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민은 <사바하>의 나한보다 더 노랗게 탈색한 머리를 하고 카페에 앉아 있었다. 초미세먼지의 공습 속에서도 그의 머리색만은 개나리보다 화사했다. 이것은 또 무엇을 위한 위장술일까. 곧 촬영에 돌입하는 영화에서 10대 캐릭터를 맡아 머리색을 바꾼 것이라 말하며 박정민은 괜히 멋쩍어한다. 청소년을 연기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는 뜻일 텐데, 그래도 관객은 믿게 될 것이다. 박정민은 최근 2~3년 사이 밀도 높은 다작, 보폭 큰 변신을 거듭했다. <그것만이 내 세상>(2017)의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진태, <염력>(2017)의 인권변호사 정현, <변산>(2017)의 래퍼 학수, <사바하>의 ‘미스터리한 자동차 정비공’ 나한을 거쳐 <사냥의 시간>과 <타짜: 원 아이드 잭>까지 촬영을 마친 상태다. <사바하>를 봤다면 알겠지만 ‘미스터리한 자동차 정비공’으로 나한을 소개한 건 조크다. 스포일러가 될 수
<사바하> 배우 박정민, "감독님이 만든 종교 안에서 살아가면 될 것 같았다
-
“우리한테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영화 안에서 하려다 보니까 결말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국경의 왕>은 시나리오를 쓰는 유진(김새벽)과 동철(조현철)의 타지 생활을 유유히 좇는다. 예전 같지 않은 마음과 관계 속에서 각자 방황하는 두 사람의 여정은,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비극이지만 비극처럼 보이지 않아서 코미디다”. 전작 <라오스>(2014)에서 졸업영화를 포기한 영화과 학생들의 라오스 탐험을 보여준 임정환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우연과 즉흥의 색채가 가득한 동유럽 모험담을 들려준다. 무모하고 기묘한 일이 벌어지는 전반부는 ‘국경의 왕’으로, 그보다 한층 현실적으로 보이는 후반부는 ‘국경의 왕을 찾아서’로 제목을 각각 붙였다. 재치 있고 엉뚱한 시선은 여전하지만, 인물들을 지배하는 정서는 한층 쓸쓸해진 모양새다. 임정환 감독은 어쩌면 <국경의 왕>을 통해 2부 제목처럼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고 있던 것 아닐까. 지도를 버리고 낯선 여행지로
<국경의 왕> 임정환 감독 - 낯선 곳에서 달리 보이는 사람들
-
때로는 상실감조차 살아가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아사코>에서 가라타 에리카가 연기한 주인공 아사코는 2년 전 갑자기 사라진 남자친구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를 잊지 못한 채 살아간다. 오사카에서 도쿄로 온 아사코는 어느 날 바쿠와 똑같이 생긴 남자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만나 혼란에 빠진다. 오디션에 지원해 캐스팅된 신인배우 가라타 에리카는 순백의 얼굴로 아사코가 겪는 혼란과 상처를 자연스럽게 펼쳐보인다.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가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첫 작품인 그로서는 쉽지 않았을 텐데도, 그는 현장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현장의 모든 순간에 소중한 배움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름의 방식으로 아사코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려 했을 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머리를 비우라고 주문했다. 오로지 상대 배우의 행동과 말을 보고, 느끼고, 반응하길 원했다. 그렇게 상대방에 집중하면서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것들을 느꼈다
<아사코> 가라타 에리카 - 앞을 향해 또박또박 나아간다
-
<우상>에서 배우 천우희가 연기하는 련화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씌울 수 있는 족쇄란 족쇄는 온몸에 다 씌운 인물 같다. 지킬 것이 많은 남자와 잃을 것이 없는 남자의 처절한 싸움의 와중에 련화는 그저 살아남고 싶다는 외롭고 처절한 비명을 지른다. 아마도 많은 관객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서서히 밝혀질 듯 말 듯 하는 련화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지켜볼 것이다. 최근 개인 유튜브 채널 ‘천우희의 희희낙낙’을 개설해 명랑한 일상을 팬들과 공유하고 있는 배우 천우희가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거웠다는 <우상>의 ‘련화 만들기’ 과정을 들려줬다.
