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캠퍼스에도 봄이 쏟아지고 있겠군요. 입학한 지도 한달이 됐으니 대학 생활도 익숙해졌겠고요. 영화를 전공하겠다는 꿈은 잘 자라고 있나요. 궁금하네요.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쭤보는 내용을 이번 특집기사로 준비한 것도 그 궁금증 때문이었습니다. 보다 많은 대학을 찾아가 다양한 생각을 듣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는 것,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총 421명이 참여해준 설문 결과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우선, 봉준호, 박찬욱 감독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은 예상대로였지만 해외쪽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제임스 카메론처럼 아주 최근의 화제작을 만든 감독들이 이렇게까지 높이 꼽힐 줄은 몰랐습니다. 한국과 미국 바깥의 감독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이 결과를 보고 ‘이게 뭐야, 영화를 전공하겠다면서 이렇게 수준이 얕아도 되는 거야?’라고 물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생각지는 않습니다. <아바타&g
[에디토리얼] 대학 영화과 신입생 여러분께
-
치과에 가다. 진료실의 액정TV는 7년째 24시간 뉴스채널에 고정돼 있다.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세계에 만연한 재앙과 분쟁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곧 닥칠 치료의 통증쯤은 티끌만도 못하다는 기분이 든다.
※<네버 렛미고>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3월19일
정처없이 흘러다니는 우리의 시선은 아름다움과 마주치면 정박한다. 아름다운 사물, 아름다운 사람은 그에게 닿기까지 소요된 모든 응시를 표류로 만들어버린다. 애초부터 그를 보기 위해 두눈이 존재하기라도 한 것처럼.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의 죽음>에서 주인공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더크 보가드)의 눈은 꽃다운 소년 타치오(비요른 안드레센)를 부단히 뒤따른다. 패닝(panning: 고정된 카메라의 가로 방향 움직임)의 끝은 언제나 타치오로 정해져 있다. 확고한 표적을 향해 헤엄쳐가는 아셴바흐의 시선 앞에는 지중해 풍광도 산마르코 광장의 전망도 거추장스런 암초에 불과하다. 늙은 사내의 주책이 민망하다고? 영화의 교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아무리 애를 써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
장선우 감독을 처음 만난 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촬영현장이었다. 딱 10년 전 부산의 한 화력발전소에 차려진 오픈세트에서 그는 고뇌와 번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예정된 제작기한을 넘긴 지 오래였고 계획된 예산 또한 훌쩍 넘은 상황이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피곤함과 초조함과 괴로움으로 뒤얽힌 그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전과 그 이후에도 수많은 촬영장에서 감독을 만났지만 그토록 고통에 찬 표정은 본 적이 없다.
세월이 한참 흘러, 3년 전 인터뷰를 위해 제주도를 찾았을 때 그의 표정은 놀랍도록 온화했고 평정심으로 가득했다. 3년 동안의 제주도 ‘유배’ 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장선우 감독은 제주도의 조용한 바닷가에서 자연과 벗하면서 소박한 마음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수양을 하는 듯 보였다. 세상사의 온갖 짐을 훌훌 버리고 자유로워진 자의 환희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씨네산책 팀을 따라가 만난 장선우 감독의 표정은 더욱 평화로웠다.
[에디토리얼] 그 평정심, 스크린에서도 보게 되기를
-
지난 일주일 동안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고 심란하게 만들었던 사건은 일본 동북부의 대지진이다. 그 엄청난 사건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서 충격받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대재앙을 겪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영화란 참 별것 아니라는 점이다. 한때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쪽에 마음속 한표를 던지기도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 앞에서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듯 느껴진다. 일본에 기반을 둔 소니영화사가 360만달러와 3만대의 라디오를, 디즈니가 250만달러, 워너브러더스가 인도네시아 쓰나미가 등장하는 <히어애프터>의 미국 내 DVD 수익금 100만달러를 기부하기로 하는 등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일본에 대한 구호활동에 나섰지만 이건 세계 2위의 일본시장을 관리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오히려 영화는 이런 재앙을 소비하는 쪽에 속한다. 재난영화나 전쟁영화는 인류가 맞이한 끔찍한 사건을 재현해 전시한다. 대체로 휴머니즘이라는 명분이 붙어 있긴
[에디토리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
-
조성희 감독의 <짐승의 끝>을 보고 어린 처녀 마리아가 품었을 불안을 다시 떠올리다.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수태고지>(Annunciation, 1850).
