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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하다. 뭔가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느낌에 모두가 우왕좌왕이다. 도대체 왜? 만나는 사람마다 죽음의 이유를 추측하며 비현실적인 사건과 현실 사이의 공백을 메우려 하지만 가당치 않다. 어딘가 발을 헛디딘 사람처럼 휘청거릴 뿐이다. 인터넷의 연예 저널리즘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죽음에 합리적 이유가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핑계일 가능성이 크다.
<마요네즈> 개봉을 앞두고 최진실 인터뷰를 하고 매니저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나이가 있는데 계속 귀여운 이미지만 내세우면 곤란하지 않느냐,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데 어떻게 할 거냐는 식의 질문에 최진실이 많이 속상했다는 내용이었다. 퇴물 취급을 받은 것 같아 화가 났다는 말에 그 정도 질문은 괜찮지 않냐며 반발했던 기억이 난다. 기자로선 당연한 질문을 했지만 개인적으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했다는 게 기분 좋을 리는 없었다. 그런 질문을 했던 건
[편집장이 독자에게] 최진실과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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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잡지 만드는 일을 시작했을 때 글을 쓰면 잡지는 저절로 나오는 줄 알았다. 글을 쓰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기에 그 글이 어떤 공정을 거쳐 어떻게 인쇄돼야 독자의 손에 가게 되는지에 관해선 사실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글쓰는 일이 잡지를 만드는 데 있어 무척 작은 영역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이 무척 영세한 잡지였기에 글을 쓰는 며칠보다 훨씬 많은 일이 글을 쓴 뒤에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을 찾거나 교열·교정을 하는 일은 물론이고 인쇄소에 가서 인쇄된 책을 규격에 맞게 자르고 포장한 뒤 트럭에 싣고 배달하는 일까지. 잡지가 독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어떤 노동이 들어가야 하는지 몸으로 배운 시기였다. 그렇게 일을 배워서인지 후배들한테도 인쇄소에 한번 가보길 권하는 편이다. 책상에 앉아 자판만 두드려서는 알 수 없는 세계가 그곳에 있고 나의 고뇌만큼 가치있는 땀이 거기 흐르기 때문이다. 인쇄된 종이만 보고 종이의 재질이 어떠하며 무게가
[편집장이 독자에게] 엔딩 크레딧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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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합본호를 만들고 1주일 쉬는 기간 캄보디아에 다녀왔다. 앙코르와트를 보러갔고 기대했던 대로 앙코르와트의 거대한 유적은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압도적이었다. <화양연화>의 엔딩이 왜 이곳에서 이뤄졌는지 한번 가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800년 전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던 석조건물이 허물어지는 틈 사이로 500년쯤 된 나무의 거대한 뿌리가 비집고 들어간 모습을 보노라면 누구라도 시간에 대한 상념에 사로잡히리다. 이곳은 정말 시간을 묻고 고개 숙여 경건한 기도를 드리기에 더없이 적당한 장소처럼 보인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화양연화>를 보고나서 앙코르와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 전에는 망설이는 마음이 있었다. 막 서울의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자마자 더 덥고 습한 곳으로 간다는 게 어딘지 손해보는 느낌이었고 몇 차례 동남아를 다녀온 기억이 좋지만은 않았다. 가난한 나라에서 우쭐대는 부자 나라 여행객의 추태를 본 적 있는데다
[편집장이 독자에게] 미지를 향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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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탓에 불온서적에 관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학교 앞 서점이 온통 사회과학서적으로 가득했고 사상을 선전하고 혁명을 선동하는 책자에 탐닉하는 대학생이 적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라 가방에 넣고 다니다 검문에 걸릴까 가슴이 두근대기도 했다. 시위에 나섰다 경찰에 연행되기라도 하면 운동권 동료들은 재빨리 연행된 친구의 집에 가서 방을 정리했다. 혹시 경찰이 불온서적을 빌미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할까 싶어 문제가 될 만한 책을 모두 치우는 것이다. 나도 한번 연행된 적이 있는데 친구들이 찾아와 책을 치웠고 경찰서에서 돌아왔을 때 그 책들은 모조리 재가 되어 있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염려한 할머니가 뒷산에 가져가 그 많은 책을 태워버린 것이다. 왜 태웠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느꼈을 붉은색에 대한 공포는 능히 짐작할 만했다.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책이 아닌데 그때는 사는 것만으로 스릴이 있었고 읽는 것이 일
