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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캡처링 대디>(2013)로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차기작 <행복 목욕탕>(2016)으로 제40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한 나카노 료타 감독이 또다시 가족 이야기로 돌아왔다. 나카지마 교코의 소설 <긴 이별>을 각색한 <조금씩, 천천히 안녕>은 아버지가 치매를 앓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그와의 이별을 준비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그 배경에는 대지진이 일어 모두가 숨죽여야 했고, 도쿄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며 다시금 열띤 기대감이 차올랐던 일본의 시간도 함께 흐른다. 세상과 호흡하며 가족의 역사는 씌어지고, 인물들은 가족 안에서 연결되다가도 홀로 싸워야 하는 순간들을 맞닥뜨린다. 나카노 료타 감독은 이번에도 인간이라는 존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넉넉한 마음을 한껏 발휘해 가족의 크고 작은 분투를 사려 깊게 기록했다. 그와 서면으로 나눈
'조금씩, 천천히 안녕' 나카노 료타 감독 - 기억은 잃어도, 마음은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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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희는 지금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이름이다. JTBC 역대 시청률 1위 기록을 경신하고 종영한 <부부의 세계>(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28.4%)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이른바 ‘내연녀’였지만, 시청자들은 캐릭터는 욕할지언정 배우에겐 애정을 표했고 한소희는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에 스타로 떠올랐다. 그가 연기한 <부부의 세계>의 다경 역시 납작한 표현으로 정의하기엔 훨씬 복잡한 면면으로 비혼·비출산 운동이 부상한 최근 분위기를 상기시킨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가부장제라는 비극을 담은 이 드라마에서, 아버지 여 회장(이경영)의 재력 덕에 자신의 욕망을 찾아갈 수 있는 다경의 결말은 매섭게 현실적이다. 지금 반드시 관찰하고 기록해야 할 이름 최상단에 위치할 배우 한소희를 만났다. 편하게 얘기하느라 인터뷰 내내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묻어나오는 모습까지 무척 매력적이었던 그와의 만남을 꼼꼼하게 옮겼다.
-<돈꽃>이나
[액트리스] '부부의 세계' 한소희 - 지금은 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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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속 세상에서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엑스트라로 살아가던 소년은 첫사랑을 만나 비로소 자아를 찾는다.‘13번’에서 하루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그는 묵묵히 페이지 한구석에서 도약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어쩌다 발견한 하루>). 배우로서의 로운도 그런 소년이었다. 2016년 SF9으로 데뷔해 다른 8명의 친구들과 함께 무대를 채워가는 동안, 그는 야구부의 까칠한 에이스 투수(<클릭 유어 하트>의 로운), 인기 없는 아이돌 그룹 멤버(<학교 2017>의 이슈), 누나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취업준비생(<멈추고 싶은 순간: 어바웃 타임>의 위진), 입사 동기를 짝사랑하는 인천공항 직원(<여우각시별>의 은섭)을 연기하며 조용히 그러나 성실히 자신만의 페이지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 끝에 로운은 지난 2019년 가을 방영된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 출연하며 누군가의 인생에서 엑스트라에 불과했을 시절을 지나 더 많은
'트롤: 월드투어' 목소리 연기한 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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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이 낯설어질 때 오는 긴장은 강력하다. 익숙함을 깨뜨리는 누군가가 친숙해야 할 가족이라면 당혹감은 보다 커지기 마련이다. <침입자>는 실종된 동생 유진(송지효)이 25년 만에 돌아오면서 가족들이 미묘하게 변해가자 신경이 점점 곤두서는 서진(김무열)의 시선을 따라간다. 박경원 프로듀서는 가까운 대상들이 낯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공간에 집중했다. 집이라는 편한 공간이 어떻게 불편해지는지를 그린 것이다. “카메라는 서진의 시점에서 움직이고, 공간은 유진에 의해 잠식되면서” 가구가 사라지고, 벽의 색이 달라지고, 조명이 조정된다. 박경원 프로듀서는 “분명 변했는데, 변한 것 같지 않은 느낌에서 오는 이질감”을 상상하며 내부를 유동적으로 꾸밀 수 있는 집안 세트를 꾸렸다. 그는 “조명팀, 미술팀, 소품팀이 특히 고생했다”며 “하루이틀 사이에 집안의 모든 것을 바꿔야 했던” 현장을 되새겼다. 후반부에 인물의 비밀이 벗겨지며 나오는 특별한 공간 또한 “예산 안에서 최대
<침입자> 박경원 프로듀서 - ‘유동적인’ 집의 느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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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레이크>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텐션을 밀어붙이는 호러영화다. 그만큼 배우들의 노련하고 집중력 있는 연기가 필요한 현장이었다. 연기 경력 도합 56년차에 이르는 이세영과 박지영은 작품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행동하는 베테랑들이다. 배우들은 평소 모습을 떠나 장르 연기에 필요한 긴장감을 유지했다고 입을 모아 전한다. “많은 분들이 알고있는 것처럼 원래 (이)세영이가 밝은 기운 그 자체이지만, 작품을 위해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촬영이 진행될 수 있도록 서로 도왔다.”(박지영) “표현은 굉장히 쿨한데 늘 배려와 정이 가득한 선배님이시다. 이번 작품은 어느 정도 마음의 거리를 뒀지만, 같은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한 에너지를 받았다.”(이세영) 그 결과 “모든 배우가 자발적으로 고독함을 선택했던” (박지영) <호텔 레이크>는 배우들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예민한 신경이 전해지는 공포물이 됐다. 작품을 준비하고 몸으로 직접 통과
