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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은 송강호가 김지운 감독과 함께한 다섯 번째 작품이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등 시네아스트들과 송강호가 동행한 궤적이 곧 21세기 한국영화의 개념과 성격을 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그가 아예 70년대 영화감독 역할로 분한 <거미집>은 단지 그가 연기한 캐릭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스승 신 감독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채 평론가들에게 싸구려 치정극이나 찍는다고 악평을 받던 김열 감독은 이틀만 시간을 내서 ‘거미집’의 결말을 다시 찍으면 분명 걸작이 될 것이라는 광적인 믿음에 사로잡힌다.
- 김지운 감독과 인연을 맺은 지도 무려 25년이 흘렀다. 그는 어떤 연출자로 각인되어 있나.
= 장르의 변주를 통해 자기만의 영화 스타일을 구축해온 감독이다. 코미디든 공포든 드라마든 호쾌한 액션 활극이든 기존 장르를 새롭게 비틀며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점이 무척 놀랍다. 김지운 감독과 다섯 번째 작품을 함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
[인터뷰] 송강호라는 메타포, ‘거미집’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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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 찍은 영화를 다시 촬영하기만 하면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탄생할 것 같은 직감이 번뜩일 때, 당신이 감독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직감에만 의존해 감독이 설득할 때, 당신이 배우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여러모로 힘들어질 것이 뻔한데 감독의 비전에서 한 줄기 빛을 볼 때, 당신이 제작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위 질문들에 대한 갖가지 답을 <거미집>의 인간 군상이 제시한다. 1970년대, 독재정권의 검열 속에 영화를 만들던 김열 감독은 어느 날 촬영을 마친 영화 ‘거미집’의 결말을 바꾸면 걸작이 완성되리란 확신에 사로잡힌다. 재촬영의 과정은 물론 순탄할 리 없지만 그럼에도 필름 머스트 고 온, 영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거미집’을 찍는 한바탕 소동극을 담은 영화 <거미집>의 네 배우, 송강호,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을 만났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거미집> 배우들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커버] 필름 머스트 고 온, ‘거미집’ 송강호,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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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악> 속 의정의 삶은 고군분투의 연속이다. 대대로 경찰을 배출한 집안의 딸로 자라 경찰이 돼 보안과 경위까지 올랐지만, 1990년대 대한민국의 여성인 의정의 진취성과 독립성을 사회 분위기는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친정 식구들의 구박데기인 남편 준모(지창욱)는 지역 발령 근무 중 의정 몰래 서울에 와 마약 조직 내부에 위장 잠입하는데, 조직의 엄혹한 보스 기철(위하준)은 의정의 아련한 기억 속에선 순수한 소년이었다. 맞서 싸워야 할 일이 의정 앞에 거듭 놓이지만 의정은 멈추지 않는다. 이같은 의정의 태도는 배우로서 “끊임없이 부딪히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임세미와 똑 닮아 있다.
- 의정 역을 맡게 된 결정적 동기가 있나.
= 우선 작품을 연출한 한동욱 감독님의 전작이 <남자가 사랑할 때>여서 무척 반가웠다. 20대 시절 로맨스 장르에 관한 호기심을 마음에 품던 때가 있었는데, 그 작품을 보고 이런 것이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터뷰] 혼란의 갈림길에서, ‘최악의 악’ 임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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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악>은 정기철(위하준)의 입장에서 보면 순정적인 이야기가 된다. 1990년대 별것 없는 ‘강남 토박이’ 기철은 고교 동창들을 건사하며 우정의 왕국을 세운다. 거대 마약 밀매 조직 ‘강남연합’의 보스로 군림하던 어느 날, 친형제나 다름없던 죽은 절친 태호(정재광)의 사촌 형 승호(지창욱)가 나타나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의 속을 헤집고, 승호의 아내인 줄 모르고 재회한 첫사랑 의정(임세미)은 그를 잠시 호시절로 데려간다. 하늘 한번 보고 스마일. 올해 4월 말 끝낸 <최악의 악>의 현장을 떠올릴 때마다 위하준은 행복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동안 장르물에선 칼처럼, 로맨스물에선 꿀처럼 미소를 사용해왔던 그가 이번에는 무표정으로 최악을 참고 견디는 한 남자를 연기했다.