*<짐승의 끝> <웨이 백>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3월4일
“곧 아들을 잉태하고 출산할 것이니, 이름을 예수라 지으시오.”
아닌 밤중에 방문한 천사 가브리엘의 통보를 어린 처녀 마리아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신의 선택에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마음이 전부였을까? 수태고지(受胎告知)를 묘사한 종교화를 볼 때마다 들었던 엷은 의구심을 달래준 것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그림이었다. 로제티의 좁고 길쭉한 화면에 갇힌 10대 소녀 마리아는 충격과 두려움으로 움츠려 있다. 놀라운 소식을 들고 온 대천사로부터 도망치려는 듯 벽에 몸을 밀착하고 시선을 내리깐 소녀는 무의식적인 방어 태세를 취한다. 조성희 감독의 <짐승의 끝>을 본 뒤 로제티의 <수태고지>를 불가피하게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왜 사소한 문제에 매달리고 모호한 영화에 반할까
-
트위터를 가까이 하지 않은 지 한달이 다 돼간다. 처음에는 네트워크 환경 문제 때문에 트위터에 접근할 수 없었는데, 관성 탓인지 어영부영 건드리지 않게 됐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차라리 편해졌던 것. 본디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데다 남들의 사사로운 이야기(‘나 밥 먹으러 여기에 왔다’ 같은)까지 들여다보는 게 피곤했으니 잘됐다 싶다. 트위터의 속성상 즉각적이고 즉흥적인 글을 자주 쓰게 되는 것도 탐탁지 않았다.
트위터를 통한 이준익 감독의 ‘은퇴 선언’도 애초엔 그런 차원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평양성> 개봉 전 ‘손익분기점 넘기지 못하면 영화계 떠나겠다’고 했을 때 정말 은퇴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한 각오로 영화에 임하겠다는 말 정도로 이해했기에 ‘평양성, 250만에 못 미치는 결과인 170만. 저의 상업영화 은퇴를 축하해주십시오~. ^^;;’라는 내용의 트윗 또한 낙담한 이준익 감독이 즉흥적으로 남긴 글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내용이 언론을 거쳐 증폭되
[에디토리얼] 돌아오라, 아무 일 없던 것처럼
-
주말 내내 <씨네21> 793권의 표지를 다시 일람했다. 그건 영화와 더불어 청춘과 중년을 통과해 간 많은 한국 배우들의 얼굴로 이루어진 장려한 플래시백이기도 했다. 그중 스무권에 가까운 표지에 등장한 배우 정우성, <본투킬>에서 <검우강호>까지.
