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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라면 종을 막론하고 질색하던 국정원 요원 주태주(이성민)는 임무 도중 가벼운 뇌진탕을 겪은 후 살아 있는 온갖 동물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한국을 방문한 판다(목소리 출연 유인나) 특사를 지키기 위해 군견 알리(목소리 출연 신하균)와 콤비플레이를 펼치는 그는, 여러 동물들의 아우성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딸에게 점점 더 좋은 아버지가 되어간다. <미스터 주: 사라진 VIP>(이하 <미스터 주>)는 말하는 동물과 인간이 부대끼며 사건·사고를 탐험하는 가족 판타지 드라마다. 몇몇 사랑받는 북미 프랜차이즈들이 떠오르지만 한국에서는 그 계보를 찾기 힘든 장르인데,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감독의 이름 또한 의외라 더욱 흥미롭다. <또 하나의 약속>(2013), <재심>(2016) 등 굵직한 실화에 기반한 영화를 만들었던 김태윤 감독에게 그 변신의 과정을 물었다.
-<또 하나의 약속>으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태를, <재
<미스터 주: 사라진 VIP> 김태윤 감독 - 장르적 외연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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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뀐 첫달에 벌써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올해의 독립영화를 만났다고. 지난해 무주산골영화제 뉴비전상(대상)과 영화평론가상, 서울독립영화제 독불장군상을 수상한 <작은 빛> 이야기다. 조민재 감독의 자전적 요소를 반영한 영화는, 한 남자를 둘러싼 남루한 삶의 표면을 뚫고 들어가 그 안에 저마다의 오롯한 빛과 생명력이 있으리라고 나지막이 읊조린다. 기술공인 주인공 진무(곽진무)는 뇌수술을 앞두고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판정을 받는다. 남자는 그길로 캠코더를 들고 가족들을 찾아다닌다. 가족의 얼굴과 생활공간이 기록되고, 한때의 꿈과 추억이 구술되는 과정에서 이들 가족을 내내 괴롭히는 것은 죽은 아버지의 자취다. 끈끈히 대물림되는 가난과 가정폭력의 진실을 마주하는 동안, 놀랍게도 진무의 카메라는 고통에 질식한 기억을 소생시키고, 가족을 연결하고, 진무 자신이 삶과 화해하도록 이끈다. 카메라의 윤리와 자전성, 배우의 연기에 이르기까지 홀로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하며 데뷔작
<작은 빛> 조민재 감독 - 영화가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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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과 함께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한국영화가 또 있다. 이승준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이 지난 1월 13일 아카데미상 단편다큐멘터리 부문 후보 다섯편 중 하나로 올랐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이 작품은 그 흔한 내레이션과 음악에도 기대지 않고, 2014년 4월 16일 바다에서 벌어졌던 일을 인터뷰와 자막만으로 담담하게 펼쳐낸다. <달팽이의 별>(2012), <달에 부는 바람>(2014) 등 여러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이승준 감독은 미국 비영리 온라인 다큐멘터리 제작·배급 단체인 ‘필드 오브 비전’과 함께 제작을 진행했고, <뉴요커>가 지난해 4월 이 영화를 유튜브에 올려 현재 240만명이 넘게 보았다. 이승준 감독은 “기쁜 일은 맞지만 세월호 사건이 소재다보니 마음이 복잡미묘하다. 그렇지만 세월호 사건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소감을 밝혔다.
-후보로 올랐
<부재의 기억> 이승준 감독 - 고통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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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때 기억난다, 다 기억나.” 스튜디오에 들어오자마자 권상우는 벽에 붙은 자신의 앳된 시절 사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18년 전, 공효진, 박해일, 조승우, 신민아, 류승범과 함께 ‘한국영화 밝힌 새벽의 7인’에 포함돼 찍은 사진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장혁, 소지섭, 송승헌을 선의의 경쟁으로 이겨보고 싶다”고 말했던 그의 자신감과 당당함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다. 풋풋한 청춘배우였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아저씨 배우라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1월 22일 개봉하는 <히트맨>에서 그가 연기한 주인공 준은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해 국정원을 탈출하는 국정원 암살 요원이다.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는 설정의 이 이야기는 최근 권상우가 보여준 이미지에 적극 기대는 작품이다. 아내에게 구박받으면서 육아를 하는 애잔한 가장(<탐정> 시리즈>)이거나 대역도 마다하고 직접 선보이는 정통 액션 스타(<신의 한수: 귀수편>)이거나. 개봉을 앞두고 그를 만나 &l
<히트맨> 권상우 - 작품 고민은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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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ILM 싱가포르 지사 소속 시니어 모델러 마이크 홍(한글 이름 홍성준)이 참여한 첫 번째 <스타워즈> 작품이다. ILM은 1975년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를 만들기 위해 설립한 특수시각효과(VFX) 회사다. “회사를 옮긴 가장 큰 이유는 <스타워즈>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2019년 ILM으로 이직하기 전 마이크 홍은 소니 이미지웍스에서 일했다. <스타워즈>의 광팬까지는 아니지만 시리즈가 개봉하면 빠짐없이 챙겨 보는 “보통의 팬”으로서, 더불어 VFX 업계에서 일하는 한명의 영화인으로서 “<스타워즈>의 작업은 중량감이 달랐다”. “다른 작업 땐 엔딩크레딧에서 이름을 확인해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이번엔 감회가 새롭더라.” 아쉽게도 ILM의 경우 슈퍼바이저급을 제외한 일반 아티스트는 분야와 직급 상관없이 ‘디지털 아티스트’ 분야에 200여명의 이름이 한꺼번에 들어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시니어 모델러 마이크 홍 - 상상을 구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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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동 나우필름·파인하우스필름 대표가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의 새 집행위원장으로 위촉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영화계에서는 이상할 게 없다는 반응과 의아하다는 반응이 함께 나왔다.