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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를 만났다. 스키점프 선수 5인. 국내에선 더도 덜도 없는 점프대 위 남자들이다. 주장 하정우, 7번 김동욱, 12번 김지석, 20번 최재환, 그리고 후보선수 38번 이재응. 개봉을 앞둔 이들은 마치 시상식을 앞둔 사람들 같았다. 팔팔 끓는 에너지가 흥분과 긴장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과거를 곱씹는 표정은 진지했다. 3개월의 훈련, 그리고 7개월의 촬영. 이들은 완전히 국가대표가 됐는지 모른다. 영화 <국가대표>는 배우의 열정을 그대로 담아 승리의 희열을 뽑아낸다. 좌충우돌과 시련을 한방에 날리며 잊지 못할 행복의 순간을 보여준다. 그렇게 관객을 웃고 울게 한다. 누구나 꿈꾸는 열정과 승리. 그 결실은 어떻게 나온 걸까.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하정우: 사실 모두 처음 만나는 거였어요. 근데 시나리오의 인물 개성이 뚜렷해서 그런지 낯설지 않았어요. 타이거월드라고 부천의 실내스키장에서 만났거든요. 바로 투입돼서 연습을 했어요. 그래서 배우 김지석, 최
<국가대표> 다섯 남자의 짜릿한 촬영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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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은 이미 <해운대>로만 윤제균 감독과 2번의 인터뷰를 가졌다. 촬영 전에 한번, 촬영 뒤에 또 한번. 게다가 그가 쓴 작업일지도 실었다. 그런데도 다시 인터뷰를 요청했다. 스스로 “언론과 비평의 대척점에 있던 가장 대표적인 감독”이라고 말하는 윤제균 감독에게도 생경한 풍경일 것이다. “한 작품을 가지고 이렇게 2, 3번 나눠서 인터뷰한 건 처음이라 얼떨떨하다. 내가 워낙 <씨네21>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어서…. (웃음)” 정확히 말하면, 윤제균 감독의 영화 중에서 <해운대>가 가장 생경한 작품인 까닭이다. 전작인 <1번가의 기적>에서 변화를 꾀했던 그는 <해운대>를 통해 그때의 변화가 잠깐의 외출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했다. 이전의 인터뷰가 화제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던 CG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제는 영화 속 세계에 대해 다시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쌈마이 코미디 감독’으로 불리던 그는 어떻게 대중과 평단
[윤제균] 아이디어로 할리우드에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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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억원이라는 큰 순제작비,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촬영, ‘차우’라 불리는 식인 멧돼지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소재 등으로 알려져왔던 <차우>가 드디어 몸집을 드러냈다. 알려진 정보만을 종합한다면 분명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됐을 법한 이 영화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예상을 엇나가게 하는 면모를 갖고 있다.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거대한 스케일이나 숨막히는 액션쪽보다는 무질서와 질서 사이에서 묘한 균형을 이루는 장르들의 혼합과 해괴한 캐릭터들에서 비롯되는 절묘한 웃음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식인 멧돼지도, 배우들도, 시각효과도 아닌 <시실리 2km>에 이어 두 번째 장편영화를 만든 신정원 감독인 셈이다. 전작을 통해 독한 풍자와 엇박자의 유머로 관객을 즐겁게 했던 그는 <차우>에서 그 지평을 ‘괴수 어드벤처 영화’로까지 연장했다. 영화가 드러내는 경쾌함과 달리 표정없는 얼굴과 과묵한 말투를 가진 신정원 감독의 심경을 파
[신정원] “재밌는 영화라는 말 듣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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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다. 그리고 설경구다.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를 보고 두 이름이 묘하게 어울린다 생각했다. 극한의 자연재앙과 터질 듯이 뜨거운 남자의 만남은 보기 좋은 대결 같았다. 이솝우화 중 태양과 구름의 싸움도 생각났다. 멋진 힘 겨루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설경구는 항상 지글거리는 감정을 품은 남자였다. <공공의 적> 시리즈의 강철중은 세상을 버티는 것 자체가 힘든 인물이었고 <그놈 목소리>의 아버지는 딸을 잃은 슬픔을 누구나 원통해할 공공의 아픔으로 돌린 남자였다. 초기작인 <박하사탕>, 1천만 관객의 타이틀을 준 <실미도>, 몸을 20kg나 불렸던 <역도산>에서도 그렇다. 그는 항상 핏대를 세우는 남자였다. 눈에는 말 못한 울분과 분노가 넘쳤고 몸은 금방이라도 튕겨나갈 것 같았다. 설경구는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뜨거운 배우다.
하지만 <해운대>에서 그는 나서지 않는다. 생각과 달리 싸우지도 않는다. <
[설경구] 간만에 허허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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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의 만식과 연희를 만났다. 아들이 하나 있는 홀아비지만 연희는 만식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또 만식은 옛날 쓰나미가 몰아치던 동남아 해상에서 연희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사람이라 늘 연희만 보면 미안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서로에게 아낌없이 주는 사람들이다. 해운대의 짙은 바다 내음과 시원한 파도 소리 속에서 두 사람은 말 못할 사랑을 키워간다. 쓰나미는 바로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굳은 것인지를 확인시켜주는 시각적 매개체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사랑의 언약을 하는 커플이라고나 할까.
