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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가 아니다. 알면서도 도의를 어겨야 할 때가 있다. 길게 보면, 도의를 버리는 게 결국 도의가 되기도 한다.
윤종빈 감독은 5년 전 도의를 어겼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군 당국에 사기를 쳤다. 군부대 촬영협조를 요청하며 제출한 ‘선·후임병간의 우정에 관한 시나리오’는 가짜였다. 실제 영화는 전혀 다르게 나왔다. 그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엔 우정이 아니라 환멸이 등장했다. 육군 당국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흥분했다. (이젠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는 정말로 ‘용서받지 못한 자’가 될 뻔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군 당국의 협조를 얻어 영화를 찍으려면 일정한 간섭을 감수해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다. 외국도 다르지 않다. 지난호 <씨네21>에 인터뷰가 실린 가네코 슈스케 감독도 그랬다. 그는 <가메라>의 시나리오를 짜며 처음엔 자위대 전투기의 날개가 갸오스의 공격으로 파괴돼 추락하는 설정을 했다가 지웠다. 자위대가 협조를 안
[에디토리얼] 기대에 부응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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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왜 이런 일을 하세요?
20년째 운동가의 길을 걷는 한 여자선배에게 물었다. 50대를 코앞에 둔 그녀는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을 두루 섭렵한 뒤 지금은 자신의 생활근거지에서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처음에는 멋져 보여서 시작했는데, 그 다음에는 갚을 게 많아서였고, 지금은 그냥 할 일이 자꾸 생기는 것 같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쏘아붙였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그리고 덧붙였다. “야, 어떻게 술 한잔 안 마시고 그런 진지한 이야기를 하냐?”
그녀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뜸을 들이더니 결국 말했다. “즐거워서 했지. 진짜 즐거웠어.” 다시 물었다. “지금도 즐거워요?” “좀 부족해. 어떻게 해야 더 즐거울지 고민이야.” “왜 해요?” “사회를 바꾸고 싶잖아.” “다르게 살면 안돼요?” “이 일 때문에 내 삶이 송두리째 빼앗기는 느낌은 안 들어. 다만 현실을 고스란히 안아야 한다는 게 힘들지.” “동료들은 괜
[에디토리얼] 안개 같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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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친노좌파?
농담 같은 영화 비판을 접했다. 얼마 전 어느 MB스러운 주간지에 실린 글이다.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MB를 비하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정호(이순재)는 DJ를 암시하고, 차지욱(장동건)과 한경자(고두심)는 노무현의 분신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든 자유다. 문제는 이 작품이 두 전직 대통령의 업적과 인간미를 찬양하면서 친노좌파적인 정치선동을 한다는 거였는데, 왠지 공격이라기보다는 칭찬처럼 들렸다. 이 영화가 그렇게 날이 섰다는 말인가.
오히려 맨송맨송해서 탈이다. 감독 장진의 ‘무언가 한방’을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씨의 20자평은 함축적이다. “시작이 소박해서 좋지만, 끝까지 소박해서 아쉽다.” 반전은 없었다. 장진식 현실풍자는 별로 위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가령 10년 전에 만들어진 <간첩 리철진>을 돌이켜본다. 남파 공작원이 택시 강도를 당한다는 설정은 황당하면서도 결코 황당하지
[에디토리얼] 굿모닝 차지욱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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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터에선 눈 뜨고 코 베어간다. 재난 수준이다.
요즘 ‘메신저 피싱’이 극성이다. 주변에도 피해자가 적잖다. 어느 언론사의 총무부 여직원은 팀장 아이디로 로그인한 누군가의 요청에 의심없이 100만원을 보냈다. 지방 출장 중인데 교통사고가 나 급히 합의금이 필요하다는 부탁이었다. 상대방 계좌로 돈을 부치자마자 “점심 먹으러 가자”는 그 팀장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렸다. 그러니까, 귀신한테 홀린 거다. 잘 아는 후배 한명도 친구 아이디를 도용한 이에게 허망하게 털렸다. 돈을 보내고 세 시간 만에 낚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은행과 금융감독원은 물론 경찰에 신고하고 법원을 찾아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을 하는 등 하루종일 부산을 피워야 했다.
