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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포 엘리펀트>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서스펜스 스릴러영화다. 어떤 독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IMDb는 1930년대 대공황시대 서커스단을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라던데요?” 그 설명도 틀린 건 아니다. <워터 포 엘리펀트>는 분명 사라 그루엔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멜로시대극이다. 오직 한 사나이가 이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서스펜스 스릴러물로 둔갑시킨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불멸의 연인, 로버트 패틴슨이다.
패틴슨은 <워터 포 엘리펀트>에서 대학을 중퇴한 뒤 서커스단에 합류해 동물을 돌보다가 서커스 단장(크리스토프 왈츠)의 부인(리즈 위더스푼)과 사랑에 빠지는 수의학도 제이콥을 연기한다. 그가 주인공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때마다 서스펜스는 찾아온다. 임자가 있는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딜레마를 표현해야 할 때, 패틴슨은 이도저도 아닌 우물쭈물한 표정을 짓는다. 위악적인 서커스 단장에 대한 분노를 표출해야
[로버트 패틴슨] 연인에서 배우로 다시, 신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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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패밀리> 때문에 금치산자가 됐다. 처음에는 빠른 속도의 이야기로, 그 이후에는 김인숙(염정아)의 복수심으로, 그리고 그녀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질주하는 <로열 패밀리>를 보면서 종종 정신이 혼미해졌다. 모리무라 세이치의 소설 <인간의 증명>이 원작인 <로열 패밀리>는 <히트>와 <선덕여왕>을 쓴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했고, 이들의 오랜 파트너인 권음미 작가가 집필을 맡은 드라마다. 손에 쥔 패를 쉽게 보여주지 않는 이들의 드라마 작법은 종영을 앞둔 지금까지도 수많은 스포일러를 양산하고 있다. 열성적 시청자가 상상해낸 이야기의 전말은 이미 작가들이 창조한 세계를 넘어버렸다. 극중의 한지훈(지성)은 “진실은 나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작가들이 말하는 진실이 시청자를 구할 상황이다. 작가들이 <로열 패밀리> 15회 모니터링을 앞두고 있던 지난 4월20일 저녁, 그들의 작업실
[김영현, 박상연, 권음미] 대중들은 이젠 착한 사람을 못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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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화려한 외출이다. <취화선>(2001)에서 단아한 기품과 깊은 매화향이 나는 ‘매향’을 연기한 유호정이 강형철 감독의 신작 <써니>로 영화 현장에 돌아왔다. <써니>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남편과 딸의 뒷바라지에 여념없는 가정주부 임나미. 우연히 병원에서 고교 시절 칠공주 ‘써니’ 멤버로 친하게 지낸 춘화(진희경)를 만난 나미는 25년 전 함께 소중한 추억을 나눈 다른 ‘써니’멤버들을 찾아나선다. 극중 유호정은 몇몇 장면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교복을 입은 채로 날아차기도 선보이는데, 이는 그간 TV드라마에서 보여준 청순함과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면모다. 우리가 알던 그 유호정 맞아? 라고 할 만하다. 햇살이 유독 따스했던 어느 봄날, 유호정을 만나 10년 만에 충무로로 복귀한 소회를 물었다.
-언론 시사회 반응이 좋다. 예상은 했나.
=솔직히 기본 이상은 하겠다, 는 자신감은 있었다. 시나리오가 좋았고, 현장에서 (감독님께서)
[유호정] 언젠가는 팜므파탈이나 술집 작부도 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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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봤나.
=내 연기밖에 안 보이더라. 왜 그렇게 못했을까 싶었다.
-<4교시 추리영역> 때도 그렇게 자학했나.
=그때는 어느 부분이 아쉽다, 그런 생각조차 못했다. 마냥 신기했다. 부모님한테도 딸 나오니까 꼭 보세요 그랬는데 이번엔 좋은 영화 한편 보시라고만 그랬다.
-좋은 영화?
