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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울아트시네마가 북적거린다고 한다. 아벨 페라라, 프랑수아 트뤼포 등의 작품을 상영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관객의 발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내가 꼭 봐야지 하고 벼르던 영화는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이다. 이미 박찬욱 감독이나 오승욱 감독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던 <최후의 증인>은 1980년 개봉 당시 검열로 만신창이가 됐던 영화다. 2시간30분이 넘는 영화를 1시간40분으로 1시간가량 잘라내고 개봉했으니 당대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을 리 만무하다. 다행히 감독판이 남아 있어 그걸 본 몇몇 사람이 입소문을 냈고 20년 넘는 세월이 흐른 뒤 우리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체 어떤 영화기에 전설이 됐을까 너무나 궁금했다. 보고나니 저주받은 걸작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최후의 증인>을 보면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떠올랐다. 4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을 용납할 수 없던 할리우
[편집장이 독자에게] <최후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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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목적은? 존재의 목적은….” 가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 나오는 대사처럼 질문을 던져본다. <씨네21>의 존재 목적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영화인의 기억에 남아 있어야 할 것을 상기시키는 것도 분명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씨네21> 기자들 가운데 이런 대목을 자주 일깨우는 인물은 문석 기자다. 매달 기획회의를 할 때마다 그의 기획안에는 아무개의 탄생 100주년, 사망 10주기 등 기념할 만한 일들이 잔뜩 들어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일을 잘 챙기는 게 쉽진 않다. 모차르트 사망 200주년 음악회 정도 되는 대형 이벤트라면 몰라도 그만큼 유명하지 않은 인물인 경우 잊고 넘어가기 십상이다. 장국영이나 이은주처럼 팬클럽이 있는 배우나 영화사에 등재된 유명감독이 아니라면 더욱더. 이번달 문석 기자의 기획안을 보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10주기가 코앞에 왔음을 알았다. 1998년 1월16일, 그는 유작 <8월의 크리스마
[편집장이 독자에게] 유영길 촬영감독 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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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매년 4월 말이면 창간 기념 개편을 하곤 하지만 13주년을 맞는 올해는 어느 때보다 과감한 혁신을 하자는 마음가짐이다. 일반적으론 새해 결심을 제대로 지키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금연, 금주 같은 결심은 아니어서 목표만 제대로 찾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중요한 것은 목표 혹은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인데 혼자만 머리 굴린다고 될 일은 아니다. 어떤 의견이 있는지 일단 들어보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씨네21> 블로그에 개편에 관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달라고 했더니 좋은 지적을 담은 장문의 글들이 올라왔다. 그중 두 블로거의 글이 마음에 와닿았는데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즐거운 편지님은 <씨네21>이 이미지보다 텍스트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마약처럼 중독성 강한 매체가 되기를 바란다는 글을 남겼다. “지금의 인터넷 블랙홀 시대에, 종이잡지가 살아남으려면 담배를 끊을 수 없는 것처럼 결코 보지
[편집장이 독자에게] 2008년 개편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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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은 2차대전 때 프랑스에서 활약했던 레지스탕스 이야기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독립군을 그린 작품이라고 할까. 이런 유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독일군이나 일본군에 잡혀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다. 적과 우리 편을 가르는 데 있어서 극악한 폭력은 단순하고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그림자 군단>에서 심금을 울린 대목 가운데 하나는 그런 장면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독일군에 잡혀 의자에 묶인 인물이 등장하고 막 고문을 시작하려는 찰나 장면은 전환된다. 잠시 뒤 얼굴에 피멍이 든 인물을 볼 수 있지만 결코 고문행위는 직접 묘사되지 않는다. 반면 이 영화는 레지스탕스가 배신자를 처단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를 돌리지 않고 지켜본다. 독일군의 지배에서 프랑스를 구한다는 대의명분이 무색하게 이 장면에서 레지스탕스는 마피아 같은 폭력조직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들 역시 살인자인 것이다. 상식적인 선악 이분법을 무너뜨리는 이런 장면 연출은 중
[편집장이 독자에게] 무엇을 찍지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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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자가 정해졌다. 말 많고 탈 많던 그분이 되셨고 머지않아 운하의 첫삽을 뜰 것이다(Oh! No!). 역대 최악의 투표율이라고 하지만 60% 넘는 투표율에 1천만 넘는 표로 당선됐으니 국민이 그분을 원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영화로 치면 작품성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아도 1천만 관객이 몰려드는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그분은 이번 영화에서 ‘정권교체’와 ‘경제’라는 두 마리 이무기의 화려한 변신을 보여줬다. 청계천에서 태어난 이무기들은 몇번 꿈틀거리더니 한반도 대운하를 칭칭 휘감은 두 마리 용이 되었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이 그래서 생긴 걸까. 놀라운 특수효과에 다들 할리우드 못지않은 기술력이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이 영화의 치명적 약점은 서사의 미스터리가 끝까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BBK라 부른 미스터리 플롯의 심각한 결함에 대해 영화깨나 본다는 사람들은 모두 목청 높여 나무랐다. 하지만 그분의 영화는 굉장한 볼거리가 있다는 게 중요하지 미스터리 따
