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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안 것은 우리가 아니었고 그가 처음 사랑에 빠진 것은 우리가 아닌 그들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애증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안 그는 그들의 마음을 열고, 맨 얼굴을 봤다. 우리에겐, 아무리 해도 닿을 수 없는 북한이나, 그 북한에 대해 무려 세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대니얼 고든이나, 생소하긴 매한가지다. 1966년 영국월드컵 당시 이탈리아를 누른 북한대표팀의 과거와 오늘을 보여준 <천리마 축구단>을 만들 당시, 그는 그저 불가능에 도전하는 광적인 축구팬일 뿐이었다. 매스게임에 임하는 두 소녀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어떤 나라>는 거대한 조직 안의 개인이 궁금했을 뿐이란다. 서양인 최초로 북한 당국의 절대적인 협조 속에서 그 누구도 담지 못했던 북한의 모습을 담았던 이 다큐멘터리스트는, 자신의 영화가 정치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한사코 부인한다. 1960년대 38선을 넘어 북으로 향한 미군 병사 네명 중 한명인 제임스 드레스녹의 현재를 궁금해할 때도, 논쟁
“개인과 개인이라면, 미국인과 이라크인이라도 잘 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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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아는 즉물적인 사람이다. 손가락 끝에 와닿는 바로 그 순간의 감촉만이 그에게 소스라치게 생생한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극한의 고통이나 공포, 행복, 슬픔이라 할지라도 허공을 맴도는 추상적인 것이라면 그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자칫 까탈스러울 듯한 성정에도 그를 인터뷰한 많은 기사들이 ‘털털하다’는 표현을 내세웠듯, 한편으로 염정아는 무던히 솔직하고 무심한 사람이기도 하다. 인터뷰 중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우물거리며 말을 내뱉고 웬만한 질문에는 시원시원하게 단답형으로 답하는 한편 의외로 코믹한 면도 많았다. 그러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 금방이라도 적대감을 표시할 것 같은 날카로운 신경에, “여동생 둘, 남동생 하나”를 거느린 큰언니다운 오지랖이라니. 탁재훈과 함께 출연한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아마 후자의 염정아에 조금 더 집중하는 작품일 것이다.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남녀가 하룻밤, 아니 두밤의 불장난을 계기로 웨딩마치를 올리지만 결혼한 지 하루 만에
연기는 한다 거짓말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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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은 맹독성이다. 그것도 내성이 없는 독이다. 보면 볼수록 다시 보게 되고, 뒤돌아서면 금세 잔영이 서리는 그의 얼굴은 별다른 징후를 드러내지 않고 시청자를 중독시켜왔다. 코미디계에서는 그가 만들어낸 옥동자와 마빡이를 가리켜 ‘독하고 징한 캐릭터’라고 평가했고, 그의 아내인 황규림씨는 “사귄 지 2개월이 지나자 그가 탤런트 지성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성인보다 전이가 빠른 아이들에게는 특히 중독성이 심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마빡이를 본 아이들은 2년6개월이나 무대에 올랐던 옥동자를 바로 잊어버리고 자신의 이마를 때리기 시작했으니까. “내가 원래 보다보면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남이다. (웃음)”
마빡이 정종철이 이번에는 영화라는 독을 품었다. 영화 <챔피언 마빡이>는 <마법경찰 갈갈이와 옥동자> 이후 두 번째로 정종철 자신의 캐릭터를 내건 작품이자, 첫 단독 주연작이다. 제목만 들어도 지금까지 개그맨들이 단체 출연한 아동영화들에 대한
“내 키가 3cm만 더 작았다면 좋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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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은 인터뷰를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라고 <만남의 광장> 영화사에서 말해주었다. 못 미더워서 직접 물어보니 “인터뷰가 싫다”고 본인이 답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에 하는 일적인 대화가 싫다. 똑같은 말만 반복해야 하고, 어떤 상대를 만나서 대화해야 할지도 알 수 없고. 인터뷰는 정말 힘들고 피곤하다.” 그래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그렇게 힘이 드나’라고 되물으니 “우리 하루만 바꿔서 해볼까?”라고 그가 또 되물었다. 맞다. 임창정은 이번 인터뷰를 지난 2005년 2월 인터뷰와의 연장선상에서, 기자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단계의 친밀감을 갖고 임했다. 배우와 기자라는 직업적 명찰을 떼고 보면 손아랫사람인 기자에게 평어를 쓰고 스스로를 “오빠”라고 칭하는 게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업무적인 관점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보니 낯선 건 사실이다. 그런데 묻는 질문에 모두 답할 뿐 아니라 친하다는 이유를 들어 더 많은 이야기를 덤으로 얹어놓게 되면 사실 일적인
“내가 한번이라도 코미디 연기 하는 거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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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와일드카드> 이후 4년 만의 영화다. 그동안 많은 제의가 있었을 텐데.
