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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남자. 강호를 호령하던 여걸(양자경)이 ‘여자’가 되어 얻은 남편을 두고 옛 동료들은 이렇게 비웃는다. <검우강호>에서 정우성은 그 ‘한심한 남자’다. 그는 하루 종일 말똥을 치우고, 돈이 아까워 두부포 쌈을 먹고 싶어도 그냥 지나치고, 칼 가는 숫돌을 구입하는 게 일과 중 가장 큰 도발인 소시민 강아생을 연기한다. 사실 정우성의 이런 모습은 익숙하진 않지만 낯설지도 않다. <똥개>의 철부지 청년과 <호우시절>의 회사원 동하를 통해 그는 화려한 외모를 감추고도 얼마든지 배우 정우성으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걸 입증해 보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우강호>는 좀 다르다. 이 영화에서 정우성은 강아생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영화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그는 불필요한 힘을 빼고 물 흐르듯 대사를 읊조린다. 이는 촬영현장을 일상처럼 대하게 된 17년차 배우의 현재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나 자신이
[정우성] 겸손과 열정에서 관록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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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가? 방가!>의 순제작비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현물 지원받은 것을 제하면 6억원에 불과하다. 육상효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이언 팜>(2002)은 미국에서 현지 로케이션을 진행한, 순제작비 10억원의 영화였다. 그의 두 번째 작품 <달마야, 서울가자>(2004)는 순제작비 25억원에, 총제작비가 40억원이 넘었다. <방가? 방가!>를 찍으면서 제작자와 “영화가 중요하냐, 사람이 중요하냐”고 다퉜을 정도로 빠듯한 살림이었다지만, 정작 육상효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며 돌아보면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위장취업한 한국 청년이 외국인 노동자 틈에서 일한다는 흥미로운 설정의 <방가? 방가!>는 육상효 감독의 전작들이 그러하듯 캐릭터와 대사가 돋보이는 흥미로운 코미디다. ‘웃기는’ 타이밍과 포인트를 아는 그의 여전한 감각이야말로 <방가? 방가!>가 작은 영화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입소문만으로
[육상효] 외국인 노동자들을 친근한 존재로 드러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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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태를 만나러 가기 전 <심야의 FM> 홍보실장이 이런 얘기를 꺼냈다. “혹시 인터뷰 도중 유지태씨 표정이 갑자기 변하더라도 오해하지 마세요. 스스로 짜증이 났거나 맘에 안 드는 상황이 생겨서 그런 거니까요. 절대 상대방에게 짜증내는 거 아니에요.” 유지태는 솔직하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한다. 솔직해서 오해를 사는 일이 많다. “아무리 착한 척, 정의로운 척, 예쁜 척해도 시간이 흐르면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까발려지게 돼 있어요.” 유지태는 ‘척’하는 대신 영화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열정을 작품으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며 달려왔다. <동감> <봄날은 간다> <올드보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그에게 인기는 물론 ‘믿음직스런 배우’라는 수식어를 가져다주었다. <야수> <가을로> <황진이> <비밀애> 등 최근작들은 흥행에 실패했다. 그렇다고 그의 연
[유지태] “매순간 떨리고, 매순간 새롭고, 매 순간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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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쯔이, 주신과 함께 중국 대륙을 대표하는 3대 여배우 중 하나인데 그에 비해 덜 알려졌다. 간략한 소개를 좀.
=고향은 하얼빈이고 대학 졸업 뒤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 이후 연기자의 꿈을 안고 상하이예술학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면서 장위안의 <17년 후>(1999)를 통해 알려졌다. 홍콩과 중국을 오가며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던 중 두기봉의 <호접비>(2008)에서 주연을 맡았고, 한국 관객에게는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2008)에 백발마녀로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한국과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난생 처음 여권을 만들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한 곳이 한국이다. 2008년에는 한국문화 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을 너무 좋아한다.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의 ‘정아’는 어떤 역할인가.
=측천무후(유가령)의 최측근
[who are you] 리빙빙(李氷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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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구용하(송중기)를 보고 있으면 마냥 즐겁다. 심각한 인물들 사이에서 흐느적흐느적 웃음을 흘리고 다니는 모습에서 일단 풀어지고, 언제 봐도 메이크업을 한 듯한 뽀얀 얼굴에서 또 한번 풀어진다. 시전 상인에게 가게 세놓는 부잣집 아들, 요즘으로 치자면 재벌 2세쯤 될 것이다. 술과 여자가 있는 곳, 혹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라며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나타나 “나 구용하야~”라며 기분 좋은 ‘깨방정’을 떤다. 이선준(믹키유천)이 엄격한 교육을 받은 전형적인 명문가 자제의 모습이고, 문재신(유아인)이 비슷한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그 극단에 서게 된 반항적 캐릭터라면, 그는 정치나 학문 그 어디에도 관심없는 것 같은 한량이다. 말하자면 <성균관 스캔들>의 답답한 세상사 속에서 유일하게 숨통을 틔워주는 인물이다. 그는 늘 심각한 얼굴의 동료들에게 “자네들의 그 딱딱한 머리에서 얼마나 훌륭한 정책이 나
[송중기] 차세대 꽃미남 배우의 절대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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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딧 보기 전까지 베트남 사람으로 오해했다.
