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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 the Gook for God.
얼마 전 20세기 현대사를 다룬 어느 외국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눈길이 멎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 미군의 철모에 적힌 글자 때문이었다. 매직으로 쓴 영어 문장을 우리말로 옮기면 “신을 위해 국을 죽여라”였다. 미군들이 ‘국’이란 말을 널리 썼다는 사실을 익히 알았지만 실제 영상으로 보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국’이란 무엇인가. ‘국’은 황인종을 뜻하는 비속어다. 양키, 쪽바리, 되놈과 비슷한 어감의 말이다. 미군들은 한국전쟁 때에도 남한과 북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경멸적으로 부를 땐 ‘국’이라 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국’인가. 내가 알기로는 한국·중국·태국이라 부를 때 쓰는 그 ‘국’의 한자어 발음에서 유래했다. 나라 국(國)인 셈이다.
미군들이 모욕적인 의미에서 ‘국’이라 지껄이건 말건, 한국인들은 ‘국’을 사랑한다. 그래서 ‘애국’이다. 애국은 한국사회에서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애국’을
[에디토리얼] ‘국’을 사랑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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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황금시대>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한 진중권씨는 경비행기 마니아다. 그의 블로그 메인 화면엔 비행기 사진이 크게 떠 있다. ‘논객 진중권’의 날카로운 독설과 함께 ‘비행기 조종사 진중권’의 다소 감상적인 비행일기도 만날 수 있다. 바람과 구름의 변화, 이륙과 착륙의 순간들이 위태롭거나 담담하게 펼쳐진다. 잇따라 대학에서 퇴출당하는 그의 소식을 접하며 하늘을 날다 심하게 흔들리는 그의 경비행기를 상상했다. 비행기를 추락시키려는 누군가의 음모. 날개는 조금 부러졌지만, 조종사는 호락호락 포기하지 않을 듯하다. 현실에서 그는 계속 비행할 것이다.
경비행기의 이미지는 다시 어떤 여배우의 얼굴과 겹쳐진다. 고 장진영씨다. 2005년 12월 개봉된 <청연>의 포스터에서 비행고글을 쓴 모습을 기억한다. 그녀는 식민지 시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을 연기했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비행을 무산시키려는 누군가의 마법 같은 주문이 시작됐다. 마른하늘에 폭풍우가 치고
[에디토리얼] 푸른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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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번쩍 뜨이는 책을 발견했다.
얼마 전 사무실에서 책 담당 이다혜 기자의 책상을 지날 때였다. 수북이 쌓인 책더미에서 제목 하나가 눈길을 잡아당겼다. <징징거리지 마라>. 아니, 그 말은 내가 우리집 아이들에게 입이 닳도록 하는 잔소리가 아닌가. 필이 번개처럼 왔다. 마침 아홉살 난 딸아이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때라, 장난삼아 그 책을 선물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니가 귀엽긴 하지만 지긋지긋할 때도 많단다. 그러니 제발 그만 좀 징징거려라”란 뜻으로.
이 책의 지은이인 재뉴어리 존스는 ‘징징거림 비평가’를 자처하는 미국인 할머니다. 그는 세대별 징징거림의 유형을 들고 대처방법을 제시한다. 가령 10대들의 징징거림 톱3는 TV와 컴퓨터, 숙제와 성적, 용돈 순이다. 아이를 둔 부모라면 그 징징거림에 직면하는 스트레스를 잘 안다. 때로는 환장할 정도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징징거림을 퇴치하는 대단한 비책을 담지는 않았다. 상식적인 수준이다. 지은이는 “우리가 진
[에디토리얼] 징징거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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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가 돌아,
라고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설사 MB정부 하는 짓에 야마가 돌아도, 다른 표현을 찾는 게 옳다. 비속어다. “MB정부에 야마가 있는가”라고 묻는 건 한결 낫다. 두 야마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처음 잡지를 만들 땐 그 용어가 생소했다. 선배들은 툭하면 말했다. “기사에 야마가 없잖아.” “그 기획은 야마가 분명하지 않아.” 알아보니, 야마는 산(山)을 뜻하는 일본어 ‘야마’(やま)에서 유래했다. 야마엔 산 말고도 꼭지·절정·핵심이라는 의미도 있다. 야마가 돈다는 건 꼭지가 돈다는, 야마가 있냐는 건 알맹이가 있냐는 뜻이었다. 신문사 기자들의 입에 달라붙은 야마는 생활에서도 응용된다. 얼마 전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는 한 여자후배는 상대 남자에 관해 이렇게 혹평했다. “허우대도 멀쩡하고 반듯하게 생겼는데, 대화를 해보니 야마가 없어요.” 캐릭터의 주제가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개성이나 특징이 요약되지 않아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야마를 떠올린 건
[에디토리얼] 야마 또는 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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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특사가 되고 싶었다.