=의상이든 음악이든 다 올드하다. 80년대 것이니까. 그런데 웃음 코드만큼은 세련됐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여기서 웃겨야지, 여기서 웃겨야지 뭐 그런 코미디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발차기가 대단하던데. 격투기라도 배웠나.
=요가를 했다. 그냥 스트레칭하는 정도다. 무술감독님이 분노와 스트레스를 담아서 발차기를 하면 된다고 했는데, 촬영장에선 많이 혼나기도 했다. 내가 몸이 좀 뻣뻣하다.
-본인 촬영 분량 중 가장 맘에 드는 장면은.
=문제의 사건이 일어나는 장면. 태어나서 싸운 적이 별로 없다. 먼저 사과하는 성격이라. 그런데 그 장면에선 울컥해서 심장이 튀어나올
[who are you] 강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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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파킨을 <피아노>에서 처음 본 순간. 커스틴 던스트를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본 순간. 내털리 포트먼을 <레옹>에서 처음 본 순간. 어린 소녀의 가죽을 뒤집어쓴 성격파 배우를 스크린으로 목도한 순간.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음하며 내뱉게 된다. “졌다. 졌어.” 김새론을 <여행자>에서 처음 본 순간도 그랬다. 소녀가 프랑스 땅을 밟으며 영화가 끝나는 순간. 깊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마음에 사로잡힌 자 모두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지금 김새론의 이름은 단순히 인기있는 아역배우의 차원을 슬그머니 넘어섰다. <아저씨>와 <나는 아빠다>는 김새론을 지금 한국에서 가장 어린 ‘스타’로 만들었다.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그녀가 눈물을 흘리면 다음날 인터넷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뜬다. “김새론 폭풍 오열. 시청자도 울었다.” 그러니까 김새론은, 지금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엘레지의 여
[김새론] 자신을 버릴 줄 아는 당찬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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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망똘망, 영특, 총기, 쾌활, 씩씩. 남지현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머릿속을 맴도는 단어들이다. 그와 작품을 함께하는 선배나 연출자가 뭐든지 맡겨도 스펀지처럼 흡수해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낼 것 같은 믿음을 주는 명랑한 표정이랄까. 실제로 남지현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그랬다. 사막에서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능청스럽고 억척스런 어린 덕만(훗날 선덕 여왕)으로 출연해 한손으로 뱀을 잡는 것은 물론 로마어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당시 <선덕여왕>이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초반 돌풍을 일으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주인공이 바로 미실 역의 고현정과 더불어 남지현이었다.
남지현은 2004년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에서 윤소이의 아역으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공교롭게도 <무영검>(2005)에서도 윤소이 아역을 맡으며 영화 신고식을 치렀다. 특유의 명랑한 모습을 선보인 작품은 톡톡 튀는
[남지현] 씩씩함 뒤에 영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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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이 기폭제였다. 27살의 배우 이제훈은 자신에게 등 돌린 친구 때문에 상처입고 결국 죽음을 택하는 19살 ‘기태’로 자신을 알렸다. 이미 한참 전에 통과한 10대의 기억을 불러오는 과정. 교복 입은 이제훈은, 소년의 천진함에서부터 상처로 생긴 내면의 미세한 균열, 이후 서서히 파괴해가는 ‘기태’의 변화 모두를 발산했다. 한 지점에 머물지 않는 캐릭터 기태는 이제훈이라는 낯선 배우를 각인시킬 절묘한 기회였다. 조인성이 가질 법한 고운 남성성에서부터 엄태웅의 거친 순박함까지 남자배우로서 이제훈이 가진 마스크의 스펙트럼은 넓었다. 또래의 일상적인 면모에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박해일의 연기를, 학교 짱으로 군림하는 기태의 모습은 투박하지만 계산되지 않는 류승범의 연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물론, 기존 충무로 배우들의 조각맞춤만으로 이제훈을 설명하는 건 무리다. 익숙한 연상을 뛰어넘어 그는 온전히 ‘이제훈만의 기태’로 수렴됐다. <파수꾼>은 1만8천명의 선택을