2월23일
머피의 법칙 하나. 드물게 내가 극장 앞좌석에 앉을 때마다, 왜 하필 그 영화들의 감독님은 (별칭 핸드헬드 촬영 종결자인) 다르덴 형제의 팬인 것일까? 첫 장면부터 흐린 초점 속에 흔들리며 다가오는 소년들의 모습에 내심 걱정하며 시작한 관람이었으나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은 두 시간 내내 나를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맙소사! 멱살 잡힌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인정하자. 극장 안에서 우리는 다 변태다). <파수꾼>이 부여한 예외적인 긴장감은, 인물과 배경을 제시한 다음 사건이 터지는 순서로 영화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성격과 관계를 관객이 하나씩 발견하고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꺼져 버려!"라고 쓰고 "사랑해."라고 읽는다
-
대학 졸업 뒤 백수 시절엔 한동안 ‘비디오테크’(비디오로 영화를 상영했던 시네마테크의 맹아 단계였다)에 출입했다. 기획전을 본다거나 비디오를 대여한다는 게 명분이었지만 혼자 심심하게 지내던 터라 뒤풀이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기 위해서라는 게 사실상의 이유였다. 그냥 헐렁헐렁 찾아가서 대단하다는 영화를 보다 졸다 하다가 저녁때면 정신이 들어 술자리에 몸을 내맡기던 나날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뒤풀이 자리가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비디오테크에서 16mm영화 워크숍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에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기를 열망하던 그곳 사람들 대다수가 여기에 몰두했다. 뭔가를 직접 만들어낸다는 건 생각도 해본 적도 없고 엄두도 내지 않았던 입장에선 해질녘이 다시 두려워졌다.
영화감독에 대한 꿈을 아예 꿔보지 않은 건 아니다. 특히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영화를 만들거나 단편영화 시절부터 눈여겨봤던 감독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나라고 뭐…’라는 거만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에디토리얼] 그때 스마트폰만 있었다면 말야…
-
2월16일
2010/11 F/W 시즌 소녀들의 트렌드는 명예와 정의구현이다. 안티고네의 환생인 양 아버지의 유골을 기어코 수습한 <윈터스 본>의 리(제니퍼 로렌스)에 이어, <더 브레이브>(True Grit)의 14살 매티(헤일리 스타인펠드)는 부친의 살인범을 제 손으로 잡겠다고 분연히 떨쳐나선다. 출정의 새벽에 소녀가 차려입은 옷가지는 그녀가 막 시작하려는 행위의 목표에 더할 나위 없이 부합하며, 따라서 아름답다. 제 코트 위에 허리를 동여매어 겹쳐입은 아빠의 크고 무거운 외투. 그리고 (원작의 묘사에 따르면) 신문지를 구겨 넣어 머리에 맞춘 아빠의 모자. <아담스 패밀리>의 크리스티나 리치처럼 한올의 난센스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실어 쫑쫑 땋은 머리칼. 그 안에는 가족을 대표한 복수심과 더불어 천국의 법을 실행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사명감이 들어차 있다. 다름 아닌 후자의 동기 때문에 매티는 원수 톰 채니(조시 브롤린)가 아무 데서나 엉뚱한 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그러니까 공짜는 없단 말이지?
-
참으로 아름답다. 임권택 감독님(보통 객관적인 글에서 ‘님’이란 존칭은 쓰지 않는 법이지만 이 경우만큼은 ‘님’자를 쓰지 않고선 표현할 길이 없으니 양해를 바란다)과 배우 박중훈의 만남은 그렇게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임 감독님의 어깨를 부여안은 박중훈의 흐뭇한 표정에선 아버지와 살가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박중훈의 농담에 봄햇살 같은 미소를 짓는 임 감독님에게선 해맑은 소년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아름다움은 그 포근한 분위기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1956년에 영화계에 입문한 대감독과 1986년 첫 영화를 찍은 배우의 만남 그 자체도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을 자아냈다. 햇수로 56년과 26년, 영화라는 한길을 걸어온 두 장인이 우여곡절 끝에 작품에서 처음으로 해후했다는 사실이 의외로 느껴지면서도 애틋함 비스무레한 것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한 <달빛 길어올리기> 또한 그러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을 것만
[에디토리얼] 임권택, 혹은 아름다운 친구
-
2월11일