국가권력의 은총을 입기를 열망했다. 제발 8월15일을 기해 대규모 특별사면이 남발(!)되기를, 그 명단에 끼게 되기를 빌었다. 그리하여 부자유의 기간이 절반으로 줄었으면 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노무현 정부는 그 ‘비원’을 외면했다. 올해 여름처럼, 그해 광복절에 ‘사면 잔치’는 없었다. 2003년의 일이다. 특별사면에 목매는 처지가 됐던 사연은 밝히기 뭐하지만….
영화 <광복절 특사>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6개월 뒤다. 2002년 11월에 개봉한 영화지만, 나는 2004년 1월 베트남의 중부도시 다낭에서 봤다. 하노이행 비행기 시간을 8시간 남기고 할 일이 없어 주변 극장을 찾았다. 한국인 ‘킴’이 사장이라는 멀티플렉스였다. 베트남에선 외국영화나 TV드라마의 모든 대사를 한 사람이 더빙한다. 일종의 변사다. 베트남어 더빙이 잽싸게 끝나곤 해 한국말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알다시피 광복절 특사로 곧 석방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두 죄수가 굳이 탈
[에디토리얼] 야스쿠니 오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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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아파트로 간다.
최종마감이 끝나는 날 새벽이면 승용차를 운전해 퇴근한다. 자유로를 달려, 40분 만에 도착하는 아파트 주위는 그저 음산하다. 주차할 곳을 찾는다. 일단 지하주차장은 피한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다. 그 음침하고 드넓은 공간에서 쿵쿵 울리는 내 발자국 소리의 여운이 싫다. 어떻게든 지상에 대려고 돌고돌지만 쉽지 않다. 결국 지하로 내려간다. 역시 빼곡하다. 단 하나의 자리도 없다. 숨이 막혀온다.
새벽에 ‘맨 정신으로’ 아파트에 들어갈 땐 약간의 긴장이 요구된다. 14년 전 복도식 아파트에 처음 살 땐 더욱 그랬다. 내가 사는 곳은 8층의 맨 구석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다섯집의 창문을 지나가야 했다. 중간에 통로 하나도 거쳐야 하는데, 가끔 정체 불명의 남자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좁은 복도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고 겁이 났다. 알고보니 우유 배달부였다. 그곳에 10년 살면서 세명의 자살 소식을 접했다. 한명은 여중생이었고, 또 한명은
[에디토리얼] 무서운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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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해변 같았다.
지난 주말 어느 멀티플렉스에서 경험한 영화 <해운대>의 관람 풍경이다. 살짝 해수욕장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시간대마다 매진이었는데, 가족 단위 관람객이 특히 많았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신경이 거슬렸지만 참아줄 만했다. 문제는 영화가 중간쯤 지나서부터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이들이 줄줄이 들락날락거렸다. 팝콘과 함께 거대한 크기의 찬 콜라를 마셨으니 요의를 느끼는 게 당연했다. 콜라를 마시지 않은 우리집 꼬마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제때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됐고, 나 역시 결국 밖으로 나가 두리번거려야 했다. 영화가 끝날 때는 엔딩 크레딧이 오르자마자 왁자지껄 퇴장이 시작됐다. 사람들의 에티켓만을 따질 순 없다. 멀티플렉스 문화가 원래 그렇다.
광화문에 위치한 씨네큐브는 정반대다. 가끔 이 극장에 갈 때마다 낯설다. 일단 상영시간 직전에 입장하면 내부가 너무 밝다. 불이 환해 무슨 세미나 행사장에 온 듯하여 어색하다. 그동안 어둠에 너무 익
[에디토리얼] 몇가지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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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저 사람이 누구더라?
