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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오스카상 시상식은 한국에서 생중계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오스카 무대를 한국에 전달해온 OCN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중계를 포기했다. 지난해 얼핏 들은 말에 따르면 채산성이 맞지 않아서란다. 중계권 등 비용에 비해서 광고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일 거다. 하긴 월요일 오전 시간에 방바닥을 굴러다니면서 이 쇼를 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든다.
직업상 보지 않을 수 없는 처지라 수소문해보니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를 볼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이 놀라운 테크놀로지의 신세계는 외국의 방송을 실시간으로,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화질로 접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근데 이 기술은 저만 처음 접한 겁니까?). 어렵사리 보게 된 오스카 시상식은 미국 언론과 블로거들이 투덜거린 것처럼 허점이 많았다. 스티브 마틴과 알렉 볼드윈의 진행은 평이한 편이었고(오프닝은 제외!), 남녀 주연상 후보를 소개하러 나온 인물들의 추천사는 다소 닭살스러웠으며, 호러영화에 대한 오
[에디토리얼] 역시 오스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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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도시2>를 보는 건 힘들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가슴은 답답해졌고 머리 속은 복잡해졌으며 장탄식이 절로 나왔다. 극장 바깥으로 나오니 몸이 퉁퉁 부은 듯 멍한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경계도시2>는 가수 루시드 폴의 말처럼 “한편의 공포영화”였고 사진작가 이시우의 말마따나 “고통스러운 영화”였으며 이영진 기자가 적은 대로 “당혹스럽”게 하는 다큐멘터리였다. 살인자가 등 뒤에서 다가가는데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영화 속 인물을 보는 것보다 5만배는 답답했고, 엄마 없는 소녀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에서 여비를 뺏기고 동생을 잃어버린 마당에 깡패들을 만나는 장면을 보는 것보다 10만배는 심란했다(홍형숙 감독님, 강석필 프로듀서에게 “104분 동안 마이크 타이슨에게 얻어터진 느낌”이라고 말한 게 저예요).
이 영화는 되새기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을 대책없이 끄집어낸다. 송두율 교수가 37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2003년 9월부터 독일로 떠난 2004년 8월의
[에디토리얼] 이상한 나라의 송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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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휴스턴은 1987년 유작이 된 <죽은 자들>을 찍었다. 폐기종을 앓고 있던 그는 당시 산소호흡기 없이는 20분도 버틸 수 없는 상태였다. 산소통이 달린 휠체어에 앉아 연출에 임하던 그는 현장을 찾은 <시카고 트리뷴>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유를 진정으로 구성하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오랜 물음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나는 그저 튜브의 끝에 있다.” 젊은 날 혈기왕성했던 감독의 마지막 영화가 유독 우아하면서도 우울했던 이유는 그가 삶의 종점에서 만난 서글픈 진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2월24일 조명남 감독이 사망했다.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러 차례 만난 적 있었고, 그의 지독한 불운을 알고 있던 던 터라 마음이 묵직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02년이다. 당시 조명남 감독은 <미스터 레이디>라는 데뷔작을 만들고 있었는데, 제작사인 인디컴은 내 담당이었다. 흔치 않은 뮤지컬영화인데다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삼았던 이 영화를
[에디토리얼] 조명남 감독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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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지붕 뚫고 하이킥!>은 걸작이다. 그 이유를 굳이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그저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처럼 지금 이 시대, 그리고 여기의 삶을 예리하고 정확하게, 하지만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내는 드라마나 영화가 요즘 있었나 싶기 때문이다. 최소한 난 최근 들어 인물들의 감정을 이토록 밀도있게 묘사한 멜로드라마를 만난 적이 없고, 이만큼 통쾌한 웃음을 주는 코미디를 접하지 못했으며, 세상의 단면을 이렇게 정교하게 도려낸 풍자극을 볼 수 없었다. 세경처럼 짠한 역할도, 정음처럼 사랑스런 인물도, 보석처럼 연민이 가는 캐릭터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지붕 뚫고 하이킥!>을 김병욱 감독 작품세계의 최절정이라고만 말하는 건 야박하게 느껴진다. 나는 <지붕 뚫고 하이킥!>, 그리고 김병욱 감독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고 말하겠다. 설 합본호의 표지와 특집을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꾸민 건 &l
[에디토리얼] 만세! 김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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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온 와이어>는 매우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장영엽 기자가 잘 정리해놓아 굳이 재론하고 싶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대목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필리프 프티의 이야기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도전에 성공한 뒤 경찰에 체포된 그는 빌딩 아래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서 질문공세를 받는다. 왜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건넜냐고. 왜 그 위험한 행동을 했냐고. 왜 목숨을 걸고 줄타기를 하냐고. 프티는 관객에게 말한다. “내가 한 일은 거대하고 신비한 것이었는데 기자들의 질문은 그저 ‘왜’였어요. 하지만 내 일의 미덕은 ‘왜’라는 게 전혀 없다는 거죠.” 그 말은 프티가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특별헌 주의주장을 펴기 위해 이 무모한 도전을 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정말이지 영화를 보노라면 그는 순전히 행위예술 차원에서 줄타기를 한 듯 느껴진다. 그리고 그 예술품에는 ‘산다는 게 다 줄타기 아니겠냐’는 뜻이 담긴 것 같고. <왕의 남자> 속 장생과
[에디토리얼]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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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부터 두드러기 때문에 고생이다. 가려워서 긁으면 긁는 대로 빨간 돌기가 돋는 증상인데, 등에서 시작하더니 배와 허벅지, 팔뚝으로 마구 전이되고 있다. 환부를 본 정한석이 에이 더러워, 투의 표정을 지었던 걸 생각해보면 흉측하기도 한 모양이다. 미루다가 어쩔 수 없이 찾아간 내과에서는 ‘일단 알레르기 같은데 두고보자’고 말한다. 알레르기라…. 평소 먼지에 민감한 코 말고는 별다른 알레르기가 없었는데 이상하다.
