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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몸져눕지 않았다면, 대학 입시 전날 맹장염으로 끙끙대지 않았다면, 미용실에서 여성감독 기사를 보지 못했다면, 벼락치기로 이영일의 <영화개론>을 달달 욀 만한 머리를 갖지 못했다면, 어수룩한 아이디어 때문에 개그맨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금세 대중에게 잊혀졌다면, 우리가 이경실을 머리 풀어헤치고 곗돈 찾아 삼만리 대장정에 동참한 <걸스카우트>의 오봉순으로 만날 수 있었을까. 도루묵 여사와 ‘똑 사세요∼’의 슈퍼 개그맨 이경실, TV와 라디오를 넘나드는 팔방 MC 이경실, 시트콤을 시작으로 이제는 스크린 신고식까지 제대로 치른 연기자 이경실을 만났다. 참고로 연예계에 입문한 지 20년 넘는 경력을 가진 여걸과의 대면은 때론 좀 불편하기도 했는데, 조금이라도 버벅거리면 가차없이 질문 패스를 요구하는 바람에 인터뷰 내내 적잖이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기자시사회에서 영화를 처음 봤을 텐데.
=제작발표회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이경실] 그러나, 도전할 게 남아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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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속 캐릭터) 악인 vs 선인
조금 얄밉게 말해볼까. 이중인격을 연기하는 살인범(<프라이멀 피어>)? 이건 사실 ‘자신이 천재임을 증명하고픈 꼬마 배우의 묘기대행진’을 위한 완벽한 레퍼토리일 뿐이다. 더듬거리는 말투로 눈을 조금 풀고, 입을 헤벌린 상태에서 눈을 뒤집고 욕을 내뱉는 모드로 순식간에 전환하면 그만 아닌가. 정작 중요한 건 그 이후다. 묘기는 결국 연기임을 증명해야 한다. 에드워드 노튼은 그걸 했다. 맷 데이먼에게 돌아간 역을 위해 보았던 <레인메이커>의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으로 흥행가도를 달리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고사했던 역할로 이름을 알린 직후, 그는 피고인에서 변호사로 순식간에 자리를 바꿨다. 너무 심심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찼던 약혼녀를 다시 받아들이는 뉴욕의 순정파 변호사(<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그리고 평생 래리 플린트의 곁을 지켰던 정의로운 변호사
<인크레더블 헐크>의 에드워드 노튼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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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멀 피어>의 마지막 장면,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베테랑 변호사, 리처드 기어의 표정은 관객의 심정을 대변한다. ‘내가 어떻게… 이, 이런 초짜에게 당할 수가!’”
사뭇 평범한 스릴러 <프라이멀 피어>의 깜짝 반전은 실로 쇼킹했다. 모든 놀라움은 영문도 모른 채 누명을 뒤집어쓴 19살 소년에서, 세상 모두를 감쪽같이 속인 살인마로 변신한 27살 무명 배우의 공으로 돌려야 했다. 그로부터 12년. 오는 6월12일 개봉을 앞둔 <인크레더블 헐크> 속에서 에드워드 노튼은 헐크가 된다. 배우, 제작자, 시나리오작가, 감독, 심지어 편집자로 할리우드를 종횡무진하던 괴물 배우의 ‘인크레더블’ 변신 묘기가 절정에 이른 것일까. “극단의 존재들이 있다. 노튼은 톱날 위를 걸어온 배우다.”(2000년 4월 <타임>) 그가 걸었던 그 모든 톱날을 살피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대조법이 제격이다. 캐릭터로서, 배우로서, 영화인으로서, 두 얼굴의 사나이
[에드워드 노튼] 두얼굴을 가진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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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식은 노동운동 전문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본인은 그런 딱지가 끔찍한 부담이라는데, 10년 넘게 한눈팔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뤄왔으니 이제 와서 쉽게 떼낼 수 있는 꼬리표도 아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상영됐던 <필승 ver2.0 연영석>은 음악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의 일관된 궤적을 외려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품. 무엇보다 그가 필승 시리즈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 택한 민중가수 연영석이 이를 증명한다. “노동운동에 헌신하는 투사”가 아니라는 연영석은 누구보다 앞장서 삶의 불합리한 조건들을 쑤시고 헤집는 데 열심이다. “눈을 뜨십시오. 이건 현실이 아닙니다.” 한때 극장에서 40번 넘게 봤다는 <에이리언2>의 개봉 당시 신문광고를 빗대어 태준식 감독은 말한다. “눈을 제발 뜨세요. 이건 현실이에요.” 연영석의 노래를 빌려 진심을 전하고 싶은 태준식 감독을 만났다.