-시나리오를 읽고 첫인상이 어땠나.
=처절했다. 중심이 되는 세 인물(구명회, 유중식, 최련화)이 각자 원하는 욕망이 다르기는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걸 향해 달려가는데도 원하는 만큼 이뤄지지 않는, 그래서 연민이 느껴지는 캐릭터였다. 감독님이 현장 편집본도 안 보여줘서 영화가 어떨지 무척 궁금
<우상> 천우희 - 매번 다르게 태어난다
-
-
중식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항상 바지런을 떨어야 하고, 언제나 아픈 아들의 손발이 되는 남자다. 작은 철물점을 운영하며 고단하게 사는 그에게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아들 부남은 삶의 이유다. 자신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아들이 어느 날 불의의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단서를 찾아 나선다. 중식을 연기한 설경구는 <우상>이 “책을 읽자마자 출연을 결심할 만큼 최근 읽은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가슴이 뛴 작품”이라고 말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가슴이 쿵쾅거렸다고.
=처음에는 이야기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 러프하게 읽었다. 두 번째 읽었을 때 서사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 이야기가 되게 치밀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여운도 오래 남았고. 책장을 덮자마자 곧바로 출연을 결심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다 보니 사고 친 자식을 둔 명회(한석규)보다 사고로 자식을 잃은 중식에게 더 마음이 갔다.
=명회가 냉정하고 차가운 인물이라면 중식은 아
<우상> 설경구 - 단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
-
대중의 눈에 비친 정치인 구명회는 매사 빈틈없는 이상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아들이 낸 교통사고로 피해자가 생기면서 그의 ‘본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단순히 ‘뒤가 구린 정치인’으로 규정하기엔 이 남자의 판단과 행동은 복잡미묘하다. 그의 본심은, 본성은 무엇일까. 한석규는 미동 없는 침착한 표정 하나로 구명회의 온갖 뒤틀린 ‘악행’을 표출한다. 애써 큰 힘을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우상>의 구명회는 연기의 기술이 아니라 그간 한석규가 고수해온 연기의 철학, 방법론을 통한 내공이 여실히 드러나는, 그에게 마침맞은 캐릭터다.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 “독을 마신 기분”이 들었다는 그에게 <우상>의 쓴맛을 넘기며 생각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우상>의 어떤 점이 마음을 끌었나.
=뭔가 쑤셔대는 영화였다. 이수진 감독의 전작 <한공주>(2013)를 보고 너무 힘들지 않았나. <우상>은 거기서 더 나간 것 같다. 쓰디쓴 독! 넘
<우상> 한석규 - 독을 마시다
-
“내 우상은 한석규 배우였다. 아마 많은 배우들도 그랬을 테다.” 설경구의 찬사가 한석규에겐 영 부담스럽다. 한석규가 설경구의 말을 받아, ‘선배’라는 호칭을 쓰려 하자, 설경구는 또 “아니 왜 이러세요 선배님”이라며, 극구 사양한다. 애써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건 후배 배우 천우희의 몫이다. “독이 든 쓴 잔”을 마시는 것 같이, 이보다 더 쎌 수 없을 정도로 얼얼한, 이 시대를 그린 <우상>은 세 배우 모두에게 도전이었을테다. 연기에 대해서라면 한치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배우들의 진검승부. <우상>은 그래서 더없이 뜨거운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한공주>를 연출한 이수진 감독이 구상부터 무려 13년간 매달려온 프로젝트. 아들의 교통사고 은폐에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남자 구명회(한석규)와 그 사고로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이면의 진실을 좇는 아버지 중식(설경구), 그리고 사건 당일 자취를 감춘 며느리
<우상> 한석규·설경구·천우희 - 끝까지 몰아 붙인다
-
“생전 처음 위염에 걸렸다. (웃음)” 이준규 프로듀서는 영화 <사바하>를 찍으면서 마음고생이 많았다. 제작실장으로 참여한 <베테랑>이나 라인 프로듀서로 작업한 <군함도>도 <사바하>에 비할 바가 못 된다니 프로듀서 입봉작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부담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걱정의 팔할은 춥디추운 겨울 날씨와 전체 일정의 80%에 달하는 로케이션 촬영이었다. 그는 “80여회차 안에 모든 장면을 찍기 위해” 매일 새벽 3시, 5시, 7시에 일어나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날씨가 안 좋은 날에는 어떻게 할지 만반의 준비를 했다. “사슴동산의 본거지인 녹야원 시퀀스는 설정이 원래 푸른 숲이었다가 설산으로 바뀌었다. 마침 일정이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2월로 접어들면서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녹야원을 찍을 때 2천만원을 들여 인공 눈을 뿌렸다.”
