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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봤는데 판사는 못 봤다.
한국영화엔 가끔 검사 캐릭터가 등장한다. 대부분 꼴통처럼 나온다. <넘버.3>의 마동팔 검사(최민식), <공공의 적2>의 강철중 검사(설경구) 모두 그렇다. 평범하고 점잖은 검사는 없다. 그럼 판사는 어떠한가. 한국영화에서 아직 만난 적은 없지만,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본다. 늘 신중하고 냉정한 모습? 고지식하고 권위적인 꼰대? 공정판결의 사명감으로 불타는 청백리?
최근 발간된 <부러진 화살>이라는 르포집을 읽었다. 어느 수학자와 판사집단간의 싸움을 다룬 책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떠오른 생각은 ‘정통 사회물 영화에 딱 좋은 소재’라는 것이었다. 책 속의 판사들이 영화에 등장하면 뜻있는 일이겠다 싶었다. 혹시 법정영화에 관심을 지닌 제작자나 감독, 시나리오작가가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책의 주인공은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 전 교수다. 그는 눈치없이 바른말을 하다 1996년 학교에서 쫓겨났다
[에디토리얼] 판사님을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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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도 한때는 영화평을 쓰며 먹고살았다. 감독 입봉하기 전의 일이다. 그때 그에겐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고 한다. <박찬욱의 오마주> 서문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첫째, 한국영화는 건드리지 않는다. 둘째, 외화라도 극장 개봉을 즈음해서 발표되는 리뷰는 안 쓴다. 셋째, 욕하고 싶은 영화라면 차라리 아예 다루지 말자.” 여기저기 영화사들을 찾아다니며 작품 연출 기회를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씨네21>이라면 어떨까. 정반대다. 한국영화는 건드리지 않을 수 없고, 한국영화건 외화건 모두 극장 개봉 전에 프리뷰를 쓴다. 거기엔 칭찬만 담기지 않는다. 욕까지는 아니더라도 날선 비판을 할 때도 있다. 해당 영화사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개봉 전만이라도 부정적인 평을 자제해달라”는 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특히 20자평에 민감하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이해할 만하다. 뚜껑도 열기 전에 모욕당한 느낌일지도 모
[에디토리얼] 스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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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배우 고 박광정이 첫 주연을 맡았던 영화가 있다. 2007년에 개봉한 김태식 감독의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라는 작품이다. 박광정은 극중에서 바람난 아내와 그 애인에 분기탱천하는 도장가게 주인으로 나온다. 영화가 시작되고 오프닝 타이틀이 오르기 전까지, 카메라는 조각칼로 도장파기에 열중하는 그의 모습을 클로즈업해 꽤 길게 보여준다. 작업을 마친 뒤 도장을 잉크에 묻혀 종이 위에 쾅 찍어내는 박광정. 마침내 도장에 새겼던 글자가 스크린에 공개되는데, 그건 사람 이름이 아니다. 뜻밖에도 분노의 심경이 담긴 딱 두 글자다. 민망해서 이 지면엔 옮기지 못하겠다. 단지,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민중언어이자 아주 소박한 육두문자라는 것(궁금하면 영화에서 확인하시라).
실제 도장가게를 찾아가 그런 글자를 파달라면 미친놈 취급당하기 십상이리라. 그럼에도 하나 파서 성질 뻗칠 때마다 찍어주면 스트레스가 풀릴지도 모르겠다. ‘길티플레저’로 하나 키워볼까? 여기까지 썼는데,
[에디토리얼] 게임, 아니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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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지나간 자리, 웃음이 돋는다.
전직 대통령의 비극을 둘러싼 그림자가 한동안 너무 깊었다. 그 우울한 모드를 몇 가지 일들이 전환시켜주었다. 지난주 폭소유발 아이템 베스트3를 내 맘대로 정리해보겠다.
