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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문득, 이었다. 마감을 끝내고 술자리에 둘러앉아 다음주엔 누굴 인터뷰할까 고민하던 차에 문득 문성근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말했고, 모두들 궁금하다고 했다. 문성근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혹자는 좀처럼 출연하지 않던 드라마에 연이어 얼굴을 보인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실종> 현장에 다녀왔던 기자는 할 말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았다고 전했다. 누군가는 <수>에서의 가성 연기가 대단하다고 했으며, 누군가는 강우석 감독의 <강철중: 공공의 적1-1>에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내년 전주국제영화제 삼인삼색에서 선보일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출연 중일 것이라는 누군가의 전언까지 들었을 때, 배우 문성근이 그 어느 때보다 연기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 다음날 인터뷰 제안을 위해 수화기를 들었고, 그는 전주에 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형 잠깐만!”이라는 홍상수 감독의 목소리가 수차례 들렸고, 결국 인터뷰는 빡빡한 촬영
[문성근] 이제는 ‘나 많이 할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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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현이 돌아왔다. 눈가와 입꼬리를 포물선 모양으로 만들며 씩 웃는, 소년 같은 미소는 그대로인데 양손에는 딸과 손자를 잡고 돌아왔다. 12월4일 개봉하는 <과속스캔들>에서 차태현은 ‘중3 때 실수로 낳은’ 딸이 미혼모가 돼 집으로 찾아오면서 시련을 겪는 인기 DJ 남현수를 연기한다. 2005년까지 대개 아름다운 아가씨의 수더분한 연인이었던 그의 행보는 이제 종잡을 수 없다. 서른셋, 스스로의 나이를 “배우 하기 애매모호한 시점”이라 말하는 차태현은 그럼에도 트로트 가수(<복면달호>)로, 어수룩한 바보(<바보>)로, 돈 많은 시한부 인생(<꽃 찾으러 왔단다>)으로 변신하며 미래를 위한 대비를 게을리하지 않있다. “요즘은 때마다 무얼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들어 있을까. 한 시간 반 동안 그 일부를 훔쳐보았다.
아빠가 되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이가 나오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멜로도 하고 코미디
[차태현] 밝은 영화로 인정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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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 하면 조폭인 줄 안다니까.”
이춘연 씨네2000 대표의 말이 틀리진 않다. 처음 보는 사람이면 ‘어’ 하고 뒷걸음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지난 10년 동안 영화계를 대표한 ‘큰 바위 얼굴’이기도 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영화인회의 등을 이끌며 영화계 대소사에 나섰던 이 대표. 올해 4기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후보군 중 영화인들로부터 가장 큰 신임을 얻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영진위 위원장 후보 접수를 하지 않았다. 대신 영화계에 봉사하느라 상대적으로 소흘했던 제작 일선으로 돌아왔다. 후반작업 중인 김윤석 주연의 <거북이 달린다>에 이어 <여고괴담5> 오디션과 캐스팅을 마무리하느라 여념이 없는 이 대표를 강남의 새 사무실에서 만났다. 쉬지 않고 매년 꼬박꼬박 1편씩 내놓는 것만으로도 부러움을 사는 그였지만, 배고프긴 마찬가지라며 이 대표는 손사래를 쳤다.
-강남으로 출근하니까 어떤가.
=충무로 사무실은 ‘오며 가며, 사랑
[이춘연] “힘들수록 기본에 충실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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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누 리브스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날아온다. 모두가 그를 의심하고 그 역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매트릭스>의 네오와 <콘스탄틴>의 퇴마사 콘스탄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그가 꼭 지구를 구해주리란 것을. <지구가 정지된 날>로부터 무려 60여년, 키아누 리브스는 리메이크작의 선한 외계인 클라투로 찾아온다.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외계인이다. 뉴욕 센트럴파크에 거대한 미확인 비행물체가 착지하고, 그 안에서 정체불명의 한 남자 클라투(키아누 리브스)가 나타난다. 외모는 지구인과 똑같고 영어도 구사한다. 그는 수세기 동안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을 멸하기 위한 거대한 공격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를 비롯한 세계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 때문에 이러한 공격을 감행하려는지, 그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한다. 하지만 인류를 말살해서 지구를 청소하려던 클라투는 점점
[키아누 리브스] 외계인, 지구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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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이돌입니까.
