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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이름은 장미>는 딸 현아(채수빈)를 헌신적으로 키워온 엄마 장미에 관한 영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 장미가 겪었던 굵직한 사건들이 거의 10년 단위로 펼쳐지기에 상황에 맞는 여러 시대를 미술로 재현해야 했다. 덕분에 신유진 미술감독은 “일반적인 제작과정에서는 보통 몇 회차 진행하는 헤드스탭 회의를 15번 넘게 가질 정도로” 어느 때보다 더 꼼꼼하게 준비했다. 특히 “생활감을 보여주되 성격상 활발하고 강한 장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공간이길 원했다고. 극중 젊은 시절의 장미(하연수)는 낮에는 미싱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클럽은 “장미의 꿈이 담긴 곳”이기에 “경쾌하고 밝은 색감”을 부여했다. 동시에 “1970년대에 흔히 쓰이던 굴곡이 있고 무늬가 들어간 타일 하나하나도 고증을 거쳤다”. 어린 현아와 장미가 살던 단칸방 역시 1980년대의 공간감을 살리기 위해서 “실제로 한달 간격으로 방을 빌려주던 여관의 방문을 떼어” 오기도 했고, 여관
<그대 이름은 장미> 신유진 미술감독 - 80년대 생활감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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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열린 ‘용필름의 밤’ 행사에서 임승용 용필름 대표는 “성질 더러운 제작자를 만나 이해영 감독이 고생하셨고, 이충현 감독은 앞으로 고생하고, 이계벽 감독은 이제 시작이니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해영 감독의 <독전>을 개봉시켜 흥행에 성공했고, <럭키>를 연출한 이계벽 감독의 신작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촬영을 마쳤으며, 신예 이충현 감독의 장편 상업영화 입봉작 <콜> 크랭크인을 눈앞에 둔 자신과 용필름의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 인사말이었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새침하며, 심지어 소심해 보일 때도 많지만 지난해 함께 작업한 동료에게 감사를 잊지 않고, 올해 손발을 맞출 동료에게는 잘하자고 부탁하는 마음을 쑥스럽지만 직설적으로 전달한 그만의 화법이다. 꽃 피는 봄이 오면 <표적>부터 <독전>까지 용필름이 제작한 모든 영화가 세상의 빛을 본 서울 상수동 시대를 마무리하고, 성수동 시대를 여는 임승용
임승용 용필름 대표, "기획이란 내가 좋아하는 걸 남도 좋아하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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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러 올라가보자. 쓰마부키 사토시에게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의 츠네오가 보여준 그 찬란한 웃음을 거둔다는 것. 그건 그렇게 단순한 변신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청춘의 아이콘’으로 굳건한 자리를 내주고 새로운 장을 맞으려는 시도 이후 사토시는 <악인>(2010)과 <분노>(2016) 등에서 보여준 자신의 ‘반전’을 통해 성공적으로 그 가능성을 입증해냈다.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은 그 궤도에 오른 쓰마부키 사토시 연기의 활용편이다. 일가족 살인사건의 전말을 캐기 위해 나서는 주간지 기자 그리고 한편으로는 욕망의 희생양이 된 여동생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오빠. 두 얼굴의 급격한 변화가 아닌, 미동 없는 냉소적인 표정 하나만으로 쓰마부키는 주인공 다나카가 가진 두 가지 내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공식적으로 9년 만의 한국 방문인 쓰마부키 사토시를 단독 인터뷰했다. “부러 더 했다”는 구레나룻보다 쓰마부키의 변화를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 배우 쓰마부키 사토시 - 청춘의 얼굴에서 복잡한 내면까지 연기하는 배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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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다 마모루의 작품 세계를 크게 두 갈래로 분류했을 때, 분기점은 아마 두 가족의 충돌을 다룬 <썸머 워즈>(2009)가 될 것이다. 