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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부터 두드러기 때문에 고생이다. 가려워서 긁으면 긁는 대로 빨간 돌기가 돋는 증상인데, 등에서 시작하더니 배와 허벅지, 팔뚝으로 마구 전이되고 있다. 환부를 본 정한석이 에이 더러워, 투의 표정을 지었던 걸 생각해보면 흉측하기도 한 모양이다. 미루다가 어쩔 수 없이 찾아간 내과에서는 ‘일단 알레르기 같은데 두고보자’고 말한다. 알레르기라…. 평소 먼지에 민감한 코 말고는 별다른 알레르기가 없었는데 이상하다.
그래서 상상력을 보태 생각을 해봤다. 이 알레르기라는 건 어떤 상징이 아닐까.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세경이가 느낀 지훈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사랑니 앓이로 연결됐던 것처럼 심리적 상황이 육체에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의심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내 경우에는 편집장이란 자리에 대한 심리적 알레르기 반응이 두드러기로 물리적 ‘시위’를 하는 느낌이랄까. 그럴 법한 게 난 어릴 때부터 ‘장’(長)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어디 나서서 반듯한 주장을 펼칠 줄 아는
[에디토리얼] 새 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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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과 슈퍼밴드2>를 보다가 잤다. 영화가 끝날 때쯤 몸이 개운해질 정도로 푹(!) 잤다. 함께 본 열살짜리 딸은 혀를 끌끌 찼다.
딸은 대신 <아바타>를 보다가 잠들었다. 애초에 보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던 터다. <아바타>의 나비족보다는 <앨빈과 슈퍼밴드2>의 햄스터 주인공들이 훨씬 멋지단다. 그러자 세살 위 오빠가 한심하다고 면박을 준다. “야, 너는 <씨네21>에서 별점을 죄다 다섯개씩 받은 영화를 그렇게 몰라보냐?” 아들은 <아바타>를 두번이나 봤다.
외화 흥행사를 다시 쓰는 <아바타>를 무시하는 건 세상물정 모르는 꼬마만이 아니다. 2주 전 <아바타>를 둘러싼 대담에서도 부정적 견해가 나왔다. “잘 만든 흥행영화이긴 하나 기념비적으로 훌륭한 영화라고 말하기엔 내러티브가 진부하다”는 게 요점이었다. 전영객잔 필자인 정성일 평론가의 말은 더 세다. 그는 3주 전엔 “시간이 갈수록 사람
[에디토리얼] 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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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가 참 중요하다.
내가 기억하는 한, 영화배우 김혜수가 처음으로 히트를 친 말은 “티코로 시작하세요”였다. 1991년에 방영된 CF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운전을 마친 김혜수는 조수석에 태웠던 이영범에게 차비를 요구하고, 돈 대신 뽀뽀를 받는다. 스물한살 그녀의 싱그러운 연기가 대박을 친 광고였다. 두 번째 히트어는 2006년 개봉된 <타짜>에서의 “왜 이래, 나 이대 나온 여자야”일 거다. 불티나게 패러디됐다. 세 번째는 지난해 인기를 얻었던 SBS드라마 <스타일>에서의 ‘엣지’다. 사람들 입에 무던히도 붙어다녔다. 네 번째로는, 뒤늦게 유명해진 ‘마인드’가 아닐까 싶다. 어느 인터뷰에서 했다는 바로 이 말 말이다. “겉모습이 촌스러운 것은 용서가 되지만 마인드가 촌스러운 것은 용서할 수 없다.”
김혜수-유해진 커플을 보는 대중의 시선은 흐뭇하다. 이렇게 스타에 관해 질시의 흔적없이 순수하고 따뜻하게 응원하는 경우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금메달을
[에디토리얼] 마인드 수술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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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자? 시시하지 않니?