<바더 마인호프>의 엔딩 크레딧을 보다가 원작자 이름에서 눈길이 멎었다. 슈테판 아우스트. 어디선가 들어본 게 틀림없었다. 기억이 불쑥 떠오르진 않았다. 그냥 유명한 작가이겠거니 하고 넘기려는데 불현듯 7년 전 일이 머리를 쳤다. ‘맞다. <슈피겔> 편집국장이다.’ 2002년 1월, 독일 함부르크에 위치한 거대 미디어 그룹 슈피겔 본사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고교졸업장과 운전면허증이 내가 가진 자격증의 전부”라고 했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었다. 관련 자료를 뒤져보니, 그는 <바더 마인호프>에 등장하는 울리케 마인호프와 함께 리버럴 좌파 잡지였던 <콩크레트>에 근무했다고 한다. 그 경험으로 1985년 <신화의 시간>이라는 소설을 썼고, 한참 뒤 울리 에델 감독이 이를 영화화했다. 머나먼 이국땅 영화가 크레딧 한방으로 친숙해지는 기분이었다.
영화에서 여성 언론인 마인호프는 적군파 혁명가로 투신한다. 백화
[에디토리얼] 폭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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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해가야하다고그리오.”
이상의 시 <오감도> 1호를 비틀어보았다. 본래는 “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다. 같은 구절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난해한 시다. 식민지 시절의 문인 이상이, 자신의 시 제목과 같은 2009년 영화 <오감도>를 본다면 “야하다”고 읊조릴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주변 지인들 중엔 그렇게 평하는 이가 드물었다. 영화평론가 한동원씨는 “키스신만 되면 극장 가득 울려퍼지는 닭뼈 빠는 사운드… 아무런 감흥이 없으니 이건 거의 눈물의 바다”라고 어디엔가 독하게 썼다. 에로스를 소재로 한 다섯편의 옴니버스영화라는데, 나로서도 ‘오감’이 열리지 않아 ‘유감’이었다.
최근 한국영화 중에 가장 야한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한 후배에게 질문을 던지니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006)과 <바람난 가족>(2003)을 꼽는다. 둘 다 문소리가 등장한 작품이다. 강혜정, 박해일이 나온 <연애의 목적>(2005)과 김민선의 <미인도
[에디토리얼] 야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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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감은 호감이다.
발음이 ‘맛있는’ 몇 가지 외국말을 골라본다. 첫째, 사이공이다. 베트남 남부지방의 도시 이름이다. 어원은 불분명하다. 맨 뒤 ‘공’자를 길게 늘여뜨려주면 더 좋다. 입에 착 달라붙는다. 향락의 거리를 거니는 아오자이 입은 여인이 떠오른다. 아마도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에 가끔 등장하던 옛 남베트남 수도의 영화(榮華)가 오버랩돼서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호찌민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베트남인들은 ‘사이공’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말엔 야릇한 울림이 있다.
둘째, 안나푸르나다. 아득하지만 당당하게 버티고 선 히말라야 설산의 고봉들이다. 두 번째 음절 ‘나’와 세 번째 ‘푸’ 사이에 호흡을 한번 쉬어주는 게 좋다. 여러 번 되씹어 불러도 새록새록 참신하다. 쉽게 갈 수 없으나, 죽기 전에 언젠가는 꼭 한번 발을 디디고픈 이상향 같은 지명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수확의 여신’이라는 뜻도 심상치 않다.
셋째, 바캉스다. 휴가의 프랑스어다. ‘캉’에 악센트를 넣
[에디토리얼] 킹콩 & 사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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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봤는데 판사는 못 봤다.
한국영화엔 가끔 검사 캐릭터가 등장한다. 대부분 꼴통처럼 나온다. <넘버.3>의 마동팔 검사(최민식), <공공의 적2>의 강철중 검사(설경구) 모두 그렇다. 평범하고 점잖은 검사는 없다. 그럼 판사는 어떠한가. 한국영화에서 아직 만난 적은 없지만,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본다. 늘 신중하고 냉정한 모습? 고지식하고 권위적인 꼰대? 공정판결의 사명감으로 불타는 청백리?
