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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DVD 산업은 급속도록 발전해왔다. 현재 국내에 보급된 DVD 플레이어는 100만대(DVD-VCR 콤보 포함)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까지 시장에 발매된 DVD 타이틀은 4천여종에 이른다. 또 매달 200여편의 새로운 DVD 타이틀이 새로 출시되는 것을 보면 ‘지금은 DVD 시대’라는 말이 허풍이 아님을 알게 해준다.
하지만 국내 DVD 시장의 내실은 그리 탄탄한 편이 아니다. DVD 타이틀을 대여해주는 곳이 드문데다 그나마 확보하고 있는 타이틀도 풍부하지 못해, 특별한 관심이나 필요성보다는 혼수용품으로 구매된 대부분의 DVD 플레이어는 놀고 있는 형편이다. 또 가뜩이나 영화타이틀 소장문화가 희박한 상황에서 활발히 판매되는 타이틀은 사운드와 비주얼이 화려한 블록버스터영화에 치중돼 있다. 여기에 불법복제 타이틀이 온·오프라인에 걸쳐 거래되고 있으며, 이중 판권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등 지금의 한
DVD 타이틀 제작업체 알토미디어 강우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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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브러더스라. 그런데 별로 형제 같지 않다. 친형제가 아니므로 당연하겠지만, 이정재와 이범수는 여러모로 닮은 구석을 찾기 힘든 사람들이다.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어깨를 드러낸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들어선 이정재는 소파에 앉으면서 먼저 주위를 살피는 반면, 이범수는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빨간 추리닝 바지에 회색 티셔츠를 한 세트로 갖춰 입고 와서는 윗도리 얼마 아랫도리 얼마 하며, 싸게 샀다고 자랑한다. 여기에 영화사 관계자가 귀띔해준 바에 따르면, 평소 말수가 많지 않은 이정재는 있는 자리도 가려 가지만, 스톱사인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 발화(發話)량이 무한대로 뻗어가는 이범수는 없는 자리도 만들어내 사람들을 모으는 타입이란다.
그런데 본래 형제끼리는, 외모나 습관을 빼고 닮은 구석이 별로 없는 법이다. 큰애가 욕심이 많으면 작은애는 양보에 익숙해지고, 애교 많은 누나 밑에서 자란 동생은 상대적으로 뻣뻣한 성격을 갖게 된다. 영화 <오! 브라더스>
오! 형제여,끈끈한 듯 낯선, <오!브라더스>의 이정재&이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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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북녀>를 찍으며 실컷 노는 흉내라도 냈으니 조금 분이 풀리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뜻밖에 싱긋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요즘엔 모든 게 자신에겐 놀잇거리란다. 배우가 영화 안에서 노는 건 당연한 일이고. 인터뷰도 하나의 놀이라나. 어째 측은지심 가운데 기특함이 밀려든다.