날씨만큼이나 이 프로듀서를 애태운 건 로케이션 헌팅이었다. 로케이션 촬영 분량이 워낙 많다보니 공식적인
<사바하> 이준규 프로듀서 - 모두가 즐거운 현장을 만든다
-
그 사회의 분위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는 존재들이 있는데, 특히 배우 김서형은 흥미로운 지표다. 그와 관련한 기사에 심심찮게 보이는 “할리우드에서 태어났으면 더 활약했을 것”이라는 네티즌의 반응은 그럴싸한 추정이다. 과거 한국 미디어가 고분고분하고 소극적인 여성상에 호감을 보일수록, 주도권을 쥐는 쪽이 어울리는 그는 드라마 조연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기점으로 쉽게 굽히지 않는 그의 단단한 이미지가 ‘카리스마 있는 악인’ 역할에 자주 소환되기도 했었다. 최근 KBS2 <연예가중계>와 가진 인터뷰에서 “<아내의 유혹> 이후 나도 이제 주연을 하고 광고를 찍을까 생각했지만 3개월 동안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SKY 캐슬>이 이렇게 분위기를 타고 있지만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그냥 생각을 안 하고 싶다”고 고백한 것 역시 강한 여성을 향한 세간의 편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작품 안팎에서 할 말은 정확히 하고 자
<SKY 캐슬> 배우 김서형, "난 배우로서 매력이 있다"
-
엽위신 감독과 배우 견자단이 3편까지 끌고 온 <엽문> 시리즈가 외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연출은 <매트릭스>(1999), <와호장룡>(2000), <킬 빌>(2003)로 할리우드까지 접수한 홍콩의 전설적인 무술감독이자 영화감독 원화평이 맡았다. <엽문3: 최후의 대결>(2015)에 무술감독으로 참여했던 원화평은 <엽문 외전>에서도 액션 거장의 여유를 뽐낸다. <엽문 외전>은 3편에서 영춘권의 전통 계승자를 자처하며 엽문(견자단)에게 도전했던 장천지(장진)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엽문에게 패한 뒤 무술계를 떠나 아들과 평범하게 살려고 했던 장천지가 홍콩의 갱단과 얽히면서 다시 무술인의 도리를 다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엽문 외전>에서 견자단의 자리를 대신하는 건 <라이즈 오브 더 레전드: 황비홍>(2014), <살파랑2: 운명의 시간>(2015), <더 브링크>
<엽문 외전> 원화평 감독, 배우 장진 - 홍콩 액션영화라는 예술
-
아득한 꿈과 빈곤한 현실은 청춘을 대변하는 불변의 키워드지만, 최창환 감독이 전태일재단의 지원을 받아 노동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 <내가 사는 세상>은 최근 몇년간 더욱 심화된 한국 청년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보다 집요하게 비춘다. DJ가 되기 위해 낮에는 퀵서비스 배달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민규(곽민규)가 원하는 건 정당하게 근로계약서 쓰고 일하고, 오랜 연인 시은(김시은)과 안정된 삶을 사는 평범한 권리지만, 그의 바람은 멀고 요원하게만 보인다. 건국대 영화예술학과를 졸업하고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거친 배우 곽민규는 그동안 방황하고 흔들리는 청춘의 표상을 유독 자주 연기해왔다. <내가 사는 세상> 이후 “내 주변에 있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더 자주 눈에 들어온다”는 그에게 첫 장편영화로 얻은 것에 대해 물었다.
