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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잰 듯 빈틈이 없다. <매란방>의 장쯔이는 몸에 꼭 맞는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로 그녀의 여성성을 한껏 드러낸다. <화양연화>에서 장만옥의 목선을 강조했던 우아한 치파오도 장쯔이가 <2046>에서 입었던 섹시함을 발산하는 치파오도 아니다. 짧은 소매, 무릎 아래를 살짝 덮는 단조로운 패턴의 치파오는 그 자체로 캐주얼하며 생동감있다. <연인>과 <야연> 등 무협물의 신비로운 여성에게서 오는 위화감도 <게이샤의 추억>의 게이샤가 풍기는 평범하지 않은 색깔도 이 평상복에선 찾아볼 수 없다. <매란방>의 치파오는 장쯔이를 위해 특별히 재단된 특별한 선이 아닌, 이미 있는 기성복에 그녀 스스로 몸을 맞춘 듯 편안한 선에 가깝다. 그리고 이 평범한 치파오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태세를 한 ‘세계의 배우’ 장쯔이를 단단하게 맨땅에 고정시켜준다.
청나라 최고의 경극배우이자 중국 전 인민의 가슴속 스타 매란방. <매
[장쯔이] 선녀가 아닌 나 자신을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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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카이거 감독의 신작 <매란방>의 두 배우, 여명과 장쯔이
배우가 배우의 삶을 대신하는 만큼 고민되는 과제가 또 있을까. 중국 경극사에서 최고의 배우로 추앙받는 여장배우 ‘매란방’. 그의 일대기를 그린 첸카이거 감독의 <매란방>에서 여명은 그 어려운 과제를 떠맡는다. 장쯔이는 이 무거운 짐을 나눠질 남장배우 ‘맹소동’으로 분해 지금까지 자신의 연기력을 아끼지 않고 발산한다. 배우의 숙명으로 비극적인 헤어짐을 감내해야 했던 폭풍 같은 사랑. 영화 속 둘의 밀회는 너무 짧아서 오히려 강렬하다.
두 배우 모두에게 쉽지 않았던 연기 도전이었던 <매란방>. 작품 홍보차 한국을 찾은 그들이 <씨네21>의 카메라 앞에 섰다. 격정의 시대, 안타까운 사랑을 한 연인이지만, 한국에서 시사를 앞둔 두 배우는 작품 속 부담을 털고 친한 동료로 마주했다. 캐주얼한 차림새의 여명과 드레시한 의상의 장쯔이가 주는 부조화에도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매란
[여명, 장쯔이] 그는 그녀가 되고, 그녀는 그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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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배우들은 독립된 종(種)으로 구분하는 게 좀더 과학적인 처사다. 그녀들은 예뻐 보이려 기를 쓰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는 기묘한 존재들이다. 추악하고 자기 파괴적이고 자기 기만적인 여자를 연기하면서도 아름답다. 심지어 그녀들은 ‘여배우’라는 종이 대면하는 시간의 법칙을 거스른다. 보톡스 맞은 팽팽한 얼굴로 과거의 영화를 곱씹는 대신 자신들을 감독해온 감독들을 뛰어넘어 점점 소름 끼치는 예술가가 되어간다. 카트린 드뇌브, 이자벨 아자니, 에마뉘엘 베아르, 이자벨 위페르, 그리고….
