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쑥한 청춘 스타의 얼굴인 줄 알았더니, <춘천, 춘천>에서 하릴없이 호반의 도시를 배회하는 ‘지현’을 보면서 그의 타고난 쓸쓸함도 발견하게 됐다. 장우진 감독의 <새출발>로 스크린에 데뷔해 <춘천, 춘천>이 개봉관에 당도하기까지 쉼 없이 일해온 그는, 그사이 명필름랩 1기로 입성해 내실을 다졌다. <너와 극장에서> <환절기> 같은 독립영화 기대작들에서도 우지현은 꾸며놓는 대로 어울리고 편안한 배우였다. “얼굴이 많다”라는 평가를 들을 때 가장 즐겁다는 그에게서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이해한 배우의 지혜가 묻어났다.
-<춘천, 춘천>의 지현은 어떤 인물인가.
=장우진 감독의 전작 <새출발>의 연장선 안에 있는 캐릭터다. 표면적으로는 취업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문제가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모든 것이 유예된 상태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들을 자꾸 잃어버리고 있다는 슬픔이 핵심적이라고 봤다. 지현의 미래가
<춘천, 춘천> 우지현 - 풍경과 조응하는 배우
-
“다큐멘터리처럼 접근하자.” <암수살인>의 이봉환 미술감독이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매료됐던 김형민 형사(김윤석)와 살인범 강태오(주지훈)의 팽팽한 두뇌 싸움은, 말 그대로 사실적인 공간에서 펼쳐져야 했다. 일례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교도소의 수사 접견실은 지금은 폐허가 된 건물인 부산의 옛 사상경찰서 1층에 세트를 지었다. 2층에는 형사과 세트를 지었다. “진짜 접견실을 가볼 수 없기 때문에 자료 수집차 교도소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거의 다 훑어봤다.” 40석 정도의 형사과 책상을 만들 때도 “성격상 엇비슷하게 묘사하는 걸 견디지 못해” 40명의 캐릭터를 상상하며 각자의 성향에 맞는 책상 디자인을 모두 달리 꾸며놨다. 형민이 태오가 던져준 단서를 좇다가 결정적 증거를 포착하는 유치장 창고 장면도 의도치 않게 사실을 그대로 재현한 경우다. 형민의 실제 모델이었던 김정수 형사가 단서를 발견하게 된 것도 실제로 유치장 창고라는 걸 알게 된 김태균 감독이 그 장면을 유
<암수살인> 이봉환 미술감독 - 전면에 드러나지 않되 진짜처럼 보여야 했다
-
“출세했네. (웃음)” 차지현 AD406 대표와 인터뷰 하기 전에 그의 친동생인 배우 차태현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차태현은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형이 제작자로서 충무로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차지현 대표는 방송 음향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충무로에 들어가 창립작 <미확인 동영상: 절대클릭금지>(2012)를 시작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끝까지 간다>(2013), <사랑하기 때문에> (2016), <반드시 잡는다>(2017) 등 개성 있는 영화들을 제작해왔다. 그런 그가 올해 제작한 영화 <목격자>는 <신과 함께-인과 연> <공작> 등 맹수들이 즐비했던 올해 여름 시장에 용감하게 뛰어들어 252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불러모으며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차 대표를 만나 ‘배우 차태현의 형’이
<목격자> 제작한 차지현 AD406 대표, "여름 언제라도 개봉할 수 있게 철저히 준비했다"
-