- <최악의 악>은 경찰이 조직에 위장 잠입해 수사하는 익숙한 언더커버 이야기인데, 이 작품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하고 출연을 결정했나.
= 처음엔 나도 뻔하지 않을까 생각했
[인터뷰] 어떤 공감, ‘최악의 악’ 위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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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한 세상에서 평범한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한 <도시남녀의 사랑법>, 어리숙한 편의점 점장의 로맨스를 그린 <편의점 샛별이>, 호스피스 병원의 생과 죽음을 다룬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 등 배우 지창욱이 최근 3년 동안 걸어온 길은 로맨틱 코미디와 휴먼 드라마로 가득하다. 거친 말투와 빠르게 전개되는 고난도 액션, 아슬아슬한 눈치 싸움 등 <최악의 악>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눈에 띄는 건 새로운 모습의 지창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마른 땅에서 자란 고혹적인 꽃처럼 박준모는 꼿꼿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땅 아래에서 물줄기를 찾아 조용히 자리를 뻗는 뿌리만큼 그는 생존 욕망과 인정 욕구도 강하다. 인간은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따라 박준모로 변한 지창욱을 만났다.
- <최악의 악>은 최근 3년 동안 참여한 작품들과 색깔이 많이 다르다.
= 누아르는 처음이다. 항상 범죄 스릴러물이
[인터뷰] 말하듯 몸으로 연기하기, ‘최악의 악’ 지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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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한중일 마약 거래의 중심지로 강남 일대가 떠오르던 시절, 관련 조직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시골 경찰 박준모(지창욱)는 두 계급 특진을 걸고 조직에 잠입해 수사를 벌인다. 사랑하는 아내이자 이제 막 서울청 보안관 자리를 발령받은 의정(임세미)의 존재는 준모를 묘한 자격지심과 무한한 지지 사이에서 공중그네를 타게 한다. 강남연합 보스로 자리 잡은 정기철(위하준)은 박준모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그와 함께하게 되고, 과거에 알고 지낸 의정과 예기치 못한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세 인물은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각개전투를 벌이는 동시에 왜곡된 방향으로 무한 질주를 그려간다. 최악의 ‘악’을 각자의 형태로 현실화한 배우 지창욱, 위하준, 임세미를 만나 위태로운 관계의 서막을 물었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최악의 악> 지창욱, 위하준, 임세미 배우와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커버] 은밀하게 사악하게, ‘최악의 악’ 지창욱, 위하준, 임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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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옷차림만큼이나 성숙한 말씨와 행동, 타인의 기분을 살필 줄 아는 배려심과 느긋한 성격. <안녕, 내일 또 만나>는 강현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기보다 고등학교 시절 그와 같은 아파트에 살던 후배 동준(홍사빈)의 시선을 빌린다. 관객과 강현 사이에 놓인 거리 또한 주인공 동준의 감정에 따라 좁혀지기도, 멀어지기도 한다. 비밀스러운 소년을 만난 배우 신주협은 자기 안에서 강현을 끄집어내기 위해 예리한 눈으로 그를 탐색했다. “강현은 LP를 모아 노래를 듣거나 단편소설을 써 문학상을 받기도 한다. 유행에 민감한 여느 10대 아이들과 달리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해나간다.” 바깥세상의 일들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현의 단단함을 발견한 신주협은 “강현의 위태로움은 그가 교복을 입은 미성년자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예리한 관찰을 건네기도 했다.