[편집장이 독자에게] 2007 대선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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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에 실린 연말결산 대담을 한 뒤로 ‘서사의 위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지금 한국영화가 처한 난처한 상황을 산업적 부실함이나 자본의 부족 또는 관객의 변화라고 말하는 대신 서사의 위기라고 부르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중영화에서 무엇보다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전제를 수용한다면 한국영화와 관객 사이의 간극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부족한 데에서 기인할 가능성이 크다. 흥행을 예상치 않았던 <식객>이 300만 관객을 불러모은 데 비해 기본 이상을 의심치 않았던 <두 얼굴의 여친>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일까? 요리를 소재로 삼은 영화 가운데 과거 흥행작이 없었던 반면 <두 얼굴의 여친>이 <엽기적인 그녀>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는 사실은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성공을 모방하는 영화가 실패하고 영화로 못 봤던 이야기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 관객은 분명 오리지널리티 혹은 참신한 기획에 목마른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한국
[편집장이 독자에게] 서사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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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박혜명 기자가 쓴 조지 클루니 기사를 보셨으리라. 기사에 나온 대로 조지 클루니는 스타 파워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미국 대선 후보로 유력한 민주당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을 지지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렇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히는 것은 할리우드 배우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민주당 편이고 수잔 서랜던과 팀 로빈스가 진보정당 편이며 아놀드 슈워제네거, 찰턴 헤스턴이 공화당 편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배우들의 정치 참여는 2002년 대선에서 두드러졌다. 문성근, 명계남 등이 노무현의 당선을 위해 발벗고 나섰고 박찬욱, 봉준호, 문소리 등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다. 물론 한나라당을 지지한 배우도 적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상황이 나쁜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자의에 의해 배우들이 정치적 신념을 표현하고 그걸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경우에 따라 매우 아름답다. 안젤리나 졸리가 굶주린 제3세계 아이들을
[편집장이 독자에게] 위장 지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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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지면에 “가족을 심문해보자”고 쓴 적이 있다. 역사는 내 부모가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보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서재에서 낡은 사진첩과 글을 발견하고 생전에 물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배어난 글이었다. 살아계실 때 한번도 아버지의 젊은 날에 관한 얘기를 나눠보지 못한 나로선 심히 공감이 갔다. 역사가 교과서에 들어 있는 암기과목이라고 배웠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리라. 개인, 그것도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내 가족의 과거에서 역사를 발견한다는 것은 이래저래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고경태 팀장은 학교에서 부모 심층 인터뷰를 과제로 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는데 정말 그만큼 효과적인 역사교육이 어디 있을까 싶으면서도 한켠으로 걱정도 된다. 그렇게 파헤친 가족사에서 엄청난 비밀을 대면하면 어떻게 될까?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그랬던 것처럼 감당 못할
[편집장이 독자에게] 올해의 다큐 <할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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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늘 배용균 감독이 떠오른다. 1989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을 받은 그는 한국영화에 전무후무한 1인 제작시스템의 감독이었다. 촬영, 조명, 편집, 미술 등을 직접 했던 배용균 감독과 그의 두 번째 영화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을> 개봉 때 서면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가장 인상적인 얘기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후반작업을 하던 때를 술회한 대목이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배용균이라는 감독이 장편영화를 찍어왔는데 코닥 매뉴얼을 줄줄 외면서 현상과정 하나하나에 간섭했고 색보정실에선 연일 고성이 오고 갔다는 이야기가 영화진흥공사에서 전설처럼 떠돌던 차였다. 그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시절 색보정실에서 우리는 주먹이 오고 가지는 않았지만 연일 비명이 새어나왔기 때문에 흡사 난투극이라도 벌였던 느낌이 든다”며 “최초의 35mm프린트를 밤늦게 떠
