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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은 더 바랄 게 없었다. 조별 과제에 참가하지 않았단 이유로 상우(박재찬)가 재영을 제출자 명단에서 빼버려 F학점을 받는 바람에 졸업과 유학이 모두 취소되기 전까진 말이다. 그 뒤로 재영은 상우가 싫어하는 빨간색 의상을 입은 채 눈에 불을 켜고 그를 집요하게 쫓는다. 배우 박서함은 “현실에선 재영과 친해지지 못했을 것”이라 말하면서도 상우와의 불화에 애정이 섞여드는 미묘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짚어낸다. <시맨틱 에러> 출연 제의가 왔을 때 박서함은 아이돌 그룹 크나큰을 탈퇴하고 은퇴까지 고려하던 중이었다. 고민 끝에 배우라는 목표를 다잡으며, 박서함은 <시맨틱 에러>와 함께 새롭게 30대를 맞이했다.
- <시맨틱 에러>가 왓챠 시청순위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드라마가 공개되기 전 박서함 배우가 1위, 박재찬 배우가 3위에 내기를 걸었다던데.
= 내기에서 이기긴 했지만 재찬이에게 소고기를 사줬다. 그러고 아이스크림 먹고 같이 영화를 봤다. 사
'시맨틱 에러' 박서함, 색다른 멋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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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과 미대생,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모든 것이 양극단에 위치한 재영(박서함)과 상우(박재찬)는 교양수업 조별 과제 팀원으로 처음 조우한다. 불성실한 재영의 태도에 상우가 프로젝트 명단에서 재영을 빼버리면서 둘은 원수와 다름없는 사이가 된다. 날을 세우고 다투던 두 사람 사이에 애틋함이 깃든 건 언제부터였을까. 캠퍼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재영과 상우의 유쾌한 로맨스가 <시맨틱 에러>의 온도를 높인다.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 에러>는 2018년 리디북스 BL(Boy’s Love) 부문 대상을 수상한 동명의 소설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웹소설 영상화에 대한 우려와 달리, 2월16일 공개 직후 현재까지 톱10 1위를 유지하며 순항 중이다. 티격대는 재영과 상우를 떠올리며 만난 박서함, 박재찬 배우는 누구보다 가까워 보였다. 관심사가 같은 두 사람이 최근 눈여겨보는 건 필름 카메라. 촬영에 열중하면서도 따로 챙겨온 필름 카메라로 틈날 때마다 서로를 찍어주기에
그 녀석들의 첫 번째 순간들, '시맨틱 에러' 박서함과 박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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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학 영화이기 이전에 ‘이상한 나라’에 관한 영화다.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였다는 자율형사립고등학교에서 펼쳐지는 한국의 교육 현실이란, 선생이 나서서 ‘사배자’(사회적 배려 대상자)에게 전학을 권유하는 모습으로 일면 요약된다. 하지만 “일반 학교 가면 충분히 1등 할 수 있으니 차라리 전학을 가”라는 말을 듣고도, 한지우(김동휘)는 버틴다. 변변찮은 형편에 학원 한번 보내지 못했는데 모범생으로 성장한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운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학교 경비원이자 탈북 수학자인 이학성(최민식)과 새벽녘 과학실에서 몰래 수학 공부를 시작한 지우의 일탈은 금세 그를 짝사랑하는 동급생 보람(조윤서)에게 들키고, 둘의 이야기는 곧 셋의 이야기로 확장돼 파이(π, 원주율)와 우정의 아름다운 교집합을 수놓는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최민식의 파트너로 본격적인 연기 첫발을 뗀 김동휘는 1995년생의 무서운 신예로, <이상한
[WHO ARE YOU]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김동휘, 조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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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카운터>는 간단한 미션만 수행하면 의식주를 보장해주는 독특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다치바나 에리의 말을 빌리자면, 이 마을의 일원인 미도리는 “여왕처럼” 군림하는 존재다. 마을의 시스템에 완벽히 적응한 미도리는 인기를 즐기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낸다. 자신을 찾으러 온 언니 키무라(이시바시 시즈카)가 마을에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다. 2013년 일본 잡지 <비비>의 ‘30주년 기념 전속 모델 오디션’에서 그랑프리를 획득한 뒤로 다치바나 에리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모델 경력을 탄탄히 쌓아왔다. 2019년부터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캐릭터의 감정과 그 이면을 예민하게 감각할 줄 아는 인재다.
