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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콩을 들다>에 대한 판정은 들면 이기고 들지 못하면 지는 역도경기만큼이나 쉽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눈물을 자아내는 멜로드라마, 오합지졸 선수들이 진짜 선수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빚어질 소동극, 게다가 실화, 결국에는 뻔하디뻔한 스포츠영화. 말하자면 <킹콩을 들다>는 ‘정통적’이다 못해 ‘전통적’인 영화다. 하지만 익숙한 공식들을 오밀조밀하게 엮어낸 솜씨를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다. 또한 비인기 종목인 역도경기에서 일어난 실화의 근거가 궁금해지는 영화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의 아테네올림픽은 많은 사람이 지켜봤지만, 2000년에 열린 전국체전, 그것도 역도경기를 실제로 목격한 이는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데뷔작의 개봉을 기다리는 박건용 감독을 만났다.
- 시사회 반응이 좋은 것 같다.
= 좋아해주는 관객이 많아서 좋긴 한데, 그래도 긴장된다. 웃음이 많이 터져나온다고 해서 호응도가 좋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박건용] 젊은이들의 고민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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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엔터테인먼트는 2007년 설립된 영화 수입사다. 역사는 짧지만 <색, 계>를 시작으로 <포비든 킹덤: 전성의 마스터를 찾아서>를 거쳐 <노잉>과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에 이르기까지, 마스엔터테인먼트는 100만명 이상 흥행작을 네편이나 내놓았다. 수입사 전성시대(혹은 수입사 전국시대)에 풀숲에서 튀어나온 무림 고수라고나 할까. 하지만 마스엔터테인먼트가 화성으로부터 갑자기 떨어진 영화사인 건 또 아니다. 대표인 마이클 김은 이미 지난 20여년간 외화를 구매해온 이 세계의 베테랑이다. 그가 마스엔터테인먼트 설립 이전에 구매했던 영화들의 리스트를 한번 죽 늘어놔보자.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원과 하루>,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삼색 시리즈, 라스 폰 트리에의 <브레이킹 더 웨이브>, 밀코 만체프스키의 <비포 더 레인>, 마티외 카소비츠의 <증오>, 그리고 <브로크백 마운틴>. 게
[마이클 김] “비슷한 가격이면 내가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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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여섯 번째 프로젝트이자 네 번째 옴니버스 극영화인 <시선 1318>의 주제는 청소년 인권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방은진, 전계수, 이현승, 윤성호, 김태용 감독은 한국 청소년이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섬세하고 사려 깊게 다룬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김태용 감독이 만든 <달리는 차은>이다. 육상선수인 차은과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인 엄마의 소통 과정을 차분하게 그리는 이 영화는 청소년 인권이라는 사안을 뛰어넘어 인간과 인간의 소통이라는 근원적 문제를 제기하는 감동적 영화다. 이 영화는 김태용 감독이 그동안 보여줬던 세계를 집약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민규동 감독과 함께 작업했던 단편 <열일곱>과 장편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보여준 청소년들의 세계와 <가족의 탄생>이 제기한 현대적 가족의 본질에 관한 질문이 이 30분 남짓한 단편영화 안에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또 하나 놀란
[김태용]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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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상으로 나가는 건가?” 인터뷰가 끝난 뒤 냉면 국물을 시원하게 들이켜던 최민식이 매니저에게 말했다. “출산(出山)하시는 거죠.” 매니저의 말에 최민식은 “야, 남자가 무슨 출산(出産)이야?”라며 농담으로 답했다. 그렇게 눈에서 핏발보다는 웃음기가 더 많이 보이고 입에서 독설보다는 농담이 더 흘러나왔던 것으로 미뤄볼 때, 은둔의 산에서 나와 영화 세상으로 돌아오는 최민식의 기분은 유쾌한 듯 보였다.
