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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돌아왔다. 지면개편과 함께 한동안 <씨네21>에서 만날 수 없었던 정성일과 허문영 두 평론가가 새로운 꼭지로 컴백했다. ‘정성일·허문영의 씨네산책’이 그것이다. 씨네산책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개별 작품이나 감독의 세계를 뜯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 그 자체에 관한 원초적인, 원천적인 질문을 던지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호, 혹시 아, 아닌가요?). 그건 어쩌면 이른바 ‘비평의 위기’에 대한 결기있는 응전일 수도 있고, 비평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참신한 시도일 수도 있겠다. ‘산책’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영화의 안과 밖을 느린 걸음으로 활보하면서도 그 안에서 영화에 대한 간절하고 끈질긴 물음을 던져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들의 산책은 항상 친구 또는 동반자와 함께 이뤄지게 된다. 산책의 주제 또한 그들과 함께하는 손님에 따라 계속 바뀔 것이다. 씨네산책의 첫 동반자는 영화감독 이전에 영화광으로 소문난 박찬욱 감독이다. 시네필 혹은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
[에디토리얼] 씨네산책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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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월드컵 시즌이다. 축구를 꽤 좋아해서 클럽 축구만이 진정한 축구라고 부르짖어왔지만 막상 월드컵이 다가오니 가슴이 부푸는 게 사실이다. 대기업의 어마어마한 월드컵 마케팅이 진저리나게 싫고(우리 잡지도 그 혜택을 좀 받는다면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애국심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짜증나지만, 결국 경기가 시작되고 나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게 될 게 뻔하니 월드컵에 대한 불평은 참는 게 낫겠다. 월드컵도 그저 축구다, 라는 말만 하고 싶다. ‘민족적 자긍심’이나 ‘국가의 사기’ 따위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말이다. 축구 또한 실력있는 쪽이, 컨디션이 나은 쪽이, 운 좋은 쪽이 이기는 스포츠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축구 자체를 보면 되고 축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은 축제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람들이 월드컵에 온 관심을 쏟는 이 순간이 오면 영화계는 항상 긴장을 하곤 한다. 왜 아니겠는가. 월드컵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군림하는 때이
[에디토리얼] 레드가 물결쳐도, 때때로 문화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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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는 드라마틱한 영화와도 같았다. 출마한 사람, 투표한 사람, 개표 결과를 보는 사람 모두 처음부터 결과를 알고 있었던 영호남 지역(경남은 빼고)을 제외하면 이번 지방선거는 흥미진진한 플롯과 캐릭터를 가진 드라마였다. 특히 서울시장 개표방송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최상급 스릴러영화를 연상케 했다. 물론 막판 반전이 강남 3구의 보수 몰표라는 클리셰에 의해 일어나 김이 새긴 했지만.
어쨌거나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견제 혹은 심판의 성격이 짙다. 한때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로 환한 광화문에서 퍼져나오는 <아침이슬> 노랫소리를 들으며 “어떤 정책도 민심과 함께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고 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정책을 밀어붙이기로 일관했다.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4대강 사업이다. 지역 주민과 종교계, 사회단체의 일관된, 그리고 치
[에디토리얼] 4대강 사업도 막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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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작가>는 흥미로운 영화다. 소설 원작에서 장황한 대목을 걷어낸 뒤 자신의 색을 가미해 담백건조한 정치스릴러 영화로 만들어낸 로만 폴란스키의 여전한 내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강력 추천한다. 상세한 이야기는 김용언 기자의 세심한 글을 보시라. 개인적으로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작의 주배경인 보스턴 인근 섬과 해안의 모습을 영화에선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로버트 해리스는 소설 <유령작가>에서 애덤 랭이 사실상 감금돼 있는 이 황량한 섬의 풍경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그곳에서 움트고 있는 음험한 욕망들을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하지만 미국에 들어갈 수 없는 폴란스키는 독일의 한 바닷가에 애덤 랭의 별장 세트를 만들어 촬영해야 했다.