데뷔작 오디션을 볼 때 자유연기 없이 대본을 리딩한 뒤 감독님과 대화를 나눴다. 미도리 역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해주셔서 기뻤다. 제대로 된 연기는 처음인데 너무 큰 역할이라 긴장도 됐다. 하지만 내게 첫 영화인 것처럼 감독님에게도 첫 연출작이라 동지라
'시크릿 카운터' 다치바나 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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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촬영상, 의상상, 프로덕션 디자인상 등 4개 부문 노미네이트 소식과 함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나이트메어 앨리>가 찾아왔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이후 4년 만이다. 영화는 1946년 출간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를 마주하는 관객은 당황할 법하다. 이번 작품은 감독의 전작을 봐온 관객의 기대를 어느 정도 배반한다. 괴생명체나 판타지 요소가 없고, 잔혹 동화로서의 결은 전무하며, 그 대신 예리하고 참혹한 현실이 버티고 서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심의 초점이 기이한 존재에서 인간으로 약간 옮겨갔을 뿐 그의 세계는 변함이 없다. 길어진 러닝타임, 건조하다 못해 메말라 비틀어진 풍경은 낯선 충격을 안겨준다. 이 글이 <나이트메어 앨리>에 무리 없이 입장하는 데 긴요한 안전판이 되기를 바란다.
<나이트메어 앨리> 속 카니발 서커스 단원의 면면을 보자. 왜소증, 전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나이트메어 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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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MC, 소속사 대표에 이어 이제는 배우가 된 강다니엘에게 <너와 나의 경찰수업>은 적시에 펼쳐진 모험이었다. 연기라는 미지의 지도 앞을 호기심 어린 발걸음으로 서성이던 순간에 경찰대 학생 위승현으로 살아보는 기회가 찾아왔고, 그는 기민하게 타이밍을 낚아챘다. 10대 내내 몰두한 춤의 세계, 데뷔 후 빠르게 넓혀온 종합 엔터테이너의 영역에서 그랬던 것처럼 강다니엘은 자신이 배워야 할 과제에 기꺼이 매혹되는 쪽을 택한다. 강도 높은 배우 수업으로 20대 후반의 문을 연 지금, 신인배우이자 제복 입은 신입 강다니엘의 행보는 특유의 근성과 맷집 위에서 또다시 확장되고 있다.
- 연기에 도전하는 첫 작품으로 청춘 드라마를 택했다. 주인공 위승현은 나이답게 순수하면서도 또래에 비해 조숙하고 비밀스러운 인물이다. 아이돌로 구축한 이미지와는 꽤 다른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것 같다. 과정과 결과 모두 만족스럽나.