'호텔 레이크' 이세영·박지영 - 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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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0주년 영화제 ‘시네광주 1980’ 개막작인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5·18 당시 광주의 상황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비밀리에 제작된 ‘광주 비디오’를 한데 모은 작품이다. <서산개척단>(2018)을 통해 박정희 정권 시절 납치돼 무임금으로 개척 사업에 동원된 피해자들을 조명했던 이조훈 감독이 직접 비디오 제작과 배포에 관여한 주역들을 만났다. 5월 19일 전세계 최초로 광주항쟁의 상황을 알린 <NHK> 기자, 독일 공영방송 의 도쿄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각종 뉴스 기록들을 재편집해 비디오로 제작한 뉴욕 한인들 등 기억해야 할 면면이 하나둘 교차되며 진실의 형상이 드러난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께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 발포가 이뤄진 역사를 질문한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네이버TV를 통해 온라인 상영 후 6월 11일 정식 극장 개봉할 예정이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 이조훈 감독 - 밝혀야 할 진실은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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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얼굴. 배우 안은진에 대한 호기심은 분위기를 쉽게 종잡을 수 없는 매력적인 첫인상부터 시작됐다. <라이프> <타인은 지옥이다> <킹덤> 시리즈, <검사내전> 등 출연하는 TV드라마가 잇따라 호평받으며 입소문과 신뢰도를 쌓아나간 안은진은, 올봄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존재감을 한뼘 더 키웠다. 20대부터 착실히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지난 2년간 쉴 틈 없이 TV드라마의 이력을 늘려온 그는 이제 “영화, 어떻게 해야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반짝이는 열성을 내비친다. 비갠 뒤, 유난히 맑은 5월 중순에 만난 이 배우의 화창한 미래를 전한다.
-오늘 의상은 본인이 직접 코디했다고. 어딘가 드라마의 연장선상 같은, 의사 선생님 분위기가 난다.
=하하, 옷을 잘 못 입는다고 놀림을 받는 편이니까 오늘은 신경 좀 써봤다.
-극중 추민하는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아미’인데 밀레니얼 세대 배우인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안은진 - 서른살의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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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아 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장의 휴대폰 연결음은 언니네이발관의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 하네’라는 노랫말이 유난히 귀에 박힌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다 함께 즐기기 어려워진 시대. 함께 영화 보고 함께 얘기 나누던 축제의 장인 영화제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움에 처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애초 3월 말 개최 예정이었으나 한 차례 일정을 연기해 5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열린다. 최민아 사무국장은 “인디다큐페스티발의 경우 영화제 취소가 아닌 연기를, 온라인 개최가 아닌 극장 상영을 유지하는 방향”을 세웠고,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대응하느라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매뉴얼을 만들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며 영화제 준비 상황을 전했다. 객석의 1/3 정도만 관객을 받는 객석 축소 운영, 오픈 채팅을 통해 이루어지는 관객과의 대화, 유튜브로 중계하는 포럼은 모두 올해 처음 시도하는
최민아 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장 - 영화제만 줄 수 있는 영화적 체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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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지면과 그 덕분에 맺을 수 있었던 수많은 인연. 그중에서 배우 배두나는 단연 <씨네21>이 지지하고 눈여겨본 독보적인 배우였다. 할리우드 배우, 천만 배우, 일본 아카데미상 수상자, 패셔니스타 등 그를 표현하는 수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가까이에서 본 그는 아침부터 김이 모락모락나는 식빵을 여러 덩이 구워와 표지 촬영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권하는 사려깊은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작품 속에서 그는 선입견 없이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주는 따뜻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학대당하는 소녀를 살뜰히 보살피는 경찰(<도희야>)이었고, 좀비 역병이란 난관 앞에서도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면 이 모든 악몽이 끝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의녀(드라마 <킹덤>)였으며, 살인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노년의 여성에게 자신의 옥탑방에서 함께 지내자고 제안하는 강력반 형사(드라마 <비밀의 숲>)였다. 그 자신도 “잘하는 게 진심을 보여주고 마
