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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가 또 있을까. ‘대발이 아버지’와 ‘야동 순재’라는 서로 다른 유형을 오가며 그는 그야말로 ‘국민배우’로서 천의 얼굴을 보여줬다. 그 특유의 끓어오르는 듯한 저음은 이제 한 작품을 든든하게 받치는 보증수표와도 같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이순재는 무심한 척 한 여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까도남’이다. 냅다 반말부터 하고 거추장스런 몇 마디 말보다 일단 여자의 손을 잡아끌어 어딘가로 걷고 보는 그는 한국영화에서 근래 보지 못한 남자다. 여자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가죽장갑을 하루 종일 끼고 다니며 으스대는 그 모습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미 TV드라마의 황제였던 그가 영화계로 복귀한 것은 <모두들, 괜찮아요>(2005)의 치매 노인 역할이었다. 그 스스로 주연의 자존심이 새겨진 마지막 작품이 최인현의 <집념>(1976)이라고 하니 거의 30년 만의 복귀나 다름없다. 그로부터 5년여의 세월이 흘러 마주하게 된
[이순재] 영원한 남우주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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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를 촬영 중이던 김지운 감독이 <부당거래>를 준비 중이던 류승완 감독에게 문자를 보냈다. “박훈정 작가가 우리 두 사람을 먹여살리는 거 같아.” 두 대표감독이 만든 두편의 화제작은 시나리오를 쓴 장본인의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정작 박훈정 작가는 뜻하지 않은 유명세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성격이 좀 둔한 편이다. (웃음) 어찌 됐든 영화는 감독의 작품이니 작가가 언급되는 게 좋을 것 같지 않더라. 그래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그가 언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와 비슷한 시기에 준비했던 본인의 감독 데뷔작 <혈투>가 개봉을 앞둔 것이다. 신인감독 박훈정을 만나는 김에 시나리오작가인 박훈정에 대해서도 물었다. 최근의 안타까운 사건 때문에라도 시나리오작가인 그와의 만남이 좀더 중요했다.
-개봉 전부터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
[박훈정] 나는 악독한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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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털리 포트먼은 유대인이다.
다 아는 사실이라고? 그녀의 진짜 이름이 내털리 허쉬락이라는 것도 아는가? 아버지인 아브너 허쉬락은 산부인과 의사였고 엄마는 미술가였다. 내털리 포트먼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났고 세살 되던 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2. 그러나 그녀는 홀로코스트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유대인이라는 사실로부터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서 연기하고 싶다. 하지만 매달 20편이 넘는 홀로코스트 영화 대본을 받는다. 공공연한 유대인 여배우로 활동하면서 얻는 것이라곤 그게 다다. 나는 홀로코스트 장르를 정말 싫어한다.”
3. 내털리 포트먼은 육류가공품을 전혀 섭취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비건(Vegan)이다.
그녀는 8살 때 의사인 아빠가 닭을 실험체로 레이저 수술 시연하는 장면을 보고 채식주의자가 됐다. “닭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났고, 그 뒤로 다시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내 모든 신발은 (인조 가죽만 이용하는)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 제품
[내털리 포트먼] 홀로코스트 영화를 싫어하는 유대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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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에서 처음 그녀를 본 이후, 우리는 내털리 포트먼과 사랑에 빠졌다. 그로부터 1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포트먼은 롤리타 이미지를 벗기 위해 끊임없이 지적이고 명석하게 자신의 경력을 통제해왔다. 그녀는 유혹하지 않고 설득했고, 남자들의 가슴이 아니라 머리를 뛰게 만들었다. 다시 말하자면? 내털리 포트먼은 점점 지루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블랙 스완>이 찾아왔다. 이 극단적으로 정신분열적이고 환각적으로 유혹적인 스릴러에서 백조는 흑조로 거듭난다. 내털리 포트먼도 그러하다.