결혼 이후 사적 경험을 영화에 적극 반영하기 시작한 그는 <늑대아이>(2012)에서 어머니가 죽은 이후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괴물의 아이>(2015)에서 자식을 얻은 후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4살 아들이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부모의 관심이 동생에게 쏠리자 한껏 질투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미래의 미라이>는 아예 자녀들을 실제 프로덕션 과정에 참여시켰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한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는 협소해지기는커녕 전보다 더 보편성을 획득하며 전세계로 뿌리내리는 중이다. 4살 꼬마 쿤(가미시라이시 모카)이 첫눈 오던 날 집에 갓 입성한 동생 미라이(구로키 하루)의 중학생 모습과 조우한다는 설정은 소박해 보이는 세팅으로 인생의 순환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은유하며, <미래의
<미래의 미라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 - 경험의 확장,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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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상처가 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속이 터져버릴 것 같아도 행여 오해받을까 무서워 함부로 털어놓기 쉽지 않다. 그럴 때 비밀을 공유할 친구가 한명쯤은 필요하다. <범블비>의 메모(조지 렌드보그 주니어)는 비밀을 나누기 딱 좋은 이성 친구다. 이웃집 소녀 찰리(헤일리 스테인펠드)를 남몰래 좋아하지만 부끄럼이 많아 엄두도 못 내고 있던 메모는 고백을 하러 간 자리에서 찰리와 함께 있는 변신 로봇 범블비를 만나고 그 순간부터 찰리의 비밀 친구가 된다. 이상적인 비밀 친구가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할수록 좋고 필요한 순간 적재적소에 나타나는 능력도 필요하다. 메모 역의 조지 렌드보그 주니어는 거의 완벽하게 속 깊은 이성 친구 역할을 수행한다. “가장 밝은 별은 가장 어두운 순간에 빛난다”는 다소 진부할 수 있는 메모의 격려가 빛을 발하는 건 절반 정도는 조지 렌드보그 주니어 덕분이다. 해맑은 얼굴로 건네는 사심 없는
<범블비> 조지 렌드보그 주니어 - 속 깊은 이성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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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루 성우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에서 중학생 미라이와 아기 미라이 목소리를 연기했다. <미래의 미라이>가 한국에서 처음 공개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선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수행 통역도 맡았다. 김하루 성우의 일본어 실력을 안 수입사에서 수행 통역까지 제안했다. 놀라운 건 극장 개봉 영화의 더빙도, 수행 통역도 모두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첫 극장 개봉 영화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이라니!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를 처음 보고 ‘이 영화 정말 좋다’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좋은 기회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 것 같다. (웃음)” 마침 미라이의 목소리를 연기한 일본 배우 구로키 하루와 이름이 같은 재밌는 우연도 겹쳤다. “우연을 인연으로” 만든 건 김하루 성우의 노력이다. 일본어 공부도 성우 일에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했고, 미라이 역도 물론 오디션을 통해 따냈다.