[편집장이 독자에게] 불온 부추기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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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여름이 사라졌다. 아침 잠을 깨우던 지겹던 매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직 8월인데 하고 방심한 사이 가을이 시작된 것이다. 주간지를 만들다보면 계절을 앞질러야 할 때가 있다. 열대야에 시달리는 와중에 다음주엔 가을, 겨울영화를 소개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면 한여름에 무슨 소린가 싶지만 몇주 뒤에 바뀐 계절을 실감하게 되면 일찍 준비하길 잘했다 싶다. 물론 이런 일을 자주 하게 되면 계절 타는 기획을 습관적으로 내놓게 되기도 한다. 경험이 가르쳐준 대로 따라하다 식상한 메뉴라는 평판을 듣고서 뜨끔해지는 것이다. 이번호 인터뷰 가운데 가수이자 <중경>의 배우 샤오허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그동안 일관되게 생각해온 것 중 하나가 창작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이 경험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좀더 좋은 길로 가기 위해, 아니면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경험들이 축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경험의 결과 혹은 학습의 결과가 모방하거나
[편집장이 독자에게] 극장의 미래, 저예산 예술영화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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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액션배우다>는 올해 독립영화계의 화제작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먼저 본 친구들로부터 재미있다는 말을 듣고 나 역시 개봉을 기다렸다. 서울액션스쿨 8기생의 이야기라는 말만 듣고 스턴트맨의 애환을 다룬 눈물나는 다큐멘터리를 예상했는데 웬걸 킥킥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코미디다. 등장인물들이 한결같이 귀엽고 바보 같다는 느낌을 줄 만큼 솔직해서 보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된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그 자연스러움은 무엇보다 감독 정병길이 그들의 친구이자 동료, 액션스쿨 동기생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가까운 인물에 카메라를 들이댄다고 무조건 명랑쾌활하란 법은 없다. 주성치를 동경해 영화를 시작했다는 정병길의 고백에서 묻어나듯 이 영화는 주성치의 미학에 젖줄을 대고 있다. 주성치는 언제나 사회적 약자 혹은 마이너리티인 등장인물들을 놀리고 고난에 빠트리지만 그들에 대한 진한 애정으로 가슴 뭉클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화장실 유머는 없어도 <우린 액션배우다>는
[편집장이 독자에게] <우린 액션배우다>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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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촛불집회 때문일까? 사람들은 전에 없던 미디어 환경을 경험했다. TV에서 볼 수 없는 집회의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가 하면 경찰의 시위자 구타 장면이 파일로 순식간에 전파돼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누구든 어디서든 동영상을 찍어 만인과 공유하는 세상. TV와 신문의 절대적 권위는 상처를 입었고 새로운 미디어 문화가 민주주의의 큰 진전을 의미한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던 때처럼, 카메라가 설치된 휴대폰이 처음 보급됐을 때처럼 머리로 받아들이기 전에 몸으로 익히는 일들이 이어졌다. 문자세대에 속하는 나 같은 사람은 특히 이런 사태가 당황스러웠다. 짤방, 힛갤, 햏자 같은 표현이나 블로그에 익숙해지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고 UCC라는 단어도 그저 마케팅을 위한 용어처럼 보였다. 이렇게 인터넷 문화에 발빠르게 적응 못하는 사람이 최근 몇달간 촛불집회 생중계에 열을 내고 ‘뼈의 최후통첩’을 보고 웃으며 동영상 검색을 일상에 포함시키게 된 걸