-연영석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날을 기억하나.
=7,
[태준식] “눈을 뜨세요, 이건 현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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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이란 두 글자가 그녀의 맨 얼굴에 쓰여 있었다. 드라마 촬영과 영화 홍보를 병행하는 탓일까 했더니, 전날 팬 카페에 글을 쓰느라 잠을 못 잤단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온갖 추측성 기사가 나오는데 화가 나더라. 그래서 적어도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에게만큼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쓴 거였다.” 그럴 만도 하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지난 3년 동안 김선아에게는 많은 소문과 그로 인한 부침이 있었다. 다시 나타난 그녀에게 수많은 질문공세가 이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없는 걸 있다고 하지 못하고, 있는 걸 없다고 하지 못하는” 김선아는 그 모든 질문에 꼬박꼬박 답하고 있다. 문제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루머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모든 인터뷰에서 같은 걸 물어보는 데 정말 지겹다. 살 이야기, 루머 이야기, 소송 이야기…. 이제는 누가 물어보면 한대 때리고 싶다니까. (웃음)” 그 순간, 차라리 한
[김선아] 온갖 추측성 기사에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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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 이 배우 요즘 상종가인 줄 금세 알겠다.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원하는 답변을 척척 내놓는 걸 보면 최근에 인터뷰를 많이 가졌다는 증거다. 하긴 <히트>에서의 미키성식, <비스티 보이즈>에서의 스패너 사장, <강적들>에서의 우직한 경호실장까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출연한 영화, 드라마에서 배우로서의 존재 표식을 확실히 했으니 언론의 관심이 과한 건 아니다. “시나리오에 대한 분석력이 조금 더 생겼으면 좋겠고”, “한컷이라도 내가 뭔가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고”라는 욕심을 넘어 “두편의 영화 아이템 기획을 진행 중이고”, “할리우드영화에서 갱 맛 나는 영어를 내뱉는 역할도 맡고 싶다”는 포부까지 내비치는 마동석.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가 탄탄한 근육 안 배우로서의 속살을 맘껏 보여줄 때가 언제쯤 될지 더 궁금해졌다.
-<강적들>에선 경상도 사투리다. <히트>에서는 전라도 사투리였는데.