포털 사이트 역시 거대한 낚시터다. 이번엔 나의 피해사례다. 며칠 전 각 언론사들에 편집권이 주어진 오픈 캐스트를 보다가 아무개 경제신문 제목 하나에 눈길이 멎었다. “엄기영 사장 ‘<100분토론>에 정치 외압이…’.” 처음 접하는 팩
[에디토리얼] 낚시터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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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닭은 잘 안 죽는다.
잔인한 이야기 같지만, 역시 죽여본 사람이 잘 죽인다. 20여년 전 “닭 좀 잡아보라”는 제안에 기겁을 한 적이 있다. 충청도의 한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선배의 집을 찾았을 때다. 손님을 대접하겠다며 마당에 있는 닭을 잡아 닭도리탕을 해먹자는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옆에서 좀 거들라는 거였다. 오, 노! 일행 중 다른 이들도 손사래를 쳤다. 소심하고 비겁한 나는 닭의 비명조차 듣기 싫어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 선배도 닭을 잡는 데엔 초보라 낑낑거리며 일을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마냥 손을 놓고만 있기는 미안해 ‘마무리 작업’을 도왔다. 깨끗하게 먹기 위해 남은 닭털을 손으로 일일이 뽑는 거였다. 그것조차 닭살 돋는 일이었다. 그날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 중엔 서투르게 닭을 잡다간 아주 곤란하고 당혹스런 상황을 맞는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목이 떨어져나가고도 채 죽지 않고 푸드득 날아다녀 주변을 피칠갑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에디토리얼] 사람 모가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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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곤경에 처했다!>를 보려다가 정말로 곤경에 처했다.
택시를 잡기 위해 거리에 나선 것은 영화 상영 40분 전. 며칠간 머물던 해운대구 중동의 호텔 앞에서 CGV센텀시티까지는 넉넉잡아 15분이었다. 한데 빈 택시가 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5분, 10분, 15분, 20분… 계속 허탕이었다. 초조했다. 10분 정도 남기고서야 합승을 시도했다. 다행히도 같은 방향 승객이 ‘관용’을 베풀었다. 근처에서 마라톤대회가 열려 교통이 통제된다고 했다. 산 넘어 산이었다. 시간에 맞춰 갈지 의문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얄짤없기로’ 유명했다. 영화 시작되면 절대 문 안 열어준다. 극장 앞에서 물먹고 돌아설 공산이 컸다. 택시 안에서 후회가 밀려왔다. “영화도 별로라는데… 역시 가지 말걸 그랬나?”
영화를 먼저 본 지인에게 악평을 들은 건 이틀 전이었다. 부산영화제 메인 경쟁부문인 ‘뉴커런츠’에 오른 12개 작품 중 하나라 나름 기대했는데 영 아니라는 얘기였다. “홍상수 영화랑
[에디토리얼] 당신은 곤경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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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공주님 때문이다.
방콕에서 캐주얼 구두를 샀다. 신고 간 운동화로는 공주님을 먼 발치에서조차 알현할 수 없었다. 행사 주최쪽은 ‘엄중한 정장’을 요청했다. 남성은 슈트 상의와 하의의 색깔이 일치하고 넥타이를 매야 했으며, 여성은 무릎 밑까지 내려가는 치마를 입어야 했다. 대충 슈트 상의만 걸치고 간 터라, 현격하게 기준 미달이었다. 아무튼 넥타이를 빌리고 신발을 바꾸는 선에서 입장을 허락받았다. 이게 다 타이 왕실의 우볼 라타나 랏차카냐 스리와타나 판나와디 공주님 때문이다^^.
지난 9월30일 오후 7시, 방콕의 차트리움 호텔에서 열린 방콕국제영화제 폐막식. 공주님은 한 시간이나 늦게 나타났다. 객석에서 불만이 섞인 웅성거림은 전혀 없었다. 공주님이 들어오자 왕실찬가가 울려 퍼졌고 모두 일어서 예를 표했다. 빨간 원피스를 곱게 입은 58살의 공주님은 무대 중앙 의자에 ‘미스코리아 진’처럼 사뿐히 앉았다. 경쟁부문 시상식 때는 ‘그냥 앉은 채로’ 수상자들에게 일일이 트로피
[에디토리얼] 공주님, 부산에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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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저녁약속은 몇번이나….”