그리고 줄리엣 비노쉬가 있다. 레오스 카락스의 <나쁜 피>와 <퐁네프의 연인들>, 앙드레 테시네의 <랑데뷰>, 루이 말의 <데미지>,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블루>에서 그녀는 90년대 영화광들의 여신이었다. 앤서니 밍겔라의 <잉글리쉬 페이션트>, 라세 할스트롬의 <초콜렛>에서 그녀는 프랑스와 프랑스어의 한계를 뛰
[줄리엣 비노쉬] 나에게 반복은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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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정이다. 배우 강혜정이 <허브> 이후 2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드라마 <꽃 찾으러 왔단다>, 영화 <킬미> 등 활동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지난 2년간 그녀는 왠지 조용했다. 영화가 개봉을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허브>가 개봉한 2007년 무렵부터 강혜정은 조금씩 유해졌다. 도도하게 내뱉던 말이 줄었고 무거운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작품 외적인 소음에 휩싸였던 적도 있다. 치아교정 이후 달라진 인상에 사람들은 성형설을 얘기했고, 뒤이어선 당시 남자친구와의 결별설도 튀어나왔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새로운 작품 <우리집에 왜왔니>를 꺼냈다. 역할은 스토커이자 노숙자인, 하지만 아린 속사정을 품은 여자 이수강. 수수께끼 같은 면모는 <도마뱀>의 아리를 닮았고, 남의 집에 거침없이 쳐들어가는 행동은 <연애의 목적>의 홍의 당돌함을 연상케 한다. 다소 침잠됐던 시간을 정리하고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강혜정] 다시 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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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무릎팍 도사>였다.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개봉을 앞두고 주연배우 권상우와 감독 원태연이 연달아 출연했다. 이게 가능한 일이었나. 배우와 감독이 함께 출연한 것도 아니다. 감독이 출연했는데 배우가 전화 통화로 출연한 것도 아니다. 한 영화의 대표 관계자들이 2주 연속 각각의 고민거리를 들고 강호동을 찾아간 것이다. 전례가 없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제작자 크레딧에서 김광수란 이름을 보고난 뒤였다.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와 헷갈리지 말자. 지난해 <고死: 피의 중간고사>를 제작한 데 이어 올해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내놓은 코어컨텐츠미디어의 김광수 제작이사는 엠넷미디어의 컨텐츠 제작사업 본부장인 김광수고, 과거 GM기획의 대표였던 김광수다. 가수 인순이의 로드매니저로 시작해 김완선, 김민우, 윤상 등의 앨범을 제작했고 조성모를 발굴했고 드라마타이즈의 대작 뮤직비디오 시대를 열었던 장본인인 그는 현재도
[김광수] “나를 권력자로만 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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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은 배우 황정민의 운명이지만 선택은 자유다. 그런데 그는 이번 선택으로 꽤 무리수 있는 역할을 뽑아든다. 조선시대의 사립탐정 ‘진호’. 시대극은 흥행작 리스트에서 제대로 이름을 올려본 지 오래고, 탐정물은 충무로에서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장르다. 위험천만해 보이지만 기꺼이 선택을 한 황정민의 포부는 사뭇 크다.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을 신경 쓰는 대신 그는 ‘연기 같지도 않은 연기’를 하는 진짜 명배우가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눈치챘나? 다소 생소한 조선시대의 탐정 진호는 바로 배우 황정민의 연기 영역을 넓혀줄 시도의 한 과정이다.
“전 뭐, 연기 평생할 거니까요.”
황정민과 무수히 인터뷰를 하고, 그가 한 수많은 말들 중에 유독 이 한마디는 떠나질 않는다. 연기자가 계속 연기하겠다는 거야 뭐 별스럽겠냐마는 수더분한 차림의 황정민이 툭 내뱉은 이 짧은 문장은 꽤 흡입력이 강해 곧잘 그의 역할들을 삼켜버릴 괴력을 발휘한다. 그러니까 <달콤한 인생>의 징글징글한
[황정민] “나 힘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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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홍 감독은 처음에 많이 쑥스러워했다. 그럴 만도 하다. 2001년에 <세이 예스>를 완성하고 그 뒤로 소식이 없었으니 근 8년 만에 매체를 접촉하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잘됐으면 <스턴트맨>을 2005년쯤 개봉하고 또 다른 전환점을 시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촬영을 80%나 해놓고 결국 개봉하지 못했다. 그때는 “솔직히 영화를 안 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김성홍 감독은 <실종>으로 조용히 돌아와 있다. 시간은 확실히 많이 흘렀고 영화판도 많이 바뀌었다. 그의 이름을 거꾸로 쓰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누구냐고 과거를 묻는 기자도 있단다. 그는 <투캅스>의 각본을 썼고 <손톱> <올가미> 등 90년대 개성있는 호러 및 스릴러 장르영화의 길을 개척했던 사람 중 하나다. 한번 입이 터지자 지나간 시간을 묻어버리겠다는 듯 그의 말은 봇물같이 쏟아졌다.