=좀더 시골스러운 오리지널 사
[마동석] 난 음지, 양지 안 가리던 잡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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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차인표에게 궁금한 건 없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의 의도는 명백해 보였다. 아내인 신애라와 함께 쌓아온 선행들이 모든 질문의 답변일 것이다. 그런 차인표에게 <크로싱>을 촬영하면서 보고 느꼈던 바를 듣는다고 한다면, 과연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에게 <크로싱>은 신의 뜻이었거나, 인간 차인표가 가진 가치관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에게서는 너무나 따뜻하고 온유한 이야기만 들을 게 뻔했다. 하지만 그게 차인표의 본령이라면 마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차인표란 배우를 이야기할 때, <크로싱>을 더욱 자세히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했다. 차인표가 연기한 <크로싱>의 용수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다. 두 아이를 입양하고,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품는 실제의 차인표와 오롯이 겹치는 인물이다. 아직 <크로싱>은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그와의 대화를 통해
[차인표] 흔들림 없는 진실된 자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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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은 <즐거운 인생>이 개봉하자마자 다음 영화인 <님은 먼곳에> 촬영에 들어갔다. 방금 막 개봉한 영화의 흥행을 살펴볼 여유도 없이 다음 이야기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 셈이다. 그는 <왕의 남자>의 1천만 관객 돌파 이후 매해 한편씩 영화를 찍어 세상에 공개했고, 세상이 그 영화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다음 영화 속으로 들어갔다. 승률은 높아 <황산벌> 이후 찍은 세편의 영화 중 두편이 흥행에 성공했고, 나머지 한편 <즐거운 인생>도 크지 않은 손실을 남겼다. 세상의 소리에 무감각한 남자, 자신의 심지가 굳은 남자. 이준익 감독은 트렌드를 모른다. 아니, 모르려 한다. 애써 관객의 마음을 읽고 그에 맞는 이야기를 그리지 않는다. 한물간 록스타의 이야기, 광대들의 애절한 사연, 사투리로 조롱하는 삼국시대의 권력관계. 이게 어디 21세기 상업영화의 감각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의 영화들은 세상의 뒤통수를 때리듯 흥
[이준익] “서사는 관객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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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는 3년 전 <씨네21>과의 인터뷰를 섬세하게 기억했다. 영화지와의 첫 인터뷰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3년 전 그는 김선아 주연의 코미디 <잠복근무>에서 야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강력계 형사로 출연했다. “제가 그때 그런 말도 하지 않았나요?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출퇴근하듯 촬영장을 드나드는 게 아니라 늘 벅찬 호흡으로 달려가는 영화인이고 싶다고요.” 하정우는 그 당시 인터뷰에서 나온 질문과 자신의 대답, 기사 내용과 사진 모양까지 기억해서 읊었다. 그때 그는 도저히 신인 같지 않은 자신감과 큰 꿈을 내비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3년 뒤. 그에게는 7편의 필모그래피가 쌓였다. 그건 단순한 7편이 아니다. <잠복근무>와 같은 해 첫 주연작 <용서받지 못한 자>로 국내의 열렬한 주목을 얻은 것뿐 아니라 칸 카펫을 밟았고 이듬해 김기덕의 <시간>이 칸 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두 번째 칸 타이틀을 얻었다. 2007년
[하정우] 내 선택이 맞다는 걸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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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계상은 예상 밖이다. 낯 가리지 않는 서글함, 툭하면 눈썹을 씰룩거리는 요상한 표정, 말을 거르지 않는 솔직한 태도. 하긴 영화들도 그랬다. 희망이 엇나간 청춘의 <발레교습소>, 오랜 연애의 구질함들이 들춰지는 <6년째 연애중>, 바닥까지 한심한 호스트 인생 <비스티 보이즈>. 단순하고 밝은 삶은 그 주위에 없었다. 직선적인 영웅물보다 흐트러진 사람 이야기가 좋다는 올해 만 서른의 늦깎이 연기자. 그렇지만 충무로의 신선한 얼굴. 그리고 범상찮은 연기력의 동갑내기 배우 곁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힘. 2006년 군 제대 뒤 쉬지 않고 연기 활동을 이어온 그는, 단연 주목할 만한 젊은 배우 중 하나다.
-기자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봤다고 했는데, 어땠나.
=영화로선 괜찮았고, 배우로선 좀 섭섭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했는데 편집된 부분들이 있어서. 지원(윤진서)과의 이야기들이 많이 잘렸더라. 그래서 승우가 왜 지원에게
[윤계상]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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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원 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의 표정은 밝은 편이었다. 충무로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달리 그의 얼굴을 환하게 만든 첫 번째 요소는 그가 실질적으로 주도한 첫 글로벌 프로젝트 <삼국지: 용의 부활>이 중화권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었을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최근 발표한 200억원짜리 드라마 <아이리스>에 대한 기대감이었을 것이다. 물론 영세한 충무로 영화사들과 달리 안정된 자본을 바탕으로 여러 개의 글로벌 프로젝트와 다양한 시도를 벌이고 있다는 자신감 또한 그 안에 자리하고 있었을 터. “하비 웨인스타인과 같은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그로부터 현재 펼쳐놓은 사업들과 향후 계획에 관해 들어봤다.