가족들과 ‘가훈토론’을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의 숙제 때문이었다. 각자 가훈을 정해와 수업시간에 발표한다고 했다. 딸에게 먼저 의견을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한번 쏟아부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가 어떠냐고 한다. 그냥 그 말이 좋단다. “이 바보야, 그건 가훈으로 적당하지 않아” 했더니 “바르게 살자… 착하게 살자” 따위를 낸다. 딸보다 세살 많은 아들은 성스럽게 “범사에 감사하라”로 하잔다. 반응이 썰렁하자 “욕하지 말자”로 바꾼다. 나는 너무 뻔해 보인다며, 이왕 할 바에는 재밌고 튀는 게 눈길을 끈다고 말했다. 그런 뒤 즉흥적으로 “에라 모르겠다”를 내놓았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눈치보지 않는 도전정신을 담았다는 설명을 했다. 딸은 “그건 될 대로 되라는 뜻 아니냐”고 했다. 나는 ‘모험정신’이라고 반박했다. 더불어 그 전제가 돼야 할 가훈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자기 앞가림을 하자”였다. 제멋대로 하더라도 딴사람에게(특히
[에디토리얼] 에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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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종니’라고 했다.
이렇게 쓰면 언론중재위원회로부터 “어린이들의 언어습관에 나쁜 영향을 준다”며 권고조치를 당할 지도 모른다. ‘해자정리’는 어떠한가. ‘혜자젖니’도 있다.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빅히트 유행어가 ‘빵꾸똥꾸’였다면, 그 전신이라 할 <거침없이 하이킥>이 재밌게 터뜨린 말 중 하나는 그 괴상한 사자성어였다. 윤호(정일우)는 데이트를 하던 전교 1등 소녀에게 “0000라고 하잖아, 괜찮지?”라는 말을 듣는다. 차인다는 뜻인 줄도 모르고 어리둥절하기만 했던 윤호는 밤새도록 인터넷 검색창에 그 발음을 귀에 들린 대로 입력한다. ‘혜자종니·해자정리·혜자젓니’일 리 만무한,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의미의 ‘회자정리’(會者定離)가 각별하게 음미된 2009년이었다.
한달 전 한국영상자료원으로부터 ‘도전! 나도 프로그래머’공모의 심사를 의뢰받았다. 12월 영상자료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상영하는 고전영화 VOD 기획전을 관객이 직접
[에디토리얼] 나는 당신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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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개의 표지를 눈으로 더듬으며 2009년을 음미해보자. 송강호로 시작해 강동원으로 끝났다. 당신의 뇌리엔 어떤 비주얼, 어느 배우가 박혀 있는가.
50개의 표지는 50개의 안간힘이었다. 2009년 우리의 안간힘에, 독자 여러분의 안간힘에 위로와 박수를 보낸다.
[에디토리얼] 50개의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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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를 먹었다.
“이상한 낌새만 있어도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고함을 질렀다. 포커스가 맞지 않아서 계속 엔지가 났다. 결국 열번의 테이크가 나오자, 배우도 지치고 연기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마지막에는 ‘컷’을 외치자마자, 오케이 사인을 내리지도 않은 채 촬영을 종료했다. 그날은 결국 수면제를 먹어야 잠들 수 있었다.”
또 수면제를 먹었다. “화면은 무슨 누아르영화처럼 어두웠고, 내레이션은 활력이 없었으며, 음악은 밸런스가 맞지 않고, 엔딩 편집은 무슨 자투리 영상 같은 느낌으로 나왔으니 기술 시사 반응이 좋았을 리가 있나. 무거운 마음을 먹고 다시 수면제를 먹고 잤다.”
<여자없는 세상>을 연출한 송재윤 감독의 고백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 2기의 성과물인 이 작품의 제작기는 절절하다. 얼마 전 출간된 <카메라, 88만원 세대의 심장을 쏘다>를 이루는 내용이다. 이 책엔 같은 과정으로 만든 다른 두
[에디토리얼] 88만원 감독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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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원피스를 입을 거예요.”