-사진 찍으니 쑥스러운가.
=사실 어떤 경우가 있느냐
[김성홍] “이건 난도질 영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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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이다. 맞다, 사실 그런 이야기다. 홀로 남은 소년, 소녀가 등을 맞대고 한집에서 살면서 서로 눈물을 닦아주는 러브스토리. 소녀는 아름답게, 소년은 건실하게 자라지만, 선의를 품었다 해도 침략자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남자가 둘 사이에 끼어들고, 누군가는 시름시름 앓다 목숨을 잃는 뻔한 결말. 그렇지만 조금 솔직해지자. 가슴 시린 어느 저녁이라면, 당신 역시 그림같이 예쁜 남녀가 그림같이 예쁘게 사랑하다 그림같이 예쁘게 이별하는 그림같이 예쁜 멜로영화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을까. 게다가 권상우, 이보영, 이범수 주연에, 지휘자로 이름을 올린 이가 원태연이다.
아니, 원태연이라니? 맞다. 90년대 초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손끝으로 원을 그려 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같은 시들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시인 원태연이, 맞다. 남녀주인공의 이름부터 케이와 크림이라니 감상적인 그의 시쓰기와
[원태연] “난 이단아지, 나쁜 놈이지, 이제 익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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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들에게 묻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취재차 찾아간 영화 <울학교 이티>의 촬영현장. 기자간담회 자리에는 주인공인 김수로가 있었고 그의 양옆에는 이한위와 김성령 등 고참 배우들이, 그리고 또 한쪽에는 고등학생으로 분한 남녀 배우들이 주눅 든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본인을 포함한) 기자들은 오로지 김수로에게만 질문했다. 선배 배우들과는 간단히 대화했다. 하지만 어린 배우들에게는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사실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다. 그들 가운데 한명이 몇 개월 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가 될 줄은 누가 알았을 것이며, 다른 한명은 <과속스캔들>의 정남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당시 이민호는 그저 평범한 학원물에 등장하다 사라질 것 같은 다소 ‘센’ 외모의 소년이었다. 박보영은 유난히 작아 눈에 띄지 않는 소녀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었던 단 한 사람, 배우 이한위는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후배들을 한명씩 소개해줬던 그는 박보영을 소개
[박보영] 제 고민 좀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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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도 살인사건>의 김한민 감독이 또 한편의 스릴러를 완성했다. 제목은 <핸드폰>. 하지만 그의 스릴러엔 항상 무언가가 하나 더 있다. 2007년 개봉한 <극락도 살인사건>은 스릴러 장르에 호러, 코미디를 곁들인 영화였고, 2월19일 개봉해 현재 상영 중인 <핸드폰>은 스릴러의 틀 안에서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작품이다. 핸드폰을 분실한 남자와 핸드폰을 습득한 남자의 밀고 당기는 싸움을 바탕으로 두 남자의 일상과 사회적 조건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다. 한국영화계에선 불모지에 가까운 스릴러 장르에 두번이나 도전한 남자. 그의 <핸드폰>은 스릴러를 잘 구워 삶았을까. ‘한국형 스릴러’, ‘생활형 스릴러’가 유일한 비책이라 말하는 그를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소 미지근한 관객 반응에 기분이 담담하다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김한민 감독의 핸드폰은 꽤 자주 울렸다.
-뚜껑은 열렸다. 기분이 어떤가.
