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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블루레이로 출시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보다가 캐리 그랜트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어떤 순간에는 정력적인 남성으로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깊은 주름이 드러나(HD TV의 위엄!)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 찾아보니 이 영화가 발표될 당시 그랜트의 나이는 무려 55살이었다. 의외였다. 대충 40대 후반 정도라고 예상했는데. 그 나이에 나름의 액션(?)까지 포함된 이 영화를 소화했다니 그랜트도 참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55살에 자신의 대표작을 찍은 배우는 행복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층의 악당>과 <페스티발>을 보면서 흐뭇했던 점 중 하나는 한석규, 심혜진의 존재감이었다. 그 정도 경력의 연기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원숙함을 드러냈다는 사실에 안도감도 들었다. <이층의 악당>의 한석규는 우리에게 친숙한 기존 이미지를 이용하지만 그것을 교묘하게 뒤틀기도 한다. 품이 완연히 넓어진 인상의 그가 스크린을 꽉 채워준
[에디토리얼] 오래 묵은 연기의 참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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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0월31일
뒤늦게 피에르 바야르가 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김병욱 옮김)을 읽기 시작하다. 이 얼마나 절묘하게 유혹적인 제목인가. 요컨대 세상의 모든 책을 읽지 않고도 읽은 척할 수 있는 효과를 얻기 위해, 이 책 단 한권만은 사서 읽어야 하는 셈이다. 바야르는 ‘비(非)독서’라는 개념을 쓰는데, 이는 우리가 통상 말하는 ‘읽지 않은 책’과 의미가 조금 다르다. ‘비독서’는 전혀 접해보지 않은 책, 대충 뒤적인 책, 남의 얘기를 듣고 알게 된 책, 읽었으나 잊어버린 책으로 나뉜다. 이를 영화로 옮기자면 금시초문인 영화, 졸면서 보거나 DVD 2배속 플레이로 본 영화, 친구에게 듣거나 관련 기사만 읽은 영화, 보긴 했는데 가물가물한 영화가 될 터다. 저자는 15쪽에서 “…읽지 않은 책이라고 해서 그 책들이 우리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책들도 메아리를 통해 우리에게 영향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기다림이 결여된 11월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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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즈음부터 지금까지, 굳이 의도한 건 아닌데도 한국영화 제작자들을 꽤 여럿 만났다. 그중에는 1990년대 중반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주역도 있고 금융자본을 영화계로 끌어들인 이도 있으며 대기업 시스템에서 영화를 만들어온 분도 있다. 대화 초반 화제는 몇 가지로 수렴된다. 첫째, 자본이 없다는 것. 영화자본이 여전히 CJ를 비롯한 몇몇 대기업에 집중되다 보니 운신의 폭이 작다는 얘기다. 너무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얘기인데다 별 대안도 없는 사안이라 이런 대화가 등장할 때면 어떻게 화제를 돌릴지 고민하느라 머리에서 드르륵 소리가 날 정도다. 둘째는 적은 예산으로 영화 만들기의 고단함이다. ‘순제작비 30억원이면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공공연한 진리로 자리잡을 정도로 빡빡해진 투자환경 속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겪는 어려움 말이다. 이 역시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여준 뒤 빨리 다음 화제로 넘어가야 하는 피곤한 주제다. 셋째는 영화진흥위원회의 무책임함에 대한 성토다. 특히 조희문
[에디토리얼] 요즘 한국영화 좋아지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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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2일
고등학교 3년 내내 편지를 주고받았던 중학교 동창 Y가 실로 오랜만에 전시회를 하는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 시사와 겹쳐버렸다. 그림은 볼 수 있겠으나 친구와 만나지는 못하게 됐다. 어젯밤만 해도 트위터 이웃에게는 침실 전구를 갈다 깨뜨렸네, 소슬바람이 창가에 불어오네 시시콜콜 늘어놓았던 내가 오랜 벗에겐 이 모양이다. 따로 예를 찾아 눈 부릅뜰 것도 없이 내가 바로 세태(世態)다. 그러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직접 살은 맞대지 않은 채 ‘연결’되기를 바라고 클럽의 멤버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이를 선호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나를 떠나거나 상처줄 수 없으니까. 