<버디 VR>의 채수응 감독은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이하 베니스영화제)에 한국 감독으로는 유일하게 진출해 가상현실(VR) 경쟁부문에서 ‘최고 VR 경험상’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무려 20여년 전인 17살 무렵, <씨네21>과 인터뷰한 경험(1998년 <씨네21> 174호 특집 ‘영화를 만드는 아이들’ 기사에 1회 청소년영상페스티벌 수상자로 소개되었다)이 있다.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만의 스튜디오를 만들겠다”던 ‘영화 꿈나무’는 어느덧 성장하여 미래 기술 VR을 개척하고 있다. 현재 VR과 영화의 접목 가능성을 최전방에서 고민하고 있는 그를 만나 <버디 VR>을 연출하게 된 사연과 앞으로의 비전을 함께 들어봤다(그가 미국에서 경험했던 시각특수효과(VFX) 분야에 관한 이야기는 <씨네21> 1100호 특집 ‘국내 최고 VFX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미래의 시각효과기술’ 기사에서도 볼 수
<버디 VR> 채수응 감독 - VR의 상호작용성이 스토리를 풍부하게 만든다
-
-
호러 시스터스라 불러도 될까? <컨저링> 시리즈 내내 워렌 부부 곁을 떠나지 않고 서성이던 악령의 실체를 다룬 스핀오프영화 <더 넌>의 주인공 아이린 수녀 역의 타이사 파미가는 <컨저링>의 로레인을 연기한 베라 파미가의 동생이다. 코린 하디 감독은 인터뷰에서 “아이린을 연기할 최고의 배우가 하필 타이사 파미가였을 뿐, 언니의 후광 때문에 캐스팅한 것은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파미가가 연기하는 아이린은 종신서원 전의 예비 수녀다. 1952년, 루마니아의 성 카르타 수녀원에서 벌어진 수녀의 자살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바티칸에서 버크 신부(데미안 비치르)와 아이린 수녀를 지목해서 파견하는데 영문도 모른 채 악령으로 뒤덮인 수도원에 도착한 아이린은 누구보다도 침착하고 용감하다. 타이사의 언니 베라가 그녀에게 해준 조언은 “촬영장에서 돌아오면 항상 집 안을 밝게 하고 창문을 열어두라”는 것뿐이었다고 한다. 또 자매인 두 배우의 연결고리는 <더 넌>
<더 넌> 타이사 파미가 - 호러의 신선한 존재감
-
주지훈은 최근 1년 동안 <씨네21> 표지에 4번 등장했다. 네편의 작품 중 이미 개봉한 세편의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그중 <신과 함께> 시리즈 두편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미 2018년을 대표하는 영화배우가 된 주지훈이 민낯에 삭발을 감행한 <암수살인>으로 다시 관객을 찾는다. 자신이 7번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먼저 고백하는 강태오는 액션보다는 말, 감정보다는 침착한 이성이 앞서는 <암수살인>에서 판을 쥐고 흔드는 인물이다.
-특수효과가 가득한 <신과 함께> 시리즈와 파워풀한 선배 배우들에 둘러싸인 <공작> 촬영을 마친 후, 연쇄살인범으로 나오는 <암수살인>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여러 이유로 망설였다. 캐릭터가 강렬해서 배우로서는 연기하는 맛이 날 것 같은데, 관객에게 잘 흡수가 될까 싶더라. <아수라>(2016) 때부터 형들과 작업하면서, 연기와 영화는 물론 작품을 보는 관객의 반
<암수살인> 주지훈 - 주지훈이라는 돌파구
-
‘또 형사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김윤석은 여러 유형의 형사를 연기해왔다. 그런데 <암수살인>에서 그가 맡은 김형민은 이제껏 맡았던 형사와 많이 다르다. 범인과 육탄전을 벌이는 대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포기하기 않고 사건의 실마리를 진득하게 풀어나가는 ‘진짜’ 형사다. 요행을 부리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니 배우 김윤석을 쏙 빼닮았다.
-김형민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성격이 하나둘씩 드러난다는 점에서 양파 같은 남자다.
=상황을 차분차분 바라보되 단서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정보를 수집해 사실과 강태오(주지훈)의 증언 사이에 널린 퍼즐들을 꿰맞추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서사 초반에 설정하거나 하드보일드한 장르 속 형사 캐릭터로 접근하지 않아서 좋았다.