우리는 내털리 포트먼이 조금 지겨웠다. 포트먼은 언제나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착한 소녀(Good Girl)였다. 착한 소녀를 싫어할 이유야 없지만 착하고 바르기만 한 소녀가 덜 흥미진진한 건 사실이다. 비슷하게 아역배우로 시작해 촉망받는 주연급 여배우로 성장했고 <천일의 스캔들>에 함께 출연하기도 한 내털리 포트먼과 스칼렛 요한슨을 한번 비교해보자. 당신이 남자라면, 둘
[내털리 포트먼] 백조, 성숙의 날개를 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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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탕웨이의 얼굴은 항상 그림자로 드리워 있었다. 고난의 역사에서 홀로 짐을 떠안거나(<색, 계>(2007)), 시집 가라는 외삼촌의 성화에 억지로 선을 보지만 감옥에 있는 연인을 쉽게 잊지 못하는(<크로싱 헤네시>(2010)) 등, 그간 그가 연기한 인물에게서‘밝은 미소’를 찾기란 쉽지 않다. <만추>에서 탕웨이가 연기한 ‘애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지금까지 했던 역할 중 가장 쓸쓸한 여인인지도 모른다. 극중 애나는 살인죄로 7년째 감옥에 복역 중인 수감자다. 어느 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친언니의 전화를 받은 그는 교도소로부터 3일간의 외출을 허락받는다. 가족이 있는 시애틀로 가는 버스에서 애나는 ‘훈’(현빈)을 만나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3일을 함께 보낸다. 그러면서 ‘무감각적’인 애나는 ‘훈’에게, 그리고‘세상’에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마치 시애틀의 눅눅한 안개가 밝은 햇살에 의해 천천히 걷히는 것처럼.
다소
[탕웨이] 안개 속에서 빛의 3일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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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파도>(2005)와 <사랑을 놓치다>(2006). 사뭇 달라 보이는 두편의 장편을 내놓은 추창민 감독이 세 번째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로 돌아왔다. 강풀의 원작을 바탕으로 그는 특유의 섬세한 서정과 인간미를 불어넣었다. 아마도 그는 지금 충무로의 젊은 감독 가운데 가장 ‘여백’을 즐기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세상사에 반응도 늦고 힘도 부치며 체념도 빠른 노년의 주인공들과 함께 걷고 호흡하며 근래 보기 드문 가슴 뭉클한 멜로드라마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국민배우’라 할 수 있는 관록의 네 주인공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 순간만으로도 저절로 감동을 자아낸다. 때로는 호통치고 눈물도 흘리지만 종종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영화라는 것이 그것을 만든 사람의 향기를 그대로 담는 그릇이라면 <그대를 사랑합니다>에는 진정으로 그것이 깊이 배어들었다. 추창민 감독을 만나 이순재, 윤소정, 송재호, 김수미, 네 배우와의 작업, 그리고 그 자신의
[추창민] 올드하지만 예쁜 로맨스 대배우의 관록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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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가 첫 작품이다. 배우 유지태(우진 역)의 아역으로 출연했다.
=고등학생 때 연기학원을 다녔는데, 그곳의 경리 누나가 <올드보이>의 의상팀 스탭이었다. 누나가 평소에 유지태 닮았다며 놀리곤 했는데, 그게 생각났는지 오디션 보라며 연락이 왔더라. 오디션을 봤고 합격했다. 지태 형과는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잘 챙겨주신다.
-출발부터 센 작품을 맡았다. (웃음) <올드보이>의 파급력만큼 주목을 받지 못한 건 좀 의외다.