[편집장이 독자에게] 촬영감독 뉴 제너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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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미래의 영화는 어떻게 될까? <베오울프>를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면 누구라도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흔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면서 롤로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베오울프>만큼 롤로코스터에 다가간 영화는 없는 것 같다. 테마파크에서 보는 입체영화와 비슷한 체험이지만 입체영화와 달리 캐릭터와 이야기가 있는 <베오울프>는 미래의 영화가 지금껏 보던 것과 다른 종류일 것이라 암시한다. 극장용 영화란 3차원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종류만을 의미하고 나머지 영화는 TV나 컴퓨터 모니터로만 보는 시대가 오는 게 아닐까. <베오울프>가 그 정도로 완벽하진 않지만 기술이 점점 발전한다면 어떻게 될까 싶다. 물론 <베오울프>의 기술은 특정한 소재에 한정된 것이다. <베오울프>가 드래곤과 마녀가 나오는 중세모험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의 상상에만 존재하는 시공간이 아니라면 이런 기술의 장점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편집장이 독자에게] 미래 영화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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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중국영화가 아닐까? <검은 땅의 소녀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국어로 대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에서 찍은 영화도 아닌데 그랬던 건 지금 한국에도 저런 일이 있나 싶어서였다. 지아장커나 리양 같은 중국 감독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가난과 궁핍을 21세기 한국영화에서 보는 것은 참으로 낯선 일이었다. 폐광촌에 카지노가 들어섰다는 뉴스만 보고 들었던 나 같은 사람에겐 <검은 땅의 소녀와>가 보여주는 현실이 몇 십년 전 일처럼 보인다.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 이후로 탄광촌의 막장인생에 카메라를 들이댄 다른 영화가 없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독립영화조차 탄광촌을 다룬 경우는 드물었기에 그곳의 삶은 모두의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전수일 감독은 여전히 그곳에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가난한 이들의 안간힘과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궁지의 나락을 그린다. 그것을 단지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에
[편집장이 독자에게] 주목! <검은 땅의 소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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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레오파드>를 봤다. 상영시간이 3시간 넘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대작 <레오파드>는 19세기 남부 이탈리아를 무대로 삼은 이야기다. 그 자신 유명한 귀족 출신인 비스콘티는 <레오파드>에서 몰락하는 귀족 가부장의 마지막 모습을 경건하고 우아하게 보여주는 데 반해 새로운 권력층이 될 자본가 계급을 비열하고 경망스런 존재로 묘사한다. “우리는 표범이나 사자였다. 표범이나 사자가 물러나면 자칼과 양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표범, 사자, 자칼, 양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대지의 소금이라 생각할 것이다.” 극중 대사에 따르면 당대의 귀족은 표범과 사자였고 새로운 지배자인 부르주아는 자칼에 해당한다. <레오파드>에서 표범은 물러날 때가 되자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는데 영화는 자칼이나 하이에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란 뉘앙스를 풍긴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레오파드>를 이야기
[편집장이 독자에게] 자칼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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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독자들이 이런 걸 좋아할까? 잡지를 만들다보면 늘 부딪히는 질문이다. 독자 여러분에게 설문을 돌려 기사를 작성한다고 해도 이런 고민에서 벗어날 것 같진 않다. 사람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게 마련이고 많은 독자가 원한다고 무조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기사가 될 거란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 독자편집위원회를 만들면서 그래도 이런 시스템을 갖추면 사후적인 모니터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쓴소리를 많이 할 것 같은 사람들로 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예상했던 이상으로 냉정한 비판을 많이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매주 나오는 위원회의 보고서를 볼 때마다 꼭 이런 걸 해서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필요가 있냐는 말까지 나왔다. 그래도 내가 한 일을 꼼꼼히 지켜보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1기와 2기 사이에 공백이 있던 몇주간 쓸쓸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걸 보면 솔직하게 말을 건네는 누군가는 확실히 필요한 것 같다. 대단한 혜택도
[편집장이 독자에게] 독자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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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반성문 한번 안 써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나 <친구>에 나오듯 이삼십년 전 고등학교에선 뺨을 때리거나 몽둥이로 패는 비인간적 처벌이 대세였지만 맞고 나서도 반성문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반성문을 쓰라는 이유는 짐작건대 너의 잘못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기 위함이다.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 반성문을 쓰는 것은 어려울 게 없다. 자신에게 솔직할수록 문장도 매끄럽게 이어지게 마련이다. 반성문 하면 떠오르는 게 있는데 대학을 다닐 때 시위를 하다 경찰서에 잡혀간 일이다. 그때 경찰서에서 요구한 것은 반성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은 자신을 학교 선도부 선생님으로 착각하고 있었고 나는 선생님한테 혼나는 고등학생처럼 다소곳했다. 범법자와 공권력의 사이에 사실관계를 적는 조서가 아니라 반성문이라는 것이 개입된다는 것이 공과 사의 경계가 희미한 한국사회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양심수에게 전향서를 요구
[편집장이 독자에게] 어떤 반성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