=꼭 이거다, 저거다 가리는 건 없지만 <쾌걸춘향> 이후로는 아무래도 드라마쪽 캐릭터가 나에게 맞는 옷 같더라. 영화쪽에서는 내가 못되게 생겼는지 ‘센’ 역할이 자주 들어왔다. (웃음) 사람들은 내 실제 성격까지 그런 줄 아는 것 같더라. 내 주위 사람들은 다들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말이지. (웃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건가.
=하하. 다들 그렇지 않다고 그러던데.
-<지금 사랑하는…>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봤나.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얘들은 왜 이러지? 이 영화는 일단 ‘어른’ 영화지 않나. 나이가 어느 정도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촬영하면서 조금은 알 것 같더라. 아, 사랑이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그런 거.
-어른 영화? 20대 후반이고 결혼까지 했는데, 충분히 어른이지
결혼해도 달라진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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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달라져서 그런가. <뷰티풀 선데이> 때보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
=그때는 역할이 피폐했지 않나. 혼자 홍보하러 다니느라 많이 지치고, 여기저기 다크서클 생기고.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이 화나셨어요, 그랬었다. (웃음) 지금은 확실히 좋아지긴 했는데, 사실 어제는 잠을 거의 못 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 계약을 했는데, 감정이 묘한 게 잠이 안 오더라. 뿌듯하기도 하면서 불안하기도 하고. 나를 위해 이렇게 큰돈을 써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어색했다고 할까. 뭐, 그래도 기분은 좋더라. (웃음)
-많이 듣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 이제 결혼만 하면 되겠다. (웃음)
=가장 어려운 부분이 그거다. 감정이라는 건 거래를 해서 되는 게 아니잖나. 벌써 늦었는데, 천천히 하지 뭐. 부모님은 올해를 데드라인으로 하셨다는데 그렇다고 뭐, 날 죽일 거야? (웃음) 좀 염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나는 인생은 혼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동반자를 만나는 거다. 조언을
폼 재지 말고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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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남자친구> 이후 2년 만의 영화고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을 제외한다면 한동안 활동이 뜸했다. 뭐하고 지냈나.
=글쎄. 특별히 뭐했나 물어보니까 생각이 안 나는데. (웃음) 그냥 혼자 지냈다. 운 좋게도 시나리오는 참 많이 받았다. 열심히 읽어본 것만 20~30편은 되는 것 같다.
-어떤 기준으로 고르나.
=우선 장르에서 반은 버린다. <B형 남자친구> 이후에 코미디는 안 하겠다고 생각해서 모든 코미디를 다 버렸다. 그 다음에는 재벌 2세를 다 버렸고. (웃음)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마침 내가 혼자 가는 영화보다 좋은 배우들하고 같이 가는 게 필요하겠다 생각하던 차에 들어와서 쉽게 선택했다.
-캐릭터가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다.