=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정도라는
'너와 나의 경찰수업'의 배우 강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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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부흥기에는 모름지기 캠퍼스 청춘물이 있었다. 영화산업에서 흥행한 장르물들이 드라마 시장의 판세까지 뒤흔든 최근 몇년간, 캠퍼스 드라마는 어느새 옛말처럼 여겨졌지만 디즈니+는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오리지널 시리즈로 그 빈틈을 영리하게 공략했다. 열아홉을 지나 막 스무살이 된 남녀들이 군기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경찰대 신입생이 되어 사랑하고 성장하는 <너와 나의 경찰수업>은 우선, 어쩔 수 없이, 싱그러워서 눈길이 간다. 젊음이야말로 이 장르에서 가장 유효한 콘텐츠인 덕분이다. 청량한 하늘 아래 각 잡힌 제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포스터 속 얼굴들을 보고 있자면, 현실이었든 환상이었든 너와 나의 청년 시절을 거기에다 은근슬쩍 대입하게 된다. 주 타깃층은 미래의 대학 생활을 꿈꾸는 10대 시청자이나 20대의 청춘을 지나왔거나 현재 겪고 있는 이들에게도 이 기세 좋은 캠퍼스 드라마에서 얻을 저마다의 위안은 분명 존재한다. <사이코메트리 그 녀석> &
드라마 '너와 나의 경찰수업'의 매력, 첫 연기 도전한 배우 강다니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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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배틀그라운드>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단편 <100>에서 김낙수 의원(이희준)은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을 찾기 위해 <배틀그라운드> 게임에 참가한 국가정보요원 천호영(엄태구)에게 김낙수는 “나 죽인다고 이 게임이 끝날 거라고 생각하나?”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겼다. <방관자들>은 <100>보다 앞선 시점의 이야기로, 김낙수 의원이 태이고시의 거대한 음모를 밝히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태이고시에서 일어난 주민 불법 퇴거 사건, 의문의 살인 경기의 전말을 알아내기 위해 그는 청문회에서 정익제 전 부시장(고수)의 유일한 편이 되어준다. 하나의 캐릭터로 <100>과 <방관자들>을 촬영한 배우 이희준은, 두편에 드러난 김낙수의 변화 과정을 계속 염두에 두고 정익제와 김낙수의 관계, 김낙수가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리며 다채롭게 캐릭터를 묘사했다고 말했다.
- 연출
정의를 믿다, '방관자들' 이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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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 고수가 연기한 <방관자들>의 정익제 태이고시 전 부시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태이고시에서 일어난 주민 불법 퇴거 사건, 그리고 불법 살인 경기에 관해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런 그가 마음을 바꾸게 된 건 오랜 친구 김낙수 의원(이희준)이 등장하면서다.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플레이한 적이 있는 배우 고수는 때로 게임 유저의 입장에서, 또 펍지유니버스의 한 조각을 완성한 배우의 입장에서 답변을 이어나갔다. 짧은 호흡의 작품임에도 그가 얼마나 세심하게 작품과 캐릭터를 관찰하며 촬영을 이어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양한 시각으로 정익제의 면면을 그려나간 고수의 이야기를 전한다.
-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해본 적 있나.
= 예전에 해봤다. 승패에 크게 욕심이 없어 게임을 잘 못하는데 그래도 <배틀그라운드>는 재밌게 했다. (웃음)
- <방관자들>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 단편이라 대본이 짧은데도
모든 것을 아는 남자, '방관자들' 고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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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거대한 음모의 진실이 밝혀질 것인가. 고수, 이희준 주연의 <방관자들>은 펍지유니버스의 단편영화 프로젝트의 일부로 지난해 공개된 <그라운드 제로>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그라운드 제로>가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시초가 된 1983년 태이고시의 호산 교도소 폭동 사건을 다뤘다면, <방관자들>은 2002년을 배경으로 태이고시의 주민 불법 퇴거, 불법 살인 경기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국회 청문회 사건을 담았다. 고수는 이 모든 상황의 전말을 알고 있는 태이고시의 전 부시장 정익제를, 이희준은 사건을 파고드는 국회의원 김낙수를 연기한다. 100여명에 이르는 기자와 국회의원이 날을 세운 채 정익제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김낙수는 유일하게 그의 편에 서서 실태를 파악하려 한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정익제와 김낙수처럼 배우 고수와 이희준은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편하게 담소를 이어나갔다. 펍지유니버스의 퍼즐 한 조각을 채운 두 배우