배두나 - 언제나 변화하기에 믿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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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수 감독은 올해 봄부터 블로그(kimeungsu.blogspot.com)로 자신의 신작 영화를 관객에게 직접 홍보·배급한다. 보고자 하는 영화의 이름과 주문자의 이름을 쓴 메일을 받으면, 이틀 내로 영화의 디지털 파일을 보내는 방식이다. 영화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온라인에서 직접 배급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배급 방식은 에세이영화, 시네마베리테, 경험영화의 영향 아래 있는 것 같지만 어느 장르에도 완벽히 속하지 않는 그의 영화 세계와 더 닮아 보인다. 5월에 공개한 신작 <모호한 욕망의 대상>과 <흔들리는 카메라>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했던 공무원 시험 준비생 전호식과 노 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식에 참석한 아들 노건호씨를 담은 영화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반성을 소박하게 얘기하는 대신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라보자”는 마음으로 만든 영화들이다. 극영화 <변호인>과 다큐멘터리 <노무
'모호한 욕망의 대상'과 '흔들리는 카메라' 김응수 감독, "노무현에서 조국까지, 역사는 반복되며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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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추가 언제부터 저렇게 매력적이었어?” 고등학교 동계 탤런트쇼에서 엘리 추가 자작곡을 연주하며 노래하자, 놀란 동료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며 환호한다. 엘리 역의 레아 루이스 말대로 “자신이 단지 남의 숙제를 대신해주는 소녀가 아님을 만인 앞에 드러내는” 장면이다. 해당 장면을 위해 두달간 기타 레슨을 받은 레아 루이스는 “틀에 박히지 않은 주인공”이란 점을 엘리의 매력으로 꼽는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에서 엘리는 처음 사랑을 느끼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용돈벌이를 위해 폴(대니얼 디머)의 연애편지를 대필하게 된 엘리는 애스터(알렉시스 러미어)와 속 깊은 고민들을 나누며 가까워지고 그로 인해 세 사람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다. 본래 활발한 성격의 레아 루이스는 차분한 엘리 추를 연기하며 그간 외면해온 자신의 조용한 성격까지 사랑하게됐다고 전한다.
4살 때부터 공연에 관심을 갖고 연기 레슨을 받은 레아 루이스는 <애니> <하이스
'반쪽의 이야기' 레아 루이스 - 언제부터 그렇게 매력적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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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현 감독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 크고, 좋은 의미로 집요한 사람이다. <사냥의 시간>을 작업하고 나서 영화를 대하는 자세가 나 역시 좀 달라졌다.” <사냥의 시간>의 이승엽 사운드 슈퍼바이저는 2000년 임상수 감독의 <눈물>로 영화 일을 시작했다. 영화 사운드 경력만 올해로 20년.“이것저것 테스트해보고 싶은 게 많았던” 윤성현 감독과의 작업은 그에게도 꽤 자극이 된 모양이다. 사실적인 총소리와 인물의 심리에 영향을 주고받는 사운드는 윤성현 감독이 <사냥의 시간>을 통해 시도하고 싶은 것들 중 하나였다. “작업 전엔 총기 액션 장면이 많아 총소리가 중심인 영화라 생각했는데, 촬영한 장면들을 보니 공허함이 느껴졌다. 인물의 심리를 사운드로 표현하는 게 중요한 영화였다. 총소리가 다가 아니었다.” 주인공 준석(이제훈)이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가 한(박해수)의 존재를 인지하는 장면은 인물의 심리가 사운드에 반영되는 대표적 장면이다. 준석이
이승엽 '사냥의 시간' 사운드 슈퍼바이저 - 인물의 심리를 사운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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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재림 감독이 차기작으로 재난영화를 연출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흥미로웠다. <관상>(2013), <더 킹>(2016) 같은 전작을 통해 권력의 민낯을 들여다보았고, 평소 정치적, 사회적 감수성이 예민한 그가 재난을 단순히 전시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재난이 벌어지고 재난을 둘러싼 인간들을 어떻게 묘사하며 국가는 또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했지만, 워낙 철통 같은 보안 때문에 그의 신작인 <비상선언>(제작 우주필름, 공동제작 씨제스엔터테인먼트·씨네주, 배급 쇼박스)은 ‘항공재난영화’라는 정보 외에 어떤 이야기인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베일에 꽁꽁 싸인 이 영화는 최근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등 주연급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영화계 안팎에서 큰 화제가 됐다. 지난 3월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었던 <비상선언>이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크랭크인이 연기됐으며 진열을 재정비한다
‘한국사회를 그려내는 항공재난영화가 온다’ <비상선언> 한재림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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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별님의 마음속 고향이었던 저 산 너머에는 현대인들이 잊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마도 <저 산 너머>에 대한 이해인 수녀의 표현보다 적절한 문장을 찾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저 산 너머>는 고 정채봉 작가의 <바보별님>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1993년 정채봉 작가가 김수환 추기경과의 대화를 엮어낸 이 맑은 동화는 이후 김수환 추기경 선종 후 고인의 뜻에 따라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2019년 선종 10주기를 맞아 다시 출간된 <저 산 너머>가 드디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 <저 산 너머>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다룬 이야기다. ‘순한’이라고 불릴 만큼 착한 심정을 지닌 7살 소년의 성장 스토리 안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마음의 텃밭을 일군 씨앗이 담겨 있다. <플라이 대디>(2006), <해로>(2011)의 최종태 감독은 “자연, 영성, 동심, 어머니의 사랑 등 잊혀
'저 산 너머' 최종태 감독 - 김수환 추기경이 그렸던 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