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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진(36) 감독의 입봉작 <불후의 명작>은, 바라보고 있으면 만든 사람의 얼굴이 서서히 떠오르는 영화다.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영화 안에서 인물들은 어떤 경우라도 타인을 다치지 않으며 미욱하게 그렇지만 꾸준히 살아간다. 그처럼 다소 어눌한 필치에 발신인의 심성이 고스란히 담긴 편지를 이미 받아 읽은 탓인지 심 감독을 인터뷰하기 위해 걸은 눈쌓인 삼청동 길은, 초면의 상대를 만나러 가는 길목답지 않게 푸근했다. 영화 속 여경과 인기가 언제나 고집하던 창가 테이블을 택했으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하지만 개봉 뒤 훌쩍 떠난 여행길에 들른 변산 내소사의 대웅전 문살이 너무 예쁘더라고 감탄하는 그의 눈빛만큼은 짐작대로였다.<너에게 나를 보낸다>와 <꽃잎>의 연출부로,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조감독으로 개봉을 겪어봤지만, 감독 데뷔작의 개봉은 기분이 완전히 달랐을 것 같다.사상 최고로 두려운 크리스마스,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의
“멜로보다는 휴먼드라마로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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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여자. 그 사랑을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남자는 뉴욕의 펜트하우스와 최고급 페라리를 포기할 수도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첫사랑이었다가 13년 뒤 크리스마스, 마법처럼 그의 아내가 된 <패밀리맨>의 케이트, 테아 레오니(34). 그는 샤워부스 안에서의 코믹한 엉덩이 춤과 단발머리를 흔들며 케이지의 품으로 돌진하는 소년 같은 몸짓만으로, 가슴 팬 드레스로 유혹하는 뭇 여성들을 한방에 KO패시킬 만큼 충분히 귀엽고 섹시하다. “케이트가 단순히 바가지 긁는 마누라로 비쳐지지 않길 바랐어요. 잭에게 13년 전 그의 선택이 어리석었음을 느끼게 만들고, 지금 케이트와의 생활을 버리지 못하게 만들 당위성은 오로지 내 연기에 달렸으니까.” 2001년에는 <쥬라기 공원3>, 2002년에는 코언형제가 시나리오를 쓴 <참을 수 없는 잔혹함>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에 휴 그랜트와 출연할 계획인 그녀에게 <패밀리맨>은 2년간의 긴 휴식 끝에
오, 나의 불멸의 여신님, <패밀리맨>의 테아 레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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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남자가 스튜디오 앞을 서성거렸다. 남자는 혼자 뒷짐을 진 채, 별 중요해 뵈지 않는 게시판의 글귀들을 꽤나 집중해서 읽고 있는 듯했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다시 힐끗 보았지만 남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 뒷모습 이상은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저 그 남자의 목, 목도리로 둘둘 감은 목인데도, 참 길구나 했다. 반 시간 뒤, 긴 목의 남자는 우리에게 앞모습을 허락했다. 이성재(31).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잠겨진 스튜디오 앞에서 홀로 30분을 기다린 그는 그 흔한 매니저 한명 대동하지 않은 채, 조금의 원망도 섞이지 않은 선한 눈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그게 그 하루의 시작이었다.
