 시사회를 통해 공개한 <부당거래>는 비로소 류승완 영화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예상했던 류승완표 액션은 눈을 비비고 찾아야 겨우 보이는 대신 그 자리에는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촘촘한 플롯과 숨막히는 긴장감, 생생한 캐릭터가 들어차 있다. ‘한국형 누아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또 ‘부당거래’로 얽히고설킨 스폰서-검찰-
[에디토리얼] <부당거래>, 정말 호방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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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0일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과 <검우강호>를 보며 다시 피어난 오랜 의문의 불씨. 강호(江湖)란 대체 정확히 어디인가. 문단(文壇)이 무슨 주소라도 있는 데인 줄 알았다고 한숨 쉬던 P 소설가의 얼굴이 떠오를 뿐. 수천년 중국 역사를 판타지의 용광로에 펄펄 끓여 공간의 틀에 부어놓은 거라면 대충 비슷하려나. 역시 썩 성에 차진 않는다. 무협영화 속 고수호걸들이 칩거한 지역과 합종연횡 화살표를 표기한 강호 지도가 나온다면 감사히 장만할 텐데.
뭐 그런 잡념을 집적거리며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 나흘째를 맞은 일요일 오후의 해운대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눈뜸 들여놓은 오늘과 내일의 영화 티켓은 매진이고, 숙소는 한류 스타의 열렬한 팬을 포함한 아시아 관객으로 북적거리며, 행사장으로 향하는 바닷가 도로는 띠 모양 주차장 형국이다. 야심만만한 관객은 올해 칸과 베니스, 토론토의 ‘신상’(新商) 영화와 화제작을 한입에 삼켜버리리라 전의를 불태우고,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부산… 여기가 바로 강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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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하는 얘기지만, 현실 속 드라마는 영화의 드라마를 훨씬 뛰어넘는다. 최근에는 프로야구 플레이오프가 그랬고 칠레 광부 구출이 그랬다. 아닌 게 아니라 칠레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조만간 책으로 나오거나 영화화될 조짐이다. 워낙 심금 울리는 이야기라 할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급 휴먼드라마로 만들어진다 해도 유치하다는 소리는 안 들을 것 같다. 이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칠레 대통령일 것 같다. 하긴 이미 그는 생중계되는 방송 화면에 등장해 고립된 광부들의 가족들과 걱정을 나눴고 생환한 이들과 진한 포옹을 나누며 인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어차피 다 쇼 아니냐고? 현대 정치의 절반 이상이 이미지를 이용한 리얼리티 쇼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칠레 대통령은 적절한 연출과 설득력있는 연기를 보인 셈이니 꼭 속았다는 느낌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통령이 광부를 끌어안는 모습에선 어떤 진심조차 느껴졌으니 말이다(만약 그가 그 순간 머릿속에 지지율을 떠올리고 있었다면 올해의 연기
[에디토리얼] 연기라도 잘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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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30일
사람과 그가 깃들어 사는 공간이 조개의 몸과 조가비의 관계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말하나마나 건물은 유기체도 아니고 직접 살 자가 집을 짓는 경우도 드무니 맞을 리가 없는 비유다. 그런데도 누군가 자리잡고 한동안 살아온 방에 들어서면, 거기 사는 사람의 필요와 욕망이 보이지 않는 분비물처럼 조금씩 새어나와 굳어버린 껍데기로 느껴진다. 노래방, 독서실, 고시원처럼 집단이 사용하는 건물도 크게 다르진 않다. 김동주 감독은 <빗자루, 금붕어 되다>를 자막으로 시작한다. “서울 신림동에는 일명 ‘고시촌’(exam village)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여러 개의 작은 방으로 이뤄지며 6만명 이상이 고위 공무원 등이 되기 위해 공부하지만 합격해서 뜨는 사람은 극소수다.” 고시촌의 개념을 해설하는 이 자막은 마치 생태계의 특수 현상이라도 소개하는 투인데, 이어지는 영화와 썩 잘 어울린다. <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50대 후반의 남자 장필의 신림동 고시촌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웃기고 슬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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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째 부산국제영화제의 막이 올랐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앞에 깔린 레드카펫 주변이 혼잡스러운 것으로 보나 “최근 3년간 찾은 개막식 중 줄이 가장 길다”는 김성훈 기자의 트위트로 보나 조용했던 해운대 바닷가가 시끌벅적해진 것으로 보나 올해 행사도 어느 해 못지않게 후끈한 열기 속에서 진행될 게 틀림없다. 영화제 데일리 제작 때문에 이 거대한 축제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그저 지금 이 공간에 함께한다는 점만으로도 뭔가 차오르는 느낌이다.