지금 세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은 “당신에게 반대한다”, “나랑 싸우자”가 아니라 차단(block), 혹은 절연(disconnect) 같은 단어들이다. <소셜 네트워크>의 주인공인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는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낯선 이에게 드러내고 싶은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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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난 백수였다. 당연히 주머니도 훌빈했기에 집 안에서 뒹굴뒹굴 시간 죽이기만이 가능했던 그 시절, 유일한 낙은 TV였다. 불행히도 당시엔 케이블TV도 없었고 공중파도 지금처럼 종일방송을 하지 않았다. 오후 6시에나 시작하는 다른 공중파 방송을 기다리다 지칠 때면 오후 4시부터 방송을 시작하는 EBS로 채널을 돌리곤 했다. 물론 그 시간대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만 방송했지만 시간을 때우기 위한 일념으로 좀비처럼 멍하니 TV에 눈을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눈이 번쩍 뜨이는 프로그램 하나를 발견했으니 그건 <꼬마 요리사>였다. 노희지라는 꼬맹이가 요리사라면서 오물오물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정신줄을 놓을 정도였다. 곧바로 동료 백수들에게 전화를 돌려 ‘아무것도 묻지 말고 지금 EBS를 틀어’라고 제보했고 그들은 ‘정말 탁월한 발견’, ‘날카로운 눈매’라면서 나를 칭찬해줬다. 얼마 뒤 <꼬마 요리사>가 상당한 인기를 얻으면서
[에디토리얼] 찍고 키우고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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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5일
부산영화제 폐막. 해운대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김해공항으로 향한다. 홀로 여행하는 동안만큼 내 몸과 마음이 진정 그리워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그들이 내게 어떤 종류의 온기와 향기를 주는지, 선연하게 의식하는 시간은 달리 없다. 항상 뒤늦게 도착하는 앎. 이 안타까움을 어찌할 것인가. 그들이 내 곁에 부재할 때만이 나는 내 그리움의 또렷한 형상을 아는 것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삶에 충족 따위는 없으며 기다림 아니면 회한의 단속적 연쇄일 뿐임을 수긍하고 나면, 덜컹이는 버스에서, 출렁이는 비행기 안에서 응석 피우는 어린애처럼 소망하게 된다. 그냥 이대로, 아무 데도 도착하지 않은 채 영원히 이 여행을 계속하면 안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차피 언제나 이동하고 있을 따름 아닌가? 우리가 말하는 모든 말, 행하는 모든 행위는 약속이거나 사과이거나, 혹은 재차 다짐하는 약속에 불과하다. 예컨대 예쁜 문방구를 사는 행위는 이거라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소망의 피력이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내가 사랑하는 왕가위의 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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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은 ‘충무로의 신동’으로 불리며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보며 많은 사람이 예견한 것과 달리 그의 경력은 그리 잘 풀리진 않았다. 대단한 흥행작도 없었고 미학적으로 온전한 성취를 이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영화도 없었다. 그의 영화는 에너지가 끓어넘쳤지만 어딘가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이었고, 선연한 캐릭터들이 두드러졌지만 이야기 안으로 매끄럽게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영화 안에서 무언가 뜻을 세우면 끝까지 밀어붙였지만 그 ‘과잉’을 담아낼 그릇은 미완성인 채였다.
최근 시사회를 통해 공개한 <부당거래>는 비로소 류승완 영화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예상했던 류승완표 액션은 눈을 비비고 찾아야 겨우 보이는 대신 그 자리에는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촘촘한 플롯과 숨막히는 긴장감, 생생한 캐릭터가 들어차 있다. ‘한국형 누아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또 ‘부당거래’로 얽히고설킨 스폰서-검찰-
[에디토리얼] <부당거래>, 정말 호방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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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0일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과 <검우강호>를 보며 다시 피어난 오랜 의문의 불씨. 강호(江湖)란 대체 정확히 어디인가. 문단(文壇)이 무슨 주소라도 있는 데인 줄 알았다고 한숨 쉬던 P 소설가의 얼굴이 떠오를 뿐. 수천년 중국 역사를 판타지의 용광로에 펄펄 끓여 공간의 틀에 부어놓은 거라면 대충 비슷하려나. 역시 썩 성에 차진 않는다. 무협영화 속 고수호걸들이 칩거한 지역과 합종연횡 화살표를 표기한 강호 지도가 나온다면 감사히 장만할 텐데.