[이제훈] 틀에 갇히지 않은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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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번을 기념하는 <씨네21> 표지. 당장이라도 떠오르는 톱배우의 얼굴 대신, <씨네21>은 이제 막 이름을 알린 세명의 배우를 찾아냈다. <파수꾼>에서 소년의 천진함과 광기를 동시에 보여준 이제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 고현정과 대적했던 어린 ‘덕만 공주’ 남지현, 그리고 <아저씨>로 스타덤에 오른 김새론이 그들이다. 물론 단순히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준 성과만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싶진 않았다. 이제훈은 올여름 개봉할 장훈 감독의 블록버스터 <고지전>의 촬영을 막 끝냈고, 남지현은 이정향 감독의 신작 <오늘>에서 송혜교와 호흡을 맞췄다. 마침 김새론은 <나는 아빠다> 개봉 이후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의 폭발적인 연기로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었다. 어느 하나 완성되지 않은 진행형의 배우, 쓰여진 작품 수보다 채워야 할 것들이 더 많은 배우가 그들이었다. 아직 어리지만,
[이제훈, 남지현, 김새론] 충무로 차세대 대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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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어느 영화인의 트위터에서였다. 그는 정 작가의 신작 <7년의 밤>을 영화로 보고 싶다고 했다. 그 이후로도 정유정 작가의 이름을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자주 만났다. 영화감독, 배우, 프로듀서 따질 것 없이 모두가 <7년의 밤>의 매혹을 이야기했다. 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시각적으로 가장 예민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았는지 궁금했다. 소설을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무엇보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인물의 매력이 굉장했다. 독자로 하여금 댐 수문을 열어 마을 전체를 수몰시키고 자기 아내와 어린 여자아이를 잔인하게 죽인 주인공 살인마를 동정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게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7년의 밤>으로 그걸 가능케 한 정유정 작가는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신예 작가다. 장르적인 색채가 짙으면서도 일반 독자들의 시선까지
[정유정] 인간은 누구나 무언가를 위해 별짓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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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혁은 말을 길게 하는 편이 아니다. 툭툭 던지듯, 가끔 깜짝 놀랄 정도로 솔직한 답변이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오곤 했다. “입으로만 얘기하는 거 싫어한다. 공식 인터뷰라고 해서 입에 발린 홍보만 하면, 요즘 관객은 다 똑똑해서 어차피 곧 알게 되니까.” 그는 “진심을 담아서 안 하면 불편하다”고도 했다. 그런 면에서 <적과의 동침>을 함께 만든 배우들과 박건용 감독 등 제작진에 대해서 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010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힘들게, 공들여 찍은 <적과의 동침>을 아직 보지 못한 그 역시 빨리 영화가 보고 싶다고 했다.
충청남도 석정리에서 벌어진 실화. 한국전쟁 당시 석정리의 한 마을에 입성한 인민군을 마을 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인민군들 역시 마을 사람을 형, 누나처럼 따르며 정을 쌓았다고 한다. 연합군이 개입하면서 상황이 급변해 결국 북으로 후퇴해야만 했을 때, 어린 인민군들은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김주혁] 감성, 이상, 직관 연기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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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30일, 김의석 영진위 위원장 직무대리가 영화진흥위원회의 새 수장으로 정식 취임했다. 영화계는 현 정부에서 세 번째로 임명장을 받은 그를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임기를 채우지 못했던 두 전임 위원장이 대학교수 출신이었다면, 김의석 위원장은 <결혼이야기> <청풍명월>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 출신인 만큼 지난 4기 영진위가 소홀했던 영화계와의 소통관계를 다시 정상화시킬 것이란 기대다. 또한 정치적 공방과 심사과정에서 빚어진 논란으로 긴급기자회견을 거듭했던 때와 달리, 영진위의 항로를 안정화해줄 것이란 예감도 있다. 무엇보다 지난 3년간 표류해온 영진위의 영화진흥정책을 정상화시킬 것이란 기대가 크다.
