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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경이처럼 그렇게 가슴 아픈 짝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늘 다치지 않도록 방어해왔고, 상대방에게 깊이 빠지지 않도록 거리를 두었다. 사실 세경이가 지훈을 좋아하는 감정은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처음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세경이가 더 어려워하고, 더 힘들어하고, 더 많이 우는 것도 그래서다. 얼마 전 지훈과 정음의 포옹장면을 목격했을 때는 더 그랬을 것이다. 어차피 밝혀지는 사실이고,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지만 충격적인 것은 분명하다. 순간 세경이는 지훈이가 가질 수 없는 상대임을 깨달은 것 같다. 차라리 나라면 다정한 준혁 학생을 선택했을 텐데…. 사랑 관계가 꼬이고, 이런저런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가끔 세경의 처지를 잊을 때가 있다. 시청자가 ‘왜 쟤는 항상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 너무 답답해’라는 반응을 보일 때가 그렇다. 그럴 때마다 속상하다. 물론 시트콤을 보면서 웃음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세경이는 불쌍한 아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
[신세경] 비극적인 결말이… 낫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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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멋있다. 딱 한 가지가. 상사나 윗사람한테 겉치레, 인사치레 없이도 사회생활할 수 있다는 거. 이만큼 비현실적인 캐릭터도 없다. 그렇지만 세간의 관심처럼 지훈이 훈남이란 건 풋…. (웃음) 가끔 내가 연기를 잘 못해서 멋있는 캐릭터가 된 건 아닌지, 하자 많은 캐릭터인데 내가 잘못 해석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그걸 들킬까봐 감독님한테 이 이야기는 지레 하지 않았다. 사실 지훈의 모든 게 신경 쓰인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양언니’는 습관이나 몸짓 같은 걸 최다니엘화시킨 부분도 많았는데, 이번엔 나란 사람과 거리를 뒀다. 걸음걸이, 눈빛, 표정, 안경 하나까지. 지훈이라는 존재를 새롭게 만들었다. 갑자기 ‘와하하하’ 웃는 것도 허용 안되는, <지붕 뚫고 하이킥!>의 유일하게 갇힌 캐릭터. 철저히 계획된 캐릭터가 지훈이다.
물론 나도 지훈이 싫지 않다. 덕분에 내가 예전보다 연기할 수 있는 장의 크기가 더 커졌다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최다니엘] 서서히 사랑에 물들듯 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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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는 벗어도 된다. 신종플루는 깨끗이 나았다. 알려진 것처럼 심각하게 아프지도 않았다. 원래 체력이 좋은 편인데, 또 무용으로 다져진 몸이라…. (웃음) 당연히 바쁜 스케줄 때문에 힘들 때도 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덕분에 버티고 있다. 주위에서 말릴 정도로 말도 안되게 긍정적인 성격이다. (웃음) 물론 지금은 <지붕 뚫고 하이킥!> 때문에 더 큰 자신감을 얻은 것도 있다.