가끔 그런 질문을 받는다. “글쎄요”라고 말끝을 흐리다 “한 2~3회 정도”라고 대답한다. 마감날인 수·목을 제외한 월·화·금에 주로 저녁약속을 잡는 편이다. 그렇다면 ‘저녁약속’이란 무엇인가. 저녁식사만 하고 헤어지는 약속일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사회에서 그것은 본래의 의미보다 더 확장된다. 보통 저녁약속 자리에선 밥 말고 다른 걸 먹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다. 차수를 여러 번 바꿀지도 모른다. 저녁이 아니라 새벽까지도 간다. 불야성을 이룬 도심 먹자골목의 낯익은 풍경을 떠올려본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오래도록 먹고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이 참 많다.
서너해 전 어느 날의 저녁약속은 색다른 기억이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과 볼링만 치고 헤어져서다. 한 친구의 돌발 제안으로, 간단한 식사 뒤 밤 11시까지 볼링공만 죽도록 던졌다. 집에 돌아가는데, 팔이 뻐근해지면서 뭔가 생경한 느낌이 달라붙었다. 아마도 3
[에디토리얼] 저녁약속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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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백혈병에 걸렸다. 그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 그녀는 암에 걸렸다(무슨 암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루게릭병에 걸렸다.
우연히도 요즘 ‘심란한 영화’들만 줄줄이 보았다. 개인적으로 심란한 영화란 극중 인물들이 대책없는 병에 걸렸을 때다. 특히 사랑하는 이의 시한부 인생을 지켜봐야 하는 가슴 저린 영화다. 차라리 잔혹하고 끔찍한 살인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경우가 견디기 쉽다. 아픈 영화를 관람하고 극장에서 나오면 진이 빠진다. 감정을 탕진한다.
맨 앞 문장에서 나열한 환자들은 차례대로 <마이 시스터즈 키퍼> <블랙> <애자> <내 사랑 내 곁에>에 등장한다. 가장 보기 편한 영화는 <블랙>이었다. 아마도 가장 감정이입이 덜되어서였을 거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소녀 미셸의 기적을 만들어준 사하이 선생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황은 비극적이지만 객관화하기 수월했다. 감정이입이 잘된 영화는 <마이 시스터즈 키퍼>와 <
[에디토리얼] 아파서 힘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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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 the Gook for God.
얼마 전 20세기 현대사를 다룬 어느 외국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눈길이 멎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 미군의 철모에 적힌 글자 때문이었다. 매직으로 쓴 영어 문장을 우리말로 옮기면 “신을 위해 국을 죽여라”였다. 미군들이 ‘국’이란 말을 널리 썼다는 사실을 익히 알았지만 실제 영상으로 보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국’이란 무엇인가. ‘국’은 황인종을 뜻하는 비속어다. 양키, 쪽바리, 되놈과 비슷한 어감의 말이다. 미군들은 한국전쟁 때에도 남한과 북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경멸적으로 부를 땐 ‘국’이라 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국’인가. 내가 알기로는 한국·중국·태국이라 부를 때 쓰는 그 ‘국’의 한자어 발음에서 유래했다. 나라 국(國)인 셈이다.
미군들이 모욕적인 의미에서 ‘국’이라 지껄이건 말건, 한국인들은 ‘국’을 사랑한다. 그래서 ‘애국’이다. 애국은 한국사회에서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애국’을
[에디토리얼] ‘국’을 사랑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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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황금시대>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한 진중권씨는 경비행기 마니아다. 그의 블로그 메인 화면엔 비행기 사진이 크게 떠 있다. ‘논객 진중권’의 날카로운 독설과 함께 ‘비행기 조종사 진중권’의 다소 감상적인 비행일기도 만날 수 있다. 바람과 구름의 변화, 이륙과 착륙의 순간들이 위태롭거나 담담하게 펼쳐진다. 잇따라 대학에서 퇴출당하는 그의 소식을 접하며 하늘을 날다 심하게 흔들리는 그의 경비행기를 상상했다. 비행기를 추락시키려는 누군가의 음모. 날개는 조금 부러졌지만, 조종사는 호락호락 포기하지 않을 듯하다. 현실에서 그는 계속 비행할 것이다.