그래서 상상력을 보태 생각을 해봤다. 이 알레르기라는 건 어떤 상징이 아닐까.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세경이가 느낀 지훈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사랑니 앓이로 연결됐던 것처럼 심리적 상황이 육체에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의심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내 경우에는 편집장이란 자리에 대한 심리적 알레르기 반응이 두드러기로 물리적 ‘시위’를 하는 느낌이랄까. 그럴 법한 게 난 어릴 때부터 ‘장’(長)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어디 나서서 반듯한 주장을 펼칠 줄 아는
[에디토리얼] 새 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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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과 슈퍼밴드2>를 보다가 잤다. 영화가 끝날 때쯤 몸이 개운해질 정도로 푹(!) 잤다. 함께 본 열살짜리 딸은 혀를 끌끌 찼다.
딸은 대신 <아바타>를 보다가 잠들었다. 애초에 보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던 터다. <아바타>의 나비족보다는 <앨빈과 슈퍼밴드2>의 햄스터 주인공들이 훨씬 멋지단다. 그러자 세살 위 오빠가 한심하다고 면박을 준다. “야, 너는 <씨네21>에서 별점을 죄다 다섯개씩 받은 영화를 그렇게 몰라보냐?” 아들은 <아바타>를 두번이나 봤다.
외화 흥행사를 다시 쓰는 <아바타>를 무시하는 건 세상물정 모르는 꼬마만이 아니다. 2주 전 <아바타>를 둘러싼 대담에서도 부정적 견해가 나왔다. “잘 만든 흥행영화이긴 하나 기념비적으로 훌륭한 영화라고 말하기엔 내러티브가 진부하다”는 게 요점이었다. 전영객잔 필자인 정성일 평론가의 말은 더 세다. 그는 3주 전엔 “시간이 갈수록 사람
[에디토리얼] 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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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가 참 중요하다.
내가 기억하는 한, 영화배우 김혜수가 처음으로 히트를 친 말은 “티코로 시작하세요”였다. 1991년에 방영된 CF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운전을 마친 김혜수는 조수석에 태웠던 이영범에게 차비를 요구하고, 돈 대신 뽀뽀를 받는다. 스물한살 그녀의 싱그러운 연기가 대박을 친 광고였다. 두 번째 히트어는 2006년 개봉된 <타짜>에서의 “왜 이래, 나 이대 나온 여자야”일 거다. 불티나게 패러디됐다. 세 번째는 지난해 인기를 얻었던 SBS드라마 <스타일>에서의 ‘엣지’다. 사람들 입에 무던히도 붙어다녔다. 네 번째로는, 뒤늦게 유명해진 ‘마인드’가 아닐까 싶다. 어느 인터뷰에서 했다는 바로 이 말 말이다. “겉모습이 촌스러운 것은 용서가 되지만 마인드가 촌스러운 것은 용서할 수 없다.”
김혜수-유해진 커플을 보는 대중의 시선은 흐뭇하다. 이렇게 스타에 관해 질시의 흔적없이 순수하고 따뜻하게 응원하는 경우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금메달을
[에디토리얼] 마인드 수술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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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자? 시시하지 않니?
가족들과 ‘가훈토론’을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의 숙제 때문이었다. 각자 가훈을 정해와 수업시간에 발표한다고 했다. 딸에게 먼저 의견을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한번 쏟아부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가 어떠냐고 한다. 그냥 그 말이 좋단다. “이 바보야, 그건 가훈으로 적당하지 않아” 했더니 “바르게 살자… 착하게 살자” 따위를 낸다. 딸보다 세살 많은 아들은 성스럽게 “범사에 감사하라”로 하잔다. 반응이 썰렁하자 “욕하지 말자”로 바꾼다. 나는 너무 뻔해 보인다며, 이왕 할 바에는 재밌고 튀는 게 눈길을 끈다고 말했다. 그런 뒤 즉흥적으로 “에라 모르겠다”를 내놓았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눈치보지 않는 도전정신을 담았다는 설명을 했다. 딸은 “그건 될 대로 되라는 뜻 아니냐”고 했다. 나는 ‘모험정신’이라고 반박했다. 더불어 그 전제가 돼야 할 가훈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자기 앞가림을 하자”였다. 제멋대로 하더라도 딴사람에게(특히
[에디토리얼] 에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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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종니’라고 했다.
