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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맞아 각종 결산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참석했던 영화진흥위원회 주최의 좌담회 또한 2010년 한국영화산업을 결산하기 위한 자리였다. 투자, 배급, 제작, 극장, 부가시장 분야의 참석자들은 각 분야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가며 한해를 정리했다. 이날 좌담회에서 가장 뜨거웠던 주제는 기획·개발, 제작, 투자를 아우르는 ‘제작 환경’이었다. 2000년대 중·후반 영화 투자가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자본난이 본격화됐고 이에 따라 제작 환경이 대폭 악화됐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투자사의 압박 속에서 올해 (10억원 미만 영화를 제외한) 상업영화의 평균 순제작비는 마침내 20억원대까지 내려왔다. 이로써 제작비에 ‘거품’과 ‘누수’가 가득했던 과거에 비해 효율성이 커졌고 수익률 또한 약간 상승했지만, 이 과정에서 스탭을 비롯한 영화인들의 노동환경과 임금은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쟁점은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였다. 투자
[에디토리얼] 안녕, 당신과 나의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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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0일
경험있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은연중에 깨닫는 사실. 배우에게 있어 외모의 매력은 균형 잡힌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운 불균형에서 나온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려고 애쓴다면 조형적 불완전함을 변명 따위 첨부되지 않은 자족적 아름다움으로 느끼도록 하는 막무가내의 설득력이야말로 비범한 배우의 요건이다. 현실적으로는 그 역도 성립한다. 우연히도 표준형 미모를 타고난 배우라면 그 안에 잠재된 균열과 일그러짐을 노출하는 순간 몇배나 아름다워진다. 단, 많은 미남 배우들이 누아르와 갱스터 장르의 작품을 선택하며 기대하는 바와 달리 일부러 거칠게 꾸민 분장이나 ‘망가지는’ 캐릭터는 대다수의 경우 이와 같은 도약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어이없지만, 결국 우리가 희구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고작? 송강호 배우가 선배 문성근의 말을 인용했던 인터뷰가 기억난다. “조직에서 교육받고,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이 잃어버린 얼굴이 있다. 배우의 일은 그 잃어버린 얼굴들을 찾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전전긍긍, <도약선생>의 마지막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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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장난 아니다. 엄청난 한기에도 불구하고 서울독립영화제는 성황리에 치러졌다고 한다. 하지만 서독제에서 본 두편의 영화는 극장 주변의 뜨거운 열기와 무관하게 마음속을 싸늘한 얼음장으로 만들어놓았다. 그건 장률 감독의 <두만강>과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다. 이미 부산영화제에서 많은 이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던 두 영화는 겨울을 배경으로 탈북자를 소재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슴속을 황량하게 만든 건 물론 시간적 배경과 소재 때문만은 아니다.
<두만강>은 ‘장률 감독의 최고작’이라는 김영진 평론가의 이야기처럼 장률 감독 특유의 미니멀리즘 안에서 거세고 격렬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영화다. 탈북자들이 거쳐가는 두만강 인근 중국 동포 마을을 무대로 한 이 영화는 단지 탈북이라는 현실을 넘어 탈북자들과 조선족 동포 사이의 유대와 증오, 모국에 대한 애정과 혐오, 그리고 ‘인간의 조건’에 관해 시종 건조하게, 그러나 힘있게 묘사한다. 장률은 사람들이 무
[에디토리얼] <두만강>과 <무산일기>, 가슴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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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일
“내 첫 영화 시사회에서 우리 아버지는….”
