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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곱슬머리와 갈색 피부, 커다란 코를 가진 존 터투로(57)는 30년 동안 주로 이상한 사람들을 연기했다. 인간성 때문은 아니었고, 외모 때문이었다. “영화에선 피부색이 진하면 나쁜 놈이라는 뜻이 된다. 내가 거절한 악역만도 100만개는 될걸?” 돈 밝히는 유대인, 정신이 조금 이상한 유대인, 인종은 모르겠지만 무작정 화만 내는 탈주범…. “나에게 다른 기회를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그냥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이용할 수밖에.”
그리하여 기다리다 지친 존 터투로는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 자기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영화에 자기를 캐스팅한 것이다. 브루클린을 휩쓰는 마성의 남창(男娼), 발음부터 로맨틱한 이름만으로도 이미 외로운 여인들을 사로잡는 지골로 휘오라반테로, 대담하고도 뻔뻔하게 본인을 데려다 썼다.
<지골로 인 뉴욕>은 폐업한 서점 주인(우디 앨런)이 멋대로 영업을 하고 다니는 바람에 느닷없이 몸을 팔게 된 중년 플로리스트의 이야기다.
[존 터투로] <지골로 인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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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에서 송하윤은 윤민철(박해일) PD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조연출 김이슬을 연기한다. 부스스하게 빗지도 않은 머리에 하얗고 꺼칠한 민낯, 밤새 일하다 조는 바람에 입가에 생긴 침자국까지 일과 피로에 찌든 모습이 제법 사실적이었다. 만나고 나서야 그 ‘리얼리티’를 납득할 수 있었다. 인터뷰 때문에 다 녹아 물이 된 빙수를 후루룩 후루룩 마시는 송하윤의 모습엔 거짓이 없었다.
-<태릉선수촌> <아기와 나> <나는 공무원이다> 같은 전작들에서 대개 철부지 역을 맡아서, 사회파 드라마에 어울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민감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인지 시나리오가 집으로 따로 배달돼왔다. 바른 자세로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읽었다. 보통은 처음 읽을 때 집중해서 한번 딱 읽고 외워버린 뒤 다시 안 보는 편인데, <제보자>는 대본이 다 닳아서 새 책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밑줄쳐가며 공부했다. 사전지식이 없어선 입에 붙는 자연스러운 말이
[송하윤]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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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황금시대> <비긴 어게인> <위크엔드 인 파리> <노예 12년>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서칭 포 슈가맨> <브레이킹 던 part2> <브레이킹 던 part1> <이클립스> <뉴 문> <트와일라잇> 외 다수
제작
<호우시절> <봄, 눈>
투자
<해안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올드보이> 외 다수
인터뷰 날 한번 잘 잡았다. 9월17일 수입•배급사 판씨네마가 들여온 <비긴 어게인>이 개봉 한달여 만에 관객수 200만명을 돌파했다. 다양성영화가 상업영화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예매율 1위까지 했으니 겹경사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직원들이 “우리 모두 놀라고 있다”라며 활짝 웃어 보인다. “<위크엔드 인 파리>의 린제이 덩컨 같은 느낌?”이라는 사전 정보(?)를 입수하지 않
[STAFF 37.5] 궁금하면 옆길로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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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한 인터뷰에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자신을 ‘이야기보다 캐릭터에 끌리는’ 연출자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그의 11번째 영화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는 <린다 린다 린다> <마츠가네 난사사건>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그리고 <마이 백 페이지>로 이어지는 전작들 안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았던 그의 이 말을 가장 정확하게 실천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다마코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집에 틀어박혀 빈둥대면서 ‘어른’이 되기를 잠시 미룬 ‘잉여청춘’이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얹혀살고 있는 데 대한 미안함이나 잉여가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에 대한 머쓱함을 먹고, 소리치고, 투덜대는 것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그녀는 최근 본 다른 어떤 영화의 캐릭터보다도 매력적이다. 여기에 종잡을 수 없는 다마코를 연기한 마에다 아쓰코가 일본의 정상급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는 사실은 조금 놀랍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사계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무
[야마시타 노부히로] 이런 아버지는 없어, 그러니 위기의식을 갖고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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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석의 봄날이 시작됐다. 상반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의 칠봉이를 연기하며 여성 시청자를 끙끙 앓게 만들었던 유연석이 ‘엄마’와 ‘아빠’가 되어 돌아왔다.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과 영화 <제보자>에서 각각 맡은 역할이다. <꽃보다 청춘>의 자연인 유연석은 마치 칠봉이에게 추진력과 꼼꼼함을 한 스푼씩 끼얹은 것 같다. 어물어물하면서도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느린 말투며, 동료들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닳도록 여행 책자를 들여다보는 진득함이며, 동료들의 양말을 손빨래해주는 다정함까지. “무척 사람을 잘 챙기고 세심한 친구다. 얼마 전 아프리카에 갔다 와서는 선물이라며 커피를 안겨주더라.” 유연석의 “오랜 롤모델”이자, <제보자>에 함께 출연한 박해일도 유연석의 다정함에 제대로 마음을 뺏긴 듯했다(박해일이 이 말을 할 때, 유연석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박해일을 바라봤다).