=원래는 영준이 민재보다 나이도 많고, 사회적으로도 훨씬 안정된 역할이었는데 내가 맡게 되면서 젊어졌다. 본래 전형적인 CEO 이미지였던 것을 보수적이지 않고, 오히려 보통
내가 봐서 멋있을 때까지만 연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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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 보인다. 드라마 <칼잡이 오수정> 촬영 스케줄이 빡빡한가보다.
=내가 안 나오는 장면이 없어서 정신없이 찍고 있다. 진행이 빨라서 좋기는 한데, 적응이 힘들다. 요즘은 체력이 달리는 것도 같다. 나도 내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지. 그동안 너무 안 쉬었나봐. (웃음)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의 시나리오에서는 어떤 매력을 느꼈나.
=영화가 다루는 묘한 감정들이 재밌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기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부부로 나오는데다가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니까 이해하기도 힘들었고. 남편이 싫어진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것 아닌가. 그런 감정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해하기가 힘들었다는 건 실제로는 연애를 하면서 양다리를 걸친 적이 없었다는 건가.
=양다리를 걸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물론 누군가를 만나면서 다른 남자를 괜찮다고 생각해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내가 먼저 차단하려고 했던 것 같다. 생각해
후배를 위해서도 하나의 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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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친절하다. 그 여자는 차분하다. 그 남자는 무례하다. 그 여자는 도발적이다. 네명의 기혼남녀가 파트너를 바꿔 왈츠를 추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욕심 많은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다. 매일같이 사랑을 고백하는 커플이나 한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는 커플이나 모두 사랑에 허기진 상태. 남들 보기엔 행복에 젖어 사는 듯한 그들이 엇갈린 만남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감정의 배고픔은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진 누군가를 볼 때 더욱 커진다. 다정다감한 남편에게는 그 여자의 남편 같은 카리스마가 없고, 애교 많은 아내에게는 그 남자의 아내가 가진 신비스러움이 없다.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건조한 남편에게는 그 여자의 남편 같은 웃음이 없고, 말없이 조용한 아내에게는 그 남자의 아내 같은 발랄함이 없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에서 각기 다른 네명의 도시남녀를 연기한 네명의 배우 또한 이들의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렸다. “열정적이고
그들과 그녀들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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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C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뭔가 불만에 가득하고 귀찮다는 듯한 그의 표정은 이 인터뷰가 잘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막상 대화가 시작되자 그는 솔직한 속내를 정연한 논리로 줄줄 풀어냈다. 어쩌면 김C라는 인물 자체가 첫인상만으로는 해독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인상과 달리 그는 탁월한 미성의 소유자이며, 어린 날 10년간 운동선수로 뛰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화 등 문화 전반에 관한 지식이 풍부하다. 그런 그이기에 <별빛 속으로>를 통해 영화 연기자로 데뷔한다고 했을 때도 별다른 놀라움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 영화에서 ‘노란 셔츠’라는 역할을 맡아 그리 많지 않은 분량에 출연했지만, 영화의 중심이 되는 수영(정경호)과 수지(차수연)의 결정적 연결고리가 된다. 하지만 ‘노란 셔츠’는 잠깐 등장했다가 금세 사라지는 탓에 그 정체를 확실히 알