중학생 미라이의 목소리는 어린 쿤의 목소리와
<미래의 미라이> 김하루 성우 - 꾸밈없는 목소리로 감정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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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엄유나라는 이름이 영화계에 갑자기 툭 등장했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첫 시나리오인 <택시운전사>(2017)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던 당시 그가 이미 감독 데뷔작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역사적 사건에 발을 들인 소시민의 각성을 다룬 <말모이>는 <택시운전사>와 플롯이 유사하고 엄유나 감독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두 영화가 비슷하다고 의식적으로 피해가려고 하면 이야기가 가야 할 방향을 주저하게 됐다. 그래서 <택시운전사>와 비슷할 수 있다는 고민은 오히려 배제했다.” 하지만 두 작품의 교집합으로 이 신인감독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일각만을 조명한 지극히 단순한 접근이다. 수학을 좋아하는 이과생이던 그는 “할리우드 오락영화부터 B급영화, 고전영화, 다소 어려운 영화까지” 섭렵하는 영화광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동국대학교 영화과에 진학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글을 쓴 세월만 10년이란다. “자주 보는 건 <다이하드> &
<말모이> 엄유나 감독, "보잘것없는 사람의 귀함이 드러나는 과정을 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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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cm 장신의 건장한 체격 덕분인지 케빈 듀랜드는 육체적 위용을 과시하는 장르영화의 일원으로 자주 호출된 배우다. 1999년에 <오스틴 파워>의 단역을 맡으며 영화 데뷔를 이뤘을 때, 크레딧에 기재된 그의 이름은 ‘암살자’였다. TV시리즈를 포함해 출연작이 73편에 달하는 이 베테랑 배우는 김병우 감독의 신작 <PMC: 더 벙커>에서도 여전히 타입 캐스팅의 성공적인 결과물을 선보인다. 불법 체류자들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결성된 글로벌 군사기업(PMC) 블랙리저드의 일원인 마쿠스(케빈 듀랜드)는 수장 에이햅(하정우)과 함께 팀의 핵심 멤버다. 민첩하고 이해관계에 밝은 터라 상황이 불리해지자 빠르게 새 판 짜기에 돌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안타고니스트의 전형에 가까운 인물일지 몰라도 케빈 듀랜드의 존재는 익숙한 할리우드의 용병이 DMZ 지하 벙커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양새를 만들며 색다른 묘미를 갖춘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인 듀랜드는 10대 시절에 래퍼와 코
<PMC: 더 벙커> 케빈 듀랜드 - 보여줄 것이 더 많은 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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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애니메이션 시장에서 공룡은 언제나 통하는 치트키라고 한다. 절반은 맞는 이야기다. 공룡 관련 콘텐츠는 인기가 많은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게다가 단발 흥행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공룡 콘텐츠는 그리 많지 않다. 2012년 개봉한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은 105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장편 창작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 2위에 올랐다. 누군가는 치트키가 제대로 먹혔다고 쉽게 말하지만 <점박이> 시리즈는 좀더 깊게 들여다봐야 할 프로젝트다. 2008년 EBS의 3부작 TV애니메이션으로 시작된 <점박이>는 이후 30개국에 수출되고 관련 출판물이 100만부 이상 팔리는 등 성공적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하지만 교육용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던 만큼 한계도 명확했던 게 사실이다. 이에 <점박이>의 아버지 한상호 감독은 5년 만에 신작 극장판 애니메이션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2: 새로운 낙원>(이하 <점박이2&g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2: 새로운 낙원> 한상호 감독, “점박이는 아이들만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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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키즈>에서 로기수(도경수)는 인민군 동료 만철(이규성)의 손에 이끌려 미군 창고에 갔다가 탭댄스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로기수 옆에서 때론 형처럼 때론 쾌활한 친구처럼 목소리를 높이지만 속으로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는 인물이 만철이다. 만철을 연기한 이규성은 <스윙키즈>로 영화에 데뷔한 신인이다. <스윙키즈>의 단역으로 캐스팅됐다가 만철 역까지 꿰차게 된 사연을 들어보면 영락없는 노력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주어진다는 말을 스스로 증명한 이규성을 만났다.
-<스윙키즈>가 첫 영화, 첫 오디션이었다고. 만철 역에 캐스팅된 과정이 평범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처음엔 만철이 아니라 로기수의 팬으로 출연하는 단역으로 캐스팅됐다. 한동안 로기수의 팬 역할을 준비하면서 엑소의 노래도 듣고 도경수의 사진도 열심히 찾아 봤다. 문득문득 경수의 얼굴이 생각날 정도로 팬이 된 기분이었는데, 이후 <스윙키즈>의 시나리오를
<스윙키즈> 이규성 - 온전히 노력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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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보다 잎사귀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 <말모이>에서 윤계상이 연기한 정환은 조선어학회 대표로, 주시경 선생이 남긴 원고를 가지고 사전을 만들기 위해 우리말, 우리글을 모으는 ‘말모이’를 이끌어가는 역할이다. 말과 글은 그 나라와 민족의 얼이고,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랑하는 일이 우리나라의 얼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자칫 잘못하면 전형적인 캐릭터로 비칠 수 있는데 윤계상은 정환 역에 어떻게 고민하고 접근했을까.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땠나.