이렇게 쓰면 언론중재위원회로부터 “어린이들의 언어습관에 나쁜 영향을 준다”며 권고조치를 당할 지도 모른다. ‘해자정리’는 어떠한가. ‘혜자젖니’도 있다.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빅히트 유행어가 ‘빵꾸똥꾸’였다면, 그 전신이라 할 <거침없이 하이킥>이 재밌게 터뜨린 말 중 하나는 그 괴상한 사자성어였다. 윤호(정일우)는 데이트를 하던 전교 1등 소녀에게 “0000라고 하잖아, 괜찮지?”라는 말을 듣는다. 차인다는 뜻인 줄도 모르고 어리둥절하기만 했던 윤호는 밤새도록 인터넷 검색창에 그 발음을 귀에 들린 대로 입력한다. ‘혜자종니·해자정리·혜자젓니’일 리 만무한,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의미의 ‘회자정리’(會者定離)가 각별하게 음미된 2009년이었다.
한달 전 한국영상자료원으로부터 ‘도전! 나도 프로그래머’공모의 심사를 의뢰받았다. 12월 영상자료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상영하는 고전영화 VOD 기획전을 관객이 직접
[에디토리얼] 나는 당신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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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개의 표지를 눈으로 더듬으며 2009년을 음미해보자. 송강호로 시작해 강동원으로 끝났다. 당신의 뇌리엔 어떤 비주얼, 어느 배우가 박혀 있는가.
50개의 표지는 50개의 안간힘이었다. 2009년 우리의 안간힘에, 독자 여러분의 안간힘에 위로와 박수를 보낸다.
[에디토리얼] 50개의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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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를 먹었다.
“이상한 낌새만 있어도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고함을 질렀다. 포커스가 맞지 않아서 계속 엔지가 났다. 결국 열번의 테이크가 나오자, 배우도 지치고 연기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마지막에는 ‘컷’을 외치자마자, 오케이 사인을 내리지도 않은 채 촬영을 종료했다. 그날은 결국 수면제를 먹어야 잠들 수 있었다.”
또 수면제를 먹었다. “화면은 무슨 누아르영화처럼 어두웠고, 내레이션은 활력이 없었으며, 음악은 밸런스가 맞지 않고, 엔딩 편집은 무슨 자투리 영상 같은 느낌으로 나왔으니 기술 시사 반응이 좋았을 리가 있나. 무거운 마음을 먹고 다시 수면제를 먹고 잤다.”
<여자없는 세상>을 연출한 송재윤 감독의 고백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 2기의 성과물인 이 작품의 제작기는 절절하다. 얼마 전 출간된 <카메라, 88만원 세대의 심장을 쏘다>를 이루는 내용이다. 이 책엔 같은 과정으로 만든 다른 두
[에디토리얼] 88만원 감독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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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원피스를 입을 거예요.”
한비야씨가 쓴 에세이집 <그건 사랑이었네>를 뒤적이다가 눈길이 멎었다. 배우 김혜자씨의 말을 인용한 대목이었다. “나는 배우니까 현장에서도 카메라 앞에서만은 배우여야 해요. 여기 참혹한 학살의 현장에서도 하얀 원피스를 입을 거예요. 하얀 옷이 비참한 현장과 극적인 대비가 될뿐더러 내 얼굴이 훨씬 예쁘게 나오니까요.” 4년 전의 에피소드다. 김혜자씨가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친선대사 자격으로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갔을 때다. 정부 고위관리들과의 면담을 앞두고 하얀 원피스에 은은한 장미향까지 품고 나타난 그녀. 맨 얼굴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한비야씨의 수수한 모습을 보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충고를 건넨다. “비야씨는 외모에 신경을 너무 안 쓰는데 그러면 안돼요…. 이제 자기도 두 얼굴이 있어야 해요. 현장에서 도와줄 때의 얼굴과 현장 밖에서 도와달라고 할 때의 얼굴 말이죠. 두 번째 얼굴은 매
[에디토리얼] 여배우여,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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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다큐멘터리로 한번 만들어보세요.”
8년 전 알고 지내는 방송사 시사프로 PD에게 아이디어를 내민 적이 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주둔 지역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에 관해서였다. 관계자들의 증언과 미국 자료를 통해 진상의 얼개가 드러났지만, 남은 의혹이 많았다. 취재에 참여했다가 완결을 짓지 못한 아이템이었다. 방송으로 보도되면 반향이 더 클 것 같았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968년 2월12일 베트남 중부지방의 한 도로를 순찰하던 한국군 해병대 중대가 몇발의 총격을 당한다. 한명이 부상을 입는다. 해병대는 즉각 인근 마을을 수색한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마을에 불이 나고 아이와 부녀자 등 79여명의 민간인들이 주검으로 발견된다. 당시 신문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되었고 중앙정보부의 조사로까지 이어졌다. 9년 전, 작전에 참여했던 장교들을 취재했다. 중대장과 1, 2, 3소대장 모두의 증언을 들었다. 그들은 “잘은 모르겠는데, 우리 중대가
[에디토리얼] 또 하나의 배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