“내가 문화부 장관 같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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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정말 좋아해요.” “저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 두 마디 뒤에 그는 “여행을 가면 꼭 친구를 만들어요. 그래서 전세계에 친구가 있죠”라고 이었다. 마치 그게 날마다 꾸는 꿈인 것처럼. 몽상가의 기질을 가진 윤진서는 아니나 다를까,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을 너무나 좋아한다며, 그 영화와 사랑에 빠져서 그걸 몇번이나 봤다고 했다. “그 주인공들이 꼭 저 같았어요! 저도 걔네들 사이에 끼어서 같이 루브르박물관을 막 뛰어다니고 싶었어요!” 소녀처럼 주먹을 꼭 쥔다. 윤진서는 강경옥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공포물 <두사람이다>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소년의 ‘옆집 내 첫사랑’ 같은 이미지로 시작해서 엉뚱하거나 깍쟁이 같은 여자들을 거치고 최근에는 바람 피우는 유부녀를 능청스레 연기해낸 윤진서는 <올드보이> 이후 4년 동안 느리다면 느리게 자기 길을 걸어왔다. <두사람이다>에 나온 것과 동시에 장률 감독의 신작 <이
진서는 한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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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왔다. 올해 부천영화제에 깜짝 초청된 미이케 다카시의 신작 <용이 간다>는 숫제 놀이다. 플레이스테이션용 액션 게임 <류가 고토쿠>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영화=놀이”라는 미이케의 공식에 아주 잘 들어맞는 영화로, 끈적끈적한 신주쿠 뒷골목의 인간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즐겁게 노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미이케 다카시 영화지!’라며 무릎을 친다면 미이케의 면박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일년에 서너편의 영화를 뚝딱뚝딱 주문생산하는 열정적인 장인이다. 제작사에서 부탁하는 영화라면 웬만한 것은 다 오케이다. 여전히 비디오용 V시네마와 TV드라마를 만들면서 때때로(최근에는 종종) 상업적인 메이저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감독은 영화를 열심히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미이케는 또 “감독의 개성을 자의적으로 드러내는 영화는 재미없다”고 내뱉는 남자이기도 하다.
미이케 다카시는 부천에 도착하기 겨우 이틀 전에 신작 <스키야키 웨스턴
“일본영화가 호황이라는 건 절대 인정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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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거울도 못 봤는데….” 인터뷰 전에 사진부터 찍자고 했더니 최은희 선생은 같이 자리한 며느리에게 거울부터 달라 한다. 선생의 첫마디를 해석하면 이렇다. “나 할머니 아냐. 나 여배우야!” 카페 안의 조그마한 정원으로 선생을 인도했는데, 이번엔 사진기자가 호되게 당한다. 시선을 카메라쪽으로 유인하려는 사진기자에게 선생은 계속 “나, 정사진은 안 찍는데…”라며 놀리듯 허공으로 눈빛을 쏘아올린다. 일흔을 넘긴 연세지만, 여전히 배우로 살아가는 최은희 선생과의 만남은 다소 진땀나는 승강이로 시작됐다. 196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거대한 영화왕국 신필름의 안살림을 챙겼으며, 1978년 납북된 뒤에는 북한영화에도 영향을 끼친 선생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어디서부터 여쭤야 하는 것일까. 고령에도 불구하고 고(故) 신상옥 감독을 기리기 위한 2007 공주 천마 신상옥 청년영화제(8월10∼14일) 준비에 여념이 없는 선생을 대면하자마자 숨이 턱 막혀왔다. 눈치챈 것일까. 질문지를
“앞으로 나하고 영화 같이 하자고 한 게 프러포즈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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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은 짐작보다 달변이었다. 비유는 풍성했고 예시를 끌어쓰거나 농담을 섞어가며 마음을 녹였다. 울림있는 목소리와 진심어린 어조. 대학 시절 이태원에서 스키복을 팔며 대단한 세일즈 실력을 뽐냈다는 일화는 어쩌면 농담처럼 웃어넘길 일이 아니었다. 우린 모두 그 목소리 때문에 김명민, 혹은 장준혁의 마력에 묘하게 이끌리지 않았던가. <리턴> 개봉을 앞두고 만난 김명민은 <하얀거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듯했다. 동시에 장준혁의 그림자를 끊임없이 의식하기에는 10여년의 연기생활 동안 그가 끈질기게 쌓은 탑이 그보다 훨씬 크고 높고 단단해 보였다. 적지 않은 작품에서 조·단역으로 단련받고, <카이스트>로 얼굴을 알리고, <뜨거운 것이 좋아>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등을 거치고, <소름>으로 스크린에 데뷔하고, <거울 속으로>와 <스턴트맨>을 이겨내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하
깊고 깊은 그 남자의 음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