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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코믹스는 현대의 신화를 쓴다.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를 창조해왔다는 게 아니다. <스타워즈>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인류가 오래전부터 반복해온 이야기의 원형에서 모티브를 따와 현대적으로 각색했다는 의미다. DC 코믹스는 항상 클래식한 서사에 뿌리를 두었고, DCEU 역시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스크린에 신화를 쓰고자 했다. DCEU의 영웅들이 가진 고뇌는 한결같다. 영웅으로서의 정체성 찾기는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나의 뿌리, 부모의 부재를 어떻게 마주 보고 극복할 것인가.
비유하자면 배트맨은 부모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으로 빚어진 어둠이고, 아쿠아맨은 어머니의 부재가 불러온 정체성의 문제로 야기된 결핍이다. 이러한 집착은 때론 너무 비대해져 급기야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에 이르면 웃지 못할 해프닝마저 벌어졌다. 슈퍼맨과 배트맨의 대결이 어머니의 이름으로 실마리가 풀릴 땐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DCEU의 13번째 작
[커버] ‘플래시’, 끝, 어쩌면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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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 리그의 분위기 메이커 플래시의 단독 영화가 드디어 공개됐다. 주연배우 에즈라 밀러의 기행과 구설로 인해 개봉까지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베일을 벗은 영화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플래시>는 빛보다 빠른 영웅 플래시의 첫 번째 단독 영화이자 잭 스나이더가 기틀을 잡았던 DC 확장 유니버스(이하 DCEU)의 마지막 영화다. 멀티버스는 더이상 낯선 아이디어가 아니지만 <플래시>는 이 식상한 설정에 다시 한번 흥미로운 불씨를 지핀다. 2017년 <저스티스 리그>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솔로 무비에서 플래시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DC의 멀티버스를 제대로 보여주는 이번 영화가 DC만이 아닌 히어로영화 전반의 흐름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플래시>의 매력과 함께 찬찬히 살펴보았다.
* 계속해서 <플래시> 커버 기사가 이어집니다.
[커버] DCEU의 마지막을 장식할 ‘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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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임지호는 현재 드라마 <구미호뎐1938>에서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일본 요괴 사이토 아키라로, 영화관에선 <스프린터>의 단거리 육상 선수 준서로 현실을 전력질주 중이다. 한때 고교 랭킹 1위였으나 지금은 성적이 나오지 않는 준서는 학교 육상부가 존폐 위기에 처하자 절박한 마음으로 레이스에 오른다. 임지호는 이미 정교하게 쓰인 시나리오를 분석하며 캐릭터의 디테일을 채웠다. “준서가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코치 지완(전신환)의 부담에 은연중 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 분석이 행간을 읽어낸 것이라 짐작했지만 막상 작품을 쓴 감독님은 ‘그럴 수 있겠네!’라고 말씀하셨다.” 학창 시절 체육대회 계주 경주에 늘 출전했던 그는 이번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육상 전문가들과 두달간 훈련하며 실제 선수처럼 보일 방법을 연구했다. “내가 언제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님의 지도를 받겠나 싶어 호기롭게 훈련장에 갔는데 운동장을 두 바퀴
[WHO ARE YOU] '스프린터' 임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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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친 머리에 남루한 옷차림, 항시 근심 가득한 표정. 수인의 외양은 그간 우리가 봐온 배우 이윤지와 영 딴판이다. 성격도 마찬가지다. 산업재해로 남편이 사망한 이후 수인은 어두운 기척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해사하고 따스한 성정의 배우 이윤지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캐릭터다. 그러나 <드림팰리스> 속 이윤지는 놀라울 정도로 수인과 닮았다. 이것은 진심으로 수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으려는 배우의 깊은 공감과 몰입에서 비롯된 결과다.
- 수인의 겉모습과 성질은 배우 이윤지의 이미지와 무척 다르다. 그런데 지금껏 맡은 배역 중 수인이 평소의 본인과 가장 많이 닮았다 느꼈다고.