국내 스타의 경우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이 대다수가 한눈에 아이돌이거나 아이돌이 아니지만 일본의 잡지나 인터뷰 프로그램, 혹은 할리우드의 연예 프로그램엔 저 질문에 주저하는 배우들이 꽤 있다. “아이돌이라 불리면 억울하다” 인상짓던 나리미야 히로키나, <바스켓볼 다이어리> 때의 객기를 용기삼아 질문에 조롱을 던지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학창 시절의 이지메 경험으로 대답을 대신하던 아오이 유우 등. 스스로를 아이돌이라 흔쾌히 답하지 못하는 이 장면들은 이상하게 마음을 흔든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섰더니 자신도 모르는 화려한 스타가 인사를 건네는 듯한 느낌의 대변이랄까. 혹은 아이돌이라 규정되어진 일정한 외적 틀 속에 마음까지는 포획당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의 표출이랄까. 스스로를 아이돌이란 수사 속에서 꺼내려는 저 부정의 답변은 멋진 그림처럼만 느껴지던 스타가 마침내 마음을 여는 순간 같다. 당연히 신나하고 밝게 미소지을 줄 알았는데 인상을 쓴다. 마음
[유아인] “수컷은 되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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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성이란 말은 변덕 심한 세월이 자기 입맛에 맞게 여기저기 갖다 붙여놓는 단어다. 유행이 세월따라 변하고 또 변하듯 개성도 어제오늘 운명이 다르다. 90년대 후반 등장했던 일군의 개성파 여자배우들, 공효진, 김민선, 이요원, 배두나의 오늘도 그렇다. 공효진이 패셔니스타의 이미지를 지나 <미쓰 홍당무>로 화려하게 피었고 배두나가 세권의 사진집을 내며 도시의 팬시한 스타로 자리잡았지만 이른 결혼으로 활동이 뜸해진 이요원과 톡톡 튀는 목소리가 이젠 더이상 새롭지 않은 김민선은 다소 심심한 배우가 되어버렸다. 개성파 배우의 길 찾기는 변화무쌍한 세월을 이겨내야 하는 암중모색의 과정이다. 김민선이 2007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두편의 영화 <가면>과 <별빛 속으로>를 찍으며 갑작스레 바쁜 몸가짐을 보여준 건 그래서 조금 흥미로웠다. 워낙 높은 톤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튕겨내는 듯했다. 노출이 화두가 되어버렸지만 그림, 남장, 승마, 사극 등
[김민선] 두려워말자, 다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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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달려온 10년. ‘독립영화’라는 단어 자체가 대중과는 유리된 그 무엇이라 여기던 시선을 뒤로하고 인디스토리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그렇게 달려왔다. 올해는 한국독립영화사를 되새겨볼 때 꽤 의미있는 해다. 국내 독립영화 최초의 제도적 산실이나 다름없는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가 지난 9월로 10주년을 맞았고, 오는 11일이면 그와 무관하지 않은 첫 독립영화 배급회사 인디스토리가 설립된 지 역시 1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지난 90년대, 영화에 목숨 건 시네필들의 전설적 동아리나 다름없는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 유구한 역사와 연대의 기억 속에서 한독협과 인디스토리는 그 애정과 갈증의 결정체였다. 특히 인디스토리의 역사는 바로 한국 독립영화가 좀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대중과 만나고, 한국영화계에 지속적인 활력을 불어넣으며 그 존재를 확인해온 긍지의 기록이다. 그 중심에는 문화학교 서울의 ‘큐브릭 곽’ 사무국장 시절을 거쳐(이메일 아이디는
[곽용수] 이거 참 돈 되는 걸 해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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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대니얼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카지노 로얄>에서 완벽하게 리모델링된 제임스 본드의 모습을 보여줬던 크레이그는 오히려 역대 최고의 제임스 본드로 꼽힌다. 그는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영국의 아카데미상인 BAFTA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브닝 스탠더드>의 영화상에서는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건 2005년 그가 제 6대 제임스 본드로 ‘임명’될 당시의 까칠한 분위기를 생각할 때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제임스 본드와 007 시리즈의 팬임을 자처하는 블로거들이 미친 듯이 쏟아내던 인신공격성 글과 “내 이름은 블랜드(순한, 매력없는), 제임스 블랜드”(Bland, James Bland) 따위의 헤드라인을 뽑아대던 타블로이드 신문들의 공세는 잠잠해졌다. 대니얼 크레이그의 본드 ‘취임’ 반대를 위해 만들어졌던 인터넷 사이트(craignotbond.com)도 사라진 지 오래다. 회고해보자면,