-용의자나 범인과 뒤엉키거나 육탄전을 벌이는 여느 형사영화와 달리 액션은 없지만 태오가 던져준 단서를 세심하게 수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
=강태오가 하는 말이
<암수살인> 김윤석 - 영화적인 에너지
-
용호상박. <암수살인> 현장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첫 번째로 목도한 관객이었던 김태균 감독은 김윤석과 주지훈의 기세를 이렇게 비유했다. 김윤석이 정적으로 보이지만 내재된 용광로 같은 감정을 숨기고 눈빛으로 표현하는 호랑이 같았다면, 넓은 스펙트럼의 감정을 능글맞고 혹은 악마같이 표현하는 주지훈의 연기에서는 여유로운 뱀장어나 용이 떠올랐다고. 극중 형사와 살인범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촬영 전 대기시간에도 일부러 떨어져 앉았다는 두 사람이지만, <씨네21> 표지 촬영 현장은 영화와 달리 훨씬 편안한 기운이 맴돌았다.
<암수살인> 김윤석·주지훈 - 용호상박
-
박배종 감독은 <웰컴 투 동막골>(2005) 이후 12년 만의 신작 <조작된 도시>를 연출하면서, 장편영화는 처음인 남동근 촬영감독을 기용했다. 90년대 후반부터 150여편의 뮤직비디오와 1천여편에 달하는 광고촬영으로 잔뼈가 굵은 그의 감각을 믿었기 때문이다. 박배종 감독이 그 가능성에 ‘모험’을 걸었다면, <안시성>의 김광식 감독은 그 모험에 ‘확신’을 더했다. 총제작비 220억원, 촬영기간 7개월, 97회차의 사극 액션 블록버스터 <안시성>의 비주얼을 진두지휘할 촬영장의 ‘눈’으로 남동근 촬영감독은 절대적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 전쟁 사극의 또 다른 레퍼런스를 만들자는 각오로 접근했다”는 남동근 촬영감독은 “인물들의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의 흐름도 중요하지만 영화 속 전투인 공성전을 제대로 스크린에 구현하는 것이 큰 목표였다”고 전한다. 총 135분의 러닝타임 중 액션 신만 영화의 1/3을 훌쩍 넘는 50여분. 1차 주필산 기마전투를 시작
<안시성> 남동근 촬영감독 - 한국 사극 액션의 새로운 레퍼런스가 되고 싶다
-
<가족의 탄생>(2006), <만추>(2010)의 김태용 감독은 지난해 국악 공연 <꼭두>를 연출했다. 영화와 국악의 신선한 결합을 보여준 <꼭두>는 총 20회 공연 중 11회를 매진시키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올해 11월 국립국악원에서 <꼭두>가 재공연 된다. 그에 앞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꼭두>의 영화 버전인 <꼭두 이야기>가 상영된다. <꼭두>는 할머니의 꽃신을 몰래 팔아 강아지를 산 아이들이 할머니가 쓰러진 것을 알고 꽃신을 되찾으러 갔다가 저승길로 떨어져 꼭두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배우 김수안이 할머니의 꽃신을 찾아 나서는 누나 수민을, 조희봉이 네명의 꼭두 중 시중꼭두를 연기한다. 무성영화에 변사의 해설을 곁들인 <청춘의 십자로>, 판소리와 영화의 만남을 보여준 <필름판소리 춘향뎐>, <레게 이나 필름, 흥부> 까지, 최근 김태용 감독은 영화와
국악 공연 <꼭두>와 영화 <꼭두 이야기> 김태용 감독·조희봉 배우, “영화의 내러티브가 무대로, 무대의 감정이 영화로”
-
“이게 디지털인 줄 알아?” 북한의 리관암 감독이 배우에게 호통쳤다. 필름 촬영에 엔지를 많이 내면 어떻게 하냐는 거다.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의 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이 평양까지 간 것은 다국적 기업에 의해 행해지는 호주의 셰일 가스 채굴을 반대하는 북한 스타일의 선전영화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흥미진진한 제작기를 들었다.