= 수인과 나 모두 두 아이의 엄마라는 점이 컸다.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수인의 처지에 공감이 됐다. 그리고 사실 수인의 초췌한 외모가 요즘의 나랑 비슷하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집에선 어쩔 수 없이 수인 같은 모습이 되니까. (웃음) 물론 수인이 평소 배우로서의 내 이미지와 다르다
[인터뷰] ‘드림팰리스’ 이윤지, 나를 닮은 수인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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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선영을 통해 생애 보편적인 애환과 고락을 덤덤히 그려낸 배우 김선영은 능청스럽게 동네 분위기를 압도하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박찬숙으로, 밀도 높은 설움과 슬픔을 끌어안은 영화 <세자매>의 희숙으로 작품에 다양한 현실을 반영해왔다.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극성 맞은 학부모 조수희의 얼굴과 목 터져라 노동가요를 부르짖는 드라마 <퀸메이커> 화수의 얼굴이 동시대 같은 하늘, 다른 곳에서 안착할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남편의 산업재해 합의금으로 새로운 터전을 찾은 <드림팰리스>의 혜정은 미분양 아파트가 숨긴 민낯을 그대로 직면한다. 유가족 농성장을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아파트를 할인 분양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가해자만 지워진 전쟁터에서 피해자 간의 혈혈한 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배우 김선영은 혜정이 되어 또 다른 현실을 비춘다.
-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혜정을 어떻게 바
[인터뷰] ‘드림팰리스’ 김선영, 삶과 조응하는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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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혜정(김선영)은 합의 보상금으로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다. 함께 농성을 벌이던 유가족들과 다른 갈래의 길을 걷게 된 그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쏟아지는 흙빛의 녹물. 건설사는 미분양 아파트라는 이유로 거주자가 더 모여야 수리할 수 있다며 선을 긋고, 분양사는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어느새 혜정의 머릿속엔 대전제 하나가 생겨난다. ‘안정적인 삶을 누리려면 텅 빈 아파트가 먼저 채워져야 한다.’ 혜정이 수인(이윤지)에게 드림팰리스 입주를 권한 데에는 함께 투쟁하던 친구를 되찾고 싶다는 관계적 욕망과 정상화된 아파트 생활에 대한 선망이 작용한다. 농성장을 떠난 유가족과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유가족, 할인 분양으로 입주를 앞둔 사람들과 그들의 입주를 막아선 사람들. 피해자로 한데 묶인 이들은 각자의 사정과 입장 차이로 갈지자로 흩어진다. 첨예한 사회문제 속에서 김선영, 이윤지가 그려나간 감정의 굴곡을
[커버] ‘드림팰리스’ 김선영, 이윤지, 우리들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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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석 배우의 전화 한통으로 <범죄도시3>에 출연하게 됐다고.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캐릭터에 관한 설명도 듣지 않고 섭외에 응한 셈인데.
= 오히려 운명 같았다. 회사 동생, 그리고 매니저와 여행차 강화도로 가고 있을 때였다. 우리끼리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직업적인 고민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마동석 선배가 전화를 해선 <범죄도시> 세 번째 시리즈의 빌런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범죄도시2>도 개봉하기 전이라 <범죄도시3>가 만들어지는 줄도 몰랐지만, 하겠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정말 재밌는 타이밍이었다. 마치 내 고민에 대한 해답을 곧바로 얻은 것 같았다. 한편으론 왜 나일까 싶기도 했다.
- 왜 본인이었던 것 같나.