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영화나눔협동조합 이사장 등을 거쳤던 그가 영화제에서 공직을 맡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이나, 지금 시점에서 전주영화제의 수장이 되는 건 너무 많은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김영진 전 수석프로그래머, 이상용·장병원 전 프로그래머가 7년간 몸담았던 전주영화제를 떠나면서 영화제의 자율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바 있고, 새로 부임한 집행위원장은 이들의 빈자리를 메울 새 인력을 찾는 것은 물론 명확한 비전까지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린 이준동 전주영화제 신임 집행위원장을 만나 왜 이 자리를 수락했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영화 제작자로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여러 편인 그에게, 이창동 감독의 신작을 비롯한 차기
이준동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질문하는 영화’를 위한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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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손재곤 감독이 동물 탈을 뒤집어쓴 채 돌아왔다. <이층의 악당>(2010) 이후 10년 만에 신작 <해치지 않아>로 돌아온 그의 가장 큰 변화는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니라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시나리오작가 출신으로 그가 연출했던 이전 두편의 영화는 당시 한국의 장르영화로서는 신선한 시도를 했던 작품들이다. 동물 탈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동물 행세를 하며 동물원을 개장해 사람들을 속인다는 내용은 설정 자체만으로 황당한 코미디의 상황을 만들지만 그 안에서 소위 손재곤식 비틀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해치지 않아>는 제목 그대로 무해한 이야기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극중 인물과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 모두의 마음이 절대 다치지 않길 바라는 영화랄까. 까칠한 태도로 독설을 내뿜는 냉소적인 캐릭터의 묘를 발견해왔던 손재곤 감독의 영화 세계에 새바람이 부는 것일까. 그 안에서 우리가 발견할
<해치지 않아> 손재곤 감독 - 코미디에 이식된 현실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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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단 하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고양이로 선택받기 위한 경연을 담은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화한 톰 후퍼 감독의 <캣츠>는 개봉 이후 여러 이슈와 엇갈린 반응을 낳고 있다. 하지만 빅토리아 역을 소화한 프란체스카 헤이워드의 발견에 대해서는 영화의 호불호와 별개로 이견이 없는 듯하다. 주인에게 버림받았으나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고양이 빅토리아를 연기한 그녀는 유려한 퍼포먼스와 안정적인 연기로 영화 전반을 이끌며 고양이 세상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발레 공연과 달리) 영화는 모든 장면이 시간순으로 촬영되지 않기 때문에 내 캐릭터에 조금 더 집중하고 깊이 있게 파고들어야 했다”라며 영화 촬영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도 했던 그녀는 배우들과 함께 고양이 행동 전문가에게 수업을 받고,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사이먼을 오랜 시간 관찰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케냐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를 둔 프란체스카 헤이워드는 1992년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태어났다. 이후 조부모와
<캣츠> 프란체스카 헤이워드 - 연기하는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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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의 곽상천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당시 경호실장 차지철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박통에 충성을 다했던 행동대장이며, 10·26 사태의 현장에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진 대통령의 경호실장. <마약왕>에서 이두삼(송강호)의 마약 유통을 돕는 최진필로 우민호 감독과 손발을 맞췄던 이희준은 <남산의 부장들>에서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권력의 2인자 곽상천을 통해 특별한 변신을 보여준다. 지금껏 시도한 적 없는 체중 증량과 직설적 연기로 우악스러운 육식동물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희준은 <남산의 부장들>에서 변신이 가장 기대되는 배우다.
-심장을 뛰게 만드는 시나리오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남산의 부장들>이 그랬다고.
=너무 심장이 뛰어서 시나리오 읽다가 물 마시며 목을 축였다.(웃음) 끈기와 집중력이 부족한 편이라 대본을 한번에 다 읽은 적이 별로 없는데 이건 한번에 다 읽었다. <미
<남산의 부장들> 이희준 - 직선적으로, 심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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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도원은 활화산 같은 배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은근한 존재감으로 상대를 위압하고, 감정을 폭발시킨다 싶으면 순식간에 주변을 에너지로 뒤덮는다. 하지만 배우로서 그의 진가는 눈을 뗄 수 없는 존재감이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과 반성에 있다. 당장의 성과와 상찬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를 과신하는 일도 없이, 그는 오늘도 연기라는 전장을 향해 나아간다.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 역을 맡았다.
