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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와 악녀. 할리우드 자선활동의 선구자이자 아버지와 의절한 당돌한 여자. 여섯 아이의 엄마와 한 커플을 파경에 이르게 한 것으로 의심받는 팜므파탈. 이것이 바로 잘 알려진 안젤리나 졸리의 두 얼굴이다. 2008년 9월, 졸리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실종된 아이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 극한의 모성을 보여줬던 <체인질링>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었고, 그녀의 곁에는 갓 태어난 쌍둥이 두명이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잠옷 바람으로 가볍게 훑어본 시나리오 한편이 졸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러시아 스파이로 오인받는 여자 CIA 요원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 고군분투한다. 그 여자는 12층 빌딩의 외벽을 기어오를 줄 알아야 하며, 다리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려야 하고, 20층 높이의 외길 위를 맨발로 걸어야 한다. 시나리오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안젤리나 졸리는 당장 출연을 결정했다. <솔트>의 시나리오가 잠자고 있던 악녀의 아드레날린을 일깨우는 순간이었다.
[안젤리나 졸리] ‘유혹’의 그림자를 지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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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 노부히로 감독의 촉수는 늘 관계를 향해 있다. 부티크에서 일하는 여자와 매사가 잘 안 풀리는 남자의 동거생활을 통해 일상의 미묘한 균열을 포착했고(<M/Other>(1999)), 히로시마라는 도시와 감독의 내면의 관계가 충돌하면서 파생되는 감정을 다루기도 했다(<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2000), <H스토리>(2001)). <퍼펙트 커플>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유키와 니나> 역시 ‘타인과의 관계’를 다룬 영화다. 어른들의 세계를 그린 전작과 달리 처음으로 아이들의 세계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그리고 배우 이폴리트 지라르도와 함께 공동연출한 것도 차이라면 차이다. 영화는 부모가 이혼하면서 절친 니나(아리엘 무텔)와 헤어지게 된 유키(노에 삼피)의 심리를 섬세하게 따라간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개막작인 <유키와 니나>는 일본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꼽은 ‘2009년 올해의 영화 베스트5’에 선
“리얼리티를, 인물과 사회의 관계를 다시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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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름은.
=아독. 판타지 소설 주인공 이름이라는데 내 입장에선 ‘나’ (我)는 ‘개’(dog)다, 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극중 형제로 나오는 먹보와 도도는 어디 있나.
=주인 만나 잘 살고 있다. 그런데 먹보와 도도와 장군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장군이도 우리 3형제가 돌아가면서 연기했다. 다른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독특한 트리플 캐스팅이다.
=신생견은 잠이 많다. 애들도 그렇지 않나. 당시 우린 태어난 지 한달이 조금 넘었다. 하지만 마음이 역할을 맡은 달이 선배와 다른 인간 배우들 스케줄 때문에 우리 촬영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자고 있음 깨우고, 좀 놀려고 하면 재우고. 체력이 바닥날까 걱정돼서 결국 제작진이 트리플 캐스팅 하도록 유도했다.
-2달 반 동안 촬영했는데 가장 힘들었던 때는.
=나는 보충촬영을 주로 한 6조 강아지다. 내 발 앞에서 까불고 있는 녀석들은 마케팅을 위한 7조 강아지들이다. 세 마리의 강아지 캐릭터 연기를 완성하기 위해 모두 2
[who are you] 장군 역할의 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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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날아라 펭귄> 가운데 한편이라도 본 관객이라면 능히 짐작할 것이다. 임순례 감독은 경쟁사회가 뒤돌아보지 않는 패자와 약자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고통에 예민하게 감응하는 그녀가 인간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이익을 대변할 목소리조차 갖지 못하는 동물 복지에 마음을 기울이고,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로부터 쉽사리 눈길을 돌리지 못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은 “어떤 존재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조건은, 이성적으로 사고할 능력 혹은 대화를 나눌 능력의 여부가 아니라 고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1년째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KARA Korea Animal Rights Advocates)의 대표로 일하고 있는 임순례 감독에게도 동물의 권리 보호는 감정적인 ‘애호’의 문제를 넘어 세상에 존재하는 부당한 억압과 착취의 일부에
[임순례] 인권과 생명권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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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숙소에서 촬영장까지 30분 정도 걸렸다. 왕복 2차선 한쪽으로는 물이 흐르고 다른 한쪽에는 숲이 우거졌다. 굽이굽이 그 길 따라 30분 정도 달리면 좌회전하는 지점이 나온다. 일방통행, 흙밖에 없는 언덕을 10분 정도 더 달리니 <이끼> 촬영장이 나왔다. 마을 전체를 굽어보는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천용덕 이장의 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매일 그 길을 가는 기분이 그렇게 상쾌하고 경쾌하지만은 않았다. (웃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기분이었다. 해국이라는 역할과 나의 상황이 어느 정도 비슷했던, 굉장히 전투적인 촬영이었다.”