= 안 그래도 현장에서 “왜 저예요?”라고 물어봤다. 마동석 선배와 사적으로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으나 내 작품을 꾸준히 봤고, <야구소녀>를 통해 변화를 증명해냈다고 느껴 꼭 같이하고 싶었다고
[인터뷰] ‘범죄도시3’, 이준혁의 여유롭지만 저돌적인 ‘빌런 주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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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이 <범죄도시3> 악역으로 캐스팅됐다고?” <범죄도시2>가 1200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을 때, <범죄도시3>와 관련된 소식도 덩달아 화두에 올랐다. 그 중심엔 차기 빌런으로 낙점된 이준혁이 자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 <비밀의 숲> 시리즈, <60일, 지정생존자>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깔끔한 제복 차림, 단정한 정장 차림이 익숙한 그가 과연 어떤 악역의 얼굴로 강해상(손석구)의 뒤를 이을까. <범죄도시3>의 주성철은 지하 세계의 마약 거래를 담당하는 인물이다. 시종 여유로운 웃음을 잃지 않지만 때때로 번뜩이는 안광과 분노할 때 불거지는 턱 라인이 그의 이면을 상상케 한다. 마석도 형사(마동석)와 대등하게 느껴질 정도로 체격을 키웠고, 종국엔 그와 직접 맞붙으며 타격감 넘치는 액션을 선보인다. 전에 없던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의 궁금증에 배우 이준혁
[커버] ‘범죄도시3’ 이준혁, 자신감 있는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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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무비 <롱디>가 호기심 강한 박유나의 구미를 당겼다. 그는 “언제 또 이런 독특한 작품을 만날지 몰라”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임재완 감독에게 출연 의사를 전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5년 사귄 동갑내기 남자 친구 도하(장동윤)와 장거리 연애 중인 뮤지션 태인. 기대했던 대로 <롱디> 촬영은 처음의 연속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찍는 것, 화면에 얼굴만 나오는 것, 노래를 녹음한 것 모두 그랬다. “도하와의 영상통화 장면을 아이폰 후면 카메라로 직접 촬영했다. 진짜 ‘영통’하는 것처럼 앵글을 바꿔 보는 재미가 있었다. 실제로 연기할 때도 몸을 많이 쓰지만 이번에는 표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태인이 이름으로 앨범을 냈는데, 2년간 아이돌 연습생으로 지낸 게 도움이 됐다.”
말마따나 그는 가수 데뷔를 준비했고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야금 선생과 모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어른들의 꿈에 가까웠다. 연기 역시 권유로 시작했으나 확실히 전과는
[WHO ARE YOU] ‘롱디’,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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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하듯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나의 정신과 마음이 쉴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선물을 해주는 거지. 그런 면에서 당일치기 여행의 매력에 설득이 됐다."
- 평소에 영화를 많이 보지 않나. 최근엔 어떤 영화로 일상을 채워나갔는지 궁금하다.
= 우선 기다리던 다르덴 형제의 신작 <토리와 로키타>를 극장에서 봤고 <컴온 컴온>도 재밌게 봤다. 그리고 예전에 즐겁게 봤지만 기억에서 흐릿해진 작품들, <파니 핑크> <체리향기> <팬텀 스레드> <갈매기> 등을 관람했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작품들을 무작위로 보는 편이다. 영화는 내가 숨 쉴 수 있는 일종의 창구고, 그외에 별다른 취미가 없어서 더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 여러 시나리오들을 읽었을 텐데 그중 <박하경 여행기>가 눈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인가.
= 극의 구성이 신선했고 시나리오도 재밌었다. 대부분 캐릭터의 히스토리가 짜여져 있기 마
[인터뷰] ‘박하경 여행기’ 이나영, 채움보다 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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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버리고 싶을 때 떠나는 단 하루의 여행. 하경(이나영)은 한 도시에 들러 그날 밤을 넘기지 않을 일정만 소화한 뒤 귀가한다. 그 단출한 여정엔 매번 새로운 인연이 기다린다. <박하경 여행기>는 이종필 감독이 연출하고 손미 작가가 각본을 쓴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로, 하경이 떠난 여덟번의 여행을 차례로 묘사한다. 아릴 만큼 자극적인 작품들 사이에서 <박하경 여행기>는 심심하면서도 한끗 다른 새로움을 선보인다. 여백 가득한 이 드라마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건 이나영이란 레이어가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네 멋대로 해라>의 전경의 독특함 혹은 <영어완전정복>의 영주의 코믹함과도 견줄 수 있겠으나, 하경의 매력은 그의 여정을 따라가야만 온전히 느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나영 외에도 구교환, 길해연, 박세완, 박인환, 서현우, 선우정아, 신현지, 심은경, 조현철, 한예리 등이 출연했으며 5월24일 웨이브에서 4화가 먼저 공개된 뒤, 5월3
[커버] ‘박하경 여행기’ 이나영, 차곡차곡 쌓이는 이나영이란 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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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모범생 고준희(조준영)와 쾌활한 운동선수 고유(오세훈)는 말투부터 스타일까지 모든 면이 다르지만, 어린 시절부터 형제처럼 함께 성장하며 서로의 곁을 지킨다. 어느 날 준희의 건강이 악화되자 고유는 기꺼이 자신의 신장을 내어놓는다. 신장이식 후 성격이 변한 준희와 고유는 한소연(장여빈)을 동시에 사랑하게 되면서 대립한다.