6월11일 개봉하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이하 <히말라야>)은 최민식이 2005년 <친절한 금자씨>에서 백 선생 역할을 맡은 이후 처음 출연한 영화다. 그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아주 조금씩만 우리에게 얼굴과 이름을 내비쳤다. 2006년 그는 한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했고,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2007년에는 연극 <필로우맨>에 등장했으며, 2008년 초에는 <히말라야>에 출연했고 1
[최민식] 떠나긴, 내가 배우 안 하면 뭐 먹고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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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의 표정은 밝았다. 한마디 한마디 배우로서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로니를 찾아서>, 그리고 뮤지컬 <삼총사>에 이르기까지 그는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로니를 찾아서>에서 그가 연기하는 태권도 사범 ‘인호’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자신에게 망신을 준 방글라데시 청년 로니를 찾기 위해 생업을 내팽개치고 그의 친구 뚜힌과 옥신각신하던 그는 결국 방글라데시까지 가게 된다. 로니를 찾는 과정, 뚜힌에게 마음을 열기까지의 과정은 바로 그에게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된다. 유준상이 <로니를 찾아서> 출연을 결심하게 된 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아서다. 서로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고 생각하던 두 사람이 만나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갈라놓고 있던 벽은 스르르 기분 좋게 무너진다. 그것은 또한 유준상이 배우로서 애타게 자신의 얼굴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거울
[유준상] “영화 속 욕을 몽땅 정치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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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이 달린다. 달리기 하나로 500만 관객을 숨죽이게 했던 <추격자>의 김윤석이 또 달린다. 새 영화 <거북이 달린다>에서 그는 혼자 탈주범 잡겠다고 용도 쓰고 화도 내고 머리도 써보는 시골 형사를 연기한다. 포효하고 에너지 넘쳤던 김윤석의 장기를 버리고 이번엔 밋밋해지려고 안간힘이다. 느릿느릿 거북이의 보폭으로 김윤석이 달린다.
김윤석이라는 이름은 급작스러웠다. 그 나이 또래의 배우라면 적어도 계통과 전사가 있게 마련이다. 어디 출신이며, 그전까지 어떤 연기를 했고 그리고 유명하지 않지만 작게나마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어야 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달랐다. 그는 아침 소란 속, 습관처럼 켜놓은 TV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낯선 미지의 존재였다. 아침 드라마를 기반으로 이름을 알리기에 이 남자의 물리적 나이는 너무 많았다. 게다가 포효하는 듯 휘몰아치는 그의 연기는 첫 등장치고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다른 무엇이 아닌 실력 하나만으로 그는 소리로만
[김윤석] 느릿느릿 거북이 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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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 안에서 아줌마들이 열렬히 몸을 흔든다. 홀린 듯 비적비적 자리에서 일어난 엄마(김혜자)도 그들 중 하나가 된다. 지평선에 걸린 태양이 그녀들의 측면에 쏟아지고, 비극적이고도 희극적인 춤사위는 그림자로 변주된다. 아찔하다. <마더>는 기괴한 오프닝으로 시작해 기괴한 엔딩으로 끝맺는 영화다. 인상적인 장면이야 셀 수 없지만, 바람이 음울하게 살랑대는 너른 들판에서 엄마가 괴이한 표정으로 춤을 추는 오프닝과 빛줄기가 여자들의 실루엣을 타고 흘러내리는 엔딩만으로, 봉준호 감독의 신작은 무서운 마력을 발휘한다. 그러니 그와 처음 협업한 홍경표 촬영감독의 작업 또한 자연스럽게 궁금할 수밖에.