폴란스키가 미국에 입국할 수 없는 이유는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 때문이다. 1977년 그는 <보그>로부터 당시 13살 소녀 사만다 게이머의 화보 촬영을 의뢰받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폴란스키가 그녀와 성
[에디토리얼] 폴란스키 그리고 송영창과 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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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 칸영화제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과연 <시>와 <하녀> 등 한국영화가 상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직까지 대단한 문제작이 없다니 두편 중 어떤 영화가 수상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황금종려상을 비롯한 여러 상의 향방은 시상식이 열리기 직전까지 알 수 없다. 2007년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칸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상식날 프레스룸 TV 앞에 모인 각국 기자들은 마치 스포츠중계를 보는 듯 수상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환호하거나 야유 섞인 한숨을 쉬었으니까. 그런 ‘예측 불가능성’은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티븐 프리어스를 비롯한 심사위원단의 논의가 바깥으로 공개되지 않아 생겼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밀양>의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듯이 올해도 한국영화가 심사위원들의 지지를 모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칸을 가본 적 있는 이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도 해마다 이맘때면 마음이 설렌다. 햇살 그득한 리
[에디토리얼] 칸에서 날아온 기막힌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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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싸는 건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다. 사무실에 울려퍼지는 박스 굴러다니는 소리와 비닐 테이프 잡아뜯는 소음을 듣자하니 마음이 더욱 심란하다. 그건 짐을 챙겨서 박스에 집어넣는 일의 고단함 때문이 아니다. 포장이사 시스템이 정착된 지금, 짐을 박스에 챙기는 정도가 무슨 일이나 되겠는가. 문제는 책상 구석이나 서랍 깊은 곳에 쑤셔넣어뒀던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아무렇게 방치했던 잡스러운 물건들을 놓고 다시 고민에 빠져야 하는데, 그게 참 못할 짓이란 말이다. 지금은 소용도 없는 수많은 명함, 언젠가 보겠지 하고 사두기만 했던 책, 외국에 다녀온 동료가 사준 (그러나 보존가치는 의심해볼 만한) 기념품, 먼저 회사를 떠난 동료의 ‘유물’, 그리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굴러들어왔는지 가물가물한 요상한 물건들(이를테면 발모제)까지 튀어나온다. 수년 동안 모아놓은 30여권의 취재수첩은 더 골칫거리다. 하도 갈겨써서 당시에 그 글자를 어떻게 알아
[에디토리얼] <씨네21> 충무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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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에 이어 이창동 감독의 <시>와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5월13일 나란히 개봉된다. 칸영화제에 진출하는 한국 장편영화 4편 중 3편이 함께 극장에 걸리는 셈이다. 그동안 문제적 영화를 만들어왔던 한국 감독들의 신작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게다가 이들 영화 모두가 명불허전이라는 말에 걸맞은 이 시대의 문제작이니 5월의 극장가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다 할 수 있겠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습이 본격화되는 터라 이들 영화가 스크린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걱정도 되지만, 크고 세고 비싼 놈들에 질려버린 관객이 현명한 선택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시>와 <하녀>를 보면서 두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어떤 무의식 또는 증후군 같은 것을 느꼈다. <시>의 첫 장면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의 이미지다. 그리고 한 소녀의 시체가 떠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이야기
[에디토리얼] 5월, 극장가도 푸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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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통해 예고했던 ‘파격적인 에디션’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다. 무려 홍상수 스페셜 에디션! 홍상수 감독의 열 번째 장편영화 <하하하> 개봉을 기념해서 60여 페이지를 털어 그와 그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호는 스페셜 에디션답게 ‘스페셜 에디터’를 모셨다. 정한석 기자가 바로 문제의 스페셜한 편집장이다. 정 기자는, 아니 정 편집장은 수개월 전부터 예의 그 악필로 숱하게 메모를 하면서 이번 호를 준비했다. 그러니 스페셜 에디션의 각 꼭지가 어떻게 기획됐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정한석 에디터에게 듣는 게 맞을 것이다. 그의 에디토리얼은 홍상수 스페셜 에디션(이 잡지를 거꾸로 뒤집으면 나오는)의 첫머리에 실려 있다.
이번 스페셜 에디션은 1년 전부터 기획됐다. 그의 아홉 번째 장편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개봉을 앞두고 있을 즈음, 우리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특집을 생각했고 그러자면 책 한권을 터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에디토리얼]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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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 스폰서의 관계를 다룬 <PD수첩>은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탄탄한 플롯과 풍성한 캐릭터, 그리고 생생한 리얼리티까지 이 프로그램은 대박영화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탄탄한 연기력(박 검사님, 음험한 대사 톤 최고예요!)과 빽빽한 긴장감(‘큰집’이 또 한번 ‘조인트’를 벼르는 거 아닌가 하는)까지 받쳐주니 감동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현실이 이처럼 박진감 넘치고 역동적이다보니 한국에서 현실풍자 영화를 만든다는 건 힘든 일이다. 과거 송능한 감독이 한국사회를 풍자하는 <38광땡>을 준비하다 포기한 것도 그즈음 터진 최규선 게이트 때문이었다. 당시 송 감독은 “현실이 내 상상력을 넘어선다”고 말하며 캐나다로 떠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니 한국에서 제대로 된 정치영화나 사회스릴러가 나오지 않는다며 영화인만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도 스폰서의 실체를 본 적 있다. 일간지에 다니던 시절, 한 선배가 후배들에게 횟집에서 술을 사줬다. 그는 옆자리에
[에디토리얼] 스폰서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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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개편은 활자매체의 숙명이다. 지면이 관성화됨에 따라 지루함을 느끼는 독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활자매체들은 꽃단장을 한다. 개편은 거창한 목표들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외양만 바뀔 뿐이다. 아무리 대폭 개편을 해도 <조선일보>가 <한겨레>로 바뀔 리 없고, (지금은 발행 중단 상태인) 월간 <말>이 월간 <경마>가 될 수는 없다. 소유권이 바뀐다거나 조직이 혁명적 변화를 겪지 않는 한 그 ‘알맹이’는 여전하다는 얘기다.