진실을 찾아서: '방관자들' 고수&이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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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 미켈센
조명이 어두운 식당에서 네 남자가 술잔을 기울인다. 은은하게 번지는 조명이 남자의 얼굴에 내려앉고 우물처럼 깊은 눈가에 촉촉이 눈물이 차오르는 순간, 비로소 장면이 완성된다. 마스 미켈센의 얼굴은 그 자체로 이야기이고 영화이며 정서다. 별거 아닌 독백도 이 남자의 얼굴을 거치는 순간 잘 숙성된 와인처럼 깊은 향을 머금는다. 2004년 <킹 아더>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마스 미켈센은 주로 무표정하게 적들을 무찌르는, 고독하고 프로페셔널한 전사 역할을 자주 맡아왔지만 실은 누구보다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중 한 사람이다. 2012년 <더 헌트>에서 집단의 광기 속에서 묵묵히 이를 감내하는 인물을 통해 얇은 피부 아래 터질 듯한 정념, 무표정의 격정이 무엇인지 여실히 증명했으며 이 영화로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007 카지노 로얄>(2006)의 섹시한 악역이나 <NBC> 드라마 <한니발>에서
'어나더 라운드' 트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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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란 무엇인가. 인류사에서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아니 해결할 의지가 없는 질문. 토마스 빈터베르의 <어나더 라운드>는 술에 관한 흥미로운 고찰을 시도한다. 무료한 일상에서 사라진 열정을 되찾기 위해 알코올 농도에 대한 실험을 벌이는 이 영화는 술에 대한 유쾌한 통찰과 애정으로 가득하다. 2021년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과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비결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균형감각에 있다. 술을 사랑하게 되는 중년 남자들의 해프닝을 해맑게 그리다가도 불현듯 묵직한 울림을 남기는 감독의 솜씨는 그야말로 잘 익은 위스키처럼 성숙하다. 여기에 <더 헌트>(2012)에서 호흡을 맞췄던 마스 미켈센, 토머스 보 라센 등 배우들의 연기는 한층 농익어 표정만으로도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진실은 술 속에 있다. 진실을 이야기할 기분이 되기 위해서는 취해야 한다.”(리케르트) 영화가 전하는 진심 속에 흠뻑 취해봐도 좋을 것이다.
술은 꼬리가 길
애주가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고찰 '어나더 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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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RE YOU
2020년 초겨울, 박유림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호출을 받고서 들뜬 마음으로 그의 전작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감독에 대한 사소한 정보까지 철저히 암기하고 나간 자리에서 상대는 태연스럽게 “지금까지 무얼하며 살았는지 말해달라”고 질문했고 배우는 오히려 크게 당황하고 만다. 이후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의 한 대목까지 소리내어 읽은 뒤 첫 만남은 마무리됐다. 두 번째 만남에서 박유림은 같은 대목을 수어로 연기했고, 이 경험은 나중에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유나(박유림)가 연출가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와 첫 대면하는 오디션 장면으로 이어진다. 당시 그의 나이 28살.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오디션을 준비했지만 좀처럼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던 때에 “우울과 자기 의심이 한번에 뒤집히고 용감해지는 마음”이 그녀 안에서 급격히 일렁였다. 배우가 자신의 강한 에고를 최대치로 비워내길 주문하는 하마구치의 연기지도법은 아
'드라이브 마이 카' 박유림, 우울과 자기 의심이 한번에 뒤집히고 용감해지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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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들리 스콧의 20년 프로젝트였던 이유
<하우스 오브 구찌>의 서사는 구조적으로 볼 때 승계와 전복, 몰락의 서사가 어우러진 왕가의 대서사시와 닮았다. 어이없게 어리석은 일이 벌어져 모든 것이 망가진다는 점까지도 그렇다. 실로 구치가는 패션계의 왕조라 할 만했고, 상류사회의 전유물이었던 명품 패션이 글로벌 자본주의 시장의 먹잇감이 되는 시대적 역동 속에서 함께 절멸했다. 구치의 행보는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스포르차 가문처럼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믿었으나 결국 장인 정신을 져버리고 만 자기 배반의 역사이기도 하다. 각본가인 로베르토 벤티베그나는 이를 하나의 아이러니로 일축한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스스로 일궈놓은 것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그저 서로를 비난한다.” 이미 많이 가진 자들의 싸움이 대개 이러한 모양새라지만, 구치 일원들은 자신들이 부호인 동시에 예술가이기도 하다는 마음 저편의 믿음 때문에 한결 더 복잡하게 불행해졌다.
'하우스 오브 구찌'를 향한 사소한 세 가지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