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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라는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한껏 자존심을 세우며 돌아선 윤손하가 화장을 고치는 척 콤팩트 거울을 꺼내더니 뒤돌아가는 배용준을 슬쩍 훔쳐본다.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띄우며 걸어가던 배용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읇조린다. ‘거울로 나 봤지? 그래, 오늘은 그걸로, 만족해….’ 이 장면을 보면서 배용준에게 저런 면도 있구나, 잠시 놀랐던 것 같다. 모범생에 반듯한 성품으로 누군가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하거나,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는 역이라면 모를까, 저렇게 머리 굴리며 사랑을 시험대에 올리는 그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라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후로 오랫동안, 그는 우리의 상상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정답만 나오는 역할 사이를 오고갔으니까.
그러던 올해 초, 배용준이 데뷔 10여년 만에 영화를 찍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영화는 사극이라 했고, 장안의 여자들을 섭렵해 나가는 천하의 바람둥이 역할이라
내 왼손이 곱다구요?그럼 오른손을 보세요,배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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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톰 행크스였어요, 영화 만들자는 사람이…”기적적 흥행작 <나의 그리스식 웨딩> 배우와 제작자가 말하는 ‘나의 그리스식 성공기’주연 경력을 가진 배우 한명도 없이, TV시리즈만 만들다시피한 감독과 500만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가 2억4천만달러를 벌어들였다면 로또복권 당첨에 견줄 만한 사건이다. 3월14일 개봉하는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작품 못지않게, 아니 작품보다 더 그 흥행신화로 화제가 된 영화다. 신화의 시작은 영화의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니아 바르달로스와 영화를 제작한 리타 윌슨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바르달로스는 토론토의 한 극장 매표소에서 일하다가 출연자 중 한명이 공연시작 직전에 병원에 실려갔을 때 대역을 자처하고 나서면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TV물과 두세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조·단역을 면치 못하던 신세였다. 그녀를, <허영의 불꽃>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배우이
<나의 그리스식 웨딩> 배우,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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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랗고 빨간 천조각들이 사정없이 누벼진 점퍼는 분명 뜨악한 것이었다. 뉴욕 에섹스하우스 인터뷰룸에서 만난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자신의 사이즈보다 훨씬 큰 요상한 색깔의 점퍼를 입은 채 나타나 악수를 건넸다. 영국 악센트가 섞인 중저음의 목소리나 사려깊고 지적인 대화법으로 보자면 그는 분명 제임스 아이보리 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신사였지만, 그가 걸친 점퍼는 빡빡 민 푸른 머리와 차가워 보이는 창백한 얼굴빛에 더해져 위험스러운 매혹을 연출하고 있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또다시 커다란 체크패턴의 붉은 옷을 입고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는 들키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민한 소년처럼 그의 마음이 잿빛과 분홍빛 사이를 오간다는 사실을, 카메라 앞이 아니라면 쉬이 드러나지 않는 붉은 불덩이 혹은 푸른 바다가 내면에 함께 한다는 사실을.
“나에게 연기라는 배출구가 허락되지 않았다면 사회에서 내 공간은 없었을 것이다.”
<갱스 오브 뉴욕>의 ‘도살광 빌’을 두고 새삼 호
직관을 따르는 광기의 모험가,대니얼 데이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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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예지원의 모든 얼굴 근육은 자기 눈동자의 정중앙을 향해 정렬한다. 어떤 절절한 감정이 담긴 듯한데, 그게 뭔지 쉽게 안 읽힌다. 자기 감정에 몰입하는 정도가 상대방과의 교감을 방해할 정도로 깊은 걸까. 열정적이면서 동시에 모호한 구석이 예지원에게는 있다. 그래서 반듯한 동양적 미인임에도 어딘가 과하거나 부족한 캐릭터, 이따금 푼수기나 백치미를 동반하는 역할이 그녀에겐 소화가 된다. 예지원은 인터뷰 장소에 자기 집 개를 데리고 왔다. 12살짜리 ‘뽀삐’로,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돌볼 사람이 없어 촬영현장에도 데리고 나간다고 했다. 조그맣고 순하게 생긴 뽀삐의 사람보는 눈이 뭔가를 바라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호했다. “뽀삐는 눈으로 말을 해요. 질투심, 호기심, 애절함, 걱정 같은 걸 다 표현해요. 연기자의 눈을 가졌어요.” 선수끼리 통하는 걸까.