-평양에서 영화를 찍고 서울에서 상영하는 소감이 어떤가.
=영화를 찍을 때만 해도 남한에서 상영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가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영화를 찍기 전에 북한영화에 대해 알고 있었나.
=잘 알고 있었다. 북한에 가기 전에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쓴 책 <영화와 연출>을 읽고 북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많이 연구했다.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찍은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 - 북한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 정직함이 중요했다
-
빌리 하울은 문학을 스크린으로 소환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배우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그는 열등감에 절어 있는 지질한 남자 토니의 젊은 시절로 분했는데, 왜곡된 기억과 실제 사건 사이의 간극을 정확한 연기로 보여준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단편을 각색한 <BBC> 드라마 <검찰측 증인>에서 살인죄로 기소된 피고인 레너드 볼, 안톤 체호프의 동명 희곡을 기반으로 한 <갈매기>에서 대배우인 어머니와 갈등을 빚는 작가 지망생 콘스탄틴을 연기했다. 이언 매큐언의 동명의 소설 원작인 <체실 비치에서>의 빌리 하울은 시얼샤 로넌의 상대 배우로서, 무시무시한 연기를 펼친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리고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온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갈등을 겪는다. 연애에 서툰 두 사람은 첫날밤,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한다. 소설에서 텍스트로 설명되어 있던 에드워드의 히스테릭한 심리는 빌리 하울의 밀도 높은 연
<체실 비치에서> 빌리 하울 -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는 재능
-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작품.” <안시성>이 필모그래피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묻자, 배성우는 이렇게 답했다. 영화 개봉은 잠시 동안이지만, 오랫동안 함께할 동료를 얻는 건 그처럼 많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라는 말과 함께. 당의 20만 대군에 맞서 안시성을 지켜내는 사람들의 투쟁을 다룬 영화 <안시성>은 팀플레이가 무엇보다 중요한 영화였다. 성주 양만춘(조인성)의 부관 추수지를 연기하는 배성우와 안시성을 지키는 기마대장 파소로 분한 엄태구는 ‘팀 안시성’의 밑그림을 완성하는 중요한 퍼즐이다. 그런 그들이 혹독하지만 끈끈했던 <안시성>의 추억을 말한다.
-<안시성>은 전투 장면이 주가 되는 사극 액션영화다.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설정인데.
=배성우_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다. 안시성 전투라고 하면 우리 민족의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호쾌했던 승리의 전투잖나. 드라마보다 전투에 몰입하는 사극이라는 점이 흥미롭
<안시성> 배성우·엄태구 - 쉼 없이 말 달리다
-
사물(남주혁)은 ‘고구려의 반역자’로 지칭되는 양만춘(조인성)을 고구려 왕 연개소문(유오성)의 명령으로 처단하러 간다. 그런데 가까이서 본 양만춘에게 무사로, 또 인간으로 매혹된다. 양만춘은 사물의 의도를 알고도 그를 옆에 둔다. 둘의 이 규정할 수 없는 관계는 큰 전투의 흐름 속, <안시성>의 드라마를 만들어주는 절대적인 열쇠다. 김광식 감독은 “사물에게서 어린 양만춘의 모습이 비치도록, 서로가 서로를 투영하도록, 그래서 조인성을 연상하게 하는 남주혁을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쌍화점>(2008)에서 고려 말 호위무사 홍림으로 나왔으니, 사극은 10년만의 출연이다.
=조인성_ 사극이 부담스럽다기보다는 규모가 부담스러웠다. 양만춘과 조인성의 매칭에 대한 물음표와 편견 속에서 시작했고, 나 역시 ‘내가 맞을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컸다. 그걸 보고 한재림 감독(전작 <더 킹>(2016) 연출)이 “해야 할 때가 됐다” 하시더라. (웃음
<안시성> 조인성·남주혁 - 전쟁 같던 촬영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