<별을 쏘다> 이후였을 거다. 노려보는 것만 같았던 카메라 불빛이 편해진 게, 입 안에서 깔끄럽게 맴돌던 대사가 리듬을 타기 시작한 게, 놀 줄 몰랐던 조인성이 까불게 된 게 말이다. <학교>라는 드라마를 찍을 때 주위에서 ‘건방진 녀석’이라고 수군댔지만, 사람들 앞에서 저절로 굳어지는 표정을 숨길 수 없던 그였다. 연출 PD에게도 조인성은 골치아픈 신인이었다. 대사와 연기톤이 튀는 걸 교정해주려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한번 친해지면 허물없이 지내는 조인성은,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드는 타입.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성격 덕분에 늘 구호와 성토가 마음속에 시끄
“인터뷰도 하나의 놀이에요.” <남남 북녀>의 조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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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가족>은 배우 문소리에게 독립의 영화다. 충무로 한복판의 극장 벽면에, 지하철 대합실과 버스 옆면에, ‘덤빌 테면 덤벼봐’ 하는 표정으로 알몸에 가랑이를 쩍 벌린 채 앉아 있는 문소리를 보면서 세상은 파격적 ‘변신’을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우리는 그녀의 ‘독립’에 주목해야 한다.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박하사탕을 내밀던 들꽃 같던 순임씨. 문소리가 처음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건 아련한 첫사랑의 초상으로 출연했던 <박하사탕>을 통해서였다. 면회를 거부당하고 모랫바람 속에 긴 치마를 휘날리며 사라지던 그 뒷모습, 세상의 똥물에 손 담근 애인 앞에서 끔뻑끔뻑 눈물을 퍼올리던 그 막막한 표정, 꼼짝달싹 못하고 병실에 누워 카메라를 전하던 그 안타까운 손. 달려가지도, 터트리지도, 뻗지도 못했던 문소리의 모든 것은 <오아시스>로 이어지며 더욱 갑갑하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오아시스>를 본 해외 관객이 <바람난 가족>
<바람난 가족>의 문소리, 독하게 욕망을 구(求)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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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홍련>이 그렇게 잘 될지 정말 몰랐다. 흥행이 잘된 영화든 못 된 영화든 왜 그렇게 됐는지 얘기할 수 있겠지만 아직도 흥행을 장담할 순 없다. 예전에 강우석 감독이 영화판에 들어와서 똔똔만 하면 성공하는 거라고 말했는데 이해가 간다. 손해보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손해를 안 보는 것만 해도 굉장한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픽처스 대표 최재원(37)씨는 지난해와 올해 지옥과 천국을 오간 인물이다. 지난해 아이픽처스의 메인 투자작 <마리이야기> <정글쥬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드무비> 등 4편 가운데 손해를 보지 않은 영화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한편뿐이었다. <마리이야기> 20억원, <정글쥬스> 3억원, <로드무비> 9억원 등 3편이 32억원의 손해를 끼친 반면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10억원의 수익을 냈다. 불운은 올해 초로 이어져서 <마들렌>
아이픽처스 대표 최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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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So Crazy>는 외설스런 농담 때문에 NC-17 등급을 받은 전설적인(?) 작품으로, 마틴 로렌스가 <빅 마마 하우스> 등에서 화장실 유머를 천연덕스럽게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 우연이 아님을 일러준다. ‘판에 박혔다’거나 ‘경박하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후 미국 극장가에서 ‘마틴 로렌스 효과’는 만만찮은 흥행으로 이어져왔다.
95년 풋내기 감독 마이클 베이와 가수로 더 유명했던 윌 스미스의 <나쁜 녀석들> 팀에 힘을 실어준 이는 자신의 이름을 건 코미디쇼에 출연 중이던 마틴 로렌스였다. 친근한 용모에 걸쭉한 입담을 자랑하던 마틴 로렌스는 여러모로 위험한 프로젝트였던 <나쁜 녀석들>의 유일한 안전판이었다. 8년 뒤, 이들이 속편으로 돌아왔을 때 상황은 달라진 듯 보였다. 편리하게도 언론은, 마이클 베이와 윌 스미스는 할리우드의 특급 스타가 됐고 마틴 로렌스는 그간 제자리걸음만 했다는 ‘상대 비교’ 평가를 앞다퉈 내놓았다. 그러
오해도 실수도, 내 웃음의 재료, 마틴 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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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다 이사오. 두 거장이 이끄는 지브리 스튜디오엔 십수년 전부터 후계자 발굴과 양성이 지상 과제였다. “우린 너무 늙었어. 재능있는 신인을 찾아야만 해. 하지만 그게 누구든 지브리 브랜드 파워에 대한 부담을 돌파하지 못하면, 가망은 없는 거야.” 그때 모리타 히로유키(39)가 나타났다. 3년 전 지브리에 입사해 <이웃집 야마다군>에 참여했던 신인 애니메이터. 층층시하 엄혹한 작업장에서 자기 주장을 펼쳐 보이던 대차고 야무진 젊은이를,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가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단박에 감독 시험에 통과한 건 아니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스즈키 프로듀서의 추천에도 아랑곳없이, 단편 <고로의 대산책>에 원화 작가로 투입하는 등 한동안 그를 곁에 두고 지켜봤다. 그리고는 어느 날 불쑥 “연출을 할 건지 말 건지 당장 정하라”고 닦달해, 모리타 히로유키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미래의 유망주’에게 맡긴다던 일명 ‘고