드라마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에서 준희를 연기한 조준영은 단짝이면서 경쟁자가 되는 고유와의 관계를 섬세히 묘사하고자 했다. 고유 역을 맡은 오세훈과는 작품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자주 만나 배역에 대해 논의했다. “다른 배우들과도 연령대가 비슷해서 금세 친해졌다. 출연진 사이가 좋으면 현장에서 연기하기도 편안하다는 걸 실감했다.” 장기를 기증한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이 수혜자에게 전이된다고 알려진 셀룰러 메모리 증후군을 겪으며 점차 바뀌어가는 준희의 모습도 입체적으로 표현하려 애썼다. “이식 수술 이후 준희의 성격을 나타내는 게 쉽지 않았다. 준
[WHO ARE YOU]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 조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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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택배기사가 아니다. 폐허가 된 한반도에서 이들은 낮에는 헌터들의 공격을 뚫고 생필품을 전달하고 밤에는 난민들을 돕는 ‘블랙 나이트’로 활약한다. 기사(deliverer)와 기사(knight)의 간극을 김우빈은 외양적으로, 배우의 존재감으로 설득해낸다. 에어코어 마스크가 얼굴의 절반을 가리지만 김우빈 특유의 눈매는 더 강하게 드러나고 몸을 부풀려 보이게 하는 택배기사복은 그의 체격을 돋보이게 한다.
<마스터> <외계+인> 등 이전 필모그래피에서도 꾸준히 합을 맞춰온 조상경 의상감독은 이번에도 김우빈에게 최적화된 택배기사의 외양을 구현해냈다. 극 중 ‘5-8처럼 되고 싶다’고 꿈꾸는 사월(강유석)에게서, 그런 사월의 롤모델이자 멘토가 되는 5-8에게서 김우빈의 과거와 현재가 비춰보이기도 한다. 모델을 꿈꾸며 열정적으로 진로를 모색하던 청년 김우빈 역시 어느덧 누군가의 선배이자 꿈이 되어 있다. SF 액션 드라마 <택배기사>는 김우빈이 이제까지
[인터뷰] ‘택배기사’ 김우빈, 디스토피아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5-8’의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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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 충돌로 미래의 한반도는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인류의 1%가 살아남았지만 극심한 대기오염과 자원 부족으로 사람들은 등급별로 나뉘어 살아간다. 선택받지 못한 난민들은 헌터가 되어 사람들의 공기와 생필품을 약탈한다. 사람들에게 생존 물품을 안전하게 전달해야 하는 택배기사는 사회의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명맥이자 난민이 일반 등급으로 편입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난민 출신으로 택배기사가 된 5-8은 난민 세계의 전설적인 영웅이자 꿈같은 존재다. 동명의 웹툰을 바탕으로 조의석 감독이 각색, 연출한 <택배기사>는 5월12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디스토피아 세계관 속에서 생존 물품 그 이상의 것을 나르고 돌아온 김우빈을 <씨네21>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배우 김우빈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커버] ‘택배기사’ 김우빈, 김우빈 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