=칭찬으로 듣겠다. (웃음)
-베트남어도 따로 배웠나.
=촬영 전 유학 온 베트남 친구를 사귀어 자주 만났다. 육상효 감독님도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말을 할 때의 특징을 정리해서 주시기도 했다. 극중 장미가 많이 하는 욕이 ‘개시끼’인데, 베트남 사람들은 ‘개’를 ‘캐’에 가깝게 발음한다더라. 그런데 촬영 때는 베트남 사람들처럼 삼키는 느낌으로 말하려다 보니 발성이 잘 안되더라.
-액션장면은 어땠나.
=몸 쓰는 게 쉽지 않았다. 바지 벗겨지는 장면도 내가 제대로 해야 김인권 선배님이 리액션을 할 수 있었는데. 오토바이 타는 장면에선 넘어져서 다치기도 했다. 나 아픈 건 둘째고 함께 탄 아역배우가 안 다쳤나 걱정했는데 무전기에서 ‘이번 컷 오케이!’라는 감독님의 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더라. (웃음)
-외국인 배우들과 소통하는 게 어렵진 않았나.
=촬영기간 3개월 동안 양수리와 안산의 숙소에서 합숙하면서 찍어서인지 서먹서먹한 게
[who are you] 신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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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갸우뚱했다. 박신혜가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한다고 ‘고집’했을 때. 박신혜는 영화에서 연애도 조작이 가능하다고 믿는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일원인 민영을 연기한다. 의뢰인의 데이트 코치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스타일까지 점검하는 막중한 역할이다. 게다가 의뢰인의 데이트 상대가 자신의 옛 여자친구란 이유로 흔들리는 팀의 대표 병훈(엄태웅)을 다그치는 시어머니 역할이자, 남몰래 그를 좋아하는 복합적인 캐릭터다. 박철민, 엄태웅 등 나이차 많은 구성원이 속한 연애조작단에서 가장 어리지만, 이성적인 지수로 보자면 가장 어른스러운 역할이 민영이다. 바로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런 역할로 각인돼온 박신혜에게 내려진 지령이었다.
“신혜를 왜 그런 역할을 시켜, 하는 반응이 많았어요. 게다가 여주인공은 이민정씨가 연기하는 ‘희중’이니 주인공 자리를 탐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였죠.” 아니나 다를까, 초반에 주변의 반발이 꽤 거셌나보다. 그런데 박신혜, 본인의 선택은 달랐다. “전
[박신혜] 짐작보다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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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이 아니고서 배우의 겸손은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될 때가 많다. 김인권의 경우는 어떨까. 1999년 <송어>로 배우 데뷔하고 10년이 넘은 시간. 그의 출연작은 두손으로 다 꼽지 못할 정도가 됐다. <아나키스트> <조폭 마누라> <말죽거리 잔혹사> <신부수업> <숙명> <해운대> <시크릿> <이웃집 남자> 등 그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쳐 주연배우들을 긴장시켰다. 이젠 ‘빛나는 조연’이라는 수식어를 떼야 할 것 같다. <방가? 방가!>에서 김인권은 단독으로 110분의 러닝타임을 책임진다. 취업이 되지 않아 부탄 사람으로 위장해 공장에 위장 취업하는 한국인 방태식이 그가 맡은 인물이다. 김인권은 태닝 티슈와 5시간이 걸린 파마, 아랍인들이 종교의식 때 쓴다는 손잡이 없는 뚜껑처럼 생긴 모자를 통해 부탄 사람으로 완벽하게 위장한다. 진짜 볼거리는 그의 버라이어티
[김인권] 월드스타? 블록버스터 감독? 그런 욕심 버려야 평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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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자>의 주연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날, 맏형 주진모가 막내 조한선에게 장난을 쳤다. 조한선은 인터뷰 이틀 뒤 훈련소에 입소했다. 서른에 뒤늦게 군에 입대하게 됐지만 그는 의외로 담담해 보였다. “당연히 가야 하는 건데 조금 늦어졌을 뿐이다. 영화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게 돼 미안하다”는 말이 고작이었다.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거나 쓸데없는 걱정에 사로잡히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5개월이 다 돼가는 딸아이, “불안하게 점점 나를 닮아가는” 딸만큼은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고 했다.