=이병헌 배우가 한다고 해서 일단 시나리오를 달라고 했다. (웃음) 대사가 살아 있고 이야기도 박진감이 넘쳐서 앉은자리에서 한번에 읽었다. 예전에 <남산의 부장들> 책도 봤었는데 논픽션의 방대한 이야기를 시나리오에서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풀어낸 점이 인상 깊었다. 실화보다 훨씬 재미있고 사실적이고 공감이 가는 측면도 있었다. 처음부터 박용각 역으로 캐스팅 제안을 받았는데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나 역시 제일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박용각이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합류를 결정했다.
<남산의 부장들> 곽도원 - 연기라는 전장에서 몸부림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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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은 이병헌의 생경한 목소리, 핏줄이 바짝 선 이마를 만날 수 있는 영화다. 머리카락 한올 내려오는 것도 용납하지 않던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은 자신이 따르던 ‘박통’(이성민)이 그의 기준에서 그릇된 선택을 이어가자 평정심을 잃어가고, 김규평을 연기한 이병헌 역시 전에 없던 얼굴을 보여준다. 워낙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에 별다른 사전 정보가 없어도 그가 연기한 김규평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그가 총으로 쏜 박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것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왜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이병헌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으로 미스터리한 부분은 영화를 본 후에도 미스터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배우다. 늘 흐트러짐 없는 연기로 기어코 관객을 설득해내는 그를 만나, 한국사의 흐름 자체를 뒤집은 인물을 연기한 심경을 들었다.
-우민호 감독과는 언제쯤부터 이야기를 나눴나.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드라마 <미스터
<남산의 부장들> 이병헌 - 극한의 감정, 극한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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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2015), <마약왕>(2017)을 만든 우민호 감독의 신작 <남산의 부장들>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10·26 사건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영화는 10·26 사건 발생 이전 40일의 시간을 따라가며 박 대통령과 2인자들의 관계를 보여준다.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 미국으로 도피한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 대통령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은 영화 내내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며 대립각을 세운다. 그리고 이병헌, 곽도원, 이희준 세 배우는 영화 내내 연기로 진검승부를 치른다. 뜨겁고 날카롭고 묵직하게 시대의 공기와 인물의 심연을 그려낸 세 배우를 만났다.
<남산의 부장들> 이병헌·곽도원·이희준 - 연기의 진검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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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에 어두운 원장이 오로지 동물만 생각하면서 평생을 바쳐 일궈온 따뜻한 동물원일 것.” 손재곤 감독과 <이층의 악당> 이후 줄곧 함께해온 김현옥 미술감독은 <해치지 않아>의 메인 공간인 동산파크의 컨셉을 이렇게 소개했다. 김현옥 미술감독은 실제 한국에서 운영되는 동물원과 다르지 않도록 운영 형태를 똑같이 재현하려 노력했다. 미술팀을 이끌고 있지만 본인이 맡은 영화에서는 세트 제작도 함께하는 그가 가장 공들인 부분은 “세트 제작 공정을 동물원 제작 공정과 동일하게 도입해 만드는 것”이었다. 동물원의 기본 규격을 모두 지키는 한편, “동물원의 바위를 만들어내는 GRC 공정을 그대로 적용해” 동물 방사장을 지었다. 동산파크의 구조와 시설 분위기는 전국 6곳의 실제 동물원 모습을 조합해서 만들었다. 광릉수목원, 부산 삼정더파크, 경남수목원, 전주동물원, 청주동물원, 울산동물원에서 장소를 조합해 가상의 동산파크를 만들어냈다. 극의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고릴라, 북극곰
<해치지 않아> 김현옥 미술감독 - 동물의 특성을 닮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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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 번째 구름>은 <녹차의 중력>과 한몸인 동시에 전혀 다르다. <녹차의 중력>이 온전히 ‘임권택 감독’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백두 번째 구름>은 일종의 대화에 가깝다. <녹차의 중력>이 임권택에 대한 사랑을 담은 영화라면 <백두 번째 구름>은 영화 현장이 주인공인 영화다. 임권택에 대한 영화이자 영화 현장에 대한 기록. 무엇보다 이것은 ‘임권택이라는 영화’에 대한 정성일의 답변이다. 결정되지 않는 순간들이 영화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 끝에 영화가 되도록 허락하는 것. 아니 영화가 우리를 허락하는 걸까. 1235호 <녹차의 중력> 씨네인터뷰에 이어, <백두 번째 구름>을 향한 말들을 전한다.
-<녹차의 중력>의 마지막, 오랜 기다림 끝에 영화 <화장>의 고사가 진행되고 “이따금 바람이 불고 맑음”이란 자막과 함께 <희망가>가 울려퍼진다. 그리하여 드디어 &l
<백두 번째 구름> 정성일 감독 - 임권택 감독 영화 현장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