‘누군가를 저렇게 아프게 바라볼 수 있을까’, TV드라마 <거짓말>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일생 처음 찾아온 사랑 앞에 번민하던 이성재의 눈빛을 차마 잊지 못할 테다. “언제나 영화를 귀착지라고 생각했어요. <거짓말>을 끝내고 나니 시나리오가 제 손에 쥐어지더군요.” <미
그날 하루가 허락되어 행복하였어라, <하루>의 이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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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이 계속되고 있는 날, 흰 눈과 검은 눈이 뒤섞인 길을 달려 도산공원 옆 한 카페에서 고소영을 만났다. 고소영은 매니지먼트사 로고가 찍힌 흰 패딩코트에 장식없는 까만색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미끄러운 길을 대비한 듯한 그 실용적인 차림은 똑 부러지는 그의 ‘아메리칸 스타일’을 대변하는 듯했다. 표지촬영을 위해서도 단출하게 회색 정장 한벌. 워낙 옷 잘 입고 옷 많기로 소문난 그라 조금은 의아해하고 있을 때, “개인적으로 옷 자랑하는 게 아니잖아요. <하루>에 나온 영화배우로 사진을 찍는 거죠.” 까만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는 그의 말이 모두를 설득한다. 이야기하고 표정짓고 움직이는 하나하나에서 인간적인 매무새와 제스처야 묻어났지만, “사생활은 얘기 안 해요”라는 그는 무대에서 내려와 곧바로 ‘관계자외출입금지’라고 쓴 방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스타’였다. 다행히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 방의 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고소영은 기자에게 커피를 권하고, 자리를
똑부러지는 완벽주의, `똑`소리나는 연기, <하루>의 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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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른바 ‘1등 사윗감’의 조건은 비슷하게 마련이다. 기골이 장대한 변강쇠 스타일로 ‘뭘해도 마누라 먹여 살릴 만한 놈’이거나, 변호사나 의사, 정승판서같이 어디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 직업을 가진 총각이라면 별 걱정 없겠는데, 여기 이 남자, 시작부터 영 불안하다. 왜소해보이는 체격에 작은 키, 게다가 직업은 간호사. <미트 페어런츠>에서 벤 스틸러(35)가 연기하는 그렉 퍼커는 ‘부모님을 만나라’는 미션을 완수해내기에 모자라도 한참은 모자라는 사윗감으로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장인이란 사람(로버트 드 니로)은 유별난 딸 사랑에, 전직 CIA요원으로 의심이 하늘을 찌른다. 공항에서 가방을 잃어버리고, 할머니의 유골단지를 깨트리고, 장인이 애지중지 하던 애완고양이를 잃어버리고…. 시작부터 삐꺽거린 사흘간의 ‘불안한 동거’는 가면 갈수록 꼬여갈 뿐이다. 하긴 그는 성부터 ‘엿 같은’ 퍼커(Focker)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가 ‘매력없음’은 단지 장인들 눈
코미디가 사랑한 심각한 남자, 벤 스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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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하게 눈쌓인 영등포의 한 공장터. 3천평쯤 되는 이 공간 안에선 한옥이나 유럽의 마을을 꽤 정밀하게 축소한 미니어처 세트 수십개와 괴수의 대가리나 몸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바로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것”이라는 말을 통해 한국 SF의 새장을 열겠다는 각오를 보여줬던 심형래 감독의 영구아트무비. 다소 실망감을 줬을 뿐 아니라 다양한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던 1999년작 <용가리> 이후 항간에선 “심형래가 주저앉았다”는 소문이 나돌았기에 이곳의 활기찬 분위기는 다소 의외였다. 사무실에서 만난 심형래 감독 역시 1월20일 개봉하는 때문에 다소 피곤해보이긴 했지만, 여러 개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의욕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는 <용가리>와 어떻게 다른가.=<용가리>에서 미흡했던 드라마와 CG 등을 대폭 수정했다. 거의 80%를 손봤다고 보면 된다. 특히 개봉 당시 아이들이 좋아했던 마지막 부분 용가리와 사이커가 싸우는
“목표? 황금종려상이 아니라 수출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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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마지막인 12월도 어느새 반을 넘긴 지난 12월15일 금요일 밤.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일단의 무리들이 인적 끊긴 심야의 다운타운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자정을 재촉하는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이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이스트빌리지 남단의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 실험영화의 산실로 오랜 세월 동안 대안적 영상 문화의 창구 역할을 해온 이곳 앤솔로지에서 뉴욕 개봉을 앞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Nowhere To Hide)의 특별 시사회가 이루어졌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시작한 이날 행사는 주말의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보조석과 통로까지 가득 메운 <인정사정…>의 ‘숭배자’들로 인해 시종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이 됐다. 밖에서는 상당수의 관객이 표를 구하지 못해 그냥 돌아갔다는 후문이다.
관객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이명세 감독은 “유서 깊은 앤솔로지 극장에서 이렇게 시사회를 가지게 돼 기쁘다”며 간단히 인사의 말을 전했고, 곧이어 열렬한
이명세 감독에게 듣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뉴욕 개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