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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도, 귀도… 귀도! <나인>의 영화감독 귀도 콘티니는 어설픈 술래다. 영감의 갈증에 시달리는 그는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세상을 피해 달아나기 급급하지만 일은 쉽게 어긋나고 행방은 금방 들통난다. 그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이 그의 도피욕을 능가하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귀도는 아이러니하게도 관계의 헤게모니를 거머쥔 승자요, ‘예스 혹은 노’의 특권을 획득한 행운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귀도 역을 맡은 배우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어떤가. 극중 페넬로페 크루즈의 정부요, 마리온 코티아르의 남편이자 소피아 로렌의 아들인, 나아가, 니콜 키드먼의 존경을 사고, 주디 덴치와 비전을 공유하며, 케이트 허드슨이 하룻밤 사랑을 갈망하는, 그야말로 선물 같은 한때를 누린 그라면. 게다가 인간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대개 일과 사생활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노련한 술래에 가깝지 않았나. “작업은 순수한 쾌감이나 이를 둘러싼 지엽적인 많은 것이 끔찍하다. 나는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모든 수단에
[대니얼 데이 루이스] 영원한 스크린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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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과 <애자>, 그리고 <나인>의 공통점은? 예술성 짙은 유럽영화와 중규모의 한국영화, 그리고 화려한 할리우드 뮤지컬영화 사이에 놓인 다리는 데이지엔터테인먼트라는 영화사다. 2005년 창립해 <스윙걸즈> <나 없는 내 인생> <쉬즈 더 맨> <미스트> 같은 영화를 수입해온 데이지엔터테인먼트는 2008년 1만달러도 안되는 수입가로 들여온 <렛미인>으로 대성공을 거두며 이름을 널리 떨치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 <오감도> <애자> 등 한국영화에 메인투자를 시작했으며, <나인> 같은 초특급 캐스팅 할리우드영화를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30대임에도 불구하고 10여년의 수입 경력을 갖고 있는데다 한국영화 제작투자에까지 나서고 있는 김원국 대표에게 ‘수익성 극대화’ 전략 노하우를 들어본다.
- <나인>은 보통 수입사가 범접하기 어려운 대형 할리우드영화다.
외화 벌어 한국영화에 투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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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만 손오공처럼 둔갑술을 부리는 게 아니다. 임수정도 <전우치>에서 구미호처럼 수차례 변신한다. 카메라가 과거와 현재를 어지럽게 횡단하지만, 전우치는 전우치고 초랭이는 그대로 초랭이다. 하지만 임수정은 보쌈당한 과부였다가 혼쭐나는 스타일리스트였다가 무법의 악당으로 변하는 다색다종 캐릭터를 연기했다. “사실 인터뷰를 하고 싶어서 제작사에 먼저 요청했어요.” 뒤늦게 안 사실. 변신을 더욱 갈망했던 건 <전우치>의 서인경이 아니라 임수정 자신이었다. “다른 배우들과 달리 먼저 아는 척을 잘 안 한다”는 사진기자의 귀띔은 아무 소용없었다. 새침한 구석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우치처럼 부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임수정은 독심술이라도 지닌 양 묻기도 전에 답했다.
-쉽게 말 걸기 어려운 스타일이라고 들었다. 변한 건가. 뭘 물어보나 걱정도 했다.
=많이 안 물어봐도 된다. 사는 이야기 하면 되지, 뭐. 나이 들면서 얼굴이 두꺼워졌나 보다. 사적인 자
[임수정] 이젠 내 것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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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묵한 살인범. <용서는 없다>에서 류승범은 꽤 난이도 높은 도전을 했다. 돌아보면 아쉬움도 많지만 더 멀리 내다보고 싶은 연기 인생에서 중요한 단락을 지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익숙한 친근함 때문일까. 류승범을 상당히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라듸오 데이즈>(2007) 이후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나 백현진 감독의 단편 <디 엔드> 정도를 제외하면 오랜만의 주연이다. 야심차게 준비하던 강풀 원작의 <29년> 프로젝트는 좌초되는 아픔을 겪었고 그동안 거절한 영화도 꽤 된다. 그중 대박난 영화도 있다니 속이 쓰릴 만도 하지만 ‘배우 류승범’은 이런 영화도 하고, 저런 일도 겪으면서 여전히 갈고 다듬는 과정 속에 있다.