사실 부산영화제는 관객만의 축제가 아니다. 영화계 입장에서도 부산영화제는 일종의 잔치판 구실을 해왔다. 그 잔치란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주최하는 화려한 호텔 파티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수많은 감독을 비롯해 중소 제작사 임직원, 프리랜서 프로듀서, 독립영화 관계자들은 해마다 부산으로 찾아와 다채로운 술자리를 가졌다. 따지고 보면 그들 또한 축제의 분위기에 젖어 신나는 판을 벌이는 셈이지만, 영화인들은 기가 막힌
[에디토리얼] 부산영화제가 다시 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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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7일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를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세명의 독신 여자가 어울려 불안과 실망을 주제로 명랑쾌활하게 떠들어댄 자리였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인생의 모서리에 몰렸을 때 도움을 준 책으로 특별 언급됐다. 그러므로 이 책을 각색한 영화에 기대를 건 것은 내 잘못만은 아니다.
오늘 본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음이 동한 장면은, 이혼을 감행한 리즈(줄리아 로버츠)가 1년에 걸친 자아발견 여행 끝에 발리에서 좋아하게 된 남자가 프러포즈했을 때, “어떻게 찾은 마음의 균형인데 사랑으로 무너질까 두렵다”라고 뒷걸음질치는 대목이었다(일단 그 남자가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비현실성은 논외로 하자). 우리는 자주 불행보다 불안을 더한 고통으로 느끼고, 지극한 행복보다 평온을 원한다. 인류 다수가 빈곤과 독재와 폭력에 신음하는 세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베니스, 시실리… 나만의 이탈리안 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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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부산영화제 시즌이 되면 한 가지 딜레마에 빠진다. 영화제의 행사와 영화를 볼까,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을 즐길까, 라는 딜레마 말이다. 어차피 일 때문에 부산에 내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그때마다 어두운 극장이나 침침한 사무실을 벗어나 시원한 야구장에서 악악대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오른다. 딱히 야구팬이랄 것도 없는 사람이 괜히 집적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평소 중계방송 한번 하지 않던 공중파 방송사들이 포스트 시즌 때만 되면 슬그머니 숟가락을 올려놓듯 뜨거운 ‘가을야구’의 열기를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리라.
롯데 자이언츠가 3년째 포스트 시즌에 참가하는 것도 그 충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부산이 어떤 도시인가. 야구에 죽고사는 야도(野都) 아닌가. 개인적으로 1992년 여름 사직구장에서 접한 광기에 가까운 부산의 야구 열기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동안 그나마 야구에 대한 욕망에 크게 휘둘리지 않았던 것은 롯데가 준플레이오프 관문을
[에디토리얼] 영화냐 야구냐. 부산,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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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샤브롤 영화에서 먹는 행위는 정찬부터 마담 보바리가 삼킨 비소까지 죄다 중요하다. 어록을 찾아보니 샤브롤 감독은 먹기를 즐겼을뿐더러 식사신을 촬영할 때 배우들이 대사만 하고 제대로 먹지 않는 방식의 연출을 아주 싫어했던 모양이다. 애연가이기도 해서 사진마다 파이프나 담배가 손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다. 여러모로 인간의 ‘용적’을 바닥까지 드러내는 영화들이었다.
9월8일
무슨 거울도 아닌데 우리는 스크린을 마주보기만 한다. 지정된 한점에 기꺼이 못 박혀 영화를 본다. 혹시 스크린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곁눈질하고 싶은 적이 없었나? 영사실 앞에 우뚝 일어서 내 그림자를 일부러 영화에 얹어보길 원했던 일은? 단 한번도? 스크린 뒤로 숨어들어가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보고 싶지는 않았던가? 방법은, 부쩍 영화관과 닮아가는 현대미술 갤러리에 가는 것이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프리미티브> 연작이 ‘미디어 시티 서울 2010’에 왔다. 과거와 미래의 일기를 편집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9월 8일 ~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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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위원장이 부산영화제를 떠나신다는 소식은 꽤 오래전 들었다. 당시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던 것은 김 위원장이 그동안 여러 번 위원장직에서 물러나려 하셨지만 주위의 끈질긴 만류로 결국엔 다시 자리에 앉으셨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리라 믿었고, 꼭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은퇴하신다는 발표를 들으니 약간은 울컥했던 게 사실이다.