경비행기의 이미지는 다시 어떤 여배우의 얼굴과 겹쳐진다. 고 장진영씨다. 2005년 12월 개봉된 <청연>의 포스터에서 비행고글을 쓴 모습을 기억한다. 그녀는 식민지 시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을 연기했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비행을 무산시키려는 누군가의 마법 같은 주문이 시작됐다. 마른하늘에 폭풍우가 치고
[에디토리얼] 푸른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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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번쩍 뜨이는 책을 발견했다.
얼마 전 사무실에서 책 담당 이다혜 기자의 책상을 지날 때였다. 수북이 쌓인 책더미에서 제목 하나가 눈길을 잡아당겼다. <징징거리지 마라>. 아니, 그 말은 내가 우리집 아이들에게 입이 닳도록 하는 잔소리가 아닌가. 필이 번개처럼 왔다. 마침 아홉살 난 딸아이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때라, 장난삼아 그 책을 선물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니가 귀엽긴 하지만 지긋지긋할 때도 많단다. 그러니 제발 그만 좀 징징거려라”란 뜻으로.
이 책의 지은이인 재뉴어리 존스는 ‘징징거림 비평가’를 자처하는 미국인 할머니다. 그는 세대별 징징거림의 유형을 들고 대처방법을 제시한다. 가령 10대들의 징징거림 톱3는 TV와 컴퓨터, 숙제와 성적, 용돈 순이다. 아이를 둔 부모라면 그 징징거림에 직면하는 스트레스를 잘 안다. 때로는 환장할 정도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징징거림을 퇴치하는 대단한 비책을 담지는 않았다. 상식적인 수준이다. 지은이는 “우리가 진
[에디토리얼] 징징거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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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가 돌아,
라고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설사 MB정부 하는 짓에 야마가 돌아도, 다른 표현을 찾는 게 옳다. 비속어다. “MB정부에 야마가 있는가”라고 묻는 건 한결 낫다. 두 야마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처음 잡지를 만들 땐 그 용어가 생소했다. 선배들은 툭하면 말했다. “기사에 야마가 없잖아.” “그 기획은 야마가 분명하지 않아.” 알아보니, 야마는 산(山)을 뜻하는 일본어 ‘야마’(やま)에서 유래했다. 야마엔 산 말고도 꼭지·절정·핵심이라는 의미도 있다. 야마가 돈다는 건 꼭지가 돈다는, 야마가 있냐는 건 알맹이가 있냐는 뜻이었다. 신문사 기자들의 입에 달라붙은 야마는 생활에서도 응용된다. 얼마 전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는 한 여자후배는 상대 남자에 관해 이렇게 혹평했다. “허우대도 멀쩡하고 반듯하게 생겼는데, 대화를 해보니 야마가 없어요.” 캐릭터의 주제가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개성이나 특징이 요약되지 않아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야마를 떠올린 건
[에디토리얼] 야마 또는 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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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특사가 되고 싶었다.
국가권력의 은총을 입기를 열망했다. 제발 8월15일을 기해 대규모 특별사면이 남발(!)되기를, 그 명단에 끼게 되기를 빌었다. 그리하여 부자유의 기간이 절반으로 줄었으면 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노무현 정부는 그 ‘비원’을 외면했다. 올해 여름처럼, 그해 광복절에 ‘사면 잔치’는 없었다. 2003년의 일이다. 특별사면에 목매는 처지가 됐던 사연은 밝히기 뭐하지만….
영화 <광복절 특사>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6개월 뒤다. 2002년 11월에 개봉한 영화지만, 나는 2004년 1월 베트남의 중부도시 다낭에서 봤다. 하노이행 비행기 시간을 8시간 남기고 할 일이 없어 주변 극장을 찾았다. 한국인 ‘킴’이 사장이라는 멀티플렉스였다. 베트남에선 외국영화나 TV드라마의 모든 대사를 한 사람이 더빙한다. 일종의 변사다. 베트남어 더빙이 잽싸게 끝나곤 해 한국말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알다시피 광복절 특사로 곧 석방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두 죄수가 굳이 탈
[에디토리얼] 야스쿠니 오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