No1, <개그콘서트>보다 재밌는 <아사히TV>의 개그였다. 한국인 40대 남성이 휴가 가서 한가하게 찍은 기념사진이, 북한 김정일의 후계자로 알려진 셋째아들의 것으로 둔갑한 일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웃긴다. 뭔가 음산한 냄새까지 풍기는 언론보도용 ‘얼굴 클로즈업 사진’과 주변 원두막 풍경이 다 드러난 ‘와이드숏 원본 사진’의 하늘땅 차이. 트리밍(사진편집)의 마술이란 말인가. 심각한 첩보영화의 엉뚱한 반전에 미친 듯 배꼽을 잡은 느낌이다. 이 보도를 인용한 국내 언론의 북한 전문가 코멘트는 또 어떠한가. “얼굴이 둥글고 목이 두꺼우며, 살집이 많은 점으로 미루어 김정일의 젊은 시절을 쏙 빼닮았다.” 허위보도를 질책하며 언론의 정도를 따질 필요는 없다. &l
[에디토리얼] 폭소유발 베스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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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코렐라인: 비밀의 문>을 본 것은 지난 5월23일 오후였다. 아홉살짜리 딸이 일주일 내내 노래를 부르던 3D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비슷한 또래 소녀가 주인공이라서 그랬나보다. 영화에서 코렐라인은 집 안의 작은 문을 발견하고 비밀 통로를 통해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그곳엔 실제 엄마 아빠와 똑같이 생긴 ‘또 다른 엄마 아빠’가 산다. 그들은 실제 엄마 아빠보다 시간도 많고 친절하며 맛있는 요리도 맘껏 먹게 해준다. 집과 정원도 환상적이다. 한데 또 다른 엄마와 아빠의 생김새가 좀 이상하다. 두눈이 단추로 돼 있다. 그들은 코렐라인에게 눈을 단추로 바꿔 단 뒤 평생 함께 살자는 요구를 한다. 여기서부터 악몽의 반전이 시작된다. ‘또 다른 세계’에서 탈출하려는 코렐라인의 사투가 격렬해지면서 영화가 힘을 받을 때쯤, 내 주머니 속 휴대폰이 부르르 떨렸다. 문자메시지였다. 발신인은 김혜리 기자. “유시민 인터뷰 어떻게 할까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에디토리얼] 단추눈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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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막고 싶을 때가 있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을 만날 때 그렇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큰소리로 핸드폰 통화를 하는 이들 정말 싫다. 그는 두배로 싫은 경우였다. 며칠 전 아침 출근길, 전철 안에서였다. 50대 중반의 사내가 선 채로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아, 어제 북한 핵실험 했잖아. 이제부턴 그게 톱뉴스야. 그 인간 떨어져 죽은 거 암것도 아니게 됐어. 걱정하지 마. 끝난 거야!” 중년의 갈라진 음성이 객차의 적막을 흔들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아냥거리며 즐기듯 계속 떠벌렸다. ‘애도 정세’에 대한 반감을 시위하는 듯했다. 누군가가 제지하거나 시비를 걸어주길 은근히 기다리는 포즈였다. 그걸 기화로 악다구니 한판을 벌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눈치였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승객은 무표정했다. 똥은 더러워서 피한다는 듯.
나도 마음을 다쳤다, 라고 쓰려니까 어색하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지난 한주 동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마
[에디토리얼] 깡패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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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마더>의 줄거리를 처음 접했을 때, 직감적으로 어떤 이미지 하나가 떠올랐다. 구치소에서 막 풀려난 아들과 엄마의 감격적인 포옹을 클로즈업한 사진이었다. 다시 찾아보니, 1993년 12월17일자 <한겨레>에 실린 거였다. 이듬해 한국사진기자협회 보도사진전 뉴스 부문에서 수상한 덕에 여러 매체에 실려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그 보도사진 속 엄마의 표정은 강렬했다. 목숨을 걸고 아들의 결백을 위해 싸웠을 그녀의 모정이 뭉클하게 잡힐 듯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직감은 맞았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호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마더>의 모티브를 그 사건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바로 김순경 사건이다.
1992년 11월, 관악경찰서 소속 26살 김아무개 순경은 어처구니없이 몰렸다. 그와 함께 여관에 투숙했던 애인이 목졸려 죽은 채 발견돼서다. 그는 같은 경찰서의 형사들에게 용의자로 지목됐고 구속됐다. 기본적으로
[에디토리얼] 악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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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스틸이 없으면 비디오가게로 갔다.