김동호 위원장의 퇴임에 부치는 국내외 영화인 15인의 추억담을 읽노라면 그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첫째 술이요, 둘째가 열정이며, 셋째가 겸양의 덕이고, 넷째가 친화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 또한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그중 하나가 2003년 도빌영화제 때다. 당시 도빌영화제의 후원사인 에어 프랑스는 취재기자에게 비행기 표를 협찬해줬는데, 그 등급이 비즈니스 클래스(무려!)였다. 집행위원장이었던 알랭 파텔이 기자들도 게스트급으로 대우하는 엄청난 배려를 베푼 덕분이었다. 김동호 위원장을 만난 건 인천공항이었다. 비즈니스석의 탑승을 알
[에디토리얼] 아이 러브 유, 오!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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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약점이 내 눈에 지나치게 크고 뚜렷해 보일 경우, 수사(修辭)가 수사를 부르는 잡지 글쓰기 속성상 판단이 둔탁해지기도 한다. 그 위험을 피하는 한 방법은, 내가 좋건 싫건 감독이 최초에 품었을 최선의 의도에 입각해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인데 <라스트 에어벤더>는 그것도 용이하지 않았다. 동석한 다른 사람들은 샤말란의 최고작으로 <언브레이커블> <빌리지> <싸인>을 꼽았다. <식스 센스>는 한표도 얻지 못했다.
8월30일
일기를 쓰기로 한다. 나의 일기가 아니라 영화의 일기다. 영화관의 어둠에 잠겨 수천만 번째 태초의 빛이 스크린에 떨어지길 숨죽여 기다릴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살아보기를 결심하고 있다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 영화에 아무런 기대가 없을 때조차. 그래서 영화의 일기를 쓰기로 한다. 영화를 보는 마음이란, 격류에 밀리고 내던져지는 오갈 데 없는 피조물의 기분인 동시에 살아 있음을 가장 능동적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8월30일~9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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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가을이 찾아왔다. 얼마 동안 여름의 마지막 조각 같은 땡볕에 시달려야겠지만, 이제부터 가을이라고 선언하는 데는 별 문제 없어 보인다. <씨네21> 구성원 입장에서 가을의 시작이라는 말은 추석이 가까워졌다는 이야기이고, 추석이 왔다는 말은 합본호를 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지금, 기자들이 노트북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마감 삼매경에 빠져있고 여기저기서 긴급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추석 합본호 때문이다.
추석을 버거워하기로는 영화계 또한 만만치 않다(힘들기론 까마득히 치솟은 물가 때문에 고심하고 있는 서민들이 가장 심하겠지만). 연휴가 절묘하게 자리한 덕에 경우에 따라 10일 가까이 휴일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영화계를 더욱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최고의 대목으로 꼽히는 이번 추석 시즌에는 메이저급 한국영화만 해도 5편이 포진해 있다. 한주 먼저 개봉한 <해결사>를 비롯해 16일 개봉하는 <그랑프리> &l
[에디토리얼] 추석, 한국영화 추수의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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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의 영화>는 정말이지 대단한 영화다. 반복과 차이라는 홍상수 감독 고유의 주제를 이토록 확장시킨 영화는 없는 듯 느껴진다. ‘세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네개의 단편 모음’이라는 이 영화의 구성은 주제와 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내 끝난 뒤 보는 이를 잠시 동안 멍하게 만든다. “많은 일들이 반복되면서, 또 어떤 차이를 가지는 이 인생이라는 게 뭔지는 끝내 알 수 없겠지만 제 손으로 두 그림을 붙여놓고 보고 싶었습니다”라는 옥희의 대사처럼, <옥희의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순간 정확하게 ‘뭔지는 끝내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복과 차이를 가진 이 네개의 단편이라는 ‘그림’을 ‘붙여놓고 보고 싶’게 만든다. 물론 도무지 붙지 않긴 하지만.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우려도 있었다. 수많은 인물들이 교차하던 전작들과 달리 세 인물에만 초점을 맞추는 탓에 영화가 앙상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또 구조가 두드러진 영화인 만큼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도
[에디토리얼] 문성근, 혹은 ‘나이든 남자’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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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관객으로서 영화 속 남자배우에게 반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반할 뻔했던 남자배우라면 <다이 하드> 시리즈의 브루스 윌리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조니 뎁, <비트>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정우성,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 정도가 얼핏 떠오른다. 이들은 각 영화에서 근사하고 멋지고 남성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수컷끼리의 영역 본능 때문인지 단순한 질투심 때문인지 또는 호모포비아 탓인지 선뜻 ‘반했다’라고 고백하기는 어려웠다. 그저 ‘자식, 좀 하는데’라거나 ‘흠, 괜찮네’라는 뜨뜻미지근한 표현으로 찬사를 보낼 뿐.
그런데 <아저씨>의 원빈은 달랐다. 원빈 특유의, 약간은 경직된 연기가 주를 이루는 초반부에선 별 감흥이 없었지만,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지는 중반부 이후부턴 넋을 잃고 빠져들고 말았다. 그 섬세한 외모가 액션을 감행할 때 그건 단지 근사한 이미지만이 아니었다. 그 무자비한 폭
[에디토리얼] 난 네게 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