“<이끼>가 미쳐버릴 정도로 힘들었다”는 건 엄살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육체적 고통이 극심했다. 촬영 들어가기 직전, 신종플루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박해일은 평소 잘 걸리지 않던 독감 기운을 느꼈다. 혹시나 해서 검사를 받아봤지만 신종플루는 아니었다. 안심했지만, 바로 직후 첫 번째 촬영부터 난관의 연속이
[박해일] 이 남자의 발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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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끼>의 첫날 촬영은 유준상의 몫이었다. “유해국! 당장 그곳에서 나와!” 극중 박민욱(유준상)이 유해국(박해일)의 위험을 전화상으로 직감하고 나서 어서 자리를 빠져나오라며 긴급하게 외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장면의 연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첫 촬영의 부담감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떨쳐버리면 그만이다. 그보다는 시나리오 없이 시작한 영화이다 보니 상대의 뭐가 위험한지 제대로 알 길이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무슨 상황인지 알아야 나오라고 하지? (웃음).” 지금은 즐거운 첫날의 추억이 됐다.
<이끼>에서 유준상이 연기하는 박민욱의 자리는 중심보다는 외곽에 있다. 그는 검사다. 영화의 주요 인물 중 유일하게 주무대가 되는 마을에 함께 살지 않는 인물인데, 그럼에도 유해국과 과거에 얽힌 어떤 인연(?)으로 이 소용돌이 속에 뛰어들게 된다. 곤경에 빠진 유해국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사람으로 영화 내내 간간이 등장하다가 후반부에 가서
[유준상] 코미디부터 강인함까지, 홍상수부터 강우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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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은 지금 불안하다. 개봉을 앞둔 배우라면 누가 불안하지 않겠냐만 그가 처음으로 한 노역이었고 분장의 이물감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쩌면 막연한 노파심.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걱정. “다행히 본 사람들은 신경 쓸 만큼 티가 나지 않는다더라. 그래도 촬영 내내 강박관념 때문인지 영화를 볼 때도 내 모습만 살폈다. 이장의 캐릭터를 이해하기보다 완벽한 노역을 연기해야 한다는 게 더 큰 짐이었다.” 걱정이 촬영 때만 있었던 건 아닐 거다. <이끼>의 원작을 사랑한 팬들은 그의 캐스팅을 우려했다. 본인도 생각지 못한 배역이었다. 노역은 어떻게 한다고 해도,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가 싫어하는 부류의 얼굴들을 총집합시켰다는 이장 천용덕의 얼굴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당황했다. 해낼 자신이 없었다.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극중에서 ‘두려움이 나를 구한다’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렇지 않더라. 두려움은 두려움이다. (웃음)” 어쨌든 그는 피부의 숨통을 막는 분장을 반복했다. 그
[정재영] 인간적인 틈, 정재영식 리얼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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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끼>가 강우석의 전작과 다르다고 할 때, 그건 예상치 못한 원작과의 만남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배우들의 면면일 것이다. 박해일이 한국영화가 그려온 일반적인 남성성과는 거리가 먼 남자들을 연기해왔다면(특히 강우석의 남자들과는 거리가 더 먼 남자들이다), 유준상은 TV드라마와 뮤지컬, 홍상수 감독의 영화까지 다채로운 선택을 했던 배우다. 비교적 강우석과 자주 조우했던 정재영은 언제나 명확함을 기치로 내건 그의 영화를 좀더 미묘하게 만드는 지점에서 연기했다. <이끼>에 한데 모인 이들의 힘줄과 핏줄은 원작뿐만 아니라 강우석의 영화와도 다른 색깔의 결을 새겨놓는다. 의외의 만남에서 얻은 그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정재영, 유준상, 박해일] 배우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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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 맥과이어의 후임 자리를 꿰찼다.
=피터 파커는 여린 감수성과 강인함이 동시에 필요한 역이다. 내성적이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은 강한데 그런 면이 주효했던 것 같다.
-1983년생, 아직 이름도 생소한 신인이다.
=웬걸. 라디오, 드라마, 영화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보이 A>로 영국 아카데미상인 BATA의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버라이어티>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10명의 배우’로 선정되기도 했다.
-완벽한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바람에, 마크 웹 감독은 당신이 영국 출신이라는 걸 미처 몰랐다더라.
=어머니가 영국인이시고, 세살 때 영국으로 가서 쭉 그곳에서 살았다. 미국인인 아버지는 그곳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으셨고, 우릴 미국인으로 키우셨다.
-연기는 어떻게 하게 됐나.
=13살 때까지는 체조와 수영을 했는데 적성에 안 맞더라. 부모님이 연기를 권유하셨고, 전문적으로 배우게 됐다. 그때부터 내 인생에도 열정과 목표가 생겼다.