[대니얼 크레이그] 아니, 007이 저런 천한 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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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 필모그래피에서 빼는 경우도 있던데, 나로서는 정말 빼고 싶지 않은 영화예요.” 2004년 촬영을 마쳤지만 4년간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지난 10월16일에야 개봉한 <사과>에 대한 문소리의 애정은 각별하다. 첫 단독 주연작이었다는 점, 시나리오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 영화와 연기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을 하게 했다는 점 등 문소리가 <사과>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당연해 보인다. ‘가오’가 생명인 배우가 기자에게 “왜 나를 인터뷰 안 하냐?”고 따졌을 정도면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거다. 사실, <사과>를 보고 있으면 묘한 느낌이 든다. 현재에 가까울수록 시간이 점점 빨리 흐르는 탓인지, 불과 4년 전인데도 영화 속 풍경과 물건들은 아주 오래전 그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사과>를 보며 4년 전의 자신을 추억한 관객이 있다면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어쩌면 문소리가 <사과>에 그토록 애착
[문소리] 돈으로도 못 살 가르침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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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 홍당무>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고민도 하긴 했는데, 음… 그냥 영화 보고 나면 쟤가 왜 저걸 했는지 알 것 같다. 섣부르게 판단하기에는 영화가 좀… 오묘하지 않나. (출연 결정하기 전에) 이 사람, 저 사람, 주변 몇명에게 시나리오를 읽어봐달라고 했다. 도연 언니도 읽어봤는데,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한번 도전해보라고. 난 걱정도 많고 그랬는데, 걱정 말고 한번 해보라 그러더라고.
-남에게 권유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인데, 전도연씨는 어떤 점을 맘에 들어했나.
=여배우에겐 모험을 할 수 있는 영화여서 그랬던 것 같다. ‘안전빵’이 아니고. 여자들한테는 그런 영화가 잘 없지 않나. 근데 드물게 그런 영화가 왔으니까 한번 해보라고 그랬던 것 같다. 뛰어넘어보라고.
-‘안전빵’이 아니란 말의 뜻은.
=물론 비주얼적으로 많이 망가져야 하는 것도 있었고, 캐릭터 자체가 굉장히 비호감이라…. 왜 많은 팬들은 어떤 작품을 보고 그 캐릭터를 사랑하게
[공효진] “양미숙은 철없이 할 수 있는 20대 연기의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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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부은 듯한 둥근 얼굴에 선머슴처럼 짧은 머리. 한손에 캠코더를 들고 교실 안을 휘젓던 <여고괴담> 속의 말괄량이 여고생. 9년 뒤 지금 그는 괴짜 같은 여자로 성장했다. 개성있는 외모와 자연스러운 연기력의 결합으로 독자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사랑받았고, ‘패셔니스타’로 불리며 스크린과 브라운관 바깥에서 또 다른 스타성까지 증명한 배우 공효진(근데 후자의 경우, 반듯한 외모 대신 개성을 앞세우는 충무로의 젊은 연기파 배우들이 자신의 스타성을 확보할 때 일종의 필요조건처럼 챙기는 타이틀이기도 하다). 그의 최근작인 <미쓰 홍당무>는 공효진이 단지 ‘개성있는 젊은 배우 겸 패셔니스타’라는 걸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도연, 김혜수, 문소리의 뒤를 이어 다음 세대의 30대 여배우들의 행보를 기대케 한다.