1994년의 일이다. 당시 내가 일했던 매체에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숨은비디오찾기’라는 연재를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소개하는 칼럼이었는데, 늘 사진자료가 문제였다. 찾다찾다 못 찾으면 서울 강남의 어느 유명한 비디오대여 체인점으로 달려갔다. 명작으로 분류되는 옛날 비디오를 많이 구비했던 곳이었다. 그곳 사장의 양해를 얻어 비디오재킷을 빌려와, 회사에서 스캔을 뜬 뒤 돌려주곤 했다. 순전히 그 비디오점과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심부름을 도맡아했던 기억이 난다(퀵서비스도 없었으니까). 그 비디오체인점에선 영화 소식지도 정기적으로 냈다. 그러고보면 당시 영화문화의 중심엔 비디오점이 있었다.
요즘엔 아무리 동네 주변을 둘러봐도 ‘비디어대여점’ 간판이 없다. 주로 ‘책대여점’에서 비디오와 DVD까지 빌려준다. 무협지나 만화책이 메인으로 취급된다. 비디오와 DVD의 소장량도 적어, 이름이 조금만 낯설다 싶으면 구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간간이
[에디토리얼] 다운로드,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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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 1주년 기념 영화.’
아무도 그런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냥 나 혼자 붙여보았다.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영화는 최근 개막된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이다. 아직 전주에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미리 볼 기회가 있었다. 영화의 표면을 구성하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와 여고생의 만남은 MB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 시대를 향한 감독의 경멸적 시선이 촛불을 떠올리게 했다. 더구나 주인공인 여고생 민서(백진희)는 영락없는 ‘촛불소녀’다.
신동일 감독은 한결같은 영화 노선을 고집한다. 그는 우직하면서도 직설적이다. 전작인 <방문자>와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보면 그렇다. <반두비>도 그 연장선이다. 곳곳에 정치적인 기호와 메시지가 장착됐다. 학교 앞으로 달려오는 원어민 영어학원 버스엔 ‘MB’라는 글자가 붙고, 편의점의 취객은 “명박이 믿고 뉴타운 믿다가 좆돼버렸다”며 행패를 부린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에디토리얼] 촛불소녀의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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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제목이 <꿈속의 미래>다. 재미있을까? 옆자리에 50대 서양인이 앉았다. 갑자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 관람 중에 졸던 제천영화제 서양인 심사위원 말이다. 웬걸, 이 아저씨도 영화 시작 5분 만에 코를 곤다. 30여분간 아주 푹 주무신다. 신경이 쓰여 자꾸만 힐끗거렸다. 나중엔 자다 깨다를 반복하더니, 영화 후반쯤에야 정신을 차리고 스크린을 응시한다.
전주에서 4박5일을 보냈다. <씨네21>의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일간지(데일리)를 만들었다. 낮에는 영화를 보고 밤에는 데일리를 편집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실은, 나도 영화를 볼 때마다 하품을 했다. 데일리 편집 마감이 밤 11시쯤 끝나는 터라(이후 뒤풀이는 새벽까지?) 잠이 충분하지 못했다. 물론 존 적은 없다. 그럼에도 내가 본 영화들은 대개 너무 진지해서 수면을 유혹했다.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분쟁국가의 암울한 현실이 투영된
[에디토리얼] 전주에서 빚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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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안면이 있는 경남 진주시의 한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진주의 지역신문 편집국장 자리가 공석인데,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했다. 딱히 떠오르는 인물은 없었다. 잊고 지내다가, 일주일 뒤 어느 결혼식장에서 잘 아는 선배였던 그녀와 마주쳤다. 얼굴을 보자마자 진주에서 걸려온 그 전화가 퍼뜩 떠올랐다. 그녀의 고향이 진주였기 때문이다. 슬쩍 운을 띄웠다. 그녀는 마침 영화지 <프리미어> 편집장을 끝으로 직장생활을 정리한 직후였다. 그녀는 10초도 안돼 관심을 보였다. 한달 뒤, 거짓말처럼 그녀는 서울을 떠나 진주로 갔다.