무슨 이야기 끝에 이 화제가 나왔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내용만은 잊고 싶지 않아 취기 속에서도 머릿속 백지에 꼭꼭 눌러 적었다. 변영주 감독의 아버님은 <낮은 목소리>의 시사를 보고 나오는 길에 소감을 묻는 인터뷰에 이렇게 답하셨단다. “저는, 서부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역시 다큐멘터리란 재미가 없는 거구나”라는 명쾌한 20자평을 딸에게 선사하셨다고 한다(왠지 부전여전인 것 같다는 소감은 말씀드리지 않았다). 이경미 감독은, 단편영화로 평단의 주목을 받는 동안 한번도 아버지에게 칭찬을 들은 적이 없었다. 트로피를 받아들고 와도 “너는 과분한 인정을 받은 거니까, 우쭐하지 마라”는 냉정한 반응이 전부였다고 한다. 맏딸이 방심하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이 더 무거우셨던 모양이다. 그 아버님이 첫 장편 <미쓰 홍당무> VIP 시사회에 오시던 날, 이경미 감독은 아버지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해 당황하고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아버지들의 영화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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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라는 말이 함의하는 것 중 하나가 송년회다. 하루 걸러 한번씩 열리는 송년회에 의무감을 발휘해 얼굴이라도 비치려 하다 보니 몸이 축나는 게 느껴진다. 물론 개중에는 뜻깊고 마음 따뜻해지는 송년회도 있다. 12월8일 열린 한국영화감독조합(DGK) 송년회도 그런 자리였다. 일단 그렇게 많은 영화감독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처음 봤다. 노장부터 중견을 거쳐 신인감독까지 100명도 넘는 감독들이 가슴에 이름표를 붙인 채 피카디리 극장 뒤편 한 호프집 2층의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나누고 수다를 떨고 술잔을 부딪히는 모양새가 신기하기까지 했다. 누군가는 ‘감독들이 느끼는 위기감 탓’이라고, 누군가는 ‘요즘 감독들이 그만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지만 이유야 어쨌건 감독들의 연대를 위한 만남의 자리는 나빠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들의 대화는 단지 덕담에서 끝나지 않았다. 푸념과 한숨 그리고 짜증과 분노까지 튀어나온 건 당연한 일이다. 흥행에 성공한 감
[에디토리얼] 그 ‘연인’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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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2일
4인의 감독이 둘러앉은 술자리. A감독님은 차기작 시나리오 초고와 씨름 중이고, B감독님은 캐스팅 진도에 제동이 걸렸다. 이날 모임의 주빈 격인 C감독님은 엊그제 개봉한 영화 흥행 성적에 상심했고, D감독님은 영화를 완성했으나 개봉이 늦춰졌다. 불현듯 학창 시절 생물 시간에 배운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설이 떠올랐다. 달리 말하자면 이 풍경은 ‘영화 만들기에서 발생하는 수난의 계통적 진화’를 각 ‘개체’가 단계별로 예시하고 있는 셈 아닌가. 남의 곤경을 놀리며 자신의 우울을 잊었는지, 자학을 선보여 남들의 시름을 덜어주었는지 딱히 분간할 수는 없으나- 옆자리 손님들은 무슨 큰 경사라도 나서 모인 사람들인 줄 알았을 거다- 모두 조금씩 가볍고 따뜻해져서 헤어졌다.
11월23일
손재곤 감독의 <이층의 악당>은 4년이라는 간격을 고려하면 전작 <달콤, 살벌한 연인>(2006)과 놀랄 만큼 가깝다. 1층엔 로맨틱코미디, 2층에는 범죄스릴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자학의 시, 혹은 영화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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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2월이다. 지나가고 있는 한해를 정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그 첫째 순서는 독립영화다. <워낭소리>와 <똥파리>로 기세 좋게 출발했던 지난해에 비해 올해 독립영화는 이슈도 적었고 약간은 침체된 듯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특집기사를 찬찬히 읽어보니 2010년 한국 독립영화계도 알찬 성과를 거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지난해의 기운을 이어받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긴 하다. 이송희일 감독의 아이러니한 ‘사랑’에 관한 글에서처럼 어쩌면 독립영화계 전반이 조희문 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과의 맞대결에 힘을 소진한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테크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와 영진위의 전방위적인 훼방을 저지하려 했던 일련의 활동이야말로 올해 독립영화의 가장 큰 이슈였으니까.
