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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에 이사온 건 지난해 10월이었어요. 아직 개발이 미치지 않은 동네라 사람 사는 곳 같네요. 그전에? 사무실이 논현동에 있었어요. 의상 창고는 아직 경기도 용문면에 있어요.” 지저분할 줄 알았던 작업실이 의외로 깨끗하다. 임승희 의상감독과 함께 해인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고 있는 권유진(56) 의상감독은 “인터뷰 때문에 사무실을 급하게 치웠지 뭐예요”라고 웃으며 인사를 대신한다. 권유진 의상감독은 임권택 감독의 1985년작 <길소뜸>으로 의상감독에 데뷔한 뒤 <그 섬에 가고 싶다>(1993), <태백산맥>(1994),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 등 코리안 뉴웨이브를 거쳐 <청연>(2005), <웰컴 투 동막골>(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최종병기 활>(2011),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등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30년 가까이 충무
[권유진] 대를 이어 영화에 날개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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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로 들어선 김남길은 좀처럼 자리에 앉지 않았다. “서 있는 게 편해요”라며 웃어 보이더니이내 스튜디오 한편에 있는 사진들을 훑는다. “어, (정)재영이 형이 이렇게 머리를 기른 적이 있었어요?” 신기해하며 아이 같은 표정을 짓는 그를 보고 있자니 드라마 <상어> <나쁜 남자>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남자가 이 남자인가 싶다. <후회하지 않아> 이후 8년 만의 스튜디오 방문이 낯설 법도 한데 넉살 좋고 스스럼없게 스탭들과 몸을 부딪혀가며 장난까지 친다. “실제의 나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고 귀띔하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의 산적떼 두령 장사정도 이런 모습일까. 그렇다면 꽤나 살갑고 유쾌한 산적이지 않을까.
<해적>에서 김남길이 연기한 장사정은 한마디로 ‘골 때리는’ 사내다. 고려 무관 출신의 별장으로권력가들의 세 싸움을 등지고 산적떼 두령이 된다는 설정부터가 범상치 않다. 고래가 삼켜버렸다는 조
[김남길] 틀 밖으로 또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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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뛰어들어 날렵하게 제압한다. 여느 액션영화의 여주인공에게 무리 없이 어울릴 법한 표현이다. 하지만 배우 손예진을 설명하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은, 솔직히 몰랐다. 갑옷과 무기, 검술과 스턴트 액션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손예진은 단숨에 외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다. 그건 그녀가 눈에 보이는 몸의 움직임보다 보이지 않는 감정을 담아내는 작품에 더 자주 몸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섬세한 얼굴에 수많은 감정을 떠올리고 지워나가는 데 능한 손예진은, 늘 클로즈업이 기대되는 배우였다. 하지만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의 여월로 분한 그녀는 다르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해적선에 올라 거친 사내들을 호령하는 여걸이 되려면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도 중요하지만 일단 잘 ‘싸워야’ 한다. 그래서 손예진은 <해적>의 남자배우들보다 더 높이, 더 빠르게 움직인다. 밧줄을 붙잡고 허공 위를 날아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공중돌기도
[손예진] 섬세한 얼굴에 더해진 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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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라운드. 여자가 다가서자 남자가 멀어진다. 지난해 드라마 <상어>에서 손예진은 아버지가 죽인 남자의 아들(김남길)을 사랑했다. 눈물 마를 날 없던 그녀의 모습에 도대체 행복은 언제쯤 찾아오나 싶어 가슴 졸인 시청자가 많았을 거다. 제2 라운드. 남자가 다가서자 여자가 멀어진다. 8월6일 개봉 예정인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의 ‘산적’ 김남길은 바다를 호령하는 여걸(손예진)과 자꾸만 부딪히는데 그게 싫지 않다. 코믹 어드벤처 사극을 표방하는 이 작품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여자 해적과 능글맞은 남자 산적으로 분한 두 배우의 신경전은 귀엽고 유쾌한 재미를 선사한다. 비련의 연인(<상어>)을 거쳐 미묘한 라이벌(<해적>)로 돌아온 손예진과 김남길을 만났다. <해적>의 캐릭터가 본인들의 성격과 많이 닮았다는 ‘증언’대로, 스튜디오를 찾은 김남길은 산적의 유쾌함을, 손예진은 해적의 털털함을 실마리처럼 꺼내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숙명의 라이벌, 한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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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트 챈 감독이 오랜만에 장편을 들고 부천을 찾았다. SF, 좀비호러, 코미디, 사회물이 혼종된 <미드나잇 애프터>(2014)는 대륙 반환 이후 홍콩의 현재를 징후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야간버스에 탄 기사와 승객은 터널을 지나자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것을 발견한다. 재난이 일어나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서 이들만 증발해버린 것일까. 텅 빈 거리, 정체 모를 좀비 바이러스의 확산, 방독면을 쓴 일본인 집단, 어디선가 희미하게 수신되는 외계의 메시지 등 기이한 현상들의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한국에 소개되는 신작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본격 장편영화는 오랜만이다. 슬슬 장르에서 빠져나와 주류영화를 만들어볼까 싶다. 마침 박찬욱 감독이 대만에서 이 영화를 보고는 내게 성공적인 상업영화를 만든 게 아니냐며 축하한다고 하더라. (웃음)
-<미드나잇 애프터>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홍콩영화
[flash on] ‘홍콩영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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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벌어졌던 연쇄살인, 일명 지존파 사건을 계기로 1990년대 초 한국 사회상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 단숨에 눈을 사로잡는 출연자가 한명 등장한다. 전 서초경찰서 강력계 반장 고병천씨, 지존파를 검거한 장본인이다. 76년에 순경으로 입문하여 강력계 반장까지 올랐던 입지전적이고 유능한 인물. 게다가 그는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던 그날 그 현장에도 있었다. 90년대 한국 사회의 거대한 두 사건을 통과해온, 그리하여 영화에 예기치 못한 긴장의 바람을 불어넣은 그는 과연 베테랑 형사답게 묵직하고 정중하면서도 어딘가 매서웠다.