=담담하다. 음, 담담하다
[김한민] 주제? 러브 이즈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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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우는 확실히 물 같은 배우다. 갈색빛이 어린 눈동자나 여릿한 얼굴 윤곽만으로 꺼낸 말은 결코 아니다. 부드럽다가도 눈썹을 찡그리면 가슴 철렁할 만큼 날카로워지는 분위기나 제멋대로 진로를 바꾸는가 싶더니 유유히 순항하는 필모그래피도 그렇다. 온건한 연인의 광채와 냉정한 범죄자의 그늘. 박용우가 껴안은 아이러니는 잔혹한 시대극 <혈의 누>에서 못 말리는 로맨틱스릴러 <달콤, 살벌한 연인>으로 가파르게 항로를 꺾으면서 비로소 빛을 발했다. 세상사 삼세번이라고, 삼수 만에 대학에 입학하고 두번의 낙방 끝에 탤런트 시험에 합격한 이 끈덕진 남자의 걸음은 그때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다. <조용한 세상> <호로비츠를 위하여>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등 스릴러에서 드라마로, 또 멜로로 긴장어린 줄다리기가 끊이지 않았다. “있는 척, 멋있는 척, 잘생긴 척, 매력있는 척, 폼재”기 일쑤인 경성 최고의 사기꾼 봉구를 유들유들하게
[박용우] 물처럼 차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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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웅에겐 벽이 있었다. 영화 <실미도>로 이름을 알리기 전, 드라마 <부활>로 도약하기 전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던 벽이다. 그는 연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 꽤 오랜 무명 시절을 보냈고, 시간보다는 작품의 빈도로 세월을 느꼈다. 몇개의 작은 역할과 또 다른 몇개의 작은 역할들. 느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느림은 오히려 스스로 만들어낸 리듬이다. 거창한 의도가 섞이진 않았지만 엄태웅은 본인에게서 떨쳐낼 수 없는 어떤 망설임과 주저 속에서 작품을 골랐다. 절반은 불안, 두려움 때문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냥 어찌할 수 없는 기질적인 망설임 탓이었다. 엄태웅은 그렇게 말한다. 끼로 통하는 연예계에서 다소 투박해 보이는 그의 기질은 일종의 벽이다. 그래서 엄태웅이 <부활>의 엄포스로 활짝 피었을 때 왠지 그는 벽을 하나 넘어온 것 같았다. 조금 과장하면 덜커덩 소리도 났다. 하지만 사실 그건 자기 주변을 꽤 오래 맴돌던 엄태웅이 스스로의 벽을
[엄태웅] 발화점까지 타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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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웅과 박용우, 핸드폰을 놓고 목숨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이다
핸드폰, 고작 핸드폰 하나로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한손에 쏙 들어가는 그 자그마한 물건은 어이없게도, 잘나가던 그들의 생을 나락으로 빠뜨리고 만다. 약간의 우연과 어긋남, 객기와 무례함이 뒤범벅되면서.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주목받은 김한민 감독의 신작 <핸드폰>은 매니지먼트사 대표인 오승민과 우연히 그의 핸드폰을 습득한 정이규를 뒤쫓는 스릴러다.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뜨거운 발신자 오승민 역에는 엄태웅이, 서늘하게 명령을 내리는 정체불명의 수신자 정이규 역에는 박용우가 캐스팅돼 한판 대결을 펼친다. 그들의 핸드폰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기에 그렇게 치열하게 서로를 추적했던 걸까. 2월9일 바람이 거센 야외로 두 남자를 불러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엄태웅, 박용우] 냉정과 열정의 맹렬한 추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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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말로 치고받는 액션영화다. 추상적인 ‘쩐의 전쟁’이자, 한국식 천민자본주의가 어느 정도로까지 우리의 일상생활 깊숙이 반영됐는가를 추적하는 영화이며, 동시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엄청난 한탕을 꾸미는 과정을 스피디한 웃음으로 포장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한국에선 좀처럼 볼 수 없던 장르영화, 케이퍼 필름(Caper Film)을 데뷔작으로 선택하며 매끈하게 완성해낸 이호재 감독을 만났다. “<작전>이 풍자까지도 못 가고, 야유나 똥침 정도라고 생각한다. 상층부의 진짜 주범들을 다뤘다고는 솔직히 말 못하겠다”고 겸손하게 물러서긴 했지만, 발로 뛰는 취재와 웰메이드 장르영화에 대한 욕심으로 겁없는 데뷔작을 완성한 그의 야심은 뜨겁다.
-한국에는 할리우드의 <월 스트리트>나 일본의 <주바쿠>처럼 돈과 자본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없었다. 한국식 천민주의 성격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영화를 장악한다는 측면에서 <작전>은 최
[이호재] “화이트칼라 범죄영화 힘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