어쩌면 우리 스스로도 그 이슈에 휘말려 정작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8명의 필자가 꼽은 올해 독립영화
[에디토리얼] 상암동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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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1월9일
늦은 오후, 멀티플렉스에서 성황리에 <부당거래>를 관람하고 나오는데, 어딘지 낯익은 미남 청년이 커피전문점 바깥 테이블에 홀로 앉아 독서 중이다. 다가가보니, 삼남매를 슬하에 두고 일곱편의 장편영화를 만드신 류승완 감독님이다. 아니, 이 광활한 도시에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아프간>을 읽을 장소가 <부당거래> 관객이 쏟아져 나오는 길목의 카페 테이블뿐이란 말인가요, 라고 짐짓 놀려드린 다음 잠시 동석했다. <부당거래>의 경험 이후, 류승완 감독은 본인이 정말 잘할 수 있는 작업, 현장에서 스스로 즐거운 영화 만들기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의 세트 피스(set piece)로 안무된 액션에 관한 그의 오랜 열광을 입에 올렸더니, 류승완 감독의 말에 희미한 회고조가 어렸다. “내게 최고의 액션은 여전히 성룡 액션이에요. 내 영화에서도 그런 액션을 재연하고 싶었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카메라가 다가오자 사랑이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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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넌이 마이크 채프먼의 총격으로 사망하던 1980년 12월8일 나는 중학교 입학을 앞둔 처지였다. 동요와 가요를 오가는 음악취향을 갖고 있던 나로선 그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얼마 뒤 세살 위인 형이 잡지책 한권을 사왔다. <월간팝송> 1981년 1월호(2월호일 수도 있다)였다. 그 호는 표지부터 존 레넌을 내세워 거대한 특집기사를 싣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그의 유작인 <<Double Fantasy>>의 <Starting Over> <Woman> <Beautiful Boy>가 계속 흘러나왔기 때문인지, 총격 사망이라는 사건 자체의 충격 탓인지, 아니면 형언하기 어려운 포스의 흑백 표지 탓이었는지, 하여간 <월간팝송> 그 호는 달달 외다시피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그 이후 <월간팝송>은 매월 발매일을 챙겨 사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 됐고, <황인용의 영 팝스>와 상
[에디토리얼] Imagine 존 레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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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블루레이로 출시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보다가 캐리 그랜트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어떤 순간에는 정력적인 남성으로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깊은 주름이 드러나(HD TV의 위엄!)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 찾아보니 이 영화가 발표될 당시 그랜트의 나이는 무려 55살이었다. 의외였다. 대충 40대 후반 정도라고 예상했는데. 그 나이에 나름의 액션(?)까지 포함된 이 영화를 소화했다니 그랜트도 참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55살에 자신의 대표작을 찍은 배우는 행복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층의 악당>과 <페스티발>을 보면서 흐뭇했던 점 중 하나는 한석규, 심혜진의 존재감이었다. 그 정도 경력의 연기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원숙함을 드러냈다는 사실에 안도감도 들었다. <이층의 악당>의 한석규는 우리에게 친숙한 기존 이미지를 이용하지만 그것을 교묘하게 뒤틀기도 한다. 품이 완연히 넓어진 인상의 그가 스크린을 꽉 채워준
[에디토리얼] 오래 묵은 연기의 참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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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0월31일