-<삼국지: 용의 부활>이 선전하는 분위기다.
=사실 그렇게까지 기대를 안 했다. 비슷한 장르로 국내에서 흥행이 된 건 <영웅> <연인> 정도였고 <황후花>가 조금 된 걸로 알고 있다. 우리는 100만명을 넘
[정태원] 한류 살릴 킬러 콘텐츠를 만들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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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8일 영화진흥위원 후보를 추천할 임원추천위원회가 결성되면서 제4기 영화진흥위원회의 인선작업이 본격화됐다. 4기 영진위 구성은 영화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1999년 김대중 정부 아래서 출범한 이후 영진위는 노무현 정권까지 3개 기수를 거쳐오며 비교적 일관된 노선을 유지해왔지만, 이명박 정부의 영화정책이 아직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차기 영진위의 면면과 노선이 거꾸로 새 정부의 영화정책을 결정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현승 영진위원장 직무대행으로부터 차기 영진위의 구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3월7일 안정숙 전 위원장의 사퇴 이후 영진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그는 “임기가 끝나는 5월27일 이후로는 영화정책과 영화산업쪽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내 연출작에만 몰두하겠다”면서도 150분에 걸쳐 영화정책 전반과 영진위의 향후 계획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지면의 제한 때문에 이중 극히 일부분만 담게 돼 아쉽다.
-4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를
[이현승] 미국 워너 사장이라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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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주봉은 딴 세상 사람 같다. 굳이 비교하자면, 바람 피우다 아내 봉순에게 뒤통수를 맞는 <경축! 우리사랑>의 남편보다는 쓱 다가와 성남에게 아무렇지 않게 하이파이브를 청하는 <밤과 낮>의 민박집 주인을 더 닮았다. 인터뷰가 수월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질문에 곧장 답변을 내놓는 걸 주저했고, 말을 입 안에서 자주 굴렸으며, 상당한 양의 말을 꿀꺽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대신 그는 파리에서 만난 기인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10분 동안 마임을 선보였다. 손님을 받지 않는 카페의 오후. 종업원들은 모두 시에스타를 즐기고 있는데(이 카페의 주인은 <두근두근 체인지>의 신정구 작가다), 직접 만든 간이 무대에서 기주봉은 근육을 자유롭게 놀렸다. 미동없던 그의 얼굴 주름선이 살아났고, 그의 언어 박동 또한 기적적으로 빨라졌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언어, 그 자체는 불충분한 보조수단 이상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고,
[기주봉] “이제 되새김질을 할 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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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불어라 봄바람>을 내놓은 이후 장항준 감독은 계속 수면 아래 있었다. 그가 준비해온 <꿈의 시작>과 <메이드 인 홍콩>이라는 대작 프로젝트는 촬영을 코앞에 둔 시점에 운 없게도 좌절의 호수 속으로 빠져들었다. <라이터를 켜라> 같은 연출작이나 <북경반점> <귀신이 산다> 같은 시나리오를 통해 독특한 코미디 세계를 구축해온 그에 대한 궁금증이 치솟아 오를 무렵, 그는 영화를 들고 갑자기 나타났다. 그것도 한꺼번에 두편을. 그가 만든 <전투의 매너>와 <음란한 사회>는 케이블 채널 OCN이 주최하는 ‘무비배틀’에서 김정우 감독이 만든 두편의 영화와 격돌을 벌이게 된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여자와 가전제품 대리점 직원인 남자의 연애담을 그린 <전투의 매너>는 4월17일 극장에서, 인생에서 쓴맛을 본 세 남자가 성인용품을 팔면서 희망을 찾게 된다는 <음란한 사회>는 4월25일
[장항준] “인생은 즐겁다. 언제 뒤집어질 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