예지원의 열정과 모호함을 동시에 잡아낸 건 <생활의 발견>이었다
그 여자의 열정 혹은 모호함,<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예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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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루니는 <솔라리스>의 배우로, <위험한 마음의 고백>의 감독이자 배우로 베를린영화제의 기자회견장을 자주 들락거렸다. 두 회견장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위험한 마음의 고백> 시사 이후 열린 기자회견은 ‘감독’ 클루니에 대한 상당히 진지한 질문(TV쇼에 대한 질문 등 곁가지로 빠지기도 했지만)이 이어진 반면, <솔라리스> 기자회견은 모더레이터의 잇단 말실수와 너무나 솔직하게 ‘영화가 지루하다’고 내뱉은 어느 기자의 발언 등으로 좌충우돌 폭소와 살벌한 분위기 사이를 오갔다. 이틀간의 클루니의 ‘쇼’를, 주요 장면을 가려 싣는다.
#1. 2월8일 저녁 6시50분. <솔라리스> 기자회견장
모더레이터 | <솔라리스> 팀이 베를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테이블에 앉으신 분들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 켈빈 역의 조지 클루니! 그의 아내 레야 역의 나타샤 맥엘혼!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스티븐 스필, 아니 소더버
[베를린] 조지 클루니의 너무도 예민했던 2번의 기자회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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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틀 뒤 저녁 7시10분. <위험한 마음의 고백> 기자회견장
기자a | 베를린이 영화의 주무대 중 하나인데요. 왜 베를린에서 촬영을 했고, 왜 ‘그런 식’으로 촬영을 했나요?
조지 클루니 | 너무 화내지 마세요. (웃음) 미국인들에게는 냉전시대 독일의 ‘스파이 세계’에 대한 판타지가 있어요. 스파이를 찍으려면 독일이 적격이다, 하는 식의. 그 스테레오 타입대로 찍은 거죠.
기자b | 감독을 해보니 배우보다 재미있던가요?
클루니 | 나는 배우 일을 재미있어합니다. 감독도 재미있지만 훨씬 힘든 일 같아요. 이 영화를 만든 것은 내게는 대단한 경험이었지만, 단지 재미있다, 아니다 할 성질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로 제가 감독 데뷔를 했다고들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영화 하나를 만들어본 것뿐입니다.
기자c | <솔라리스> 기자회견 때 당신은 그날 밤 당장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는데요, 아직 안 한 것 같아요. 신부
[베를린] 조지 클루니의 너무도 예민했던 2번의 기자회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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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넴이 어떤 사람인가를 입 아프게 늘어놓는 것은 사족일지 모르겠다. 그의 음악에 귀기울인 적 있다면, 짧은 영어로나마 그 맹렬하게 쏟아지는 언어의 폭포수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끙끙댄 적이 있다면, 잡고도 남았을 테니까. 또는 그럴 관심이 없었다면, 미국 사회의 밑바닥을 헤매던 자신을 토해놓은 음악, 아무래도 18禁 딱지를 면하기 어려울 만큼 거칠고 살벌한 랩으로 드러난 그의 삶을 새삼 이해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Fuck’과 ‘damn’과 ‘bitch’가 난무하는 그의 랩은 격하고, 도발적이며, 일그러진 웃음을 띠고 있다. 가진 것 없고 배우지 못해서 빈곤과 환멸의 진창을 뒹굴던 “백인 쓰레기”의 분노와 냉소를 퍼붓는 데 성역은 없다. 부모도, 학교도, 사회도, 꿈과 욕망의 대리인 같은 스타도, 심지어 그저 꼴보기 싫은 모든 존재들도.