뒤늦게 피에르 바야르가 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김병욱 옮김)을 읽기 시작하다. 이 얼마나 절묘하게 유혹적인 제목인가. 요컨대 세상의 모든 책을 읽지 않고도 읽은 척할 수 있는 효과를 얻기 위해, 이 책 단 한권만은 사서 읽어야 하는 셈이다. 바야르는 ‘비(非)독서’라는 개념을 쓰는데, 이는 우리가 통상 말하는 ‘읽지 않은 책’과 의미가 조금 다르다. ‘비독서’는 전혀 접해보지 않은 책, 대충 뒤적인 책, 남의 얘기를 듣고 알게 된 책, 읽었으나 잊어버린 책으로 나뉜다. 이를 영화로 옮기자면 금시초문인 영화, 졸면서 보거나 DVD 2배속 플레이로 본 영화, 친구에게 듣거나 관련 기사만 읽은 영화, 보긴 했는데 가물가물한 영화가 될 터다. 저자는 15쪽에서 “…읽지 않은 책이라고 해서 그 책들이 우리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책들도 메아리를 통해 우리에게 영향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기다림이 결여된 11월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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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즈음부터 지금까지, 굳이 의도한 건 아닌데도 한국영화 제작자들을 꽤 여럿 만났다. 그중에는 1990년대 중반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주역도 있고 금융자본을 영화계로 끌어들인 이도 있으며 대기업 시스템에서 영화를 만들어온 분도 있다. 대화 초반 화제는 몇 가지로 수렴된다. 첫째, 자본이 없다는 것. 영화자본이 여전히 CJ를 비롯한 몇몇 대기업에 집중되다 보니 운신의 폭이 작다는 얘기다. 너무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얘기인데다 별 대안도 없는 사안이라 이런 대화가 등장할 때면 어떻게 화제를 돌릴지 고민하느라 머리에서 드르륵 소리가 날 정도다. 둘째는 적은 예산으로 영화 만들기의 고단함이다. ‘순제작비 30억원이면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공공연한 진리로 자리잡을 정도로 빡빡해진 투자환경 속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겪는 어려움 말이다. 이 역시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여준 뒤 빨리 다음 화제로 넘어가야 하는 피곤한 주제다. 셋째는 영화진흥위원회의 무책임함에 대한 성토다. 특히 조희문
[에디토리얼] 요즘 한국영화 좋아지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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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2일
고등학교 3년 내내 편지를 주고받았던 중학교 동창 Y가 실로 오랜만에 전시회를 하는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 시사와 겹쳐버렸다. 그림은 볼 수 있겠으나 친구와 만나지는 못하게 됐다. 어젯밤만 해도 트위터 이웃에게는 침실 전구를 갈다 깨뜨렸네, 소슬바람이 창가에 불어오네 시시콜콜 늘어놓았던 내가 오랜 벗에겐 이 모양이다. 따로 예를 찾아 눈 부릅뜰 것도 없이 내가 바로 세태(世態)다. 그러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직접 살은 맞대지 않은 채 ‘연결’되기를 바라고 클럽의 멤버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이를 선호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나를 떠나거나 상처줄 수 없으니까. 지금 세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은 “당신에게 반대한다”, “나랑 싸우자”가 아니라 차단(block), 혹은 절연(disconnect) 같은 단어들이다. <소셜 네트워크>의 주인공인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는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낯선 이에게 드러내고 싶은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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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난 백수였다. 당연히 주머니도 훌빈했기에 집 안에서 뒹굴뒹굴 시간 죽이기만이 가능했던 그 시절, 유일한 낙은 TV였다. 불행히도 당시엔 케이블TV도 없었고 공중파도 지금처럼 종일방송을 하지 않았다. 오후 6시에나 시작하는 다른 공중파 방송을 기다리다 지칠 때면 오후 4시부터 방송을 시작하는 EBS로 채널을 돌리곤 했다. 물론 그 시간대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만 방송했지만 시간을 때우기 위한 일념으로 좀비처럼 멍하니 TV에 눈을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눈이 번쩍 뜨이는 프로그램 하나를 발견했으니 그건 <꼬마 요리사>였다. 노희지라는 꼬맹이가 요리사라면서 오물오물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정신줄을 놓을 정도였다. 곧바로 동료 백수들에게 전화를 돌려 ‘아무것도 묻지 말고 지금 EBS를 틀어’라고 제보했고 그들은 ‘정말 탁월한 발견’, ‘날카로운 눈매’라면서 나를 칭찬해줬다. 얼마 뒤 <꼬마 요리사>가 상당한 인기를 얻으면서
[에디토리얼] 찍고 키우고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