-어떻게 이 영화와 연을 맺게 된 건가.
=내가 서울영상위원회에서 형사물 관련하여 감독과 제작자를 상대로 강연을 좀 했다. 그러다보니 영화 관계자들이 제작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의뢰를 많이 해왔다. 정윤석 감독의 경우는 석사 논문 제출용으로 지존파 사건을 다루고 싶다며 찾아왔었다. 학문적인 것이니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영
[flash on] 한국 사회의 악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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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굵은 장대비다. 세찬 빗줄기를 뚫고 늦은 밤 윤지혜가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갑작스럽게 비가 오네요. 관객이 내일 극장에 많이 오실까요?” 그녀의 말 속에서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 개봉 전야의 긴장감이 감돈다. 윤지혜는 <군도>에서 지리산을 누비던 군도 추설의 일원이자 억세고 강인한 명사수 마향으로 등장한다. 드센 사내들 사이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기센 여자다. 그런데 웬걸. “어머머머~.” 촬영용 스모그 머신 앞에 선 그녀가 박수까지 쳐가며 소리내 웃는다. 살짝살짝 코믹 춤까지 곁들여가면서 말이다. 매번 카리스마 넘치는 역을 맡아왔던 그녀에게 이토록 발랄하고 소탈한 면모가 있었던가. <군도>의 주요 인물 중 유일한 여성 캐릭터로 데뷔 16년 만에 가장 크게 주목받고 있는 윤지혜와 마주앉았다. 해갈을 전하는 비를 보며 문득 그녀를 만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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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혜] <군도: 민란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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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블랙딜>은 공공재의 민영화가 도래할 경우 우리의 삶이 어떤 위험에 처하는지 조목조목 그리고 무섭게 예시한다. 각종 민영화 시행 이후 폐단을 겪고 있는 7개국의 사례를 차분하고도 설득력 있게 짚어나간다. 이 수긍할 수밖에 없는 ‘교육영화’를 보고 나면 민영화의 문제점에 대해 이렇게 쉽고 흥미롭게 알려주어 고맙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전적으로 그건 이훈규 감독의 역량이다.” 고영재 대표는 그렇게 자주 강조했다( ‘감독 인터뷰’는 961호 참조). 하지만 우린 <블랙딜>의 최초 제안자이면서 기획자이고 제작 내내 든든한 책임자였던 인디플러그 고영재 대표의 말도 듣고 싶었다. <블랙딜>은 수년 만에 기획, 제작자로 돌아온 그의 야심찬 복귀작이기 때문이다.
-“<블랙딜>은 내가 추구하는 영화의 전환점”이라고 밝혔다.
=한동안은 장르 불문하고 좀 될 것 같은 걸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걸 하는 것이 내가 사는 현실과 맞지 않는
[고영재] TV다큐 같다고? 그건 욕이 아니라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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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순신의 고뇌. 최민식은 오직 그것 하나와 싸웠다. 12척의 배로 울돌목에서 왜선 330척을 격파한 명량해전, 하지만 그 전설의 역사 뒤에는 막다른 곳까지 내몰린 이순신의 고뇌가 배어 있다. 조선은 오랜 전쟁으로 혼란이 극에 달했고, 누명을 쓰고 파면당했다가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이순신의 피로 또한 헤아릴 길 없다. 주변에는 온통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뿐이다. 지난해 촬영현장에서 만난 최민식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가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셨나요?”라고 감히 직접 이순신에게 묻고 싶다고 했다. 도무지 그의 행동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고, 촬영이 끝나는 순간까지 손톱만큼의 거리라도 그에게 더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명량>은 기나긴 후반작업을 거쳐 무려 1년의 시간을 더 보냈다. 최민식 또한 그사이 뤽 베송의 <루시>에 출연하며 해외에서 꽤 긴 시간을 보냈다. 지난 1년 전의 다짐과 의문으로부터, 그는 과연 어떤 답을 찾
[최민식] 의심과 미혹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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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10명의 탈북 청소년을 데리고 산다. 30대 초반의 직장인이었던 김태훈(사진 오른쪽)씨는 동료의 소개로 북한 이탈 주민들을 돕는 하나원에서 봉사하다 급기야 소년들과 함께 가정을 이룬다. 잘 다니던 회사도 때려치우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데만 전념했다. 소규모 시설이라는 인식을 지우기 위해 ‘가족’이라는 이름의 그룹홈을 만들었다. 탈북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그룹홈은 전국에 13개 정도가 있지만 그중 개인이 운영하는 것은 김태훈씨의 ‘가족’이 유일하단다. 극영화 연출부 출신의 김도현(사진 왼쪽) 감독으로 하여금 난생처음 다큐멘터리를 찍게 만든 김태훈씨의 매력은 <우리가족>에 고스란히 담겼다.