영화가 아니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했다. 협곡에서 실족해 바위에 팔이 끼는 바람에 닷새 동안 극한상황에 고립된 남자를 1시간 반 동안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트레인스포팅>과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이미 입증한 바대로 대니 보일은 폭력적이고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소재를 활기찬 형식으로 찍어내는 틈새시장(?)을 점령한 듯하다. <127시간>의 가장 큰 충격은 짐작과 달리 사고의 끔찍함도, 옴짝달싹도 못하는 단 한명의 인물을 놓고 장편을 찍는 영화적 곡예도 아니었다.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든 것은 주인공 아론 랠스턴이 보여준 가공할 만한 낙천성과 합리성이었다. 누구나 언급하는 스스로 팔 자르기 장면에는 역시 신음이 새어나왔지만, 정작 내가 멍해진 순간은 최초의 패닉이 지나간 직후 아론이 자기 팔을 뭉갠 바위 위에 소지품들을 하나씩 늘어놓고 그들을 조합해 살아날 방도를 궁리하는 장면이었다. 물론 엔지니어이자 응급구조대 자원봉사자 경험이 있는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두근두근 소년의 뒷모습, 이런 영화적 순간이라니
-
겨울이 되기 전 옷정리를 하다 꼬깃하게 접힌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펼쳐보니 2004년 초반 내가 일했던 영화의 스탭 비상연락망이었다. 몇명은 가물가물해도 그들의 얼굴과 현장에서의 행동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6개월 만에 중도 포기하긴 했지만 처음 현장으로 갈 때의 ‘원대한 꿈’도 새삼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생각해보면 7년 전 영화현장의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당시 제작부 막내로서 받았던 전체 임금이 300만원이었으니 경제적인 측면에선 지금보다 나을 게 없었지만 활기라는 차원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결론을 질러 말하자면 그 차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존재 여부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와 비슷한 급(이라곤 해도 나이는 열몇살씩 어린) 초보 스탭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에겐 비교적 뚜렷한 미래상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동시녹음팀의 한 친구는 현장 들어온 지 2년 정도 됐으니까 5년쯤 더 하면 퍼스트급이 될 것이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녹음기사가 될
[에디토리얼]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
2월5일
걸어다니며 만화를 보았다. 아니, 만화가 내게 걸어왔다고 할까? 길거리에서 만화책을 읽었다는 소리가 아니다.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올겨울 내내 열린 <망가> 전시회 이야기다. ‘망가 리얼리티’라는 부제대로 만화를 전혀 새로운 맥락과 스케일로 감상하도록 고안한 전시다. 관람객은 한 조각씩 잘린 그림칸이 줄지어 나붙은 벽을 따라 뱅뱅 돌기도 하고(구라모치 후사코, <역에서 5분>), 대형 캔버스를 광장삼아 한데 어우러진 캐릭터의 군상(마쓰모토 다이요, <넘버 파이브>)을 바라보며 프레스코 벽화 앞에서나 느낄 법한 경의를 품기도 한다. 교실을 축소 재현한 전시장에서 학원물의 모에 문화 수업을 듣고(와카키 다미키, <신만이 아는 세계>)나면, <벡>의 노란 펜더 기타와 <노다메 칸타빌레>의 피아노와 마주친다. 이를테면, 이것은 2.5차원의 세계다. 큐레이팅과 전시 디자인이란 원칙적으로 언제나 전시의 일부지만, &l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이 예술이 되려면
-
잠시 따뜻해졌던 날씨가 다시 추워지니 적응하기 어렵다. 체감되는 한기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건 마음속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다. 최고은씨의 싸늘한 죽음이 자아내고 있는 이 냉습한 기운은 영화계를 넘어 한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듯하다. 그의 유언이 되고 만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는 쪽지의 문구는 북풍한설처럼 자꾸만 마음속 문을 열고 들어와 돌개바람을 일으킨다.
최고은씨의 죽음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논의에 앞서 우리가 취할 태도는 일단 젊디젊은 한 예술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리라. ‘포스트 최고은’에 관한 논의는 그가 생전에 겪었을 고통을 떠올리며 그 영혼의 위안을 기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만들었던 단편영화 <격정 소나타>를 보거나 그의 이름을 몇번씩 되뇌는 것도 좋을 터. 그 죽음의 근원을 따지지 말자는 말이나 그 죽
[에디토리얼] 謹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