=친구들이 그러더라. <올드보이> 배우들 너 빼고 다 떴는데 뭐하냐고. (웃음) 그런데 그 당시엔 학교(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에서 연극하는 게 정말 행복했다. 그래서 방송이나 영화 작품할 생각을 따로 못했던 것 같다. 진지하게 연기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혜화,동>의 한수는 전 여자친구 혜화의 주위를 맴도는 소심한 남자다. 관객에게 비호감 캐릭터로 비칠 수도 있을
[who are you] <혜화,동>, 유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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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증후군이라는 질환이 있다.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것 같은 시각적 환영 때문에 매일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기하고도 슬픈 질환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 토·일 저녁 9시50분. 무려 9주 동안 대한민국의 TV를 시청하는 모든 여성들이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본방으로, 재방으로 그것도 모자라 IPTV로까지 현빈이 나오는 장면을 마르고 닳도록 챙겨보게 된 걸까. 현빈만 왕자가 되면 그만인 것을, 급기야 제 옆에 있는 애꿎은 남자친구가 혹은 남편이 갑자기 ‘괴물’로 돌변했고 현빈 없는 현실은 곧 지옥이 됐다. ‘현빈앓이’로 일요증후군이라는 불치병마저 극복해버린 모든 여성들을 뒤로한 채, 야속하게도 현빈은 해병대 지원이라는 이별을 고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VVIP 팬들을 달래려는 사회지도층의 선심의 일환으로 현빈은 연이어 개봉할 영화 <만추>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남겼다.
그러니까 그의 부
[현빈] 이 어메이징한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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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는 역대 가장 많은 한국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1월10일 개막한 61회 베를린영화제에 이윤기의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공식 경쟁부문), 김수현의 <창피해>(파노라마 부문), 김태용의 <만추>(포럼 부문) 등 총 9편의 영화가 초청된 것. 그중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는 바로 공식 단편경쟁부문에 초청받은 박찬욱, 박찬경 형제 감독의 <파란만장>이다.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영화라는 점은 물론, 오랜 세월 각자의 아이디어와 시나리오를 주고받으며 파트너십을 나눴던 두 형제의 뒤늦은 첫 번째 합작품이라는 점에서도 화제다. 박찬경 감독이 지난 1월30일 로테르담영화제로 떠나기 전(그는 자신의 첫 번째 장편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로 유망 신인감독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는 ‘브라이트 퓨처’ 부문에 초청됐다) 그들을 만나 영화에 대해 물었다.
<파란만장>의 이야기는 이렇다. 안개가
[박찬욱, 박찬경] 그로테스크와 유머가 결합된 취향, 둘이 비슷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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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은 ‘말’을 자꾸 먹었다. 시시한 질문을 던지면 눈은 ‘그럴 줄 알았다, 그래 답해주지”라고 말하면서도 입은 “음…”에서 그쳤다. 누군가의 전언처럼 그저 말 주변이 없어서라면, ‘음’ 뒤에 ‘그러니까’ 혹은 ‘뭐였더라’ 등과 같은 사족이 응당 달라붙어야 하는데 그러질 않았다. 여러 번 듣다보니 유다인의 ‘음∼’은 허밍처럼 들리기도 했다. 말을 뱉기 전에 말을 입안에서 굴렸다. 침묵이 어색하고 또 참을 수 없는 건 물어보기 바쁜 쪽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유다인은 적절한 대꾸인지 아닌지를 입안에서 수십번 곱씹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슬그머니 삼켜버렸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깐 인터뷰를 멈춘 사이 어느샌가 와 있던 <혜화,동>의 민용근 감독에게 물어봤다.
“왜 뽑았어요?”
“말이 없어서요.”
“말이 없어서요?”
“현장에서 괴롭혀도 불평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실제로도 그랬어요?”
“운명처럼 받아들이던데요.”
1년 전, <혜화,동>의 촬영현장에 간 적이
[유다인] 스크린 속에서 대신 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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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7월, 인천에서 태어났다. A형이다. TV에 나오는 내 모습과 실제 모습은 많이 다르다. 그래서 인터뷰나 예능프로그램 출연할 때 상대방이 조용한 내 모습에 실망할까봐 걱정된다. 평소에는 꽤 진지한 편이다. 연기를 안 했다면 평생 진지하게 살았을 것 같다.