뮤지컬 <난쟁이들>로 데뷔한 신주협은 어려서부터 무대와 친숙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 춤, 연기를 꾸준히
[WHO ARE YOU] ‘안녕, 내일 또 만나’ 신주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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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껍데기다. 그러나 이 껍데기는 너무 과중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겨우 몇 글자의 이름은 가족 관계와 사회적 지위, 고유의 성격이나 밟아온 과거를 단순 합산하여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곤 한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곤 하나 실제 우리 삶의 부피에 비해 이 집은 종종 좁아 보이기 일쑤다. 이에 <한 남자>는 주인공 키도(쓰마부키 사토시)와 X(구보타 마사타카)를 둘러싼 껍데기들, 가령 그들의 이름이나 체면 같은 것들을 벗긴다. 더하여 <한 남자>는 영화의 이미지를 감싸안고 있는 몇 가지 껍데기, 이를테면 서사의 개입과 설명식의 주석들까지 벗겨낸다. 이로써 그것들 속에 진정 무엇이 들었는지 집요히 바라보게 만든다.
작품의 도입부부터 호기롭다. 브라운 톤의 안락한 조명, 카메라는 벽을 비추고 그곳에는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이 걸려 있다. 그림 속의 한 남자는 거울을 보고 있는데 거울엔 본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오프닝 타이틀이 오르자
스쳐가는 진실한 마음들, ‘한 남자’가 순간의 진실을 보여주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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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워터 보이즈>로 동시대 청춘의 표상이 됐던 쓰마부키 사토시.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는 <한 남자>의 주인공 키도가 되어 ‘자신이 누구인지’란 질문에 답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이 질문은 비단 키도의 것만은 아니다. 쓰마부키 사토시 역시 오랜 배우 활동을 거치며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거듭하고 있다. “배우 경력이 쌓일수록 ‘나’란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게 된다.” 이에 그는 때마다 다른 영화 속 인물로 존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미지의 상자 속을 채우고 있다. 이를테면 키도를 연기하기 위해 직접 재판정을 찾거나 실제 변호사들과 만나 배역을 연구하고, 장면 하나하나의 영화적 의미를 적확히 꿰뚫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한 남자> 속 키도의 여정은 키도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배우 쓰마부키 사토시의 여로이기도 한 셈이다. 이로써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한 남자
[인터뷰] 알 수 없는 것을 연기하기, ‘한 남자’ 쓰마부키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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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변호사 키도(쓰마부키 사토시)가 X(구보타 마사타카)의 정체를 좇는다. 키도의 의뢰인인 리에(안도 사쿠라)의 남편 X가 사실 타니구치 다이스케란 타인의 호적으로 살아왔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X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키도는 재일 교포, 아버지, 남편, 변호사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누구인지를 깊이 고민하기에 이른다. 이시카와 게이 감독과 배우 쓰마부키 사토시의 세 번째 협업인 <한 남자>는 2023년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8관왕의 영예를 안은 작품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후 지난 8월30일에 국내 개봉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한 남자>가 집요하게 던지는 이 질문엔 쉽사리 규명할 수 없는 모호함의 정서가 깔려 있다. 키도를 연기한 쓰마부키 사토시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우선 그의 얼굴은 <워터 보이즈>(2001),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에서 보여줬던 풋풋한