<고양이의 보은>의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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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인씨가 지난 7월28일 한국영상자료원장에 취임한 건 참여정부 시대에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수많은 과거의 운동권 인사들이 청와대와 정부에서 활약하고 있는 마당에 ‘재야인사’ 또는 ‘영화운동가’라는 이미지가 강한 그가 정부의 산하기관장이 됐다는 사실이 뭐 대단한 일이겠나. 아닌 게 아니라 그가 걸어온 길은 외곬이라 할 만하다. 대학 시절 프랑스문화원에서 영화의 세계에 눈뜬 이후, 서울영화집단에 들어가 1986년 홍기선 감독과 함께 농촌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린 <파랑새>를 만들어 영화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으며, 영화평론가 이정하, 이수정 프로듀서, 구성주, 이상인, 김응수 감독, 김재호 촬영감독 등과 함께 민족영화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영화와 현실을 고민했던 그는 90년대 중반 들어선 독립영화계의 맏형 노릇을 톡톡히 수행해왔다(한때 ‘영화운동을 잘하기 위해선 현장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지영 감독의 연출부(<여자가 숨은 숲>)로, 지미필름 기획
한국영상자료원장 이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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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안젤리나 졸리는 홍콩에서 <툼레이더2: 판도라의 상자>를 찍고 있었다. 그곳에 함께 머무르던 제작사 직원은 촬영현장을 찾은 취재진한테 졸리를 인터뷰하면서 두 가지 질문을 삼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남편 빌리 밥 손튼과 아버지 존 보이트에 관한 것. <툼레이더>가 개봉할 무렵, 졸리는 오랫동안 소원했던 아버지와 친밀해졌고, 남편 덕분에 “진짜 가족”이 생겼다고 과시했었다. 그리고 3년 뒤, 졸리는 다시 혼자 남았다. 캄보디아에서 입양한 두살배기 아들이 있지만, 졸리는 “내 결혼이 끝장나면서 가장 좋은 친구였던 손튼과의 우정도 끝나버렸다. 지금 나는 너무 슬프고 화가 난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때 “나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던 자존심은 여전히 빛이 나고 있었다. 몸에 딱 붙는 티셔츠 위에 파카를 걸치고, 긴 갈색머리를 힘주어 묶은 졸리는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마디 한
대등한 힘을 가진 남자와 싸우는 것은 매력적이다,안젤리나 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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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은 천개의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네 생살을 찢게 될 거야. 몇몇 사람들이 그래서 피를 흘리고, 너 자신도 별수 없이 피를 흘리게 될 거야. …그리고 그 모래 폭풍이 그쳤을 때, 어떻게 자기가 무사히 빠져나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너는 잘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아니, 정말 모래 폭풍이 사라져버렸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지. 그러나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해. 그 폭풍을 빠져나온 너는 폭풍 속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네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그래, 그것이 바로 모래 폭풍의 의미인 거야.… ” -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한때 그도 모래 폭풍 속에 있었다. TV를 틀면 온통 ‘유지태표’ 웃음으로 무장한 광고들이 소비자를 향해 아귀처럼 달려들었고, 많은 청춘영화의 시나리오들은 그의 눈길을 기다렸다. 그의 허무한 대답들은 여기저기 과장되어 해석되었고, 그의 엉뚱한 몸짓들은 대중의 기대 속에 박제되었다. 모든 곳에 유지태는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유지태는