뭐 그런 잡념을 집적거리며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 나흘째를 맞은 일요일 오후의 해운대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눈뜸 들여놓은 오늘과 내일의 영화 티켓은 매진이고, 숙소는 한류 스타의 열렬한 팬을 포함한 아시아 관객으로 북적거리며, 행사장으로 향하는 바닷가 도로는 띠 모양 주차장 형국이다. 야심만만한 관객은 올해 칸과 베니스, 토론토의 ‘신상’(新商) 영화와 화제작을 한입에 삼켜버리리라 전의를 불태우고,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부산… 여기가 바로 강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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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하는 얘기지만, 현실 속 드라마는 영화의 드라마를 훨씬 뛰어넘는다. 최근에는 프로야구 플레이오프가 그랬고 칠레 광부 구출이 그랬다. 아닌 게 아니라 칠레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조만간 책으로 나오거나 영화화될 조짐이다. 워낙 심금 울리는 이야기라 할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급 휴먼드라마로 만들어진다 해도 유치하다는 소리는 안 들을 것 같다. 이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칠레 대통령일 것 같다. 하긴 이미 그는 생중계되는 방송 화면에 등장해 고립된 광부들의 가족들과 걱정을 나눴고 생환한 이들과 진한 포옹을 나누며 인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어차피 다 쇼 아니냐고? 현대 정치의 절반 이상이 이미지를 이용한 리얼리티 쇼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칠레 대통령은 적절한 연출과 설득력있는 연기를 보인 셈이니 꼭 속았다는 느낌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통령이 광부를 끌어안는 모습에선 어떤 진심조차 느껴졌으니 말이다(만약 그가 그 순간 머릿속에 지지율을 떠올리고 있었다면 올해의 연기
[에디토리얼] 연기라도 잘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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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30일
사람과 그가 깃들어 사는 공간이 조개의 몸과 조가비의 관계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말하나마나 건물은 유기체도 아니고 직접 살 자가 집을 짓는 경우도 드무니 맞을 리가 없는 비유다. 그런데도 누군가 자리잡고 한동안 살아온 방에 들어서면, 거기 사는 사람의 필요와 욕망이 보이지 않는 분비물처럼 조금씩 새어나와 굳어버린 껍데기로 느껴진다. 노래방, 독서실, 고시원처럼 집단이 사용하는 건물도 크게 다르진 않다. 김동주 감독은 <빗자루, 금붕어 되다>를 자막으로 시작한다. “서울 신림동에는 일명 ‘고시촌’(exam village)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여러 개의 작은 방으로 이뤄지며 6만명 이상이 고위 공무원 등이 되기 위해 공부하지만 합격해서 뜨는 사람은 극소수다.” 고시촌의 개념을 해설하는 이 자막은 마치 생태계의 특수 현상이라도 소개하는 투인데, 이어지는 영화와 썩 잘 어울린다. <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50대 후반의 남자 장필의 신림동 고시촌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웃기고 슬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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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째 부산국제영화제의 막이 올랐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앞에 깔린 레드카펫 주변이 혼잡스러운 것으로 보나 “최근 3년간 찾은 개막식 중 줄이 가장 길다”는 김성훈 기자의 트위트로 보나 조용했던 해운대 바닷가가 시끌벅적해진 것으로 보나 올해 행사도 어느 해 못지않게 후끈한 열기 속에서 진행될 게 틀림없다. 영화제 데일리 제작 때문에 이 거대한 축제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그저 지금 이 공간에 함께한다는 점만으로도 뭔가 차오르는 느낌이다.