“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를 버려. 우리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돼.” 세상은 과연 공평하지 않았다. 끔찍할 정도의 안면홍조증을 가진 <미쓰 홍
[공효진] 공효진의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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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은 초췌해 보였다. (평소에도 그렇긴 하지만) 머리는 정돈되지 않았고, 수염은 웃자라 있었으며, 볼살도 홀쭉한 상태였다. 이런 그의 모습은 그리 낯선 게 아니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을 촬영하던 당시에도 그의 꼴은 비슷했다. 외모를 통해 보내는 신호처럼 그는 김혜자, 원빈과 함께 신작 <마더>를 촬영 중이다. 인터뷰를 가진 10월15일에도 그는 일정을 모두 마친 뒤 경남 고성으로 내려가 이 영화의 12회차 촬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날 봉준호 감독을 만난 건 <마더> 때문이 아니었다. 이날의 ‘공식 주제’는 미셸 공드리, 레오스 카락스와 함께 만든 옴니버스영화 <도쿄!>였다. 봉 감독이 만든 <흔들리는 도쿄>는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한 히키코모리에 관한 30분 남짓한 영화다. 인터뷰를 위해 배정받은 시간 또한 이 영화 러닝타임과 비슷했던 터라 곧바로 딱딱한 질문을 던져야 했다.
-히키
[봉준호] 메시지를 따지자면 서로 만지자, 뭐 이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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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개봉을 앞두고 강이관 감독은 그동안의 마음고생은 싹 잊은 듯했다. 알려졌듯이, 4년 전 촬영을 끝내고 후반작업까지 마쳤지만 <사과>는 곧바로 국내 관객과 조우하지 못했다. 제작사와 투자사는 개봉 시기를 정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으나, 결과는 언제나 미정 혹은 연기였다. 그러는 사이 <사과>는 토론토국제영화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등에서 수상했다.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제외하고는 국내 관객과 만나지 못한 상황에서 그가 해외영화제 수상의 기쁨을 만끽했을 리 없다.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14기)와 <세친구>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등의 연출부를 거친 뒤, 뒤늦게 데뷔전을 치르는 강이관 감독. 개봉을 일주일여 앞둔 10월8일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지난 4년 동안의 마음고생보다 지난 4년 동안 숙성시킨 <사과>에 대해 물었다. 그것이 오랫동안 관객과의 만남
[강이관]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을 새롭게 바라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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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하면 병신, 제대로 해도 병신 소리 들을 게 뻔한 역할이다.” 김주혁의 표현이 이렇게까지 거칠어진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그가 연기하는 덕훈은 말마따나 정상이 아니다. 얼핏 보면 그는 대한민국 표본남에 불과하다. 평범한 직장에 다니며 축구 보기를 즐겨하고, 알콩달콩한 연애 끝에 소박한 가정을 꾸리길 꿈꾸는 그런 표본. 그런데 결혼과 동시에 이 남자의 상식은 끝난다. 아내 인아가 또 한명의 남편을 갖겠다는, 말도 안 되는 결심을 선언한 것. 동거도 바람도 이혼도 아닌 이건 어디까지나 아내가 두집 살림을 하겠다는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비윤리적인 ‘쉣!’이 절로 튀어나오는 몹쓸 제안이다. 그런데, 이 남자 멍청한 걸까? 지극히 상식적이던 덕훈은 판타지 같은 인아의 제안에 덜컥 ‘예스’를 해버린다.
일차적 비난은 인아에게 돌아가겠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현실 가능케 한 이 남자 역시 비난의 화살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
[김주혁] 더이상 멜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