[유연석] 양심에 마음을 뺏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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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이 발동하면 일단 전진할 것. 한번 뛰어든 취재는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말 것. 제보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할 것. 밝혀낸 진실은 세상에 알릴 것. <제보자>에서 박해일이 연기한 윤민철은 이 명령어에 충실한 시사 방송 프로그램 PD다. 뚝심 있는 저널리스트라는 얘기다. 이장환(이경영) 박사와 함께 줄기세포 연구를 해온 연구원 심민호(유연석) 팀장으로부터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다”라는 제보를 받았을 때 증거가 없음에도 앞뒤 돌아보지 않고 취재에 뛰어든 것도 그래서다. 윤민철 캐릭터에 어떤 배우가 어울릴까 떠올렸을 때, 임순례 감독은 “박해일 외엔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강산이 한번하고도 반이나 더 바뀌었다. 데뷔작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이후 박해일이 임순례 감독과 <제보자>로 재회한 건 무려 14년 만이다. 임순례 감독이 극단 동숭무대 연극 <청춘예찬>을 보고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고등학생
[박해일] 진실을 향해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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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석아, 뒤에 일정 없지? 인터뷰 다 끝나면 내려와. 같이 밥 먹고 가자.” 먼저 인터뷰를 끝낸 박해일이 친근하게 유연석을 불렀다. “네, 형. 먼저 가 계세요.” 유연석도 상냥하게 답했다. 함께 영화에 출연하는 건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가 처음이지만 두 배우는 가늘고 긴 인연을 오래전부터 이어왔다. 유연석은 데뷔 초부터 박해일을 “오랜 롤모델”이라고 얘기해왔고, 두 배우는 <짐승의 끝>과 <늑대소년>에 출연해 각각 조성희 감독과 가까운 사이였다. 두 배우가 사석에서 처음 만난 것도 조성희 감독이 주최한 모임이었다고 한다. 유연석이 “그 자리에 해일이 형도 계시다기에 잘 보이고 싶어서 제가 비싼 재킷까지 입고 갔었어요”라고 말하자 박해일이 장난기 어린 말투로 대꾸한다. “어, 처음 보는 친구가 이상한 가죽잠바 같은 걸 입고 왔더라고.” <제보자>에서도 두 배우는 끈끈한 신뢰로 이어져 있다. 방송국 PD 윤민철(박해일)은 아무런 증거도 없
[제보자] 믿고 따르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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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인 ‘미디어시티서울 2014’를 찾은 아티스트 호신텅은 마셜 매클루언의 꽤 오래된 명제를 물리적으로 실현시켰다. 이번에 전시된 ‘홍콩 인터-비보스 영화제’는 가상의 영화 28편으로 이뤄진, 영화 없는 영화제다. 홍콩현대미술상 전시와 상하이비엔날레(2012)에서 호평받으며 2012년 홍콩예술진흥상을 수상한 이 전시는 영화 스틸, 포스터, 시놉시스, 예고편까지 모두 가상으로 이뤄졌지만 실제 열리는 영화제와 다를 게 없는 효과를 발휘한다. 관객은 없지만 영화적 체험은 존재하는 색다른 경험의 끝에서 86년생 젊은 작가에게 영화의 오래된 미래에 대해 물었다.
-영화 없는 영화제란 컨셉이 신선하다.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해마다 홍콩국제영화제를 관람하면서 답답했던 부분이 있었다. 10곳이 넘는 장소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다 보니 분명 ‘영화’제인데도 원하는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더라. 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서 출발했다.
[flash on] 영화관람, 일종의 종교 행위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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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돌아오고 싶었던 고향이죠.” 오랜만에 영화를 찍은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신은경은 영화가 ‘고향’이라고 했다. 신은경은 당시로선 드물게 중학생이었던 1988년에 KBS 탤런트 특채로 연기 인생을 시작,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구로아리랑>(1989)으로 데뷔한 뒤 줄곧 영화와 TV를 오가며 전성기를 누렸다. 지금도 팬들은 TV드라마 <종합병원>(1994)의 중성적이고 명랑한 레지던트 혹은 <조폭마누라>(2001)에서 ‘형님’이라 불리던 무뚝뚝한 표정의 여자 보스를 기억할 것이다. 굳이 영화계를 고향이라 부르는 데는 잠시나마 연예계 활동을 쉴 수밖에 없었던 때 임권택 감독의 부름으로 <노는 계집 창>(1997)에 출연하며 재기할 수 있었던 기억, <조폭마누라>의 기록적인 흥행 이후 영화배우로서 더 인정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교차하고 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영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l
[신은경]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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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올슨에게 ‘올슨’이라는 성은 결코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던 적이 없다. 아역배우로 시작해 패션디자이너로 성공한 쌍둥이 언니들(메리 케이트 올슨, 애슐리 올슨)의 명성은 오히려 할리우드가 얼마나 소란스러운 동네인지를 일찍 깨우쳐줬을 뿐이다. 엘리자베스 올슨은 올슨가의 ‘베리 굿 걸’로 자랐다. 그리고 언니들만큼이나 똑똑하게 제 길을 닦아나갔다. 4살 때부터 TV에 얼굴을 비쳤고, 7살 때부터 연기 수업을 받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좀더 편한 옷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는 과정을 손쉽게 건너뛰지 않았다. “LA에 살던 십대 시절,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왠지 부끄러웠다”던 올슨은 열넷, 열다섯살 시절에 “배구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 특기생으로 아이비리그에 진학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연극의 매력을 알게 되면서 배구는 그만뒀다.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때가 된 것이다.