하지만 한 개인에 대한 기대가 그가 놓인 상황에 대한 우려까지 뛰어넘는 건 아니다. 지난 영진위에서 목격한 것은 전임 위원장들의 실책뿐만이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의 기침에 몸살을 앓는 영진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영진위의 바깥에서 볼 때
[김의석] 이젠 영화계와 소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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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여배우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 몇 가지가 있다. 물론 ‘여배우 십계명’ 같은 것이 서류로 만들어진 적은 없다만, 그래도 몇 가지 금기를 늘어놔보자. 첫째, 오스카 수상작이 될 법한 진지한 영화와 싸구려 액션, 코미디를 동시에 촬영하지 말라. <몬스터 볼>로 오스카를 받은 해 본드걸이 된 할리 베리, 오스카와 골든라즈베리를 같은 해 수상한 샌드라 불럭을 생각해보시라. 둘째, 남편이 연출한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다. <컷스로트 아일랜드>로 함께 지옥에 떨어진 뒤 결국 이혼과 경력의 부침을 겪었던 지나 데이비스를 한번 떠올려보시라. 사랑에 빠지면 원래 금인지 똥인지 구분하기 힘든 법이다. 셋째, 그리고 궁극적으로, 라스 폰 트리에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다.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를 정치적으로 깐깐하게, 공정한 여성주의자의 입장에서 정리해보자. <어둠 속의 댄서>는 눈이 점점 멀어가는데다 저지르지 않은 죄 때문에 교수형 당하는 여자 이야기다. &
[샬롯 갱스부르]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롤러코스터의 삶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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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번째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탄생했다. 팀 버튼의 뮤즈로 주목받은 지 근 2년. 미아 와시코스카의 필모그래피는 이번에도 ‘점프’ 수준이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눈빛, 수식이 없는 악센트, 귀족적인 마스크, 완벽에 가까운 비율의 몸매…. 와시코스카를 할리우드 캐스팅의 핵심에 서게 한 무수한 근거. 와시코스카는 그 근거들을 새로운 ‘제인’에게 적용시킨다.
“무조건 와시코스카를 캐스팅할 것!” <레스틀레스>로 먼저 미아 와시코스카와 작업한 구스 반 산트가 그녀를 담보하고 나섰다. 영화, 드라마 통틀어 27번째 <제인 에어>. 1914년 존 찰스 감독이 영화화한 이후 족히 5년에 한번씩은 새로운 제인이 탄생했다. 거쳐간 여배우의 수만큼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는 역할이었다. ‘제인’을 연기할 배우를 물색하지 못해 고민하던 캐리 후쿠나가 감독은 구스 반 산트의 조언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정략결혼을 하기 싫어 안달했던 팀 버튼의 ‘앨리스’(<앨리스 인 원더랜
[미아 와시코우스카] 고딕 러브스토리 속 소녀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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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봤어요? 발가벗겨진 느낌인데.” <나는 아빠다>의 기술시사 직후 만난 김승우. 김승우는 “(기자가) 영화 안 보고 인터뷰해야 잘난 척도 좀 하지”라며 웃어젖힌다. 그의 호탕한 웃음에는 초조함도 묻어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대뜸 “영화 어떻게 봤냐”고, 궁금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몇번이고 물어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아빠다>의 비리 형사 종식은 그동안 김승우가 감춰왔던 얼굴이다. 딸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산 사람도 장기밀매 조직에 팔아넘기는 무지막지한 종식을 떠안고 김승우는 지난여름 끙끙댔다. 탈을 수시로 바꾸는 것이 배우의 업이라지만, 일상에선 더없이 좋은 아빠인 김승우에게 ‘나쁜 아빠’ 종식은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딸에게서 아빠라는 말을 단 한번도 듣지 못하고, 자신 때문에 딸을 잃은 상만(손병호)의 복수를 감내해야 하는, ‘나쁜 아빠’ 종식을 만났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랑 <해변
[김승우] 욕심은 없다, 승부욕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