사실 부산영화제는 관객만의 축제가 아니다. 영화계 입장에서도 부산영화제는 일종의 잔치판 구실을 해왔다. 그 잔치란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주최하는 화려한 호텔 파티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수많은 감독을 비롯해 중소 제작사 임직원, 프리랜서 프로듀서, 독립영화 관계자들은 해마다 부산으로 찾아와 다채로운 술자리를 가졌다. 따지고 보면 그들 또한 축제의 분위기에 젖어 신나는 판을 벌이는 셈이지만, 영화인들은 기가 막힌
[에디토리얼] 부산영화제가 다시 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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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7일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를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세명의 독신 여자가 어울려 불안과 실망을 주제로 명랑쾌활하게 떠들어댄 자리였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인생의 모서리에 몰렸을 때 도움을 준 책으로 특별 언급됐다. 그러므로 이 책을 각색한 영화에 기대를 건 것은 내 잘못만은 아니다.
오늘 본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음이 동한 장면은, 이혼을 감행한 리즈(줄리아 로버츠)가 1년에 걸친 자아발견 여행 끝에 발리에서 좋아하게 된 남자가 프러포즈했을 때, “어떻게 찾은 마음의 균형인데 사랑으로 무너질까 두렵다”라고 뒷걸음질치는 대목이었다(일단 그 남자가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비현실성은 논외로 하자). 우리는 자주 불행보다 불안을 더한 고통으로 느끼고, 지극한 행복보다 평온을 원한다. 인류 다수가 빈곤과 독재와 폭력에 신음하는 세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베니스, 시실리… 나만의 이탈리안 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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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부산영화제 시즌이 되면 한 가지 딜레마에 빠진다. 영화제의 행사와 영화를 볼까,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을 즐길까, 라는 딜레마 말이다. 어차피 일 때문에 부산에 내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그때마다 어두운 극장이나 침침한 사무실을 벗어나 시원한 야구장에서 악악대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오른다. 딱히 야구팬이랄 것도 없는 사람이 괜히 집적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평소 중계방송 한번 하지 않던 공중파 방송사들이 포스트 시즌 때만 되면 슬그머니 숟가락을 올려놓듯 뜨거운 ‘가을야구’의 열기를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리라.
롯데 자이언츠가 3년째 포스트 시즌에 참가하는 것도 그 충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부산이 어떤 도시인가. 야구에 죽고사는 야도(野都) 아닌가. 개인적으로 1992년 여름 사직구장에서 접한 광기에 가까운 부산의 야구 열기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동안 그나마 야구에 대한 욕망에 크게 휘둘리지 않았던 것은 롯데가 준플레이오프 관문을
[에디토리얼] 영화냐 야구냐. 부산,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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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샤브롤 영화에서 먹는 행위는 정찬부터 마담 보바리가 삼킨 비소까지 죄다 중요하다. 어록을 찾아보니 샤브롤 감독은 먹기를 즐겼을뿐더러 식사신을 촬영할 때 배우들이 대사만 하고 제대로 먹지 않는 방식의 연출을 아주 싫어했던 모양이다. 애연가이기도 해서 사진마다 파이프나 담배가 손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다. 여러모로 인간의 ‘용적’을 바닥까지 드러내는 영화들이었다.
9월8일
무슨 거울도 아닌데 우리는 스크린을 마주보기만 한다. 지정된 한점에 기꺼이 못 박혀 영화를 본다. 혹시 스크린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곁눈질하고 싶은 적이 없었나? 영사실 앞에 우뚝 일어서 내 그림자를 일부러 영화에 얹어보길 원했던 일은? 단 한번도? 스크린 뒤로 숨어들어가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보고 싶지는 않았던가? 방법은, 부쩍 영화관과 닮아가는 현대미술 갤러리에 가는 것이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프리미티브> 연작이 ‘미디어 시티 서울 2010’에 왔다. 과거와 미래의 일기를 편집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9월 8일 ~ 9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