그런 점에서 살인범 ‘이성호’ 캐릭터는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다. “지금껏 해보지 못한 역할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분량은 적어도 영화의 전체적인 정
[류승범] 얼굴에 세월을 새겨넣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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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잃고 분노에 사로잡힌 부검의 강민호. 설경구는 달리고 깨지고 분노하고 오열한다. 응축된 그의 ‘쇼’는 보는 이에게도 쉽지 않을 만큼 빡빡한 농도다. 슬프고 처연하다.
“<용서는 없다>는 날것의 영화다. 좀 폼나게 달빛이라도 비춰주든지 비라도 추적추적 내려주면 분위기로 절반은 먹고 들어갔을 텐데. 이건 죄 백주에 아무 장치없이 연기해야 하니….” 설경구의 ‘험담’은 진의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이 멋도 없고, 치장도 하지 않은 날것의 영화는 그 결과, 오롯이 설경구 자신의 연기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심 기분이 나쁘지 않을 만했다. 그래도 말은 이렇게 툭툭 내뱉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는 자타공인 도통 ‘빈말’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다.
손꼽힐 정도로 탁월한 감각을 소유한 부검전문의. <용서는 없다>의 강민호의 1막은 그랬다. 그러나 딸이 납치되면서 그의 세련된 리듬은 깨진다. 무언가에 쫓기듯, 홀린 듯 이성이 마비된 남자의 절규가 강민호의 2
[설경구] <박하사탕> 10주년,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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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설경구와 류승범은 관객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현대 한국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짊어진 <박하사탕>의 ‘김영호’(설경구), 또 미래라는 희망을 가져본 적 없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불량청소년 ‘상환’(류승범). 둘 모두는 관객이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가여운 우리 시대의 캐릭터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각자의 방식으로 두 배우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캐릭터를 잡아낼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을 습득하게 됐다.
<용서는 없다>는 이 두 베테랑 배우가 만나 이루는 고도의 화음이다. 영문도 모른 채 딸을 납치당한 부검의 강민호와 강민호를 궁지에 몰아넣은 환경운동가 이성호의 게임. 스릴러의 재미를 배가해줄 장치는 배제된다. 대신 철저하게 두 배우의 연기를 좇아가는 날것 그대로의 차림이 이 영화의 진짜 스릴이다. 게임의 승패는 결국 둘의 화음에 달려 있다.
[설경구, 류승범] 두 열혈남아의 사생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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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의, 강동원을 위한 영화.” 최동훈 감독의 표현대로 <전우치>는 강동원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강동원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전우치라는 캐릭터의 모델이자 영감이 됐고, 촬영 기간 내내 현장의 중심에 자리했으며, 영화가 상영되는 거의 모든 순간까지 커다란 존재감을 드러냈다. 무릇 주연배우가 다 그런 것 아니냐고 되묻는 이도 있겠지만, <전우치>를 축구경기에 비유하자면 강동원은 9.5 이상의 평점을 너끈히 받을 법한 활약을 펼쳤으니 그 격은 확실히 달라 보인다.
어쩌면 <전우치>는 처음부터 강동원에게 유리한 게임이었는지도 모른다. 심각함이나 진지함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뺀질뺀질 도사 캐릭터는 강동원의 본성과 어느 정도 닮아 있다. “평소 성격이 그렇게까지 개구지지는(‘짓궂다’는 뜻의 경상도 방언) 않은데 결국 다 내 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우치>를 보노라면 전우치보다 자연인 강동원이 더 천방지축 악동 같다고 믿게
[강동원] 스타를 벗고 책임감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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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때론 뒤늦게 가슴을 친다. 살아남은 자의 어깨를 돌려세워 이가 빠진 객석을 기어이 응시하게 만든다. <다크 나이트>(2008)로 절절하게 되새김질한 히스 레저의 젊은 죽음을 다시 한번 추모할 시간이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이하 <상상극장>)은 알려진 대로 그의 유작이요, 크레딧에 명시되듯 ‘히스 레저와 친구들의 영화’다.