요즘 들어 극중 정음이가 많이 변했다는 말들이 있는데, 인정한다. 얘가 연애를 하면서 더 여성스러워졌다. 그래도 지금의 정음이는 감독님이 우리보다 1만배는 더 많이 고민한 끝에 나온 모습이다. 솔직히? 음… 나도 예전의 정음이 좋다. (웃음) 정음이를 처음 맡았을 때, 감독님은 “절대 예쁜 척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쁜 척뿐만 아니라 일부러 웃기려드는 것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극에 출연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내 안에 숨겨진 끼들이 더 자연스럽게 나올 때가
[황정음] 정음이답게, 걱정없이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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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26일 오전 8시, <씨네21> 스튜디오에는 짝사랑의 아픔도, 취업 걱정도, 집요하게 귓속말을 해대는 아저씨도 없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지훈, 정음, 세경, 준혁은 서로를 향해 교차하는 애달픈 시선을 거두고 빨간색 목도리를 함께 둘렀다. 촬영장소 외에 한꺼번에 모인 게 처음인 이들 사이에는 사진 촬영 내내 장난과 농담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98개의 에피소드들이 채워놓은 절절한 사랑의 고통을 함께 감당해온 이들은 장난도 장난으로 보이질 않는다. 뜻밖의 도발적인 의상을 입은 신세경에게 던진 최다니엘의 감탄사. 그런 최다니엘에게 ‘얼음!’이라고 외치는 신세경의 장난, 촬영 도중 종종 윤시윤의 머리에 묻은 티끌을 털어주던 신세경의 손짓, 신세경을 보는 최다니엘에게 “그만 좀 봐”라고 하던 황정음의 애교 섞인 다그침 등등이 웃음소리와 함께 짠한 기억들을 불러왔다. 지훈이 그렇게 세경을 봐주었다면 어땠을까, 세경의 일상적인 배려에도 준혁이는 심장이 멎
…됐고! 우리 이대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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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알려진 대로 지진희는 손재주가 좋다. 한때 공예를 전공했던 사람답게 이것저것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즐긴다. 그는 배우로서의 삶에도 똑같은 원칙을 적용한다. 어느 한 작품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으며 경험을 분해해 교훈으로 조립할 줄 안다. <평행이론>의 석현은 이러한 ‘분석가’ 지진희의 기질과 가장 맞닿아 있는 캐릭터다. 운명보다 자신의 판단력을 믿고, 감정보다 이성으로 판단하는 이 인물은 ‘평행이론’에 휘말리며 자신의 신념을 모두 저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인간 지진희와 캐릭터 김석현에 차이가 있다면 바로 이런 지점일 것이다. 공예, 디자인, 사진 관련 직업을 거쳐 배우 인생 10년차에 들어선 지진희는 환경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신념을 간직하고 있었다. “일은 일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철저하게 지켜나가겠다는 완벽주의자로서의 각오가 바로 그것이다. “죽을힘을 다해” 이 원칙을 사수하고 있다는 이 배우는 벌써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구상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진희] 난 지금 연기에 목숨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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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 사람 됐네.” <의형제>의 시사회장을 나서며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됐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단순히 도사(<전우치>)가 간첩(<의형제>의 송지원)이 됐다는 뜻에서 꺼낸 말은 아닌 듯하다. 알쏭달쏭한 말만 남기고 스쳐 지나간 그 누군가를 대신해 뜻을 풀어보자면 이 정도가 적당할 듯싶다. 강동원이, 스크린 밖으로 걸어나와 현실 속으로 들어갔다고.
<의형제>에서 강동원이 연기하는 송지원은 남파된 북한 엘리트 첩보원이다. 그는 적에겐 냉철하나 동료에겐 신의를 지키고 약자에겐 인간적이다. 차가운 머리에 따뜻한 가슴을 가진 첩보원. 어느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이 캐릭터는 강동원이 거쳐온 인물들과 정확히 반대 지점에 있다. 이제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를 채워온 건 강렬하고 ‘엣지’있는 캐릭터들이었다. 강동원 특유의 외모와 신비감을 부각하거나(<늑대의 유혹> <형사 Duelist> <M>), 그 매력을
[강동원] 세상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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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형제>에서 송강호는 좀 많이 뛰어다닌다. 그가 맡은 국정원 요원 한규는 간첩을 잡으려 동분서주한다. 간첩을 놓친 탓에 국정원에서 퇴출당한 뒤로는 흥신소 사장으로 도망간 베트남 신부를 찾아 전국을 헤집는다. 사실 그에게는 간첩이든 베트남 신부든 잡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목표물이다. 그랬던 그가 적으로 만났지만, 외롭고 불쌍한 한 남자를 구하기 위해 다시 뛴다. <의형제>는 송강호의 육체성과 그의 달리기에 담긴 감정변화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영화다. 송강호 본인에게도 영화 속의 질주는 가장 힘든 촬영이었다. “물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웃음) 촬영기간이 지난여름 중에서도 가장 더운 기간이었는데, 특히 하이라이트 촬영은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에 있었다.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힘들더라.”