벌써 개봉을 앞두고 있건만 홍경표 촬영감독은 모성이라는 강력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했다. 그렇다면 <마더>를 “금방 안 잊혀지는 여자”라고 말하던 그에게, 이 끈덕진 엄마는 어떤 영감을 던졌을까. <챔피언>(2002), <지구를 지켜라!&g
[홍경표] 꿈처럼 찍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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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다고 했다. 깐깐하다고도 했다. <살인의 추억>을 함께한 봉준호 감독은 2003년 어느 기사에서 그를 두고 “보기와는 달리 천하독종, 철의 여인이다”라고 회고했다. 영화 경력이 20년에 가까워가는 이 여인의 공인된 히트작이라면 <살인의 추억>. 자신의 회사를 차린 뒤 선보인 영화는 <천하장사 마돈나>와 <김씨표류기>. 모두 마돈나를 꿈꾸던 씨름선수 동구처럼 작아도 귀엽고 알찬 영화들이다. 그러고 보면 <김씨표류기> 상영 전 화면에 떠오르던 영화사의 리더필름, 오리배의 하얀 머리도 왠지 모르게 짠한 구석이 있었다. 하필이면, 화사한 핑크빛 넥타이를 걸어두고 목을 맬까 말까 촉촉한 눈빛으로 고민하던 못났지만 사랑스러운 그 남자 김씨처럼.
주말의 추위를 녹이듯 해가 쨍하던 5월18일 오후. 90년대 초반 영화계에 입문해 판시네마, 신씨네, 싸이더스 등을 거치면서 기획과 마케팅, 제작을 두루 익힌 대표적인 프로듀서 출신의 여성
[김무령] 시나리오 좋은 영화 기 살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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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자주 본 배우.’ 하정우는 그런 배우다. 그의 영화는 꺼내도 꺼내도 계속 나오는 암상자의 공 같다. 색깔도 숫자도 가늠할 수 없는 이 공들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그 누구도 짐작하기 힘들다. 종횡무진은 이제 하정우의 ‘선택’이 아니라, 그의 ‘스타일’이 돼버렸다. 새 영화 <보트>로 그가 또 한번, 자신의 스타일을 살찌웠다.
참 별난 배우도 다 있다. 하정우는 <보트>를 두고 대뜸 ‘휴식 같은 영화’라고 말한다. 내가 알기로 한국과 일본이 절반씩 투자하고 영진위의 지원금까지 합친 <보트>는 그리 호락호락한 영화가 아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작가 와타나베 아야가 극본을 썼다면 디테일한 캐릭터 묘사가 먼저 떠오르는데다, 청춘영화 <내 청춘에게 고함>을 만든 김영남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으로 미뤄볼 때 배우들의 감정 역시 농도가 다분히 짙어 보인다. 그런데 그는 이 영화에 대해서 “<추격자>와 &l
[하정우] 저는 생활형 배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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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여전히 그대로네요.”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선 원빈이 생각에 잠긴 듯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얼마 전 있었던 <마더>의 제작보고회가 전부니, 군입대 이후로 오늘 인터뷰가 5년 만의 첫 복귀다. 원빈을 보자마자 ‘오늘 참 예쁘다, 귀엽다’를 연발하는 엄마 김혜자의 시선을 잔뜩 받으며 그는 오랜만의 인터뷰에 응했다.