<해운대> 연희 역의 하지원
하지원은 늘 고생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하지원만큼 이 악물고 악전고투하는 여배우도 드물다. 저 멀리 ‘원 톱’ 드라마나 다름없는 사극 <다모>나 <황진이>에서 겪은 육체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과 함께했던 <1번가의 기적>에서는 여자 복서가
[하지원] 내 것으로 만드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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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제작자라는 크레딧으로 자주 소개되던 뤽 베송이 본연의 직업으로 돌아왔다. 흥미로운 건 그가 꾸려온 선물보따리가 액션과 판타지, 멜로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스타일리시한 극영화가 아닌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이다. 아주 오래전 동심과 작별한 이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총 3탄으로 구상된 이 애니메이션은 그가 직접 써내려간 판타지 소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것. 이쯤 되면 당신의 의구심도 이해할 만하다. <레옹> <제5원소>의 감독이 아동소설 집필, 심지어 애니메이션 연출이라니! 은퇴에 대한 뉴스들이 공공연히 떠돌면서 감독이라는 직업에서 영영 멀어진 듯 보이던 그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2010년까지 차례로 공개될 애니메이션 시리즈 중 첫 번째 에피소드이자 동명 소설 1, 2권을 토대로 만든 <아더와 미니모이: 제1탄 비밀 원정대의 출정>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뤽 베송과 필담을 주고받은 것 역시 비슷한 호기심 때문
[뤽 베송] ‘더 많은 것’ 아닌 ‘더 나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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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를 사랑니로 기억했다. 스크린 속 그녀는 항상 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상황에 둔한 듯 방황했다. 사방에 벽을 두른 듯 혼자였고 동시에 끊임없이 흔들렸다. 그 불안한 정서가 관객의 마음도 움직였다. 그녀는 좀처럼 잡아 세울 수 없는 그림이었다. 그래서 <10억>과 <차우>는 의외였다. 서바이벌 게임과 멧돼지 사냥 설정은 정유미에게 모험극처럼 보였다. 누구보다 바쁜 2008년과 2009년을 보내면서 그녀는 어떤 기억을 들춰낸 걸까. 그리고 어떤 기억을 쓰려 하는 걸까. 그저 대중적인 행보라 말하기엔 아쉬운 구석이 많다. 이젠 그녀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
-2008년과 2009년 매우 바빴을 것 같아요. 일단 작품 순서를 좀 정리해보고 싶은데요.
=지난해 초에 <그녀들의 방>을 찍었고요. 그리고 <오이시맨> 3회차 찍고. 다음에 <차우>.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찍고, <첩첩산중> 찍고. 정성일 선생
[정유미] “연기… 아직은 모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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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0억>의 엔딩 크레딧에서 신민아의 자리는 세 번째다. 박희순, 박해일, 그리고 신민아.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자리는 아니다. 대신 그녀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자리다. “제일 마지막에 있어도 좋아요. (웃음)” 혹시 남자배우들에게 묻어가려는 것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이제 신민아는 더이상 묻어가기도 힘들 만큼 도드라진 배우다. 크레딧의 맨 앞에 위치한 작품이 없지도 않았다. <무림여대생>이란 제목은 극중에서 신민아가 맡은 소휘를 지칭한 단어였다. <키친>은 주인공 모래의 갈등과 번민만으로 가득 찬 영화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지금 신민아는 “부담없는” 자리를 찾는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부담은 줄이되, 마음껏 모험을 할 자리다. 최근 신민아의 작품들이 비교적 적은 예산의 영화라는 점도 중요하다. 그녀는 “현실적인 감성을 조금이나마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약간 벗어나 있더라도 거품이 없고, 부담이
[신민아] 부담없는 자리의 자유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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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게임에 비유해야 할까,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비견해야 할까. 조민호 감독의 어드벤처 스릴러 <10억>은 관객에게도, 그리고 배우들에게도 짜릿한 도전이다. 여기서 박해일과 신민아는 제각기 차갑거나 뜨거운 온도로, 지금까지 어디서도 보여준 적 없던 새로운 면모를 쏟아냈다.