=이 영화는 전작 <범죄도시>(2017)가 끝난 뒤, 밝은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만한 작품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만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사람들이 조선어학회를 만들어 전국의 우리말을 모았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고 따뜻했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지 궁금했고, 그래서 하고 싶었다. 또, (유)해진 형이 하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를 듣고 해진
<말모이> 윤계상 - 강렬함에서 진중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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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는 모처럼 유해진이 영화의 배경을 채우는 쪽이 아니라 온전히 극의 무게중심을 가져가는 작품이다. 그가 연기하는 극장 기도 김판수는 교도소에 들락날락할 만큼 사고를 허다하게 치지만,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월사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선어학회에 들어갔다가 한글의 매력에 눈을 뜬다. 기본적으로 <택시운전사>(2017) 등에서 보여준 ‘소시민의 각성’ 플롯과 유사하지만, 유해진은 익숙하다고 생각한 이야기에 엣지를 만드는 베테랑이다. 확실한 웃음을 주고 노련하게 관객을 울리는 <말모이>의 유해진을 보고 있자면 조만간 영화상 시상식의 남우주연상 후보로 만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정도인데, 여전히 그는 치열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택시운전사> 제작사인 더 램프와 다시 만났다. 당시 시나리오를 썼던 엄유나 작가는 <말모이>로 감독 데뷔를 했다.
=으레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 엄유나 감독이 날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
<말모이> 유해진 - 아버지로서 성장한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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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우리 둘 다 약간 풋풋한 겉절이 같았다. 지금은 좀 숙성된 김치 같달까.” 유해진의 말처럼, <소수의견>(2015) 이후 유해진과 윤계상이 다시 만난 <말모이>는 두 배우 모두의 진화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일제가 조선어 말살 정책을 펼치던 1940년대, 정환(윤계상)이 이끄는 조선어학회는 <조선말 큰사전>을 만들기 위해 전국 각지의 말을 모으고, 판수(유해진)는 아들의 월사금을 마련하기 위해 얼떨결에 역사적인 현장에 합류한다. 두 배우가 한번 더 만나면 “우거지가 될 것”이라는 농담을 던졌지만 “숙성됨은 연기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유해진의 말에는 뼈가 있다. <범죄도시>(2017) 속 장첸의 잔상을 완벽히 지워낸 윤계상,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바지런하게 연기하며 영화를 채운 유해진을 만났다.
<말모이> 유해진·윤계상 - 숙성시킨 연기의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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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우 감독의 <PMC: 더 벙커>는 시나리오만 읽어서는 도대체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건이 전개되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이야기다. 그것은 3년 전 처음 초고를 접하던 순간의 최원기 PD도 마찬가지였다. <옥자>의 콘티를 그렸던 조성환 작가와 김병우 감독이 상의해 그린 1차 콘티를 바탕으로 최원기 PD는 현실적인 분위기의 구현을 고민했다. 가장 큰 숙제는 ‘미술’이었다. 공간의 세계관, 즉 “사람들의 동선이 말이 되는 게 중요했다”. 김병우 감독은 조립 블록 레고를 가지고 지하 땅굴 기반의 회담장과 남북한의 숙소 등 주요 공간 구조를 직접 만들어 설명해주기도 했다고. 한국영화지만 대부분 외국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현장의 분위기도 독특했다. 할리우드배우조합의 까다로운 조항에 대한 소문을 접한 터라 겁을 먹었지만, “그들 역시 영화배우다. 왜 자신이 움직여야 하는 지 당위성을 납득시켜주면 모두 협조적으로 잘 따라줬다”. 김병우 감독이 남한 땅까지 흘러들어
<PMC: 더 벙커> 최원기 프로듀서 -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방향을 끝까지 이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