<올드보이>로 스크린에 다시 선 유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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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페션>은 미국 리얼리티 쇼의 창시자인 척 배리스의 <위험한 마음의 고백: 공인되지 않은 자서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척 배리스는 자신이 텔레비전 쇼의 프로듀서였을 뿐만 아니라 전 CIA 암살요원이기도 했다고 술회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믿기 어려운 이야기는 찰리 카우프만이라는 걸출한 시나리오 작가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났고, 조지 클루니는 한눈에 그 시나리오에 매혹되었다. 영화 제작자로서 스티븐 소더버그와 한팀을 이뤄 ‘섹션8’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기도 하는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의 제작(미라맥스)을 돕는 차원에서 출연을 결정했고, 주인공 척 배리스를 CIA로 끌어들이는 또 다른 CIA 요원 ‘짐 버드’ 역을 맡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컨페션>의 감독이 조지 클루니였던 것은 아니다. 사실, 브라이언 싱어, 데이비드 핀처, P. J. 호건, 커티스 핸슨 등 수많은 유명감독이 물망에 올랐었다. 그러나 영화화는 제작준비과정 중 여러모로 암
배우출신 감독, <컨페션>의 조지 클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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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의 어느 시끄러운 술집에서 앞으로 연출하게 될 영화 한편에 대해 조지 클루니가 열심히 떠들고 있을 때도 샘 록웰은 도대체 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몰랐다”. “좋아요, 뭐, 아무거라도 하죠. 하루짜리 배역이라도요.” 그런데 섹션8(조지 클루니와 스티븐 소더버그가 운영하는 제작사)의 벤 크로스그로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샘, 조지가 당신 10월 동안 시간 좀 되는지 알고 싶어하는데….” “왜요?” “<위험한 마음의 고백: 공인되지 않은 자서전> 때문에 말야.” 8살 이후로는 본 적이 없던 <땡쇼>를 비디오로 다시 보고, 그중 몇 장면을 눈여겨봐둔 뒤 그는 LA로 날아가 오디션을 받았다. 브래드 피트, 조니 뎁, 숀 펜, 마이크 마이어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에드워드 노튼 등등 말 그대로 한 다스가 넘을 정도의 날고 뛰는 헐리우드 스타들이 눈독을 들였던 <컨페션>의 척 배리스 역은 그렇게 무명에 가까운 샘 록웰의 수중으로 들
독창적인 모방,<컨페션>의 척 배리스,샘 록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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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와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 때의 박신양은 전지현에게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그때 그는 워낙 대선배인데다 이미 입지를 다진 배우였고, 전지현은 초짜에 불과했으니까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을 계기로 5년 만에 다시 만나서도 전지현은 부담이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박신양이 “애써서 거북하게 대하거나 그러진 않았는데…”라며 웃는다. “사실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엔 모든 게 공평해져요. 나이도 필요없고 경력도 필요없고….”
진짜 부담스러운 건 다른 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불행한 영혼을 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기억 속에 새겨진 치유되기 힘든 상처에 관한 이 영화 자체가 버거웠을 것이다. 부담은 박신양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자극에조차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면증 환자 ‘연’과, 문득 닥친 비일상적 경험으로 인해 잊고 싶은 과거를 대면하는 ‘정원’. 이 둘은 불안과 긴장의 심리를 극의 끝까지 몰아가되 행동보다 내면
부담스럽다,그래도 달려들었다,<4인용 식탁> 전지현&박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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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전후로 ‘배우 명계남’은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친구 이창동을 험한 전방에 보내놓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산다.”
정말 그랬다. 최근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면 늘 ‘비서’가 받는다. 새삼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정치와 관련한 수많은 인터뷰와 출연 요청을 막아보려니 건방져졌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또 정신 건강과 몸을 추스르면서 일을 좀 제대로 해보려니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 일은 영화에 전념하는 거다. “프로듀서로 시작한다는 자세로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 심재명 명필름 대표 등 능력있는 후배한테 물어보고 배우려고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면 꿇을 것이다.” 광주영화제 집행위원장, 남도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등 만만치 않은 직함을 새로 얻었지만, 무엇보다 그는 제작자로서 새로운 길을 활발히 모색하고 있다. 최근에는 배우였던 방은진씨의 감독 데뷔작 <엄마, 미안해>(가제)의 시나리오가 완성됐고, 투자자
<엄마,미안해>의 `제작자` 명계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