숱한 재앙의 현장을 인내했지만 주연배우의 죽음만큼은 참기 힘들었던 듯 촬영이 중단된 몇 개월 동안 “영화는 끝났고, 우린 당장 집에 가야 한다”고 한탄했다는 테리 길리엄은 말했다. “히스 레저는 모든 과정에서 우리와 함께했다. 그의 에너지, 재능, 생각들…. 그의 죽음이라는 비극과 우리를 제작에 임할 수밖에 없게 만든 궁극적인 결단. 그게 이 영화가 히스 레저와 그 친구들의 영화인 이유다.”
히스 레저의 친구라 함은 명백히, 난파 직전의 영화를 가까스로 회생으로 이끈 세 배우, 조니 뎁·주드 로·콜린 파렐
[히스 레저] 히스는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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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렇게 얘기한다. ‘한국 영화홍보마케팅 업계의 대모’라고. 채윤희 대표는 일간지에 제대로 된 영화지면조차 없던 시절 ‘올댓시네마’라는 전문 홍보사를 차려 <컬러 오브 나이트>(1994)를 시작으로 <쉬리>(1999)로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새로 썼고, 이후 <매트릭스>(1999)와 <친절한 금자씨>(2005) 등 딱히 구체적인 몇편의 제목만 나열하기가 머쓱할 정도로 수백편의 작품들을 매만져왔다. 부침이 심한 한국영화계에서 올댓시네마 이전까지 포함하면 20년 넘게 한국영화와 함께한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올댓시네마는 홍보는 물론 제작과 스탭 등 각 분야의 많은 유능한 인재를 배출하기도 해 ‘여성영화인 사관학교’라는 얘기도 들으며 다른 후발 홍보사들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올해는 올댓시네마의 창립 15주년이기도 하고, 준비위원장으로 시작해 또 하나의 ‘회장’ 직함을 갖고 있는 여성영화인모임이 1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
[채윤희] 오기가 있다, 영원한 마케터로 남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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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 행복합니다>의 중요 등장인물 중 하나는 정신과의사 형철이다. 요즘 <남자의 자격>이란 버라이어티쇼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배우 김성민이 형철을 연기했다. 극중에서 형철이 과대망상에 빠진 만수를 치료하는 방법은 현실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도박에 빠져 결국 자살하고만 만수의 형의 사진을 보여주는가 하면, 만수의 어깨를 짓눌렀던 치매에 걸린 엄마를 대면시킨다. 몸이 먼저 잊을 것을 강요할 정도로 참혹했던 과거와 마주한 만수는 끝내 울고 만다.
영화를 보면서 형철은 윤종찬 감독이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했다(물론 원작인 <조만득씨>에 나오는 캐릭터다). <소름>과 <청연> 등 전작의 인물들은 언제나 벼랑 끝에 내몰렸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조국에 배척당했던 그들은 굴레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윤종찬 감독이 배우들 사이에서 가혹하기로 소문난 이유도 그에 기인할 것이다. 그는 언제나 배우들
[윤종찬] “배우들이 안 떨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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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쏙 빠졌다. 광대뼈와 턱 사이에는 굴곡이 완연하다. 얼마 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촬영현장에선 갓끈과 수염 때문에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움푹 팬 얼굴은 핼쑥하기보다 지독한 느낌이다. 눈빛은 더 강렬해졌다. 사진기자도 연방 찬탄하며 클로즈업의 연속이다. 멋쩍은지 차승원은 “지금 다른 배우 사진 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한다. 정말이지, 딴사람 같다. 예전엔 농담하면 얼굴에 장난기가 홍조처럼 슬그머니 퍼졌다. 이젠 냉소에 가깝다. “7kg쯤 빠졌나. 이준익 감독님도 내가 알고 있던 얼굴이 아니라고 하시더라. 다들 낯설어한다. 그런데 지금이 딱 내가 좋아하는 얼굴이다. 왜 좋은지는 내가 깨달아야겠지.”