[커버] 그 남자의 진심, ‘한 남자’와 배우 쓰마부키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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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인터넷 방송 BJ. 모두에게 사랑받는 게 꿈인 <마스크걸>의 김모미.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진 못했으나 페이스오프 전 김모미를 연기한 배우 이한별에게만큼은 깊이 이해받았다. “모미는 일말의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직장에 계속 다니는 것도, 외모 콤플렉스가 있어도, 얼굴을 고치지 않는 것도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줄 사람이 나타날 거란 기대 때문이다. 결국 그가 성형수술을 택했다는 건 희망을 완전히 놓아버렸다는 뜻이다.” 이한별은 <마스크걸>로 데뷔하기까지 숨찬 시간을 거쳤다. 2021년 9월부터 4개월간 오디션을 치렀고 2022년 대부분을 안무 연습과 촬영을 병행하며 보냈다. 함께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을 알게 된 현장에서 연기를 계속해야 할 이유를 찾았다. 2화 모텔 신은 그 즐거움을 크게 느낀 장면이었다. “주오남(안재홍)이 제발 가달라고 외치는 순간에 모미가 맞대응하지 않는 감정 처리는 현장에서 내 의견이 반영된 결과였다. 즉
[WHO ARE YOU] ‘마스크걸’ 이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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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는 드라마 <굿와이프>, 영화 <자백>에 이어 또 한번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만났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원작에 갇히는 느낌이 들어서 웬만하면 원작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나나가 연기한 ‘김모미B’는 동명의 원작 웹툰 연재 당시에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파트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인터넷 방송 BJ로 활약했던 김모미는 살인을 저지른 후 성형수술을 받고 전혀 다른 얼굴로 다시 나타난다. 평범한 직장인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후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살아간다는 극단적인 상황을 자기답게, 설득력 있게 연기한 나나의 신중한 태도는 단기간에 완성된 행운이 아니다. 원작의 모사가 아닌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만의 ‘김모미B’를 연기하기까지, 나나가 배우로서 부단히 훈련해온 과정을 함께 들었다.
- 3인1역이기 때문에 오히려 고현정, 이한별 배우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을 것 같다.
= 대본 리딩 때 한번 뵀고, 촬영장에서
[인터뷰] 내 안의 나를 꺼내어,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마스크걸’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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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뷔작이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이었듯, 첫 OTT 시리즈물 작업에 있어서도 고현정은 의외의 선택을 보여준다. <마스크걸>의 세 번째 김모미, 일명 모미C인 그는 폭주기관차 같은 작품의 종착지에 묘령의 얼굴로 유유히 서 있다. 한국 여자배우 중 여왕(<선덕여왕>)과 대통령(<대물>)을 모두 연기한 유일한 인물인 그에겐 “혼자 이끌고 가야 하는 역할도 있었다면, 좋은 배우들 사이의 일부로 놓여 즐겁게 촬영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들어 새롭고 반가웠던” 작품이 <마스크걸>이다.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에서 에르메스 백을 바닥에 내팽개치는 순간마저 아이코닉해 충격을 준 이 배우는, “평소 자연스럽게 짓게 되는 표정과 근육을 최대한 쓰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스타성을 탈색시키면서 지금의 김모미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렇게 몸의 움직임까지 최소화해 만들어낸 고현정의 김모미는 무망한 삶에 간신히 적응한 비련의 여자이기보
[인터뷰] 모른다는 주문을 외우며, ‘마스크걸’ 고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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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걸>에서는 세명의 배우가 한 사람을 연기한다. 배우의 변화는, 인물의 성형 여부와 세월을 말해주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주효하게는 세개의 다른 자아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흡인력을 갖는다. 동일인물을 연기함에도 결코 동일해지지 않는 배우들로부터 김모미는 비로소 고유해진다. 여기, 한 여자를 연기하는 두명의 여자를 소개한다.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비상하는 순간과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순간을 모두 책임지는 배우들이다. 디바가 되고 싶었던 소녀, 인터넷 방송의 스타, 누군가의 연인이자 엄마, 교도소의 미친 여자, 그 누구도 아닌 초연한 존재에 도달하기까지 김모미는 고현정과 나나의 현신을 빌려 비로소 웹툰 밖으로 걸어나온다. 배우 고현정과 나나는 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유사성에 집중하기보다 총 7회 분량의 드라마에서 단 2회씩 등장함에도 강력한 존재감과 개성을 남기는 각자의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파트너십을 완성했다.
*이어지는
[커버] 같지만 다른 존재들, ‘마스크걸’ 고현정 x 나나