<마더>의 시작은 김혜자다. 김혜자를 향한 봉준호 감독의 구애는 이 영화가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알려져 있었다. 살인 누명을 쓴 아들, 그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엄마의 사투. 이 영화의 방점은 어디까지나 ‘엄마’에 찍혀 있다. 엄마 뒤로 꽁꽁 숨어버린 원빈의 선택은 그래서 조금은 의아하다. 그의 말대로 ‘봉준호 감독과 대선배인 김혜자와의 공연, 그걸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가 어쩌면 정답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두 ‘거인’에게 가려졌을 그의 심적 부담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해서 감독님,
[원빈] 바보는 아니되, 너무 순수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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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의 엄마 혜자가 자는 모습은 괴이하다. 아들 도준이 집에 들어올 때까지는 양말도 벗지 않은 채 부동자세로 누워 있다. 어디선가 바스락 “도준이” 소리만 들리면 뛰쳐나가기 위해서다. 도준이 어디가 그리 예뻤냐는 질문을 받자 김혜자는 사진 촬영 중인 원빈을 향해 몸을 돌려 “도준아” 부른다. 고개를 빼꼼 내밀며 애정을 주체 못하는 목소리로 “뭐 하니?” 하고 묻는다. 의외로 김혜자는 공연하는 동료 배우를 극중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좀체 없다고 한다. <마더>는 달랐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는 통에 차마 “원빈씨”라는 호칭이 나오질 않았다. 40년이 훌쩍 넘은 연기생활에도 불구하고 김혜자는 <마더>에서 처음 해본 일이 많다. 술도 고기도 여태 먹은 것보다 많이 먹었고 노래방도 평생 가본 횟수보다 더 많이 갔다.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거울도 보지 않았다. 연기가 성에 안 차 울어버린 날도 있었다. 복잡한 터미널에서 촬영이 잘 풀리지 않았다
[김혜자] 형언할 수 없어, 그녀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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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너무 맑으셔서’ 첫눈에 김혜자는 원빈의 ‘엄마’로 다가왔다. ‘어쩜 저렇게 예쁠까’ 보고 또 봐도 김혜자는 원빈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처럼 여겨졌다. 엄마와 아들이라는 세상 가장 보편적이고 친근한 호칭으로 둘은 <마더>의 촬영을 마쳤다. <마요네즈> 이후로 10년간 스크린을 떠나 있었던 김혜자, 그리고 군입대로 5년간의 휴지기를 맞았던 원빈은 그래서 <마더>가 더없이 살가운 작품이다. 다시 시작하는 출발선상에서, 그들은 살인사건에 휘말린 영화 속 끔찍함을 잠깐 덜어내고 모자간의 화목한 한때를 연출했다.
[김혜자, 원빈] 살인사건은 덜어내고… 화목한 모자를 연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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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용 감독은 국내 활동이 뜸해서 근황이 무척 궁금한 사람이지만 사실 가장 바쁜 감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엽기적인 그녀>(2001)의 범아시아적인 성공에 힘입어 그는 점차 활동영역을 아시아 전체로 넓혀왔던 것. 유위강의 <데이지>(2006)와 서극의 <여인불괴>(2008)에 시나리오를 써준 것을 비롯해, 2003년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고인기상을 시작으로 일본에서도 수차례 러브콜을 받은 끝에 <싸이보그 그녀>(2008)를 연출하게 됐다. 국내에서의 최근 연출작 <무림여대생>(2008)이 달콤한 성공을 맛보지 못한 것이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남지만 여전히 그를 잡으려는 아시아 각국 프로듀서들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싸이보그 그녀>를 통해 “한국 영화감독 중 일본에서 100억원에 가까운 제작비를 들인 영화를 연출한 최초의 감독”이 된 것도 그래서다. 그래도 그는 ‘한국 감독이 만든 일본영화’ <싸이보그 그녀>
[곽재용] “더 센 여자는 이제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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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베일의 벽은 견고하다. 그는 영화마다 역할의 문을 굳게 걸어잠근 듯 온전히 영화 속에 존재했다. 28kg이나 감량한 뒤 출연한 <머시니스트>의 기계공이나 마술의 힘으로 인생의 함정에 빠지는 <프레스티지>의 마술사, 베르너 헤어초크의 지독한 영화 <레스큐 던>의 포로까지. 그의 인물들은 항상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음영이 매우 뚜렷해 틈이 보이지 않았고 그 안의 베일은 탄탄하고 완벽한 마스크 같았다. 밥 딜런을 7명의 인물로 표현한 토드 헤인즈의 <아임 낫 데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케이트 블란쳇, 히스 레저, 벤 위쇼 등 대부분의 배우들은 뭉그러질 듯 환영처럼 나타났지만 크리스천 베일은 이 그림에 점을 박듯 밥 딜런을 새겼다. 그가 연기한 60대의 정치가와 80대의 전도사는 밥 딜런에 대한 도덕적 양면과 같았다. 영화는 크리스천 베일을 만나 겨우 모습을 드러내는 느낌이다.
크리스천 베일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역할에 봉한다.
[크리스천 베일] Bale is Not T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