<10억>의 박해일
“<극락도 살인사건>을 찍었던 가거도와 <10억>을 찍은 호주의 퍼스(Perth)는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여기서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으면 섬을 떠날 수가 없다. (웃음)” 바다와 사막과 밀림과 강이 이어지며 섭씨 40도의 더위와 0도의 추위가 하루에 공존하는 곳, 퍼스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인천공항에서 싱가포르를 경유, 호주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도 뻑뻑한 봉고차에 전부 끼어타고 여섯 시간을 더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악전고투를 거쳐 조민호 감독의 <10억>이 완성
[박해일] 본능적인 연기의 짜릿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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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식 감독은 그동안 누군가의 더없는 ‘파트너’로서 소개돼왔다. 과거 <씨네21>을 들춰보니, ‘유영식 감독과 함께’라는 수식어 달린 기사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내 마음의 풍금>(1999) 프로듀서로 일을 시작했던 이력 때문인가. 지금까지 장편 연출작은 <아나키스트>(2000)가 전부다. <아카시아> <이공> <좋지 아니한가> 등에 참여하면서 그는 ‘감독’ 보다 ‘프로듀서’로 더 자주 불렸다. 제작비 규모는 저예산이나, 인력 규모는 블록버스터급인 <오감도> 또한 다르지 않다. 그는 <오감도> 중 한편인 <33번째 남자>의 연출자로 참여했지만, 그보다 먼저 <오감도>의 기획자다. ‘함께 만드니 더없이 즐겁다’는 그로부터 스케치부터 완성까지 3년이 걸린 <오감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시사회 때 무대에 오른 배우들만 무려 16명이다. 5명의 감독들은 마이크
[유영식] “시나리오는 훨씬 야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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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 키스를 하는가 하면, 센 척하지만 여리고, 솔직해 보여도 비밀이 많다. 이 도발적인 고교생과 어울리는 배우가 누굴까. <우리 결혼했어요>의 애청자라면 얼핏 정답을 떠올리지 않을까. 이시영. 생애 첫 영화에서 그녀는 당신 상상 속 이시영과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영화 데뷔작 <오감도>와 드라마 <꽃보다 남자>(<꽃남>), <바람의 나라> <도시괴담 데자뷰>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 코너 <우리 결혼했어요>(<우결>). 이시영의 활동은 그게 전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제 막 신인배우 딱지를 벗었을 뿐인 그녀에게, 이상하게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는다. 옴니버스영화 <오감도>의 이시영 역시 그렇다. 그녀가 출연한 편은 김동욱, 정의철, 송중기, 신세경, 이성민 등 풋풋한 젊은 배우들을 한데 모은 오기환 감독의 에피소드. 발칙하게도 고교생의 스와핑을 그리는
[이시영] 톰보이형 팜므파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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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는 김효진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쾌활하기보다 침묵에 가깝고, 늘 가만히 상대를 쳐다보며 머뭇거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름과 외모 모두 미스터리한 느낌을 준다. 민규동 감독과 선배인 황정민과 엄정화와의 만남, <오감도>는 김효진에게 무조건 해야 하는 영화였다.
‘나루’는 신비스러운 여자다. 민규동 감독의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정하(엄정화)는 남편(황정민)이 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게 되는데, 그때 남편이 자신의 후배인 나루(김효진)와 밀회 중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남편은 바로 죽었고 나루는 심한 부상만 입은 상태. 얼마 뒤 나루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기 위해 선배 정하를 찾아와,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다면서 그냥 같이 있게만 해달라고 말한다. 정하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지만, 그렇게 남편의 애인과 애인의 부인은 쓸쓸한 집 안에서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무엇보다 김효진과 엄정화 모두 민규동 감독
[김효진] 나를 깨나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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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파탈이다. 다른 누군가라면 모르지만, 배종옥은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연기. 파격적인 베드신, 카리스마 넘치는 여배우로 배종옥이 변신한다. 배종옥은 말한다. 변신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도전이었다고.
카메라가 움직이는 순간, 멈칫할지 모른다. <오감도>의 세 번째 이야기 <러브레슨>의 첫 장면은 다섯편의 영화 중 가장 격렬한 베드신이 등장하는 에로틱의 정수다. 남자의 나신 위에 있는 여자의 가슴을 카메라가 좇는 동안 궁금증은 증폭된다. 과연 이 배우는 누굴까? 궁금증만큼이나 대답도 파격적이다. 어떤 순간에도 꽁꽁 여민 옷깃으로 자신을 다독일 것 같은 배우, 물샐 틈 없는 삼엄함이 감지되는 냉철한 배우 배종옥. 그 배우가 가장 뜨거운 온도로 ‘화란’ 역에 도전한 것이다.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역할이라서 훨씬 재밌다고 생각했다. 정극이라면 불편했을 텐데 후반부는 코믹이다 보니 상쇄되더라.” 파격적 도전에 대한 배종옥의 대답은 명쾌하다.
유영식 감독이
[배종옥] 안되는 게 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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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의 세 배우가 만났다. 이들은 <오감도>에 등장한 수많은 배우들 중 세 사람, 그러니까 그들 중에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배우들이기도 하다. 노련함 그 이상으로 생애 가장 ‘센’ 베드신을 보여준 배종옥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도도하고, 남자친구의 아내와 동거를 시작하는 김효진은 고요하고 신비스러우며, 커플 체인지를 시도하는 여러 커플들 중 하나인 이시영은 풋풋하고 귀엽다. 모두 우리가 기억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부터 가까우면서도 멀다. 어쨌건 그들은 이전의 내 모습을 잊으라는 등 대담한 몸짓을 펼쳐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각자 서로 다른 에피소드를 연기한 배우들이라는 점. 영화 속에서는 한번도 만나지 않았던 그들이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그들이 다 함께 한 에피소드에 출연하면 어떨까, 상상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배종옥, 김효진, 이시영] 몸으로 깨닫고 마음의 눈을 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