-<내가 사는 세상>은 최창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캐스팅 과정에서 어떻게 만났나.
=주연으로 참여한
<내가 사는 세상> 곽민규 - 청년의 초상
-
일본영화를 전문으로 수입하는 영화 수입사 미디어캐슬이 극장 씨네Q와 손잡고 전용관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사가 수입해 보유 중인 여러편의 일본영화를 ‘먼데이캐슬’이라는 전용관에서 상시 상영할 계획을 세운 것. 강상욱 미디어캐슬 이사는 이에 대해 <너의 이름은.>이 37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한 이후 “부채의식 같은 게 생겼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계속 영화 수입을 하려면 <너의 이름은.>에서 거둔 수익은 재투자하는 게 맞다는 회사의 판단 아래” 고정 관객층을 위한 전용관을 꾸리게 된 것이라고. 현재의 방식은 엄밀히 말하면 기획전 형태지만 “전용관 준비가 너무 오래 걸리니 회사간의 피로도를 줄일 겸” 당분간은 매주 월요일에 6편의 영화를 큐레이션하는 형태로 운영한다. 다행히 현재 객석점유율이 좋아서 고무적이다.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상시 상영이 중요하다. 전용관 사업이 자리 잡으면 향후 이와이 지 감독 기획전이나 <고질라> 시리즈 전작전도 열고
수입사 미디어캐슬 강상욱 이사, “나는 재미있는 일본영화를 수입하는 사람”
-
*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작 <검은 사제들>(2015) 같은 영화를 기대하고 <사바하>를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더라.” 장재현 감독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검은 사제들>이 구마(驅魔)의식이라는 낯선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내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은 만큼 자신의 두 번째 영화인 <사바하>에 거는 기대가 많은 현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만큼 부담감도 크다는 사실을 넌지시 내비쳤다. 2월 20일 개봉하는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 <사바하>는 신흥종교의 비리를 파헤치는 종교문제연구소 소장 박 목사(이정재)가 요셉(이다윗), 해안스님(진선규)의 도움을 받아 사슴동산이라는 불교 계열의 신흥종교를 조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다. 미스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서스펜스를 차곡차곡 구축하는 까닭에 관객을 붙드는 힘이 있다. 종교 ‘오덕’ 감독답게 이야기 곳곳에 불교, 무속신앙, 심지어 기독교 세계관
<사바하> 장재현 감독, "정보는 짧게, 감정은 길게, 중요한 정보는 두번씩 반복했다"
-
애니메이션 <옷코는 초등학생 사장님!>은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12살 소녀 옷코가 할머니와 함께 전통 료칸을 운영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등 스튜디오 지브리의 수많은 작품에 원화 및 작화 감독으로 참여한 고사카 기타로 감독이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2003) 이후 15년 만에 만든 두 번째 연출작이 <옷코는 초등학생 사장님!>이다. 영화 속 옷코처럼 “손님에게 정성스레 차를 내어주는 마음으로, 다도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고사카 기타로 감독을 만났다.
-일본에서 20주 연속 장기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에서도 이 정도 장기상영은 이례적인 일로 안다.
=SNS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15년 전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 때만 해도 SNS를 통한 입소문이
<옷코는 초등학생 사장님!> 고사카 기타로 감독, “배려하고 주변에 영향받으며 성장하는 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