“내 인생의 99%를 난 속고 살았지/ 엄마가 나보다 더 약을 많이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제길!)/ (중략) 방탄조끼를 입고 내
나는 백인 쓰레기야,제길,당신도 엿먹어!에미넴 Emin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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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우성에겐 많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었다. 스튜디오가 이렇게 조용했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볼 정도로 그는 목소리가 작은 사람이었지만, 한결같은 억양에 실려나오는 그의 이야기는 받아적기만 해도 한 단락을 이룰 것 같았다. 가르치는 일을 좋아했던 탓일까. 동양화를 전공하던 대학 시절 이미 미술학원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친절한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는 것처럼 자기 삶의 중요한 순간을 가른 두 가지 축, 연기와 그림을 “아, 그런 거였구나!” 싶도록 짚어내곤 했다. 데뷔한 지 10년 만에 영화를 시작한 감우성. 당연하게도 그의 필모그래피엔 <결혼은, 미친 짓이다> 한편만이 호젓하게 올라 있다. 그러나 “여자와 노닥거리는 연기만 하는 데 지쳤다”는 냉소적인 발언 뒤에 “사람을 대할 때는 수백 가지 다른 선택이 있다. 따뜻하게, 친절하게, 반갑게…. 모두들 소름돋는 연기만 바라는데, 일상의 연기가 훨씬 어려운 것이다. 기술만 가지고 하기는 너무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덧붙이는 그는 아주
전쟁은 미친 짓이다, <알포인트>의 배우 감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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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형 감독은 마흔세살이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수완과 지훈이 스물한살이니, 그는 자기 나이의 절반도 안 되는 아이들이 싸우고 연애하는 이야기로 첫 번째 영화를 만든 셈이다. 경험만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겠지만,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는지라 이 나이먹은 신인감독은 물론 걱정이 많았다. “본격적인 청춘영화라… 내 나이가 벌써 몇인데.” 그러나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토닥토닥 치고받는 경쾌한 대사와 단 한 장면에도 미련을 남기지 않으면서 빠르게 종종걸음치는 전개로 공감을 얻어 개봉한 지 3주 만에 전국관객 3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는 점과 독특한 캐릭터 때문에 <엽기적인 그녀>와 자주 비교되는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2년 꿇은데다 방자하기 그지없는 문제적 고등학생 지훈과 한 학기 등록금이 아쉬워 지훈에게 도전하는 과외선생 수완이 이끄는 코미디. 이 영화는 “진실성이 없다”거나 “청춘이 그런
˝이 나이에 데뷔한 게 난 참 좋다˝<동갑내기‥> 김경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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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최고의 여자배우는? 할리우드의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돌아오는 답은 뻔할 거다. “그야 메릴 스트립이지.” 진정으로 그렇게 느껴서인지, 고귀한 명성의 위세에 눌려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는 정황도 있다. 우선 그녀는 아카데미상 최다 후보 지명자다. 메릴 스트립은 <어댑테이션>으로 올해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면서 캐서린 헵번이 갖고 있던 기록을 깨고 13번째 후보 선정이라는 영예를 품었다. 이런 ‘오스카 통계학’만이 그녀의 지위를 보증하는 건 아니다. 스트립과 함께 작업해본 동료 배우나 제작진은 입에 침이 마르랴 칭찬을 쏟아낸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댄서와 춤을 추는 느낌”(잭 니콜슨), “할리우드에서 그녀보다 더 훌륭한 장인은 없다. 그녀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She’s as good as it gets)(로버트 레드퍼드) 등의 말은 ‘립서비스’로 치부하기엔 지독히 격한 찬사들이다. 기네스 팰트로는 1
그녀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디 아워스> 메릴 스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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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이런 친구 없을까. 제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망가지도록 술잔을 부딪치며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문득 외딴 섬처럼 쓸쓸해할까봐 지레 위로와 귀여운 주정을 섞어 건네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의 속깊은(?) 이성친구 준. 까마득한 조직 후배들에게도 무시당하는 강재의 삼류 건달 인생에 그렇게 사느니 죽겠다고 쓴소리, 쉰소리 늘어놓으면서도 친동생처럼 온갖 뒤치다꺼리를 마다않는 <파이란>의 양아치 경수나, 구김살 없는 쾌활함으로 해군 부대원들의 엔도르핀 상승을 책임지는 한편 밉살스럽게 굴던 동기의 죽음에 진정으로 울어주는 <블루>의 박중사 같은, 그런 친구.