한비야씨가 쓴 에세이집 <그건 사랑이었네>를 뒤적이다가 눈길이 멎었다. 배우 김혜자씨의 말을 인용한 대목이었다. “나는 배우니까 현장에서도 카메라 앞에서만은 배우여야 해요. 여기 참혹한 학살의 현장에서도 하얀 원피스를 입을 거예요. 하얀 옷이 비참한 현장과 극적인 대비가 될뿐더러 내 얼굴이 훨씬 예쁘게 나오니까요.” 4년 전의 에피소드다. 김혜자씨가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친선대사 자격으로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갔을 때다. 정부 고위관리들과의 면담을 앞두고 하얀 원피스에 은은한 장미향까지 품고 나타난 그녀. 맨 얼굴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한비야씨의 수수한 모습을 보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충고를 건넨다. “비야씨는 외모에 신경을 너무 안 쓰는데 그러면 안돼요…. 이제 자기도 두 얼굴이 있어야 해요. 현장에서 도와줄 때의 얼굴과 현장 밖에서 도와달라고 할 때의 얼굴 말이죠. 두 번째 얼굴은 매
[에디토리얼] 여배우여,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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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다큐멘터리로 한번 만들어보세요.”
8년 전 알고 지내는 방송사 시사프로 PD에게 아이디어를 내민 적이 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주둔 지역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에 관해서였다. 관계자들의 증언과 미국 자료를 통해 진상의 얼개가 드러났지만, 남은 의혹이 많았다. 취재에 참여했다가 완결을 짓지 못한 아이템이었다. 방송으로 보도되면 반향이 더 클 것 같았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968년 2월12일 베트남 중부지방의 한 도로를 순찰하던 한국군 해병대 중대가 몇발의 총격을 당한다. 한명이 부상을 입는다. 해병대는 즉각 인근 마을을 수색한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마을에 불이 나고 아이와 부녀자 등 79여명의 민간인들이 주검으로 발견된다. 당시 신문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되었고 중앙정보부의 조사로까지 이어졌다. 9년 전, 작전에 참여했던 장교들을 취재했다. 중대장과 1, 2, 3소대장 모두의 증언을 들었다. 그들은 “잘은 모르겠는데, 우리 중대가
[에디토리얼] 또 하나의 배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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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가 아니다. 알면서도 도의를 어겨야 할 때가 있다. 길게 보면, 도의를 버리는 게 결국 도의가 되기도 한다.
윤종빈 감독은 5년 전 도의를 어겼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군 당국에 사기를 쳤다. 군부대 촬영협조를 요청하며 제출한 ‘선·후임병간의 우정에 관한 시나리오’는 가짜였다. 실제 영화는 전혀 다르게 나왔다. 그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엔 우정이 아니라 환멸이 등장했다. 육군 당국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흥분했다. (이젠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는 정말로 ‘용서받지 못한 자’가 될 뻔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군 당국의 협조를 얻어 영화를 찍으려면 일정한 간섭을 감수해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다. 외국도 다르지 않다. 지난호 <씨네21>에 인터뷰가 실린 가네코 슈스케 감독도 그랬다. 그는 <가메라>의 시나리오를 짜며 처음엔 자위대 전투기의 날개가 갸오스의 공격으로 파괴돼 추락하는 설정을 했다가 지웠다. 자위대가 협조를 안
[에디토리얼] 기대에 부응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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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왜 이런 일을 하세요?
20년째 운동가의 길을 걷는 한 여자선배에게 물었다. 50대를 코앞에 둔 그녀는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을 두루 섭렵한 뒤 지금은 자신의 생활근거지에서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처음에는 멋져 보여서 시작했는데, 그 다음에는 갚을 게 많아서였고, 지금은 그냥 할 일이 자꾸 생기는 것 같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쏘아붙였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그리고 덧붙였다. “야, 어떻게 술 한잔 안 마시고 그런 진지한 이야기를 하냐?”