조한선은 입대 전 마지막 작품으로 <무적자>를 택했다. <무적자> 이전까지 8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악역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연기하는 <무적자>의 정태민은 원작 <영웅본색>에서 이자웅이 연기한 아성 캐릭터를 변주한 인물. 태민은 무기밀매조직의 보스인 혁(주진모)과 그와 쌍포로 활약하는 영춘(송승헌) 밑에서 일하던 일개 조직원이었
[조한선] 숨겨진 또 다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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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우에게 <무적자>는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작업이었다. 주연배우가 전부 남자인 까닭에 카메라 뒤에서는 그 어떤 현장보다 동료 배우들과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었다. 반면 슛 들어가면 그 누구보다 외로운 남자가 되어야 했다. 그가 연기한 김철은 삶의 주요 순간마다 홀로 넘어서는 남자다. 북에서 어머니를 여읜 뒤 혈혈단신으로 탈북했고, 이후 형사가 되어 아무 연고도 없는 남한사회에서 처절하게 살아남으려고 한다. ‘이 모든 게 다 친형 김혁(주진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형이 자신과 어머니를 남겨두고 탈북하지 않았더라면, 범죄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더라면, 출소 뒤 옛 동료였던 영춘(송승헌)과 태민(조한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김철은 형을 멀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강우의 눈에 들어온 건 겉으로 드러나는 김철의 강한 면모였다. “이 사람이 어쩌다가 마음의 벽을 닫고 거세게 행동하는 것일까. 늘 혼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내면은 여리지만 생존을 위해 강하게 행동할 수밖에
[김강우] 냉정과 열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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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바바리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쌍권총을 쏘아대던 <영웅본색>의 주윤발. 그는 그대로 전설이 되었다.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한 <무적자>에서 주윤발이 연기한 소마는 송승헌이 연기하는 리영춘으로 바뀌었다. 송승헌은 주윤발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기대는 캐스팅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흘러 넘쳤다.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고, <가을동화> <여름향기>로 한류스타가 된 송승헌을 사람들은 ‘배우’가 아닌 ‘스타’로 바라봤으니 말이다. 게다가 원작이 워낙에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보니 송해성 감독도 이렇게 얘기했단다. “우리는 못하면 욕먹고 잘해야 본전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찍는 수밖에. “주윤발이 너무 큰 산이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주윤발보다 내가 연기를 더 잘해야지, 주윤발을 뛰어넘어야지 생각한 적은 없다. 내가 연기하면 또 다른 색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
[송승헌] 청춘스타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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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모의 눈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구석이 있다. 최근 그와 함께했던 감독들이 하나같이 그를 비극의 중심에 놓은 것도 그런 눈이 작용한 결과다. <사랑>(2007)의 곽경택 감독은 “우직하지만 열성적인 느낌의 눈이 순애보에 어울린다”고 말했고, <쌍화점>(2008)의 유하 감독은 “주진모의 눈이 고려 왕이 가졌을 법한 눈과 비슷해서 캐스팅했다”고 밝힌 바 있다. 덕분에(?) 그는 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가슴을 졸이고, 상처를 받고, 죽음을 선택하거나(<사랑>) 죽임을 당해야 했다(<쌍화점>). <무적자>의 송해성 감독 역시 ‘주진모의 눈이라면 동생을 향한 진심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계획했던 배우 대신 그를 선택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
“꿀꿀하고 어두운 친구다.” <무적자>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든 김혁에 대한 주진모의 첫인상이다. 북에 동생 김철(김강우)과 어
[주진모] 천공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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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가 따로 없었다. 지난 9월7일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무적자>의 네 배우, 주진모, 송승헌, 김강우, 조한선이 모인 풍경이다. 동창회와의 차이라면 말수가 적다는 것. 맏형 주진모는 “현장에서 그날 촬영 끝나면 함께 모여 소주 한잔하다 보니 상대방에 대해 다 알게 되더라. 어제는 뭐 했고, 저녁은 뭐 먹었고. 했던 얘기 하고 또 하면 할 말이 없게 된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무적자>는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1986)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네 남자의 형제애와 의리를 그린다. 다음 페이지부터 네 배우의 <무적자>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진모,송승헌,김강우,조한선] 영웅 아니 액션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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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은 2년 전 <씨네21>과 인터뷰하면서 “이젠 배우하겠다”고 했다. 정치와 연기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연기를 택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려는 듯 보였다. 홍상수 감독의 <첩첩산중> 외에도 <실종> <작은연못> <여행자> <시선 1318> 등에 잇따라 출연했다. 작은 역할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사이 드라마 <자명고>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연극 <B언소>의 무대에도 섰다. <옥희의 영화>에서 송 교수는 뭣같은 세상 우린 책이나 읽읍시다, 라고 말한다. 송 교수처럼 문성근도 ‘세상 거꾸로 가는데 우린 연기나 합시다’라고 자꾸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성근은 ‘액터’이자 동시에 ‘액티비스트였다’였다. <옥희의 영화>의 근사한 연기를 캐물어야겠다고 맘먹은 지 며칠 되지 않아, 그는 다시 사람들이 주목하는 ‘민란 주동자’로 섰다. 액터만으론 만족하지
[문성근] 홍상수가 원하는 극사실 연기… 오르가슴보다 낫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