[편집장이 독자에게] 빠삐놈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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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이하 <다찌마와리>)를 보며 웃다가 눈물이 났다(대단한 걸작 코미디는 아니지만 이 영화에는 배를 잡고 구를 만한 장면이 여럿 있다). 임원희가 죽어가는 동료(정석용)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대목인데 임원희의 입과 코에서 나온 끈쩍한 액체가 정석용의 얼굴로 쏟아지기 직전이다. 비위 약한 사람은 도저히 더러워서 눈뜨고 볼 수 없는 장면. 흔히 화장실 유머라 일컫는 코미디로 주성치가 <희극지왕>에서 써먹었던 콧물장면을 연상시킨다. <희극지왕>에선 주성치의 콧물이 길게 늘어져 막문위의 입에 닿을락 말락 하는 서스펜스를 클로즈업으로 찍었고 <다찌마와리>는 좀더 거리를 두고 찍었지만 그 양이 압도적이다. 글로 쓰자니 지면이 흥건한 느낌마저 든다. 영화를 보고나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왜 그리 웃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웃음을 논리적으로 해명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 장면만 놓고보면 저질 코미디라고
[편집장이 독자에게] <다찌마와리>, 과잉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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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로서 액션영화란 구분은 애매한 면이 있다. 모션픽처라는 말처럼 영화는 본질적으로 움직임을 담는 매체이기에 액션없는 영화를 찾기가 오히려 힘들다. 서부극, 갱스터, 쿵후영화, 무협영화, 전쟁영화 등 액션영화의 범주에 들어가는 장르가 광범위한 것도 그래서다. 편의적으로 생각하면 액션장면이 다수 포함된 영화를 액션영화라 부를 텐데 장르 융합이 일반화된 요즘엔 액션영화란 표현만으로 어떤 영화인지 짐작하기가 힘들다. 스필버그가 의료드라마 <ER>의 연출자 미미 레더를 <피스메이커>의 감독으로 발탁하면서 “왜 내게 액션영화를 맡겼냐”고 묻는 그녀에게 “당신이 <ER>에서 보여준 건 모두 액션이던데”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는 액션영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액션은 폭력의 정도가 아니라 장면의 충돌과 운동이 빚어내는 리듬이다.
한국 액션영화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전망하는 특집기사를 준비한 계기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개봉하고
[편집장이 독자에게] 한국 액션영화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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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기자가 됐을까? 영화잡지 기자인 만큼 영화에 관한 글을 읽다가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선망도 어느 정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기자 지망생의 숫자가 줄었다지만 언론고시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기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다. 언론업계 종사자끼린 3D직종이라 자조해도 일반적으론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해봤으면 하는 직업에 속한다. 신문이나 잡지기자가 아니라 방송사 기자 혹은 방송사 PD라면 더 그렇다. 직업선호도에서 공무원을 최고로 친다 해도 직업 안정성을 빼고 생각하면 어떠냐고 물으면 기자를 하고 싶다는 응답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으나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자존심 지키며 살 확률이 높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 수많은 할리우드영화에서 불의에 맞서 싸우는 당당한 기자들을 목격했기 때문일까? 권력이나 재력에 맞선 기자들의 무용담은 언론의 사명을 선서의 형태가 아니라 로망의 형태로 가공해 이 업계
[편집장이 독자에게] 과 YTN 노조,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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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더위와 함께 휴가철이 돌아왔다. 만나는 사람마다 휴가는 언제 가냐는 인사를 던지게 되고 평소에 거들떠보지 않던 환율에 눈길이 오래 머무는 계절이다. <씨네21> 기자들도 기사 쓰는 틈틈이 휴가 계획을 짜느라 웹서핑이 한창이다(눈길을 피해도 그러고 있는 거 편집장은 보고 있다). 고유가와 고환율로 예년에 비해 해외여행을 계획하기 쉽지 않지만 1년에 한번 휴가를 어영부영 보내고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억에 남을 휴가 계획을 생각하다보니 독자 여러분도 우리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씨네21>이 제안하는 여름나기 프로젝트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에 7, 8월 각종 영화제와 공연, 전시 프로그램을 망라했다.