그녀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뜸을 들이더니 결국 말했다. “즐거워서 했지. 진짜 즐거웠어.” 다시 물었다. “지금도 즐거워요?” “좀 부족해. 어떻게 해야 더 즐거울지 고민이야.” “왜 해요?” “사회를 바꾸고 싶잖아.” “다르게 살면 안돼요?” “이 일 때문에 내 삶이 송두리째 빼앗기는 느낌은 안 들어. 다만 현실을 고스란히 안아야 한다는 게 힘들지.” “동료들은 괜
[에디토리얼] 안개 같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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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친노좌파?
농담 같은 영화 비판을 접했다. 얼마 전 어느 MB스러운 주간지에 실린 글이다.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MB를 비하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정호(이순재)는 DJ를 암시하고, 차지욱(장동건)과 한경자(고두심)는 노무현의 분신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든 자유다. 문제는 이 작품이 두 전직 대통령의 업적과 인간미를 찬양하면서 친노좌파적인 정치선동을 한다는 거였는데, 왠지 공격이라기보다는 칭찬처럼 들렸다. 이 영화가 그렇게 날이 섰다는 말인가.
오히려 맨송맨송해서 탈이다. 감독 장진의 ‘무언가 한방’을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씨의 20자평은 함축적이다. “시작이 소박해서 좋지만, 끝까지 소박해서 아쉽다.” 반전은 없었다. 장진식 현실풍자는 별로 위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가령 10년 전에 만들어진 <간첩 리철진>을 돌이켜본다. 남파 공작원이 택시 강도를 당한다는 설정은 황당하면서도 결코 황당하지
[에디토리얼] 굿모닝 차지욱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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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터에선 눈 뜨고 코 베어간다. 재난 수준이다.
요즘 ‘메신저 피싱’이 극성이다. 주변에도 피해자가 적잖다. 어느 언론사의 총무부 여직원은 팀장 아이디로 로그인한 누군가의 요청에 의심없이 100만원을 보냈다. 지방 출장 중인데 교통사고가 나 급히 합의금이 필요하다는 부탁이었다. 상대방 계좌로 돈을 부치자마자 “점심 먹으러 가자”는 그 팀장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렸다. 그러니까, 귀신한테 홀린 거다. 잘 아는 후배 한명도 친구 아이디를 도용한 이에게 허망하게 털렸다. 돈을 보내고 세 시간 만에 낚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은행과 금융감독원은 물론 경찰에 신고하고 법원을 찾아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을 하는 등 하루종일 부산을 피워야 했다.
포털 사이트 역시 거대한 낚시터다. 이번엔 나의 피해사례다. 며칠 전 각 언론사들에 편집권이 주어진 오픈 캐스트를 보다가 아무개 경제신문 제목 하나에 눈길이 멎었다. “엄기영 사장 ‘<100분토론>에 정치 외압이…’.” 처음 접하는 팩
[에디토리얼] 낚시터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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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닭은 잘 안 죽는다.
잔인한 이야기 같지만, 역시 죽여본 사람이 잘 죽인다. 20여년 전 “닭 좀 잡아보라”는 제안에 기겁을 한 적이 있다. 충청도의 한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선배의 집을 찾았을 때다. 손님을 대접하겠다며 마당에 있는 닭을 잡아 닭도리탕을 해먹자는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옆에서 좀 거들라는 거였다. 오, 노! 일행 중 다른 이들도 손사래를 쳤다. 소심하고 비겁한 나는 닭의 비명조차 듣기 싫어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 선배도 닭을 잡는 데엔 초보라 낑낑거리며 일을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마냥 손을 놓고만 있기는 미안해 ‘마무리 작업’을 도왔다. 깨끗하게 먹기 위해 남은 닭털을 손으로 일일이 뽑는 거였다. 그것조차 닭살 돋는 일이었다. 그날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 중엔 서투르게 닭을 잡다간 아주 곤란하고 당혹스런 상황을 맞는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목이 떨어져나가고도 채 죽지 않고 푸드득 날아다녀 주변을 피칠갑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에디토리얼] 사람 모가지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