창간 15주년을 맞아 <씨네21>도 새 단장을 했다. 이번 개편의 모토는 ‘보다 친절하게, 보다 재미있게, 보다 깊이있게’다. ‘친절하게’는 그동안 독자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것을 반성하자는 취지다. 문화적 핫이슈를 발빠르게 전하는 ‘Must 10’이나 영화의 뒷이야기를 풀어보는 ‘무비딕’, 영화·영상쪽 진출을 꿈꾸는 분들을 위한 ‘프로페셔널’은 이런 차원에서 만들어진 지면이다. 굳이 취지에 대한 설명이
[에디토리얼] 봄단장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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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제3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제작비가 상당히 많은데도 부족하다고 툴툴대거나 엄청 오랫동안 찍는데도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게 감독들이다. 그건 그들이 방종하거나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라(간혹 그런 경우도 존재한다…) 영화라는 예술의 특성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맞을 듯싶다. 영화는 여러 사람들과의 협업을 전제로 하며 자본이라는 필요악을 끌어안아야만 성립 가능하다. 그런데 자본과 배우, 스탭 등의 요소는 감독의 운신에 명징한 선을 긋는다. 산업이라는 틀 안에서만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대단한 예술혼을 가진 감독이라 할지라도 일정한 제작비와 정해진 일정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돈과 시간에 대한 무한대의 욕망은 그러한 결핍감에서 비롯된다.
물론 성공작을 기반으로 돈과 시간의 사슬에서 자유로워지는 감독도 존재한다. 그 ‘자유’는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몇 가지 사례가 있다. <디어헌터>로 스타가 된 마이클 치미노는 (당시로
[에디토리얼] 자유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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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이 한국에서 한국 자본으로 5D영화를 찍는다, 고 뻥을 치려 했다. 만우절을 기념해서 말이다. 해외 언론들처럼 아예 만우절 에디션을 만들면 어떨까 상상하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남기남 감독의 200억원 규모 블록버스터영화 현장 방문기’라든가 ‘스케이트 액션영화 출연 결정한 김연아 인터뷰’ 같은 가슴 벅찬 기획부터 ‘영진위 사태 모두 해결, 조희문 위원장 영화계에 사과’, ‘충무로 다시 활황… 500만 관객 돌파 한국영화 벌써 10편’처럼 희망 섞인 뉴스 등등. 이걸 <싸네21>이라는 제호 아래 제작한다면…. ‘스파게티가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가 있다’고 보도해 만우절 농담의 획을 그은 1957년의 <BBC>라든가 왼손잡이용 햄버거가 출시됐다는 버거킹 광고를 실은 1998년 <USA 투데이>, (부시와 이라크전을 비판했던)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이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를 지지하기로 했다고 보도한 <가디언> 등
[에디토리얼] 만우절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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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라시 유미코의 <캔디 캔디> 7권, 캔디는 스잔나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간다. 스잔나는 조명기가 떨어지는 사고에서 테리우스를 구하는 대신 자신의 다리를 잃었다. 캔디는 스잔나를 보면서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간절한지 깨닫는다. 그때 테리우스가 나타난다. 테리우스는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가는 캔디를 와락 ‘백 허그’한다. 그 순간 캔디가 뇌까린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초등학교 5학년 때 문방구에서 샀던 <캔디 캔디>에는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훗날 다시 출간된 버전에는 “그냥 이대로 시간이 정지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번역돼 있지만 감흥에선 많이 처진다. 30년이 지났는데도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이라는 구절이 생생한 것은 캔디의 그 뇌까림이 그만큼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인 듯하다.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지붕 뚫고 하이킥!> 마지막회에서 세경이가 말했을 때 전율을 느꼈다.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는 세경의 바람은 김혜리가 적은
[에디토리얼]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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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시즌이라 할 만하다.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2>가 이미 개봉했고 <아마존의 눈물>과 <예스맨 프로젝트>가 곧 극장에서 선보인다. 오스카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의 제작진도 뜬금없이 내한했다. 극장가 비수기와 관련있겠지만, 한국에서 극장용 다큐멘터리를 이렇게 한꺼번에 만나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개인적으로 극장에서 처음 본 다큐멘터리는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1995)다(어쩌면 영화가 시작되기 전 우리를 지루하게 했던 <대한뉴스>가 첫 극장 다큐였는지도). 가깝지도 않은 동숭아트센터까지 굳이 찾아가 관람료를 내면서 이 영화를 봤던 건 워낙 화제를 모았던 까닭도 있지만,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본다’는 체험에 대한 호기심도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확실히 그 경험은 색달랐다. 극장이라는 어두운 동굴은 동공과 감각기관을 확장시켰다. 당시로선 무모했던 다큐멘터리의 극장
[에디토리얼] 다큐 한편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