영화제에 가면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느라 온전히 영화를 즐길 수 없는 게 영화기자의 비애인지라 기사를 쓴다는 부담없이 영화제에 가면 정말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된다. 4년 전에 그런 기회가 있었다. 휴가를 내고 4일간 시네마테크 부산에 가서 오즈 야스지로 회
[편집장이 독자에게] 여름휴가는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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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TV에서 무슨 영화를 하나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토요명화> 등이 인기를 끌던 TV영화의 전성기는 서부영화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인디언을 물리치는 기병대의 활약과 홀로 악당에 맞서는 보안관의 모습에 환호했던 유년기에 어딘가 미심쩍은 웨스턴과 만났다. 스파게티 웨스턴 혹은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불렀던 영화들이다. 장고나 튜니티가 존 웨인과 게리 쿠퍼를 대신하는 서부의 영웅이 됐을 때 배신감에 속이 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미국 서부영화의 주인공처럼 깔끔한 옷차림이 아니었고 음식을 먹을 때도 무척 게걸스러웠으며 어슬렁거리는 동네도 심하게 촌스런 느낌을 줬다. 할리우드가 이상화한 서부와 때깔이 틀린 서부가 한동안 적응이 안 됐기에 “나의 서부를 돌려달라”고 항의라도 하고 싶었다. 정통 웨스턴과 스파게티 웨스턴 사이에 클래식과 팝음악을 가르는 장벽 같은 게 있던 때라고 할까. 그 장벽이 무너진 것은 휘파
[편집장이 독자에게] 세르지오 레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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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축구팬의 즐거움은 유로2008 시청이다. 월드컵에 버금가는 대회라 여러 가지 화제를 낳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가 이탈리아에 진 다음 프랑스 대표팀 감독이 한 말이 걸작이다. “이번 패배로 사임할 생각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프랑스팀 감독 레이몽 도메네크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한 가지 프로젝트만 갖고 있다. 그것은 결혼하는 것이다. 인생에는 아름다운 일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 엉뚱한 대답은 곧 결혼할 예정인 연인을 향한 프러포즈다. 패배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개인적인 사랑고백으로 응답한다? 이건 자신을 향한 질타를 피하려는 말돌리기일 수도,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한 성실한 대답일 수도 있다. 아무튼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참담한 패배를 기록한 뒤에 나온 말로는 더없이 인상적이다. 내가 프랑스 사람이었다면 꽤 열을 받았겠지만 프랑스 국민의 성토가 극에 달했다는 후속보도는 보지 못했다. 대신 프랑스 축구협회는 이런 일이 있은
[편집장이 독자에게] 2008 놀이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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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영화에서 가장 미국적인 장르는 슈퍼히어로 영화일 것이다. 그것은 30년부터 50년대까지 가장 미국적인 장르영화가 서부극이었던 것과 같은 의미다. 훗날 이탈리아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을 만들고 한국에서 만주 웨스턴을 만들었지만 서부는 본디 미국영화의 무대였다. 서부개척시대를 거치지 않은 국가에서 서부극을 만드는 일은 예외적으로만 가능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이 아닌 국가에서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아주 드물게 일어났다. 일본이나 한국의 전대물이나 홍콩, 인도의 슈퍼히어로물이 있지만 기껏해야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물의 패러디처럼 보인다. 슈퍼히어로물이 지극히 미국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만화 원작을 미국 작가가 그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악당의 정체성이나 영웅의 탄생신화 혹은 영웅의 피부색에서 슈퍼파워를 가진 국가의 정체성이 드러난다는 걸 부정하기 힘들다. 노골적으로 애국심에 호소한 작품도 있고 2차대전, 미·소 냉전, 베트남전 등 구체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편집장이 독자에게] 슈퍼히어로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