달라진 건 또 있다. 말수가 줄었다. 지방에서 <시크릿> 무대 인사하고 새벽에 서울에 도착,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인터뷰를 해야 했던 탓이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다. <국경의 남쪽> 때만 해도 호프집에서 기자를 붙들어두고, 혀로 스트레스를 풀던
[차승원] 몸으로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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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 행복합니다>는 가상의 꿈을 통해 행복을 찾으려는 남자의 이야기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 도박에 빠진 형에게 온갖 스트레스를 받던 주인공 만수는 상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알프스 산맥의 어느 자락, 부모님이 경영하는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미녀들과 함께 부유함을 즐기는 것이 그의 상상이다. 만수를 연기하는 배우가 현빈이라고 했을 때, 이런 과대망상은 현빈을 새삼스럽게 환기시킨다. 만수가 꿈꾸는 삶은 영락없이 ‘삼식이’의 삶이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꿈같던 남자를 연기한 배우가 모든 사람들의 악몽을 연기한 것이다. 그런데 현빈에게는 그 간극을 메우는 또 다른 결이 있다. 능력있는 드라마 PD지만, 일상적인 무게에 짓눌려 있던 <그들이 사는 세상>의 지오, 거친 운명을 살다가 처참히 죽어간 <친구, 우리들의 전설>의 동수. 순서상 가장 먼저 촬영한 <나는 행복합니다>가 뒤늦게 개봉한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지난 1년 동안 그처럼 다양한
[현빈] 만수와의 접점 위해 정신병동에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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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워쇼스키 형제와의 조우를 알린 <스피드 레이서>의 단역이 예고편이었다면, 이번엔 본편이다. ‘꿈을 이루었다’는 그에게 <닌자 어쌔신>이 사건이듯이, 한국 관객에게도 ‘레인’이란 타이틀의 화면 점령은 전에 없는 사건이다.
비는 유독 이름이 많이 필요한 스타다. 연기자로 그가 영역을 확장할 때, 그는 본명 ‘정지훈’을 앞세워 자신의 변화를 알렸다. 그는, 자신이 정지훈으로 불린다면 그간 ‘가수 비’로 보여주었던 무대 위 퍼포먼스의 흔적을 떨치고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을 거라고 강조했다. 본명의 사용은 자신이 그만큼 연기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는 진실성을 비추는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 되어주었다. 그가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그래서 공백을 설명할 누군가의 새로운 헤어스타일, 혹은 성형수술과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그는 갑작스레 스타일을 바꾼다거나 외꺼풀의 눈에 칼을 대는 대신, 달라진 이름 하나로 변화를 각인해왔다. 첫 할리우드
[레인] “이건 꽤 괜찮은 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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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궁금했다. 장편 <내가 집행한다>를 비롯해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 진행 중이던 류승완 감독이 외도(?)를 했기 때문. 그럼에도 하나같이 인상적인 결과물이라 ‘역시 류승완’이라는 감탄이 나왔다. 그는 최근 모토로라 신제품 ‘모토 클래식’ 출시 마케팅의 일환으로 액션단편 <타임리스>를 만들었다(홈페이지 ‘motoklassic.com’에서 본편을 무료 감상할 수 있다).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처럼 인터뷰가 삽입된 다큐멘터리 느낌의 <타임리스>는 시간을 초월한 장인 정신을 담고 있다. 세계적인 톱스타가 된 왕년의 스턴트맨 케인 코스기와 한때 그의 선배였던 현재의 무술감독 정두홍이 새로운 액션영화의 배우와 무술감독으로 다시 만난다는 내용이다. 땀냄새 가득한 액션과 남자들의 말없는 우정이 그의 영화다운 짙은 여운을 남긴다. 류승완 감독은 그보다 앞서 한류, 음식, 쇼핑, 세련된 문화라는 네 가지 주제로 중국인에게 한국을 홍보하는
[류승완] 힘을 빼는 방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