-서로 만난 계기는.
=김도현_아는 동생에게 이상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탈북 청소년과 함께 산다는 데 인간적인 호기심이 일었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는데 슬프면서도 좋은 감정을 느꼈다.
김태훈_이전에도 촬영하고 싶다는 액션을 취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flash on] “아이들 덕에 멋진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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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이하 <반격의 서막>)에서 제이슨 클라크가 연기한 말콤은 유인원 세력과 인간 세력의 사이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인간들의 미래를 어깨에 지고 유인원을 찾아가는 자로서, 자연히 유인원 세력과 가장 대립하기 쉬운 입장에 놓여 있다. 그러니 말콤이 다른 선택을 내렸다면 인간과 유인원은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정면으로 전쟁을 벌였을지도 모르고, 당연히 영화의 성격 역시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인간들이 시저의 유인원 그룹과 처음으로 마주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다들 유인원에게 총을 겨누고 있을 동안 말콤은 단호하게 총을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명령한 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이 짧은 장면이 말콤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갑작스런 상황에서도 혼란에 빠지지 않고 차분히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시저에게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며, 당장 행동해야 할
[제이슨 클라크]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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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감독
2014 <좋은 친구들> <남자가 사랑할 때>
2012 <미쓰Go> <청출어람>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 <신세계>
촬영팀
2010 <박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부당거래> 외 다수
유억 촬영감독은 대뜸 ‘콘티 무용론’부터 내놨다. <좋은 친구들>을 찍으면서 그는 배우의 동선이나 카메라의 위치가 콘티대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고 한다. “왜 선수들이 필드에 나가면 예측을 뛰어넘어 움직이는 게 있지 않나. 어떻게 찍을지 현장에서 정리한 경우가 많았다.” 5개월 넘는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안 공들인 콘티를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던 건 이도윤 감독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과도한 카메라 움직임은 지양하고 최대한 덤덤하게 있는 그대로 찍자고 했다.” 그 약속대로, <좋은 친구들>의 카메라는 인물보다 먼저 움직여 관객이 미리 상황을 예측하게 만들
[STAFF 37.5] 콘티대로 찍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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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미식가 아니랄까봐. 영화사 조제 조성규 대표는 인터뷰 하루 전날 인터뷰 장소를 카페에서 연남동의 한 라멘집으로 바꾸자고 했다. “단골집이다. 카페에서 사진을 찍으면 그림이 비슷비슷하잖나. 지난주 일요일에 와서 라멘집 사장님께 인터뷰 좀 하겠다고 말씀드렸다”면서 말이다. 누가 감독 아니랄까봐. 사진 촬영 장소까지 정해주는 그다. 조성규 대표, 아니 감독이 벌써 네 번째 연출작 <산타바바라>(7월17일 개봉)를 만들었다. 전작처럼 이번에도 미식가, 와인과 음악 애호가로서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음악감독 정우(이상윤)와 광고회사 AE 수경(윤진서), 두 남녀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와인 산지 샌타바버라까지 간 사연은 무엇일까.
-댁은 근처인가.
=홍은동. 지난해 12월 옥수동에서 이쪽으로 이사왔다.
-<산타바바라>에 연남동, 서교동, 상수동이 나온다. 세곳 모두 집 근처다.
=친구들이 이 동네에 살고 있는 데다가 여기서 주로 놀다보니….
[조성규] 여름에 마시는 시원한 와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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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배우 진경입니다”로 시작하는 문자가 왔다. 장문의 문자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스승 오순택(사진 위)의 공연 소식이 담겨 있었다. 오순택의 첫 제자 이윤택이 연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제자들이 출연하는 연극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로 오순택 선생이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 그는 1933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1959년 미국 유학을 떠났고, 1970~80년대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에서 배우로 맹활약했다. 그의 출연작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TV시리즈 <미녀 삼총사> <하와이 5-0 수사대>를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 출연 중인 진경(아래)은 바쁜 시간을 쪼개 스승의 연습실을 찾았다.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는지, 빼곡하게 글이 적힌 A4 3장짜리 질문지를 들고서.
진경_공연까지 며칠 안 남았는데 체력엔
[trans x cross] 배우와 관객의 영혼이 만나 메아리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