학창 시절엔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이랑 대본 짜서 친척들 앞에서 연극을 선보이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봐주고, 내 모습에 집중하는 게 좋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림도 그렸다. 미대 갈 생각도 했는데 한 군데 오래 앉아서 집중하는 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해서 용돈을 모아 모델아카데미에 등록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19살, 20살에는 극단에서 아동극도 했다. 집중적으로 연기를 배우고 싶어 방송연예과에 진학했고, 몇편의 CF에도 출연했다. 그중 모 통신사 CF(일명 공대 아름이 CF)가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걸 계기로 시트콤
[who are you] ‘모함 광수’의 코믹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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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캬아! 저 아우라…. (웃음)” 오달수가 스튜디오에 등장하자 김명민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허허. 아우라는 무슨…” 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오달수. 아우라라, 최근 그가 맡은 역할들을 특정한 이미지로 묶어 설명할 수 없는 건 분명하다. 지난해 그가 연기한 작품을 열거해보자. <방자전> <해결사> <페스티발>을 비롯해 올해 개봉하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하 <조선명탐정) <그대를 사랑합니다> <푸른 소금>, 그리고 연극 <오구> 등 총 7편에 출연하면서 오달수는 현대와 과거를 넘나들었고, 저마다 다른 면모를 선보였다. “정말 눈코 뜰새없이 바빴다. 작품을 좋아서 하긴 했는데…. 육체적으로나 대외적인 이미지로나 여러모로 ‘나를 죽이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을 했다. 근데 뭐 작품 좋은데 어떡하나. 해야지 그건.”
참 다재다능하다고 해야 할까. <조선 명탐정>
[오달수] 뼛속까지 웃음유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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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은 피우던 담배를 얼마 전에 끊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인터뷰로 만났을 때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것 같다. 그새 피웠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을 염려했나보다. 그러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영화 때문에 피운 거다. 극중 명탐정이 골초니까….” 순간 잊고 있었다. 그가 사소한 이미지 하나하나에도 자신을 적응하려 하고, 작업이 끝나면 그 흔적들과 철저하게 작별을 고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난 만남과의 차이라면 웃음기 없었던 얼굴은 활짝 폈고 어딘가 여유가 넘쳐 보인다는 것. 담배를 끊어서일까, 아니면 코미디 장르에 출연해서일까. “하하하, 그때는 나에 대한 어떤 선입견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게 아닐까. (웃음)”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하 <조선명탐정>)에서 그가 연기하는 ‘명탐정’이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그 ‘김명민’과 거리가 있는 건 분명하다. 극중 명탐정은 정조의 밀명을 받아 관리들의 공납비리를 파헤치는
[김명민] 그에게도 ‘허당’ 기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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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필아. 범인은 말이다….”
“나리, 봉필이 아니라 서필입니다.”
“허허. 그래 서필아. 범인은 바로….”
김명민과 오달수, 오달수와 김명민이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하 <조선명탐정>)에서 ‘명탐정’과 그의 조력자 ‘서필’로 만났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극중 명탐정은 정조대왕의 명을 받들어 관리들의 공납비리 사건을 파헤치고, 우연히 명탐정과 인연을 맺은 서필은 명탐정의 거사를 함께한다. 둘은 때로는 서로를 챙기다가도, 또 때로는 ‘계급장’ 떼고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덕분에 이야기는 사람 냄새나고 시종일관 활력을 유지한다. “신뢰.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작품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명민이라는 배우는 믿고 따라갈 수 있었다”는 오달수의 말과 “무엇이든지 스펀지처럼 흡수하더라. 정말 놀라웠다”는 김명민의 말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믿으면서 작업했다. 다음 장부터 김명민과 오달수가 말하는 <조선명탐정>
[김명민, 오달수] 홈스와 왓슨처럼 때론 의형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