올슨은 뉴욕대 티시예술학교에 진학하면서
[엘리자베스 올슨] <베리 굿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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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
2014 <두근두근 내 인생>
홍보마케팅
2009 <전우치> <내 사랑 내 곁에>
2008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2007 <행복>
2006 <비열한 거리> <타짜>
2005 <외출>
“이런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 오효진 프로듀서의 첫 기획 작품 <두근두근 내 인생>은 <타짜-신의 손>과 같은 날 개봉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홍보마케터로 일하던 시절 <타짜>의 마케팅을 맡았던 적이 있다. “아는 분들은 <타짜> 시절 얘기를 한마디씩 꼭 거드시더라. (웃음)” 영화연출을 전공했지만 “일찌감치 연출에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기획으로 냉정하게 진로를 바꿨다”는 오효진 프로듀서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성향을 살려 홍보마케팅부터 영화 일을 시작했다. 허진호 감독의 <외출>은 그가 처음 마케팅한 영화다. “당시 마케팅을 크게 했던 영화라
[STAFF 37.5] 첫사랑의 두근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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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은 작품에 대한 평가 면에서 단연 고공비행 중이다. “만든 사람 입장에서야 아쉬운 것이 많지만 보는 분들이 하나같이 좋아해주셔서 부담을 느낄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다.” <야간비행>을 제작한 독립영화 제작 배급사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는 그렇게 인터뷰의 운을 뗐다. 초반부 흥행은 아직 저공비행 중이지만 “작품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고 있으니 더 좋아질 것 같다”고도 힘주어 말했다. <야간비행>은 교육 현실의 그릇됨과 성소수자 문제의 차별성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청춘영화라는 분위기 안에서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감독을 인터뷰한 데 이어(<씨네21> 969호), <야간비행>의 또 한명의 조종사인 제작자 김일권 역시 만나고 싶어졌다.
-영화에 대한 평들이 좋다. 반면에 극장 상황은 어떤가.
=블록버스터 시즌이 끝나가는 시점에 개봉한 거라 그 시기를 피했던 작은 영화들이 많이 몰려 있다. 그런데 그 영화들이 상영될 수 있는 극
[김일권] 내가 넘어지더라도 현장은 넘어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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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쇼가쿠칸(소학관) 출판사의 미팅룸에 두 남자가 함께 들어섰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어느 쪽이 만화가고 어느 쪽이 편집자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자신이 그린 만화책의 네모칸에서 슬쩍 빠져나온 것 같은 인상이면서도 “생긴 것도 다르고 절대 내 이야기가 아니고 전부 상상이고 망상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웃음 짓는 아오노 슌주는, 인터뷰 내내 진담과 농담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을 탔다. 그의 만화책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독자를 만화가에 대한 망상에 빠지게 만들 만큼.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제목이 재미있다. 고등학생 때 성적 안 나오면 부모님에게 하던 변명 같은 느낌도 들고.
=처음 이 아저씨 이야기를 생각했을 때는 제목이 달랐다. 연재가 결정되면서 처음 단편으로 선보였던 타이틀이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었고 그걸 장편 전체 제목으로 삼았다. 까부는 제목이 좋겠다 싶어서. …
[trans x cross]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지금의 온도’로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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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은 가장 강한 모습과 가장 약한 모습이 공존하는 배우예요.” 조성희 감독이 말했다. 강약, 선악, 희비. 이제훈은 이 모든 상반된 것들을 한몸에 품고 있는 배우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현실의 이제훈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너무 평범해서 심심하다는 말을 곧잘 듣는 이제훈에게 첫인사로 변한 게 하나 없다는 말을 건넸다. 그는 다행이라며 웃었다. 다행인 건 우린데. 풋풋한 외모, 바른 청년의 분위기, 진지한 태도가 신인 때나 지금이나, 군대 가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다. 딱 하나 변했다고 느낀 것은 말이 길어졌다는 것. 내뱉는 말에 더 많은 생각과 더 깊은 고민을 싣다보니 그럴 수밖에. 본인은 “그래서 제가 재미가 없어요”라며, 재미없는 자신의 모습이 유감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또래의 그 누구보다도 다작 레이스를 펼쳐온 이제훈이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다. 7월24일 제대한 이제훈은 복귀작으로 드라마 <비밀의 문>(9월22일 첫 방송)을 택했다. <늑대소년>
[이제훈] 냉정의 숲 열정의 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