하지만 두달이나 됐을까? 진주의 지역신문에 입성해 “조심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멋진 편집국장 인사말을 쓰고, 그걸 본 대선배가 어느 시사주간지에 “그래 조심하지 마라”는 칼럼으로 화답을 할 때쯤 그녀는 진주를 떠버렸다. 경남 하동의 청학동 골짜기 산중에 들어가 산다는 소문이 들렸고, 가끔 홀연히 거처를 옮긴다는 말
[에디토리얼] 그녀의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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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에 살짝 전율했다.
얼마 전 후배가 특이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며 자신의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35세 주부입니다. 삶이 참 힘드네요. 시키는 것 다 할게요. 080XXXXXXX.” 발신번호로 미루어 음란통화를 유도하는 문자메시지였다. 고단수 낚시질인 줄 뻔히 알면서도 멈칫했다. 웬지 서글펐다. 얼굴도 모르는 ‘그녀’의 슬픔이 뭉클하게 다가와서가 아니다. 그 자포자기의 메시지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주변의 현실을 잘 웅변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 삶이 참 힘들다. 이럴 땐 반드시 “글로벌 금융위기 어쩌고”를 등장시켜야 인과관계가 성립되겠지만 생략하자. 아무튼 그 여파는 한국영화산업에도 몰려왔다. 영화계가 ‘참 힘든’ 시간인 것만은 분명하다. <씨네21>이 창간 기념호 때마다 빼먹지 않던 ‘충무로 파워 50’ 특집을 처음으로 포기할 정도니 말이다(62쪽 참조). 이번호로 창간 14돌과 700호를 맞는 <씨네21>도 마찬가지다. 왜 갑자기 판형이 줄었냐고 묻는
[에디토리얼] 참 힘들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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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좆나 솔직하게 날다.’
이번호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처음엔 이런 제목이 달렸다. 양익준 감독의 새 영화 <똥파리>를 소개하는 기사(92~95쪽)에서였다. 글을 쓴 기자가 마지막 문장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욕으로 버무렸고, 편집기자가 이를 과감하게 제목 문장으로 올려서였다. ‘졸라’도 아니고 ‘좆나’라…. 영화의 대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원색적인 욕 천지인지라 기사 제목에 상징적인 욕 하나 넣는 게 어떠랴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다른 제목 문장으로 바꿨다. 잡지에 큰 활자로 욕을 붙이는 건 부담스러웠다. 욕 먹기 십상이었다.
사실 그런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은 많다. 두세달여 전의 에피소드다. 주말 대낮의 한산한 전철 안에서였다. 모녀지간으로 보이는 두명이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엄마는 40대 중반으로 보였고, 딸아이는 중학생 교복을 입었다. 앳되고 예쁘게 생긴 딸의 입에선 이런 말이 나왔다. “엄마, 이 볼펜 좆나 예쁘지?” 뜻밖에도 엄마는
[에디토리얼] 욕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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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맥락없는 세 종류의 이야기다.
1. 한 여자 연예인이 집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조금씩 뜨던 여배우였다. 그녀는 죽기 전 기록을 남겼다. 지긋지긋하게 싫었으나 억지로 나가야 했던 술시중. 그 술시중을 해준 인물들의 명단을 종이에 적어놓았다. 술시중은 로비의 수단이었다. 기획사 대표는 업계에서 영향력을 지닌 인사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그녀를 포함한 신인 연예인을 이용했다. 그녀는 끝내 죽음으로 반응했다. 그녀가 따라준 술을 마셨던, 그러니까 로비와 접대를 받았던 이들은 지금 벌벌 떤다.
2. 그의 로비는 거침없었다. 워낙 통이 컸던 터라 ‘광폭’이라는 수식어까지 따라붙을 지경이었다. 그는 정·관계의 실력자들에게 돈과 선물을 마구 뿌렸다.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1억원어치 백화점 상품권을 건네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나서는 지역 인사에게 8억원을 정치자금으로 주었다는 혐의는 손톱만큼 작은 빙산의 일부란다. 그는 구속될 때 “내가 다 끌어안겠다”고 했지만, 검찰이 자신의 기
[에디토리얼] 트라이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