-롤모델은
[who are you] 앤드루 가필드 Andrew Gar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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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이 강우석 감독의 <이끼>에서 맡은 역은 이영지다. 영지는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은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목격하는 여자다. <이끼>에서 유선의 첫 등장신과 대사는 이렇다. 마루를 걸레질하다 유해국(박해일)이 들어오자 말을 툭 던진다. “이 방 쓰실 분? 잘생겼네~.” 그때의 표정과 말투와 분위기가 꽤 신선하다. 이런 것도 연기변신이라 불러야 하나? 글쎄. 지적이고 차분한(<떼루아> <로비스트>), 씩씩하고 고집스러운(<작은 아씨들>), 착하고 순종적인(<솔약국집 아들들>) 인물까지 드라마에서 유선은 참 다양한 역들을 소화해왔다. 영화에선 사이코패스(<검은집>)도 연기했다. 그런데 <이끼>의 미스터리한 여성 이영지가 유선에게 대단한 변신과 도전이 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글쎄, 라고 운을 떼야 할 것 같지만 이렇게 말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유선이 강우석 감독을 만났다. 한동안 여배우와는 작업
[유선] 강우석을 만났다 다시 여배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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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소개해달라.
=델핀 샤네크, 1978년생, 프랑스 출신의 배우이자 모델, 가수, DJ다. 최근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스플라이스>에서 신생명체 드렌을 연기했고, 지금은 올리비에 키르 감독의 스릴러 <빅 블랙> 작업 중이다.
-빈센조 나탈리와의 첫 만남.
=‘어느 캐나다 영화’의 오디션 제의가 왔을 때 영화 내용이나 감독, 출연배우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크게 부담없이 스쿠터를 타고 오디션장으로 가던 중 낯익은 남자와 마주쳤다. 다름 아닌 빈센조 나탈리였다! 나는 그의 전작 <큐브>를 봤으며 그의 광팬이었다. 재미있는 건 내가 그날 오디션을 본 첫 번째 배우였는데, 빈센조는 나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막연하게 그려왔던 드렌을 찾았다는 걸 알았다고 얘기해줬다.
-오디션장에서 어떤 연기를 했나.
=빈센조 나탈리는 내게 반인반수를 연기할 수 있는지 묻고는, 에일리언처럼 움직여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8년 동안 배운 가라테 동작 일부를
[who are you] 델핀 샤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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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이 강한 메소드 연기자인 건 익히 알려져 있다. 매 작품 그는 ‘자신’의 얼굴을 버리고 ‘인물’의 얼굴을 드러내보였다. 바다 한가운데서 수천명의 병사를 호령하던 이순신 장군(<불멸의 이순신>), 메스를 쥐고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 의사 장준혁(<하얀거탑>), 오합지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강마에(<베토벤 바이러스>), 온몸이 마비되어가는 루게릭병으로 사랑하는 연인과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 하는 종우(<내 사랑 내 곁에>) 등 그가 맡은 많은 인물들에게서 ‘배우’ 김명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그는 작품 속 인물이 되려고 노력했고, 또 빠져들었다. 그런 그가 새로운 얼굴로 찾아왔다. <파괴된 사나이>에서 김명민이 맡은 역할은 납치된 딸을 애타게 찾는 아버지 주영수로, 유괴범과의 사투로 점점 파괴되어가는 인물이다.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그는 주영수가 되었다. 역시 ‘김명민은 김명민이다’라고 할 만하다. 다음은 그로부터
[김명민] 김명민은 김명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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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은.
=지금 스물넷인데, 열아홉에 드라마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로 데뷔했다. 처음 연기 배운 날은 2005년 2월23일. 그렇게 하고 싶었던 연기를 시작한 날이라 외우지 않으려 해도 외워진다.
-<영도다리>가 첫 주연작이다.
=주연이라고 특별히 부담 가지진 않았다. 오히려 조연이었을 때 어떻게 해서든 튀어야겠다는 생각에 힘들었던 것 같다. 주인공이라 얘기가 많아서 인물 만들기는 편했다.
-미혼모 역인데.
=일단 살을 5kg 정도 찌웠다. 서 있으면 배에 가려 다리가 안 보일 정도였다. 통통해진 배를 보면서 주문을 외웠다. 여기 아기가 있는 거야 하고. 애 낳는 장면은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가정출산 UCC를 많이 봤다. 그리고 애 낳을 때, 아니 애 낳는 연기할 때 엄마가 너무 보고 싶고, 있지도 않은 남편이 너무 보고 싶은 거다. 진짜 애 낳으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옆에 누가 없으면 되게 서럽겠구나 싶었다.
-드라마 <동이>에
[who are you] 박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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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문숙을 몰랐다. 그녀의 얼굴을 처음으로 마주한 건 <문숙의 자연치유>(이미지박스 펴냄)라는 책의 표지에서였다. 세월이 비껴나간 것이 아니라 세월을 품어내고 간직해온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고 이만희 감독의 마지막 뮤즈이자 연인이었던 배우 문숙이었다. 고교 재학 중 TBC 드라마 <세나의 집>으로 데뷔한 그녀는 세편의 영화 <태양 닮은 소녀>(1974), <삼각의 함정>(1974), <삼포가는 길>(1975)을 이만희 감독과 함께 만들었고, 이만희 감독이 <삼포가는 길>의 촬영 직후 4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홀연히 배우의 삶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문숙은 자신이 잊었고 자신을 잊어버린 한국에 두권의 책을 내놓았다. 하나는 이만희 감독과의 마지막 1년을 놀랄 정도로 솔직하게 써낸 2007년작 <마지막 한해: 이만희 감독과 함
[문숙] 날것 그대로의 매력으로 돌아온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