송강호가 자신의 몸을 혹사시킬수록 관객의 즐거움도 컸던 전력에 비추어
[송강호] 또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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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당일, 송강호와 강동원은 오랜만의 술자리를 앞두고 있었다. 술은 강동원이 사겠다고 했단다. 그들이 서로 술잔을 부딪칠 모습을 상상해보니 군 입대를 앞둔 막내동생의 술잔에 소주를 따라주는 큰 형님의 풍경이 떠올랐다. 아마도 형은 건강을 염려하는 것 외에 다른 말을 꺼내지 않을 것이다. 술을 받는 동생도 형 앞에서 울며불지하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형님이 계신데, 별로 말이 없어요.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라 경상도 남자의 특징일 거예요. 그러고 보니 동원이도 경상도네?”(송강호) <의형제>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한규와 지원 사이에도 특별한 말이 오가지 않는다. 서로를 목표물로 여기던 두 남자가 서로를 감시하던 끝에 잠시 긴장을 푸는 순간일 뿐이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에도 “의외로 술이 센” 강동원과 “하늘 같은 선배라 믿고 따랐던” 송강호는 술을 자주 마셨다. 그들의 전작인 <박쥐>나 <전우치> 모두 캐릭터나 규모 면에서 녹록지 않은 작품이었
[송강호, 강동원] 호형호제가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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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을 만들면 8편이 성인물이던 1980년대 영화계. 외화에 떠밀린 한국영화의 위치는 작고 나약했다. 이장호 감독을 주축으로 한 새로운 한국영화의 흐름이 시작됐고, 그 중심에 여배우 이보희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과 같은 성인물로 인기를 모았으며, <과부춤> <바보선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등의 작품을 통해 이보희는 새로운 시대의 여성을 연기했다. 기존 여배우와 다른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스크린을 떠난 지 15년. 이보희가 <식객: 김치전쟁>으로 돌아왔다. 2010년의 현장에서 돌아본 그녀의 지난 시절을 만났다.
-영화 참 오랜만이다.
=한 15년은 된 것 같다. 기회도 없었고, 대부분 젊은 사람 위주 영화라 나이도 맞지 않고 어정쩡하더라. 게다가 우정출연, 특별출연은 하고 싶지 않더라.
-<식객: 김치전쟁>(이하 <식객2>)
[이보희] 개성강한 엄마 역할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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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이어 이번엔 <여행>이다. <여행>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진흥개발기금으로 디앤디미디어와 아리랑국제방송이 제작하는 프로젝트 <영화, 한국을 만나다>의 일환으로, 배창호 감독이 연출한 옴니버스 신작 제목이다. 서울(윤태용 감독), 부산(김성호 감독), 제주도(배창호 감독), 춘천(전계수 감독), 인천(문승욱 감독) 등 5개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배창호 감독은 제주도를 선택했고, ‘눈만 돌리면 관광지’인 제주도 곳곳을 서성이는 <여행>의 주인공들은 외부와 내면이 섬세하게 조응하는 특별한 순간들을 맞닥뜨린다. 공모전 준비를 위해 제주도를 찾은 사진부원 준형과 경미는 친구와 연인 사이의 경계에서 머뭇거리고(<여행>), 10여년 전 가출한 엄마를 찾아나선 15살 소녀 수연은 방학 동안 좀더 성숙해진다(<방학>). 명예퇴직한 남편과 중학생 딸에 치어살다가 충동적으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 주부 은
[배창호] 순수한 우정과 사랑은 여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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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를 절대 못 이겨.” 한때 사람들의 섣부른 관심 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견딘 김정은이 <식객: 김치전쟁>을 통해 얻은 대사다. 솔직히 그녀가 지닌 대중적인 태도에 비춰보면 낯설다. 그녀가 내뱉기보다는 오히려 아프게 들어야 했던 말에 가깝지 않을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김정은은 남자 앞에서 언제나 약자였고, 그 남자를 원하는 ‘더 잘난’ 여자 앞에서도 약자였고, 그 남자의 부모에게는 더더욱 약자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인관계는 아니지만) 관객이 응원하는 남자주인공과 대척점에 서서 대결하는 여자다. 게다가 자존심 자체를 원하는 그녀는 진심을 드러내거나 빈틈을 보이는 법도 없다. <사랑니>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을 통해 시도한 변화보다도 더 넓은 간극이다. 다음은 김정은과 나눈 그 간극에 대한 대화다.