최근 발간된 <부러진 화살>이라는 르포집을 읽었다. 어느 수학자와 판사집단간의 싸움을 다룬 책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떠오른 생각은 ‘정통 사회물 영화에 딱 좋은 소재’라는 것이었다. 책 속의 판사들이 영화에 등장하면 뜻있는 일이겠다 싶었다. 혹시 법정영화에 관심을 지닌 제작자나 감독, 시나리오작가가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책의 주인공은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 전 교수다. 그는 눈치없이 바른말을 하다 1996년 학교에서 쫓겨났다
[에디토리얼] 판사님을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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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도 한때는 영화평을 쓰며 먹고살았다. 감독 입봉하기 전의 일이다. 그때 그에겐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고 한다. <박찬욱의 오마주> 서문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첫째, 한국영화는 건드리지 않는다. 둘째, 외화라도 극장 개봉을 즈음해서 발표되는 리뷰는 안 쓴다. 셋째, 욕하고 싶은 영화라면 차라리 아예 다루지 말자.” 여기저기 영화사들을 찾아다니며 작품 연출 기회를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씨네21>이라면 어떨까. 정반대다. 한국영화는 건드리지 않을 수 없고, 한국영화건 외화건 모두 극장 개봉 전에 프리뷰를 쓴다. 거기엔 칭찬만 담기지 않는다. 욕까지는 아니더라도 날선 비판을 할 때도 있다. 해당 영화사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개봉 전만이라도 부정적인 평을 자제해달라”는 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특히 20자평에 민감하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이해할 만하다. 뚜껑도 열기 전에 모욕당한 느낌일지도 모
[에디토리얼] 스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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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배우 고 박광정이 첫 주연을 맡았던 영화가 있다. 2007년에 개봉한 김태식 감독의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라는 작품이다. 박광정은 극중에서 바람난 아내와 그 애인에 분기탱천하는 도장가게 주인으로 나온다. 영화가 시작되고 오프닝 타이틀이 오르기 전까지, 카메라는 조각칼로 도장파기에 열중하는 그의 모습을 클로즈업해 꽤 길게 보여준다. 작업을 마친 뒤 도장을 잉크에 묻혀 종이 위에 쾅 찍어내는 박광정. 마침내 도장에 새겼던 글자가 스크린에 공개되는데, 그건 사람 이름이 아니다. 뜻밖에도 분노의 심경이 담긴 딱 두 글자다. 민망해서 이 지면엔 옮기지 못하겠다. 단지,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민중언어이자 아주 소박한 육두문자라는 것(궁금하면 영화에서 확인하시라).
실제 도장가게를 찾아가 그런 글자를 파달라면 미친놈 취급당하기 십상이리라. 그럼에도 하나 파서 성질 뻗칠 때마다 찍어주면 스트레스가 풀릴지도 모르겠다. ‘길티플레저’로 하나 키워볼까? 여기까지 썼는데,
[에디토리얼] 게임, 아니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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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지나간 자리, 웃음이 돋는다.
전직 대통령의 비극을 둘러싼 그림자가 한동안 너무 깊었다. 그 우울한 모드를 몇 가지 일들이 전환시켜주었다. 지난주 폭소유발 아이템 베스트3를 내 맘대로 정리해보겠다.
No1, <개그콘서트>보다 재밌는 <아사히TV>의 개그였다. 한국인 40대 남성이 휴가 가서 한가하게 찍은 기념사진이, 북한 김정일의 후계자로 알려진 셋째아들의 것으로 둔갑한 일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웃긴다. 뭔가 음산한 냄새까지 풍기는 언론보도용 ‘얼굴 클로즈업 사진’과 주변 원두막 풍경이 다 드러난 ‘와이드숏 원본 사진’의 하늘땅 차이. 트리밍(사진편집)의 마술이란 말인가. 심각한 첩보영화의 엉뚱한 반전에 미친 듯 배꼽을 잡은 느낌이다. 이 보도를 인용한 국내 언론의 북한 전문가 코멘트는 또 어떠한가. “얼굴이 둥글고 목이 두꺼우며, 살집이 많은 점으로 미루어 김정일의 젊은 시절을 쏙 빼닮았다.” 허위보도를 질책하며 언론의 정도를 따질 필요는 없다. &l
[에디토리얼] 폭소유발 베스트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