공형진(33)은 바로 그런 친구의 체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배우다. 꼭 정색하고 다독이는 것도 아니건만, 툭툭 던지는 진심 한마디가 어쩐지 훈훈하고, 때로는 그저 천진한 장난기와 낙천적인 웃음 자체로 주위의 명랑지수를 한 단계 올리곤 하는 친구. <선물>의 동료 개그맨, <
이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배우 공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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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치키되, 좀더 상업적으로
2002년 한해 동안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는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아니, 인터뷰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2001년 개봉한 야심작 <봄날은 간다> <무사> <화산고>가 기대 이하의 흥행을 기록, 자존심에 타격을 입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주도한 한국영화의 산업화 대열에서 싸이더스가 오히려 소외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모회사였던 로커스홀딩스가 시네마서비스를 합병,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하면서 산업의 중심에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한 싸이더스는 음반, 매니지먼트 사업부문을 싸이더스HQ에 떼어주면서 2000년 창립 때 내걸었던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라는 깃발을 내려야 했다. 여기에 자금난과 캐스팅난이 겹치면서 <정글쥬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드무비> 등 싸이더스 영화치곤 비교적 소품에 가까운 3편만을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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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과거고, 미래는 미래다. 현재 <지구를 지켜라> <살인의 추억> <싱글즈> 등 3편을 제작 중이고 <조선의 주먹> <천군> <사막전사> <역도산> <범죄의 재구성>(가제) 등 대여섯편에 대한 캐스팅과 펀딩작업을 하고 있으며, 물밑에서 30편 정도의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있는 싸이더스로서는 이른 시일 안에 뭔가 뾰족한 방책을 내와야 하는 형편이다. “영화만 잘 만들면 된다”는 원론적인 수준을 넘어 당장 자금을 확보하고 배급선을 결정지어야 하는 상황이다. 혹시 싸이더스가 CJS의 깃발 아래 설 가능성은 없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로또복권조차 산 적이 없다는 그는 어떻게 가문 논에 물을 대려는 것일까.
-현재 플레너스와의 관계는 어떻게 돼 있나.
=플레너스가 우리 주식 16.39%를 갖고 있다. 상법상으로는 계열사가 아닌 것으로 안다.
-플레너스라는 큰 배에서 내려 구명보트를 탄 셈이다.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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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요즘 젊은 손님들이 단 것을 좋아한다고 치자. 그러면 주방장에게 당도 높여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그럼 거기에 설탕을 치면 괜찮은데, 사카린을 넣으면 안 된단 얘기지. (웃음)
-따지고보면 그간 타율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우린 최소한 3분의 1 이상은 안타를 친 것 같다. 현재 제작 중인 것까지 해서 모두 25편인데, 개봉한 것은 21편 정도 되는 것 같다. 그중에 심하게 깨진 것을 세보면 <모텔 선인장> <플란다스의 개> <킬리만자로> <로드무비> 정도? 희생플라이 같은 것도 있다. <정글쥬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작품도 잃지는 않았다.
-타율이나 출루율은 괜찮은데 장타율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우린 1번 타자다. (웃음) 가끔 도루도 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도루 아닌가. 누가 기대나 했나.
-<무사>의 경우는 대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