-여기 오기 전 6개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고 들었어요.(인터뷰는 밤 9시30분에 시작했다)
=많이 피곤하지는 않아요. 지난주가 절정이었는데
[김정은] 내 속을 파내듯 장은의 속을 파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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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과 강동원, 송혜교의 만남,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일본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와 설경구의 결합, <시티즌 독> <검은 호랑이의 눈물>의 타이 감독 위시트 사사나티앙과 김민준의 조합. 이 모든 것은 이제 곧 촬영에 돌입하는 새 영화 <카멜리아> 안에 들어가게 된다. 무슨 영화기에 이렇게 화려한 감독과 배우가 참여하냐고? <카멜리아>는 바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부산 프로젝트>라는 가제로 발표됐던 옴니버스영화다. 이 영어 단어(camellia)의 뜻은 글쎄 동백꽃이란다. 이 프로젝트가 특이한 점은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신생 영화사 (주)발콘에서 제작한다는 사실이다. ‘영상도시’, ‘아시아영화의 중심’으로 불려왔지만 상업영화 한편 제작하기가 어려웠던 부산에서 이 글로벌 프로젝트가 탄생한 데는 발콘의 오석근 대표의 공헌이 컸다. <101번째 프로포즈> &l
[오석근] 해운대 백사장에 소주병 1천개 꽂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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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은 부러 예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배우다. 비현실적인 외모는 그녀를 남과 다르게 해주는 장점이지만, 그녀는 늘 그 장점을 벗고 ‘일대일로 붙어보자’는 세찬 도전장을 내민다. 그녀로부터 이번에 건네받은 도전장은 남자 역할이다. 트랜스젠더로 삶을 시작한 29살의 여성. 해프닝 속, 반짝반짝 살아 있는 이나영의 연기가 드러난다.
욕심도 없고, 바쁘지도 않고, 잘 먹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은 여자. 아니 그럴 것 같은 사람. 이나영은 이상한 나라에 산다. 이나영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늘 신비롭고 미스터리하며 규정하기 힘들다. 보통의 ‘여배우’라는 틀거리로 묶으려고 해도 그녀의 긴 목과 팔다리는 범위를 벗어나는 듯, 쉬이 묶이지 않는다. “전 평범해요. 털털해요”라는 매번의 변명을 이나영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더라도, 광고 속 예쁜 이미지보다 캐릭터에 맞춘 내추럴한 모습을 화면에서 보여주더라도. 이나영은 다시 ‘신비한’ 이나영이라는 원점으로 팽그르르 돌아가버린다.
이 끊임없는
[이나영] 가장 ‘이나영스러운’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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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 때 떠나라. 박성혜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좀처럼 따르기 힘든 이 삶의 계명을 지킨 본보기다. 싸이더스HQ의 콘텐츠 본부장으로서 250여명의 배우와 매니저들을 책임지던 그녀는 2008년 4월 홀연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박성혜가 누구던가. 김혜수, 전도연을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한 결정적인 공헌자이자 지진희, 황정민, 하정우, 임수정, 공효진, 윤진서 등을 발굴해낸 스타 제조기이며 한국 최대 매니지먼트 업체의 2인자 아니었나. 하지만 박성혜는 파워풀한 권력, 높은 지위, 고액의 연봉을 내팽개친 채 낯선 곳으로 몸을 던졌다.
그랬던 그녀가 돌아왔다. 한때 자신이 던져버렸던 권력, 지위, 연봉을 되주워챙길 것이라는 세간의 예측과 달리 그녀는 달랑 책 한권만 든 채 한국으로 왔다. 그 책은 매니저로서의 15년을 포함해 40년 동안의 삶을 반추하는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씨네21북스 펴냄)이다. 자신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배우, 영화인, 방송인에 관한 이야기뿐 아
[박성혜] 그동안 스타를 도왔다면 이젠 철저하게 나를 돕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